정토행자의 하루

노원정토회
스물여섯 해 정토회 인연이 가르쳐 준 삶의 자세

풋풋한 이십 대에 정토회 홍제동포교원과 인연을 맺어 지금은 오십을 훌쩍 넘어선 오늘의 주인공은 노원정토회 대표 소임을 맡고 있는 박순천 님입니다. 치기 어린 시절부터 여여하게 넘어짐을 인정하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굴곡 있는 그녀의 삶 이야기를 솔직하게 풀어놓습니다. 젊은 날 박순천 님과 동시대를 살아온 희망 리포터도 이 화기애애한 만남이 즐거웠습니다.

청춘, 정토회 홍제동 포교원에 들어가다

법륜스님을 만난 시기는 스무 살을 갓 넘긴 교육대학 4학년 풋풋한 시절, 법륜스님 (당시 최석호법사님) 의 책 세미나에 참여한 것이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 후 초등 교사로 사회생활을 시작했지만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살아온 습관대로 성질을 부리고 때론 사명감에 사로잡혀 가르침에 집착하곤 했습니다. 이때 반 아이들이 지어준 박순천 님의 별명은 ‘지각대장, 뒤죽박죽 선생님’이었습니다. 교육대학교를 강요했던 부모님에 대한 원망과 다양한 능력을 요구하는 교사라는 직업이 버거웠습니다. 민주화 항쟁 등 시대적 상황을 모른 척할 수도 없어 마음 한편에는 부채감도 쌓여갔습니다.

이런 고민 속에 친구를 따라 젊은 박순천 님도 정토회 홍제동 포교원으로 들어갔습니다. 처음으로 ‘나는 누군가?,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생각하며 정체성을 찾기 위한 선택이었습니다. “인생을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과 세상 살이를 잘 해낼 자신이 없었어요. 1993년도 3월 1일 홍제동 들어갔어요. 처음엔 ‘1주일만 살아보자’는 마음이었어요. 매일 새벽 기도정진하고, 학교를 다녀오고, 스님 직강을 듣고 저녁 예불을 하는 생활이었습니다. 고된 생활이었지만 법문이 좋았고 누군가에게 위로받는 마음에 포교원 생활을 계속했습니다.” 그렇게 10개월을 보내고 1993년 12월 31일 박순천 님은 회향을 했습니다. 27살에 겪은 성장통에 정토회는 그렇게 위안이 되었습니다.

홍제정토포교원 청년정토회원과 지리산 산행(앞줄 가운데 박순천 님)
▲ 홍제정토포교원 청년정토회원과 지리산 산행(앞줄 가운데 박순천 님)

기대와 환상으로 세상 속으로 나서다

포교원에서 함께 했던 도반이 직장을 그만두고 출가하거나 행자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 한편 출가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세상을 ‘내 마음대로 살아보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발목을 잡았습니다. “돈도 벌어보고 싶고, 연애도 하고 싶고, 예쁜 원피스도 입어보고 싶었어요. 머리로는 스님의 말씀이 이해되었지만 어린 마음에 세상에 대한 궁금증과 환상이 있었나 봐요. 직장과 학벌 좋은 잘 생긴 남자와 결혼도 하고 싶었고요.”

내적으로 강해지고 어떤 시련 앞에서도 당당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안고 세상 속으로 걸어 들어갔습니다. 소개팅도 하고 선도 보면서 결혼을 꿈꾸었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스님의 말씀처럼 ‘잘 맞추고 살 수 있는 사람’도 아니었고 ‘결혼을 하면 나를 괴롭히거나 타인을 괴롭히겠구나‘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고집 세고 화 잘 내는 나의 질긴 업식이 보였으니까요. 물론 죽자고 쫓아다니던 남자도 없었어요. 하하”

어린이 법회 봉사, 정토회의 끈을 이어주다

‘봉사를 하지 않으면 정토회와의 인연이 끊어진다’는 유수 스님의 조언에 따라 홍제동 포교원에서 ‘어린이법회’를 진행했습니다. 5년 동안 매주 토요일마다 아이들과 함께 한 봉사가 정토회와의 끈이 되어 주었습니다.

“그때 유수 스님의 말씀이 늘 떠오릅니다. ‘직장생활이 왜 행복하지 않을까요?’라고 불만을 털어놓으니 ‘네가 돈을 받고 일하니 행복할 수 없다. 일과 수행의 통일이 중요하다. 돈을 받으면 노동이고, 즐길 수 없다.’고 하셨어요. 그러면서 스님이 어린이 법회 봉사 소임을 하는 데는 ‘첫째 네 돈을 내고 봉사해라, 둘째 네 마음껏 해봐라, 셋째 어떤 일을 선택할 때 싫은 마음이 올라와서 선택하면 상처가 되니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하셨어요.”

학교 일도 힘든데 ‘아이를 떠맡아야 하다니’ 하는 싫은 마음도 올라왔습니다. 그러나 5년간의 봉사 소임은 오히려 교사로서의 자긍심과 정체성, 봉사의 기쁨을 깨우쳐주었습니다.

홍제정토포교원 어린이법회 교사시절(맨 뒤 왼쪽 모자 쓴 박순천 님)
▲ 홍제정토포교원 어린이법회 교사시절(맨 뒤 왼쪽 모자 쓴 박순천 님)

내 마음대로 살고, 건강을 잃다

봉사마저 내려놓으니 ‘화 잘 내는 교사’로 되돌아갔습니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예전에는 모르고 했던 행동이 ‘내가 이렇구나’ 하면서 똑같이 행동을 하는 자신을 알아차리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2002년 정토회가 서초 법당으로 옮기면서 발길도 뜸해졌습니다. 한편 전교조 분회장도 맡으면서 점점 ‘싸움닭’이 되어갔습니다. “교장과 교감에 대한 반발은 일상이었고 교육청과 싸우기 일쑤였어요. 전교조의 정당성을 떠들면서 모든 것을 내던지며 정의를 위해 싸우는 나를 알아주지 않는 일반 교사들에 대한 원망도 많이 했어요.”

그렇게 업식 대로 살다 보니 찾아온 것은 ‘자궁근종’이라는 질환이었습니다. 이미 근종의 크기는 너무 커졌고, 빈혈 수치도 낮아 개복 수술도 불가능했습니다. 결국 전교조 활동도 내려놔야 했고, 학교생활도 담임이 아닌 교과 선생으로 간신히 이어갔습니다. 수술을 못하니 건강은 더욱 나빠져 평지를 걷는 것도 어려웠습니다. 가끔 철야 정진, 스님 법문 듣기, 천일 결사 입재식에 참여했지만 꾸준히 나를 살피는 기도로 이어지지는 않았습니다.

동북아역사기행(앞줄 왼쪽 첫번 째에 박순천 님)
▲ 동북아역사기행(앞줄 왼쪽 첫번 째에 박순천 님)

노원법당 불사발원에 참여하다

병원을 오가며 박순천 님은 지난 인생을 되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내가 이렇게 살고 싶었나? 왜 이렇게 되었지?’ 열심히 살았다고 자부했지만 결국 ‘업식대로 살았구나’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돌이켜보니 열정을 쏟았던 전교조 활동, 월급 받고 했던 학교생활은 기억에 남지 않았어요. 오히려 어린이 법회 봉사를 했던 시절이 그리웠어요. ‘내가 잘 쓰였고, 행복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비로소 ‘대가 없는 봉사의 소중함’과 ‘직장생활은 돈값을 한 것이지, 내 공덕이 아니었구나’ 하고 깨달았습니다. 봉사 소임을 권하면 무조건 ‘안 하겠다’고 거절하면서 봉사도 사람도 좋고 싫음의 상을 짓고 선택했던 업식과 과거가 부끄러웠습니다.

이때 박순천 님은 ‘가까이에 법당이 있으면 좋겠다. 도반과 법문도 듣고 수행을 함께 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법당이 없던 노원 지역에서는 당시 가정 법회가 열렸는데, 도반과 뜻을 모아 노원 법당을 세우는 ‘불사 발원’기도가 시작했습니다. 박순천 님도 아픈 몸을 이끌고 새벽 기도에 참여했습니다.

“불사 발원을 위해 눈 쌓인 새벽길을 매일 걸어왔던 도반, 이른 새벽차로 도반의 편의를 도와줬던 도반을 생각하면 마음이 짠합니다. 함께 했던 그들이 내 생명을 살렸다고 생각해요. 먹먹할 정도로 너무 고맙지요.” 박순천 님의 눈시울이 붉어집니다. 그렇게 2013년 5월 4일 지금의 노원법당이 개원했습니다.

노원법당 JTS모금 참여 (앞줄 왼쪽부터 3번째에 박순천 님)
▲ 노원법당 JTS모금 참여 (앞줄 왼쪽부터 3번째에 박순천 님)

노원정토회 대표 소임, “예, 하고 합니다.”

노원정토회는 2013년 노원법당을 개원한 이래 든든한 도반과 함께 구 단위로 법당을 세우는 불사 발원을 통해 성북법당, 강북법당, 도봉법당, 중랑법당을 모두 개원했습니다. 박순천 님은 2016년 서원행자로 노원정토회 대표 소임을 맡았습니다. 지금 박순천 님은 무엇이든 주어지는 소임에 ‘예’하고 합니다. 수행도, 보시도, 봉사도 긍정적인 마음으로 일단 합니다. 잘못이 있다면 머리 숙여 ‘죄송합니다.’라고 말합니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해 꺼리던 거리 모금도 선뜻 나서고 ‘잘 하겠다’는 생각보다 ‘필요한 곳이라면 빠지지 말자’라는 마음으로 가볍게 나섭니다. “그냥 하니 할까 말까 하는 번뇌도 없고 업식에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는 힘이 생겼습니다. 몸은 조금 피곤해도 마음도 머리도 맑아지니 행복합니다.”

1994년 인도성지순례 (왼쪽 빨간 스카프를 한 박순천 님 )
▲ 1994년 인도성지순례 (왼쪽 빨간 스카프를 한 박순천 님 )

다시 찾아온 건강 적신호, 지금 이대로 여여하게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자궁 근종도 줄어들고 마음도 한결 편안해졌습니다. 지난 해에는 교사의 자발성을 최대한 수용하는 혁신학교에 초빙되어 한동안 시큰둥했던 교사로서의 사명감도 되찾고, 공교육 시스템을 개선하고 싶었던 젊은 날의 열정도 찾으며 정토회 봉사 소임에도, 교사 생활에도 의욕이 넘쳤습니다. 그러다 보니 다시 건강에 적신호가 켜졌습니다. 희귀성 자가면역질환으로 진단받고 뇌 수술도 견뎌냈습니다. 올해 박순천 님은 월 1회 문경수련원에 참여하겠다는 과제를 수행하며 정토회가 지향하는 삶의 방식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박순천 님은 정토회와의 오랜 인연 속에 감동스러운 장면을 이렇게 전합니다.

“동북아역사기행, 인도 성지순례를 꾸준히 참여하다 보면 법륜스님께 늘 삶의 자세를 배웁니다. 스님은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지면 평정심을 잃지 않고 오히려 그 장애를 즐기며 극복하시거든요. 정토회의 조직력은 시간이 더해지는 만큼 더 큰 감동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경험을 교훈 삼아 그 위에 하나씩 차곡차곡 쌓아가며 성장하고 있는 살아있는 공동체라는 것을 지켜보았습니다. 그 안에서 서로 도반을 챙기고, 점검하고, 평가하고, 토론하면서 시스템을 변화 시켜가는 과정은 놀라울 정도예요. 저도 그 안에서 작지만 주춧돌 역할을 해나갈 생각입니다.”

글_홍명신 희망리포터 (노원정토회)
편집_권지연 (서울제주지부)

전체댓글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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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연지

선생님, 25년전 홍제동 정토표교원 어린이 법회에서 선생님과 함께했던 소중한 추억들이 성인이 되어 아이 둘의 엄마가 된 지금에도 많이 떠올라 추억에 젖곤 합니다. 우연히 법륜스님 강연을 들으러 갔다 구글에서 찾은 이 사진에 너무 신기하고 사진을 보니 떠오른 선생님 얼굴에 그리움이 가득해지네요. 아직 건강하시지요?

2023-11-09 22:44:19

김경아

바빠서 연락 못하고 지낸 사이 또 아프시고 수술한 것도 몰랐네요. 그래도 여여하게 잘 받아들이고 이겨내는 모습이 좋아요. 저도 수행을 더 열심히 해야지 하는 마음을 내봅니다.

2019-05-09 22:51:44

대지심

정토회가 더 체계적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믿음을 주시는군요. 참으로 열심히 사셨네요
정토회의 주춧돌이 되어주어 감사합니다. 덕분입니다~

2019-05-01 07: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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