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회 각 법당에서 안팎으로 가장 많이 신경을 쓰는 사람이 총무라는 소임을 맡은 자원활동가입니다. 인연이 되어 법당에 처음 오시는 분들도 많이 만나게 되는 사람 역시 총무님입니다. 김해 법당에도 낮이나 저녁이나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홍길동처럼 나타나서 모임이나 활동에 진행이 잘되도록 아낌없이 도와주고 끌어주고 밀어주는 분, 이삼순 총무님이 계십니다. 6년 동안이나 총무 역할을 해 오신 이삼순 님의 이야기입니다.

이삼순 님
▲ 이삼순 님

시절 인연

결혼 후 남편은 쌍둥이 형님과 사업을 하면서 오로지 일밖에 모르고 책임감 하나로 회사에만 충실히 다녔습니다. 그러나 시아버님께서 젊은 시절 외도한 경험이 있어서인지, 잘생긴 남편을 둔 저는 남편이 늦으면 의심을 하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늘 마음 한구석에는 허전함과 불안함이 있었습니다.

1년, 2년, 5년 그렇게 계속 반복되는 생활에 저는 너무나 지쳐 갔습니다. 남편과 어린 두 아들한테 '살기 힘들다'고 아우성도 치고, 언니들한테 저의 힘든 점을 하소연을 했습니다. 그런데 언니들에게서 돌아오는 대답은 속시원한 대답은커녕 "네가 무슨 걱정이냐" 는 말로, 공감을 받지 못했습니다.

남동생이 우리 집에서 3년 정도 직장을 다녔을 때, 동생이 제게 '말 속에 화가 가득 차 있다'고 했습니다. 아침에 눈 뜨자마자 두 아들한테 화를 내기 시작하여 잘 때까지 화를 내며 살았던 거죠. 남동생의 말을 듣고 '아차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 싶어 작은언니가 다니는 절에 갔습니다. 그 절 스님이 제 말을 듣더니 북쪽을 향해 매일 300배 백일기도를 하라고 했습니다. 그 스님은 제가 300배를 못 할 것 같다고 했지만 저는 오기로 매일 300배하여 백일 후 회향 마무리하였습니다. 그러나 백일 동안 300배 정진한 힘은 있었지만 저의 괴로움은 해소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작은언니가 '아침마당에 나온 법륜스님이 인터넷에서 즉문즉설로 화끈하게 말씀해 주니 한번 들어가서 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때는 언니의 얘기가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며칠이 지나 거리를 걷고 있는데 '법륜스님의 희망강연' 현수막이 제 눈에 팍 꽂혔습니다. 나름 살려고 발버둥쳤나 봅니다. 그 강연의 인연으로 후속강좌에 참여하면서 2012년 봄, 그 당시엔 김해에 법당이 없어 가정에서 하는 불교대학에 입학했습니다.

부처님 오신 날 안내 중, 왼쪽에서 두 번째 이삼순 님
▲ 부처님 오신 날 안내 중, 왼쪽에서 두 번째 이삼순 님

불교대학 입학식 날 선배 도반의 인사에서 '불교대학과 수행법회를 병행해서 다니면 빨리 괴로움에서 벗어난다'고 하여 화요일과 수요일 이틀을 꾸준히 다녔습니다. 처음엔 불교의 교리도 잘 몰랐지만 쉽게 이해도 되고 생활에 적용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매주 불교대학 수업하는 날이 기다려졌습니다. 학교 다닐 때 개근상 한 번 못 받아본 한이 있어서 불교대학에서 개근상 받아 보리라 마음먹고 다니니, 가정 행사도 피해가고 1년 개근상도 받게 되어 기뻤습니다. 오로지 지혜롭게 살고 싶은 마음에 적극적으로 수업에 동참하였는데, 지혜가 가랑비에 옷 젖듯이 생겨 그래도 살만했고, 가족들도 숨통이 트여 같이 살 수 있었습니다.

수행이 필요함을 알기에...

부모의 요구에 의해 초등학교 6학년 때 골프를 시작한 큰아들은 고1 때까지 하면서 정신적 스트레스가 아주 심했습니다. 어느날 너무 우울해하는 아들과 얘기를 나누었는데, 참았던 눈물을 펑펑 흘리면서 골프를 하기 싫다고 했습니다. 그 와중에도 남편은 투자한 것이 아까워서 그런지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아들을 설득했습니다. 그때 저는 정토회에서 마음공부를 한 지 1년 정도 된 무렵으로, 아이의 아픈 마음을 보았기에 큰아들의 의견을 존중하여 아이가 원하는 대로 하길 바랬습니다. 아마 정토회에 다니지 않았더라면 아픈 아이의 마음을 보기보단 저도 남편처럼 그렇게 했을 거라고 여겨집니다.

너무 무심하게 아들 혼자 힘들게 했다는 생각에 마음이 아파 아들과 일주일간 함께 자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청소년 정신의학과에 함께 가서 진단을 받고 치료도 하고, 골프 고등학교를 그만 다니고 전학을 받아 주는 일반 고등학교로 가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학교생활에 적응을 잘하여 졸업할 수 있었습니다. 제1의 화살은 맞았지만 부처님 법 만나 제2의 화살은 맞지 않아서 다행이며, 수행을 왜 해야 하는지를 알게 해 준 기회였습니다.

불교대학에 다닐때 마음공부는 평생 해야 한다고 느끼면서도 때론 마장이 와서 넘어지곤 했습니다. 그런 제가 다시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은 천일결사 덕입니다. 매100일 마다 열리는 입재식에서 입재와 회향을 꾸준히 한 힘으로 지금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건강한 몸을 위해 운동과 관리가 필요하듯이 마음도 단단하게 심지를 키우기 위해서 수행이 필요함을 압니다. 그래서 아침마다 도반들과 법당에서 수행하는 것을 제일 먼저 하고 있습니다.

2018년 김해시청 행복강연 안내
▲ 2018년 김해시청 행복강연 안내

생명을 살린다는 마음으로 하는 전법

3년 전 큰언니의 큰아들이 여자친구한테 인터넷 도박 사기를 당하면서 언니는 많은 빚으로 충격을 받았습니다. 언니는 심한 우울증으로 일상생활을 하지 못할 정도로 몸과 마음이 많이 지쳐있었습니다. 언니는 미신에 많이 의존하여 우울증도 인정하지 않고 정신의학과에 가기를 거부했습니다. 병원에 가자고 하면 죽는다고 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언니와 병원에 같이 갈까?’ 고민하다가 큰언니의 어릴 적 기억을 떠올릴 수 있도록 어린 시절 고생한 이야기를 해 주니 마음에 와 닿았는지 두말없이 병원에 가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작은언니가 큰언니 옆에서 바라지하고 있는데, 많이 호전되어 나름대로 일상생활도 조금씩 하고 있어 다행입니다.

전법한 결과로 올해 작은언니가 봄불교대학에 입학했고, 그 인연으로 큰언니도 수행법회에 가끔씩 참석하고 있습니다. 생명을 살린다는 마음으로 전법하니 큰 보람을 느꼈습니다. 가족 중에 단 한 사람이라도 수행자가 있으면 좋겠다는 것을 큰언니의 아픔을 경험하면서 알 수 있었습니다. 전법을 꾸준히 하여 우리 가족들이 정토회와 인연되길 원을 세워 봅니다.

2019 언니들과 의창법당에서(맨 왼쪽이 이삼순 님)
▲ 2019 언니들과 의창법당에서(맨 왼쪽이 이삼순 님)

지금 이대로 괜찮은 사람

50살이 되면 봉사하면서 살고 싶었습니다. 봉사를 체험하면서 자존감이 높은 줄 알았는데 자존심만 높았던 저의 모습에서 서서히 자존감이 올라감을 느꼈을때 좋았습니다. 화가 많던 제가 화를 내는 줄도 모르고 살았었는데 ‘이제 화가 올라오네’, ‘화가 시동을 걸고 있네’ 하고 조금씩 알아차릴 수 있어 좋습니다.

2018년 도반들과 강연 홍보 활동(왼쪽에서 두 번째가 이삼순 님)
▲ 2018년 도반들과 강연 홍보 활동(왼쪽에서 두 번째가 이삼순 님)

현재에 만족하지 못하고 말 없는 남편한테 '나 좀 봐달라'고 참 많이도 남편을 힘들게 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말 없는 남편을 긍정적으로 보면 잔소리 안 해서 정말 좋은 점인데 말입니다. 내 수준에 잔소리 들으면 더 힘들었을 텐데 어쩌면 이런 남편을 만나서 더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은 남편을 바꾸려고 하는 마음을 내려놓으니 지금 이대로 괜찮은 사람이며 고마운 사람인 것을 알겠습니다.

남편과 해운대 바닷가에서
▲ 남편과 해운대 바닷가에서

시절 인연 따라 잘 쓰이자

7년이 지나 지금 이렇게 일과 수행하는 삶을 살겠노라 여기는 시점에서 남편이 하는 조선해양 플랜트 사업이 너무 어려워 저도 일을 해야 한다는 남편의 말에 선뜻 동조를 못하고 아르바이트하겠다고 했습니다.

돌아보니 남편의 마음을 확 받아 주지 못하고 내 입장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이제야 남편의 마음이 보입니다. 지금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임에도, 불안한 마음보다는 현실에 맞게 적응할 수 있게 연습을 해서인지 크게 걱정이 안 되는 게 참 다행입니다. 적게 먹고, 적게 자며, 적게 입는 수행자로서 더 살 수 있어 좋습니다. 시절 인연 따라 잘 쓰이는 것이 내 인생의 주인으로 살아가는 것이겠지요.

소임을 하면서도 쉽게 바뀌지 않는 습관들이 있어서 힘들었는데, 10년 수행하니 문제가 해결되더라는 이야기를 듣고 저도 '10년은 해봐야지 달라지겠구나'하고 원을 품게 되었습니다. 낙숫물이 바위를 뚫듯이 부지런히 수행 정진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기에 때론 하기 싫을 때도 있지만 수행의 끈을 잡고 가고 있는 지금이 좋습니다.

2014년 인도성지순례(왼쪽에서 네 번째가 이삼순 님)
▲ 2014년 인도성지순례(왼쪽에서 네 번째가 이삼순 님)

인생에서 제일 잘 한 일

불교대학 졸업 후 경전반에 입학하면서 부처님 발자취를 따라 법륜스님과 함께 떠나는 인도성지순례에 참가했습니다. 그때 부처님께서 걸어서 중생이 원하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전법하신 모습을 보고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원을 세우게 되었으며, 그 뒤로는 해외여행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수업 때만 부르던 삼귀의가 보드가야 순례하면서 마음으로 와 닿아 진정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음이 가슴 벅찼고 자랑스러웠습니다.

동북아 역사기행에서는 세계에서 하나밖에 없는 한 민족 분단의 아픔을 느끼면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통일에 어떻게 관심을 가지면 될까’ 고민한 결과 지금은 평화재단 후원도 하고 통일을 꿈꾸는 정부와 함께하면 되겠다는 희망이 생겼습니다. 또 자식들에게 정토회 인연과 통일 유산을 물려주어야겠다는 희망도 생겼습니다.

묵묵히 지켜봐 준 남편 덕분에 정토회에 다니면서 정토회가 주는 선물을 마음껏 체험할 수 있어 감사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새록새록 생각나며 인생에서 제일 잘 한 것 같습니다. 남편의 후원으로 수행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이 은혜로움을 세상과 가족들에게 잘 쓰이는 것이 그 보답이라 생각합니다.

2019년 JTS 어린이날 거리모금(맨 오른쪽이 이삼순 님)
▲ 2019년 JTS 어린이날 거리모금(맨 오른쪽이 이삼순 님)

일을 통해 분별심과 화도 일어나지만, 밖을 향한 마음을 안으로 돌이킬 수 있는 힘이 생긴 것이 소임 덕분이며 감사한 마음입니다. 도반들과 함께 소임을 나누면서 혼자만의 힘으로는 되지 않음을 알았고, 한 해 두 해 소임을 맡고 같이 하니 불안한 마음이 점점 사라지고 중심을 잡고 나아갈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또한 그 과정에서 ‘이렇게 모자이크 붓다가 되어 함께하면 되는구나’ 라는 희망을 품게 되었습니다. 때론 힘들고 물러나는 마음이 있을 때도 ‘우리 그렇게 해 보면 되겠네요’ 하고 끌어 주고 밀어주는 도반이 있어 지금 여기까지 올 수 있었고, 그런 도반들을 생각하니 고맙고 뭉클한 마음입니다.

내 생각에 사로잡혀 괴로워하며 살다가 정토회와 인연이 되어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던 것처럼 앞으로 누군가에게 생명을 살리는 전법을 꾸준히 하겠으며, 다 함께 행복한 세상을 꿈꾸며 지금처럼 무소의 뿔처럼 묵묵히 한 걸음씩 뚜벅뚜벅 나아가겠습니다.

부처님 오신 날에 시어머니와 동서, 형님(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이삼순 님)
▲ 부처님 오신 날에 시어머니와 동서, 형님(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이삼순 님)


6년째 총무라는 소임을 맡고 일하면서 많이 힘들었겠다고 느껴지면서도 그만큼 도반들의 여러 마음을 받아줄 수 있는 큰 그릇이 되었구나 라는 생각이 듭니다. 올해 부처님 오신 날에 이삼순 총무님의 시어머님과 동서 형님이 김해법당에 와서 같이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보고 사진을 찍어드렸습니다. 그 모습을 보니 ‘바쁜 와중에 며느리 역할도 잘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항상 꿋꿋하게 앞을 보면서 나아가는 모습도 수행의 힘이라 느껴집니다. 이런 분들이 있기에 정토회의 발전이 있고, 지금 우리는 선배 도반의 나아가는 뒷모습을 보고 따라가겠습니다.

글_송현숙 희망리포터(김해정토회 김해법당)
편집_조미경(경남지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