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초에 희망리포터(글쓴이)가 제주여행을 갔습니다. 여행 중에 수요수행법회에 참석하고 싶어서 제주에 있는 정토법당을 찾았습니다. 제주도에는 제주법당과 서귀포법당, 이렇게 두 개의 법당이 열려있습니다. 서귀포시 일주동로에 위치한 서귀포법당이 마침 제가 가고자 한 서귀포 올레 시장과 가까이에 있었습니다.

5월 1일 수요일 오전 10시에 법당 입구에 들어서자 세 분의 봉사자가 있었습니다. 저를 포함해서 네 명이 참석한 수행법회가 시작되었습니다. 법문이 끝나고 네 명이 둘러앉아 ‘마음 나누기’를 했습니다.

마음나누기 시간(왼쪽부터 마혜옥 님, 이화현 님, 진지회 님)
▲ 마음나누기 시간(왼쪽부터 마혜옥 님, 이화현 님, 진지회 님)

희망리포터: 저는 서울의 서초법당에서 왔고 <정토행자의 하루> 서울제주지부 편집 소임을 하고 있습니다. 제주도로 여행을 왔다가 수행법회에 참석하고 싶어서 들렀어요. 제주도에서 수행법회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이 그저 신기하게만 느껴집니다.

이화현 님: 제가 2016년 부산에서 제주도로 왔을 때, 제주시에 제주법당이 있어서 기뻤어요. 수행법회 갈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정말 좋았기에 먼 거리에도 불구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다녔습니다.

희망리포터: 아 제주도 분이 아니셨군요.

진지회 님: 저는 2018년 8월에 제주도에 왔어요. 남편의 일 때문에 원래 살던 거제도에서 제주도로 오게 됐는데 서귀포법당 가까이에 집을 구해서 자연스럽게 오게 되었어요.

마혜옥 님: 저는 2018년 3월에 서울에서 남편과 함께 제주 일 년 살이를 와서 2년차에 들었어요.

희망리포터: 제주도에 있는 법당에 왔는데 우리 모두 제주도 토박이가 아니네요.(하하)

세 분 모두 제주도에 오시기 전에 각각 서울, 부산, 거제에서 ‘모자이크 붓다’로 봉사를 하시던 분들이셨습니다. 희망리포터로서의 궁금증이 일어나서인지 세 분의 이야기가 더 듣고 싶어졌습니다.

오늘은 서귀포법당의 마혜옥님의 이야기를 함께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딸은 나의 거울 부처님입니다

저는 1995년 정토회가 홍제동에 있던 시절에 불교대학 입학 후 둘째 임신과 출산, 육아로 10년을 지내다가 2006년 <봄 불교대학>에 재입학 했습니다. 어린이법회, 서초법당 영상담당, 불교대학 경전반, 가정법회 즉문즉설 등 작은 봉사들을 하다가 갑자기 성동법당 총무 소임을 맡게 되었습니다. 성동법당 총무로 4년 활동했고 8차 천일결사 회향을 하고, <행복학교>에서 1년 반 동안 활동하고 제주도로 이사오면서 고질병인 허리디스크로 병가를 내었습니다.

그 동안 제 남편은 큰아들로서, 남편과 아빠로서, 한 회사의 사장으로서 역할을 성실히 하느라 정작 자신은 행복해 보이지 않았어요. 자신이 공부하던 행정고시도 접고, 아버지의 꿈을 이루어 주기 위해 적성에 맞지도 않은 장사의 길로 들어서 30년도 넘는 세월을 억누르고 참아온 그 사람의 인생이 너무 고통스러워 보였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한계에 도달했는지 슬슬 터지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남편에게 준 것이니 제가 다 받아내야지 하면서도, 돌아보면 결혼 후 전업주부로 살면서 시집살이의 억울함, 독박육아의 서러움, 산후 우울증 등의 감정이 뒤엉켜 저도 남편과 같이 마음이 오락가락하면서 집안은 지옥으로 변해갔습니다.

그 와중에 어느 날 딸이 숨이 안 쉬어진다며 신경정신과에 갔더니, 공황장애와 불안장애 진단을 받았습니다. 저도 딸과 똑같은 진단이 나왔고, 그 때 정신이 번쩍 들었어요. '아, 딸은 내가 교만해질 때마다 거울처럼 나를 비춰주는 거울 부처님이구나.'

내 불안함의 근원을 찾다

정진을 하면서 정신과 상담대신 죽을 것 같을 때마다 바쁜 법사님을 찾아가서 울고불고 이혼하겠다고, 죽을 것 같다고 악을 썼습니다. 지금까지 맏며느리로 시집살이하며 내가 뭘 잘 못했는지 억울해서 이 장사(아내, 엄마, 며느리) 때려치우겠다고 벼르었습니다. 이참에 애들도 다 크고, 돈도 있겠다 싶어 이혼은 제게 더욱더 달콤한 쥐약이었습니다.

“마혜옥 님, 이혼이 해결이라면 백번을 해도 괜찮아요”, “마혜옥 님, 수행하려고 이 길로 오셨잖아요”
법사님들의 말씀을 들으면서 차츰 진정이 되고 정진의 끈을 놓지 않았습니다.

'당신 때문에! 당신이 잘못해서!' 내가 이렇게 고통스러운 거라고 악을 쓰면 쓸수록 공황장애는 더욱 심해져서 자다 보면 심장에서 붉은 불기둥이 솟아 올라서 잠을 잘 수도 없고 심장이 이 뜨거워서 손을 대면 후끈거렸습니다. 죽을 것 같은 두려움과 확 죽어서 복수를 해줄까 생각하다가 "아, 이것이 바로 미친 것이구나. 내가 정상이 아니지, 내가 환자지, 맞어! 내가 비정상이지"하고 탁! 인정하는 순간이 왔습니다. 그 후로도 그런 순간이 올 때마다 인정하고 받아들이기를 반복하면서 저의 이런 증상과 이런 고통이 남편 때문에 온 것이 아니라 우리 엄마, 소녀 가장으로 살 수 밖에 없었던 엄마의 불안감으로부터 왔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술주정뱅이 외할아버지, 어린 남동생까지 책임져야 했던 가난하고 어린 소녀였던 엄마는 남자들에 대한 불신과 불안으로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가면서 얼마나 두렵고 힘겨웠을까. 어린 엄마를 보면서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또한 부모님의 결혼생활을 들여다 보면서 술에 취했을 때 가끔 무섭던 아버지가 평소엔 얼마나 수행자처럼 살다 가신 훌륭한 남자인지, 악착같던 우리 엄마도 얼마나 좋은 여자인지 보였습니다. 두 분의 결혼생활이 이해가 되면서 차츰 내 남편도 얼마나 힘들었는지 이해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남편이 얼마나 멋진 사람인지 하나씩 둘씩 새록새록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남편의 고통 위에 쌓은 행복, 당신께 회향합니다.

25년을 살면서도 눈멀고 귀 멀어서 '나 보고 싶은 대로 보고 나 듣고 싶은 대로 들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새까만 선글라스를 쓰고 암흑처럼 전도몽상 되어 스스로를 괴롭혔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불법을 만나 행복해지고 보니 ‘남편의 고통 위에 내 행복을 쌓고 살았구나! 남편은 우리 가족을 먹여 살리느라 세상의 찌든 때에 절거나 말거나 나 혼자 고고한 척, 25년간 전업주부로 살면서 남편의 등골에 빨대 꽂고 편히 살았구나!’ 싶었습니다.

“나는 당신 덕분에 행복합니다. 이제는 당신도 행복해지면 좋겠습니다. 이제는 당신의 어깨 위에 무겁게 짓누르는 처자식 내려놓고 당신도 자신이 좋아하는 일 하면서 행복해졌으면 좋겠어요.”라고 제가 남편에게 말했어요. 진심으로.

마혜옥님과 남편
▲ 마혜옥님과 남편

당신을 선택한 나는 나물 반찬에 물만 먹어도 행복합니다

'당신이 자유롭게 살수 있다면 어떤 삶을 살고 싶어요?' 하는 저의 질문에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TV프로그램에 나온 사람들처럼 살고 싶다고 했던 남편의 대답이 생각났어요. '여보, 우리 제주도에 가서 살까요?' 제가 먼저 남편에게 제안을 했습니다.

남편이 사업을 정리할 엄두가 나지 않아 포기할 것 같았습니다. 그때 제가 했던 한마디로 남편이 움직였습니다. “여보, 당신이 없어도 세상은 돌아가요.” 30년간 운영했던 사업을 정리하는 데에만 3개월이 넘게 걸렸지만 잘 정리하고 제주도로 왔습니다.

제주도는 우리 부부에게 딱 좋은 곳이었습니다. 남편이 좋아하는 자연과 제가 좋아하는 도시가 공존하는 곳이거든요. 지난 일 년 동안 남편과 함께 오름에 오르고 치유의 숲을 거닐었어요. 시간이 흐르면서 제가 한 번도 본적 없었던 남편 본연의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했어요.
서서히 회복되는 남편의 모습을 보는 것이 기뻤습니다. 나물과 물만 마셔도 만족스러운 소박한 삶, 서울에서 느끼지 못했던 행복을 여기에서 맛보았습니다. '우리는 소박하게 살아도 만족할 수 있구나.'

지금 남편의 새로운 모습들을 발견하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25년전의 내 선택이 옳았음을 멋진 당신을 통해 확인할 수 있어서 참 다행입니다. '여보 고마워요. 그동안 나와 살면서 견뎌내느라 애쓰셨어요.'

저는 누구보다도 봉사하기를 싫어하고, 아이들이 어려서, 몸이 아파서, 온갖 이유로 핑계를 댔었는데 성동법당 총무소임을 하면서 물러설 수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봉사소임이 진정 자신을 위한 길이란 것을 그때 어렴풋이 알게 되었습니다. 그 전까지는 정토회에 일이 많아서 봉사자가 필요해서 ‘일이 곧 수행’이라고 그랬겠지 하고 생각했다면 이제는 ‘일이 곧 수행이고 수행이고 곧 일’이라는 일과 수행의 통일의 진정한 의미를 압니다. 지금도 여전히 부총무 소임이 버겁고 능력도 안되지만 “나는 수행자니까, 그냥 나의 소임이 부총무니까." 지금도 저는 수행 중입니다.

마혜옥님과 남편
▲ 마혜옥님과 남편

마음까지 풍요로워지는 공양

나누기를 하고 난 후, 서귀포법당은 작은 법당이어서 대중공양을 기대하지 않았는데 김밥과 신선한 샐러드로 소박한 한 상이 차려졌습니다. 마혜옥 님께서 김밥 집으로 달려가서 김밥을 준비해 주고, 이화현 님께서는 집에서 손수 만들어 온 샐러드를 내어왔습니다. 소박한 한 상에 마음이 한가득 풍성해졌습니다. 공양을 하며 담소가 이어졌습니다.

왼쪽부터 희망리포터, 마혜옥님, 이화현님
▲ 왼쪽부터 희망리포터, 마혜옥님, 이화현님

공양을 마치자, 세 분이 분주하게 움직이십니다. 5월 12일 <부처님 오신 날>에 사용할 등에 연꽃을 붙이고 계셨습니다. 희망리포터도 연등을 만들고픈 마음에 손을 보탰습니다. 여행자는 일하지 말고 어서 여행을 떠나라고 하셨지만, 저는 잠시 눌러앉아 등에 연꽃 잎 붙이기를 함께 하였습니다.

왼쪽부터 이화현 님, 마혜옥 님, 진지회님
▲ 왼쪽부터 이화현 님, 마혜옥 님, 진지회님

2주 후, 마혜옥 부총무님께서 서귀포법당 소식을 전해왔습니다. <부처님 오신 날> 행사 준비 모습과 부처님 오신 날의 모습을 담은 사진과 글을 함께 보내주셨습니다. 그날의 생생한 장면이 담긴 소식을 보니 매우 반가웠습니다. 지역 법당 곳곳에서 열렸을 <부처님 오신 날> 행사 모습을 연상할 수 있었고, 이웃 법당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기회여서 더 좋았습니다. 제주의 자연에서 얻은 꽃으로 정성스레 아기부처님 장엄 하는 모습이 숭고해 보였습니다. 그야말로 '자연스럽다'라는 표현이 절로 나왔습니다.

부처님 오신 날 준비 : 오늘은 불기 닦는 날

왼쪽부터 진지회 님, 이화현 님, 마혜옥 님
▲ 왼쪽부터 진지회 님, 이화현 님, 마혜옥 님

부처님 오신 날준비 : 아기부처님 꽃 장엄

제주도의 자연에서 가져온 들꽃으로 난생처음 만들어보아요_마혜옥님
▲ 제주도의 자연에서 가져온 들꽃으로 난생처음 만들어보아요_마혜옥님

부처님 오신 날 : 대중공양

마혜옥님(가운데), 이화현님(오른쪽)
▲ 마혜옥님(가운데), 이화현님(오른쪽)

부처님 오신 날 : 봉축 법요식

5월 12일 부처님 오신 날 _서귀포 법당의 봉축법요식 중
▲ 5월 12일 부처님 오신 날 _서귀포 법당의 봉축법요식 중

부처님 오신 날 : 봉축 법요식 후

봉축 법요식 후 서귀포 법당 도반들과 함께 (앞 줄 왼쪽부터 진지회 님, 이화현 님, 마혜옥님)
▲ 봉축 법요식 후 서귀포 법당 도반들과 함께 (앞 줄 왼쪽부터 진지회 님, 이화현 님, 마혜옥님)

글_마혜옥 님( 제주정토회 서귀포법당) , 권지연(서울제주지부)
사진_권지연, 마혜옥
편집_권지연(서울제주지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