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예승 님은 하남 법당 활동가로써 2년 반 전 하남법당이 개원할 당시 불교대학 팀장을 맡아 1기 불교대학을 이끌었고 첫 졸업생을 배출했습니다. 몇 명 되지 않는 개원 멤버들의 빈자리를 메우고 하남법당이 지금의 모습을 갖추기까지 동분서주해온 이예승 님. 그만큼 뜨겁고 치열했고 또 가슴 따뜻한, 이예승 님의 이야기 입니다.

가을 햇살처럼 맑고 환하게. ( 왼쪽 이예승 님과 김영미 님)
▲ 가을 햇살처럼 맑고 환하게. ( 왼쪽 이예승 님과 김영미 님)

뭘 해도 채워지지 않던 공허함

  • 정토회와 어떻게 인연이 닿으셨는지 궁금합니다.

수행하기 전에, 저 나름대로 잘 살려고 노력했고 열심히는 살았어요. 대학 때는 전공이 적성에 안 맞는다고 생각해서 전공을 바꿔 대학원에 갔고, 큰아이를 낳아 키우면서도 대학원을 졸업하고 직장에 다녔어요. 하지만 전공을 바꿔 직장을 다녀도 공허하고, 아이들을 낳고 키우면서도 공허했어요. 남들이 보기에 그럴듯한 연구소에 들어가서 일했는데도 만족스럽지 않고 힘들었어요. '새 아파트를 분양받으면 괜찮을까, 둘째를 낳으면 괜찮을까.' 왜 이렇게 공허하고 힘든지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2017년 하남법당 불교대학 입학식( 아래 오른쪽에서 두 번째 이예승 님)
▲ 2017년 하남법당 불교대학 입학식( 아래 오른쪽에서 두 번째 이예승 님)

  • 불교대학 팀장은 언제부터 시작하셨나요?

시작은 남양주법당에서 불교대학을 다닐 때였어요. 컴퓨터를 조금 다룰 줄 안다고 덜컥 불교대학 팀장을 맡게 되었습니다. 그때는 불교대학 학생이었고, 아무것도 몰랐기 때문에 오히려 부담이 없었어요. 그러면서 계속 봉사를 하게 되었고, 이사로 분당법당에 온 뒤 하남법당이 개원하면서 하남법당 불교대학 팀장까지 맡게 되었어요.

불교대학 졸업식 (앞줄 가운데 이예승 님)
▲ 불교대학 졸업식 (앞줄 가운데 이예승 님)

삶의 기준을 바꿔준 팀장 생활

  • 불교대학 팀장 봉사를 하면서 달라진 점이 있다면?

불교대학 팀장 봉사를 하게 되면 정말 많은 도반들을 만나게 돼요. 처음 팀장 소임을 맡았을 때부터 시작하면 7~8개 교실의 불교대학 학생들과 만났고 나누기를 하게 되었어요. 제 주변 사람들이 비슷비슷한 사람들이고, 그 속에서 이건 좋고 저건 안 좋고 우열을 나누고, 이건 옳은 거고 그른 거고 하면서 자기만의 틀, 고정관념을 만들잖아요. 그런데 정토회 와서 많은 분의 삶을 듣고, 보게 되면서 제가 가진 틀의 크기가 엄청나게 넓어졌어요. 그러면서 저 나름의 기준들이 흔들리게 됐어요. 누구나 자기 생각이 표준이고, 자신을 세상의 중심으로 놓고 보잖아요. 그런데 불교대학을 담당하면서 ‘내 생각이 표준도 아니고, 세상의 중심도 기준도 아니구나!’라는 걸 깨달았어요.

많은 분과 나누기하면서 삶의 간접 경험을 많이 할 수 있다는 건 다른 사회에서는 경험하기 힘든 일이고, 그만큼 불교대학 팀장 소임이 복된 자리라고 생각해요. 계속 도반들 나누기를 듣다 보니까 큰일이랄 게 없어지는 느낌, 별일이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어요. 도반들이 힘든 이야기를 할 때, 처음에는 놀라고 힘들었지만, 그런 사실이 없었던 게 아니라 그동안 제가 몰랐던 것뿐이란 걸 알았어요. 제 나름대로 선배, 선생님, 교수님들, 주위 어른들을 봐왔지만, 법륜스님과 정토회 법사님들, 선배 도반들을 뵈면서 세상에 어떻게 이런 삶을 사는 분들이 계실까. 너무 신기하면서 존경스러웠어요. 이렇게 사는 삶도 있구나 하고 삶의 방향을 다시 찾기 시작했어요. 불교대학 봉사를 하지 않았다면 평생을 제 우물 안에 갇혀 몰랐을 거예요.

입재식날 도반들과 (아래 맨 왼쪽이 이예승 님)
▲ 입재식날 도반들과 (아래 맨 왼쪽이 이예승 님)

나를 변화시키는 봉사

  • 불교대학 팀장 봉사를 하면서 힘든 점은 없으셨나요?

봉사 소임을 하다 보면 자신의 업식이 다 드러난다고 해요. 제가 평소에 저 깊숙이 가지고 있었던 의식, 고정관념, 습관들이 다 하나하나 올라와요. 작년엔 고등학교 1학년인 큰딸이 저한테는 가장 큰 고민이었어요. 아이가 고등학생인데, 내가 아르바이트라도 해서 아이 학원비를 벌어야 하지 않나, 학원비는 못 벌더라도 맛있는 밥이라도 해 주고, 아이가 도와달라고 할 때 도와줘야 하는 거 아닌가 생각을 했죠. 제가 겉보기와 달리 어렸을 때부터 몸이 약했어요. 그래서 법당에서 봉사하고 집에 가면 집안일에도 소홀하고 아이들을 챙겨주기도 힘들었어요. 그래서 아이가 중요한 시기인데 법당에서 봉사할 게 아니라 집에서 봉사해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갈등이 많았지요. 다행히 작년 여름부터 올해 봄까지 민현덕 님이 불교대학 팀장을 맡아주셔서 큰아이와 여행도 가고, 한숨 돌릴 수도 있었어요.

아직도 가정에서 법당에서 고비 고비, 힘든 일이 있지만, 예전보다 생각, 고민, 계산을 안 하려고 해요. 항상 이렇게 하면 더 좋을까, 저렇게 하면 더 좋을까 뭐든 계획하고, 계산하고, 재고, 따지는 게 우리의 일상이잖아요. 그런데 되도록 계산하고 고민하지 않고, 그냥 인연 닿는 대로 흘러가는 대로 하려고 해요. 아이와의 관계도 내 생각을 내려놓고 내가 먼저 변해야지, 아이에게 말로 바꾸라고 하는 건 효과가 없다는 걸 알았어요. 학벌, 성공에 대한 나의 욕심도 조금 내려놓게 되었어요.

하남법당 나들이( 앞에서 세 번째 이예승님)
▲ 하남법당 나들이( 앞에서 세 번째 이예승님)

봉사를 시작하는 분들을 위한 슬기로운 생활

  • 오랜 시간 불교대학 팀장 봉사를 한 선배로서, 불교대학 팀장 소임을 새로 맡은 도반들에게 조언이 있다면.

정토회 봉사는 어렵지는 않아요. 교육도 많고, 매뉴얼이 다 있기 때문에 누구나 배우면 할 수 있지만, 신경을 써야하고 시간을 들여야 하고 마음을 내셔야 해요. 어떤 봉사를 맡아도 위로는 총무, 아래로는 담당자나 부담당자 등, 위아래로 상의할 사람들이 있어요. 그 분들과 계속 소통하고 회의를 해서 결정하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그게 쉽지는 않아요. 이런 것까지 물어보고, 상의해야 하나 귀찮은 생각이 들 수도 있어요. 그런데 이게 과정인 것 같아요. 이런 시스템이 정착되고 체계가 잡히면 매우 효율적인 시스템이거든요. 160개 법당과 해외까지 수많은 법당이 이 시스템 속에서 유지된다는 건 굉장한 일인 거 같아요. 수직, 수평으로 여러 조직이 맞물려서 회의하고, 연결되어서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고 서로 보완이 되는 체계라고 할 수 있어요. 불교대학 팀도 정토회에서 중요한 역할이기는 하지만, 그걸 혼자 해결하려고 할 필요가 없어요. 총무님, 도반들과 계속 상의하면 돼요. 일반 직장이나 사회에서는 내가 책임을 맡으면 내가 알아서 해결해야 하잖아요. 그런데 여기서는 뭐든 상의해서 해결하면 돼요.

저도 처음에는 ‘내가 알아서 해결해야 한다’는 부담과 착각 속에서 봉사했었어요. 하지만 그럴 필요 없이 뭐든 상의하고 같이 해결하면 훨씬 더 가볍게 봉사할 수 있어요. 지금도 내가 알아서 해야 한다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사로잡힐 때가 있어요. 그러다가도 이렇게 하면 안 되는데, 하고 알아차리려고 해요. 저는 하남법당 부총무 였던 강승연 님과 상의하고 의논하면서 일을 가볍게 하고, 작게 나누고, 재미있게 하는 법을 많이 배웠어요.

함께 회의하고 나누며 어려운 일을 풀어나가는 하남법당 주례회의
▲ 함께 회의하고 나누며 어려운 일을 풀어나가는 하남법당 주례회의


불교 대학생 때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많은 봉사 활동을 하면서 치열하게 수행한 분답게 인터뷰하는 내내 알토란 같은 내공을 보여주신 이예승 님. 저 또한 이예승 님이 담당했던 불교대학에서 성장할 수 있었기에 더욱 가슴에 와 닿는 인터뷰였습니다. 불교대학 졸업식에서 이예승 님이 법륜 스님과 악수를 할 때, 가슴 뭉클하고 콧날이 시큰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녀의 성실함과 살뜰함이 무엇보다 큰 힘이 되어 많은 졸업생이 이 자리에 모이게 되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불교대학 졸업생들이 새로운 하남법당의 주역이 되고, 함께 나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 이예승 님이었다는데 이견이 없습니다. 때론 힘들고 눈물겨운 순간도 있었겠지만 함께 해줘서 고마웠고 앞으로도 오랫동안 함께하자는 말 전하고 싶습니다.

글_신정아 희망리포터 ( 분당 정토회 하남법당 )
편집_임도영 ( 광주전라지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