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샌프란시스코 법당에는 괴로움의 끝에서 만난 불법의 인연으로 지금의 샌프란시스코 법당이 있기까지 큰 역할을 한 서성진 님이 계십니다. 햇살 좋은 6월 어느 날, 서성진 님을 직접 만나 그분의 삶과 수행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저는 1978년, 한국에서 대학교에 다니던 때에 미국에 사는 한국인 남자를 만나 결혼을 하게 되면서 미국에 오게 되었습니다. 미국에 와서 뉴욕에서 다시 대학공부를 하고 1981년부터 직장을 다니기 시작해 지금까지 일하고 있습니다. 올해가 입사한 지 38년이 되는 해입니다.

먼 타국에서 아이들을 키우며 직장생활을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았기 때문에 어머니께서 제가 퇴근할 때까지 아이들을 돌봐 주기는 하셨지만, 퇴근 후 모든 집안일은 저의 몫이었습니다. 그래도 저는 일보다는 가정을 우선으로 생각하며 집에서는 아이들 엄마, 아내, 며느리 역할에 최선을 다했고, 또 직장에 있을 때는 일에 몰두하면서 누구보다도 열심히 살았습니다. 덕분에 아이들은 잘 성장해 둘 다 좋은 대학교에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서성진 님 댁 정원에서 인터뷰 중에
▲ 서성진 님 댁 정원에서 인터뷰 중에

인생의 허무함에서 감사함으로 한 생각 돌이키다

그 무렵, 다니던 회사는 다른 회사로 합병되면서 대대적인 인원 감축과 사업축소로 몇십 명 남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합병한 회사로부터 캘리포니아 본사에서 일해달라는 제안을 지속해서 받았지만, 아이들 곁에 있고 싶었기 때문에 고사하다가 아이들이 대학교를 마치고 나서야 본사에 지원했고 덜컥 합격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두 아이와 시어머님을 두고, 미국 동쪽 끝에서 서쪽 끝으로 가려니 결정이 쉽지 않았습니다. 결국 남편과 상의 끝에, 시어머님은 시동생이 돌봐 드리기로 하고 저희 부부는 캘리포니아로 이주해 5년간 살다 다시 돌아오기로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2006년 코네티컷 웨스트 포트를 떠나 캘리포니아 산 라몬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 곳에서 새 회사에 다니며 집도 장만하고, 미국에서의 제2의 삶을 기대하여 열심히 살았습니다. 그런데, 먼저 가 있으면 곧 따라오겠다고 하던 남편은 1년이 지나도 오지 않았고, 2년이 지난 2008년 겨울, 크리스마스 가족 모임에 나타난 남편의 모습은 너무나 궁핍해 보였습니다. 그제야 남편이 도박에 빠져 어마어마한 빚을 지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큰 충격이었지만 저는 가정을 지키고 싶었기에, 남편에게 모든 것을 잊고 여기서 새 출발 하자는 제안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남편은 거절하였고, 저희는 결국 헤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때가 바로 결혼 30주년이 되던 해였습니다.

30년 결혼생활이 깨진다고 생각하니 참 힘들고 괴로웠습니다. 저는 굉장히 열심히 살았습니다. 애들도 열심히 키우고, 일도 열심히 했습니다. ‘부모님과 친구도 없는 머나먼 타국에서 오로지 집과 직장만 다니며 30년간 열심히 살았는데, 결국 아무것도 남는 게 없구나’ 하는 허무함으로 죽고만 싶었습니다. 마치 평생을 헛산 것 같았습니다.

2014년 세계 100강 중, 3박 4일간 서성진 님 댁에서 머무르셨던 스님과 함께
▲ 2014년 세계 100강 중, 3박 4일간 서성진 님 댁에서 머무르셨던 스님과 함께

그때 정토회를 다니던 친언니가 〈깨달음의 장〉에 가 보라고 권하였습니다. 알아보던 중 근처에 열린법회가 있다는 얘기를 듣고 그곳을 찾아갔습니다. 2009년 당시 세탁소를 운영하고 계시던 주근영 님이 세탁소 위 본인이 사시던 아파트에서 법회를 열어 주었습니다. 비록 공간은 작고 협소했지만 큰마음으로 자신의 집을 내어 주셨기에 매주 법륜스님의 법문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깨달음의 장〉에도 다녀왔습니다.〈 깨달음의 장〉에서 ‘남편이 돌아와서 다 같이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는 마음이 간절했습니다. 그러나 매주 법회에 나가 스님의 법문을 새겨듣다 보니 이 일 하나로 제가 살아온 30년 삶 전체를 허무하게 생각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30년 동안 열심히 살았기 때문에 저렇게 아이들도 잘 컸고, 아이들을 키운 것은 저 혼자 한 것이 아니라 아이들 아빠와 같이 한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되었다고 그 전까지 살아온 모든 삶을 부정한다는 것은 맞지 않았습니다. '남편과 저, 그리고 아이들이 이제까지 잘 살아왔고 우리가 함께한 세월을 감사하게 생각해야겠구나!' 이렇게 저의 생각이 허무함에서 감사함으로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시어머니께서 집안일을 전혀 도와주지 않으셔서 야속한 마음도 들었었는데, 제가 일을 하는 동안 아이들을 잘 돌봐 주셨다는 것에 참으로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또한 그 일로 아버지를 미워하게 된 큰아들에게 “너희가 이렇게 잘 자란 것은 엄마와 아빠가 함께 너희들을 잘 키웠기 때문이야. 아빠가 없었으면 너희들이 이렇게 잘 자랄 수가 없었을 거야. 그 일은 아빠 개인적인 문제이지 너와는 상관없는 일이니 아빠를 미워하지 말고 감사한 마음을 가져라.” 라고 말해주니 아들도 제 말에 수긍하고 마음을 바꾸어 주었습니다. 이제부터는 지나간 과거에 집착하고 후회하며 살기보다는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죽고 싶을 정도로 괴로웠는데 생각 하나 바꾸니 제 마음속에 있던 괴로움이 사라지고 감사함이 채워졌습니다. 그렇게 저는 불법을 만나 행복해졌습니다.

헤이워드 샌프란시스코 법당 불사금을 보시해 주신 친정어머니
▲ 헤이워드 샌프란시스코 법당 불사금을 보시해 주신 친정어머니

"이 좋은 법을 많은 사람과 나누어야겠다”

그렇게 꾸준히 열린법회에 법문을 들으러 다니다 문득 '이렇게 좋은 법을 더 많은 사람이 듣고 나처럼 행복해지면 참 좋겠다.’ 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같이 법문을 듣던 도반들에게 법당을 열자고 제안했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법회에 참여하는 분들이 적었기 때문에 그 인원으로는 불사금을 마련하는 것조차 불가능할 것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친정어머니와 저의 오랜 직장동료였던 프랭크 님이 운영하는 기부재단에서 보시를 받고 친언니, 저 그리고 도반님들 이렇게 십시일반 불사금을 모았습니다. 또한 도반님들께서 모자이크 붓다가 되어 불사에 필요한 여러 가지 일들에 온 힘과 정성을 쏟아주신 덕분에 2011년 5월, 드디어 캘리포니아 헤이워드에 샌프란시스코 법당을 열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이 법당에서 저처럼 힘들고 괴로워하는 많은 사람이 법륜스님의 법문을 듣고 부처님의 법을 배우고 깨우쳐 행복한 길로 나아갈 수 있겠다.’ 는 생각에 참으로 뿌듯했습니다. 저는 법당에서 4년 동안 회계소임을 맡아 기쁜 마음으로 봉사하였습니다. 평소 동양 문화와 불교에 관심이 많았던 프랭크 님은 매년 지속적으로 법당에 기부해 주었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함께 나누면서 부부의 연으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남편은 지금도 법당과 관련된 일을 존중해주고, 든든한 지지자가 되어주고 있습니다.

2019년 5월 샌프란시스코 법당 봉축법요식에서 남편 프랭크 님과 함께
▲ 2019년 5월 샌프란시스코 법당 봉축법요식에서 남편 프랭크 님과 함께

저는 항상 이런 마음이 있습니다. 희망강연에 오시는 분 중 저처럼 잘 몰라서 삶이 괴롭고 불행한 분이 계신다면, 그래서 그분들 중 오늘 스님의 강연을 듣고 단 한 분이라도 마음을 바꿔 행복해진다면 정말 좋겠다고요. 그리고 한 가지 더 바란다면, 그중 한 분이라도 법당에 나오셔서 본인의 삶이 변화하는 경험을 이어간다면 더욱더 좋겠다고요. 그러한 변화들에 제가 보탬이 된다면 그보다 더 큰 보람은 없겠지요!

2016년 4월 샌프란시스코법당 이전개원 법회에서 (앞줄 왼쪽에서 첫 번째 서성진 님)
▲ 2016년 4월 샌프란시스코법당 이전개원 법회에서 (앞줄 왼쪽에서 첫 번째 서성진 님)


2011년 5월, 헤이워드에 개원한 샌프란시스코법당은 2015년 11월, 법당 건물에 문제가 생기면서 잠시 문을 닫았다가, 2016년 4월 산타클라라에 이전개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서성진 님의 열린법회 인연이 법당 불사로 이어져 만들어진 샌프란시스코법당은 현재 불교대학, 경전반, 수행법회를 통해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을 배우고 수행, 보시, 봉사를 실천하고 있는 정토행자들의 수행도량이 되고 있습니다.

요즘 서성진 님은 회사 일과 잦은 출장으로 바쁜 나날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올 9월 3일 산호세에서 열리는 법륜스님의 희망강연에 법당 회계이신 박일환 님과 함께 일찌감치 강연 총괄 소임을 맡아 마음 준비를 하는 중이기도 합니다.

서성진 님의 정토행자로서의 큰 원이 꼭 성취되기를 저도 함께 응원합니다.

글_김수진 희망리포터 (샌프란시스코법당)
편집_박승희 (해외지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