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뜨자마자 방석부터 침대 옆에 까는 도반이 있습니다. 왜일까요?
정토회에서 수행하면서 ‘자기 주제 파악’을 하였다고 합니다. 법륜스님의 똑같은 영상법문을 4번째 들으니 이제야 진짜 마음에 와닿는다고 합니다. 김포법당에 가면 밝은 미소로 환하게 반겨주시는 박지예 님의 수행담을 소개합니다.

9-9차 입재식 준비 중인 천일결사 담당 박지예 님
▲ 9-9차 입재식 준비 중인 천일결사 담당 박지예 님

정토회와의 인연을 말하자면 꽤 깁니다. 90년대 초반 대학생 때 부산에서 대불련(대학생불교연합회) 활동을 했었습니다. 그곳에서 최석호 법사님, 지금의 법륜스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졸업 후 간호사 생활과 가정생활을 하며 까맣게 잊고 지냈습니다.
2007년 해운대 신도시에서 법륜스님의 포스터를 발견하고 바로 법당으로 찾아갔습니다. 그곳에서 15년 만에 대학교 선배를 만났습니다. 그 선배는 대학생 때부터 법륜스님과 함께 정토회에서 공동체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다음 해 2008년 해운대 법당에 불교대학을 입학했습니다. 당시엔 열심히 하지 않았습니다. 딱 졸업할 만큼만 했습니다.

우리 남편은 워커홀릭

2010년 남편의 직장 때문에 경기도 용인시 수지로 이사를 왔습니다. 아이들이 초등학교 1학년, 5학년이었는데 아무도 없는 낯선 곳으로 오니 우울증이 생겼습니다. 더군다나 남편은 워커홀릭이어서 새벽 5시 30분에 나가면 자정에나 집에 들어오고 주말에는 거의 잠만 잤습니다. 부산에서 주말부부로 살 때는 재미있었는데 남편 때문에 이곳으로 왔다 생각하니 그저 남편이 원망스러웠습니다.
갈 곳도 할 것도 없어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나면 잠만 자는 게 일이었습니다. 그러다 근처 정토회를 찾아보니 죽전에서 가정법회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법문을 들으니 남편이 이해가 되고 원망하고 미워하던 마음이 싹 사라졌습니다.
불교대학 영상 담당 후 함께 공부한 도반들과 경전반을 졸업하였지만, 법당이 없어 저희 집에서 1년간 수행법회를 하였습니다. 그 후 용인법당 불사가 이루어졌고 2년간 더 수행법회 담당을 맡아 활동했습니다. 누군가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고, 나 또한 잘 쓰이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남편의 싫은 소리가 계속되었고, 김포로 이사를 하면 정토회와의 연을 끊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JTS 거리모금 중인 박지예 님 (오른쪽 끝)
▲ JTS 거리모금 중인 박지예 님 (오른쪽 끝)

쇼핑하며 노는 것이 일상다반사

2014년에 김포로 이사와 2년간은 동네 엄마들과 함께 쇼핑하며 노는 것이 일이었습니다. 직장을 다니고 싶어도 남편의 반대가 심했습니다. 남편이 어릴 적부터 시어머니께서 일을 해서 그런지 남편은 가정적인 여자를 원했습니다. 2년을 이렇게 보내고 나니 ‘이게 뭐 하는 건가, 너무 비생산적으로 사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에 또다시 정토회를 찾게 되었습니다.
당시 김포에는 법당이 없어 생활협동조합 사무실을 빌려서 법회를 했습니다. 김포에 법당이 생긴 후 불교대학 담당과 팀장을 맡았습니다. 그때도 남편은 제가 법당에 다니는 걸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아들, 서울대 입학 그리고 딸과 불화

2016년 통일 발원 철야정진이 한 달에 한 번 있을 때 아들이 고3이 되었습니다. 저는 남편에겐 입시기도라고 말하고 법당에 다녔습니다. 아들이 시험을 잘 보게 해달라는 기도 대신 실수하지 않고 실력대로 시험 보길 바랬습니다. 아들은 서울대에 입학했습니다. 아들이 대학에 들어가자, 법당 다니는 것에 대한 남편의 간섭이 줄었습니다.
학벌을 중시하는 남편은 아들이 서울대에 입학 하자, 둘째인 딸에게 공부를 안한다고 소리 지르고 화를 내어 관계가 나빠졌습니다. 어릴 적부터 공부를 잘하던 아들과 비교하며 그렇지 않은 딸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같습니다. 지금은 남편이 해외로 출장을 나가 있어 어느 정도 좋아진 상태입니다.

남의 불행 위에 내 행복을 짓지 말자

정일사 때 함께 가게를 동업하는 사람에게 올라온 문제를 내어놓고 그의 문제가 아니라 내 문제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법사님께서 갑자기 남편은 잘 계시느냐고 묻는데 눈물이 났습니다. ‘해외에서 남편에게 전화가 오면 건성으로 받지 말고 반갑게 받아야 한다. 그곳에서 얼마나 힘이 들겠느냐’는 말씀에 그동안 남편의 마음을 알아주지 못했던 내 모습이 생각나 법당을 나올 때까지 눈물이 났습니다.
남의 불행위에 내 행복을 짓지 말라고 하는데 남편의 희생 위에 내가 있었습니다. 남편은 가족들이 경제적 어려움 없이 온실 속 화초처럼 지내길 바라는 마음으로 항상 힘들게 일하고 있습니다. 남편의 밑마음을 짚어준 법사님께 정말 감사했습니다. 수행을 하지 않았으면 남편과 딸의 관계, 그리고 가게를 하면서 올라오는 분별심 때문에 너무 괴롭게 살았을 것입니다. 이제 남편은 아이들에게 '너희도 정토회 다니는 엄마 같은 사람을 만나면 좋겠다'는 말을 자주 합니다.

김포 정일사 모임 (앞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
▲ 김포 정일사 모임 (앞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

내 주제 파악을 하게 되다

수행 중에 가장 큰 변화는 내 주제를 알게 된 것입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자식에 집착하는 나를 보았고, 내가 얼마나 숙이기 싫어하는 사람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주위 사람들이 '잘한다. 잘한다' 특히 시댁에서는 남편의 욱하는 성격 받아주며 사는 나에게 고맙다고 얘기하니 정말 잘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우리 엄마가 수행거리였습니다. 나를 잘 아는 친정엄마가 나에게 싫은 소리 하는 게 너무 싫었습니다. 엄마와 말을 하다 보면 매일 싸움으로 끝이 날 정도였습니다. 예전엔 왜 우리 엄마는 다른 엄마와 다를까. 나를 단 한 번도 이해해주지 않는다고 생각을 하고 원망했었습니다. 지금은 경제적으로 무능한 남편과 살면서 3남 1녀를 키우려면, 엄마 성격이 아니었으면 안 되었겠구나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기도를 통해 엄마에 대한 분별심이 삼분의 이는 해결된 것 같습니다. 그만큼만 되어도 엄마한테 소리 지를 일이 없습니다.
수행과 봉사를 꾸준히 하면서 더디지만 조금씩 변화하고 있습니다. 특히 담당을 맡아 법문 영상을 꾸준히 듣는 것이 자기 변화하는데 정말 좋았습니다. 이번에도 가을불교대학 담당을 맡아 부처님의 일생을 들었는데 아주 감동적이었습니다. 인간 붓다. 신이 아닌 내 옆의 수행자로서 인간적인 모습을 보니 눈물이 났습니다. 똑같은 법문인데도 네 번을 들으니 이제야 진짜 마음에 와닿는 것 같습니다. 부처님 법 만난 것이 참으로 감사합니다.

눈 뜨자마자 방석부터 깔기

8-6차에 처음 입재를 했는데 중간에 빠진 적이 많았습니다. 한번 빠지면 다시 시작하기가 쉽지가 않아 이제는 눈 뜨자마자 침대 옆에 방석부터 깝니다. 혹시 새벽 5시에 하지 못하더라도 오며 가며 방석이 보이기 때문에 오전 중에 하게 됩니다. ‘하루도 안 빠지고 하겠다’라고 목표도 세우고, 담당을 맡은 가을불교대학에서 도반들과 함께 '수행맛보기'를 하다 보니 빠지지 않게 되었습니다.

민족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1000일 기도 (왼쪽 끝)
▲ 민족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1000일 기도 (왼쪽 끝)

정토회 활동은 하기 싫은 일도 도반들과 함께 하면 재미있고 보람됩니다. 세상에 잘 쓰일 수 있어 좋고, 수행할 수 있어 좋고, 공부할 수 있어 좋습니다.

2018년 가을불교대학 졸업 갈무리 (왼쪽 끝)
▲ 2018년 가을불교대학 졸업 갈무리 (왼쪽 끝)

글_황신옥 희망리포터(일산정토회 김포법당)
편집_고영훈(인천경기서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