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다 보면 눈물을 흘리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때로는 슬퍼서, 때로는 기뻐서. 그런데 최근 들어 기쁨의 눈물을 넘어 행복에 겨운 눈물을 자주 흘린다는 분이 있습니다. 대체 어떤 일을 하면 행복에 겨워 눈물까지 흘릴 수 있는지, 그 행운의 주인공인 박은숙 님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2013년 불교대학 남산순례에서 깨장을 함께한 선주법사님과(맨 오른쪽 박은숙 님)
▲ 2013년 불교대학 남산순례에서 깨장을 함께한 선주법사님과(맨 오른쪽 박은숙 님)

어리석은 나를 보게 해 준 <깨달음의 장>

2011년 8월에 지인의 소개로 <깨달음의 장>에 참여하게 됐어요. 그때는 <깨달음의 장>이 뭔지도 모르고, 법륜스님이 누군지, 정토회가 뭔지도 모르고, 그냥 템플스테이 같은 거겠지 하고 가서 쉬다 오고 싶다는 마음에 신청을 했어요. 당시에는 남편에게도 아이들에게도 항상 불만이 있었어요. 명확한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니고, 그냥 삶의 모든 게 불만족스러웠어요. 남편이나 아이들 모두 다 착한데, 내 성질을 못 이겨서 모든 불평불만을 가족들한테 쏟아 부었어요. 참 어리석었고 이기적이었죠. 모든 삶이 내 뜻대로 되길 바라는데, 내 마음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으니까 남편한테 히스테리 부리고, 아이들한테 소리치고 짜증을 부리고 그랬어요.
<깨달음의 장>에 참여해서 처음에는 좀 놀랐어요. 어? 이거 뭐지? 그런데 4박 5일이 끝나고 너무 좋았어요. 이렇게 마음이 가볍고 편안하고 행복했던 적이 없었어요. 그런데 일상으로 돌아오니 다시 화가 올라 오더라구요. 그래서 한 달 후에 일상에서 깨어있기 수련에 갔는데, 문경에서 보낸 1박 2일 동안 힐링이 되는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그때는 서산에 법당도 없었기 때문에 한 달에 한 번씩 마음공부 하러 간다는 생각으로 갔어요. 이후로는 스텝으로 봉사도 하고 법사님들께 수행 점검도 받으며 그렇게 3년 가까이 다녔어요.

폭설도 막지 못한 열정, 불교대학 개근

2011년에 10월 즈음에, 비슷한 시기에 깨장을 다녀오신 분이 서산에서 가정 법회를 시작했어요. 그래서 처음에는 셋이서 가정 법회를 열었어요. 2013년에 드디어 홍성 발맑 도서관에서 법회를 연다는 소식을 듣고 그때부터 홍성으로 불교대학을 다니게 됐어요. 우리 집이 대산인데, 홍성까지 왕복 세시간 가까이 걸려요. 그런데 개근을 했어요. 그때 제가 건설회사 사무실에서 일을 하고 있었거든요. 눈이 많이 오는 날이면 네다섯 시에 부장님한테 가서 홍성까지 불교대학을 가야 하니 빨리 퇴근해야 될 것 같다고 했어요. 그때는 불교대학을 가는 일이 정말 소중했어요. 스님 법문 한 마디 한 마디 놓치는 게 너무 아까워서 귀 기울여 들었어요.

백일출가 도반들과(첫째 줄 오른쪽에서 네 번 째 박은숙 님)
▲ 백일출가 도반들과(첫째 줄 오른쪽에서 네 번 째 박은숙 님)

내 인생의 주인 되는 길

그렇게 개근으로 불교대학을 졸업하고 2014년 2월에 백일 출가를 했어요. 원래 불교대학을 다니면서도 백일 출가를 굉장히 하고 싶었는데, 아이들이 있으니까 못했어요. 내가 엄청나게 의존도가 높은 사람이에요. 삶이 괴로웠던 것이 남편에 대한 의지심이 너무 강해서 스스로가 자립이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늘 남편한테 의지를 해서 살다보니까 남편이 이런 저런 사고를 칠 때마다 내가 좌절을 하는 거예요. 남편에 의해서 행, 불행이 왔다 갔다 하는 나 자신이 너무 싫었어요. 그래서 나도 내 인생의 주인이 되고 싶었어요.

“100일 동안 자기를 내려놓는 맛을 보면 어디에 가든 대장부가 된다.”라는 문구에 매료됐어요. 그리고 나도 내 인생의 주인으로 살고 싶다, 진짜 100일 출가를 하고 나면 대장부가 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매일 남편에게 조르고, 100일 출가 하고 싶다 노래를 불렀어요. 그랬더니 2014년에 드디어 남편이 갔다 오라고 하더라구요. 그때 우리 딸이 고3이었어요. (웃음) 아들이 중3이었고. 그런데 아이들한테도 다 허락을 받았어요. 애들한테는 미안하지만, 백일출가 후에 행복해져서 돌아오면 그게 더좋은 거라고 생각했어요.
뭔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면 그걸 최우선으로 삼아서 밀고 나가는 습관이 있어요. 그래서 만 배도 해야 되는데, 죽어도 한다 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만 배가 정말 정말 너무 힘들어요. 진짜 포기하고 싶은 마음도 많았는데, 계획을 세웠어요. 첫날에 3,700배, 둘째 날 3,300배, 셋째 날 3,000배 이렇게. 삼일 동안 만 배를 하면서 포기하고 싶은 마음도 많이 있었는데, 그냥 해야 된다 그 생각 밖에 없었어요.
백일출가는 정말 내 인생의 방향을 확고하게 굳혀줬던 것 같아요. 그리고 백일출가를 하면서 어리석은 내 꼬라지를 보았어요. 백일출가하기 전에는 모든 힘든 것들이 다 남 탓이었어요. 남편 탓. 자식 탓. 내가 힘든 건 다 너희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너무 힘들었어요. 그런데 백일출가를 하면서 다른 사람들은 아무 문제가 없고 다 내 문제였구나, 나만 바뀌면 되는데 내가 맨날 휘젓고 괴로워하며 살았구나 하는 것을 그때 많이 깨우쳤어요.

3년 동안의 위기

2014년 가을, 전법학교를 가라는 말씀을 듣고, 거길 가보니 내가 서산법당 불사 담당이 되어 있더라구요. (웃음) 어리둥절한 상태에서 돌아와서 2014년 10월에 서산법당 불사를 시작했어요. 그런데 그 때부터 힘든 시간이 시작되었어요. 불사를 하면서 굉장히 힘들었어요. 원래 경전반을 같이 듣던 도반들도 개인적인 사정으로 하나둘씩 그만두게 되고, 결국은 서산법당 불사를 혼자하게 됐어요. 그러다가 2015년 겨울에 불사를 함께 할 분들을 만나게 됐는데, 내 뜻대로 되길 바라는 업식 때문에도 괴로웠어요.

백일출가를 하면서 급격하게 살이 빠져서 그런지 조금만 걸어 다니면 쓰러질 것처럼 육체적으로도 힘들었어요. 집이 워낙에 멀어서 한 번 나오기도 쉽지 않은데, 불사 담당하는 분이 오면 집에 있다가도 나와야 하고, 거의 매일 나와야 하니까 그때부터 남편의 저항이 시작됐어요. 그 전까지만 해도 정토회에서 하는 수련에 참여한다고 하면 지지해주고 그랬는데, 불사를 시작하면서 아, 저게 이제 종교에 미쳤구나 하면서 엄청나게 싫어했어요. 그러다가 제가 서산법당 부총무를 하면서는 남편의 저항이 극에 달해서 보따리 싸서 나가라, 꺼져라, 그렇게 정토회가 좋으면 법당에 가서 살아라, 머리 깎고 문경에 들어가라고 하면서 엄청 싫어했어요. 집에서는 남편의 저항을 받고, 법당에 나와서는 도반들의 불평을 받아낼 깜냥이 안 되고 나 힘든 것 밖에 생각 못했죠.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 불사하고 부총무를 맡았던 3년이 제일 힘들었던 것 같아요. 초창기에는 정회원도 혼자였고 활동가들도 없는데 일은 계속 내려오고, 혼자서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다 보니 일에 많이 치였어요. 어떤 날은 아침부터 법당에 나와서 저녁까지 밥도 못 먹고 일만 하다가 들어가면, 남편은 종교에 미쳐서 매일 밖에 나가고 들어와서는 힘들다고 골골거린다며 더 싫어하고 못 가게 했죠. 그래도 그 어려운 시절을 버틸 수 있었던 건 수행의 힘이었어요. 백일출가 이후로 꾸준히 300배 정진을 해왔는데, 매일 절을 하면서 아내와 함께 있고 싶었던 남편의 마음을 조금씩 헤아릴 수 있었어요. 지금 생각하면 많이 미안하죠. 사실 그동안 남편이 내가 하고 싶어 하는 일은 어떤 것이든 다 지지해줬거든요. <동북아 역사기행>, <인도 성지순례>, <명상수련> 같은 것들도요. 참 고마운 사람이죠. 그렇게 남편 마음이 이해가 되니 남편과의 관계도 조금씩 좋아지더라구요. 지금은 행복학교를 담당하면서 남편과 사이가 많이 돈독해졌어요. 행복 학교 프로그램 중에 행복 연습이라는 게 있는데 직접 해보면서 남편과 아이들과 사이가 많이 좋아졌어요.

정말 행복해지는 행복학교

지금은 서산지역 행복학교 담당을 하고 있어요. 행복학교 담당을 하면서 시간을 쪼개 가면서 사람을 만나고, 거기에 에너지를 완전히 투입하기 때문에 집에 돌아오면 녹초가 되기도 하는데 그래도 적성에 딱 맞아요. 행복학교에서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잖아요? 불교대학은 1년 동안 같은 사람들과 함께 하는데 행복학교는 한 달에 한 번씩 새로운 사람들이 와요. 그러다 보니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정말 공부가 많이 돼요.
한 번은 우울증 때문에 너무 힘들다며 3개월짜리 아기를 업고 온 분이 계셨는데, 1차 1강에 와서부터 4강 내내 울었어요. 그런데 몇 주 후에 와서는 저도 이제 행복해질 수 있을 것 같아요, 이런 나누기를 하는데 너무 감동을 받아서 눈물이 날 것 같더라구요. 그렇게 행복학교를 통해서 짧은 기간 동안 사람들에게 큰 변화가 오는 것을 보면서 정말 자부심을 느끼고 행복하죠. 그 분들을 보면서 오히려 내가 더 행복해지는 것 같아요. 그 분들은 늘 나한테 고맙다고 하는데, 오히려 그 분들한테 너무 고맙더라구요. 그래서 행복학교를 끝내고 집으로 가는 길에 몇 번을 울었는지 몰라요. 운전하고 집에 가는 길에 문득 하늘을 보는데, 하늘이 너무 예쁘고 세상이 너무 아름다워 보이는 거예요. 진짜 너무 행복에 겨워서 눈물이 나더라구요. 지속 가능한 행복은 너도 좋고 나도 좋은 것이라고 했는데, 지금 내가 그 일을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정말 행복하고 감사해요.

2019년 행복시민과정 시작(맨 오른쪽 박은숙 님)
▲ 2019년 행복시민과정 시작(맨 오른쪽 박은숙 님)

어떤 일을 맡든지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기에 내려놓을 때는 후회도 미련도 없다는 박은숙 님. 행복학교가 자신의 적성에 딱이라며 즐거워하는 모습에서 행복한 눈물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글_허지혜 희망리포터(천안정토회 서산법당)
편집_하은이(대전충청지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