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위암이라는 큰 병도 잘 이겨내고 몸이 견뎌내는 한 봉사의 끈은 놓지 않겠다는 김상교 님은 영천법당에서 저녁 수행 법회 담당과 통일의병 담당 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후배 도반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는 우리 법당의 푸근한 맏언니 김상교 님의 이야기를 들려 드립니다.

푸근한 미소의 김상교 님
▲ 푸근한 미소의 김상교 님

카센터 손님이 지어준 인연

2014년, 우리 집에 온 손님이 법륜스님의 법문을 들어보라 하였습니다. 때마침 조그만 밭을 구입해 가꾸고 있었는데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을 들으며 일하니 명쾌한 이야기에 집중이 잘되어 밭일까지 재미가 났습니다.

그러던 중 우리 카센터에 온 손님이 차를 맡기며 정토회를 다녀오겠다고 했습니다. 정토회가 뭐냐고 물으니 법륜스님이 지도법사로 있는 수행공동체라 소개했습니다. 그 길로 수행 법회를 다니고 이듬해 2015년 봄 불교대학 입학에 이어 경전반까지 마쳤습니다.

2017년 봄 불교대학 담당자의 개인 사정으로 담당 봉사 자리가 갑자기 공석이 되어 급하게 제가 맡게 되었습니다. 봉사자가 많지 않은 우리 법당 사정상 마음의 준비를 하고 말고 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그 다음 해도 자연스럽게 봄 불교대학 담당 봉사를 하겠다고 마음을 내었습니다.

아주 착한 여자

제가 결혼했을 때 시집에는 씻고 벗고 할 내복 두 벌이 없었습니다. 시동생과 시누이는 모두 학생이었고, 시아버지는 술주정이 심했습니다. 남편이 그 집의 실질적인 가장이었습니다. 착하고 성실한 사람이라 결혼하기 전에는 그 사람 주변의 것들을 미처 보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아주 착한 여자였습니다. 결혼하고 나서는 시어머니, 시동생, 시누이에게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다 해주었고 퍼줄 수 있는 것은 다 퍼주었습니다. 그들이 우리 집에 오면 저는 해 먹이느라 정신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오히려 남편이 너무 많이 해준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이런 제 도움에 남들 보기에는 사이가 좋았습니다. 제가 다 퍼다 나르니 좋지 않을 수가 없었지요.

그러나 해주고 해줘도 받는 사람은 받을 줄만 알지 알아주지는 않았습니다. 거기다가 저는 힘들다고 말할 줄 몰랐고, 왜 그러냐고 항의할 줄도 몰랐습니다. 그들은 저의 희생을 끊임없이 바라는 것 같았습니다. 원하는 대로 되지 않으면 서슬 퍼래지는 그들의 눈치와 시끄러워질 것 같은 집안이 싫어 제가 알아서 챙겼습니다.

일 하나를 치를 때마다 저는 마음속으로 ‘또 하나 해줬다’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받은 사람은 생각이 달랐던 것 같습니다. 나중에는 저에게 “전생에 받을 빚을 받았다”라고까지 하였습니다. 그렇게 시동생과 시누이를 다 뒷바라지해 주며 세월이 흐르고 나니 그들은 모두 잘 되어 있었고 저만 홀로 덩그러니 제자리에 있었습니다.

동지 기도후 도반들과 점심공양 (오른쪽 제일 앞)
▲ 동지 기도후 도반들과 점심공양 (오른쪽 제일 앞)

남의 발을 씻어 주려면

정토회를 다니며 서서히 관점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생각해보니 시댁식구 누구도 저에게 이거 해달라, 저거 해달라 대놓고 부탁한 적이 없었습니다. 오롯이 제가 혼자 좋아서 했던 것입니다. 남편이 해주고 싶어 하는 것을 보고 그것이 집안 살리는 것이라고 저 혼자 멋대로 생각했습니다. 그래놓고 제가 해 준 것을 인정해 주기를 바랐습니다. ‘내가 이렇게 해줬는데 저것들이...‘하는 생각에 사로잡혀 몹시 괴로웠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제 표현이 없었기에 소통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들은 제가 힘들어한다는 것을 몰랐을 것입니다.

그리고 주지 않는 사람은 나에게만 주지 않는 것이 아니고 다른 누구에게도 주지 않는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남의 발을 씻어 주려면 내 손을 물에 담가야 하는데 저는 남의 발을 씻어주고 싶었지만, 손은 담그고 싶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해줘서 내 마음이 좋다면 그것으로 족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정토회를 다니며 제가 생각하는 것이 이치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이제는 정말 많이 편안해졌습니다.

시어머니에 대한 고마움

시어머니가 그렇게도 싫었고 미웠습니다. 절도 잘 못하던 새댁시절에 절에 가면 300배 절을 기본으로 하는 시어머니는 방석을 당신 것과 붙여 깔고 꼬집으며 저까지 억지로 절을 시켰습니다. 그래서 시어머니와 같이 절에 가는 것이 너무 싫었습니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열성적으로 기도하는 시어머니의 경 읽는 소리를 날마다 들으며 밥을 하다 보니 어느새 내가 경을 다 외우고 있을 정도였습니다. 남들은 그런 어머니의 기도 저력으로 자식들이 잘된 것 같다고 합니다. 어쩌면 맞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제 마음 한구석에는 ‘빌기만 해서 잘 될 것 같으면...’ 하는 의구심과 ‘나는 저렇게는 안 빌어야지’ 하는 고약한 생각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정토회에서 마음공부를 하며, 최소한 시어머니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부모의 그런 꾸준함이 바탕이 되는 속에 자식들은 은연중에 보고 배워 잘되는, 이것이 기도의 저력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시어머니에게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나니, 각자 알아서 잘해나가는 시집 가족들이 제게 생긴 것이 감사한 일이 되었고 그렇게 생각하니 더 정이 갔습니다.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을 수 있는 이 마음이 생긴 것은 정토회를 꾸준히 다닌 덕분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니 ‘이런 마음을 얻은 내가 봉사를 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 않나’하는 마음이 많이 들었습니다.

알아차린 내 업식, 봉사의 발판으로

자꾸 일하려는 업식 때문에 제대로 쉬지 못한다는 것을 제 몸이 아파 강제로 쉬게 되면서 알았습니다. 통일 릴레이 기도 300배 정진을 시작하고 90일이 되어가던 어느 날 시작된 대상포진 이후로 몸이 회복되지 않더니 결국 암까지 발견되었습니다. 한 번도 쉬지 않고 일만 하며 산 내 인생에 아픈 덕분으로 처음으로 휴식기가 온 셈입니다. 평소에도 나를 위한 시간을 스스로 내어 쉬는 것이 너무 어려웠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봄에 수술했는데 가을이 되니 정토회에 나와 있었습니다. 돈 버는 일을 하지 않으니 쉬는 것 같았나 봅니다. 쉬는 참에 몸 보시라도 많이 하고 싶지만, 지금은 체력이 따라주질 않아 아쉽습니다. 그래도 “몸 생각해가며 하라”는 말만 하지 “가지 마라” 소리 않는 남편에게 감사했습니다.

통일 의병 활동 후 도반들과 (가운데 주인공)
▲ 통일 의병 활동 후 도반들과 (가운데 주인공)

깨어있는 국민으로! - 통일 의병 활동

통일 의병 기도를 하며 저는 어느새 나를 위한 기도가 아닌 나라를 위한 기도를 열심히 하고 있었습니다. '나라를 위한 기도를 하다니... '갑자기 제가 대단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통일 의병 활동을 하며 내가 사는 지역에서부터 관심을 두고 함께 정화하여 살리는 활동, 개선을 위해서 건의하고 신고할 줄 아는 국민이 되는 방법을 배우게 되어 기뻤습니다.

정토의 맑은 강물에 마음의 쓰레기 쓸려 보내다

돌아보니 그때는 아귀다툼하듯 괴로워하며 지옥처럼 살았습니다. 그래서 '나로부터 나아가 나에게 돌아와' 이렇게 병이 얻어졌는가 싶은 생각도 듭니다. 지금은 파도가 잔잔할 때도 있지만 거칠게 친다면 견뎌보기도 하고 내 힘이 다하는 데까지 도전해 보기도 합니다. 지금 내가 살아있는 것 그 자체가 성공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지난 날 돌이켜보면 직업의 특성상 남편과 온종일 같이 일을 하니 어느새 서로의 울타리 안에서 서로에게 맞추기를 둘 다 바랐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 여태까지 상대방을 편하게 바라보기가 힘들었습니다. 요즘은 남편에게 간섭하지 않게 되었고 오히려 제가 편안해졌습니다. 제가 편해지니 상대도 편해지는 것이 눈에 보였습니다. 제가 편안해야 주변이 편해지는 것을 알았습니다. 편안은 제가 하라고 요구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요즘은 정토회 덕분에 동네에서 재미있는 활동을 하며 정말 행복합니다. 제 마음이 행복하니 큰 일렁거림이 없고, 남 잘되는 꼴 못 봐주던 마음도 없어지고, 특히 법당에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누가 더 예쁘게 해서 오지도 않아 편하고, 모두 함께 환경도 생각하니 내 머릿속까지 깨끗해지는 느낌입니다. 외출해도 옷이나 겉모양에 끄달리는 것에서 벗어난 것이 정말 좋습니다. 지인들과 하는 뒷말 같은 이야기들은 더는 재미가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친구들이 점점 정리됩니다. 이제는 도반이 친구고 법당이 놀이터가 되었습니다.

발만 담그면 발끝만 물들고 온몸을 푹 담그면 전체가 예쁘게 물이 든다는 말이 생각났습니다. 우리도 발 빼지 않고 푹 담가 있으면 언젠가는 수행자의 물이 들겠지요.

정초 순회 법회 후 도반들과 함께 (앞줄 오른쪽 두 번째)
▲ 정초 순회 법회 후 도반들과 함께 (앞줄 오른쪽 두 번째)


영천법당처럼 작은 법당의 담당은 열심히 일해야 하는데 두 개의 ‘담당 봉사’를 하는 김상교 님의 건강이 걱정되었습니다. “수행 법회는 일주일에 한 번씩 나가고 통일 의병 활동은 한 달에 한 번씩만 나가면 되는 것인데, 통일 의병 담당자로서 교육해야 하는 것이 나에게는 좀 어렵긴 합니다. 모레 저녁에 또 다른 법당에서 속성교육을 받아 우리 법당에서 교육해야 합니다. 그래도 할 수 있을 때 해야죠! 계속해야 되느니, 쉬어야 하느니 하는 마음은 한 번 일어나면 끝까지 가더라고요. 집에서도 이제는 그만 쉬는 것이 어떻겠냐 하지만 할 수 없는 날이 언젠가 오기에 할 수 있을 때, 힘이 닿을 때까지는 정토회 활동을 하려고 합니다.“

의지가 굳건한 김상교 님과 인터뷰 하면서 그동안 봉사하며 일어났던 사소한 분별심이 다 걷히고 김상교 님의 봉사에 대한 기운을 듬뿍 받아 더욱 힘이 솟았습니다.

글_정수옥 희망리포터 (경주정토회 영천법당)
편집_강현아 (대구경북지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