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애틀법당은 2006년 가정법회를 시작으로 오늘날에 이르렀습니다. 9차 천일결사가 끝나가는 시점에서 시애틀법당의 씨앗이 어떻게 심어지고 싹을 틔우고 열매를 맺었는지, 그 중심에는 어떤 이들이 있었는지 소개하고자 합니다. 시애틀법당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함께한 3명의 총무님의 이야기도 들어봅니다.

2009년 렌튼법당 개원식 (오른쪽에서 네 번째 신수지 님)
▲ 2009년 렌튼법당 개원식 (오른쪽에서 네 번째 신수지 님)

2006년 스님의 시애틀 강연을 인연으로

정토회 대부분의 법당이 그러하듯 시애틀법당도 기획법회를 시작으로 열린법회, 정토법회를 거쳐 정토법당으로 승격되었습니다. 그 씨앗은 2006년 9월 스님의 시애틀 강연 후, 2007년 3월부터 신수지 님, 김양순 님, 앤킴 님 세 분이 각자의 집에서 돌아가며 가정법회를 시작하면서 심어졌습니다. 신수지 님이 법문을 함께 들을 친구를 구했고, 그 친구가 도반이 되어 서로 밀어주고 당겨 주면서 시작되었습니다.

가정법회를 시작하기 전 2월에 신수지 님이 장소와 공양을 준비하고 도반들의 도움을 받아 최초의 ‘미주정토행자대회’를 개최하기도 했습니다. 가끔 시애틀 법당에서는 이때를 추억하며 이야기꽃을 피우는데 어떤 무용담보다도 재미있습니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 그 큰 행사를 치뤘다는 것은 지금도 시애틀법당의 큰 자부심입니다. 현재 해외정토회 상임법사이신 선주법사님께서 그때 공양간에서 신수지 님의 '조수’ 역할을 하셨다며 수련 때 웃으며 말씀해주신 기억이 납니다.

2008년 지역 도서관에서 열린법회 시작

2008년 봄부터 벨뷰 지역 도서관을 빌려 열린법회를 열었습니다. 정기적으로 평균 5명 정도가 법회에 참석하였습니다. 도서관 장소대여는 규정상 단체는 한 달에 한 번만 장소를 빌릴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격주로 법회를 하기 위해서 한 번은 정토회 이름으로, 한 번은 JTS 이름으로 빌려 법회를 하였습니다. 이때부터 신수지 님이 총무소임을 맡았습니다. 지금은 해외정토회가 체계가 잘 정립되어서 열린법회에서는 담당자라는 호칭을 사용하지만, 이때 당시에는 그런 명확한 구분이 없이 총무 소임이 주어졌습니다.

얼마 후에 도반 중 고시유 님의 제안으로 벨뷰 소방서를 무상으로 빌려 2008년 5월부터 장소를 옮겨 법회를 열었습니다. 이때는 6명에서 10명 정도가 정기적으로 법회에 참석하면서 조금씩 인원이 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장소를 빌려 법회를 열다 보니 책을 놓을 수가 없어서 매번 법회 때마다 커다란 장바구니에 책을 담아 들고 다니며 시작하기 전에 풀고 끝나면 다시 싸야 했습니다. 또한 소방서라서 종교행사나 예불의식을 할 수 없었고, 바로 뒷 시간에 다른 외국인 미팅이 있어서 법회가 끝난 후에 공양을 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애틀 법회는 많은 행사를 치뤘습니다. 2008년 12월과 2009년 9월에는 신수지 님이 제공한 장소에서 〈깨달음의 장〉을 열었고, 2009년 2월에는 2007년 미주정토행자대회보다 더 큰 규모의 ‘제1회 해외정토행자대회’를 개최하였습니다. '어디서 이런 큰 힘이 나왔을까?' 지금의 저로서는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이 행자대회를 계기로 2010년에 미주사무국이 출범하게 되었고, 2011년에는 해외사무국으로 확대되었습니다. 그리고 이후 2012년 미주지역 청춘콘서트의 막을 올리고, 2014년에는 해외순회강연이라는 싹을 틔우게 된 것입니다.

2012년 시애틀 청춘콘서트를 준비하며 (오른쪽에서 두 번째 신수지 님)
▲ 2012년 시애틀 청춘콘서트를 준비하며 (오른쪽에서 두 번째 신수지 님)

2009년 시애틀법당 개원

2009년에 미국 경기가 안 좋아지면서 렌튼 지역에 저가 임대료의 창고형 장소를 찾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10명의 도반이 매월 100불씩 지원하겠다고 마음을 내어 임대료를 충당하였고, 같은 해 9월에 드디어 정토법당을 개원하게 되었습니다. 이때부터 제대로 된 법당의 모습을 갖추고 법회를 할 수 있게 되었고 2010년에는 불교대학, 2011년에는 경전반도 개강하였습니다.

스승님이 항상 말씀하시는 것처럼 법당이란 청정한 자가 청정한 마음으로 수행하는 곳임을 알지만, 형식적으로도 법당의 면모를 갖춘 곳에서 여는 법회는 마음가짐부터 더욱 경건했습니다. 이때 시애틀법당에는 평균 19명 정도의 도반들이 법회에 참석하며 점차 안정을 찾았습니다.

2012년 법당공사-부처님전을 만듭니다!
▲ 2012년 법당공사-부처님전을 만듭니다!

2012년 도반들의 손으로 완성한 이전 확장개원

2012년, 드디어 지금의 법당장소를 찾아 도반들이 직접 발 벗고 나서 법당공사를 하여 8월에 이전하게 되었습니다. 법당 바닥에서부터 공양간까지 하나하나 도반들의 손이 모여 완성되어가는 법당을 지켜보는 것은 평생 경험해보지 못한 감동의 시간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요즘도 다른 법당 도반들이 시애틀법당의 장소를 부러워한다는 얘기를 들으면 절로 어깨가 으쓱해집니다.

2012년 법당공사-데크 및 계단공사(노란 장갑 착용하고 있는 주상휴 님)
▲ 2012년 법당공사-데크 및 계단공사(노란 장갑 착용하고 있는 주상휴 님)

2012년 법당공사-음식물쓰레기처리장 공사 (가운데 주상휴 님)
▲ 2012년 법당공사-음식물쓰레기처리장 공사 (가운데 주상휴 님)

2013년에 제7차 천일결사 회향을 하면서 2008년부터 총무소임을 맡은 신수지 님의 임기도 끝나게 되었습니다. 신수지 님의 소감입니다.

순간이 감동입니다. - 1대, 2대 총무 신수지 님 [2008년-2013년]

신수지 님: 총무 소임을 맡으며 어려웠다 생각되는 일은 없었습니다. 다만 지금, 이 순간 자체가 감동일 뿐입니다. 지금까지도 함께 계시는 분들과 개인 사정으로 같이 하지 못하는 도반들의 수고로움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특히 제 남편인 신정식 님은 항상 뒤에서 힘이 되어주고 지원을 아끼지 않는 저의 수행 부처님 입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같이 하시는 도반들 한분 한분과 함께 할 수 있어 감사합니다.

제 개인 수행차원에서 보자면 총무 소임으로 제 삶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상황은 바뀌지 않았지만 제 마음이 바뀌니 상황은 문제가 되지 않았고, 모든 일이 단지 일어난 일일 뿐입니다. 또 이렇게 지속할 수 있는 원동력은 매일 놓치지 않는 수행 덕분이었습니다. 한 번은 기도 중에 염주가 끊어져 ‘아! 이제 안 해도 되나?’ 생각에 염주도 없고 해서 한동안 아침기도를 안 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스님을 뵙게 되었는데 염주가 끊어져 넘어진 김에 쉬고 있다는 이야기를 드렸더니 핑계도 가지가지라는 말씀에 다시 시작한 기억이 납니다. 특히 보왕삼매론은 제 인생의 지침서가 되어 기도 중에 문장마다 뜻을 세깁니다. 이제 매일 기도하며 저에게 선물을 줍니다.

즐겁고 행복한 소임 - 3대 총무 주상휴 님 [2014년-2016년]

2014년부터 제8차 천일결사가 시작되면서 주상휴 님이 총무 소임을 맡게 되었습니다. 이때부터는 시애틀법당이 본격적으로 열매를 맺기 시작하는 시기입니다. 주상휴 님을 통해 이 시기 시애틀법당의 활동과 변화 그리고 소임을 해나가던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2014년 부처님오신날 행사 (앞줄 맨 왼쪽 신수지 님, 두 번째 주상휴 님, 두 번째 줄 왼쪽에서 여섯 번째 김효경 님)
▲ 2014년 부처님오신날 행사 (앞줄 맨 왼쪽 신수지 님, 두 번째 주상휴 님, 두 번째 줄 왼쪽에서 여섯 번째 김효경 님)

주상휴 님: 이 시기에는 시애틀법당뿐만 아니라 해외법당에서 많은 변화가 있었는데, 법당의 운영 규칙과 조직 체계에 관한 획기적인 변화로 실무라인의 안정화를 도모하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매 천일결사 차수마다 변화가 조금씩 있었지만 제8차는 그야말로 해외전법이라는 제2차 만일결사의 목표를 위해 본격적으로 꿈틀대는 시점이었습니다. 시애틀 법당이 이 큰 흐름에 흔들림 없이 시작 할 수 있었던 것은 제7차 천일결사 기간까지 시애틀 정토법당을 안정적으로 이끌어주신 전임 신수지 총무님 덕분입니다. 터전이 확고하였기에, 짧은 기간에 법당의 여러 운영 규정과 조직의 변화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었습니다. 그 덕에 7차의 부서별 담당자 라인을 8차에 해외사무국의 실무라인과 동일하게 만들 수 있었고, 그래서 각 담당자들이 보다 쉽게 해외사무국의 실무라인과 안정적으로 소통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한 수행 분위기가 진작되었습니다. 제7차 천일결사 끝나기 전에 새롭게 구입한 법당 덕분에 시애틀법당은 우리들만의 공간에서 수행법회는 물론 명상수련과 백중기도, 동지기도, 송년, 신년기도 등을 꾸준히 할 수 있었고, 이러한 분위기는 자연히 수행의 분위기를 진작시키는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그리고 법당이 자리한 면적이 넓어 매주 울력을 해야 하는 분위기도 조성되었습니다. 모두 합심하여 수행자로서 기꺼이 텃밭을 가꾸고, 잔디를 깎고 나무 가지치기를 했습니다.

그리고 이 법당에서〈 깨달음의 장〉, 〈나눔의 장〉 수련이 이제 가능합니다. 매년 북미주의〈 깨달음의 장〉은 엘에이(LA) 수련원과 워싱턴 디시(D.C)의 수련원에서만 있었기에, 북미 서북부 지역(밴쿠버, 시애틀, 포틀랜드 등) 희망자들에게 때로는 공간적 제약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시애틀법당에서 〈깨달음의 장〉과 〈나눔의 장〉을 개설함으로써, 이 지역 참가자들에게 좀 더 쉬운 참가의 기회를 줄 수 있게 되었고 〈깨달음의 장〉도 매년 한 번 할 수 있을 정도로 그 수요가 늘어났습니다.

마지막으로 시애틀 도반들의 화합입니다. 그 전부터 잘 쌓아 온 도반들의 화합은 제8차에 들어와서 수행자로서의 화합도 흔들림 없이 잘 유지되어 왔습니다. 이는 지금껏 시애틀법당이 발전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덕목 중의 하나입니다.

2014년 정일사(정토를 일구는 사람들) 수련중에 (앞줄 가장 오른쪽이 신수지 님, 뒷줄 가장 오른쪽 김효경 님, 세 번째 주상휴 님)
▲ 2014년 정일사(정토를 일구는 사람들) 수련중에 (앞줄 가장 오른쪽이 신수지 님, 뒷줄 가장 오른쪽 김효경 님, 세 번째 주상휴 님)

저는 총무 소임을 하며 어려웠던 적은 없습니다. 2016년 한국에서 해외 활동가 수련 때, 이런 총무라면 평생하라고 해도 하겠다고 이야기했던 기억이 납니다. 즐겁고 행복하게 소임을 하였습니다. 소임을 하며 감명 깊었던 에피소드를 꼽으라면, 2014년 가을 불교대학생 중에 한 분이 법륜스님의 법문에 감동하여 ‘법륜스님의 해외 100강’ 소식을 자신이 신문 표지 전면에 3~4차례 광고하고 싶다고 요청한 적이 있습니다. 짧은 기간 법문을 듣고 이러한 희열심을 내는 것을 보고, 불교대학이나 수행법회의 중요성, 그리고 전법의 결과는 언제 어디서 어떻게 발현될지 모른다는 것을 새삼 느꼈습니다.

총무 소임을 하면서 먼저 도반들과의 화합과 전법에 힘쓸 것을 스스로 다짐하면서, 저 자신이 먼저 천일결사 기도를 한 번도 빠지지 말자고 다짐했습니다. 결과적으로 100% 성취를 하지는 못했으나, 아쉬움 없이 열심히 했습니다. 그리고 도반들의 이야기를 잘 듣고 공감하고자 했습니다. 나눔의 장에서 묘덕법사님의 가르침이 이러한 총무 역할을 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총무 소임 덕분에 아침 기도는 이제 제 생활이 되었고, 이해와 공감하고자 하는 총무 소임 3년 덕에 사무실에서 동료들과의 생활도 편안히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목탁 삼매경 주상휴 님
▲ 목탁 삼매경 주상휴 님


주상휴 님은 2016년 12월에 제8차 천일결사를 회향하며 총무 소임을 내려놓고 지금은 북미서부지구 지구장과 해외사무국 회계팀장 소임을 맡고 있습니다. 주상휴 님은 총무 소임을 하며 수행과 봉사활동을 할 때 누구보다 솔선하는 모습으로 도반들의 마음을 움직입니다. 또 주상휴 님과 대화하다 보면 어느 순간 구렁이 담 넘어가듯 슬쩍 소임을 맡게 되는 마법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런 분이니 총무소임도 평생 할 수 있겠다 하셨겠지요.

법당도 마음도 청정하게 - 4대 총무 김효경 님 [2017년-현재]

2016년 12월 제8차 회향일 때부터 총무대행을 했던 김효경 님이 2017년 제9차 천일결사 입재일부터 현재까지 총무소임을 맡고 있습니다. 지금부터는 김효경 님을 통해 2017년부터 현재까지의 시애틀법당 이야기와 소임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김효경 님: 총무 소임을 맡기 시작한 제9차 천일결사 때에는 제2차 만일결사를 대비해 정토회 행정 구조에 큰 변화가 시작된 시기입니다. 총무단을 중심으로 6개의 부서(법회, 지원활동, 사회활동, 자원활동, 불교대학, 회계)가 구성되어 실무를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초기에는 새로운 구조에 익숙하지 않아 혼선이 빚어지기도 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각 부서의 역할이 세분화되어 효과적으로 임무를 수행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특히 사회활동팀의 활동이 두드러졌는데 평화운동, 백악관에 편지보내기, 환경학교, 로힝야 난민돕기 등 다방면의 활동이 있었습니다. 비단 사회활동팀뿐만 아니라 다른 부서들도 모두 새롭게 정비되고 개편되는 시기였습니다.

2017년 시애틀 중심가에서 평화운동
▲ 2017년 시애틀 중심가에서 평화운동

현재까지 이 소임을 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을 꼽으라면 아마도 소임을 맡았던 첫해에 함께 일을 하던 선배 도반의 사고로 거의 7개월 동안 혼자 일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직장 일을 하고 일요일에는 법당으로 출근하는 생활이 이어지면서 대학 입시 준비를 하는 아들에게도 거의 신경을 쓰지 못했습니다. 몸은 힘든 시간이었지만 각 부서 담당자들이 본인의 소임을 잘해주었고 아들도 엄마의 무관심이 오히려 부담을 덜어주었는지 본인이 원하던 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습니다. 이 시기에 ‘토 달지 않고’ 잘하든 못하든 일단 ‘예’하고 정토 일을 해주신 도반들의 모습이 가장 감동으로 기억됩니다.

수행에도 속도가 있다면 비둘기 열차를 타고 가던 저를 KTX에 승차시켜준 것이 바로 총무 소임이라고 생각합니다. 권리는 없고 의무와 책임만 있는 듯 느껴졌던 자리가 지금의 저를 얼마만큼 성장시켰는지 겉으로는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예전보다 자유롭고 담대하고 느긋해진 저를 보며 혼자 뿌듯해합니다.

왼쪽 김효경 님
▲ 왼쪽 김효경 님

시애틀법당은 해외 법당 중에서도 안정적인 편에 속합니다. 안정적이라는 것은 어떤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고 정토회의 이념에 따라 수행자로 나아가는 도반의 수가 상당히 많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과제가 있다면 이분들이 모델이 되어 더 많은 분이 발심할 수 있도록 격려하고 돕는 것입니다. 또한 엘에이(LA)에 이어 수련을 조금 더 많이 할 수 있는 공간으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당장 올해 9월 6일부터 2박 3일간 북미서부지구 행자대회가 이곳 시애틀법당에서 열리는데 벌써부터 많은 도반들이 구슬땀을 흘려가며 법당을 가꾸고 있습니다. 수련 때 많은 분이 조금이라도 덜 불편하도록 법당을 고치기도 하고 여름철이라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는 풀도 배고 텃밭에서 나는 먹거리들도 수확합니다. 또 최근에는 친환경 법당을 만들기 위한 일환으로 텃밭에 퇴비 박스를 마련하기도 했습니다. 봉사 거리가 차고 넘치는 이곳에서 마음도 법당도 청정하게 만드는 것이 우리의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2019년 JTS 모금 활동 (가장 오른쪽이 김효경 님, 오른쪽에서 두 번째 신수지 님, 왼쪽에서 두 번째 주상휴 님)
▲ 2019년 JTS 모금 활동 (가장 오른쪽이 김효경 님, 오른쪽에서 두 번째 신수지 님, 왼쪽에서 두 번째 주상휴 님)


처음 총무대행 소임이 맡겨졌을 때 총무대행은 하지만 절대 총무는 하지 않겠다고 하던 김효경 님이 총무소임을 행하는 모습을 보면 ‘저 분이 과연 그 분이 맞나?’ 의아해집니다. 예전 천일결사 때보다 제9차 천일결사에 들어와 총무의 소임이 몇 배로 늘었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일을 척척 해나가는 김효경 님은 지금 이 시기 시애틀법당에 꼭 맞는 총무님입니다.

예전 정일사(정토를 일구는 사람들) 수련 때 선주법사님께서 시애틀법당은 총무 소임이 넘어가더라도 전대 총무와 현대 총무의 갈등이 없다는 점을 들어 칭찬하신 적이 있습니다. 지금껏 우리 시애틀 도반들이 갈등이 없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고 여길 수 있었던 것은 온전히 시애틀법당의 역대 총무님들 덕입니다. 전대 총무들이 현대 총무에게로 소임을 넘기면서 배려를 우선 하고, 간섭하지 않으며 조언을 구하는 것에만 답하는 수행적 자세를 꼭 지켰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도반들 사이에 발생하는 갈등도 나서서 해결해주려 하기보다 말을 아끼며 들어주는 지혜로움으로 함께 했기에 지금처럼 단합되고 편안한 시애틀법당이 될 수 있었습니다.

제9차 천일결사도 올해 12월 회향식으로 끝이 나면 김효경 님의 총무 임기도 끝나게 됩니다. 제10차 천일결사 3년 동안 시애틀법당은 또 어떤 새로운 총무님을 맞게 될까요? 지금껏 그래왔듯 역대 총무단이 든든히 자리해주실 것을 알기에 제10차 천일 시작을 이끌 새로운 총무님이 더욱 기대됩니다. 이 자리를 빌려 그간의 시애틀법당을 일구어 오신 도반들에게 감사를 전합니다. 더불어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는 시애틀법당의 미래에 응원의 박수를 보냅니다.

글_박근애 희망리포터 (시애틀법당)
편집_박승희 (해외지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