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포터는 행복학교에서 스텝 봉사를 하며 박양금 님을 처음 만났습니다. 행복학교가 끝나고 어느샌가 법당에 나오던 박양금 님이 지금은 불교대학 담당과, 불교대학팀장 까지 맡아 법당의 활동가로 우뚝 섰습니다. 오늘은 큰 아이와의 갈등을 수행으로 풀어간 박양금 님의 이야기 입니다.

풀지 못한 큰 숙제

행복학교에 가게 된 건 우연히 용인 희망강연에서 만난 봉사자들의 권유였습니다. 4주간의 수업이 끝나고 나니 아쉬워 수행법회를 다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수행법회는 행복학교와는 다른 법회의식에 좀 당황스럽고 불편했습니다. 오래도록 교회를 다녔고, 기독교 신자인 제가 삼배를 해야 할 때는 어쩔 줄 몰라 계속 나와야 하나 고민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즈음 저에게 심각한 숙제는 큰아이와의 관계였습니다. 법회의식을 감수하고서도 스님의 법문을 들어야 했던 이유는 이제까지 어디에서도 들어보지 못한 관점과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아이의 마음을 알게 될 것 같은 느낌때문이었습니다.

스님과 함께하는 정회원의 날. 분당법당 기흥법당 공양총괄 소임중(맨 왼쪽)
▲ 스님과 함께하는 정회원의 날. 분당법당 기흥법당 공양총괄 소임중(맨 왼쪽)

나를 노려보는 아이

아이가 7살이 되었을 때, 유치원 선생님이 아이가 한글을 깨치지 못했다며 지적하였고, 그후로 저는 하루일과를 매시간 매분으로 나누어 한글부터 일일이 해야 할 모든 것을 아이를 끼고 가르쳤습니다. 아이는 한글을 깨치고 초등학교에 들어갔는데 이후로 자꾸만 저를 노려보았습니다. 2학년 무렵에는 집을 나가겠며 몇 시간을 집 밖을 배회하다 들어온 적도 있습니다. 놀이터에 나가서 집에 들어오지 않던 아이, 나를 밀어내는 그 아이를 보며 정말 어찌할 바를 모르겠고, 무엇으로부터 시작되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아이가 저를 노려볼 때마다 무서운 마음만 가득했습니다.

아이는 학교에 가기 싫다고 소리를 지르고, 동생을 때리고, 거친 말을 쏟아 내었습니다. 혼을 내보고, 달래보고 모든 제가 할 수 있는 방법이 소진되었을 즈음 천일결사에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천일결사를 계기로 매주 토요일 새벽 법당에서 혼자 하는 108배는 육아에 지친 저를 돌아보고 아이의 마음을 바라보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제가 아이에게 쏟아 내었던 말들과 눈빛, 그것을 받아내야 했던 큰아이의 모습이 떠올라 기도하는 내내 참 많이 울었습니다. 나아가 남편에게, 부모님에게 참회했습니다. 결혼 준비할 때부터 쌓인 서운함과 육아의 고됨을 늘 알아주길 바라고, 저도 모르는 제 마음을 남편이 알아서 헤아려 주기를 바랐습니다. 그리고 바쁘신 부모님을 대신하여 할머니 손에 자란 제 어린 시절과도 조우하며 할머니를 엄마로 부르면서 자란 제가 엄마가 되는 것에 얼마나 큰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봄경전 졸업식(맨 오른쪽)
▲ 봄경전 졸업식(맨 오른쪽)

아이에게 내 목줄을 내어주다

<깨달음의 장>에 다녀오고 나서는 아이는 그럴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동안 '어떻게 이럴 수 있나' 분노하고 '왜 저러나' 이해할 수 없던 아이였는데, 4박 5일 깨달음의 장 수련을 마치고 집에 오니 아이들이 이쁘게 보였습니다. 매일 하는 108배와 불교대학 내내 울고 다니고 경전반을 거치는 사이, 저의 무엇이 바뀌었는지 모르지만, 큰아이가 나를 보는 눈빛이 어느덧 부드러워졌음을 느꼈습니다.

법당 봉사를 마치고 집에 늦게 들어간 적이 있는데, 멀리서 엄마를 보고 손 흔들어 주는 아이의 모습에 혼자 감동했습니다. 학교를 안 가겠다던 아이가 5학년이 되면서는 담임선생님을 좋아해서인지 매일 아침 20분이나 일찍 학교에 가서 도서관에서 책을 읽다 교실로 가곤했습니다. 그것이 저에게는 큰 행복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틈에 제가 아이에게 목줄을 주고 아이가 웃으면 저도 웃고 아이가 짜증내면 금세 우울해지는 저를 보았습니다. 저는 여전히아이에게 끌려 다니고 있었습니다. 아이와 남편에게 의지하여 행과 불행을 윤회하는 제 꼬라지를 보게 된 것입니다. 그것에 매인 것을 알고 나니, 저의 수행은 아이와 분리해서 내 인생의 주인이 되는 것을 연습합니다. 내가 나로 행복한 것, 무엇으로 행복하지 않고 그냥 나로 살면서도 당당 해지는 연습이 제겐 봉사가 되었습니다.

스님과의 담당자 나들이(맨 왼쪽)
▲ 스님과의 담당자 나들이(맨 왼쪽)

아이를 믿고 지켜볼 수 있는 기적

이제 아이를 혼낼 때는 5계를 기준으로 합니다. 그것이 아니면 그냥 넘어갑니다. 아이들과 JTS 거리모금도 함께 다니고, 아이 키우는 것만도 버거웠던 제가 불교대학 담당과 불교대학 팀장으로 기꺼이 봉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번 여름은 새물정진에 가을불대, 가을경전 졸업식까지 치르느라 거의 매일 법당에 나와야 했는데 아이들은 여름 옥수수처럼 제가 붙어서 키울 때 보다 더 씩씩하게 자랍니다.

사람의 마음이 변할 수 있다는 것 그것도 시시각각으로 변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받아들이니 가볍고 편안합니다. 이렇게 해야 한다는 기준이 사라지니 그렇게 버겁던 아이 키우기도 행복 할 수 있음을 알았습니다. 요즘은 올 초에 사준 핸드폰에 푹 빠진 아이가 고민이지만 아이를 믿고 지켜볼 수 있는 여유를 가진 제가 기적 같습니다.

초파일 행사 공양간 봉사(뒷편 오른쪽)
▲ 초파일 행사 공양간 봉사(뒷편 오른쪽)

그 시기에 맞는 깨달음

<깨달음의 장> 이후 정말 행복하고 감사한 마음에 보답하고 싶어 했던 봉사는 불교대학 부담당소임을 맡으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신나고 열정적으로 시작했는데, 경전반을 거치며 조금 지치고 힘들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잘하고 싶은 욕심에 봉사가 주는 행복은 사라지고 또 해야 하는 일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시기는 그 시기에 맞는 깨달음이 있었습니다. 쉬엄쉬엄 놓지 않고 가볍게 할 수 있는 놀이가 되어야 하는 봉사를 조금씩 깨달았습니다. 무엇을 하든 완벽하고, 꼼꼼하게 해내야 하는 나를 알고 놓아가는 연습을 봉사 통해 하고 있습니다.

9-9차 예비결사자 환영의 날. 염주선배 및 예비결사자와 함께(뒷줄 오른쪽에서 2번째)
▲ 9-9차 예비결사자 환영의 날. 염주선배 및 예비결사자와 함께(뒷줄 오른쪽에서 2번째)

환경학교를 다녀오고 나서는 생활 자체가 바뀌고 있습니다. 우리 집의 음식물 쓰레기가 반 이상 줄이게 되었습니다. 늘 아이 문제 로 고민하던 제가 수박 하나를 어떻게 하면 다 먹을 수 있을지 연구하고 이것저것 쟁여 두었던 냉장고 속을 비우고 먹을 만큼만 사서 쓰레기가 남지 않게 먹을 수 있게 고민 합니다. 장바구니 텀블러를 들고 다니며 쓰레기가 나오지 않도록 하며 얼마 전에는 수박의 하얀 부분을 김치를 담아 도반들과 나누었습니다.

몸은 힘들고 지쳐도, 법당에만 오면 편안하고 활동가 도반들 혹은 선배 도반들과 나누기가 참 좋습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가볍게 풀어내지만 저는 그들을 통해 또 법문을 실생활에 적용할 지혜를 깨칩니다. 처음에는 법회의식에 거부감이 있었는데 이제는 천도재 때 피우는 향냄새조차도 참 좋아졌습니다.

나도 좋고 남도 좋은 삶, 3년 정도 하면 내 꼬라지를 안다고 했는데 3년이 되어가는 이 시점에 저에게 3년은 부족합니다. 부처님 법을 만나게 해준 큰아이가 감사하고 부모님 남편에게 감사한 줄 아는 지금이 또 감사합니다. 어렵고 힘들면 힘든 것을 알아가는 지금 소임과 수행자로의 삶이 귀합니다. 이 끈을 잡고 엄마로의 역할도 소임처럼 가볍고 행복하겠습니다.

오른쪽 앞줄이 주인공
▲ 오른쪽 앞줄이 주인공

글_ 이미정 희망리포터(용인정토회 기흥법당)
편집_장석진(강원경기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