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법당은 개성과 제일 가까운 정토회 법당으로 2014년에 파주시 금촌동에 24평 규모로 개원한 법당입니다. 올해 드디어 파주법당의 확장 불사가 결실을 맺어 이번 9월에 새로운 법당에서 불교대학 입학식을 하게 되었습니다. 파주법당 확장 불사 담당 이인숙 님의 소감을 들어보겠습니다.

파주법당 불사 담당 이인숙 님
▲ 파주법당 불사 담당 이인숙 님

희망리포터 : 확장 불사가 결실을 보게 되니 기분이 어떠세요? 인테리어 공사도 시작하고 신경 쓸 일이 많으시죠?

지금까지는 막연하게 ‘해야지’ 하는 마음만 있었는데 구체적으로 장소가 정해지니 ‘이제는 되는구나!’ 하는 거지 크게 다른 마음은 없습니다. 우리가 안 해 봤던 일이라 중간에 옥신각신할 일이 있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은 조금 있습니다. 그런 일에 약해서 피하고 싶은 마음이 있거든요. ‘되는 대로 하면 되겠다.’ 그런 마음이지 혼자 하는 게 아니라 다 같이 하니까 별 부담은 없습니다.

희망리포터 : 새로 이사하는 법당 옆으로 노래방과 당구장이 있잖아요. 위층에는 서로 다른 교회가 두 군데나 있고요

노래방이나 당구장은 별로 신경 안 쓰입니다. 옆에 있다고 갈 일이 없는데 갈 것도 아니고, 오히려 거기 왔던 사람 중에 ‘여기는 뭐 하는 곳이지?’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도반들은 봉사하느라 갈 시간이 없을 겁니다.(웃음)
교회도 크게 염려 안 합니다. 엘리베이터에서 선교하러 가는 교회 사람들 만나면 반갑게 인사하고 전단지도 받습니다. 서로 그냥 그렇게 지내면 되지 않을까요? 공부하면서 다름을 인정하라고 스님께서 항상 말씀하시는데 그것도 똑같은 맥락에서 봐야지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별로 염려하지 않습니다. 우리끼리만 화합하는 것도 좋지만 두루두루 화합하는 건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희망리포터 : 확장 불사에 참여하는 것과 불사 담당 소임을 맡는 것은 다른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처음에 불사 담당 소임을 제안받았을 때는 부담감이 대단히 컸습니다. 맡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솔직하게 있었습니다. 잠깐 달리 생각해 보니까 ‘내가 언제 나만 위하는 게 아니라 모두를 위하는 일에 마음을 내어 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 나이가 예순 좀 넘었는데 요즘 들어서 늙어간다는 느낌을 자주 받습니다. 지금 아니면 해 볼 기회가 없겠다는 생각도 들고, 한번 해봐야겠다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가볍게 하겠다고 시작했습니다. 하다 보니 처음에 가졌던 마음은 기우였고 이게 제 공부가 되는 게 훨씬 더 많았습니다. 매주 토요일 아침 불사 정진 기도할 때 도반들이 오면 오는 대로 고맙고, 안 오면 안 오는 대로 나 혼자도 너무 좋다는 마음이 들어서 불사 정진에 대한 부담감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300배 하고 잠깐 앉아서 명상할 때 그 시간이 정말 행복하거든요. 그래서 아직 끝난 건 아니지만 하는 과정이 즐겁고 행복합니다.

파주법당 확장 이전 불사 발대식(첫 줄 왼쪽에서 두 번째)
▲ 파주법당 확장 이전 불사 발대식(첫 줄 왼쪽에서 두 번째)

희망리포터 : 개인적인 얘기도 여쭤봐도 될까요? 정토회 어떻게 오시게 되셨는지, 어떻게 어려움을 이겨내셨는지 수행담을 듣고 싶습니다.

우리 집 옆에 보광사라는 절이 있어서 오래 다녔습니다. 이사 오고 나서 계속 다녔으니까 20년 정도 다녔을 것입니다. 어릴 때는 엄마 따라 절에도 가보고 무슨 날이면 가고 했지만 불자는 아니었습니다.
정토회를 아예 몰랐던 건 아니었습니다. 다니던 절에서 도반들이 책도 권해주었고, 법륜스님을 TV에서도 보고 그랬습니다. 딸 시집보낼 때《스님의 주례사》를 사서 아이들에게 선물했습니다. 그러면서 스님 책을 여러 권 보게 되었고 스님께 가서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보니까 정토회는 이것도 해야 하고 저것도 해야 하고 정토회원이 되려면 뭐가 되게 복잡했습니다. 선뜻 그렇게까지 할 생각은 안 들어서 마음을 못 내었습니다.(웃음) 법당이 이렇게 가까이 있는 줄은 모르고 서울까지 가야 하는 줄 알았거든요.
그래도 불법에 대한 관심은 많아서 3개월 코스로 보광사 불교대학을 졸업하고, 조계사에서 하는 '성철스님 100일 법문' 이런 프로그램도 찾아다녔습니다. 사찰순례도 하고 새벽 예불도 하며 지냈습니다. 다니던 절에 스님이 바뀌면서 마음을 못 잡고 있던 차에 금촌에 정토법당이 있다고 해서 친구하고 같이 왔었습니다. 정토불교대학을 다니면서 인도 성지 순례도 다녀왔습니다.

희망리포터 : 인도 성지순례는 어떠셨어요?

인도에 도착해서 딱 첫날까지만 힘들었습니다. 호텔이라고 해서 들어갔는데 뭐 이런 데가 있나 싶었습니다. 방문이 철창으로 되어 있고 음습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첫날은 좀 그렇더라고요. 그런데 바로 적응하니, 다 떠나서 나만 생각해도 되는 곳이어서 자유롭고 좋았습니다.
우리 집 남자 형제들은 다 외향적입니다. 리더십도 있고 나서는 거 무척 좋아하는 사람들 있죠? 오빠 둘, 남동생 하나가 다 그런 성격입니다. 앞에 나서서 해야지 뒤에서 쫓아다니지를 못합니다. 그런데 저는 그 사이에서 기죽어 커서 그런지 앞에 나서는 것을 안 좋아했습니다.

 2019년 가을불교대학 담당(앞줄 오른쪽 두 번째)
▲ 2019년 가을불교대학 담당(앞줄 오른쪽 두 번째)

희망리포터 : 나서는 것보다 뒤에서 받쳐 주는 게 편하세요?

나서는 거 별로 안 좋아합니다. 그리고 잘 못 하기도 합니다. 지금은 나이가 들어서 이만큼이라도 하는 겁니다. 젊었을 땐 더 그랬습니다. 챙기고 배려하는 것만 해봤지 "이거 나 해줘. 아니야 이거 나 할 거야" 이런 걸 한 번도 못 해 본 겁니다. 그래서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항상 부대낌이 있습니다.

희망리포터 : 예를 들면요?

제가 시집에서는 맏며느리입니다. 두 분 모두 90세 넘어 돌아가실 때까지 모시고 살았습니다. 토요일에 시동생, 시누네 식구들 모이면 다 해먹였습니다. 농사를 지으니까 식자재가 많잖아요. 그럼 재료를 나눠주시는 것이 아니라 시누이가 그걸 어떻게 하느냐하시면서, 제가 일주일 동안 가서 먹을 것을 만들어 주라 하셨습니다. 그렇게 다 챙겨줘야 하는 입장이니까 해줘도 좋은 소리 못 듣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잘한다고 했는데 시어른들은 공 없는 소리 하실 때도 있었습니다. 그럼 힘이 빠졌습니다. 다 해주고도 속상하고 짜증이 났습니다.
그랬는데 인도 성지순례 가서 제가 그 생각을 딱 했어요. ‘육십갑자 한 바퀴 돌 동안 살면서 내가 할 만큼 다 했어. 이쪽도 저쪽도 할 만큼 했으니 이제 나를 위해서 살아야겠다.’ 이렇게 마음이 정리하고 인도에서 돌아오자마자 보광사에 식구마다 달았던 인등을 싹 내렸습니다. 인등비에 조금 더 보태서 JTS에 기부했습니다.

새 법당 철거 후 청소하며 절로 절로 되기를
▲ 새 법당 철거 후 청소하며 절로 절로 되기를

희망리포터 : 어떻게 그렇게 정리를 하셨어요? 예상 밖인데요? 내가 마음을 내려놓고 더 잘해줘야겠다 이렇게 정리하실 줄 알았어요.

'각자가 다 잘 살만한 사람들인데 내가 내 생각대로 간섭했구나. 그냥 놔둬도 되겠다'는 마음이 드니까 애쓸 것도 없이 진짜 그냥 놔졌습니다.(웃음) 예전에는 다 해놓고 가지러 와라, 안 오면 또 가져다주고 그랬죠.

희망리포터 : 그럼 요즘은 ‘내가 해 줘야겠다.’ 이런 마음 안 드세요?

내가 주고 싶은 마음이 들면 그냥 좋은 마음으로 줘요. 그러고는 끝!

희망리포터 : 살아오시면서 어려웠던 얘기도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아들이 시력장애가 있습니다. 일상생활은 하는데 폭이 넓은 건 아니라서 일반적인 사람들과 경쟁하기가 아주 힘들었습니다. 아이 어릴 때는 고양시에 살았는데 병원에서는 별로 해 줄 게 없다고 했습니다.
지인이 사당동에 침을 잘 놓는 교회 장로님을 소개 해줘서 아이를 데리고 몇 년을 다녔습니다. 그런데 그 양반이 아이 치료를 할 때 엄청나게 기도를 하고서는 침을 놓고 그랬습니다. 엄마가 돼서 옆에서 멀뚱멀뚱 보고만 있다가 오는 것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마침 이웃에 교회를 다니는 사촌언니가 권하기도 하고 해서 교회를 몇 년 다녔습니다. 몇 년 해보니 저하고는 잘 안 맞았습니다. 믿고 회개하고 복 빌면 다 된다는 게 이치에 안 맞는 것 같아서 마음에 와 닿지 않았습니다.
파주로 온 건 시골에 어른들도 계시고 땅도 있어서였습니다. 아이에게도 낫지 않을까 싶어서 이사를 오게 됐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제가 생각이 짧았던 것 같습니다. 시골로 이사를 할 게 아니라 아이에게 필요한 교육이나 이런 걸 더 적극적으로 했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나중에 그것 때문에 아들한테도 원망을 좀 들었습니다. 지금도 그때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한 게 마음이 아픕니다. 좀 더 현명하게 할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요. 생각해보면 스물다섯에 결혼해서 낳은 첫 아이가 장애라는 것이 그 당시에는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매주 토요일 아침 8시 파주법당 불사 정진(앞줄 가운데)
▲ 매주 토요일 아침 8시 파주법당 불사 정진(앞줄 가운데)

희망리포터 : 혹시 아드님과 이런 얘기를 나눠보셨어요?

정토회에 와서 제가 달라진 것이 아들하고 화해한 것입니다. 실은 아들하고 사이가 별로였거든요. 전에는 제가 ‘이거 이렇게 저렇게 할까?’ 그러면 우리 아들이 딱 바리케이드를 치고 그랬습니다. 엄마가 그러는 게 싫었던 겁니다. 아이가 괜히 그러지는 않았을 것이고 밑 마음에 제가 모르는 뭔가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마 엄마가 자기를 충분히 알아주지도 않고 이해도 못 하면서 바라는 건 또 많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희망리포터 : 아드님이 엄마의 기대가 부담스러웠을까요?

그럴 수도 있고요. 아들이 시력은 안 좋은데 공부는 곧잘 했습니다. 재수해서 고려대에 입학했습니다. 마음먹고 뭘 하면 잘하는 아이입니다. 학교 졸업하고 나서는 취업도 여러 번 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회사 가서 일하다 보면 못 견디는 것입니다. 몇 번 그러더니 집안에 은둔하는 것처럼 몇 년을 있기도 했습니다. 술 한 잔 먹고 그러면 저한테 뭐라고 했습니다. 자기가 자기를 어쩌지 못하니까, 이성적으로는 부모한테 그러면 안 되는데, 자기를 못 이겨서 울면서 막 뭐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부모 마음에 그런 상황을 보는 게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그런데 제가 정토회에 와서 이렇게 한 단계 한 단계 공부하다보니 문리가 터지면서 이치로 알아차리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들을 많이 받아줬어요. 아들이 어떤 식으로 얘기하던지 귀 기울여서 잘 들어줬습니다. 듣다 보니 서로 그런 마음이 아니었는데 전달하면서 오해하는 부분이 보였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아들이 분노하고 괴로워하면 "엄마도 그 때는 처음이라서 몰라서 그랬다. 정말 미안하다."라며 진심으로 수없이 사과했습니다. 그랬더니 그게 풀어졌습니다. 풀어져서 지금은 저도 아들도 편안하게 지냅니다. 신기하지요?

희망리포터 : 아드님이 그때는 왜 그랬을까요?

제가 아들의 상황을 잘 몰라주는 엄마였습니다. 아들이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하거든요. 자존심이 강해서 누구 앞에서도 아무렇지 않은척 노력했습니다. 그러니까 얼마나 발버둥을 쳤겠습니까. 남은 이해 못해도 부모는 그런 힘든 마음을 알아줬어야 하는데 그러지를 못했습니다.
지금은 전공은 아닌데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따서 장애인 단체에서 일합니다. 아직은 그 일을 딱 마음에 들어하는 건 아닌 것 같은데 그래도 자기를 많이 내려놓은 것 같습니다. 학교 친구 중에도 장애인이 한 명도 없었거든요. 지금 아들은 새로운 직장에서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와, 이렇게 사는 사람들도 있구나.’ 이렇게요. 회사 갔다 오면 저에게 그 얘기를 한참 합니다. “아 엄마 어떡하지? 세상에 이런 사람도 있어요.”

임진각 통일기도 마치고 파주 평화의 소녀상과 함께(왼쪽 두 번째)
▲ 임진각 통일기도 마치고 파주 평화의 소녀상과 함께(왼쪽 두 번째)

희망리포터 : 역전했네요?

정토회에 와서 이 공부를 하지 않았으면 아마도 지금 우리 아들하고 이런 대화를 나누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지금은 이렇게 살아온 얘기를 가볍게 내놓을 수 있지만, 그땐 참 사는 게 고단하고 힘들었습니다. 불교대학 다니면서 다른 사람들이 그러더라고요. 한 주 한 주 지날 때마다 제 얼굴이 달라진다고요. 저도 모르겠는데 다른 사람들이 그러더라고요. 그저 강의 들을 때마다 와 닿는 게 많고 깨우쳐지는 게 많아서 너무 재미있게 공부했습니다.
요즘에 법당에서 찍은 사진을 보면 어떨 때는 깜짝 놀랍니다. 제가 보기에도 갈수록 표정이 편해지고 그렇게 활짝 웃을 줄은 몰랐습니다. 정토회 와서 조금씩 나아지면서 이렇게 환해진 것입니다.
남편은 정토회를 다니지는 않지만 법륜 스님 법문이나 동영상을 늘 찾아보고 듣고 합니다. 요즘에는 오히려 저더러 “아니 아직도 도가 안트였어? 뭐 그런 거로 그래. 아직도 그래? 도를 더 닦아야겠구먼?” 그런다니까요.

희망리포터 : 아드님과는 그렇게 화해하셨고, 남편과는 어떠셨어요?

남편 때문에 힘들지는 않았습니다. 우리 남편은 처음부터 무조건 아군이었습니다. 힘든 중에도 살 수 있었던 게 남편 덕분인 것 같습니다. 여자들 사는데 그거면 되잖아요?
저는 여자 형제가 없으니 시집살이할 때, 아이 키울 때 힘든 일 있고 하면 어디다 얘기할 데가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친구를 좋아해서 사람들하고 잘 어울리는 성격도 아니니까 정말 얘기할 데가 없더라고요. 그럴 때는 남편이 제일 편하잖아요. “그냥 어떻게 해달라는 게 아니라 들어달라는 거야. 내 속이 이렇다고 들어달라고 그러는 거니까 그냥 듣기만 해.” 서두를 이렇게 시작하고 말을 합니다. 그게 뭘 해달라고 하는 게 아니잖아요. 여자들이 내 편 되어달라고 그러는 건데 그냥 들어주면 끝나는 거거든요.

희망리포터 : 참 현명하시네요. 내가 지금 이러니 들어만 달라고 얘기하기가 쉽지는 않은 일 같습니다. 파주법당 불사도 제가 느끼기에 참 편안하게 진행된 것 같습니다. 담당이 조급하거나 그러면, 법당 도반들도 뭔가 해야 한다는 부담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담당이신 이인숙 님이 늘 편안해 보이니까 저도 뭔가 잘 되고 있나 보다 이렇게 편안하게 생각하게 된 것 같습니다.

절에서는 그런 말을 해요. 절 일은 절로 절로 된다고. 저는 그런 믿음이 있습니다. 그래서 조급하거나 ‘어떻게 하지? 뭘 좀 더해야 하는데’ 이런 마음은 없습니다. 할 수 있으면 좋지만 못한다고 조급한 마음은 없습니다. 모연에 대해서도 ‘안 되면 어떻게 하지?’ 이런 마음을 가져본 적이 없습니다. 그냥 이미 시작하면서 ‘될 거야!’ 이런 마음인 거예요. 상황이 그렇잖아요? 시간이 걸릴 뿐이지 되게 되어 있는 거니까요.(웃음)

희망리포터 : 마무리 말씀 부탁드릴게요.

지금은 그냥 좋습니다. 편안하고 좋고 그런데 지금까지는 불교대학 담당을 한다거나 이것저것 하는 게 괜찮았는데 요즘 들어서는 몸이 좀 지친다는 생각이 듭니다. 집안일과 같이해야 하니까 이제 좀 부대낀다는 생각이 듭니다. 젊었을 때는 몰랐는데 가끔 한 번씩 아프면 할 수 있을 때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전처럼 ‘며칠 있으면 낫겠지!’ 이게 아니라 ‘이제 많이 써서 그동안 살아온 대가를 치르고 있구나. 내가 살아온 과보구나’ 이런 마음이 들거든요. 그래서 아프면 아픈 데로 받아들이고 육신도 갈무리를 잘해서 잘 써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삶의 중심을 수행에 놓고 분발하는 마음을 더 내야 할 것 같습니다.

파주법당 개원식에 초대합니다. 놀러오세요.
▲ 파주법당 개원식에 초대합니다. 놀러오세요.

글_박상미(일산정토회 파주법당)
편집_고영훈(인천경기서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