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동법당에는 도반들이 잘 아는 유명한 가족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혼자 시작했지만, 아내와 장모님, 그리고 처남에게 차례로 전법을 했고 이제는 아이들과 함께 수행에 참여하고 있는 김종환님 가족입니다. 가족들이 함께 소임을 맡아 꾸준히 수행을 이어갈 수 있는 원동력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요? 붓다 담마의 행복을 경험한 김종환 님의 수행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9-7차 천일결사 입재사진 (왼쪽부터 김종환님, 유영아님, 유정수님)
▲ 9-7차 천일결사 입재사진 (왼쪽부터 김종환님, 유영아님, 유정수님)

회사 상사와의 갈등으로 시작된 정토회 인연

어렸을 때부터 '나는 누구인가'가 궁금했습니다. 정토회를 오기 전 일기도 오랜 시간 써왔고, 사이버 대학의 심리학과에 진학하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궁금증이 해소되지 않아서 한 학기 만에 그만두었습니다. 스스로 변하려고 계속 무언가를 해왔고, 그 과정에서 법륜 스님의 책 《인생수업》을 만났습니다. ‘삶을 바라보는 관점이 단순, 명쾌하고 이렇게 쉬울 수 있을까?’ 감탄하였습니다. 그러나 책을 읽었다고 현실에서의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2015년도, 직장에서 상사와의 갈등이 심했습니다. 저에게 주어진 부당한 일을 대놓고 못하겠다고 했습니다. 상사가 나를 억압한다는 생각에 나도 상대에게 숙이지 않아 서로 많이 부딪혔고 감정의 골도 깊어졌습니다. 직장을 그만두면 해결될 일이지만 그러지 못해 괴로웠고, 우울하여 정신과 진료를 받기도 했습니다. 결국 회사는 그만두지 않고 부서 이동을 했습니다.

마침 제가 사는 지역에 법당이 생겼다는 소식을 듣고 정토회를 찾았습니다. 정토회를 다니는 제 얼굴이 편안해 보였는지 시간이 한참 지난 후 예전에 갈등이 있었던 상사가 어느 날 저에게 와서 법륜스님은 참 좋으신 분 같다며 스님의 책을 추천해달라 했습니다. 저는 그 상사에게 스님의 책 《인생수업》을 선물로 전했습니다.

해보라는 것은 다 해본다는 마음가짐으로

정토회와서 저에게 ‘해보라는 것’은 다 해보았습니다. 경전반 담당을 처음 맡았는데, 경전반 담당 중에 불교대학 담당도 맡아달라고 해서 그것도 맡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세 차례 담당 소임은 나를 더 잘 들여다 볼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예전에는 학생들이 안 나오면 마음이 불편했지만 지금은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합니다. 학생들과 나누기를 하면서 사람에 대한 이해심도 많이 생겼습니다.

저는 평소에도 활동적이어서 책을 읽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골프 치는 것도 좋아합니다. 그러나 법회를 나오는 것이 마음도 편하고, 아이들에게도 도움이 되어서 저희는 부부가 함께 일요 법회를 나가고 있습니다. 주변에서는 같이 소임을 맡으면 부담스럽지 않으냐고 물으시지만 저는 괜찮습니다.

저는 스스로에게 무엇이 도움이 되는지를 압니다. 그래서 <깨달음의 장> 바라지를 열 번, <나눔의 장>, 명상수련 다섯 번 다녀왔습니다. 아무튼 해보라고 하는 것은 다 하는 유형입니다. 경험을 하면서 좋은 것을 느끼면 적극적으로 합니다.

정토회를 처음 왔을 때는 분별을 많이 했습니다. 사람을 대우를 안 해준다고 느껴 불편하기도 하였습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경제적 어려움도 없었고, 대우받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습니다. 천일결사 입재식에 처음 갔을 때 화장실 앞에서 밥을 먹으라고 해서 당황하였던 기억이 있습니다. 하지만 관점이 자연스럽게 점점 수행자의 입장으로 옮겨갔습니다..

지난 3년 8개월 전부터 수행을 매일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매일의 수행은 제 마음이 흐트러지는 것을 막아주고 잃어버린 중심도 잡게 해주는 아주 좋은 방법입니다. 업식(습)은 좋고 나쁨이 없다는데 하루도 안 빼고 하는 것에 고집이 있습니다.

부처님 오신날 (제일 뒷줄 왼쪽에서 두번째 둘째 아들, 김종환님, 첫째아들, 제일 오른쪽 유정수님, 그 앞에 장모님과 장인어른)
▲ 부처님 오신날 (제일 뒷줄 왼쪽에서 두번째 둘째 아들, 김종환님, 첫째아들, 제일 오른쪽 유정수님, 그 앞에 장모님과 장인어른)

가족과 함께하는 수행

저의 권유로 아내와 장모님, 처남이 정토회에 오게 됐습니다. 좋은 것이 있으면 아내에게 누워서도 이야기하고, 아침에 일어나서도 이야기하고, 다음 날도 이야기하고 그 다음날도 이야기 합니다. 이야기를 들어 준 아내에게 감사합니다.

처남은 저의 권유로 2019년 가을불교대학 담당을 맡게 되었습니다. 다른 사람과 대화를 할 때, 엉뚱한 데로 가기도 하고, 상대의 마음을 보지 못해 대화에 미숙한 부분이 많았는데 불교대학 담당을 하면서 그 부분이 많이 좋아졌습니다. “어디서 이만큼의 트레이닝을 하며 배울 수 있을까?” 라며 처남을 설득했습니다.

나에게 도움이 되고, 수행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면 불교대학 담당 소임을 하는 것은 어려운 것만은 아닙니다. 친가 식구들에게도 정토지를 보내는 등 전법을 했지만 잘 안되었습니다. 제가 전법한 사람 중에 안 된 사람이 훨씬 많습니다. 그래도 그냥 제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할 뿐입니다.

일정이 없으면 주말 양일 법당에 나와 소임과 수행을 하지만 주말에 일정이 있으면 빠지기도 합니다. 중1, 중3 아이들도 한 달에 한 번씩 법당에 나옵니다. 스님의 법문을 듣고 자라는 것은 그렇지 않은 것과 차이가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예전에는 절도 시켰었어요.(웃음)

JTS거리 모금에도 분기에 한 번 아이들을 참여시킵니다. 한 달에 한 시간 정도는 개인의 이기성을 탈피하여 타인을 위한 활동을 하면 좋은 것 같습니다. 인간은 오롯이 자신의 이기심으로 살아가고, 평생 그렇게 살아갈 수도 있지만 조금이라도 남을 위한 활동을 함으로써 느끼는 것이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저도 제가 이런 활동을 하게 될 줄 예전에는 몰랐습니다.

행복강연 홍보활동중 (유영아님, 김종환님)
▲ 행복강연 홍보활동중 (유영아님, 김종환님)

사이좋은 부부로 사는 법

“반대되는 성격의 남녀가 만난다고 하잖아요. 부족한 남녀가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사랑으로 채우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거죠.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삿대질하며 싸우면 불행해지겠죠. 부족한 남녀가 수행으로 자신을 극복하고 상대를 보완해주며 살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것 같아요.”

저희 부부는 잘 안 싸웁니다. 싸워도 제가 먼저 사과합니다. 제가 천 배를 하고 나면 안 풀리는 것이 없으니까요.(웃음) 가끔 괴롭다는 도반님이 계시면 ‘천 배 안 나오시는 것 보니 안 괴로우신 것 같은데’ 하고 농담을 합니다.

수행이란 변하지 않는 나를 지켜보는 것

정토회를 나오면서 내 수준, 이 세상, 인간의 본질에 대해 알았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누구인지가 궁금하고 괴로웠습니다. 지금도 흔들릴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내 존재의 본질에 대해 알게 되었고 마음이 조금 편해졌습니다. 여전히 내 모습을 알아차리면 괴롭기도 합니다. 내 꼬락서니, 내 수준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낮을 때, 내 욕망이나 움직임이 예전보다 더 확연하게 보이기 때문에 그것에서 오는 불편함은 있습니다. 그런데 아주 불편한 단계는 조금 지나간 것 같습니다.

인간은 원래 본질 자체가 산속의 다람쥐인데, 거룩하지 않다는 것 자체를 인정하는 것, 나도 상대도 별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수행인 것 같습니다. 제가 문경에 갔을 때, 30년 수행하신 법사님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변하는 나를 보는 것이 아니라 변하지 않는 나, 거룩하지 않는 나를 보는 게 수행이다. 나는 30년을 했는데도 똑같다.’라고 하신 말씀이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그래서 수행의 관점을 잡는 게 중요한 것 같습니다. 제가 작년에 휴직을 일 년간 하였는데, 그때 문경에 왔다 갔다 하면서 수행 관점이 많이 잡혔습니다. 궁금한 건 바로 물어볼 수 있고 마음도 더 잘 보이고요. ‘인생에서 더 큰 괴로움, 어려움이 오면 그때 문경으로 가면 되지’ 하고 생각합니다. 일종의 도피입니다. 마음이 너무 힘들 때는 자기를, 세상을 위해서 잠시 도피하여 자기를 보고, 위로하고, 사랑해주는 과정을 통해서 조금 나아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보다 나은 내일의 나를 위하여

지금의 저도 좋지만, 조금 더 괜찮은 인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목표는 해탈과 열반입니다. 모든 것에서 자유로운 부처님의 상태까지 가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 목표로 가지만 ‘내 수준에서는 죽을 때까지 해보니 여기까지 도달했다. 그런데 내가 쉬지 않고 했다.’ 는 것에 의미를 두고 저는 죽을 때까지 수행할 것 같습니다. 어떤 목표에 도달한다는 그런 것보다는, 좀 더 나아지는 나를 위해 살아가는 게 의미 있다고 생각합니다.

글_ 문우선 희망리포터(강동정토회 강동법당)
편집_권지연(서울제주지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