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무더위를 떠나보낸 가을바람 한 자락이 기도 방석에 앉은 수행자의 땀을 씻어줍니다. 가을을 재촉하는 시원한 비가 내리던 날 오늘의 주인공을 만났습니다. 출근하기 전엔 새벽기도를 하고 퇴근한 후에는 곧장 법당으로 달려와 이것저것 법당일 챙기느라 분주한 동래정토회 저녁부 부총무 이승주 님입니다. 큰 키에 함박웃음을 머금은 이승주 님은 스님을 처음 뵙게 된 날도 오늘처럼 비가 내렸다며 행복했던 지난 수행담을 들려주었습니다.

환하게 웃고 있는 오늘의 주인공 이승주 님
▲ 환하게 웃고 있는 오늘의 주인공 이승주 님

나랄 것이 없음을

2012년 부산 KBS홀에서 열린 스님의 즉문즉설을 처음 들었습니다. 무엇인지 분명하진 않았지만, 스님의 법문을 듣고 마음속에 깊은 울림이 있었습니다. 그 시절 저는 행복하지 않은 결혼생활로 스스로 많이 위축되어 있었습니다. 마음은 한없이 힘들었지만 출근하면 즐거운 척 씩씩하게 근무했습니다. 하지만 주말이 되면 나는 왜 이렇게 살아야 할까 하며 스스로를 가두고 외로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행복한 척 나를 철저히 감추고 살았지만, 동료들은 제게 늘 긴장하고 있고 날카롭다고 했습니다. 저는 감추려 애써도 감춰지지 않는 괴로움을 안고 살았습니다.

그러다 2013년 가을, 정토불교대학에 입학했습니다. 하지만 나누기 시간마다 나를 꽁꽁 감추고 진정한 내 모습을 내어놓기가 싫었습니다. 진심 없는 나누기를 하며 그렇게 불교대학을 다니다가 〈깨달음의 장〉에 갔습니다. 〈깨달음의 장〉에서 비로소 나라고 내세울 것이 없고 나를 내어놓지 않으면 남들이 나를 이해할 수도 없음을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돌아와서는 그동안 싫어하고 미워했던 직장 상사와 남편에게도 나의 지난 어리석음을 뉘우치는 문자를 보냈습니다. 그러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고 지난 아픔으로부터 조금이나마 벗어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 후 수행만이 나를 버리는 길이라 여기고 하루도 빠짐없이 기도를 했습니다.

‘예비입재자 만남의 날’을 진행하고 나서(앞줄 왼쪽 두 번째가 이승주 님)
▲ ‘예비입재자 만남의 날’을 진행하고 나서(앞줄 왼쪽 두 번째가 이승주 님)

‘환경학교’를 마치고(오른쪽에서 5번째가 이승주 님)
▲ ‘환경학교’를 마치고(오른쪽에서 5번째가 이승주 님)

이해받는 자가 아닌 이해하는 자가 주인입니다

경전반을 졸업하고 불교대학 모둠장과 경전반 부담당, 불교대학 팀장을 맡아 봉사를 했습니다. 봉사활동을 하며 저의 업식이 더욱 뚜렷이 보였습니다. 나에게 지시하는 사람이 싫고 내가 일하는 방식과 다른 사람을 이해하기 힘들었습니다. 그리고 늘 잘한다고 칭찬받고 싶어 하는 저를 보았습니다. 잘하고 있는데도 더 잘하려고 하는 그 헛헛함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았습니다.

어린 시절 어머니는 맏이였던 제게 유독 엄하셨습니다. 늘 지적하고 비난하는 말속에서 저의 자존감은 점점 낮아졌습니다. 마음속에 그런 어머니를 미워하는 마음이 가득했습니다. 그런데 기도하던 어느 날 저도 똑같은 말투로 딸을 비난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후로 어머니께 감사 기도를 하면서 딸이 더욱 잘되길 바라는 마음이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고 마음속 깊이 자리 잡았던 어머니에 대한 원망도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칭찬받고 이해받아야 하는 삶이 아닌 이해하고 사랑하는 주인 된 삶을 살고 싶어졌습니다.

‘JTS 거리모금’을 마치고 이승주 님(앞줄 왼쪽 두 번째)
▲ ‘JTS 거리모금’을 마치고 이승주 님(앞줄 왼쪽 두 번째)

‘불교대학 거리홍보’를 하면서 이승주 님(제일 오른쪽)
▲ ‘불교대학 거리홍보’를 하면서 이승주 님(제일 오른쪽)

한 사람 한 사람이 꽃보다 소중하고 아름답다

불교대학 팀장 일이 익숙하기 시작할 무렵 저녁부 부총무 소임을 맡게 되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소임을 맡았고 할 일은 많은데 저녁부 특성상 봉사자들과 함께 소통할 시간은 늘 부족했습니다. 봉사보다는 일이 되고 자발적으로 하기를 바라는 저의 생각과 도반들의 생각이 달라 부딪치기도 했습니다. 여러 봉사자와 조율하고 같이 봉사할 수 있도록 이끌어가는 것이 힘들었고 매사 부정적인 사람에게는 마음으로 다가가기도 힘들고 일을 할 때 힘이 빠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바쁜 중에도 행사마다 힘을 보태는 도반들을 보며 그들의 마음을 읽어주고 받아주지 못하는 내 작은 마음 그릇을 알고 나니 도반들과 함께해나가는 봉사가 가벼워지고 감사하고 행복했습니다.

광화문평화 행사 때 걱정과는 다르게 마음을 모아준 도반들이 고마워 눈물도 났습니다. 그때, 함께하는 한 사람 한 사람이 귀하고 사람이 꽃보다 소중한 존재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저녁부 봉사자들이 마음을 내서 일요법회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시작은 참석자도 적고 힘들었지만, 법회 담당자분들의 노력으로 참석인원이 늘고 활성화되고 있는 것 같아 가장 보람되고 뿌듯합니다. 그리고 동래정토회에서 연제 불사를 진행하고 있어서 도반들과 함께 매주 금요일 저녁마다 9개월째 3백 배 정진을 하고 있습니다. 힘들 때도 있지만 도반들과 함께 수행 정진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이고 전법의 공간이 생겨 많은 인연이 함께 행복해지길 간절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통일의병 기수단 소임을 마치고(앞줄 오른쪽 두 번째가 이승주 님)
▲ 통일의병 기수단 소임을 마치고(앞줄 오른쪽 두 번째가 이승주 님)

‘선유동 연수원 불사봉사’를 하면서(뒷줄 제일 오른쪽이 이승주 님)
▲ ‘선유동 연수원 불사봉사’를 하면서(뒷줄 제일 오른쪽이 이승주 님)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봉사자가 되어 사회에 잘 쓰이겠습니다

부총무 소임을 맡고 9차년도 회향까지 3개월 남짓 남았습니다. 돌이켜보면 더 많은 봉사자들이 봉사할 수 있도록 자리를 열어주지 못한 것이 후회가 됩니다. 모두에게 작은 소임이라도 나누고 진정한 모자이크 붓다가 되도록 연구하고 노력하겠습니다. 그리고 '주 1일 요일봉사제'도 더욱 관심을 갖고 능동적이고 주체적으로 실행해보고 싶습니다. 직장과 법당을 오가며 바쁘게 살던 시간을 돌이켜보면 가끔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기도 했지만, 지금껏 산 삶보다 더욱 행복하고 가벼워진 나를 발견하곤 합니다. 제게 남은 시간들은 정토회가 나아가는 정의로운 길에 동참해서 사회적으로 보탬이 되는 삶을 살도록 노력하고 싶습니다.

한반도 평화 피켓을 만들고 기념촬영(앞줄 왼쪽 두 번째가 이승주 님)
▲ 한반도 평화 피켓을 만들고 기념촬영(앞줄 왼쪽 두 번째가 이승주 님)


비 온 후 맑아지고 더욱 청아해진 하늘처럼 아픔을 딛고 내 문제에서 벗어나 사회에 보탬이 되는 삶을 살아가는 아름다운 수행자를 만나서 흐뭇했습니다. 과거보다는 미래를, 미래보다는 현재 주어진 소임을 위해 좌충우돌하며 단단히 버티고 있는 이승주 님과 같은 봉사자들의 수고로움. 그래서 오늘도 우리는 편히 수행자로 살아갈 수 있음에 감사하고 행복했습니다.

글_최인정 희망리포터(동래정토회 동래법당)
편집_방현주(부산울산지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