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민족의 혼이 담겨있는 백두산, 고구려와 발해를 살던 선조들의 숨결이 살아있는 만주벌판, 독립운동의 기운이 서려있는 동북3성과 러시아 연해주까지. 동북아 역사대장정을 다녀온 행자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이 역사탐방을 추천합니다. 선조들의 기상을 느끼고, 나를 깨우치고, 삶의 지혜를 배운다는 그 곳.
오늘은 동북아 역사탐방을 다녀온 백경 님의 탐방기를 함께 읽어 봅니다.

동북아 역사 대장정을 준비하는 마음은 설렘과 기대, 그리고 걱정이었다. 잃어버린 우리 조상들의 옛 땅을 밟아보게 된다는 설렘과 낯선 곳에서 나를 발견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 빡빡한 일정을 건강하게 잘 해내야 하는 것에 대한 걱정이었다. 그리고 동북아 역사 대장정을 마친 나는 몸과 마음이 단단하게 성장하고 돌아왔다.

블라디보스톡으로

잠도 제대로 못 자고 한밤중에 공항버스를 타고 인천공항에 도착하였다. 청년들이 눈에 띄고, 정토회 통일 의병들이 하나둘씩 모이기 시작하였다. 함께 할 조원들을 만나 서로 챙겨주고 사진도 함께 웃으며 찍으니 벌써 설레였다. 짐을 부치고 비행기를 타고 블라디보스톡 공항에 도착하였다. 코가 크고 인형 같은 러시아인들이 보였다. 역사대장정팀 안내를 받아 버스에 올랐다.

블라디보스톡공항
▲ 블라디보스톡공항

공기가 선선하고 우리나라 가을 날씨처럼 하늘도 파랗고 예뻤다. 버스를 타고 처음 방문한 곳은 혁명광장이었다. 스님은 블라디보스톡과 연해주, 러시아혁명에 관해 설명해주시는데, 우리나라와 달리 광장에서 음악을 틀어놓아 시끌벅적하고 쿵쿵 울려 스님 강의를 잘 들을 수 없었다. 30분 자유시간이 주어져 지하차도에 화장실을 물어물어 다녀오고, 주변의 물건판매장도 구경했다.

독수리전망대, 블라디보스톡 부동항(왼쪽이 백경 님)
▲ 독수리전망대, 블라디보스톡 부동항(왼쪽이 백경 님)

다음은 독수리전망대에 올랐다. 바람이 너무 시원하고 좋았다. 그곳에서 만난 풀과 꽃들은 우리나라 꽃과 똑같아서 낯설지가 않았다. 타향에서 보니 아주 반가워 웃음이 절로 나왔다. 신한촌을 방문하여 태극기를 펼쳐놓고 애국가를 부를 때는 타향에서 고생하며 고통당하고 억눌림 당했을 고려인들이 생각나 울컥하였다. 저녁이 어스름해져서 도착한 라즈돌노예역은 고려인들을 강제 이주시킨 첫 기차역이라고 한다. 연해주에 있던 고려인 17만 명을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시킨 곳이다. 이주하는 중에 수없이 많은 고려인이 죽고, 심지어 잠깐 기차가 쉴 동안 내려와 볼일을 보다가 깔려 죽은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또, 난로도 없이 그 추위와 고통을 견뎌야 했다고 한다. 그 당시 고려인들이 느꼈을 고통이 그대로 전해져 오는 것 같아 가슴이 먹먹하였다.

브라디보스톡 혁명광장( 둘쨋줄 왼쪽 세 번째 백경 님)
▲ 브라디보스톡 혁명광장( 둘쨋줄 왼쪽 세 번째 백경 님)

독립운동의 뿌리와 발해의 터

우스리스크에 도착해 저녁을 먹고 스님 강의를 들었다. 처음 이곳에 이주한 선조들은 먹고 살기 위해 건너온 가난한 사람들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을사조약이 맺어질 때부터 독립 운동가들이 이곳을 독립운동의 기지로 처음삼고, 가난한 이주민들에게 교육을 시작으로 독립운동을 했다고 한다. 이때 국내에서는 통일 의병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이범윤, 최재형, 안중근 등 독립을 위해 애쓰셨던 이분들을 잊어서는 안 되겠다는 다짐을 하며, 마음속에는 눈물이 쏟아졌다. 다음날 새벽에 일어나 발해의 유적을 보러 이동하였다. 200년이 넘는 동안 발해문화가 꽃을 피우며 융성했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은 흔적조차 없이 발해문화가 사라져 안타까움이 컸지만, 러시아 측 학술 연구진과 한국 연구진이 함께 공동으로 문화유적을 발굴 조사하고 연구하고 있다고 해서 반가움도 컸다.

크라스키노 염주성에 가기 위해 우비를 입고, 버려도 괜찮은 바지를 입고, 젖어도 괜찮을 신발을 신고, 우산을 챙기고... 중무장 하고 그곳에 갔던 게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고 추억으로 남는다. 그곳을 연구하는 러시아 교수가 설명을 하고 고려인 청년이 통역을 하는데 그 청년이 든든했다. 청년의 부모 세대들이 이곳에서 겪었을 전쟁과 낯설은 이국땅에서 견뎌냈을 서러움 등이 몰려와 가슴이 시렸다.

일송정( 셋째 줄 노란우비 백경 님)
▲ 일송정( 셋째 줄 노란우비 백경 님)

일송정 푸른솔

단지동맹비를 끝으로 러시아 우수리스크에서 중국 국경으로 이동하였다. 많은 시간 동안 기다리면서 국경 너머를 구경했다. 참 신기하게도 그 주변에도 모두 우리나라에서와 비슷한 나무와 식물들이 있어서 과거에 우리선조들이 이곳을 누비는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지면서 행복했다. 중국국경을 넘고 혼춘에 도착하여 봉오동 전투 터를 보고, 연길로 이동하여 저녁을 먹고 스님 강의를 들었다. 다음날 연길 새벽시장에 가서 아침 도시락을 사며 시장 구경을 하였다. 김밥도 있고, 떡, 부꾸미, 순두부 등 우리 음식과 너무 많이 닮아 있어서 또 한 번 짠한 마음이 들었다. 이국에서 사는 우리 동족들이 잘살면 좋을텐데 그들의 행색이나 주변 환경이 그다지 녹록지 않은 모습에 가슴이 아팠다.

청산리 전투 터와 일송정으로 가서 그곳이 왜 용정이라 이름 불리는지 설명을 들었다. 용을 닮은 우물터가 있고, 소나무가 조선의 단단한 기운으로 자리 잡고 있어서 일본인들이 그 소나무를 없애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했다 한다. 하지만, 중국에서 그곳에 멋진 공원을 만들고 소나무는 뜻있는 한국 사람이 잘 관리하고 있다고 한다. ‘일송정’ 소나무 앞에서 ‘일송정’ 노래를 멋지게 부르고 단체 기념사진을 찍었다.

 백두산 아래 폭포( 오른쪽 두 번째 백경 님)
▲ 백두산 아래 폭포( 오른쪽 두 번째 백경 님)

백두산에 올라

원래 백두산 가기로 한 날에 비 예보가 있어서 일정을 바꾸어 백두산으로 갔다. 날씨가 너무 좋아 하늘은 푸르고 선선한 가을 기운을 만끽할 수 있었고, 백두산 천지는 당연히 볼 수 있었다. 청년들과 함께 오면 백두산 천지는 꼭 볼 수 있다는 풍문을 들으면서 천지를 감상하고, 벅찬 감동을 느끼며 기념사진을 찍었다. 중국은 땅이 넓어서 가는 곳마다 장대하여 부러웠고, 옛날에는 이곳이 우리 땅 이었는데 하는 욕심이 생겨 마음을 쓸어내려야 했다. TV 역사극 ‘대조영’을 재미있게 보았는데, TV에서 보았던 발해의 첫 시작점인 동모산을 직접 보았다. ‘현장체험이 이래서 좋구나, 저절로 공부가 되네’ 하면서 좋아했다. 흥륭사의 거대한 부처님상을 보면서 그 시절 불교가 매우 융성했음을 알게 되었다.

백두산 천지( 첫째 줄 왼쪽 첫 번째 백경 님)
▲ 백두산 천지( 첫째 줄 왼쪽 첫 번째 백경 님)

동북아 역사대장정을 마치고 ##

이번 역사대장정이 나에게는 큰 행운이었다. 선사시대의 동굴을 보고 제를 지내면서 그 시대에 와 있는 것만 같은 착각이 들었고, 환웅과 환인 시대를 경험하고 고구려와 발해유적지를 직접 내발로 걸어보았다. 또한 북한을 아주 가까이서 볼 수 있었던 이 모든 것이 꿈만 같다. 여행을 하면서 4일째부터 다리가 땡땡 붓기 시작하고, 허리도 재채기 하면 너무 아파서 맘껏 하지도 못하고, 걷기도 힘들었다. 건강의 소중함을 다시 절실하게 느끼면서 평소 나의 잘못된 건강습관들을 반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청년들과 정토행자들이 함께 해서 더욱 즐겁고 행복한 여행이 되었다. 대장정이 매끄럽게 잘 진행되도록 애써주신 모든 스텝분들과 아버지처럼 따뜻하게 안내해주시고 전문가 수준의 강의를 해주셔서 역사 공부를 많이 할 수 있게 해주신 스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한국에 돌아와서 다행히 다리와 허리는 바로 정상으로 돌아왔고, 드넓은 만주벌판을 백마 타고 시원하게 달려보는 상상도 하게 되었다. 역사 공부와 인생 공부가 함께 되는 동북아역사대장정을 남편과 아들들에게도 강력하게 추천하였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이어지는 강행군에 장시간 이동 등이 고생스러웠지만, 그 모든 시간들은 나를 성장 시켜 준 계기가 되었기에, 그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경험이다. 살면서 힘들 때마다 이번 역사대장정을 생각하면 더 힘든 것이 없을 것 같고, 힘이 불끈 불끈 솟을 것 같다.

글_백경 희망리포터 (전북정토회 정읍 법당)
편집_임도영 (광주전라지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