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장법당에는 조용히 언제나 그 자리를 지키는 한 도반이 있습니다. 햇살 따뜻한 가을날 오늘의 주인공 정재남 님을 만났습니다. 아픔을 이겨내고 불법을 따라 꾸준히 정진하는 정재남 님의 이야기를 함께 나누어 보겠습니다.

법당에서 환한 미소의 정재남 님
▲ 법당에서 환한 미소의 정재남 님

엄마가 된다는 것

경남 고성에서 태어난 저는 먼 길을 걸어서 학교에 가야 했기에 새벽에 일어나는 게 습관이 되었습니다. 시골 마을에서는 드물게 대학을 졸업하고 초등 교사가 되어 모두의 사랑과 인정을 받으며 어려움 없이 살았습니다. 결혼해서는 8남매의 맏이로 시댁 가족과 함께 살면서 직장을 다니느라 늘 바쁘게 지냈습니다. 학교에서는 학생들과 부대끼고, 집에서는 집안일로 늘 지쳐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아이 둘을 낳고 키우면서 준비 없이 엄마가 된다는 것이 참으로 무거운 책임임을 알았습니다. 아이에게 무엇을 어떻게 해주어야 할지 몰라 허둥대기만 했고, 누군가 가르쳐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간절한 마음이었습니다.

아들을 떠나보내고 불법을 만나다

오랜 교직 생활로 학교에서는 물론 집에서도 가르치려고 하는 업식으로 아이들에게 따뜻한 엄마가 되지는 못했습니다. 일하는 엄마로서 시간적으로 아이들과 함께하지 못한 아쉬움도 많은데 정서적으로도 편히 기댈 수 있는 의지처가 되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런 와중에 남편이 있던 서울에 재수하러 갔던 큰아이이 불의의 사고로 먼저 세상을 떠나는 청천벽력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아이를 잃고 나니 세상이 원망스러웠습니다. 특히 같이 있으면서 아이의 상태를 살피지 못한 남편에 대한 원망과 아이를 제대로 돌보지 못했던 스스로에 대한 죄책감으로 인해 한동안 우울한 생활을 했습니다.

그렇게 정신을 내려놓고 살고 있을 때 옆 반 동료 선생님이 4박 5일 동안 맛있는 밥도 주고 공기 좋은 곳에서 푹 쉴 수 있는 곳이 있다고 말해주었습니다. 무작정 가보니 바로 〈깨달음의 장〉이라는 곳이었습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간 저의 기대와는 달리 100명 중 1명 정도라는 ‘깨닫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 귀한 시간을 놓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내가 옳다고 믿고 있는 것이 옳은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막연한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생각이 자연스럽게 정토 불교대학으로 이어져서 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수행법회를 마치고 도반들과 함께 정재남 님(왼쪽에서 두 번째)
▲ 수행법회를 마치고 도반들과 함께 정재남 님(왼쪽에서 두 번째)

반야심경 테이프를 들으면서 이제까지 알고 있던 불교에 대한 생각이 확연히 달라졌습니다. 스님이 불법을 설하실 때, 마치 과학자가 과학의 법칙을 설명하듯 이치에 딱 맞게 설명하는 법문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신기해하며 듣고는 했습니다. 낮에는 기간제 교사로, 저녁에는 법당으로 오가면서 시키지도 않은 환경 상품을 만들어서 팔기도 하였습니다. 열심히 활동하는 재미에 수행이 뭔지도 모르면서 정토회에서 하는 일이 좋아서 동참했습니다. 그러던 중 스스로가 가면을 쓰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두어 해를 쉬기도 하였습니다. 그 후 다시 불교대학 공부를 하고 담당도 하면서 활동을 하였습니다.

불교대학 홍보 중인 정재남 님(제일 앞)
▲ 불교대학 홍보 중인 정재남 님(제일 앞)

‘아들은 남이다’라는 말에 내려놓다

해운대 법당에서 스님이 직접 강의하시는 금강경 강의를 들었습니다. 그 속에 한 대화 장면이 나오는데 ‘아들이 남이다’라고 기도했다는 말을 듣고 불현듯 ‘내 아들도 내 옆에 없으면 내 아들이 아니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괴로웠던 것은 죽은 아들을 놓지 않고 있어서였습니다. 그때부터 마음이 편해지면서 오히려 아들을 위해 기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둘째 아들이 대학 갈 무렵에는 꼭 좋은 대학이 아니더라도 능력에 맞는 대학을 선택하고 자신의 길을 선택하도록 지켜볼 수 있었습니다. 간섭하고 바랄 때는 물러서던 아들이 멀찍이서 지켜보면서 마음을 내려놓으니 스스로 알아서 공부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경제적, 정신적 독립을 시키고 아들의 삶을 응원하기로 하니 시간이 나서 내 인생을 위해 살 수 있었습니다. 스님 법문의 이치가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집착을 놓으니 모두가 편하고 좋았습니다.

남편을 이해하니 내가 편하다

자주 술을 마시는 남편이 싫고, 취해서 휘청거리는 모습이 이해가 안 되어서 스님께 기도문을 받고 매일 아침 108배를 하면서 ‘남편에게는 술이 보약입니다’라고 기도를 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소주를 마시던 남편이 막걸리를 마시고, 그래도 시비하지 않고 오히려 막걸리를 사다 주며 마주 앉아 한잔을 같이 마시기도 하면서 기도를 하였습니다. 1년여를 그렇게 하였을까, 남편이 술을 한 잔도 마시지 않게 되었습니다. 술 먹는 남편을 시비하니 서로 괴로웠는데 이해하고 기도하면서 저절로 해결되었습니다. 불법의 이치를 알게 되니 어려운 문제가 가벼워졌습니다.

해운대법당 도반들과 함께 정재남 님(앞줄 빨간 상의)
▲ 해운대법당 도반들과 함께 정재남 님(앞줄 빨간 상의)

‘아상’을 내려놓는 수행은 계속된다

수행하면서 제일 어려웠던 것은 ‘아상’, 바로 내가 잘났다는 마음, 교만한 마음을 내려놓는 것이었습니다. 어릴 적 모두가 저에게 잘한다고, 예쁘다고 한 칭찬에 오랜 시간 저도 모르게 익숙해져서 불쑥 ‘내’가 튀어나옵니다. 그럴 때마다 돌이키지만 아직도 잘 되지는 않습니다. 가르치려는 업식과 ‘나’라는 교만을 내려놓는 게 가장 큰 수행거리입니다.

잘하려고 하는 것도 욕심

정토회 일을 하는 중 몸이 아프면서 쉬어야 하지만 봉사도 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진 적이 있었습니다. 몸이 아파도 할 수 있는 일을 하자고 마음먹었는데 그것을 말리는 도반의 얘기가 걸림돌이 되어서 마음이 아팠습니다. 젊은 도반들처럼 적극적으로 하지는 못해도 디딤돌이라도 되고 싶었는데 욕심이었나 봅니다. 법문을 다시 듣고 수행을 하면서,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내가 할 일을 하자고 마음먹었습니다. 시간이 지나 다시 대화하면서 나에게 공부를 시켜준 도반이 곧 스승이었음을 알고 감사함을 느꼈습니다. 내 업장이 녹아내리는 순간이었습니다.

염주를 걸어주고 있는 정재남 님(가운데 회색 법복)
▲ 염주를 걸어주고 있는 정재남 님(가운데 회색 법복)

천일결사 행사를 마치고 도반들과 함께 정재남 님(왼쪽에서 세 번째)
▲ 천일결사 행사를 마치고 도반들과 함께 정재남 님(왼쪽에서 세 번째)

몸이 보낸 신호

2018년 우연히 검진 중 유방암이 발견되어 수술을 하였습니다. 치료 중에도 병원에서 하루도 빠지지 않고 감사 기도를 했습니다. 그 일로, 내 앞에 일어난 일은 다 좋은 일이라는 것을 절실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병의 징후를 알게 되고 치료할 수 있었으니 저는 행운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아침에 눈 뜰 수 있으니 ‘또 살았네’ 하면서 감사하게 하루하루를 맞이합니다. 더 감사한 것은 수술 후 남편이 매일 주사도 놓아주고 밥도 챙겨주고 모든 일에 의지가 되어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남편도 나 만나서 참 힘들었겠구나’하고 저절로 고마운 마음이 생깁니다.

부처님 가르침 따라서

‘모두가 부처님입니다’ 제 마음속에 새기고 있는 말씀입니다. 상대에 시비 분별할 때 ‘그분 덕분에 공부하고 이 길을 갈 수 있구나’하고 생각하면 불법은 버릴 게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라는 오만에 모나게 살았던 것을 돌아볼 수 있게 해주어서 이 길을 따라가고 있습니다. 그냥 있어도 누군가의 의지처가 되고 기댈 언덕이 될 수 있다면 더 행복한 일일 것입니다.

서원행자대회를 마치고 문경에서 도반들과 함께 정재남 님(앞줄 오른쪽에서 세 번째)
▲ 서원행자대회를 마치고 문경에서 도반들과 함께 정재남 님(앞줄 오른쪽에서 세 번째)


어떤 일이 닥쳐도 불법 따라서 갈 것임을, 나직하지만 단호하게 힘주어 말하는 정재남 님의 수행담을 들으면서 함께 웃고 울컥이는 시간이었습니다. 후배 도반들이 불교대학 공부를 하는 동안 조용히 와서 따뜻한 공양을 차려놓고, 몸이 편치 않을 때도 거리모금에 시원한 음료를 준비해 와서 응원해주었듯이 정재남 님은 항상 그 자리에서 도반들을 다독이며 환하게 웃으실 것을 믿어봅니다.

글_조영희 희망리포터(해운대정토회 기장법당)
편집_방현주(부산울산지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