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세계 100회 강연 중 91번째 강연이 페루의 리마(Lima)에서 열리는 날입니다.

오늘 강연이 열리는 페루 공화국은 남아메리카 서부에 있으며, 수도는 리마이고, 잉카 문명과 잉카 제국의 발상지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페루는 기원전부터 인디언이 살던 곳으로 잉카 문명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신비의 나라이며, 15세기경 케추아 족이 세운 잉카 제국은 농업과 건축술을 바탕으로 독자적인 문명을 이뤄냈다고 알려져 있으며, 오랜 세월을 지나왔지만 여전히 그 독특한 문화는 페루 곳곳에 스며들어 있습니다. 페루은 면적은 1,285,215㎢ (한반도의 약 6배)로 남반구에 위치, 우리나라와는 계절과 낮과 밤이 정반대(한국보다 14시간 늦음)입니다.


▲ 페루

페루의 인구는 약 3,000만명으로 추산되며, 아메리카 토착민과 유럽인, 아프리카인, 아시아인 등 다양한 인종이 섞여있고, 주로 에스파냐어가 널리 쓰이며, 케추아어나 그 밖에 토착어를 쓰는 사람도 상당수 있습니다. 페루 땅에 인간이 출현한 증거는 기원전 9,000년경에 나타나는데, 페루에서 가장 오래 전에 복잡한 사회를 이루었던 노르테 치코 문명은 기원전 3000년에서 1800년경 사이에 태평양 연안을 따라 번성하였고, 그 뒤를 이어 쿠피스니케, 차빈, 파라카스, 모치카, 나스카, 와리, 치무 문화가 고고학적으로 발견되며, 15세기경 잉카 제국이 강력한 세력으로 떠올라 백여 년간 콜롬부스 이전 아메리카에서 가장 광대한 제국을 건설하였습니다.

페루는 다른 적도 국가와 달리 열대 기후만 있는 것은 아니며, 안데스 산맥과 훔볼트 해류의 영향으로 국내에서도 기후 변화가 다양합니다. 해안 지방은 날씨가 온화하고 강수량이 적고 북쪽 산자락을 제외하면 매우 습한 편입니다. 산지 지방에서는 여름에 비가 잦으며 고도가 올라갈수록 기온과 습도가 떨어져서 안데스 산맥의 봉우리는 만년설이 있습니다. 정글 지방에는 비가 아주 많이 오고 날씨도 무덥지만 남부 끝 지역은 겨울이 춥다고 합니다.


▲ 리마

리마(Lima)는 페루의 수도이자 리마 주의 주도로서 페루 상업의 중심지이며 수많은 역사적 흔적을 껴안은 문화 중심지로서 태평양에 면해 있습니다. 1535년 정복자 프란시스코 피사로에 의해 잉카의 수도 쿠즈코 대신 수도로 건설되었으며 식민지 시대에는 페루 부왕령의 수도였으며, 그 이전부터 원주민 마을이 형성되어 있었기 때문에 현재까지도 그 당시 원주민이 살았던 흙벽돌로 지은 `와카`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식민지 도시였던 리마는 19세기 초 남미 여러 나라가 독립할 때까지 남미 지역의 스페인 영토 전체의 중심도시 역할을 한 곳이었습니다. 현재 인구 약 천만명으로 공화국 최대 도시이자, 남미의 세계적인 도시입니다. 리마에는 한국 교민이 약 천명 정도 거주하고 있다고 합니다.

오전 2시에 기상하여 짐을 꾸려서 간단히 김미선님께서 준비해준 음식과 어제 혜담 스님이 준비해준 죽으로 간단히 아침을 먹고 3시에 숙소에서 과테말라시티 국제공항으로 출발하였습니다. 공항에 도착해서 조재봉, 김미선님께 “강연 준비하느라 수고가 많았다”고 다시 한 번 감사 인사를 드리고 기념촬영을 한 후 다음에 또 볼 것을 얘기하면서 인사를 하고 게이트로 들어왔습니다.


▲ 과테말라시티 국제공항까지 배웅을 해준 조재봉 김미선 부부

출국 수속을 하고 짐을 부치고 게이트에 들어와서 오전 5시에 과테말라시티 국제공항을 출발했습니다. 파나마시티에서 비행기를 갈아타고 12시 40분에 페루 리마 국제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짐을 찾아 입국 수속을 하고 나오니 김용복 요셉 신부님, 최상순 사목회 부회장님이 마중을 나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페루는 과테말라보다 시차가 한시간 앞서서 오늘은 23시간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 페루 리마 국제공항에 마중을 나와주신 최상순 사목회 부회장님(왼쪽)과 김용복 요셉 신부님(오른쪽)

곧이어 이순신 사목회 회장님도 마중을 나오셔서 차 2대에 나눠타고 오늘 강연이 열리는 페루 성안드레아 한인성당에 도착했습니다.


▲ 이순신 사목회 회장님

스님께서 페루 리마에는 전혀 인연이 없었는데 작년 미니에폴리스 강연에 오셨던 김데레사 수녀님이 페루의 성김대건 안드레아 한인성당에 연락하여 리마의 김용복 요셉 신부님을 연결시켜 주셨고, 신부님께 부탁을 드리니 신부님과 사목회에서 흔쾌히 강연을 맡아서 준비를 해주셨습니다.

성당에 도착하여 숙소를 배정받고 강연 장소를 둘러본 후에 바로 점심식사를 하러 ‘아리랑’이라는 한국 식당으로 이동하였습니다.

식당으로 가는 길은 신시가지 쪽에 있는데 차가 많이 밀려서 15분이면 갈 길을 30분이나 걸려서 도착했습니다. 식당에 도착하니 스님의 강연포스터가 현관문에 붙여져 있어 반가웠고 사장님께서도 스님께 반갑게 인사하였습니다.

식당에서 신부님, 사목회장님, 부회장님과 함께 식사를 하면서 페루 지역의 문화 유산과 인류사를 둘러볼 수 있는 박물관이 바로 근처에 있다고 소개를 해주셔서 박동호님의 안내로 박물관을 가보았습니다. 박물관에서는 오래전부터 이곳 페루 땅에서 살고 있었던 사람들의 문화를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 리마 국립 인류 고고학 박물관

이곳 페루 지역에는 기원전 3000년 전부터 인류의 문화가 시작되었던 흔적이 있었습니다. 리마 국립 인류 고고학 박물관은 차빈 문명부터 잉카 문명까지 이루는 출토품을 간직한 곳으로 페루를 대표하는 박물관입니다. 규모와 수집량에 있어서 페루 최대 규모의 박물관으로서 소장품 수만해도 약 10만점에 이른다고 합니다.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건물은 `페루의 보호자`로 불리는 호세 데 산 마르틴의 집이었으나 마르틴이 이곳을 떠난 뒤 박물관으로 개조되어 오늘에 이른다고 합니다.

박물관에는 특히 잉카 제국 이전의 전시품이 많았으며, BC 10세기부터 1세기 이전의 차빈(CHAVIN), 파라카스(PARACAS) 문명, 그리고 AD 1~14세기의 치카(CHICA), CAJAMARCA, 나스카(NAZCA), WARI(와리) 문화 등을 전시하고 있는데, 잉카를 비롯 치무, 나스카, 파차카막 등 잉카 문명 이전의 역사와 문화를 잘 보여주는 미라와 도기들, 직물 등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특히 전시품 중에서 주목할 만한 것이 파라카스(Paracas)에서 출토된 헝겊천이 유명한데 미라를 감아 놓았던 것과 토기 안에 들어있던 것 등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 치밀함과 선명한 염색 등은 몇 백년 동안 묻혀있던 것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헝겊으로 싸놓고 앉아있는 미라를 직접 볼 수 있도록 해놓았습니다. 그러나 일정 관계상 페루지역에서 발생하였던 잉카 문명의 수도였던 쿠즈코와 마추픽추 등에 대해서 돌아보거나 소개할 여유가 없어 조금 아쉬웠습니다.


▲ 박물관을 둘러보고 난 뒤 스님께서는 안내를 해 준 박동호님께 감사의 선물로 사인한 인생수업책을 선물했습니다.


▲ 오후 4시45분이 되어 오늘 숙소인 성당으로 다시 돌아오니 현재 페루에서 선교 활동을 하고 있는 신부님들이 찾아와 스님께 반갑게 인사를 했습니다.

강연 때까지 약 2시간 정도의 시간이 있어서 스님께서는 샤워도 하시고 원고 교정도 보셨습니다.


▲ 오늘 강연장, 성안드레아 한인성당

조금 일찍 강연장으로 나와서 최상순 부회장님을 비롯한 자원봉사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필요한 일들을 서로 역할을 나눠 준비를 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강연을 후원하여 주신 페루 한인 상공인 총연합회의 조영학 회장님도 오셔서 반갑게 인사를 했습니다.

6시55분 사회자인 최상순님의 안내와 함께 강연이 시작되었습니다. 환영 영상에 이어서 오늘 강연을 주관하여 주신 성김대건 한인성당의 김용복 요셉 신부님, 이순신 회장님, 그리고 후원하여 주신 상공인 총연합회 조영학 회장님을 대표하여 김용복 요셉 신부님의 인사 말씀이 있었습니다.


▲ 인사말씀을 해주시는 김용복 요셉 신부님

“사제로서 법륜스님을 뵙게 된 것을 큰 영광으로 생각하고 있으며, 이 기회에 또 못뵙던 얼굴도 보게 되어서 몹시 기쁘게 생각합니다. 천주교 성당에서 어떻게 스님을 모시고 강연을 하느냐고 그런 얘기를 들었는데 저는 그런 말씀을 하시는 분들은 신앙의 자리를 제대로 잡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자기 신앙에 의문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자기가 믿고 있는 신앙에 대해서 흔들리지 않으면 그런 말을 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 법륜 스님의 말씀 안에 든 맛있는 것을 찾아내는 것이 저희들의 의무가 되고 그것을 소화해내어 실천하는 것이 우리의 목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스님께서 큰 에너지를 줄 것이라 생각합니다. 좋은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이어서 7시부터 스님 소개 영상이 끝나고 스님께서 큰 박수와 함께 연단에 오르셨습니다. 오늘 페루 리마 강연에는 총 70명이 참가했습니다. 페루 전체에 1천명 정도의 교민들이 살고 있다고 하는데 규모에 비해 많은 분들이 오신 것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스님께서는 먼저 오늘 강연을 준비해 주신 신부님과 성당 관계자 분들께 감사 인사를 드리면서 강연을 시작하셨습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이곳에 사신지 오래 되셨어요? 저는 이번에 남미에 처음 왔습니다. 멕시코까지는 20년 전에 한번 왔다 간 적이 있었는데 남미는 이번이 처음이예요. 그래서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어요. 그런데 성당에서 신부님이 강연 장소도 제공해주시고 사람도 모아주셔서 오늘 강의가 열리게 되었습니다. 페루 리마 한인천주교회의 김요셉 신부님, 사목회장님과 천주교의 관계자 여러분둘께 진심으로 감사말씀을 드립니다. 큰 박수를 부탁드립니다.” (박수)

그러면서 질문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오늘은 총 5명이 질문을 했습니다.

“독일에서 정치학을 공부하고 있는 학생인데, 친구들과 토론을 하다보면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보류하거나 중립적인 입장을 취할 때가 많습니다. 그럴 때마다 바보 취급을 받는데,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20년 동안 개인 사업을 하고 있는데 나이 50이 넘고 보니 독선과 타성에 젖어서 남에게 피해를 주는지도 못느끼고 습관적으로 최종 결정을 해온 것 같습니다. 성찰하고 깨달아서 이 부분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강연 제목이 ‘희망세상만들기’인데 희망이라는 것은 향후에 갖고 싶은 마음인데 스님께서 의미하는 보편적인 희망세상만들기의 의미는 무엇인지 알고 싶습니다. 또 현재 스님께서 생각하시는 한국의 희망세상은 어떤 것인지요? 또 스님의 희망은 무엇인지 알고 싶습니다.”

“스님들은 인연에 대해서 얘기를 하고, 교회에서는 모태 신앙에 대해서 얘기를 하는데, 모태 신앙과 인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인연이라는 것이 있어서 스님이 계시기도 하고, 교회를 다니는 분은 모태 신앙이여서 교회에 간다면서 이미 예정되어 있었다고 하는데, 우리의 모습은 예정되어 있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이렇게 다양한 질문에 대해서 스님께서는 정성껏 답변을 해주셨으며, 즐겁고 유쾌한 대화 속에 어느덧 2시간 40분이 흘렀습니다. 답변이 끝날 때마다 시종일관 웃음이 넘치고 큰 박수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오늘은 그 중에서 지금 종교를 갖고 있지 않은데 스님은 종교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묻는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스님께서는 종교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성찰해 보도록 해주는 깊이 있는 말씀을 들려주셨습니다.

“저는 지금 현재 종교가 없습니다. 지금 스님께서 말씀하신 신앙이라든지 종교에 대해 전적으로 동의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종교를 못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스님께서는 어떻게 그런 사상을 가지고 계시면서 불교의 스님이 되실 수 있었고, 스님이 되어 종교생활을 하시면서 행복하신지 궁금합니다. 종교가 필요한가요? 종교를 어떻게 봐야 하나요?”

“저는 종교의 자유는 종교를 믿을 자유와 종교를 믿지 않을 자유를 포함하는 것이 종교의 자유라고 생각합니다. 종교를 믿는 사람 가운데 어떤 종교를 믿을 거냐 하는 것도 종교의 자유에 들어가지만, 종교를 안 믿는 것도 종교의 자유에 포함됩니다. 즉 종교를 가진 사람이 종교를 가지지 않는 사람을 죄악시 하는 것은 횡포에 속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종교를 선택하든, 선택하지 않든, 자유로워야 합니다.

종교의 뜻은 으뜸되는 가르침입니다. 인간 세상에는 많은 가르침이 있는데 그 중에서 가장 으뜸되는 가르침이 종교라고 정의가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이라는 것을 상정하고 신에게 순종하는 것이 인간 세상에서 가장 으뜸되는 길이라고 하면 그것도 종교가 되는 거예요. 그리고 인간이 모든 속박에서 벗어나서 해탈과 열반을 성취하는 게 가장 으뜸되는 것이라고 하면 그것도 종교로서 성립이 되는 것입니다. 종교를 신과 인간의 관계라고 설정하는 것은 많은 종교 가운데 일부 종교의 종교관이라고 볼 수 있어요.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는 종교는 서양의 일부 종교관에 불과한데 이것을 전체 종교에 자꾸 집어 넣으니까 불교가 종교냐 종교가 아니냐 하는 논쟁이 생기는 겁니다. 불교는 종교예요. 이것은 불교와 기독교가 서로 다른 문제가 아니고 동양의 종교관과 서양의 종교관이 서로 다른 문제입니다.

어떤 것이 삶의 가르침 가운데 내가 가장 의지할 만한 것인가? 이것은 수없이 나와 다른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돼요.

학생에게 이렇게 물어봅니다.
“너 소원이 뭐니?”
“공부 잘하는 거요.”

“공부 잘 해서 뭐할래?”
“그래야 좋은 대학에 가지요.”

“좋은 대학 가서 뭐할래?”
“그래야 좋은 곳에 취직하지요.”

“좋은 곳에 취직해서 뭐할 거니?”
“그래야 돈을 많이 벌지요.”

“돈 많이 벌어서 뭐할 거니?”
“그래야 좋은 집도 사고, 좋은 자동차도 사고 하지요.”

“좋은 집 사고 좋은 자동차 사서 뭐할래?”
......
이렇게 자꾸 물으면 결국 대다수가 “그래야 행복하잖아요” 이렇게 답하는 데까지 갑니다. 그러니 이렇게 빙 돌아서 행복이라는 곳에 도착하게 되는데, 제가 볼 때는 그렇게 빙 돌아서 가지 말고 행복이 궁극적인 목표라면 바로 건너갈 수도 있다는 겁니다.

돈을 많이 벌어야 행복하다는 말은 일부만 맞아요. 그런데 돈이 있으면 행복하냐? 돈이 없는 사람 입장에서는 돈이 있으면 행복해지는 게 맞을 수도 있는데, 돈이 있는 사람 입장에서는 돈이 있어도 행복하지가 않습니다. 지위가 낮은 사람은 지위가 높아지면 행복하다 하는데, 제가 지위 높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보면 그들 나름대로 굉장히 골치 아파 합니다. 행복하지가 않아요. 처녀 총각들은 결혼만 하면 행복할 줄 알았는데, 결혼한 사람들에게 한번 물어보세요. 행복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돈이 행복의 전부가 아니라는 겁니다. 지위도 행복의 전부가 아니라는 겁니다. 어른이 되는 것도 행복의 전부가 아니라는 겁니다. 그러면 ‘어떤 상태에서 행복이 진정으로 오느냐?’ 이렇게 관점을 딱 가지고 다시 성경책을 읽거나 불경책을 읽으면 훨씬 더 진리에 근접한 새로운 길을 찾을 수가 있습니다.

초기에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을 믿어서 무슨 돈을 벌었어요? 가지고 있던 돈도 다 빼앗겼지요. 무슨 지위가 높아졌어요? 지위도 다 빼앗겼지요. 무슨 인기가 있었어요? 박해를 받았지요. 그런데도 그들은 신앙을 가지면서 행복해 했잖아요. 이것은 무엇을 말하느냐는 겁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하나님한테 ‘돈 좀 벌게 해주세요’, ‘출세하게 해주세요’ 하고 있습니다. 불교도 똑같습니다.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느냐? 로마 황제가 교황이 되면서부터는 종교의 목표가 세속화된 것입니다. 부처님은 왕자로서 왕이 될 사람이었고, 결혼해서 아이까지 낳았는데도 행복하지가 않았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저 사람은 고민이 없겠다’ 하면서 부러워 했거든요. 그 높은 지위도, 그 많던 재물과 인기도 진정한 행복이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 겪어봐서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걸 버릴 수 있었던 겁니다. 그리고 새로운 길을 찾아 엄청난 노력을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불자들은 그런 붓다에게 무엇을 달라고 빕니까? 돈 달라, 대학 시험에 걸리게 해달라, 좋은 여자 만나게 해달라, 좋은 남자 만나게 해달라 애원하는데 붓다가 그걸 해주겠어요? 본인도 그게 행복의 길이 아니라고 버리고 나왔는데요. (청중들 웃음)

지금 굉장히 본질적인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것에 대한 진지함 없이 불교 신자가 된다는 것은 불교란 이름만 갖고 있지 아직도 원시적인 신앙 형태를 갖고 있는 것에 불과한 겁니다. 아직도 ‘돈이 부족해서 불행하고, 좋은 남자 못 만나서 불행하고, 출세를 못해서 불행하다’ 하면서 ‘그것만 있으면 행복할텐데’ 하는 것은 지극히 세속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수단으로 종교를 이용하는 거예요. 특히 자본주의 사회에서 종교는 자본의 수단이 되고 있고 돈이 주인이 되어있습니다. “이것 믿으면 돈많이 벌 수 있다”고 설정하는 것은 솔직하게 말해서 가게 차려 놓고 호객행위 하는 것과 뭐가 다를까요? 이런 인간의 심리는 이해가 되지만, 그러나 우리가 정말 행복을 추구한다면, 사는데 돈이 필요하고, 사는데 지위가 필요한 건 맞는데 그것만 가지고는 행복의 문제가 안 풀립니다. 그것만으로 행복의 문제가 풀렸으면 미국 사람들은 다 행복해야 되잖아요. 대한민국은 제가 어렸을 때에 비하면 지금 GDP가 250배 더 높아졌어요. 그런데 지금의 대한민국 국민이 더 행복하냐 하는 문제죠.

무엇이 우리를 괴롭히고 속박하고 있는가? 이런 문제의식 속에서 출발을 해나가야 합니다. 그럴 때 부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고, 부처님의 경을 읽었을 때도 언어 이면에 그분이 우리에게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를 볼 수 있었고, 계율에 대한 해석과 이해도 새롭게 할 수 있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계율을 속박처럼 느꼈는데, 지금은 계율을 지키는 것이 자유로 가는 길임을 알게 되었어요. 이런 새로운 재발견이 필요합니다. 이것은 꼭 머리를 깍고 스님이 되어야 할 수 있는 것이 전혀 아닙니다. 결혼을 할 수도 있고 사업을 할 수도 있고 다른 신앙을 가질 수도 있죠. 바위를 앞에 두고 신령님이라고 부르나, 깍아서 부처님이라고 부르나, 십자가를 걸어 놓고 하나님이라고 부르나 그 앞에 앉아 있는 인간의 심리 상태가 동일할 때, 이것을 다른 종교라고 볼 것이냐, 같은 종교로 볼 것이냐 하는 문제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우리가 접근해 들어가 보면, 저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를 때 훨씬 더 큰 자유와 행복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천주교 신자들에게 불교 신자가 되라고 말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어요. 천주교 신자가 더욱더 천주교 신자 다워지는 게 중요합니다. 불교 신자는 더욱더 불교 신자 답게 되는 것이 필요하지 천주교 믿다가 불교로 오는 게 전혀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어차피 불교로 와서도 돈을 추구하면 불교에 있으나 천주교에 있으나 큰 차이가 없지 않느냐는 것이죠.

그러나 종교가 필요없다는 얘기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입니다. 지금 시대는 정말로 종교가 필요한 시대입니다. 왜냐하면 지금의 물질 문명 갖고는 정신적인 평화를 절대로 누릴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옛날에는 물질만 가지면 구원이 될 수 있다고 느꼈기 때문에 복을 구하면 되었는데, 물질이 있음에도 행복하지 않은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거냐 하는 것입니다.

과학자들이나 오늘날 첨단을 걷는 사람들도 다 마찬가지예요. 스마트폰을 쓰고 온갖 것으로 정보 교류를 해도 그 개개인은 다 불안하고 초조하고 고뇌에 차 있어요. 이것을 어떻게 할 거냐는 겁니다. 하나님을 믿으면 이것이 싹 해결되면 되는데, 이런 식으로 믿기 때문에 해결이 안 된다는 겁니다. 그러나 그분의 살아온 모습과 가르침으로 접근해 들어가면 저는 훨씬 더 평화롭고 두려움에서 자유로울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진리와 믿음은 구분해야 합니다. 믿음은 자유지만 믿음을 갖고 무조건 진리라고 말하기는 곤란합니다. 믿음 중에는 어리석은 믿음이라고 해서 ‘미신’이란 것도 있잖아요. 눈이없는 믿음이라고 해서 ‘맹신’이란 것도 있고요. 믿음은 굉장히 중요한데, 이런 믿음 가운데에도 우리는 밝은 믿음, 진실한 믿음을 추구해야 합니다. 이런 측면에서 진리와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종교는 차원이 다릅니다. 적어도 기독교와 불교는 원시 상태에서 인간이 막연히 생각해왔던 종교적 욕구와는 조금 성격이 달라요. 이것은 어리석은 자의 눈을 뜨게 해주는 것입니다. 모순된 상황을 지적하고 욕망에 어두운 상태를 벗어나서 조금 더 사물을 바르게 볼 수 있는 길을 열어줬다는 면에서 굉장히 긍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질문자가 종교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현실에 있는 종교는 별로 마음에 안 든다, 그래서 나는 내 나름대로의 믿음을 갖겠다, 이건 좋아요. 그러나, 무조건 ‘종교 믿는 사람들은 허황되다’ 이렇게 생각하면 그것도 또한 하나의 편견에 속합니다. 또한 인류가 과학기술도 개발하고 여러 가지 사회학도 개발하는 중에 이 정신적인 문제에 대해서 많은 성인들이 연구하고 개발해서 인류에 공헌한 이 내용들을 배울 수 있는 혜택도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 되죠. 포기하는 건 좋은데 질문자에겐 손해가 아닐까 싶어요. 이 소중한 가르침을 나도 받아들여서 죽음 앞에서도 두려움이 없는 존재로 나아간다면 얼마나 좋습니까. 사업이 잘 되면 좋겠지만, 사업이 망해도 빙긋이 웃을 수 있게 됩니다. 남편이 바람을 피워도 허허허 웃으면서 ‘우리 남편이 요새 좀 마음이 허전했나?’ 하면서 여러 가지 방법을 연구해 볼 수도 있게 됩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십자가에 매단 사람에게 아무런 감정의 동요 없이 “주여, 저들을 용서하소서” 라고 말했습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주여, 딴 놈은 몰라도 저 두 놈은 지옥에 쳐넣어주세요” 이렇게 되잖아요. 그러나 이제 우리도 그렇게 가야 되는 게 우리의 지향입니다. 이미 인류가 그렇게 가고 있어요. 적군도 부상 당하면 치료해주자, 적군도 포로가 되면 보호했다가 돌려주자, 전쟁을 하더라도 가능한 민간인은 공격하지 말자, 이렇게 이미 예수님의 가르침을 현실 속에서 벌써 실현해 가고 있어요. 종교가 실현하는 게 아니라 종교 밖에서 이미 실현되고 있는 거예요. 이것을 기독교식으로 얘기하면 이미 하나님의 역사가 종교인을 통해서가 아니라 종교밖에서 이미 일어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세상이 변해가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이 가르침 대로 살아가는 것은 인류사의 올바른 방향이예요.

다만 종교가 중간에 헛발질 하고 나갔던 것에 대해서 좀 수정할 필요가 있죠. 우리는 오류를 범할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이런 오류들은 시정해 나가면서 원래의 가르침을 존중해 가는 쪽으로 바뀌어 갈 수도 있는 겁니다. 옛날에는 기독교인들은 기독교인들끼리만 살고 불교인들은 불교인들끼리만 살고 일본 사람은 일본 사람들끼리만 살고 한국 사람은 한국 사람들끼리만 살았기 때문에, 다 자기들이 옳다고 생각하고 살았는데, 지금은 시대가 바뀌어서 서로 섞여서 살고 있습니다. 자기가 옳다는 생각을 갖고 살고 있는데 서로 섞이니까 충돌과 혼란이 오는 겁니다. 이런 삶이 한 1세기 정도만 지나면 공존의 길을 모색하게 될 겁니다. 지금은 폐쇄적인 신앙이나 폐쇄적인 민족주의가 일시적으로는 더 이익인 것 같죠? 다음 세기를 생각하면 개방성이 훨씬 더 이익입니다. 오히려 이런 개방성이 자기 정체성도 더 깊이 가질 수 있습니다. 폐쇄성이 있다는 것은 이미 두려움이 있다는 겁니다. 북한이 개방을 못하는 이유는 두려움 때문이잖아요. 자기 모순이 드러날까봐 겁을 내기 때문에 폐쇄를 주장하게 됩니다.

열린 사회에서는 당연히 다른 상황으로 갑니다. 한국 사람이냐 미국 사람이냐 해서 이민 1세대들이 얼마나 정체성의 혼란이 많았어요? 그러다가 ‘코리안 어메리컨’ 이라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냈잖아요. 이것은 제3의 정체성입니다. “너는 한국 사람이냐? 미국 사람이냐? 둘 중에 선택해라” 그래서 고민을 많이 했는데 이제는 뭐라고 합니까? “나는 코리안 어메리컨이다” 이렇게 얘기합니다.

서구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냐면요. 기독교 신자인데 불교를 공부해보니 좋다는 사람들이 많이 나옵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에게 기독교 그만두고 불교신자가 되라든지, 나는 기독교 신자니까 불교 안한다든지 이렇게 하라고 하면 너무 가혹하잖아요. 이 사람들은 두 개 다 하고 싶을 거잖아요. 이럴 때 ‘크리스천 부디스트’가 나오는 겁니다. (청중들 웃음)

전통적 신앙으로 봤을 때는 당연히 혼란이 옵니다. 그런데 한 100년 정도만 지나며 이런 것이 자연스러워질 가능성이 있는 겁니다. 거꾸로 불교인들도 기독교를 받아들여서 불교인인데 자신은 기독교의 사상을 받아들인다 해서 ‘부디스트 크리스천’이 될 수도 있겠죠. 그런데 왜 종교만 안된다고 생각할까요? 이것 하고 구원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는 것이죠. 근본을 정확하게 알아야 현실적 포용성을 갖는데, 근본을 놓치고 현실을 따라가면 포퓰리즘이 되어 버리고 신앙이 변질돼요. 이 현실 속에서 근본에 대한 것을 더 분명히 해야 현실의 포용성을 더 넓힐 수 있습니다.

신앙의 정체성을 오직 배타성에 둘거냐, 신앙의 정체성을 이 세상의 모든 일이 다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생각한다면 인류가 개발한 모든 성과를 신앙의 틀 속으로 받아들여서 인류 문명의 발전에 한 발 더 나아갈 수 있도록 기여를 할 거냐 하는 문제입니다. 이번에 유럽을 주욱 다녀보니까 중세에 카톨릭이 어려움을 많이 겪었는데 이런 카톨릭의 문제를 고발하고 개선하려고 많은 노력을 했던 체코의 ‘얀후스’라는 신부님이 있었더라구요. 이 분의 노력을 중세 신학 혁명의 출발점으로 생각하고 있더라구요.

이것은 옳고 그르고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이제 새로운 시대에 직면해 있다는 겁니다. 여러분들이 여기 와서 이렇게 사는 것도 새로운 시대를 반증하는 겁니다. 여기 와서 살면서 계속 한국 돌아갈 생각만 하면 자기 인생이 자꾸 불행해져요. 우리는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종을 만들고 있는 겁니다. 여기도 침략자인 백인들과 피지배 인디언들이 혼혈이 된 메스티조가 인구의 80~90%인데 그들은 자기 정체성을 무엇으로 가질까 저는 이게 늘 궁금했거든요. 원한이 없는 것을 넘어서서 자기 정체성이 없으면 발전이 안 됩니다. 모방은 되지만 창조는 자기 정체성이 없으면 절대로 안 일어납니다. 그 정체성이 딱 확보가 되면 여기에서 새로운 문명이 나옵니다. 미국은 점점 후퇴하고 오히려 이런 변방에서 새로운 문명이 꽃피거든요. 저는 여기에 와서 이곳이 새로운 문명이 꽃필 수 있는 가능성이 있을까, 여기서 어떤 융합이 일어날 수 있느냐, 이들은 그냥 혼란에 빠져 있느냐, 융합의 어떤 기회를 갖고 있느냐, 이런 측면에서 바라볼 수 있습니다.

부부 간의 갈등이 있는 것이 꼭 나쁜 게 아닙니다. 왜 갈등이 생길까 연구를 하면 굉장한 일이 벌어집니다. 내 마음에 안든다고 미워하고 원망하면 파괴의 에너지가 일어나고, ‘왜 나이가 들면서 저런 성향이 나타나고, 저런 욕구가 나타나지? 남자는 왜 저럴까? 인간은 왜 저럴까? 나는 왜 이런 문제가 생길까?’ 이렇게 해서 대화도 해보고 연구를 하면 사람에 대한 이해의 폭이 굉장히 넓어져요. 그래서 이 갈등은 꼭 나쁜 것이 아니예요. 갈등 속에서 항상 창조력이 나오는 겁니다. 혼란 속에서 창조가 나오는 겁니다. 그렇게 여러분의 삶을 새로운 각도에서 한번 추구해 나가보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마지막 질문은 종교에 대한 이야기가 전개되다 보니 다소 길었습니다. 하지만 종교란 무엇인지 많은 것을 돌아보게 해주는 소중한 가르침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에 다소 무거워지긴 했지만, 긴 시간 지혜로운 말씀을 해주신 스님께 청중들은 뜨거운 박수갈채를 보내주었습니다.

강연을 마치고 돌아가시는 분들께 오늘 강연이 어땠는지 물어보았습니다. 한 분은 “스님께서 진리와 신앙이 다르다는 것을 말씀하신 부분이 참 독특하고 좋았다”고 하셨고, 한 분은 “스님께서 정치적인 상황을 설명하여 주시고 통일에 대하여 말씀하여 주신 부분이 신선하고 좋았으며 통일에 대해서 새롭게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모두 유익하고 좋은 시간이었다고 하였습니다.

▲ 스님께서는 책사인회가 마련된 곳으로 자리를 옮겨서 기다리고 있는 많은 분들에게 사인을 해주시며 인사도 하고 함께 사진촬영도 하였습니다.

▲ 자리를 옮겨 페루 리마 강연을 준비한 이순신 사목회장님, 최상순 부회장님, 조영학 경제인연합회 회장님, 김요셉 신부님, 그리고 강연장 곳곳에서 역할을 맡아 수고해준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였습니다. 스님께서는 신부님과 천주교 신자님들께 다시 한번 감사 인사를 드렸습니다.

▲ 이곳에서 12시간 떨어진 곳에서 장애인 시설을 운영하고 계시는 수녀님께 사인한 인생수업 책과 후원금 200불을 보시하셨습니다. 수녀님께서는 활짝 웃으시면서 진심으로 감사해 했고, 스님과 함께 기념사진도 찍었습니다.

자원봉사자들에게 오늘 강연준비를 한 소감을 물어보았습니다. 오늘 자원봉사자 중에서는 독일에서 1년간 남미를 방문 중인 최주희 학생이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었는데 이곳에서 불자를 만나기 힘든데 스님 강연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자원봉사를 신청하여 오늘 신나게 봉사를 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스님을 뵐 수 있어서 정말 기쁘고 좋았다”고 하였습니다. 스님께서도 한국에서 선물로 가지고 온 단주를 손목에 끼워주시면서 공부 잘하라고 격려도 해주셨습니다.


▲ 강연 준비를 열심히 도와준 최주희 학생

그리고 한국에서 교사로 활동하셨던 한 분도 “어려운 시기에 스님의 유튜브 법문으로 많은 도움을 받았기 때문에 오늘 이렇게 자원봉사 하는 것이 아주 즐거웠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성당의 형제, 자매님들도 “기쁜 마음으로 자원봉사 할 수 있어서 좋았다”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즐거운 강연 시간을 마치고 스님께서는 성당 측에서 준비해준 음식으로 늦은 저녁식사를 하시면서 참가자들과 함께 조금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셨습니다. 짧은 시간에 환대를 가득 받고 가는 것 같습니다. 스님께서는 식사 후에 “선교 사업을 하고 계시는 신부님들께 드리라”고 하시면서 오늘 받은 후원금 750솔(약 250불)을 전액 신부님께 보시하셨습니다.

▲ 리마에서 거의 유일한 불자 가족인 조영학님 가족은 “이번에 스님을 뵙고 강연을 들을 수 있어서 정말 좋았는데, 이곳 리마에 정토회 모임과 정토불교대학을 해보고 싶다”는 바램을 보이셔서 안내를 해주겠다고 약속을 했으며, 스님께서도 격려를 해주시며 함께 기념촬영을 하였습니다.

또한 스님께서는 부엌에서 저녁식사 준비와 행사 준비를 지원한 성당의 자매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감사인사를 드리고 함께 사진촬영도 하셨습니다.


▲ 저녁식사를 준비해주신 성당 자매님들

그리고 신부님과 함께 귀가하시는 봉사자들을 배웅하고 나니 10시 30분이 되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숙소에서 내일 일정에 대해 잠깐 논의를 한 후에 내일 브라질로 가지고 갈 짐정리 등을 하면서 오늘 일정을 마무리 하셨습니다.

이렇게 오늘도 많은 분들의 정성과 자원봉사로 91번째 페루 리마 강연도 잘 마쳤습니다. 내일은 92번째 강연이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열립니다. 그럼 내일은 상파울루에서 또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

▼ 법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지난 날짜 소식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