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16.10.25. 법륜스님과 함께하는 행복한 대화(10) 용인시청 에이스홀
“술 마시고 필름이 끊기는 딸아이, 보고 있자니 괴롭습니다."

 

행복한 하루 보내고 계신가요? 

 

오늘 행복한 대화는 경기 남부 중앙에 위치한 용인에서 열렸습니다.

 

아침부터 가을비가 차분히 내리고 있었습니다. 뜨거웠던 여름은 붉은 낙엽으로 옮아가고, 가을비가 내려 더욱 선선했습니다. 스님은 관점의 변화를 말하며 강연을 시작했습니다.

 

 

 

 

“인생은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다릅니다. 이 물병이 큰가, 작은가? 할 때, 컵하고 비교하면 크지만 연단하고 비교하면 작습니다.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크다’ 하기도 ‘작다’ 하기도 하는 거예요. 여러분이 ‘작다’ 하는데 내가 ‘크다’ 하면 스님이 말도 안 되는 소리 한다고 합니다.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고 생각하는데, 있을 수 없는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일어났다 하면 있을 수 있는 일이에요.

 

제가 지난주에 네팔, 인도를 다녀오면서 이틀을 연달아 잠을 비행기에서 잤어요. ‘스님, 그렇게 주무시고 어떻게 삽니까?’ 묻는데 여러분은 방에서 밖에 못 자봤지만 저는 비행기에서도 자본 사람이에요. 비행기타고 자본 사람이 세상에 얼마나 될까요? 맨날 누워서 자는데 저는 앉아서도 자봤습니다.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다릅니다. 돌아서 가는 밤 비행기를 타면 요금이 많이 절약됩니다. 어차피 자는 시간 비행기타고 자고, 밥도 더 얻어먹고, 요금도 싸고, 도착은 빠릅니다.(청중웃음)

 

어떻게 계산하느냐가 문제에요. 여러분과 제가 계산법이 조금 달라요. 오늘 대화는 질문에 대해서 달리 계산하는 법을 알려주는 거예요. 요즘 식으로 말하면 관점을 바꾸는 겁니다. 그럼 질문을 받아보겠습니다.”

 

 

용인에서는 7명이 현장에서 질문하고, 영상으로 1명이 질문했습니다.

그 중, 딸이 술을 많이 마셔서 속상한 분의 질문과 이어진 대화를 소개합니다.

 

 

 

 

“저는 아이들이 어렸을 때 이혼하여 14년이 되었습니다. 큰아이는 반듯한 성인으로 자라주었지만 둘째인 딸은 스물두 살이어도 사춘기를 벗어나지 못한 것 같습니다. 나쁜 친구들과 어울려 가출, 술, 담배 등, 해보지 않은 것 없이 제 속을 태웠습니다. 그 중에서 술이 가장 문제인데 한 번 술을 마시면 필름이 끊겨서 업혀 오기도 하고 남자친구 집에서 자고 오기도 합니다. 

 

때려도 보고, 달래도 보고, 대화도 해보았지만 술만 마시면 문제가 재발하였습니다. 스님의 법문을 듣고  딸을 독립시키고 정을 끊자했는데 막상 상황을 마주하면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큰 마음 먹고 집에서 내보냈더니 지금은 남자친구와 동거한 지 한 달이 되어갑니다. 이 문제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울먹)

 

 

 

 

“술 마시고 필름이 끊긴 다는 것은 심리가 억압되어 있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여러분의 남편이나 부모님이 술을 먹고 주정을 한다면, ‘아 심리가 억압되어 있구나.’ 하고 알아야 해요. 맨 정신에는 얘기를 잘 못 하니까 술 마시고 취한 후에야 얘기를 해요.

주정하는 사람들은 술 마시지 않을 때는 아주 착해 보여요. 말을 잘 안 하니까요. 어릴 때 어떤 이유로 심리가 억압 되어서 머릿속에는 많은 생각이 있지만 목구멍에서 말이 잘 안 나오는 거예요. 그런데 술에 취하면 의식이 가물가물하면서 무의식이 발동하니까 과거에 마음에 맺혔던 것이 계속 일어납니다. 그걸 주정이라고 합니다. 

 

주정하는 사람이 남편이라면 자라나는 환경에서 심리가 억압되었구나 하고 이해하고, 못 살겠다 싶으면 ‘안녕히 계십시오.’ 하고 헤어지면 됩니다. 내가 그 사람하고 관계를 맺을지 말지는 내 선택의 문제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자식이 이렇다는 건 심리억압의 주원인이 부모일 가능성이 높아요. 남편일 경우에 남편의 심리를 내가 억압했을 가능성은 별로 없기 때문에 내 책임은 아닙니다. 내가 자비심을 내면 남편의 심리억압을 풀어줄 수 있어요. 술주정을 하면 맞장구를 쳐주고 받아주면 심리적 억압이 조금씩 풀어집니다. 그래도 어린 시절에 받은 심리억압이 쉽게 풀어지진 않지만 계속 받아주고 들어주면 서서히 변화가 생길 수는 있습니다.

 

환자를 돌보는 게 힘들지만 환자라고 생각해버리면 힘들지 않듯이, 이것을 알고 술주정을 받아주면 힘들지 않게 되지요. 술주정하는 남편을 자비롭게 받아들이면서 치유해주며 사는 건 본인의 선택이에요.

 

 

 

 

그러나 자녀일 경우는 심리억압의 원인이 자신일 가능성이 매우 높아요. 부모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 야단도 치고 잔소리도 하지만 아이의 입장에서는 상처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아이에게 그런 증상이 나타나면 ‘이 아이가 심리적 억압이 있구나.’ 하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심리적 억압이 없는 사람은 폭음을 하면 몸이 못 견딜 수는 있지만 주정을 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그러니 첫째, 부모에게 책임이 있다고 볼 수 있어요. 제가 생각할 때, 큰애는 더 야단치고 작은애는 덜 야단쳤다는 게 아니라 똑같은 말을 듣고도 어떤 사람은 상처를 덜 받고 어떤 사람은 상처를 더 많이 받아요. 그렇기 때문에 내가 어떻게 했느냐를 가지고 자녀의 상태를 판단할 수는 없어요. 사람마다 상태가 다르기 때문이에요.

 

지금이라도 ‘아이가 심리적 억압이 있구나. 그 원인이 나겠구나.’ 생각하면서 딸에게 더 이상 억압을 가중시키는 일은 하지 않아야 합니다. 내가 원인인 것을 상대편의 문제인 것처럼 잔소리를 한다면 아이의 심리적 억압은 더 강화될 뿐, 개선되지 않습니다.  

 

어릴 때는 부모의 말을 잘 따랐지만 자란 후에도 부모가 똑같이 어릴 때처럼 아이를 강압적으로 대하면 아이는 반발하게 됩니다. 여러분이 자녀에게 뭐라고 얘기를 했는데 자녀가 신경질을 내고 반발한다면, 그때는 ‘아, 얘가 심리적 억압이 있구나, 엄마한테 저항감이 있구나.’ 하는 걸 알아야 해요. 그건 여러분이 엄마라고 아이에게 부당하게 대했다는 걸 보여주는 거예요. 

 

억압이 있으니 저항을 하는 것입니다. 억압이 없으면 저항도 하지 않아요. 그러니 잔소리를 하지 않아야 해요. 그런데 안 하고는 못 배기죠? 알면서도 하게 되는 걸 습관이라고 해요. 아이가 술을 안마시면 좋은데 마시는 것이나, 내가 잔소리를 안 하면 좋은데 잔소리를 하는 것이나 사실은 똑같은 거예요. 그걸 어머니인 본인이 먼저 알아야 해요.

 

 

 

 

그러면 지금이라도 억압을 안 해야 합니다. 그러면 이렇게 되묻지요. “가만히 놔두면 함부로 하는데 어떻게 내버려둡니까?” 그래도 어쩔 수 없어요. 왜냐하면 내가 지금 잔소리를 한다고 해서 아이가 개선될 가능성은 없기 때문이에요. 변화가 일어나려면 감화가 돼야 하는데 억압을 통해서는 일시적으로 멈출 뿐이지 변화하는게 아니에요. 참는 게 되기 때문에 또 터지고 맙니다.  

 

한 번 참고 두 번 참으니까 어른이 보기엔 아이가 괜찮아 보여요. 그러나 두 번, 세 번째에는 터져요. 되풀이 됩니다. 불교로 말하면 윤회할 뿐이지 개선은 안 됩니다. 몇 번 해보고 안 될 때는 그만 해야 합니다. 계속 한다고 고쳐지는 게 아니기 때문이에요.

 

이런 상태에서는 계속 잔소리를 해봐야 내 입만 아프고, 마음은 괴롭고 갈등만 생겨요. 스무 살이 넘었으니까 관둔다는 것도 있지만 이건 얘기한다고 개선될 수가 없는 일이니 무얼 해야 되느냐, 원인 제공자로서 참회를 해야 합니다. 잘했다 잘못했다고 보지 말고요. 객관적으로 볼 때는 잘못한 것이지만 질문자인 본인도 어떻게 할 수가 없는 거예요. 술을 입에 대면 통제가 안 되고, 필름이 끊기고 말아야 그만 두게 되는 겁니다. 

 

내가 지금 할 일은 내가 어리석어서 아이를 잘 키우려고 잔소리를 했던 것이 결과적으로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밭에 거름을 너무 많이 줘서 곡식을 웃자라게 해서 망칠 때도 있고, 거름을 너무 안 줘서 망칠 때도 있듯이 내가 얼마나 열심히 했느냐의 문제는 여기서 도움이 안 됩니다. 자꾸 그런 생각에 집착하기 때문에 ‘나는 너를 위해서 했다’는 이 얘기만 해요. 

 

예를 들어서 말해보면 우리나라 대통령은 나라와 국민을 위해서 열심히 일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온힘을 다해서 노력 한다고 해도 국민이 좋아하지 않습니다. 대통령이 ‘내가 이렇게 온 힘을 다해서 일하는데 정치인 협조도 하지 않고, 국민들은 몰라준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여러분들이 자식에게 하는 것과 똑같아요.

 

 

 

 

자식은 그렇게 해주는 걸 원하지 않아요. 상대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 사랑이지, 내가 어떻게 해주는 건 욕망일 뿐 사랑이 아닙니다. ‘내가 너를 좋아한다.’는 이건 내 욕구지 사랑이 아니에요. 상대가 필요한 걸 해주는 게 사랑이에요. 그러려면 상대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해요. 상대가 가까이 오는 걸 좋아하면 가까이 가고, 멀리 있는 걸 좋아하면 멀리 떨어져 주는 것이 사랑이에요.

 

근본적으로 돌아가서 보면 첫 번째, ‘스무 살이 넘었으니까 내가 잘 키웠든 못 키웠든 내 할 일은 끝났다. 이제 너 알아서 살아라.’ 하면서 탁 내려놓는 게 필요해요.

 

두 번째, 원인 제공자가 나라고 생각한다면 ‘내가 엄마 노릇을 제대로 못해서 네가 고생한다.’라고 나의 어리석음을 참회해야 합니다. 그러나 죽을 죄를 지었다며 자학증세로 가면 안 됩니다. 내가 할 노릇은 다 했다, 다만 어릴 때 제대로 못 해준 게 있으니까 ‘내가 내 생각만 하고 네 생각을 못해서 네가 상처를 입었구나.’ 하면서 미안하다고 속으로 참회해야 합니다. 내가 원인 제공자니까 딸이 술 마시고 들어오면 그냥 눕혀서 보살펴주면 됩니다. 그러면 내가 괴롭지 않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문제를 겪고 있는 딸도, 원인을 일부 제공한 어머니도 지금 행복할 권리가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어떤 경우든 어느 누구든 행복할 권리가 있습니다. 이것 때문에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본인이 불행하고 싶어서 그런 거예요. 그 원칙만 분명하면 우리는 누구나 행복할 수 있습니다. 

 

어머니는 행복한데 아이는 어떻게 행복할 수 있을까요? 어머니만 행복하다고 아이도 행복할 수 있을까요?”라고 물어볼 수도 있겠습니다. 어머니가 불행하면 아이한테 더 나쁩니다. 어머니가 행복하다면 아이가 행복한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런 관점을 가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질문자의 울먹이는 목소리에 그간 마음고생이 전해졌습니다. 이제는 행복하게 사셨으면 좋겠습니다.

 

 

 

 

“하나 물어볼게요. 올 때 보다 갈 때가 마음이 더 가벼워졌다는 사람 손들어보세요?(대부분 손 듬) 성공적이었네요.(청중웃음) 오늘 제목이 행복한 대화잖아요. 여러분이 스님 법문 듣고, 경제 상황 이야기 듣고 불안해지지 않았는지 걱정했어요.(청중 웃음) 근데 앞으로 일어날 일을 미리 예견하고 각오를 하면 일이 닥쳤을 때 능히 이겨냅니다.

 

 

 

 

저는 여러 신부님들, 목사님들과 종교를 초월해서 ‘국민들이 사회적인 문제와 개인적인 문제를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이런 논의를 늘 하고 있습니다. 종교가 있든 없든, 어떤 종교든 모여서 우리 스스로 토론해보고 이야기해보고 의식이 깨어나는 일을 해보자는 취지로 국민행복학교를 열고 있습니다. 많이 참여하셔서 우리 스스로 행복을 만들어 가보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강연이 끝나자 어느새 비가 그쳐있었습니다. 저마다 마음속 고비는 모두 그치고, 행복비가 내리길 바라봅니다.

다음 행복한 대화는 세종정부청사 대강당입니다.  

 

 

누구나 행복할 권리가 있습니다.

오늘이 행복하면 내일도 행복하고

나날이 행복할 수 있습니다.

지금 이순간 행복해 지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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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댓글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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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진수

스님 감사합니다

2016-11-02 06:34:42

이기사

감사합니다_()_

2016-10-31 14:23:28

한지은

스님 항상 감사합니다. 저는 서비스가 아님을 분명히 인지하고, 권리를 찾는 노력을 해봐야겠습니다. 스님 평안한 시간 되셔요^^

2016-10-27 21:3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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