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고양시 민방위교육장
답답하고 화나는 이 마음을 해결해주세요

하루 종일 평화재단을 방문하신 손님맞이를 하느라 사무실 밖을 나와 보지도 못한 법륜 스님은 저녁 5시 반이 되어서야 고양시 강연장으로 출발하였습니다. 오른쪽에 한강을 끼고 달리기 시작하자 스님은 가만히 잠 들었습니다.

강연장 주변, 잠에서 깬 스님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나? 가는 길이 머네. 이쪽으로 오지 말고 직선 길로 왔으면 되었는데.”

“스님 주무시라고 일부러 좀 돌아왔습니다.”

운전하는 지혜명이 말했습니다.

“아이구, 효자구나.”

다들 기분 좋게 웃었습니다.

곧 강연장인 고양시 민방위교육장에 도착하니 자원봉사자와 강연을 들으러 온 시민들로 입구가 북적였습니다. 스님은 잠깐 대기실에서 가사와 장삼으로 갈아입고 강연장으로 들어섰습니다. 스님은 봄 인사로 강연을 시작하였습니다.

“...지금 우리는 봄이 오는 길목에 있습니다. 이렇게 계절은 때가 되면 틀림없이 봄이 오는데, 우리의 마음은 그렇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 옛사람들은 ‘봄이 오되 아직 봄이 오지 않았다’ 라고 말을 했지요.

그런데 여러분들의 마음은 지금 어떻습니까? 수행자는 계절이 설령 겨울이라 하더라도 우리 마음은 늘 따뜻한 봄날처럼 행복해야 해요.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오늘 행복한 대화를 통해 꽁꽁 얼었던 마음을 녹여야 해요. 괴로운 마음, 슬픈 마음, 외로운 마음, 화나고 짜증나는 마음, 초조하고 불안한 마음, 이런 것들이 꽁꽁 얼은 마음, 굳은 마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봄을 맞아 얼음이 녹아서 물이 되고 눈이 녹아서 비가 되듯, 꽁꽁 언 마음이 녹아서 훈훈한 마음이 되고 굳은 마음이 녹아서 말랑말랑한 마음이 되고, 무겁던 마음이 가벼워지고, 탁한 마음이 맑아지고, 어둡던 마음이 밝아지는 것이 마음의 봄이 아닐까 합니다...

오늘 우리는 ‘어떤 종교를 믿든 어떤 사람이든 행복할 수가 있다’ 이런 주제로 행복하지 못한 우리의 삶을 행복하게 하는 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겠습니다.”

오늘 질문은 외모를 중요시 하는 20대 청년, 무주고혼이 될까 두렵다는 여성, 조울증 남편과 지내기 괴로운 아기 엄마, 제복을 입는 회사에 다니는데 건강 문제로 제복 아닌 옷을 입고 다녀야 하는 회사원의 고민, 서른다섯 살 아들의 야뇨증이 걱정인 어머니 등 모두 일곱 분이 질문지를 내어 고민을 해결하고자 하였습니다. 이 중에 한 ‘행복한 대화’를 소개합니다.

“저희 집에는 종교적인 이유로 가족이 아닌 남자 성인이 같이 살고 있습니다. 꽤 오래 되었는데요. 부모님이 그 사람을 아들 삼아 데리고 살고 있습니다. 저는 그런 상황이 이해되지 않고 거부감이 듭니다. 제가 독립을 하고 난 뒤에 즉문즉설을 들으면서 마음이 많이 편안해졌는데, 아직도 힘든 것은 집에 가서 그 사람이 부모님과 같이 있거나, 혹은 부모님이 안 계시고 둘이 있을 때 저는 답답하고 이유 모르게 화가 많이 납니다. 누구도 이해해줄 수 없고 말할 수 없는 이 굴레에서 벗어나서 마음 편히 살고 싶은데 가능할까요?”

“가능합니다.”

“어떻게 하면 마음을 편안하게 가질 수 있을까요?”

“질문자는 혈통을 너무 중요시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혈통은 별로 중요한 게 아니에요. 그 사람이 아주 어릴 때 부모님이 데리고 와서 아들이라고 키우다가 그 뒤에 질문자가 이 세상에 태어났다면 그 사람이 우리 집 혈통인지 아닌지 알까요, 모를까요?”

“모르겠죠.”

“그러니 혈통이 별로 중요하지 않잖아요. 내가 지금 ‘우리 혈통 아니다’ 이 생각을 계속 붙들고 있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거예요.”

“그런데 그걸 넘어서서 약간의 갈등이 더 있어요. 부모님께서 아직도 저한테 같은 종교를 믿으면 좋겠다고 하시고요, 제가 경제적으로 자립하거나 독립하기 전까지는 그 남자와 결혼하기를 굉장히 바라셨어요.”

“그래요, 그런 건 있을 수 있어요. 예를 들어 데릴사위 있죠? 자기가 아끼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을 너무 아끼다 보니 자기가 가장 아끼는 또 다른 사람과 같이 지내기를 바라죠. 그래서 자기 딸하고 그 남자하고 결혼하기를 바라는 거예요. 그건 부모의 마음이에요. 예를 들어 부모가 절에 다니면 딸이 절에 다니기를 원하고, 부모가 교회 다니면 딸이 교회 다니기를 원하잖아요. 그건 부모 마음이니까 그건 탓할 필요는 없어요.

그런데 내가 결혼하는 것은 내가 하는 거지, 부모가 하는 게 아니잖아요. 종교를 선택하는 것도 내가 하는 거지, 부모가 하는 건 아니에요. 내가 그 사람이 싫으면 그 사람하고 결혼 안 하면 되고, 내가 그 종교가 마음에 안 들면 그 종교를 안 믿으면 돼요. 그러니까 그건 불효도 아니고, 아무 죄도 안 되니, 아무 문제도 없어요.

그런데 부모님더러 ‘그렇게 말하지 마라. 그 사람하고 결혼하라고 하지 마라. 나더러 같은 종교 가지라고 하지 마라’ 이런 말을 하는 건 질문자가 부모님의 권리를 침해하는 거예요. 부모는 말할 권리가 있어요. 그리고 나는 그걸 받아들이지 않을 권리가 있고요.

그러니까 어머니가 ‘저 사람하고 결혼하면 어때?’ 하면 생글생글 웃으면서 ‘네, 어머니 뜻은 알겠지만 저는 별로예요’ 이렇게 이야기하면 돼요. ‘교회 다녀라’ 하면 ‘네, 어머니 마음은 알지마는 저는 별로예요’ 이러면 되고요.(모두 웃음) 아무 문제없어요. 그것 때문에 어머니와 싸울 필요도 없고 미워할 필요도 없어요. 그냥 어머니가 뭐라고 하든, 그건 ‘어머니 마음이 그러시구나’ 하면 돼요.

질문자는 스무 살이 넘었으니까 성인이잖아요. 질문자가 어머니 말을 다 들어줄 수는 없어요. 어머니가 ‘너, 시집가지 말고 나하고 살자’ 한다고 들어줄 수도 없고, 어머니가 아무 남자나 정해서 ‘이 남자하고 결혼해라’ 해도 들어줄 수가 없고, 어머니가 내가 좋아하지 않는 종교를 믿으라고 하는 것도 들어줄 수가 없고, 어머니가 직업을 하나 정해 놓고 ‘이거 해라’ 하더라도 내가 들어줄 수가 없어요. 어머니가 가게를 하다가 ‘네가 내 가게 해라’ 할 때 내가 마음에 들면 이어받아 하면 되고, 마음에 안 들면 안 하면 되는 거예요. 어머니는 그것이 좋으니까 그렇게 말하는 거예요. 나는 그렇게 할 수 있으면 그렇게 하면 되지만, 꼭 그렇게 해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어요. 아니면 아니라고 말하면 된다는 얘기예요.

그리고 피를 같이 나눈 한 형제라도 가끔은 오빠가 동생을 성추행할 때가 있죠? 신문에 나오잖아요. 그러니까 이 사람이 같은 혈통이 아니니까, 특히 어머니가 결혼까지 하라고 하는 남자다 보니, 아무도 없고 둘만 있는 자리에서는 혹시라도 성적으로 접근할 가능성도 있을 것 같아서 질문자가 자꾸 심리적으로 불안하고 꺼려지는 거예요.”

“집에만 가면 밤에 잠을 잘 못 잡니다.”(질문자 목소리 떨림)

“그래요. 그러면 집에 가능하면 안 가면 되죠.”(모두 웃음)

“그래서 한 10년 정도 따로 살다가 경제적인 문제 때문에 집에 다시 들어가긴 했는데...”(질문자 웃음)

“경제적인 문제 때문에 남의 집에 들어가서 공짜로 셋방을 얻었으니까 그런 불편은 감수해야 해요. 그건 어머니 잘못도 아니고 그 남자 잘못도 아니에요. 내가 지금 경제적으로 어려워서 어머니에게 공짜로 셋방을 들어 사는 셈이니까 약간의 불편이 있더라도 감수해야 해요. 그건 어쩔 수가 없어요.

그런데 질문자가 너무 혈통 가지고 차별하면 안 돼요. 혈통으로 차별하는 것과 내가 안 좋아하는 사람과 가까이 있다가 혹시 성적으로 어떤 피해를 입을까봐 조심하는 것과는 성격이 다릅니다.”

“아, 차별 이야기를 하시니까 하나 더 질문 드리고 싶은데요. 역차별을 받는 저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질문자 웃음) 역차별을 좀 많이 받거든요.”

“역차별을 누구한테서 받아요? 어머니한테서 받아요?”

“제가 그 종교를 믿지 않으니까 집에 가면 항상 이방인이거든요. 항상 종교적인 얘기를 하시는데 셋이서 이야기하다가도 제가 들어가면 딱 대화를 멈춘다든지, 여러 가지에서 제가 반대로 차별을 많이 받아요.”

“그건 차별이 아니에요. 예를 들어 정토회는 문경에서 ‘깨달음의 장’이라고 하는 수련을 해요. 그 수련을 한 사람은 수련한 내용을 다른 사람한테 얘기하지 않도록 돼 있어요. 비밀이어서가 아니라, 그 수련 내용을 들어서 머리로 이해하고 수련에 들어가면 깨달음의 정도가 약해져서 그래요. 그런 경우, 한번 보세요. 깨달음의 장에 다녀온 두 사람이 수련 이야기를 하다가 수련에 참가하지 않은 질문자가 들어가니까 이야기를 딱 멈춰요. 그러면 질문자가 볼 때는 약간 따돌림 당하는 것 같지요? 그래도 그게 꼭 그래서 그런 건 아니에요.

그러니까 그건 차별을 당하는 게 아니에요. 질문자와 믿음이 다르니까, 자기들끼리 이야기 하다가 믿음이 다른 어떤 사람이 오면 그 얘기로 오해를 살까봐 입을 다무는 거예요.

나한테는 그렇게 해 주는 게 더 좋지 않아요? 내가 들어왔는데도 계속 종교 얘기만 하고 있으면 내가 오히려 불편하잖아요. 말을 안 해주는 것은 비밀이어서가 아니라 나에 대해 굉장히 배려하는 거예요. 질문자가 생각을 좀 잘못하는 것 같아요. 피해의식이 좀 있는 것 같아요.”

“그런가요?”

“예를 들어서 목사님 두 명이 기독교 얘기를 하다가 스님이 쏙 들어가니까 기독교 얘기를 그만두고 일반적인 이야기를 하면 그게 스님을 왕따 시키는 거예요? 아뇨, 오히려 스님을 배려한 거예요. 스님이 들어갔는데도 둘이서 기독교 이야기만 자꾸 하고 있으면 그거야 말로 스님을 무시하는 거예요. 소위 ‘개무시’ 하는 거죠.(모두 웃음) 그러니까 그건 차별이 아니에요.

여자들만 있는 자리에 남자가 가면 불편하잖아요. 여자들끼리 둘러앉아서 막 얘기하다가 남자가 끼면 자기들 재미난 얘기를 못 해서 불편하니까 얘기를 멈추는 거예요. 그건 차별과는 성격이 달라요. 차별하는 게 아니에요. 그러니 질문자는 가능하면 그런 자리에 안 끼면 돼요. 거기 끼어서 뭐 하려고요? 끼고 싶으면 질문자도 그 종교를 믿으면 되죠. 종교는 안 믿고, 다 끼고는 싶고, 질문자는 욕심쟁이예요.”

“아니, 그렇지는 않습니다.”(질문자 웃음, 스님 웃음)

“공짜 방은 쓰고 싶고, 돈은 내기 싫고, 또 거기 가서 왕따는 안 당하려 그러잖아요. 질문자가 너무 욕심쟁이예요.(청중 웃음)

방이 없어서 노숙자가 됐는데 어떤 분이 ‘우리 집에 방 하나 있으니 와서 있어라’ 이래요. 좋아라 갔는데 ‘대신에 교회 나가야 한다’ 이러면 선택을 해야 하겠죠. 교회에 나가 주고 그 집에 살든지, 교회를 나가기 싫으면 그 집에서 아무리 좋은 방을 줘도 나와서 다리 밑에 가서 살든지, 이런 선택을 해야 해요. 그런데 그걸 가지고 그 사람 나쁘다고 하면 안 된다는 말이에요.

그러니까 그건 각자의 선택이에요. 어머니는 어머니 입장에서 질문자에게 ‘방을 줄 테니 교회 다녀라. 이 남자하고 결혼해라’ 이렇게 얘기하는 건데, 그건 질문자가 좋으면 하고 안 좋으면 안 하면 돼요. 어머니가 생각할 때는 딸이 밖에 나갔다가 사업에 실패하고 집에 들어와서 혼자 사는데 이 남자도 혼자 사니까 ‘그냥 둘이 같이 살면 되겠네.’ 이런 생각이 들 만하네요.”

“사실 제가 집을 나간 것도 어머니가 그렇게 얘기를 하셔서 나갔다가 들어온 거예요.”

“지금은 결혼 얘기 안 하세요?”

“예. 제가 좀 ‘욱’ 하는 게 있어서요.(질문자 웃음) 스님 즉문즉설을 한동안 들어서 집에 들어온 대신 부모님께 용돈 드리고 청소하고 열심히 밥 하고 있습니다.”

“잘 했어요. 법문 잘 들었네요. 그렇게 방값을 내고 독립을 해버리면 돼요. 내가 이 집에 산다고 기죽을 것 없어요. 공짜로 얻어먹으면 약간 기가 죽지만 그렇게 내 할 일 하고 살면 돼요. 그런데 그 남자분은…, 오빠라고 불러요? 나이가 같아요?”

“나이는 네 살 정도 많고요. 제가 가출했던 시점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대화를 해본 적이 없어요.”

“질문자도 독하네요.(모두 웃음) 한 집에 사는데 대화를 해 본 적이 없다고요?”

“네. 심지어 서로 있는지도 모르고 있다가 부엌 같은 데서 마주치면 화들짝 놀라서 둘 다 방으로 들어가거든요.”(질문자 웃음)

“왜 그래요?”

“그냥 불편해서요.”

“질문자가 어릴 때부터 ‘아들도 아닌 게 왜 우리 집에 들어와서 아들 역할을 하나?’ 이런 생각이 좀 있었던 거 아니에요?”

“그런 것도 있는 것 같고요, 사지 멀쩡하고 자기 집도 있는데 저희 집에 아직까지 왜 사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계속 저를 지배하고 있는 것 같아요.”(질문자 웃음)

“질문자가 좀 고지식해요. 어머니는 그 청년이 믿음이 견고하니까 집에 데려와서 아들처럼 키웠겠죠.”

“그런데 저는 잘 모르겠어요.”

“그 남자가 믿음이 없는 것 같아요?”

“제 느낌에는 뭔가 다른 목적이 있어서 저희 집에 온 것 같아요.”

“질문자가 보기에는 다른 목적이 있는 것 같겠지만 어머니, 아버지가 보기에는 같은 절이나 같은 교회 다니고 믿음도 있고 착실해 보이니까 집에 데려다가 키우지 않았을까요?”

“뭐... 그러셨겠죠.”(질문자 웃음)

“>(청중을 향해) 얘기 들어보니까 누가 문제인 것 같아요? 질문자가 보통이 아니에요.(모두 웃음) 와, 어떻게 한 집에 사는데 말을 안 하고 살아요? 질문자가 그 남자를 완전히 무시하는 것 같은데요.”

“그 분도 그 정도는 감수해야 하지 않나요?”(질문자 웃음)

“그건 그 사람에게 제가 할 이야기죠. 질문자가 무시하는 건 잘못됐죠.”

“아, 그럴 수 있겠네요. 제 잘못일 수 있겠네요.”

“사람을 무시하면 안 돼요. 누구나 와서 살 수도 있고, 그 정도 살았으면 한 집안 식구예요. 그러니까 그렇게 너무 무시하지 마세요. 또 밖에 나가서 살다가 들어와서는 갑자기 질문자가 주인 행세를 하잖아요. 부모 혈통 받은 게 뭐 대단하다고 그걸 가지고 질문자가 그렇게 ‘갑질’을 해요?(모두 웃음) 돈이 없어서 남의 방 얻어 사는 주제에 그러면 안 되죠. 혈통은 중요한 게 아니에요.

얼마 전에 우리나라에서 이런 일이 있었죠. 아이가 중학교 들어가면서 학교에서 혈액검사를 했는데 엄마 아빠에게서 나올 수 없는 혈액형이 나온 거예요. 그러면 중간에서 엄마가 마음이 불편해요. 자기는 바람피운 적이 없으니까요. 해명을 하고 싶잖아요. 그래서 왜 이런가 원인 찾기를 거듭하다 보니까 병원에서 아이를 낳았을 때 같은 시간에 난 아이가 있었어요. 병원에 가서 출산 기록을 보니까 두 아이가 있었는데 똑같이 남자애예요. 그래서 그 주소대로 찾아가서 혹시 아이가 바뀌었는지 모르니 검사를 한번 해보자고 하니까 그 집에서 난리가 났어요. ‘아니, 십 몇 년 만에 갑자기 애가 바뀌었다니 그게 무슨 소리냐?’ 그래도 이 분이 하도 빌어서 조사를 해보니 정말 애가 바뀐 거예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질문자 같으면 어떻게 할래요? 애가 바뀌었으면 키우던 대로 키워야 할까요, 바꿔서 데려와야 할까요?”

“저는 그냥 키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성인이 될 때까지 혹은 그 아이가 알기 전까지는요.”

“어느 쪽이 내 아이예요? 키운 게 내 아이예요, 저쪽 집에 있는 아이가 내 아이예요?”

“아뇨, 지금 키우고 있는 애를 그대로 그냥 내 아이라고...”

“예. 그러면 질문자 주장은 혈통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거 아니에요?”(모두 웃음)

“네. 그러네요.”(질문자 웃음)

“그래요. 그런데 이 얘기 속 부모들은 검사 결과대로 애를 바꿨어요.(모두 탄식) 애초에 혈액형 검사가 없었다면 전혀 다른 생각을 안 했겠죠. 그러니까 혈통이 같아야 내 아들이에요, 내 아들이라고 믿고 있으면 내 아들이에요?”

“믿고 있으면 내 아들이요.”(청중)

“예, 기른 자가 부모예요. 그런데 한국 사람들은 아직도 혈통을 좋아해요. 질문자는 정말 한국 사람이네요.(스님 웃음)

이런 얘기를 하는 이유는 혈통이 그리 중요한 게 아니라는 거예요. 그 사람하고 결혼하는 건 안 해도 되고 종교도 안 믿어도 돼요. 하지만 ‘왜 네가 우리 집에 와서 사느냐? 무슨 꿍꿍이가 있겠지.’ 이런 생각은 버려야 해요. 그러면 누가 불편하겠어요?”

“제가요.”(질문자 훌쩍임)

“예, 내가 불편해요. 그러면 늘 그런 긴장을 하고 살아야 하잖아요. 그러니까 ‘어머니 아버지가 좋아하니까 어머니 아버지 아들이다’ 이렇게 생각하세요. 내가 ‘오빠’라고 부를 건지 안 부를 건지는 내가 정하면 돼요. 그러나 ‘그 사람은 어머니 아버지 아들이 아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안 돼요. 좋아서 키우면 아들이에요. 어머니 아버지는 아마 입양했다고 생각할 거예요. 옛날 같으면 양자를 데려왔다고 하죠. 데려온 양자도 그 집 아들이잖아요. 혈통이 그리 중요한 건 아니에요.

그렇게 생각하시고 이 집 아들로서 인정해주고, 질문자도 이 집 딸이니까 이 집 딸로서 생활하면 돼요. 그러면 이제 어머니가 ‘결혼해라’ 그럴 때 할 말이 있겠죠. 뭐라고 할까요?”

“죄송합니다아?”

“아뇨, 아니에요.(모두 웃음) ‘결혼해라’ 하는데 마음에 안 들면 ‘형제사이에 어떻게 결혼해요?’ 이러면 돼요. 알았죠?”(모두 웃음, 스님 웃음)

“이해가 쏙 되네요, 스님.”(질문자 웃음)

“그렇지요? ‘아이고, 엄마, 아무리 그렇지만 형제 사인데 어떻게 결혼해요?’ 이렇게 딱 끊어버리면 돼요. 그리고 형제 같이 지내고요. 오히려 형제 같이 지내주고, 결혼 문제는 ‘형제간에 어떻게 결혼하느냐’ 하고 끊으면 돼요. ‘무슨 형제냐? 피가 섞였냐?’ 이렇게 말하면 ‘그러면 피도 안 섞였는데 어떻게 아들이야?’ 이렇게 대답하면 할 말 없겠죠?”

“예.”(질문자 활짝 웃음)

“부모님이 아들 같이 생각하면 형제라고 결혼 안 하면 돼요. 결혼하라고 하면 ‘어떻게 형제간에 결혼해?’라고 하고, ‘피도 안 섞였는데 무슨 형제야!’ 이러면 ‘그러면 피도 안 섞였는데 왜 엄마 아빠 아들이지?’ 딱 이렇게 해버리면 부모님이 할 말이 없어지잖아요. 스님이 이런 것까지 가르쳐줘야 해요?”(모두 웃음)

“감사합니다.”(질문자 밝아진 목소리, 모두 박수)

확연하게 밝아진 질문자의 목소리에 다 함께 기뻐하였습니다. 박수소리가 꽤 길게 이어졌습니다. 스님은 밝고 가볍게 말하였습니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우리가 정말 괴로울 일이 있어서 괴로워요, 각자 뭔지 잘 몰라서 만들어서 괴로워하는 것 같아요?”

“만들어서요.”(대중)

“그래요? 네. 맞아요, 우리는 항상 문제를 스스로 만들어서 괴로워합니다. 오늘만 해도 보세요. 여기 질문자는 혈통주의에 빠져서, 그 옆에는 조울증 환자의 말과 행동에 걸려서, 또 그 뒤에는 나이 서른 넘은 아들 야뇨증 있다고 걱정하고, 그 앞에는 동료가 하는 말에 걸려서 힘들어 해요. 그러니 모든 게 걱정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잖아요. 여러분이 스님하고 얘기하면서 생각하니까 또 아무것도 아닌 게 되잖아요.

그러면 원래 문제가 있는데 제가 아니라고 해서 문제가 없어진 걸까요, 본래 문제가 없는 것을 스스로 너무 과민해서 문제를 만들었을까요? 그래요, 원래 괴로울 일이 없어요. 그래서 부처님께서 ‘모든 사람은 다 행복할 권리가 있다’라고 말씀하신 거예요. 그런데 우리가 뭔가를 너무 두려워하거나 자기 욕심대로 안 된다고 어떤 생각에 사로잡혔기 때문에 지금 이런 문제가 발생한 거예요.

‘한 생각 돌이킨다’ 이런 말 들어봤죠? ‘한 생각 탁 놔버린다, 방하착(放下着)’ 그러면 괴로울 일이 없어집니다. 이렇게 공부를 해나가야 합니다. 그러면 지금보다 훨씬 행복할 수 있어요.”

스님의 말이 경쾌하게 끝이 났습니다. 질문자와 스님과의 대화에 빠져서 듣다보니 마무리할 시간이 되었다는 것도 잊었습니다. ‘행복한 대화’의 시간이 끝나고 사인회가 무대에서 바로 이어졌습니다. 길게 늘인 줄에 질문자들도 책을 한 권씩 혹은 여러 권씩 들고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혈통주의(?)’ 질문자가 스님께 책을 내밀며 인사했습니다.

“스님, 제 숙원의 고민을 해결했습니다. 감사합니다.”
눈물이 고인 채로 밝게 웃으며 말하자, 스님은 “그래요. 너무 혈통주의자가 되진 마세요.” 라며 특유의 함박웃음을 보였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분들에게 강연 후 소감을 물어보았습니다.

“제 아내가 떠올랐습니다. 아내의 마음이 이해가 되었고요. 그동안 제가 아내를 이해하고 있지 못해서 그랬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지막 질문과 답에서 눈치 보지 말고 살라는 말씀이 시원했어요. 제 주변 사람들 생각이 많이 났는데 함께 들었으면 좋았을 것 같아요.”

밤바람이 평소보다 차갑게 불어왔습니다. 스님은 강연장 뒷마무리에 분주한 자원봉사자들의 손을 잡으며 “오늘 준비하느라 수고했어요.” 인사하고 강연장을 나왔습니다.

깊은 밤, 돌아오는 길에 한강의 물이 바람에 출렁이며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함께 만든 사람들
임혜진, 심규선, 전기돈, 정란희, 손명희, 조태준

전체댓글 15

0/200

수현

질문자분 고민 해결되서 다행이지만 솔직히 저라도 그 상황이면 힘들 것 같네요...

2017-02-27 12:26:52

지혜

힘들고 답답했던 분
행복하게 살면 좋겠네요

2017-02-26 22:56:36

베트남

감사합니다.
한 생각 내려놓고
행복하게 살겠습니다.

2017-02-26 20: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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