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17. 02. 27 ~ 28 봄맞이 농사 준비와 부안예술회관 강연
남편과 의견차이가 심해 잘 다퉈요

서원행자대회를 마치고 두북으로 달려왔습니다. 원래 중국 가는 일정이 있었는데 약속이 취소되어 없던 하루가 온전히 생긴 것 같습니다. 법륜 스님은 봄 농사 준비를 하기로 하였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일기예보를 보니 12시 경, 비 올 확률이 높았지만 아직까지는 하늘도 바람도 햇빛도 농사 준비하기에 딱 좋은 날씨입니다. 인도에서 오신 보광법사님과 여광법사님도 스님께 인사드릴 겸, 봄 농사 준비를 돕겠노라 두북으로 온다 하였습니다.

아침 공양 후 스님은 먼저 퇴비를 가져오는 것으로 봄 농사 준비를 시작하였습니다. 비어있는 정원 한 쪽을 흙으로 덮어 농사지을 공간을 만들 예정입니다. 퇴비와 부엽토, 산 흙과 밭 흙을 잘 섞어 덮어야 농사지을 수 있는 영양분이 있는 땅이 마련됩니다.

지혜명이 두 분 법사님을 마중하러 간 사이, 스님은 입구 감나무와 뒤켠에 있는 감나무 가지를 정리하였습니다. 사다리를 놓고 높이로 자란 가지들을 쳐 내면 아래에서는 주워다가 한 쪽에 모았습니다. 모아놓고 보니 감나무 가지들이 수북합니다.


보광 법사님과 여광법사님이 도착하였습니다. 법사님들은 쌓인 가지들을 보자, 일부터 시작합니다. 스님은 톱으로 굵은 가지들을 불 때기 좋은 크기로 자르고 여광 법사님은 손도끼로 작은 가지들을 잘랐습니다. 조를 맞추어 일을 하다보니 금세 수북했던 가지들이 땔감으로 준비되었습니다. 스님은 정원 곳곳에 널린 낙엽들도 싹 주워서 아궁이 옆에 모아두라 하였습니다. 곳곳에 떨어진 작은 가지 하나도 그냥 버리지 말고 땔감으로 쓴다 하십니다.

감나무 가지 정리를 마치고 점심 공양을 하였습니다. 후두둑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일기예보가 정확한가봅니다. 스님은 “곧 멈출 비야. 비 그치면 부엽도 가지러 가야한다.” 하였습니다. 멈출 것 같지 않던 비였는데 한 시간 가량 지나니 빗방울이 약해지고 있었습니다.

스님은 포대 자루, 삼태기, 삽과 갈쿠리를 챙기고 작은 손수레도 챙겨가자 하였습니다. 여섯 명이 인적이 드문 저수지 길을 걸어가며 산에서 쓸려 내려온 나뭇잎과 솔가지들을 걷어내고 부엽토 채취(?)를 하였습니다. 갈쿠리를 든 보살님, 삽을 들고 포대에 담는 스님, 포대를 든 법사님. 길을 가며 한 포대 한 포대 담다보니 열 포대가 넘는 것 같습니다. 스님은 “이 정도면 밥값은 하겠다.” 이제는 들고 내려가는 게 일이라 하였습니다. 가슴에 안기도 하고 머리에 이기도 하고 수레에 끌기도 하고, 열 포대가 넘는 부엽토 포대를 들고 내려가는 게 만만치 않았습니다. 부엽토 포대와 씨름하며 내려가고 있는데 스님이 빈 포대 한 자루를 들고 오라 하였습니다. 포대를 들고 갔더니 스님은 길가에 소나무 잎이 떨어진 갈비들을 갈쿠리로 긁어 모아두고 있었습니다. 갈비들이 부피가 커서 발로 꽉꽉 눌러 포대에 담았습니다. 스님께 왜 가져가려는지 여쭤보니,

“갈비는 불쏘시개로 쓰면 제격이거든. 갈비 한 줌이면 통나무에도 불붙일 수 있고. 이 정도 양이면 열 번은 불쏘시개로 더 쓸 수 있다.”

가슴에 갈비 포대를 안고 걸어가는데 스님은 다시 말을 이었습니다.

“이렇게 하루하루 일하는 삶이 좋지. 넉넉하지는 않아도, 풍족하지는 않아도 사는 데는 어려움이 없지. 풍족한 게 가치가 아니라 일하며 사는 가치를 아는 게 중요하지.”

저 앞에 부엽토 포대자루를 서로 머리에 이어주는 법사님이 보였습니다. 저만치 가다가 서고 가다가 서면서 깔깔거리며 웃는 법사님과 보살님이었습니다.


부엽토 포대를 세어보았습니다. 모두 열세 포대였습니다.

“어이구, 이 정도면 오늘 하루 밥값은 했구나.”

어스름 해가 지고 있었습니다. 시간이 참 빨리 갑니다. 봄 농사 준비로 할 게 참 많은데 벌써 하루가 다 갔습니다. 그래도 오늘은 밥 값한 날이라 대만족입니다. 오늘은 저녁을 먹고 일찍 잤습니다. 다들 일하느라 피곤했는지 코를 골며 잘도 잡니다.

스님과 수행팀 일행은 자정쯤에 일어나 서울로 출발하였습니다. 아침부터 회의 일정이 잡혀 있어서 그 전에 도착해야 했습니다. 서울에 도착하니 아침 예불 시간이 되었습니다. 새벽에 서울에 도착하여 스님은 오전 내내 회의와 손님 맞이를 하고 오후 1시가 넘어서 오늘 강연이 있는 부안으로 출발하였습니다. 가는 길에 산책도 할겸 백제 역사유적지도 탐방할 겸 부여의 부소산성을 들러보기로 하였습니다.


백제 궁궐의 후원으로 방어의 역할을 하기 위해 축성되었던 이곳에는 백제말 의자왕과 삼천 궁녀의 전설이 담겨 있는 낙화암, 고란사도 위치해 있었습니다.
한 바퀴 둘러보고 가면 될 듯하여 시작한 코스가 두 시간 꼬박 걸어서야 처음 출발한 주차장으로 돌아왔습니다. 강연 장소까지 한 시간 남짓 거리에 있어서 서둘러 차를 달렸습니다. 가는 길에 휴게소에 들러 우동으로 바쁜 저녁 요기를 하고 강연장에 맞춰 도착하였습니다.

부안 지역은 남녀노소, 특히 청소년들이 많이 참가한 풍경이었습니다. 부모님과 혹은 친구들끼리 강연에 참가하여 진지하게 듣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총 일곱 개의 질문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 요즘 정국과 사회에 대한 질문이 네 개나 되었습니다. 뚜렷한 소신을 가지고 스님께 의견을 구하는 모습이 다른 곳에서 볼 수 없었던 모습이었습니다. 일곱 개의 질문 중 가장 청중의 호응이 많았던 스님과 질문자의 대화를 싣습니다.

“저는 10년 연애한 남편과 결혼한 지 이제 5개월 된 신부입니다. 저는 연애를 오래 하고 결혼했으니까 서로를 잘 알아서 결혼 뒤 싸울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뜻밖에 자주 다툽니다. 부부로 살면서 전혀 안 싸울 수는 없을 텐데, 현명하게 싸우는 방법이 뭔지 궁금해서 질문 드립니다.”(모두 웃음)

“그걸 스님한테 물으면 어떡해요?(모두 웃음) 결혼한 지 5개월 밖에 안 되었는데 벌써 싸우고 있다고요. 질문자는 10년 연애하는 동안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몰랐어요?”

“많이 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같이 살아보니까 제가 알던 사람과 전혀 다른 사람인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더라고요.”

“구체적으로 어떨 때 남편이 전혀 다른 사람처럼 느껴졌어요?”

“제일 많이 부딪치는 부분인데, 신랑은 저한테 ‘너는 약속에 대해서 너무 엄격하다. 융통성을 있게 좀 넘어가도 될 일을 가지고 항상 싸움을 건다’고 말해요.
저는 ‘약속은 지켜야 되는 거고, 정확하게 하고 사는 게 좋은 거다’는 기준이 있어서 남편과 생각에 차이가 있어요.”

“구체적으로 어떤 약속을 지켜야 된다, 안 지켜도 된다며 싸움이 있었어요? 예를 들어보세요.”

“귀가시간 때문에요. 예를 들면, 신랑이 동창회를 가게 됐는데 그때 신랑이 ‘몇 시까지 들어오겠다.’는 약속을 하고 동창회를 갔는데도 귀가시간이 늦어졌어요. 그래서 저는 ‘지난번에도 같은 이유로 싸웠는데 왜 또 약속을 어기느냐?’고 했는데, 신랑은 ‘그렇게 많이 늦은 것도 아닌데 좀 이해하고 넘어가면 될 일을 꼭 싸울 거리로 만든다.’고 하거든요.”(모두 웃음)

“이 질문자에게 의견을 말할 게 있으신 분은 손을 들어보세요. 남자 분 중에서 한 분이 ‘남자 입장에서는 이렇다’라고 얘기해 보시겠어요? (손 든 사람 없음) 부안이 작은 동네라 그런지 선뜻 얘기하기가 꺼려지시나 봐요. 그래도 자유롭게 한번 얘기해 보세요. 저기 남자 분, 말씀해 보세요.”

“(청중1) 저는 정읍에 살고 있는데, 신혼 때 전주에 가서 술을 마시고 정읍 집으로 돌아오지 못해 외박을 한 적이 있었어요. 운전해서 귀가를 했어야 하는데 음주운전을 할 순 없는 일이라 그냥 차 안에서 자고 아침 일찍 집으로 온 거예요. 집에 들어가면서 저는 평소대로 ‘여보, 저 왔어요’ 했는데 당시 처는 그런 제 태도에 기가 막혔다는 거예요. 처는 술 마시고 외박까지 한 저를 이상하게 생각했나 보던데, 저는 그게 아니었거든요. 당시엔 요즘처럼 대리기사가 많을 때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택시를 타고 전주에서 정읍까지 올 수도 없었기 때문에 저는 ‘나한테 어떻게 하라는 거야? 음주운전이라도 해서 집에 와야 된다는 거야?’ 싶더라고요. 전주에 가기 전에 제가 처에게 ‘오늘은 술도 안 마실 거고, 저녁에 집에 들어가겠다’고 얘기하긴 했어요.”

“당시에 핸드폰은 없으셨어요?”

“(청중1) 있었어요.”

“그럼 부인한테 전화하면 되잖아요.”

“(청중1) 전화했어요.”

“술을 마셔서 운전을 못 하겠으니까 자고 가겠다고 전화했어요?”

“(청중1)아... 제가 전화를 안 했던가...?(모두 웃음, 옆에 앉아있는 처에게) 여보, 내가 전화했던가? 아, 처 말로는 제가 전화 안 했답니다.”(모두 웃음)

“아이고, 그러면 질문자에게 무슨 말을 해 줄 자격도 없으시네요.”(모두 웃음)

“(청중1) 예. 그냥 제 경우를 말씀드린 거예요.”(모두 웃음)

“술 마시느라 집에도 안 들어오면서 전화도 안 해 주고는 아침에 들어오면서 ‘여보, 나 왔어’ 그러면 어떤 여자가 가만히 있겠어요?”

“(청중1) 아...” (모두 웃음)

“남편이 어디 가서 자고 들어오는 길인지 집에 있던 처가 어떻게 알겠어요?”

“(청중1) 저는 신뢰할만한 남자예요. 저를 그렇게 못 믿으면서 저랑 결혼생활을 하면 안 되죠.”

“남자가 저렇다니까요.(모두 웃음) 바람피는 남자들은 전부 그렇게 얘기하면서 오리발을 내미는데 어떤 여자가 그런 말을 믿겠어요?”(모두 웃음)

“(청중1) 어... 처음에는 위풍당당, 기고만장한 제 모습을 보고 그냥 웃더라고요. 그런데 나중에 제 얘기를 듣더니 처도 웃고 넘어갔고, 저도 ‘미안하다. 다음부터는 만취해서 집에 못 들어올 상황이면 전화는 꼭 하겠다’고 해서 서로 그렇게 합의를 봤습니다.”

“질문자의 남편이 저 남자 분보다는 나아요, 못해요?”

“훨씬 나아요.”(모두 폭소)

“남자 분은 질문자를 위해서 아주 좋은 조언을 해 줬어요. 질문자는 남자 분의 얘기를 듣고 위안이 됐나 봐요.(모두 웃음) 또 다른 분, 질문자에게 조언을 해 주실 분 계세요?”

(청중 중에 여자 분이 질문자한테 다시 질문을 한 후에 조언 함.)
‘여보, 잘 다녀와. 그런데 새벽 3시 전에는 들어와. 출근은 해야 되니까.’ 그러면 되지 않을까요? 남편은 매일 집에서 보는 사람인데, 어쩌다 만나는 사람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중에 남편이 ‘몇 시까지 꼭 들어와!’라고 한다면 저는 더 들어가기가 싫을 것 같아요.(남자들 박수) 중대사에 대한 약속이라면 모를까, 그런 경우가 아니라면 굳이 그렇게 싸울 필요가 있나 싶어요. 부부싸움을 했을 때 손해는 싸움을 건 나한테 돌아오더라고요. 그래서 애태우면서 기다리는, 그런 에너지 낭비를 하지 마시고, 그럴 시간에 차라리 생산적인 다른 일을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질문자는 청중 두 분의 얘기를 들은 지금 마음이 어떠세요? 남자 분의 얘기는 위로가 됐죠? 그런데 질문자는 남편이 남편 친구들로부터 좋은 친구로 인식되는 게 나아요? ‘에이, 저거, 저거’ 이렇게 좀 문제가 있는 친구로 취급받는 게 나아요?”

“좋은 친구요.”

“친구들과 같이 술 마시다가 남편이 ‘마누라와 약속했기 때문에 이제 나는 집에 가야 된다’ 그랬을 때 남편 친구들이 ‘그래? 그럼 얼른 가야지. 얼른 가라’ 이럴까요?(모두 웃음) 아니면 ‘너만 장가갔냐?’ 이럴까요?”

“후자처럼 말하겠지요.”

“그래요. 그런데 실제 남편이 술자리를 파하고 귀가하면 그 친구들이 ‘저 녀석, 여자한테 꽉 잡혀 사는구나. 전에는 안 그러더니 장가간 뒤에 변했다.’ 이런 식으로 이야기한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남편 나름대로 적절하게 정리하고 귀가하도록 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질문자는 남편이 12시까지 안 들어왔다고 시비하지만, 남편 입장에서는 2차, 3차 갈 정도인데 겨우 2차에서 마무리 하고 들어온 거니까 아내가 따지면 ‘왜 잔소리를 하느냐?’고 하게 되는 거예요.”

“제가 불만인 건, 남편은 ‘넌 이렇게 해야 돼’라며 제 행동은 엄격하게 제지하면서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는 ‘그럴 수도 있지 않나?’라고 하기 때문이거든요.”

“사람들은 다 이 문제는 이렇게 생각하고, 저 문제는 저렇게 생각하는데, 그 기준이 다 누구 기준이겠어요?”

“자기 기준이요.”

“예, 각자 본인이 기준이에요. 그러니까 ‘기준!’하는 깃발을 본인이 갖고 다니기 때문에 본인은 자기가 오른쪽으로 가는지, 왼쪽으로 가는지도 몰라요. 지금 스님 앞에는 탁자가 있는데, 이 탁자를 기준으로 삼으면 스님이 탁자 오른쪽에 서있는지, 왼쪽에 서있는지 분명히 알 수가 있지요. 그런데 기준이 되는 깃발을 본인이 가지고 다니면 이쪽 구석에 가도 자기가 중심, 저쪽 구석에 가도 자기가 중심이라고 인식하는 거예요. 인간의 의식이라는 게 그런 성질이 있어요.

그러니까 질문자의 남편은 일부러 약속을 어기는 게 아니에요. 자기도 모르게 자기를 중심에 놓고 사물을 보는, 그게 인간의 한계예요. 그래서 인류의 스승인 붓다께서 ‘자기중심성을 내려놔라. 그래야 이 세상을 공평하게 볼 수 있다’고 가르치신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게 잘 안 되지요. 항상 자기 기준으로 세상을 보며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질문자가 남편에게 ‘자정까지는 들어오세요’ 했는데 남편이 새벽 1시에 들어왔다면 물어봐야지요. 질문자는 ‘왜 우리 착한 남편이 나와의 약속을 자꾸 어기는 걸까?’ 궁금하지도 않아요?(모두 웃음) 궁금하기 보다는 ‘이게 또 약속을 어기는구나!’ 싶은 거죠.(모두 웃음)

그럴 게 아니라 ‘무슨 일이 있어서 나와의 약속을 어겼을까?’ 궁금해 하면서 ‘여보, 오늘 무슨 일이 있었어요?’ 이렇게 물어보면 ‘친구랑 만나서 얘기하다 보니 늦어졌어’라고 하겠죠. 그럼 ‘여보, 아무리 친구가 좋아도 아내와의 약속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라고 말하면 ‘물론 당신과의 약속도 중요하지만 오랜 만에 만난 친구와 얘기하다보니까 중간에 일어서기가 어려웠어. 미안해.’ 이러겠지요. 이렇게 대화를 이끌어야 해요. 따지지 말고요. 그런데 따지더라도 유머러스하게 따지세요.

그리고 질문자는 ‘왜 12시에 들어오기로 해 놓고 어겨?’라는 마음이 있는 것 같은데 ‘12시’라는 건 질문자의 기준인 거예요.

미국에서 있었던 일인데요, 한 부인이 자기는 결혼 20년차인데 남편에게 한 번도 미안하다고 이야기해 본 적이 없었대요. 그래서 사람들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며 다 의아해 했어요. 그랬더니 ‘우리 남편은 나 없으면 못 산다. 우리 남편이 어느 정도로 어린애 같냐 하면, 아침에 출근할 때 넥타이 하나, 양복 하나, 심지어 와이셔츠나 양말 하나도 스스로 못 고른다. 그래서 아침 먹고 난 뒤에 내가 넥타이도 매주고, 양말도 신겨주고, 옷도 골라줘야 된다’는 거예요.

이 얘기가 왜 나왔느냐면, 그 여자 분이 수련을 하다가 도중에 가겠다고 하기에 그 이유를 물었더니 ‘나 없으면 우리 남편은 하루도 못 산다’고 하면서 이 얘기가 나왔던 거예요. 그런데 제가 그 얘기를 듣고 속으로 웃었어요. 남편이 부인을 수련하는 곳에 데려다주고는 저를 사람들 없는 구석으로 살살 끌고 가더니 저한테 ‘스님, 여기서 며칠만 지내면 인간이 됩니까?’라고 묻고 갔거든요.(모두 웃음) 그런데 그 부인이 고집불통이라서 아무리 얘기해도 털끝만큼도 물러섬이 없는 거예요. 딱 자기만 옳은 거예요. 그런데 그 부인이 수련이 끝나는 5일째 되는 날 생글생글 웃으면서 저한테 물었어요.

‘스님, 제가 고집이 세요?’

‘예.’

‘얼마나요?’

‘글쎄요.’

‘좀 센 편이에요?’

‘예, 많이 센 편이지요.’

그 부인은 아무 것도 못 깨닫고 ‘내가 고집이 좀 센가?’ 하는 정도만 알고 돌아갔는데, 그렇게 돌아가서 사람이 바뀌었어요. 그래서 그 언니 되는 분이 저한테 전화해서 ‘스님, 도대체 내 동생한테 어떻게 하셨기에 동생이 저렇게 바뀔 수가 있습니까?’라는 거예요. 그리고 제가 그 다음에 미국에 갔을 때 이번에는 남편이 수련에 왔어요. ‘도대체 스님이 뭘 어떻게 했기에 아내가 저렇게 바뀔 수 있나?’ 싶었나 봐요. 그래서 제가 수련 중에 그 남편한테 물었어요.

‘그때 무엇 때문에 그렇게 화가 났습니까?’

‘아내 때문에 화가 많이 납니다.’

‘왜 아내 때문에 화가 났습니까?’

‘저는 옷을 아무렇게나 입는 편입니다. 옷을 대충 편하게 입는데 제 아내는 반드시 무슨 와이셔츠에는 무슨 넥타이를 매야 되고, 양복 색깔에 맞춰서 양말과 구두를 신어야 된다는 게 있어서 아침마다, 출근할 때마다 둘이 다툽니다. 이미 제가 옷을 다 입고 출근하려는 데도 아내가 나를 잡아서 입은 옷 다 벗기고, 다시 바꿔 입힙니다. 어떤 때는 너무 너무 화가 나는데, 그런 점만 빼고는 아내가 살림도 잘 살고, 착실하기 때문에 화도 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날은 차 있는 데로 와서 넥타이를 확 벗어서 땅바닥에 패대기치고는 구두로 밟아버리기도 하고요, 어떤 때는 차를 몰고 가다가 그대로 박아서 죽어버리고 싶을 정도로 화가 날 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그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서 아예 팬티와 러닝만 입고 소파에 앉아서 아내가 옷을 골라줄 때까지 기다립니다. 어차피 제가 골라서 입어봐야 아내가 다 벗기고 새로 입힐 것이니까요.

재밌지요?(모두 웃음) 부인은 ‘우리 남편은 나 없으면 못 산다. 옷도 하나 입을 줄 몰라서 내가 다 입혀줘야 된다’ 그러고, 남편은 ‘아내 극성에 다 포기하고 그냥 나는 팬티와 러닝만 입고 대기한다’고 그러고요. 한 집에 사는 두 사람인데, 저만 가운데 서서 두 사람을 모두 보고 있는 거예요. 그런데 그 두 사람이 그런 서로의 모습을 조금 보게 되면서 완전히 바뀌었어요. 그래서 제가 매년 미국에 갈 때마다 그 부부는 ‘스님 덕분에 우리 부부가 다시 신혼이 되었다’며 감사의 표시로 1,000불씩 보시를 합니다.

부부가 같이 살다 보면 두 사람이 서로 다르다는 걸 알게 되지요. 남편은 아내가 차린 음식을 먹고는 ‘싱겁다. 이것도 간이라고 맞췄냐?’ 하지만 아내는 똑같은 걸 먹고 ‘간이 딱 맞는데 뭘 그러냐?’고 하는 거예요. 같이 살아보면 이렇게 전부 다른 거예요. 남편은 샤워하러 들어갈 때 옷을 벗어서 아무렇게나 던져놓고 들어가는데, 아내는 그 벗은 옷도 차곡차곡 개서 쌓아놔야 되는 사람이 있고, 남편은 젖은 수건도 말렸다 또 사용하는데, 아내는 1번 사용한 젖은 수건은 무조건 빨래통에 집어넣는 사람이고요. 이렇게 소소한 걸로 두 사람을 비교해 보면 100가지, 1000가지 갈등이 있을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이건 두 사람이 결혼해서 함께 사는데 필연적으로 따르는 요소입니다. 그러니까 질문자는 ‘나와 남편이 얼굴이 다르듯이 두 사람은 취향이나 믿음이나 가치관이 다르다’는 걸 인정해야 합니다. ‘틀렸다’가 아니라 ‘다르다’는 걸 인정해야 합니다. 붓다께서는 ‘옳고 그른 게 없다’고 하셨잖아요. 옳고 그른 게 없고, 두 사람이 어떻다고요?”

“달라요.”

“예, 다를 뿐이에요. ‘아, 우리 남편은 나보다 조금 짜게 먹구나’ 하고 간장을 항상 식탁 위에 두든지, 아니면 남편 입맛에 맞춰서 간을 좀 짜게 하고 자기는 국에 뜨거운 물을 조금 부어서 먹든지, 남편이 옷을 아무 데나 벗어놓으면 그냥 두든지, 아니면 자기가 접어주든지, 남편이 젖은 수건을 쓰면 그냥 두든지, 아니면 자기가 얼른 새 수건으로 갈아주든지 하면 되지, 그걸 갖고 ‘왜 짜게 먹느냐? 왜 옷을 아무 데나 벗어두느냐? 왜 썼던 수건을 또 쓰느냐?’고 짜증내면서 말할 게 아니에요. 그렇게 그냥 맞추고 사는 게 결혼이에요. 그러니까 결혼은 딱 맞는 두 사람이 만나서 사는 게 아니고, 서로 다른 사람이 만나서 맞춰가면서 사는 거예요. 어떻게 생각해요?”

“맞춰서 살아볼게요.(모두 웃음) 감사합니다.”(모두 박수)

“제가 이렇게 얘기하면 다들 ‘스님이라면 잘 맞추고 살 수 있겠어요?’라고 질문해요. 그럼 저는 ‘난 못 맞춰’라고 하죠. 그럼 또 ‘그런데 왜 우리한테는 맞추라고 그래요?’ 하면 저는 ‘당신은 결혼을 했으니까’ 그럽니다. 그러니까 결혼한 사람이 수행을 더 열심히 해야 되겠어요, 혼자 사는 사람이 더 열심히 해야 되겠어요?”

“결혼한 사람이요.”(대중들)

“예, 결혼한 사람은 수행을 더 열심히 해야 행복하게 살 수가 있어요. 그러니 재가 수행자가 도력이 더 높습니다. 이 대승불교에서는 ‘비구’보다도 더 높은 게 ‘보살’이잖아요. 그러니 이 세상에서 같이 살면서 수행하는 게 더 높은 도이니까, 살면서 못 맞추겠거든 낮은 도로 내려오셔야 돼요. 즉 머리를 깎고 출가를 하셔야 됩니다. 그런데 질문자는 남편하고 둘이 살아볼래요?”

“예.”(웃음)

“예, 한번 해 보고 안 되거든 오세요.(모두 웃음) 괜히 남편만 나무라지 말고, 자기가 도력이 안 되는 걸 인정하고 ‘안녕히 계세요’ 하고 오세요.”(모두 웃음)

질문자는 경쾌하게 “남편과 잘 살아 볼게요”라고 대답하며 웃었습니다. ‘서로 다르다’는 것을 현실에서 인정하며 사는 것이 쉽지 않나 봅니다. 강연을 마치고 로비에서 책 사인회가 열렸습니다. 어르신들, 아이들, 주부, 성인 남자 분 등 많은 분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한 학생에게 다가가 물어보았습니다.

“오늘 스님 강의 어땠어요?”

“아, 오늘 주제가 ‘행복한 대화’였는데 너무 정치적인 질문들을 많이 해서 재미가 없었어요. 좀 지루했고요.”

옆에 서 있던 어머니가 눈치를 주자 학생은 어머니에게 자신의 의견을 더 강하게 피력하였습니다. 재미가 없다고 느낄 수도 있겠지요. 학생에게는 아마 스님께 궁금했던 다른 것이 있었을 수도 있겠지요. 또는 좀 더 지내다보면 마음을 돌이키는 것뿐만 아니라 사회 문제에 대한 해결 없이는 우리들 삶이 온전하게 행복할 수 없으리라는 것도 알게 되겠지요.

함께 만드는 사람들
임혜진 심규선 정란희 손명희 조태준

전체댓글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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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서월

강연에 참석했었습니다
자원봉사자들의 즐거운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2017-03-07 11:29:52

수원의 별

아내와 내가 다름을 알겠습니다. 아내에게 감사한 마음으로 생활합니다. 아내가 잘하는것은 아내가 하고, 제가 잘하는 것은 제가 하면서 서로 톱니바퀴가 맞아 돌아가는 것처럼 잘 돌아가는 생활을 하겠습니다. 톱니바퀴가 똑같으면 서로 맞물려 돌아가지 않지요. 잘 맞물려 돌아가는 생활을 하겠습니다.

2017-03-02 16:59:39

조정

고맙습니다.덕분입니다._()()()_

2017-03-02 14:4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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