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두북 농사 준비와 행복한 대화(경주 서라벌 문화회관)
아이에게 좋은 아빠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후두둑 후두둑, 밤새 지붕을 때리며 비가 내렸습니다. 새벽녘에 빗소리가 조금 약해졌습니다. 다섯 시가 되자 건너편에서 조그맣게 예불송 읊는 소리가 들립니다. 무변심 법사님과 희광 법사님이 나지막이 예불을 올리고 있었습니다. 예불송이 비가 내려 안개에 잠긴 산과 하늘, 사람을 조용히 깨웁니다.

아침 공양 후에도 비가 계속 내려 스님은 다 못 본 원고를 보기로 하고 법사님들은 잠깐 쉬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10시가 좀 넘자, 빗소리가 잦아들고 햇빛이 문에 가득 비쳤습니다.

스님은 “해 난다!” 하며 즐거워하였습니다. 공구 창고에서 호미, 삽을 꺼내고 퇴비 포대와 부엽토 포대를 가져다 놓고 땅을 삽으로 뒤집기 시작하였습니다. 무변심 법사님과 희광 법사님도 옆에서 거들었습니다. 비가 온 뒤라 땅이 질척거려 장화로 갈아 신고 서투른 삽질을 하였습니다. 지혜명은 집에 인사 다니러 간 보광 법사님을 마중 나갔습니다. 얼마 움직이지 않았는데 곧 점심시간이 되었습니다. 점심 공양 후에는 보광법사님까지 함께 하면 속도가 좀 날 것 같습니다.

점심 공양 후에도 계속 농사 준비를 하였습니다.

오늘의 1번 밭입니다.

스님이 먼저 땅을 뒤집었습니다. 삽으로 땅을 뒤집으면 보광 법사님은 며칠 전 산에서 가져 온 부엽토를 섞었습니다. 거기에 새카만 퇴비를 더해서 골고루 흙을 섞었습니다. 이곳에는 그늘에 심었던 부추를 옮겨 심으려고 합니다. 허연 부추뿌리를 캐내 와서 준비를 해두고 보광 법사님은 부추를 넣을 고랑을 만들었습니다. 부추가 퍼지면서 자랄 수 있게 공간을 조금 두고 일정하게 부추 뿌리를 놓았습니다. 흙을 돋워서 잘 덮은 다음 아궁이에서 재를 가져다가 뿌려주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재가 날리지 않게 물뿌리개로 물을 뿌려두었습니다.

벽돌로 구획을 만들고 땅을 갈아엎어 분변토와 퇴비로 섞어 토양을 만듭니다
▲ 벽돌로 구획을 만들고 땅을 갈아엎어 분변토와 퇴비로 섞어 토양을 만듭니다

고랑 사이에 부추뿌리를 넣고 흙을 덮은 뒤, 재로 마무리 합니다
▲ 고랑 사이에 부추뿌리를 넣고 흙을 덮은 뒤, 재로 마무리 합니다

2번 밭, 입구를 바라보고 오른쪽에 만들 상추밭입니다.

스님은 “겨울에 얼지 말라고 비닐로 덮어뒀는데 살아남은 게 많지 않네. 그냥 새로 심어야겠다.” 하며 땅을 파서 갈아엎었습니다. 왼쪽 담장 밑에 심어두었던 국화 뿌리를 다시 파내어 옮기는 일은 무변심 법사님이 하였습니다. 삽으로 땅을 파다가 법사님이
“여기, 소똥 한 덩어리가 그대로 있어요!”
하며 신기한 듯 이야기하였습니다. 아, 그것! 며칠 전 길에 떨어진 소똥을 스님이 맨손에 들고 왔던 것이 생각났습니다. 스님이
“아니, 인도에서 온 보광 법사가 그 귀한 소똥을 본체만체하고 지나가길래, 내가 주워왔지.”
하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비료로 쓰는 소똥이 귀한데 인도에서는 더 귀합니다. 물에 개어서 벽에도 바르고 잘 말려서 연료로도 쓴다하였습니다. 보광법사님이 큰소리로 웃었습니다.

스님은 국화 뿌리를 적당한 간격으로 배치하고 사이사이에는 싹이 트고 있는 수선화를 두었습니다. 앞에는 상추를 심을 예정입니다. 땅을 뒤엎어 풀을 걷어내고 부엽토와 퇴비를 섞는 과정으로 하였습니다. 걷어낸 풀은 흙을 털어내고 나무 밑에 둘러주었습니다. 이렇게 하면 자연히 말라서 나무에 거름도 되니 따로 처리할 필요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3번 밭입니다. 입구를 바라보고 왼쪽에 작은 밭은 조금 더 공간을 넓혀야 하는데 오늘은 땅을 갈아엎는 정도로만 마무리 하였습니다.

저녁 강연이 있어 마무리해야 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썼던 농기구를 씻고 흙 묻은 장갑을 빨았습니다. 창고에 왔다갔다하는데 화장실 옆에서 스님이 열심히 무언가를 하고 계십니다.
“스님, 뭘 뿌리고 계세요?”

“더덕 씨앗이야. 요렇게 뿌려주고 여기까지 뿌렸다고 표시를 해놓아야지. 다음에 와서 다 잊어먹고 다시 갈아엎어서 다른 걸 심을 수도 있거든.”

오늘의 4번 밭이었습니다. 재래식 화장실 옆 부추를 심었던 그늘진 자리입니다.

더덕 씨앗이 작아서 표시가 잘 안 나니까 표시를 해 놓아야하지요
▲ 더덕 씨앗이 작아서 표시가 잘 안 나니까 표시를 해 놓아야하지요

강연 일정이 있어서 서둘러 저녁공양을 하였습니다. 스님은

“옆집에 밭을 빌렸어. 거기는 감자를 심을 거야. 북한에 보낼 씨감자를 실험해봐야 하거든. 수확에 좋을지. 작년에는 싹이 트지 않는 것이 많았는데 올해는 어떨지 모르겠네.”

점점 봄 농사가 늘어갑니다. 사람이 더 필요하게 생겼습니다.

차로 20여 분 거리에 있는 경주 서라벌문화회관에서 ‘행복한 대화’가 있었습니다. 오늘 강연에는 총 다섯 개의 질문이 있었습니다. 제사 지내는 시간을 바꿔도 될지 물어보는 어머님,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게 대체 무엇인가, 핵심을 말씀해 주십사하는 남자 분, 남산 문화해설사로 자원봉사하고 계신 여성분의 남산 문화유산 사랑, 촛불민심의 성과를 잘 이끌어가려면 어떻게 해야할 지 궁금한 여자 분, 둘째가 태어나는데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할지 그리고 인공지능이 부처님을 뛰어넘을 수 있을지 궁금한 아기 아빠의 질문이었습니다.

여기서는 스님과의 문답 속에서 직접 답을 찾아가는 아기아빠의 사례를 실어봅니다.

마지막으로 질문한 아기아빠가 스님께 물었습니다.
“제 질문은 별건 아닌데요, 올해 8월이면 제 2세가 태어날 것 같습니다.”

“별게 아니라고요?(모두 웃음) 아버지가 그런 소리를 하면 어떻게 해요?”

“여기 계신 분들 모두 같은 과정을 통해 태어나셨잖아요. 동물도 그렇고요. 음... 잠깐만요... 제가 써 온 걸 좀 보겠습니다.”(웃음)

“지금 질문하려는 내용이 자기 얘기예요? 남의 얘기예요?”

“제 얘긴데요, 앞서 질문하신 분에 대한 스님의 말씀이 하도 재미있어서 제가 할 질문을 잊어버렸습니다.(모두 웃음) 2세를 맞는 마음가짐을 어떻게 해야 될지, 그에 대해서 묻고 싶습니다.”

“예. 현재 질문자의 아기는 질문자의 뱃속에 있어요, 부인 뱃속에 있어요?”

질문이 별 게 아니라고요? 아이 아빠가 할 말인가요?
▲ 질문이 별 게 아니라고요? 아이 아빠가 할 말인가요?

“부인 뱃속에 있습니다.”

“부인의 신경이 날카로우면 뱃속에 있는 아기가 영향을 받을까요, 안 받을까요?”

“당연히 받습니다.”

“부인의 심리가 불안하면 아기가 영향을 받을까요, 안 받을까요?”

“당연히 받지요.”

“부인이 술을 먹거나 담배를 피우면 영향을 받을까요, 안 받을까요?”

“받습니다.”

“예. 그러니까 우선 아기가 건강하게 태어나게 하려면 부인이 건강해야 하고, 부인의 마음이 편안해야 되겠지요?”

“예.”

“그럼 질문자가 할 일은 무엇이겠어요? 아기한테 더 신경 써야 될까요, 부인한테 더 신경 써야 될까요?”

“부인한테 신경을 써야 합니다.”

“그러면 담배를 많이 피우던 사람이라도 자기 부인이 아기를 가지면 담배를 끊어야 할까요, 그냥 피워도 될까요?”

“끊어야 합니다.”

“질문자는 술을 마십니까?”

“1년에 한두 번 마십니다.”

“질문자가 술을 많이 마시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아기를 가진 부인을 생각하면 술을 마셔야 할까요, 안 마셔야 할까요?”

“안 마셔야 합니다.”

“집에 일찍 들어가야 할까요, 늦게 들어가야 할까요?”

“일찍 들어가야지요.”

“어쨌든 아기 엄마가 잔신경을 안 쓰도록 해야겠지요? 그게 바로 질문자가 가져야 할 마음가짐이에요.”(모두 웃음)

“예, 알겠습니다.”

“또 아기가 태어나면 주로 질문자의 품에 많이 안겨 있을까요, 엄마 품에 많이 안겨있을까요?”

“엄마 품이죠.”

“그러면 아기는 엄마한테 영향을 많이 받을까요, 질문자한테 많이 받을까요?”

“엄마의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그러면 질문자가 아기를 직접 안고, 업고 하는 게 중요할까요, 아기를 주로 안고 업는 아기 엄마를 편안하게 해 주는 게 중요할까요?”

“아기 엄마를 편안하게 해 주는 게 중요합니다.”

“또, 손자가 잘 자라기를 바란다면 할머니가 직접 손자를 안고, 업고, 좋아해야 될까요? 아기 엄마에게 잘해야 될까요?”

“아기 엄마한테 잘해야지요.”

“그러니까 ‘며느리’한테 잘하는 게 아니라 ‘아기 엄마’한테 잘해야 하고, ‘부인’한테 잘하는 게 아니라 ‘아기 엄마’한테 잘해야 해요.”

“예.”

“내가 왜 부인한테 이렇게까지 해야 되느냐고 생각하면 안 되고, 자기 ‘부인’이라기보다는 ‘아기 엄마’이기 때문에 아기를 위해서는 아기엄마한테 잘해야 되는 겁니다. 왜냐하면 아기 엄마의 심리가 불안하면 아기도 심리가 불안해지고, 아기 엄마가 불행하면 아기도 불행해지기 때문이고, 아기 엄마가 행복하면 아기도 행복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질문자는 아기는 신경 쓸 필요가 없고, 아기 엄마한테 신경을 써줘야 해요.”

“예, 알겠습니다.”

“아기 엄마가 ‘아기 좀 봐 주세요’ 하면 질문자는 아기를 위해서 아기를 봐줘야 할까요, 아기 엄마를 위해서 봐줘야 할까요?”

“아기 엄마를 위해서 봐줘야 합니다.”(모두 웃음)

“예, 그게 아기를 가진 아빠의 마음가짐이에요.”

“예, 알겠습니다.”(모두 웃음)

“다 이해하셨어요? 그런데 거꾸로, 손자는 귀하게 여기면서 며느리는 미워하는 시어머니가 있어요. 그러면 손자가 잘 될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아빠들도 부인한테는 형편없이 하면서 아기한테는 잘 하겠다? 그러면 아이는 나빠져요. 그러니까 아기 엄마한테 잘해 주는 게 아빠의 역할이에요. 그리고 모든 가정과 사회는 아기 엄마가 편안하도록 도와야 합니다. 그래야 아기가 건강하게 자랄 수 있으니까요.”

아기 아빠의 얼굴이 밝아졌습니다. 문답을 주고받는 동안 청중들의 웃음은 끊이지 않았지만 아기 아빠는 약간 긴장한 낯빛이었는데 자리에 앉는 얼굴이 편하게 웃고 있었습니다.

예정보다 30분가량 늦게 마쳤지만 로비에서 사인회가 열렸습니다. 한 어머님이 이야기 하였습니다.

“오늘로 스님 강연에 세 번째 왔는데요, 가장 즐겁고 행복한 마음이 들었어요. 질문들도 다들 자유롭고 적극적으로 했던 것 같고요. 스님 말씀도 질문보다 많은 내용을 말씀해 주신 것 같고요. 듣는 저도 참 편하고 수긍도 되고 즐거웠어요.”

스님의 <기도_내려놓기> 책을 읽고 있던 어머님 얼굴이 환하게 웃으며 이야기합니다. 내일 아침 서울에서 일정이 있어서 서둘러 강연장을 나서니 준비한 봉사자들이 배웅하러 나왔습니다.

“스님, 조심해서 가십시오.”

“어르신, 이렇게 찾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강연 준비하느라 수고하셨어요”
▲ “어르신, 이렇게 찾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강연 준비하느라 수고하셨어요”

강연을 준비해주신 분들, 강연에 참가하신 분들 모두모두 감사합니다.

함께 만드는 사람들
임혜진 심규선 정란희 손명희 조태준

전체댓글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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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신

저도 스님이 하시는 대로 텃밭 농사 준비를 해야겠네요.
농사 일 참 힘들지만 수확해서 먹을 땐 넘 소중하지요.
스님 감사합니다.*^^*

2017-03-07 20:14:02

봄농사 준비하시는 스님의 손길이 바뿌십니다
바라보는내내 정겨움이 묻어나는 시간이네요

2017-03-05 12:43:13

이남현

네!

2017-03-04 17: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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