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17. 03. 09 두북 농사 울력과 행복한 대화 마산 올림픽경기장 편
자존감이 낮아 대인관계가 어려워요

도량석이 울리자마자, 스님과 일행은 두북으로 출발하였습니다. 전 날, 병원에 꼭 다녀가는 게 좋겠다고 법사님이 제안하였지만 차량은 어김없이 약속했던 새벽에 출발하였습니다.

시간도 절약할 겸 휴게소에서 아침 공양을 해결하고 농사기구 도매상에 들러 장갑, 철소쿠리 등 필요했던 기구 몇 가지를 구입하였습니다. 도착하니 9시가 거의 다 되었습니다. 꽃샘추위가 한결 누그러져서 바람도 잦고 햇빛이 참 따뜻했습니다. 지체 없이 바로 일을 시작하였습니다.

오늘은 주로 씨 뿌리는 일이었습니다. 넓혀 놓은 밭에 심을 씨앗들을 냉장고에서 꺼냈습니다.

우물 옆 높은 두둑에는 알타리 무, 겨자, 청경채, 상추 씨를 뿌렸습니다.


이번에 넓힌 밭에는 아욱, 근대, 얼갈이배추, 달래, 고소 씨를 뿌렸습니다. 벽을 따라서는 콩을 둘러서 심었습니다. 뒷밭에는 더덕, 당근, 알타리 무, 시금치 씨앗을 뿌렸지요.

작은 포트에는 지난 번 담아 놓은 부엽토가 거칠어서 다시 체를 쳐서 곱게 한 다음, 지렁이 분변토를 섞어 새로 흙을 채웠습니다. 여기에는 옥수수, 애호박, 풋호박 씨앗을 한 알씩 심었습니다. 올해 우리가 먹는 채소 정도는 자급자족을 해보자는 작은 원이 있어서 일상적으로 먹는 채소를 중심으로 씨를 뿌려보았습니다.


특히, 상추와 고소를 많이 뿌렸는데 스님은

“상추는 우리 서울 공동체 식구들까지 다 먹을 수 있을까? 고소도 엄청나게 뿌렸으니까.”

“아이고 스님, 이번에 식구가 많이 늘어서 60명이 훨씬 넘어요. 그렇게는 좀...”

“이렇게 심으면 상추는 엄청나게 나거든. 가능할거야. 강연 올 때 각 자 한 봉지씩만 뜯어가도.”

서울 공동체의 밥상에도 공급할 수 있는 상추. 지금은 흙만 보이지만 저 흙에 붉게, 푸르게 와글거리며 들어 차 있는 상추를 상상해 봅니다. 스님이 신나보였습니다.

뒷밭과 국화 화단 앞에는 두둑을 만들어서 씨감자를 심었습니다. 보관해 둔 감자에 싹이 나고 줄기가 길게 자라서 어떻게 할까 고민했는데 씨감자 연구소에서 그대로 심어도 괜찮다 합니다. 스님은 실험삼아 심어보고 안 되면 다시 해 보자며 길게 자란 줄기가 콩나물처럼 달려있는 씨감자를 정성스럽게 한 알씩 심었습니다.

씨를 뿌린 곳은 물을 흠뻑 주고 비닐을 덮어두었습니다. 파종시기가 서로 다르기 때문에 온실효과가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아직 꽃샘추위가 물러가지 않았으니 온도를 유지해 줘야 하니까요.

서둘러서 일을 했는데도 시간이 훌쩍 지나 5시가 다 되었습니다. 사용했던 도구를 정리하느라 분주히 움직였습니다. 작업복도 갈아입고 바빴지만 저녁공양도 하였습니다.

예정했던 시간보다 10분 늦게 출발했지만 그래도 늦지 않게 마산 올림픽기념국민생활관에 도착하였습니다.

오늘 강연은 다섯 명의 질문자가 있었습니다. 처음에 두 자매가 연이어 질문 하였고 한 가지 일을 끈기 있게 하지 못한다는 청년, 결혼한 지 3개월되었는데 남편한테 못되게 굴어서 이 마음을 고치고 싶다는 젊은 여성, 귀농한 30대 청년이 다단계를 접했는데 어떻게 하면 될지 스님께 질문하였습니다.

이 중에 첫 번째 질문을 한 여자 분과 스님의 대화 내용을 싣습니다. 솔직한 대화에 강연장에 오신 많은 분들이 내내 웃었습니다.

“저는 평소에 유튜브와 카카오스토리를 통해 스님의 법문을 접하면서 힘을 많이 얻고 있습니다. 그리고 절을 왜 하는지, 어떤 마음가짐으로 하는지 보고 난 후에는 혼자 집에서 매일 108배도 합니다.

저는 평소 대인관계에 있어서 자존감이 낮다는 생각을 종종 합니다. 예를 들어, 돈을 사기당하거나 잃어버리는 경우에는 ‘원래 내 돈이 아니었나보다’하고 마음을 잘 접는 편인데, 사람에게 상처를 받는 경우에는 제가 앓아누울 정도로 그 충격을 심하게 받습니다. 스님의 법문을 접한 뒤로는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108배를 하면서 이겨내기도 하는데, 전반적으로 제가 자존감을 어떻게 높일 수 있는지 그리고 대인관계에 있어서 상대방에게 제 마음을 어떻게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는지 알고 싶습니다.”

“네, ‘자존감이 낮다, 돈은 잃어버려도 금방 회복하지만 사람에게는 상처를 쉽게 받는다’하는 설명은 무슨 이야기인지 알겠어요. 그런데 그 중 가장 핵심이 되는 문제만 한 번 간추려서 말씀해보세요.”

“사람으로부터 상처를 받았을 때 빨리 극복하는 방법을 알고 싶어요.”

“네, 그럼 스님이 질문자에게 물어볼게요. 사람에게 왜 상처를 받습니까?”

“상대에 대한 기대와 때로는 제 욕심 때문에 그런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어떤 때는 상대방에 대한 제 믿음이 커서 그런 것 같기도 합니다.”

“질문자 이야기대로 상처를 입는 이유가 상대방에 대한 나의 기대가 커서라면 다음부터는 기대를 낮추면 되잖아요. (질문자와 청중 웃음)”

“제 욕심인 건 알겠는데…”

“욕심인 걸 알면 욕심을 내려놓으면 되잖아요. (청중 웃음)”

“그래서 108배를 하고 있는데요…”

“욕심을 내려놓는 거랑 108배랑은 무슨 관계가 있나요?(청중 웃음)”

“그게 잘 안 되니까 스님께 여쭤보려고 왔어요.”

“108배를 한다고 마음의 욕심이 내려놓아지나요? (질문자와 청중 웃음)”

“그래도 스님의 영상에서 주변에 감사하는 기도를 하라는 말씀을 듣고는 그렇게 따라 해봤더니 전보다는 조금 나아졌어요. 그래서 마음을 어떻게 다스리는지 조금 더 알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래요. 그럼 누구한테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상처를 받는지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보세요. 실제로 일어난 예를 알려주면 그걸 가지고 우리가 원인이 무엇인지 연구를 해볼 수 있어요.”

“주변에 알고 지내는 언니들, 동생들이 있어요. 저는 평소에 그 사람들이 좋다고만 생각해서 늘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주변에도 좋은 이야기만 하는 편인데, 그들은 제가 없을 때 다른 사람에게 저에 대한 험담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될 때 속상합니다. 그리고 아는 지인들을 서로 소개시켜 주었는데 나중에는 그 둘이 더 친해지고 저와의 관계는 소원해질 때 마음이 씁쓸해집니다.”

“그래요. 그럼 그 이야기는 잠시 놓아두고 여기 무대 위에 있는 작은 구멍을 한 번 보세요. 스님이 저기에 공을 넣고 싶어서 던지려는데, 던지기만 하면 공이 매번 구멍 안에 들어갈까요, 들어갈 때도 있고 안 들어갈 때도 있을까요?”

“들어갈 때도 있고 안 들어갈 때도 있습니다.”

“넣고 싶은 마음이 있고, 또 넣기 위해서 던지면 늘 들어가야 하는 거 아니에요?”

“들어가면 좋겠지만 안 들어갈 때도 있죠.”

“내가 아는 사람에게 돈을 빌려주면 그 사람은 반드시 돈을 갚나요, 사정에 따라 못 갚을 수도 있고 안 갚을 수도 있나요?”

“못 갚거나 안 갚을 수도 있어요.”

“그러면 대인관계에서도 ‘나는 네가 좋아’하고 이야기를 하면 상대방도 매번 ‘나도 너 좋아’하고 반응을 보일까요, 그런 반응을 보일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을까요?”

“네, 다른 반응을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요. 이번에는 상대방에게 이야기를 하는데 ‘나는 네가 좋아’라고 할 때 상대방도 ‘나도 너 좋아’라고 할 확률이 높을까요, 아니면 ‘나는 네가 싫어’라고 이야기하는데 상대방은 ‘그래도 나는 네가 좋아’라고 할 확률이 높을까요?”

“제가 상대방이 좋다고 할 때 상대방도 저를 좋아할 확률이 높겠죠.”

“네. 지금까지 이야기를 요약해보면 내가 ‘싫어’할 때보다는 ‘좋아’라고 할 때 상대방도 나를 좋아하는 반응을 보일 확률이 높고, 그러나 내가 ‘좋아’라고 한다고 해서 상대방도 반드시 좋다는 반응을 보이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죠? 그럼 질문자는 내가 좋아한다고 해서 상대방도 반드시 나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니까 그럼 이제 더 이상 상대방을 좋아할 필요가 없겠구나 하고 생각합니까, 아니면 그래도 내가 상대방을 싫어할 때보다는 좋아할 때 상대방도 나를 좋아할 확률이 높으니까 나는 나대로 좋아한다고 표현을 하겠다고 생각합니까?”

“물론 제가 상대방을 싫어할 때보다는 좋아할 때 상대방도 저를 좋아할 확률이 높지요.”

“그래요. 그런데 질문자와 상대방의 행동에 있어서 자연스러운 이치가 무엇인지를 한 번 살펴보려는 거예요. 질문자에게 다시 물어볼게요. 질문자가 상대방에게 좋다는 표현을 할 때 상대방도 반드시 좋다고 화답을 하나요,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나요?”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상대방이 화답을 하면 바른 행동이고, 상대방이 질문자를 좋아하지 않으면 나쁜 행동인가요? 아니면 상대방의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것은 자연스러운 이치입니까?”

“자연스러운 이치는 맞습니다.”

“그럼 질문자가 아는 언니에 대해 칭찬을 했더라도, 그 언니가 질문자에 대해 비난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잖아요?”

“네, 맞아요.”

“그런 자연스러운 일에 왜 상처를 입나요? 마치 봄에 잎이 피고 가을에 낙엽이 지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일인데 왜 그로 인해 상처를 받아요?”

“그러니까요. (청중 웃음)”

“이렇게 대화를 하고 보니 상대방 때문에 상처를 입은 거예요, 질문자가 잘못 생각해서 상처를 입은 거예요?”

“제가 잘못 생각해서 그랬습니다.”

“질문자는 어떻게 잘못 생각했나요? 은연중에 ‘내가 상대방을 좋아하면 상대방도 반드시 나를 좋아할 거다’라고 생각한 거죠?”

“네, 그랬던 것 같습니다.”

“내가 돈을 빌려주면 상대방이 반드시 갚을 것이라고 생각한 거잖아요. 나는 빌려주지만 상대방은 갚을 수도 있고, 안 갚을 수도 있는 거예요. 갚으면 의리 있는 사람이고, 안 갚으면 배신하는 사람인가요? 아니에요, 빌려줄 때부터 이미 상대방은 갚을 수도 있고 안 갚을 수도 있는 거예요.”

“네, 그런데 저는 제가 좋아하니까 상대방도 나를 좋아해야 한다거나 혹은 나에 대해 좋게 이야기해 주기를 기대했다기 보다는, 제가 좋은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제 뒤에서는 안 좋은 이야기는 안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네, 질문자가 그런 바람을 가지고 있는 건 이해가 됩니다. 그런데 사람이 면전에서 이야기하는 것과 없을 때 이야기하는 것이 늘 똑같습니까, 다를 수도 있습니까?”

“… (질문자 웃음)”

“질문자는 늘 똑같나요, 질문자도 가끔 다를 때가 있나요?”

“다를 때가 있습니다. (질문자와 청중 웃음)”

“질문자가 상처를 입었다고 하니 ’무엇이 상처가 되었나’하고 따져봤는데, 다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일이에요. 세상이 원래 그렇게 돌아가는 거예요.”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런 것에 상처를 받잖아요.”

“대부분 사람들 누가 그런 것에 상처를 받나요? 질문자만 그래요. (청중 웃음) 여기 계신 대부분의 사람들은 ‘원래 인생이 그런 거다’하고 상처를 안 받아요. (질문자 웃음) 심지어 조그마한 아이들도 부모님이 안 계실 때 아빠를 꼰대라고 부르기도 하잖아요. (청중 웃음) 여자들도 속상한 일 있으면 남편 없을 때 남편 흉을 보기도 하고 시어머니 흉을 보기도 하잖아요. 시어머니 보는 앞에서는 어때요? 안 하잖아요. (청중 웃음) 이렇게 강연 중에는 박수를 잘 치다가도 강연장을 나가면서 ‘왜 저런 이야기를 하나’하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어요. (청중 웃음) 옛 말에 뒤에서는 임금 흉도 본다고 하잖아요.

부처님 당시에도 부처님 흉을 본 사람이 있을까요, 없을까요?”

“있어요. (청중)”

“예수님 당시에 예수님 흉을 본 사람은요?”

“있어요. (청중)”

“네, 흉 정도가 아니라 모함을 하고 결국 십자가에 못을 박아서 처형하기에 이르렀잖아요. 질문자는 예수님만큼 훌륭한가요? (질문자와 청중 웃음) 그런데 십자가에 못 박힌 것도 아니고 없는데서 흉 조금 본 걸 가지고 뭘 그리 심각하게 받아들여요?

스님이 왜 이런 이야기를 하냐면, 질문자가 질문 속에서 자존감이 낮다고 그랬잖아요. 질문자는 머릿속에서 자기 존재를 부처님이나 예수님보다 더 높게 정해두고 있어요. 그런데 현실 속의 자기는 그에 미치지 못하니까, 즉 ‘생각하는 자기’보다 ‘현실 속의 자기’가 부족하니까 자존감이 없는 거예요.

마음속에서 ‘나는 별 거 아니다, 길옆의 풀과 같다’라고 생각하면 현실 속의 나는 풀보다는 나으니까 가만히 있어도 자존감이 생깁니다. 풀도 사는데 왜 내가 못사나요? 풀은 지나가는 사람이 밟고 지나가도 아무 소리 안 하는데, 나는 밟은 것도 아니고 그냥 욕만 조금 한 것일 뿐인데, 그것도 듣는 데서 한 것도 아니고 안 듣는 데서 한 것이잖아요. (청중 웃음) 남이 내 욕을 할 때 내가 듣는 데서 하는 게 좋아요, 그래도 안 듣는 데서 하는 게 좋아요? (청중 웃음)

질문자는 안 듣는 데서 욕한다고 뭐라고 하니까, 그냥 듣는 데서 해줄까요? (질문자와 청중 웃음)”

“차라리 그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있는 데서 하면 무안해지니까 그래도 없는 데서 하는 게 낫잖아요. (질문자와 청중 웃음)

이렇게 이야기를 하다 보니 상대방이 나에게 상처를 준 것인가요, 질문자가 생각을 잘못해서 상처를 입은 거예요?”

“제가 생각을 잘못 했습니다.”

“어떻게 잘못 생각했나요? 상대방이 상처를 줘서 받은 거예요, 아니면 상처 받을 게 없는데 질문자가 만든 거예요?”

“제가 만들었습니다.”

“그래요. 왜 없는 상처를 굳이 만들어서 스스로 상처를 입나요? (질문자와 청중 웃음) 그건 그냥 자기가 자기 자신을 계속 송곳으로 찌르는 것과 같아요.”

“저도 안 하고 싶은데…”

“아프면 그냥 안 하면 되잖아요.

이치를 알면 괴로울 일이 없습니다. 앞에서는 칭찬하고 안 보는 데서는 욕하는 것은, 물론 안 보는 데서도 칭찬하는 것보다는 못하지만 그래도 보는 앞에서까지 욕하는 것보다는 낫잖아요. 그러니 그 사람은 나름 예의가 있기 때문에 보는 앞에서는 칭찬하고 안 보는 데서만 욕하는 거예요. 예의 없는 사람은 보는 데서도 막 욕하고 그래요. 그래도 그거보다는 낫잖아요?

그러니 ‘그래도 이 언니는 나를 생각해서 흉보고 싶더라도 내가 없을 때 보는구나. 나를 배려해줘서 고마워’라고 생각하면 상처받을 일이 없습니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청중 박수)”

관점 바꾸기! 내 습관대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관점을 바꾸어 바라본다면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경험을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부처님이 자신의 인생을 가지고 테스트한 정확한 ‘인생 행복 방법’을 알려주고 가셨지요. 스님은 우리에게 2017년 형으로 맞춤하여 이렇게 대화로 전해주고 있음을 확인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의외로 시간이 남아 다른 곳에서는 엄두도 내지 못했던 현장 질문을 하도록 하였습니다. 두 사람이 질문 하였는데 마지막으로 마이크를 잡은 어머님 한 분은 주저하며 일어나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스님, 질문하려는 건 아니고요. 제가 지금껏 해오던 가게를 지난 3월 1일부로 문을 닫았거든요. 건강도 안 좋고 장사도 안 되어서 접을 수밖에 없었는데 스님께서 위로와 힘을 주는 한 말씀을 해주셨으면 해서 일어섰어요. 제가 살기는 살겠지만 앞으로 어떻게 무엇을 하며 살지요.”

스님은 마이크를 든 어머님을 포함하여 강연장에 참석하신 분들에게 이야기 하였습니다. 다음은 스님의 이야기 중 마지막 부분을 실은 것입니다.

“... 전체적으로 놓고 보면 우리나라는 살만한 나라지요?”

“네! (청중)”

“네, 우리나라는 살만한 나라입니다. 그렇게 긍정적인 생각을 저변에 깔고, 그렇지만 지금은 다소 어려운 시기를 맞이하고 있으니 이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너무 비현실적인 기대와 희망보다는 다 같이 어려움을 극복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럴 때 일수록 우리끼리 싸우거나 할 것이 아니라, 회사 사정이 어려워서 퇴직하게 된 남편이 있으면 부인이 격려해주고 서로 도우면서 가야 합니다. 이럴 때 서로 책임을 묻거나 돈을 못 번다고 구박을 하면, 빨리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한꺼번에 돈을 벌려고 하는 심리가 일어나게 됩니다. 그럴 때 어디서 혹하는 소리가 들리면 쉽게 투자해서 사기 당할 위험이 더 커져요. 하필 어려울 때, 그나마 있는 돈까지도 다 잃는 경우가 생기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어요.

오히려 남편이 돈을 못 벌어서 조바심 내는 모습을 보이면 ‘지난 30년간 돈 버느라 수고했으니 이제 좀 쉬세요. 그 사이에는 내가 아르바이트라도 해서 먹고 살 수 있어요.’ 하고 다독이고, 그렇게 진정시킨 다음 경기가 돌아가는 모습을 봐가면서 투자를 해야지 무조건 일찍 시작한다고 좋은 게 아니에요. 주변에 망하는 가게들 많이 보이잖아요? 그런 가게를 내가 인수하면 나도 망할 확률이 높지 않겠어요?

우리는 흔히 내가 가게를 인수하면 남들보다 잘 할 거라고 생각하고 인수하는데 그게 생각대로 잘 되지 않습니다. 나라 전체의 경제적 상황을 고려하면 그렇게 될 수 없어요. 경기가 좋을 때는 열 개 가게 중 한 두 가게가 잘 안 되지만, 요즘처럼 경기가 안 좋을 때는 열 개 가게 중 한 두 가게만 잘 된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누가 가게 주인인지도 영향을 미치겠지만 전체적인 흐름도 잘 살펴야 해요.

그리고 현재 우리나라에는 자영업 과잉 상태입니다. 그렇다보니 지나치게 경쟁이 치열해지고, 공급이 수요보다 많으니 서로가 잘 안 되는 거예요. 그런데 다른 일을 하자니 또 마땅치가 않아요. 그래서 알면서도 또 자영업의 길을 가게 됩니다.

지금은 자영업 과잉 상태라는 것을 알고, 아주 좋은 아이템이라는 확신이 있는 경우가 아니면 투자하기 보다는 당분간 노는 게 좋아요. 놀면서 스님 법문 듣고 좀 쉬세요. (청중 웃음) 산책 다니면서 시간적인 여유를 갖고, 또 복도 지어야 하니까 기회가 될 때마다 봉사활동도 하고 그러세요. 여유를 가지고 자기 자신부터 행복해져야 합니다. 사람이 여유를 가지고 행복하게 지내다보면 시기가 찾아옵니다.

농사지을 때도 봄이 올 때 파종(播種)을 해야지, 가을이나 겨울에 파종한다고 수확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물론 온실을 지을 정도로 자본과 기술이 충분하면 가을이나 겨울에도 파종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시기를 기다렸다가 봄에 파종하는 게 좋아요.

시간 있을 때 행복하게 지내다가 시기가 도래하기를 기다려야 합니다. 기다리는 동안 봉사도 많이 하고, 마음공부도 잘 하시기 바랍니다.”

누구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은 다 함께 어려운 시기이니 서로 격려해가며 가자는 말씀에 마이크를 든 어머님의 얼굴이 밝아졌습니다. 아마 강연장에 계신 많은 분들 중에도 무거웠던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는 분들이 계셨을 것 같습니다.

30분이나 훌쩍 넘어 강연이 끝났습니다. 로비에서 사인회가 열린다는 안내를 받자 많은 사람이 로비로 나갔습니다. 엄마와 함께 사람들이 빠져나가기를 기다리고 앉아있는 어린 남학생이 보여 물어보았습니다.

“스님 강의 잘 들었어요?”

“네!”

“재밌었어요? 혹시 엄마가 오자고 해서 왔어요?”

“스님 이야기가 재미있어서 학원도 안 가고 왔어요.”

강연 시간 내내 눈빛을 초롱초롱 밝히며 듣고 있던 학생의 모습이 생각났습니다.

엄마와 아이가, 가족이, 함께 ‘행복한 대화’를 들으며 ‘관점 바꾸기’를 습관처럼 한다면 순간순간이 즐거울 것 같습니다.

내일 아침 일정이 기다리고 있어 스님과 일행은 서둘러 서울로 출발하였습니다.

한 밤 중의 고속도로에는 불빛을 밝혀 밤을 달리는 차가 많았습니다. 누군가 인터넷 신문에서 본 ‘3D 프린터로 집을 만들었다’는 기사를 이야기하자 스님은 피곤할 텐데도 급격히 변화하고 있는 산업 문화 등을 이야기 하였습니다. 다양한 이야기에 피곤한 줄도 모르고 ‘행복한 대화’로 고속도로를 달렸습니다.

함께 만든 사람들
임혜진, 심규선, 정란희, 손명희, 조태준

전체댓글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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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화

스님의 좋은말씀 감사함니다 항상건강하세요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고맙습니다

2017-08-30 05:48:03

쩡이

농사도 재미나게 지으시고 사람에게도 행복하게 바른지혜주시고 나무 감사합니다

2017-03-23 14:05:49

van38200

내게 상처 입힐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라는것

2017-03-23 00: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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