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라고는 하지만 아직 새벽에는 으슬으슬 춥습니다. 예불과 천일결사 기도를 마치자 따뜻한 방에 누워 쉬고 싶은 마음이었는데 어느새 스님은 작업복을 갈아입고 나서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스님, 벌써 일 시작하시려고요?”

“원래 아침 먹기 전에 일 하고 아침을 먹는 거야. 갔다 올게요.”

스님은 행자님 한 분과 가볍게 나섰습니다.

아침 햇살이 퍼질 쯤, 스님은 작은 대나무들을 손에 들고 왔습니다. 어제 감자밭에 소똥을 뿌릴 때 봐 둔 대나무입니다. 좀 큰 화분에 대나무를 심고 물을 흠뻑 주었습니다. 작은 모종 화분에는 단호박, 조생 풋호박, 오이 씨앗을 심은 후 물을 충분히 주고 비닐을 덮어주었습니다. 아침?저녁으로 기온이 뚝 떨어지는 요즘에 적절한 미니 비닐하우스입니다. 그리고 지난주에 씨앗을 뿌리고 비닐을 덮어두었던 밭에는 비닐을 살짝 걷어 물을 주고 다시 비닐을 덮어주었습니다. 식전에 한 일이 참 많습니다.

아침 공양을 마치고 곳곳에 뒷마무리 할 일들을 맡아서 하였습니다. 원래는 감자밭에 펼쳐 둔 소똥과 땅을 갈아엎어야 하는데 오늘 오후에 청주에 ‘행복한 대화’ 강연이 있어서 조정하였습니다. 덕분에 일부러 감자 심으러 오신 선주 법사님은 그 동안 농사지은 곳곳을 재미있게 탐색하며 둘러보았습니다.

일을 마무리 하고 한 시쯤 나섰습니다. 스님은 다음 주면 인도 수자타아카데미로 돌아가는 보광 법사님에게 진달래 선물을 할 겸 경주 남산 새갓골에 들렀다가 청년 경주역사순례 때 청년들이 다 함께 모일 수 있는 공간 답사도 할 겸 통일암과 흥무공원 등을 둘러보자며 조금 일찍 출발하기로 한 것입니다.

새갓골은 경주 남산 중에도 정남향에 위치한 곳이라 진달래가 폈을 만하다는 심증을 가지고 기대에 부풀어 올라갔습니다. 따뜻한 햇살이 꽃봉오리를 충분히 열만하다 생각하고 있었는데

“와! 저기다!”

스님이 먼저 보고 가리켰습니다. 나뭇가지 사이에 분홍 점점이가 보였습니다. 다들 무척 반가워하면서 사진을 찍자고 하였습니다. 흥분한 마음에 카메라를 들이대어 보았지만 카메라의 눈은 우리들처럼 때 이른 진달래에 흥분하지 않았는지 분홍 봉오리들을 충분히 크게 담지 못했습니다. 조금 더 올라가니 조금 더 피어있는 진달래들을 만났습니다. 그것도 한 나무에 여러 봉오리들이 열려 있었습니다. 일부러 우리 때문에 진달래가 일찍 핀 양 반가워하며 함께 사진을 찍었습니다.

스님은 내려오는 길에 억새가 가득 있는 곳에 멈춰 서서 보광 법사님을 불렀습니다.

“여기서 사진 찍고 가라. 학교에 가서 아이들한테 보여주고 싶다면서.”

산에 오를 때, 보광 법사님이 억새를 보고 아이들한테 사진 찍어 보여주고 싶다고 한 말을 스님이 기억하고 불렀던 것입니다. 억새밭을 뒤로 하고 보광 법사님, 선주 법사님과 스님은 함께 사진을 찍었습니다. 작은 진달래 꽃잎도 함께 말입니다.

조금 속도를 내어 통일암을 둘러보았습니다. 주로 통일의병 행사를 하곤 했는데 이번에 가 보니 빽빽하게 들어서 있던 대나무 숲이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대나무가 있어서 공간이 집중되고 다른 등산객이나 아랫마을 사람들에게도 방해가 되지 않아 좋았는데 말입니다. 잘라져서 한쪽에 누워있는 대나무들이 참 섭섭했습니다. 어떻게 된 영문인지 알아보기로 하고 흥무공원으로 갔습니다. 김유신 장군 묘에서 걸어서 내려오면 자연스럽게 만나게 되는 흥무공원이어서 걷기에도 적당하고 공간도 넓어서 좋았습니다. 흥무공원에는 산수유와 살구꽃이 벌써 봄을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이곳저곳을 들르다보니 청주까지 갈 시간이 빠듯하여 서두르게 되었습니다. 보광 법사님과 선주 법사님은 회의 일정으로 헤어지고 스님 일행은 저녁 공양도 마다하고 차를 달려갔습니다.

오늘 강의는 청주대학교 청암홀에서 열렸습니다. 해질녘, 사람들이 속속 도착하여 400여 좌석이 가득 찼습니다. 오늘 질문은 더 많았지만 시간 상 다섯 개의 ‘행복한 대화’만 할 수 있었습니다. 그 중에 첫 번째, 씩씩한 스물한 살 여대생과 스님과의 ‘행복한 대화’를 싣습니다.

“저는 제가 열심히 노력해서 원하는 직장에 들어가도 그 조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높은 사람들에게 잘 보이며 아부해야 되는 이 사회가 너무 싫어요. 어떻게 해야 남들에게 아부하지 않고도 제가 원하는 인생을 살 수 있을까요? 이 세상에서 높은 사람들에게 아부하며 살 바에야 차라리 머리 깎고 스님이 되겠어요.”

“스님이 되면 좋겠네요. 그런데 스님들 세계에서도 아부를 잘 해야 해요. 저처럼 아부를 못하면 출세를 못 해요. 어디에서든 아부를 잘해야 출세를 해요.”

“그래도 저는 떳떳하게 살고 싶거든요.”

“그럼 질문자는 혼자 살아야 해요. 산속에서 염소 먹이며 혼자 살면 아부 안 해도 돼요. 그런데 사람들 사이에서 살려면 결국 다른 사람들이 질문자를 좋아해 주거나 잘 봐줘야 되는데, 그러려면 다른 사람들이 좋아하는 걸 질문자가 해 줘야 돼요. 질문자는 그걸 안 하겠다고요? ‘나는 네가 좋아하는 건 뭐든지 하기 싫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만 하겠다’는 사람은 욕심쟁이거나 고집쟁이지, 사회생활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에요.

어머니가 자녀들을 키울 때도 어머니 말을 잘 듣는 애가 예쁠까요, 안 듣는 애가 예쁠까요?”

“말 잘 듣는 아이요.”

“예. 어머니는 자기가 낳은 자녀들을 똑같이 사랑으로 대하고 차별하면 안 되겠지요? 그런데 어머니도 말 잘 듣는 애는 좋아하고 말 안 듣는 애는 싫어할 수 있어요. 그러니 이 세상은 더하겠지요. 질문자도 후배들 중에서 제 고집만 피우고, 음식을 먹어도 제 입맛에 맞는 음식을 저만 먹고, 다 같이 청소하는데도 저 혼자 공부한다고 앉아있고, 청소 다 해 놓으면 들어오고, 밥 해놓으면 숟가락만 들고 오는 아이가 있다면 그 후배가 예쁘겠어요?”

“아니요, 진짜 꼴 보기 싫을 것 같아요.”(모두 웃음)

“그러니까 누구한테 잘 보이기 위해서 하기 싫은데 억지로 밥하고, 청소한다면 그건 눈치 보는 게 되고, 누가 봐주든, 안 봐주든 같이 야외에 갔으면 불을 피우든 밥을 하든 그릇을 씻든, 여러 사람 중에 자기 역할을 해야 되는 거예요. 그렇게 하면 잘 봐달라고 안 해도 잘 봐줄까요, 안 봐줄까요?”

“잘 봐주겠지요.”

“예. 그러니까 ‘잘 보이고 싶으면 그렇게 하라’는 거예요. 질문자는 화장을 왜 해요?”

“잘 보이고 싶어서요.”(모두 웃음)

“잘 보이고 싶어서 화장은 하면서, 잘 보이고 싶어서 커피는 끓여다 주면 안 되는 거예요? 잘 보이고 싶어서 심부름 좀 해 주고, 잘 보이고 싶어서 ‘예!’ 하면 안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질문자의 질문은 남들에게 잘 보이려고 하는 행위를 굉장히 나쁘게 평가하는 내용이었어요. 남에게 기본적으로 잘 보이려는 노력을 무조건 ‘나쁘다’고 말하면 안 돼요.

그러나 윗사람에게 잘 보이려고, 예를 들어 밥이나 청소를 안 했으면서 남이 해놓은 걸 자기가 한 것처럼 생색을 내거나 밥이나 청소를 해야 될 시간에 윗사람 어깨나 주물러 주고 승진을 했다면 그러는 걸 본 사람들은 기분이 어떨까요?”

“기분 나쁘겠지요.”

“그러니까 그런 행위는 하면 안 되겠지만 사람들이 어느 정도는 남의 눈치를 보며 사는 건 그렇게 나쁜 게 아니에요. 저는 오늘 이 강연장으로 올 때 여러분들 눈치를 전혀 안 봤을까요? 오늘 여기 오려고 제가 세수하고 머리도 깎았어요. 왜 그랬을까요?”

“저희한테 잘 보이려고요.”(모두 웃음)

“제가 오늘 여기 올 때 지저분하게 하고 오지 않은 이유는, 여러분들한테 잘 보여서 돈을 벌겠다거나 인기를 얻겠다는 목적이 있어서가 아니라, 여러 사람들 앞에 설 때는 최소한 외양을 깔끔하게 하는 게 예의이기 때문입니다. 새 옷을 사 입고 올 필요야 없겠지만 헌옷이라도 빨아서 냄새 안 나게 깔끔하게 입고 와야 하지요.

또 질문자가 만약 학교 선생님이라면 지식을 많이 알기만 해서 될 게 아니고, 잘 가르치기만 한다고 될 게 아니고, 동료 선생님들과의 관계도 어느 정도 좋아야 되겠지요. 더 나아가 교장 선생님과의 관계도 어느 정도 좋아야 되겠지요.

아이도 못 가르치고, 선생님들과 관계도 나쁘면서 교장 선생님한테만 잘 한다면 문제겠지만 아이들도 잘 가르치면서 선생님들과 관계도 좋고, 또 교장 선생님과 관계도 어느 정도 좋다면 더 좋겠지요. 교장 선생님이 뭐라고 한다고 ‘내가 아이들만 잘 가르치면 되는 거지, 네가 뭐라고 나한테 간섭이냐?’고 하면 안 되지요. 가끔 ‘잡무가 너무 많다’고 질문하는 선생님도 있던데, 어떤 일을 하더라도 잡무는 필요합니다. 왜 선생이라고 잡무를 안 하려는 거예요? 아이들은 가르치지 말고 잡무만 하라면 문제겠지만 아이들을 가르치려면 그에 따른 학교행정도 처리할 필요가 있는 거예요.

스님들도 잡무를 합니다. 어떤 일을 하든 마찬가지예요. 밥을 먹으려면 밥을 지어야 되고, 밥을 지으려면 쌀이 있어야 되고, 쌀이 있으려면 농부가 농사를 지어야 되지요. 이런 식으로 모든 게 서로 연결되어있는 거잖아요. 그래서 어느 정도는 다른 사람을 인정도 하고, 그들과의 관계도 개선하면서 나아가야지요.

그런데 질문자의 질문을 들어보면 ‘내 일만 하면 되지, 다른 사람 신경 쓸 필요 없는 것 아니냐? 그런 눈치 보고 살 필요 없다!’는 주장이 너무 셉니다. 질문자는 그런 주장을 하면서 회사를 오래 다닐 수 있을까요?”

“조금만 다니다 나갈 것 같아요.(웃음)”

“그러면 다른 회사로 바꾸면 오래 다닐 수 있을까요?”

“또 나갈 것 같아요. 그러면 저는 아무 일도 할 수가 없겠네요.”

“예. 이 회사 갔다가 저 회사 갔다가, 그렇게 왔다 갔다 하다가 머리가 하얘지겠지요.(모두 웃음)

이렇게 질문자가 자기 이야기만 하고, 자기 고집만 부리면 남들이 처음에는 그런 질문자를 ‘똑똑하다’고 좋아할지 몰라도, 시간이 흐르면 신뢰관계가 형성될까요, 안 될까요?”

“안 돼요.”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려면 적어도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잘 맺어 나가야 된다는 말을 하려는 겁니다. 그런데 질문자의 얘기를 들어보면 ‘그런 걸 다 포기한다’는 식의 주장이 강한 것 같아요. 질문자 생각은 어때요?”

“예, 저는 솔직히 자존심도 되게 세고, 당당하게 살겠다는 신념이 강한 편이예요. 제가 올해 스물한 살인데, 저는 늘 ‘떳떳하게 살겠다. 내가 왜 남 눈치를 보며 살아야 되나?’ 하고 생각해 왔어요. 그런데 오늘 스님의 말씀을 들어보니까 스님 말씀도 맞는 것 같아요.”

“여름에 덥다고 옷을 홀랑 벗고 다니면 돼요, 안 돼요?”

“안 돼요.”

“왜 안 된다는 거예요? 더운데 왜 내가 남의 눈치를 봐요?(모두 웃음)

남 눈치 안 보고 살겠다면 날씨가 더울 땐 다 벗고 다녀도 될 텐데, 실제 그러면 안 되는 거지요. 그렇다고 너무 잘 보이려고 남의 눈치만 보면서 조마조마하게 살 필요도 없지요.

조선시대 때는 며느리들이 온갖 눈치를 보며 살았지요. 시어머니 눈치 보고, 시댁 눈치 보면서 자기를 표현하지 않고, 죽어지냈단 말이에요. 그래서 옛날에는 시집가는 딸에게 ‘시집가면 3년간 눈 감고, 3년간 귀 막고, 3년간 입 닫고 살라’고 가르쳤잖아요. 남의 집 며느리가 되어서도 자기주장을 하면 그 집에서 살 수가 없으니까요. 그런데 요즘은 그렇게 살 필요는 없지요? 요즘은 볼 것 다 보고, 들을 것 다 듣고, 할 말 다 하고 살아도 되지만, 또 그게 너무 지나치면 밉상이 되지요. 가끔 똑똑하기는 한데, 밉상인 사람이 있잖아요?”

“예.”(모두 웃음)

“똑똑하게 자기 할 말은 할 줄도 알아야 되지만 기본적인 예의는 갖춰야 하겠지요?”

“갖춰야 돼요. 그러면 제가 지금 대학 재학 중인데, 나중에 제가 원하는 회사에 들어가게 되더라도 너무 남 눈치를 볼 필요도 없지만 다른 사람들한테 너무 밉보이지 않게 하고 싶은 말도 하면서 다른 사람들과 잘 지내면 된다는 말씀이시지요?”

“맞아요.(모두 웃음) 그런데 그게 말처럼 그렇게 쉽진 않아요.”

“엄청 어려울 것 같아요.”

“예, 하고 싶은 말은 다하고, 남으로부터 밉보이지도 않기는 어려워요. 할 말 다하면 밉보이기 쉽고, 남 눈치 보면 할 말 다 할 수 없으니까, 그 사이에서 어떻게 조율할지가 관건이지요.

그런 조율은 경험을 통해서 가능해요. ‘이 정도까지는 말해도 괜찮구나’ 하는 경험 말이에요. 때로는 밉보이게 될 걸 알아도 정말 중요하니까 말할 수밖에 없는 일도 있잖아요.

예를 들어, 예수님은 할 말 다 하다가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잖아요. 예수님도 그 당시에 유대교에서 하라는 대로만 하고, 할 말을 안 하셨다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실 일도 없었겠지요. 할 말 다 하셨으니까 밉보여서 결국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게 됐단 말이에요. 대중들은 예수님을 엄청나게 지지했지만 높은 사람들이 봤을 때는 기분이 나빠서 온갖 죄를 덮어씌워서 죽인 거잖아요.

우리나라 최제우 선생님도 민중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지만 나라의 임금이나 관리들은 ‘혹세무민한다’며 탄압하다가 처형했단 말이에요. 요즘도 촛불집회에 대해서 일부에서는 ‘선동한다’며 나쁘게 보는 사람들도 있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자기보다 높은 사람한테, 권력자한테 할 말을 하면 정작 말한 당사자가 피해는 입지만 ‘정당하다. 정의롭다’는 평가를 듣는데, 자기보다 아랫사람한테, 후배한테 할 말을 다하면 ‘독재’라는 평가를 듣게 됩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국민 눈치를 봅니까?”

“안 보는 것 같아요.”

“요즘 국민들이 자기 때문에 얼마나 힘든지 전혀 신경을 안 쓰잖아요. 설령 ‘내가 옳다’ 싶어도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헌법을 따라야 하는 거니까, 헌법재판관들이 전원일치로 탄핵을 인용해서 파면을 결정했으면 비록 개인적으로는 승복을 못하겠더라도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또 한 나라의 헌법질서를 수호했던 전직 대통령으로서 기꺼이 헌재의 결정을 수용하겠다고 입장표명을 해야지요. 그러면 더 이상 국민 간에 분란이 없는데, 계속 억울하단 식이란 말이에요. 대통령이 억울하다면 도대체 억울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그래서 지금 전 국민이 억울한 상황이에요. 그러니까 그런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지요. ‘개인적으로 억울할 수는 있겠다’ 해도 적어도 공직에 있던 사람은 법의 판단을 수용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으니까 자꾸 패가 갈려서 서로 대치하게 되잖아요. 박 전 대통령이 헌재의 결정을 수용해야 수개월에 걸친 탄핵 국면의 갈등을 일단락 짓고 서로 화합을 도모할 수 있는데, 지금 갈등만 더 깊어지는 안타까운 상황이 계속 되는 거예요.

그래서 때로는 할 말을 다 하더라도 자기 의견을 너무 고집하면 안 돼요. 아랫사람에게 너무 내 의견을 세우면 그건 좋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이런 문제는 딱 정해서 ‘이렇게 하면 된다’고 말할 수가 없으니, 스스로 조율해 나가는 수밖에 없어요. 오른쪽으로 너무 갔다 싶으면 왼쪽으로 가고, 왼쪽으로 너무 갔다 싶으면 오른쪽으로 가는 식으로 조율을 해야 합니다.

즉 내 주장이 너무 세서 사람들의 불평불만이 심해지면 내 주장을 조금 줄이고, 조금 줄여보니까 내 속이 너무 답답하다 싶으면 내 주장을 조금 해 보고, 주장을 조금 해 보니 저항이 너무 크다 싶으면 또 조금 줄이고, 그렇게 오른쪽, 왼쪽을 왔다 갔다 하는 경험이 쌓여 나이가 들면 적절하게 조정이 됩니다. 그걸 중도(中道)라고 해요.

중도란 ‘딱 가운데’라는 뜻이 아니고, 넘치지도 않고 부족하지도 않는 적절히 조정하며 가는 걸 뜻합니다. 그러니까 바른 길로 가면서 다른 사람도 포용하는 것을 말해요. 그건 연습이 좀 되어야지, 이론적으로만 말하기는 조금 어렵습니다. 스님도 여러분께 법문할 때 어떤 때는 콱, 송곳으로 찔러버리듯이 할 때도 있지요?

그래서 가끔 ‘스님한테 질문했다가 야단맞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던데, 제가 야단치려고 한 건 아니지만 질문자를 야단치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잖아요? 그런데 ‘너 정신 좀 차려라!’는 식으로 말하면 ‘야단친다’ 그러고, ‘그래, 그래∼’ 하는 식으로 들어주기만 하면 ‘질문해 봐야 별 도움이 안 되더라’고 그런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스님도 그 사이를 줄타기 하듯, 칼날에 서있듯, 적절히 조정을 해요.(모두 웃음) 질문자도 그렇게 연습을 좀 해 보세요.”

“예, 많이 연습해 보겠습니다.”

씩씩한 학생의 질문에 스님도 청중들도 상쾌한 기분이 되었습니다. 스님이 말한 ‘쌀과자처럼 바삭바삭한 대화’였습니다. 강연을 마치고 로비에서 사인회와 수고하신 자원봉사자들과 사진을 찍고 서둘러 나왔습니다.

오늘은 청주에 계신 ‘실상화 보살님’을 뵙고 댁에서 하룻밤 묵을 예정입니다. 스님은 노환으로 바깥 거동이 불편하신 보살님께 안부 인사 겸 찾아뵙기로 하였습니다. 실상화 보살님은 현재의 청주 정토회를 있게 한 어르신이십니다. 30여 년 전, 법륜 스님이 법사로 활동하고 계실 때 귀의하셔서 청주 법당 불사를 발원하신 후 지금의 청주 정토회에 이르고 있습니다.

보살님은 스님을 보시고 무척 반가워하셨습니다. 늦은 밤, 90세의 보살님은 쌀을 미리 씻어 불려 놓고, 국을 끓여 준비해 두고, 감주를 만들어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스님은 큰 절 하시려는 보살님을 말리며 손을 잡고 가만히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보살님은 요즘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소식을 보면서 얼른 헌법 개정이 되어서 대통령의 제왕적 권한을 축소시켜야 한다는 이야기와 사드 배치에 의한 중국의 경제 보복 행위가 거세어 졌다는 등 신문과 뉴스뿐만 아니라 ‘법륜 스님의 행복톡’등을 다 읽고 있다하시며 조곤조곤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보살님은
“내가 스님 뵙고 ‘육방예경’을 알게 되었거든. 부처님이 어느 날 어떤 젊은이가 여섯 방향으로 절을 하기에 왜 그렇게 하느냐하고 물었는데 그 사람은 아버지 유언에 따라 절한다고 했었거든. 그래서 그 젊은이에게 부처님이 여섯 방향에 절을 하는 의미를 알려주신 거야. 나한테는 스님이 알려주신 거지. 그래서 나도 그때부터 지금까지 여섯 방향에 절을 하고 있어.”

스님 손을 꼭 붙잡고 이야기하시는 보살님이 참 행복해 보였습니다.

스님은

“올 봄에는 어르신들 모시고 봄나들이를 다녀와야겠구나.”

하였습니다.

오랜만에 뵙는 스님과 보살님이 이야기를 다 나누기에는 깊어가는 밤이 참 짧아 보였습니다.

함께 만든 사람들
임혜진 정란희 손명희 조태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