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17. 03. 31 평화재단 미팅
원래 마음이란 그때그때 달라요

서울 서초동 정토회관. 새벽을 여는 도량석이 만물을 깨웁니다. 스님도 서울공동체 대중들과 예불과 천일결사기도로 아침을 시작하였습니다.

스님의 하루를 시작하기 전, 어제 중랑구민회관에서 있었던 ‘행복한 대화’ 중 인간관계에 대한 내용을 한 편 소개하고 시작할까 합니다.

“저는 평소의 모습하고 헤어질 때의 모습이 정말 반대인 분이 계셔서 어떤 모습이 진짜일까 궁금해서 질문 드립니다.”

“아침에 만날 때하고 저녁에 헤어질 때가 다르다는 거예요? 아니면 ‘너하고 나하고는 이제 끝이다’ 할 때의 모습하고 처음에 ‘너하고 나하고 잘 지내자’ 할 때의 모습이 다르다는 말이에요?”

“후자에요.”

“그게 같은 사람 봤어요? 진짜 이상한 질문이네요.(질문자 웃음, 청중 웃음)”

“(질문자 웃음) 그 분의 도움으로 제가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많은 도움을 받아서 자리를 잡았어요. 여러 가지 보살핌을 주시고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아서 저도 자존감을 회복하고 사회생활의 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는데, 제가 생각하기에는 아주 작은 문제로 의견 대립이 되고 그때부터 저를 오해하기 시작하면서 여러 가지 문자나 대화를 다 거부하고 그냥 일방적으로 인연을 끊자는 문자를 보내왔어요. 제가 자리 잡을 때까지 7, 8년 동안 자상하게 대해주던 모습은 오간데 없고 일방적으로 ‘인연 끊자’ 이런 식으로 막말을 해가면서 문자를 보내왔더라고요. 그래서 정말 헷갈립니다. 그 동안 그분이 저를 대했던 모습과 이번에 그런 막말 문자를 보냈던 모습 중에서 저에 대한 그분의 생각은 어떤 게 진짜일지 정말 답답하고, 대화를 거부하시니까 제가 어떤 변명이나 얘기할 수 있는 기회를 전혀 안 주시는 게 답답해서 여쭤보고 싶습니다.”

“질문자가 그분한테 도움을 받았어요, 그분이 질문자한테 도움을 받았어요?”

“그 분이 저한테 도움을 많이 주셨죠.”

“그러면 의견 차이를 일으켰을 때 누가 배신감을 느낄까요?”

“제가 봤을 땐 그분이 저를 배신했다고 생각하는데요.”(질문자 웃음, 청중 웃음)

“제가 어떤 학생한테 장학금도 주고 사회에 자리 잡도록 여러 가지를 쭉 도와줬는데 이 학생이 자기 의견을 고집한다면 제가 배신감을 느낄까요, 도움 받은 학생이 배신감을 느낄까요?”

“도움 준 사람이요.”

“그래요, 질문자가 그 사람을 배신한 셈인 거예요.”

“그런데 저는 그 정도의 배신이 아닌데 오해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건 질문자의 생각이죠.(스님 웃음, 질문자 웃음) 질문자는 그분을 도와준 게 아니잖아요. 사회에 자리 잡도록 여러 가지로 도와줬는데 별 거 아닌 걸 갖고 자기 고집을 하니까 ‘아이고, 내가 사람을 잘못 봤구나. 무엇 때문에 8년씩이나 이런 인간을 도와줬나’ 싶어서 끊어버린 거지요.”

“네...(질문자 웃음, 청중 웃음) 그런데 제 말을 조금 들으면 오해가 풀릴 것도 같은데...”

“질문자 말을 들을 이유가 뭐가 있어요? 질문자는 도움을 계속 받아야 하니까 오해를 풀고 싶겠지만, 그 사람은 도움을 준 사람이잖아요. 도와줘봤자 상대가 배신하니까 ‘그 인간하고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다’ 이렇게 생각했겠지요.”

“그런데 저는 7,8년 동안 그런 모습을 한 번도 못 봐서 정말 당황스러웠거든요.”

“그 사람은 참고 참다가 이제 터진 거예요.”

“그럼 제가 잘못한 거네요.”(질문자 웃음, 모두 웃음)

“잘못했다는 게 아니라, 둘의 관계가 내가 도움을 받고 상대가 도움을 준 관계라는 거예요.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봐요. 그러면 두 사람의 관계는 누가 갑이고 누가 을이에요? 도움을 받는 사람이 갑이에요, 도움을 준 사람이 갑이에요?”

“도움을 준 사람이 갑이죠.”

“그래요. 질문자는 도움을 받았으니까 을이잖아요.”

“네.”

“을이 갑한테 대들면 갑이 배신감을 느낄까요, 안 느낄까요?”

“느끼죠.”

“그래요. 그래서 생긴 너무나 자연스러운 현상이에요. 질문자가 도움을 준 사람한테 어떻게 큰 것도 아니고 소소한 걸 가지고 따지고 자꾸 덤벼요? 큰 거라면 오히려 또 모르겠는데 그렇게 도움을 받았으면서 소소한 걸 갖고 자기 고집대로 하면 어떡해요?”

“네...”(질문자 웃음, 청중 웃음)

“교회 나가요?”

“아뇨.”

“‘내 눈의 대들보는 못 보고 남의 눈의 티끌만 본다’ 는 성경 구절과 지금이 똑같은 상황이에요. 그러니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요? ‘아이고, 내가 그분을 좀 섭섭하게 했겠구나. 나는 작은 거라고 했지만 그분 입장에서는 그동안 그렇게 도와줬는데도 너무 따지니까 섭섭하게 생각돼서 저랬구나. 아이고, 죄송합니다.’ 이렇게 기도를 해요.

그분한테 가서 확인하려고 하지 말고요. 싫다는데 전화해서 자꾸 얘기하면 안 돼요. 그분한테 찾아가거나 전화하라는 게 아니라 집에서 혼자 이렇게 기도하라는 거예요. ‘아이고, 저 때문에 섭섭하셨죠? 죄송합니다. 제가 어리석어서 미처 당신 마음을 몰랐습니다.’ 이렇게 기도하면 내 속에 있는 답답함이 풀어져요. 그러면 됐어요. 거기 찾아가서 풀 필요는 없어요.
내가 참회해서 내 속에 있는 답답함을 풀어버리면 나중에 그분이 전화해도 내 속에 꽁한 게 없이 반갑게 대할 거예요. ‘아이고, 선생님 오랜만에 전화하셨네요. 전에 저 때문에 섭섭하셨죠? 죄송합니다.’ 이러면 서로 풀리는 거예요.
그런데 그 분이 전화 안하면 나도 안 하면 돼요. 전화를 꼭 해서 ‘그분하고 이걸 풀겠다!’하는 것도 자기 고집이에요. 정말 내가 그분을 아끼고 사랑한다면 그분이 싫다는 걸 존중해서 기다려줘야죠. 그러니까 그렇게 기도를 하면 좋겠어요.”

“네, 감사합니다.”(청중 박수)

“사람이 만날 때와 헤어질 때는 모습이 같은 게 정상이에요, 다른 게 정상이에요?”

“다른 게 정상이에요.”(청중 대답)

“똥 누러 갈 때 마음하고 똥 눈 뒤의 마음은 같아요, 달라요?”

“달라요.”(청중 대답)

“예, 다른 게 나쁜 게 아니에요. 다른 게 정상이에요. 마음이란 건 그렇게 그때그때 따라 달라요.”

‘상처를 받았다, 배신당했다’는 말을 흔히 하는데 정말은 어떠한가? 살펴볼 수 있는 대화였습니다.

스님은 아침 7시 30분, 평화재단에서 ‘종교인 모임’으로 일정을 시작하였습니다. 오늘은 일부에서 제기되는 한반도 위기설에 대한 평화의 메시지를 내자고 논의를 시작하였는데, 사드 배치 등 현안을 이야기하기엔 정치적인 논란을 심화시킬 수 있다는 점이 제기되었고 한편으로는 이 사안에 대하여 공감대가 부족한 현실이라고 판단하였습니다. 대신 새 정부가 들어서면 어떤 방식으로든 남북관계에 있어서 교류협력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여 그에 반영이 되도록 ‘전향적 대북정책으로의 전환을 위한 메시지를 각 후보에게 전하자’는 데에 뜻을 모았습니다.

이후 연이어 회의와 찾아오신 손님을 만나는 등의 일정을 가진 뒤, 스님은 오후 1시 경 두북으로 출발하였습니다.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빗방울이 보이기 시작하더니 꽤 많은 비가 내렸습니다. 원래 스님은 내일 있을 공동체 봄나들이의 산책 코스 답사 겸 운동 겸 남산 새갓골을 거쳐 용장계곡을 돌아보려고 하였으나 비가 내리는 바람에 코스를 바꿔야했습니다. 어차피 내일도 비가 내린다고 하니 스님은 평지 코스 중에 꽃을 볼 수 있는 구간으로 살펴보기로 하고 아쉽지만 차량으로 둘러보자 하였습니다.

먼저 흥무공원 쪽으로 차를 달려보았습니다. 벚꽃이 꽃망울을 터트리려고 바알갛게 한창 준비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드문드문 어떤 나무는 꽃을 피우기도 했는데 스님은 짧은 나무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벚나무의 종류에 따라 꽃 피는 시기가 조금씩 달라. 햇빛 양에 따라서 꽃 피는 시기가 달라지기도 하고 나무마다 꽃 피우는 시기가 조금씩 다르지. 그래도 고목에서 꽃을 빨리 피우는 편이야.”

흥무공원 다음 코스로 벚나무 길이 유명한 대릉원 길, 첨성대 앞길을 거쳐서 보문단지 가는 길로도 가보았습니다. 보문단지와 불국사 구간은 경주에서도 약간 높은 지대에 있어서 벚나무가 아직 꽃을 피우기에는 시간이 더 필요해보였습니다. 그래도 곳곳에 개나리가 눈에 띄는 멋진 노란빛으로 피어 있어서 탄성을 지르기도 했습니다.

불국사 아래 주차장까지 가서 돌아 나와 두북으로 향했습니다. 두북으로 가는 중 ‘부처골’을 지날 때는 스님의 어린 시절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어릴 때 홍수가 나거나 하면 이 다리가 곧잘 끊어졌지. 그러면 집에서 이곳까지 20리를 걸어와서 차를 탔어. 어떤 때는 경주까지 40리를 걸어 갈 때도 있었지. 자취방까지 김치를 가져가야 할 때는 쌀 자루에 김치 단지를 묻어서 매고 가기도 했지.”

40리를 걷는다니, 얼마 정도의 거리인지 여쭤보았습니다.

“5시간 정도 걸어야지. 점심때 걷기 시작하면 해가 뉘엿뉘엿 질 때 도착하게 되는 거야. 걸으면서 구경도 하고 사과나무에서 떨어진 사과도 주워 먹고 소나무도 살펴보고. 그러니까 저 소나무가 보기에는 작아보여도 나보다 더 오래된 소나무야.”

5시간을 걸어 학교와 집을 오가던 소년, 어느 때는 등에 한가득 짐을 지고 이 길을 걸어가는 소년이 떠올랐습니다. 그때의 스님은 걸어서, 지금 우리들은 차를 타고 지나는 길이 경이롭게 다가왔습니다.

내일은 공동체 식구들이 함께 경주 곳곳을 걸어보겠습니다. 봄비가 내려도 함께 걷는 길이 기대가 됩니다.

임혜진 손명희 정란희 조태준

전체댓글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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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 춘심

..스님 항상 지해로운 말씀 감사합니다.이렇게 명확하게 확신을 같고 마음의 정리를 할수 있음을 감사 드림니다...!
스님의 글을 읽고 마음이 훨신 가벼워 졌 습니다 ~~♡

2017-08-30 12:19:33

이미정

요즘 미웁고 싫은 사람이생겨 크게 힘든데 도움이되었습니다
그를 어떻게하려고 할게 아니고 그의싫은마음도 존중하겠습니다
일로서는 우위에있는 위치라 강압적으로 할까했는데‥
기다리면 소통하겠습니다

2017-04-02 15:58:32

^^^^

10리는 4킬로정도 될꺼에요~스님 몸도약하신데 쌀이며 김치독을 메시고 40리길을 걸으셨군요ㅠ

2017-04-02 13:3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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