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17. 04. 06 행복한 대화 - 양천 문화회관 대극장 편
내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지고 외로워서 힘들어요

스님은 오늘 새벽기도 후, 아침 8시부터 손님맞이에 분주했습니다.
저녁 강연 전까지 각종 원고와 업무, 손님맞이로 바삐 움직이다 오후 5시 40분쯤 오늘 강연이 열리는 양천 문화회관으로 출발하였습니다. 가는 길, 한강변이 노란 개나리로 화사하게 덮여 있어 서울에도 봄이 완연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양천 문화회관 2층에 마련된 대극장에 들어서니 1층과 2층 객석에 남녀노소, 가족단위로 사람들이 꽉 차 있었습니다. 객석이 다 차서 1층 복도와 무대 앞 공간에도 깔개를 깔고 사람들이 자리를 잡았습니다.

스님은 저녁 안부 인사를 건네며 ‘행복한 대화’를 시작하였습니다.

“저의 고민은 외로움입니다. 특히 술을 마시면 평소보다 외로움을 더 많이 느낍니다. 그리고 멋진 상대도 만나고 싶은데, 막상 그런 사람이 다가오니까 제가 소극적이 되어 못 다가가고, 제 자신이 상대방이 생각하는 그런 멋진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들키는 것이 두렵습니다. 상대방이 실망하고 상처를 받으면 어쩌나 하고 겁이 납니다…”

“네. 그래서요?” (청중 웃음)

“그래서…” (청중 웃음)

“술을 마셔서 외로움이 심해지면 술을 안 마시면 되죠. 그리고 멋진 사람을 만나서 위축되면 멋진 사람을 안 만나면 되잖아요. 그게 뭐 어려운가요.” (청중 웃음)

“그런데 저는 둘 다 하고 싶거든요. 술 마시는 것도 좋아하고, 멋진 사람도 만나고 싶어요.”

“정 그러면 술 마시고 외로움을 좀 느끼고, 멋진 사람을 만나서 좀 위축되면 되잖아요.” (청중 웃음)

“어.. 위축되면 되나요… (청중 웃음) 그래도 제가 위축되지 않고 자연스럽게 인간관계를 맺고 싶은데요.”

“자연스럽게 관계를 맺고 싶으면 위축되지 않고 그냥 자연스럽게 관계를 맺으면 되지요.” (청중 웃음)

“그런데 그게 이상하게 겁나요.”

“그러면 겁을 조금 내면서 관계를 맺으세요. 그래도 아무런 문제가 없어요. (청중 웃음)

자, 제가 지금까지 질문자와 대화한 건 이런 것과 같아요. 잘 들어보세요.

‘스님, 제가 걷고 싶습니다.
그러면 걸으세요.
걷다보니 다리가 아픕니다.
그러면 쉬세요.
그래도 걷고 싶어요.
그러면 다리가 아파도 걸으세요.
다리가 아픈 건 어떡해요?
그래도 걷고 싶으면 다리 아픈 건 각오하셔야 해요.’

여기에 이상한 부분이 없죠?”

“음…”

“그럼 제가 질문자에게 스님하기가 참 힘들다고 물어보면 어떨까요? 새벽에 일어나서 예불하려면 졸립고, 절하려면 무릎 아프고, 참선하려면 허리가 아프고, 염불하려면 목이 아프고, 혼자 살려고 하니 외로워요. (청중 박장대소와 박수) 이러면 질문자는 뭐라고 하시겠어요?”

“계속 그렇게 살거나 그만두거나…”

“지금까지 몇 십 년 동안 스님으로만 지냈는데, 이제 와서 그만두면 앞으로는 뭘 하고 사나요?

이렇게 되물으면 질문자는 뭐라고 대답할까요? 계속 하라고 하겠죠? (청중 웃음) 지금 질문자가 하는 질문도 이와 비슷해요. 배고프면 밥을 먹고, 더 먹고 싶지만 배가 부르면 그만 먹어야 하는 것과 같아요. 질문자는 심각한지 모르겠지만 당연한 걸 묻고 있어요.

술을 마시고 싶으면 술을 마시면 되고, 술 마셔서 외로움을 느낀다면 술을 안 마시거나 그래도 마시고 싶으면 외로움을 조금 타면 돼요. 하나도 어려운 게 없잖아요?”

“그러게요.” (청중 웃음)

“그러니 별일 아닌 거예요. 별일 아닌데 질문자가 문제를 삼고 있는 거예요.

문제를 삼자면 스님도 같은 질문을 할 수 있어요.

‘스님은 결혼도 안 해봤는데 사람들이 스님에게 자꾸 결혼생활에 대해서 묻고, 아이도 안 키워봤는데 자꾸 아이 키우는 것에 대해서 묻고, 연애도 안 해봤는데 자꾸 연애에 대해서 물어요. 그래서 너무 힘들다고 하면 질문자는 스님에게 앞으로 질문 받지 말라고 하겠지요?’ (청중 웃음)

‘그래도 강연을 하다보면 질문하는데 어떻게 질문을 안 받아요?
그러면 강연을 안 하면 되죠.
강연을 해달라고 하는데 어떡해요?
그래도 안 해주면 되죠.
해달라는데 또 어떻게 계속 거절을 해요?
그러면 해주면 되죠.’

하기 싫으면 안 하면 되고, 안 하기가 어려우면 그냥 하면 되는 거예요.”

“그러면 그냥 감수하고 계속 하는 건가요?” (청중 웃음)

“물건을 사고 싶으면 돈이 필요하고, 돈을 마련하려면 일을 해야 하는 것처럼 필요한 일을 하는 거예요. 일을 안 해서 돈이 없으면 물건을 사고 싶어도 안 사면 되는 거예요. 그래도 사고 싶으면? 그래도 안사면 돼죠. (청중 웃음) 그래도 사고 싶으면 빚을 내거나 돈을 마련해서 사면 돼요. 무엇을 하든 어려운 건 없잖아요.”

“아, 그러면 제가 지금 고민을 하는 이유가 그런 뒷감당을 하기 싫어서 그런 걸까요?”

“지금 너무 좋은 걸 찾았네요. 사람을 만나도 자기보다 잘난 사람을 만나고 싶어 해요. 그런데 자기보다 잘난 사람을 만나면, 자기랑 비교했을 때 자기가 못나 보이니까 자연스레 위축될 수밖에 없죠. 그건 자기보다 잘난 사람을 만나고 싶어 하는 욕구의 필연적인 결과예요.

그렇지 않고 자기가 잘나 보이고 싶으면 자기보다 못난 사람을 만나면 돼요. 그러면 늘 스스로 자랑스러울 거예요.

키가 커 보이고 싶으면 나보다 키가 작은 사람을 만나면 되고, 예쁘게 보이고 싶으면 나보다 못생긴 사람과 같이 다니면 돼요. 꽃 앞에서 사진 찍으면 꽃이 더 예뻐 보일 수 있으니까 사진도 주로 고목나무 앞에서 찍고 그러면 돼요. (청중 웃음)”

“네, 감사합니다.” (모두 웃음과 박수)

“젊은 사람한테 제가 너무 박하게 대답했나요?”

“(청중) 네.” (스님 웃음)

“너무 심했어요?”

“(청중) 네.”

“스님한테 물으면 주로 야단맞는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대요. 그런데 야단치는 게 아니라, 스님이 이야기해 주고 싶은 것은 세상살이에는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반드시 과보가 따른다는 거예요.

질문하신 분, 다시 마이크를 받아보세요.

지금 여기 병이 보여요?”

“네.”

“병과 마이크를 비교하면 병이 큰가요, 작은가요?”

“작아요.”

“병은 그 옆에 있는 뚜껑보다는 커요, 작아요?”

“커요.”

“병은 마이크보다 커요, 작아요?”

“작아요.”

“자, 그러면 이 병은 커요, 작아요?”

“중간…. 아니, 크지도 않고 작지도 않아요.”

“그렇게 대답하는 걸 보니 아주 멀쩡하네요. (청중 웃음)

그래요. 이 병 자체는 크지도 않고 작지도 않습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만물도 이와 같이 좋은 것도 아니고 나쁜 것도 아니고, 크지도 않고 작지도 않고, 다만 그것일 뿐이에요.

그런데 우리가 사물을 인식할 때 다른 것들과 비교해서 크다, 작다는 인식을 하게 됩니다. 여기 있는 병도 마이크와 비교를 해서 작다고 인식하고, 뚜껑과 비교해서 크다고 인식을 하는 거예요. 그러니 크다, 작다는 것은 사물 자체가 가지고 있는 성질이 아니라 우리의 인식 상에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사물 자체는 다만 그것일 뿐인데, 우리가 그 사물을 인식할 때 크다고 인식하거나 작다고 인식하고, 혹은 좋다고 인식하거나 나쁘다고 인식하는 거예요. 즉, 크거나 작거나 새것이거나 헌것이거나 좋거나 나쁘거나 하는 것은 사물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인식에서 비롯되는 것이라는 거예요.

마찬가지로 질문자는 잘난 사람도 아니고 못난 사람도 아니에요. 훌륭한 사람도 아니고 저급한 사람도 아니에요. 자기는 다만 자기일 뿐입니다. 그런 자기를 두고 키 큰 사람과 비교하면 작은 사람으로 보이고, 키가 작은 사람과 비교하면 큰 사람으로 보이는 거예요. 자기보다 나
이가 많은 사람과 함께 있으면 젊어 보이고, 자기보다 나이가 어린 사람과 함께 있으면 늙어 보이는 겁니다.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예요. 상대방 역시도 다만 그 사람일 뿐 잘나고 못난 것이 없는데, 질문자가 상대방이 자기보다 잘났다고 생각하니까 상대적으로 자기 스스로가 못난 사람으로 느껴지는 겁니다. 즉, 자기 자체가 못난 사람이어서 못난 사람으로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자기보다 잘난 사람을 좋아하고 그런 사람들과 어울리니까 스스로를 못난 사람으로 인식하는 겁니다.

그렇게 자기 존재 자체가 열등한 것도 아니고 다른 사람이 질문자를 열등하게 만드는 것도 아닌, 자기 스스로가 자기를 열등하게 여기는 거예요.”

“그러면 반대로 저보다 못난 사람들과 다니면 우월감에 빠지지는 않을까요?”

“나보다 못난 사람과 다니면 내가 잘난 사람이 되고, 나보다 잘난 사람과 다니면 내가 못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핵심은 본래 잘난 사람도 못난 사람도 없다는 거예요. 다만 우리가 비교를 하면서 잘나고 못났다는 인식상의 오류를 만들어낼 뿐입니다. 실제로 그런 것이 아니라 인식상의 오류가 만들어낸 잘못된 생각이라는 점을 자각해야 해요.

그것만 깨달으면 잘나고 못나고를 따지지 않으니 누구를 만나도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잘나고 못난 것이 없다...어떻게 그렇게 되죠?”

“원래 잘나고 못난 것이 없어요. 그걸 제대로 알려면 무엇이 잘났고 무엇이 못났는지 스스로 한 번 따져보세요. 여기에 있는 물병이 잘났어요, 못났어요?

사람도 마찬가지예요. 그냥 이런 사람, 저런 사람 등 다양한 모습의 사람들이 있을 뿐이지 잘난 사람, 못난 사람이 있는 게 아니에요. 그런데도 우리가 누구는 잘나고 누구는 못났다고 느끼는 것은 그 사람이 정말로 잘나고 못나서가 아니라 우리가 가지고 있는 기준이나 비교 대상에 따라 그렇게 인식할 뿐이에요.

실제로 그 대상이 그런 게 아니라 우리의 인식과정에서 그런 생각이 들었을 뿐인데도, 우리는 마치 그게 그 대상의 성질인 양 착각을 해요. 이 착각은 우리 인식 상의 오류입니다.

물병과 마이크를 비교해서 물병이 마이크보다 작다고 인식을 하는데, 물병이 마이크보다 작다고 느껴지는 것 자체가 인식의 오류가 아닙니다. 어디서 인식의 오류가 생기느냐면 물병이 작게 보이는 것은 마이크와 비교했을 때, 즉 그 조건에서 생겨나는 물병에 대한 우리의 인식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물병 자체가 작다라고 착각을 해요. 즉 비교에서 생긴 인식을 그 물건 자체의 성질로 여기는 착각이 바로 인식이 갖는 오류입니다. 다시 말해서, 작게 보이는 것은 마이크와의 비교에서 생긴 것인데, 그것을 알지 못하고 마치 물병 자체가 작아서 우리가 작다고 인식하는 것인양 잘못 알고 있지요.

마찬가지로 질문자는 잘난 사람도 못난 사람도 아니에요. 그런데 자기보다 잘난 사람과 비교를 하면 못난 것처럼 느껴질 수 있어요. 그럴 때 그 못났다고 느끼는 것은 비교에서 생겨난 인식인데도, 그걸 자각하지 못한 채 그런 인식이 반복되다보면 마치 질문자 자체가 못난 것으로 착각하는 거예요.

질문자보다 키가 작은 사람과 늘 같이 다니면 스스로 키가 큰 것으로 착각을 합니다. 질문자 자체는 키가 큰 것도 아니고 작은 것도 아닌데, 그런 인식이 반복되다보면 스스로 키가 크다는 착각을 일으킵니다. 다만 주어진 조건에서 그렇게 보일 뿐인 것을 마치 존재 자체에 크고 작음이 있는 줄 착각하는 거예요.

지금 질문자는 그 착각 때문에 힘들어하는 거예요. 이 착각을 없애는 방법은 애초에 크고 작고, 잘나고 못났음이 없는 줄 아는 거예요. 애초에 잘난 사람이 없으면 그와 비교해서 생기는 열등한 자신도 없습니다.

그리고 외로움을 느낀다고 하는데, 다람쥐가 산에 혼자 산다고 외로워하지 않습니다. 혼자 있기 때문에 외로운 것이 아니라 마음의 문을 닫고 있기 때문에 외로운 거예요. 마음의 문을 닫고 있으면 남녀가 같이 있어도 외롭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높은 장벽이 뭔지 아세요? 큰 성벽보다 더 높아 보이는 것이 토라져서 등 돌리고 누워있는 남편의 뒷모습입니다. (청중 공감의 웃음) 몸을 껴안고 있어도 마음의 문을 닫고 있으면 외롭고, 깊은 산속에 혼자 살아도 마음의 문을 열고 있으면 외롭지 않습니다. 누구와 함께 해서 외롭지 않은 것도 아니고, 또 외부에서 외로움을 주는 것도 아니고 내가 내 마음을 닫고 있기 때문에 외로움을 느끼는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청중 박수)

“누구를 만나서 외로움을 해소하게 되면 막상 사람을 만나면 귀찮아집니다. 그러다가 헤어지면 또 외로워하고, 그래서 누구를 만나면 또 귀찮아져요. 그렇게 왔다갔다 방황하면서 살게 됩니다.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고, 같이 있어도 귀찮지 않아야 합니다. 그러면 사람들과 아무리 대화해도 귀찮지 않고 혼자서 며칠 동안 있어도 외롭지 않아요.

물은 경사면을 만나면 빠르게 흐르고, 직각면을 만나면 폭포가 되고, 웅덩이을 만나면 고요한 호수가 됩니다. 그저 인연을 따라서 이루어지는 거예요.

그런데 주어진 인연에 따라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자꾸 ‘이래야 된다, 저래야 된다’는 생각을 하니까 괴로워집니다. 사람이 없을 때 누구를 만나야겠다고 생각하니까 외로워지고, 사람과 같이 있는데 혼자 있어야겠다고 생각하니까 귀찮아지는 거예요.

같이 있을 때는 같이 있어서 좋고 혼자 있을 때는 또 혼자 있어서 좋고. 이렇게 주어진 조건을 받아들이고, 그 조건 속에서 내가 주인이 되어야 합니다.”

요즘 자존감이 없다고 질문하는 젊은이들이 많았습니다. 스님은 직접 물병과 마이크 대로 예를 들어 설명해주었습니다. 현장에서 예를 들어 문답을 주고받으면 질문자뿐만 아니라 현장에 있는 모든 사람과 함께하는 문답이 됩니다. 문답을 주고받으면서 각자가 자기 스스로를 살펴보는 시간을 가지게 되지요.

양천 문화회관을 꽉 메운 사람들이 함께 하는 ‘행복한 대화’ 시간이 끝나고 로비에서 사인회가 열렸습니다. 좁은 로비여서 책을 사려는 사람, 사인을 받으려는 사람, 사진을 찍는 사람 등 복잡한 가운데 스님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돌아오는 길, 한강 다리의 불빛이 현란하게 빛났습니다.
오늘도 바쁜 하루가 이렇게 마무리 됩니다.

함께 만든 사람들
임혜진 손명희 정란희 조태준

전체댓글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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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실이

잘나고 못나고는 없는것임을 인식의 오류라는 말씀 와닿습니다. 열등과 우월감이 생길때 인식의 오류임을 자각하며 괴로움없이 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스님

2017-04-11 06:3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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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말씀드리면 사물 자체는 다만 그것일 뿐인데, 우리가 그 사물을 인식할 때 크다고 인식하거나 작다고 인식하고, 혹은 좋다고 인식하거나 나쁘다고 인식하는 거예요. 즉, 크거나 작거나 새것이거나 헌것이거나 좋거나 나쁘거나 하는 것은 사물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인식에서 비롯되는 것이라는 거예요 ] 스님을 조금 앞쪽에앉아 뵈니,멀리서 뵐때와는 다르게 더 푸근했습니다~정도 많아보이시고 참 따뜻했어요^^앞에서 촬영하시는 애기같이 귀여우신 행자님,스님 마이크에 부딪치실까 높이 조정해주시는 거 보고 정말 스님 수행하시는 분들꼐서 스님을 얼마나 챙기시는지 느낄 수 있었어요^^

2017-04-11 04:57:28

토마토

박사모는 싫지만 나쁜 것은 아니다.

2017-04-10 08: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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