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7시 반, 스님은 조찬 회의로 오늘의 일정을 시작하였습니다. 늦은 점심시간까지 손님맞이 등으로 시간을 보내고 오후 1시 30분, 군 포교를 담당하시는 법광 법사님과 함께 군부대로 출발하였습니다.
정장 차림의 담당 군인의 안내로 마련된 강당으로 갔습니다. 스님은 <소중한 인생, 행복한 삶>이라는 주제로 90분 동안의 특별 강의 요청을 받았는데 무대 위에서 사회자가 강연 시작 안내 멘트를 하자, 객석에서 군인 한 명이 나와 구령에 맞추어 다 함께 경례를 하고 강의를 시작하였습니다.

지금까지의 강연장에서는 보지 못한 이색적인 모습이었습니다. 무겁기도 한 군부대 강연장에서 스님은 점심 식사 인사를 건네며 시작하였습니다.

“점심 식사는 잘 하셨습니까? 지금이 딱 졸릴 시간이네요. 저는 강연장에서 주로 여성분들을 많이 접하는 편인데 오늘은 대다수가 남성들이시네요.(모두 웃음)
이런 동일 집단에는 제가 강의를 잘 하지 않습니다. 다른 이유에서가 아니라 같은 회사나 이런 단위에서는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질문하기가 어렵지 않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질문이라도 한 번 해보세요. 용기를 내서.”

머리 모양도 비슷한 남성들이 일순간에 웃었습니다. 잠시 침묵 뒤에 한 분이 마이크를 잡고 질문하였습니다.

‘8살 아들과 4살 딸을 두고 있는데 아들이 공부에도 운동에도 소질이 없는 것 같아 고민이다. 건강하게만 자라라고 하기에는 요즘 세상이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
‘공직생활에서의 성과와 인간관계를 어떻게 해야 할까. 승진하기 위해서는 일뿐만 아니라 관계도 좋아야하는데 그런 데에 소질이 없다.’
‘이름을 바꿔야 할까. 이름 때문에 성인이 된 요즘까지 고민하고 있다.’
‘미혼인데 군 생활을 하다 보니 이동이 많다. 결혼하기에 부적절한 조건일지 걱정된다.’

모두 네 사람이 질문을 하였습니다.
스님은 공직 생활에서의 성과와 인간관계에 대한 질문에 대하여

‘조직 생활은 길게 보고 원칙에 충실하며 생활하는 것이 좋다.
모든 공무원은 국민에게 충성해야 한다. 이념이나 개인에 충성하는 것이 아니다.
공무원에게는 승진이 최고의 진출구라 중요하겠지만 거기에 너무 매달리게 되면 자기 인생의 ‘을’이 된다. 원칙에 맞게 최선을 다하되 결과, 평가에 대해서 연연하지 않으면 인생의 ‘갑’이 된다.’

라는 요지로 조언을 해주었습니다.

대화를 하다 보니 예정했던 시간보다 20분이나 더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이후에 대전 강연이 예정되어 있어 서둘러 대전으로 출발하였습니다.

시간이 빠듯하여 스님은 휴게소에서 잔치국수와 우동으로 저녁 공양을 하고 강연 20분 전에 대전 동구청에 도착하여 한현택 구청장님과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시간이 되어 스님과 구청장님은 함께 강연장으로 갔습니다. 스님은 구민들이 모인 자리라 구청장님께 인사를 청해 구청장님의 인사 후, 강연이 시작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동구청 대강당을 꽉 채우고 자리가 모자라 강연장 바닥과 외부에도 모니터를 통해서 강연에 함께 하였습니다.

오늘은 모두 7명의 질문자가 스님과 대화를 하였습니다. 더 많은 질문지가 기다리고 있었지만 시간이 부족하여 스님은 양해를 구했습니다.

이 중에 심각할 수도 있는 사연이었지만 청중과 웃음을 많이 나눴던 스님과의 대화를 소개합니다.

“올해로 결혼 28년차입니다. 아들만 둘 뒀고요. 말하자면 저는 혼전에 성폭행을 당해서 결혼을 하게 됐는데 그때 당시는 이 사람과 결혼을 하지 않으면 죽어야 되는 줄 알았어요. 큰아들이 17개월 됐을 때부터 남편이 바람을 피우기 시작했어요. 이혼하려고도 했지만 아들을 뺏기게 될까봐 아들을 지키기 위해 살아왔어요. 그런데 그 아들만 키우다 보니까 너무 외로워서 또 낳다 보니까 둘째 아들까지 낳게 되었습니다. 남편은 27년 동안 계속 외도를 했어요. 외도를 하면 남편은 꼭 2, 3개월씩 집을 나가거든요. 그러다가 한 3개월 지나면 다시 돌아와서 ‘잘못했다. 같이 다시 한 번 잘 살아보자’고 비는 식이었어요. 남편은 조금만 화가 나도 폭언을 하고, 때로는 더 심한 일도 해서 제가 병원에 누워있기도 했어요. 그래서 저는 눈물로 지새우며 아들들만 바라보고 살아왔습니다. 저는 어떻게 살아야할까요?”

“아들이 몇 살이에요?”

“큰아들은 2년 전에 경찰공무원이 되어서 지금 27살이 되었고, 작은아들은 23살입니다.”

“그러면 아들들이 모두 성년이네요.”

“예.”

“그러면 질문자는 자식에게 부모로써 해야 될 역할은 다 했어요.”

“그래도 내 아들들은 끝까지 지켜주고 싶습니다.”

“그런 얘기하는 거 보니까 질문자는 죽을 때까지 남편과 살겠네요.(모두 웃음) 말하는 걸 보니까 더 이상 남편을 탓 할 수도 없겠네요.”

“...”

“질문자는 아이를 위해서 살았다고 했는데, 그건 아이가 미성년자일 때까지만 유효한 얘기입니다. 질문자에게는 여성으로서 행복할 권리도 있고, 자기 인생의 주인으로서 행복하게 살 권리도 있지만 일단 그 여성이 엄마가 되면 그때는 아이에 대한 책임이 생긴단 말이에요. 그래서 아이가 어릴 때는 여성의 권리보다 엄마로서의 책임이 더 우선합니다. 생물학적으로 그렇다는 거예요. 모든 생명은 다 제 생명을 스스로 지킬 권리가 있는데, 이걸 ‘개체보존의 본능’이라고 합니다. 모든 생명은 죽지 않고 살 권리, 자기 생명을 방어할 권리가 있다는 거예요. 그런데 새끼를 낳은 어미는 새끼를 보호하는 것이 자기 생명을 보호하는 것보다 더 우선합니다. 이것은 수컷에게는 없는, 암컷만의 본능이에요. 그런데 그것은 새끼가 자립할 때까지만 유효한 본능이에요. 이건 테스트를 해 보면 금방 알 수 있어요. 닭이 있는데 사람이 다가가면 닭이 도망가요, 덤벼요?”

“(청중들) 도망가요.”

“그런데 닭이 알을 품고 있거나 병아리를 데리고 있을 때 가까이 다가가면 알이나 병아리를 버리고 도망가나요? 알이나 병아리를 날개 밑에 숨기고 깃털을 세워서 ‘꼬옥꼬옥꼭’ 하면서 덤비나요?”

“(청중들) 덤벼요.”

“그게 ‘종족보존의 본능’입니다. 새끼가 어릴 때는 종족보존의 본능이 개체보존의 본능에 우선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아기를 낳기 전에는 ‘아기를 어떻게 키울까?’ 하는 걱정을 해도 막상 아기를 딱 낳게 되면 생물학적으로, 저절로 아기를 보호하는 본능이 일어납니다.
마치 아기를 낳은 여성의 가슴에서 저절로 젖이 나오는 것과 같아요. 그런 성질이 없다면 종족은 유지되지 못 하겠지요.

그러니까 자기도 살아야 되지만 ‘나와 같은 종을 이 지구상에 계속 남기고 싶은 본능’, 즉 종족보존의 본능을 쉬운 말로 ‘모성애’라고 하는데, 그게 무한히 있는 게 아니에요. 질문자가 지금 아들들에게 갖고 있는 건 모성애가 아니라 집착이에요. 집에 돌아가서 한번 닭을 관찰해 보세요. 병아리 털이 노란색일 때는 닭이 병아리를 보호하려고 하지만 노란색 털이 빠지고 약간 주황색이나 검은색 털이 생길 때부터는 사람들이 병아리를 잡거나 해도 어미닭이 거기에 관심을 안 둡니다. 상관을 안 해요. 왜 그럴까요? 병아리가 어느 정도 커서 자립할 정도가 됐기 때문에. 그럴 때 어미닭에게는 종족보존의 본능이 우선일까요? 개체보존의 본능이 우선일까요?”

“(청중들) 개체보존의 본능.”

“예. 그러면 사람은 생물학적으로 몇 살이면 자립할 정도가 됐다고 봐야 될까요? 원시시대엔12살, 13살이었어요. 현재도 생물학적으로 성인이 되는 나이는 법적으로 13살이에요. 그런데 사회적으로는 언제부터 성인 취급을 해 주느냐 하면, 어떤 사회냐에 따라서 인정해 주는 연령이 다릅니다만, 현재 대한민국은 만 19살이면 성인 취급을 해 줍니다. 그러니까 20살이 되면 투표권도 주고, 부모 승낙 없이 결혼할 권리도 생깁니다. 그런데 만약 13, 14, 15살짜리가 결혼할 때 부모승낙을 안 받으면 혼인신고를 못 합니다.

그런데 질문자의 아들들은 모두 생물학적으로는 13살이 넘었고, 사회적으로도 19살이 넘었기 때문에 질문자가 부모로서 져야 할 의무는 끝났습니다. 그런데 예를 들어 질문자가 이웃집 아이한테 장학금을 좀 대줄 수도 있잖아요? 그럴 의무는 없지만 그렇게 한다면 그건 그냥 선행이지요. 그러니까 질문자는 자기 자식한테도 선행을 베풀 수는 있어요. 그러나 그게 부모의 의무는 아닙니다. 또한 자식도 19살까지는 부모 말을 들어야 할 의무가 있지만 19살이 넘으면 부모 말을 안 들어도 돼요. 왜냐하면 자기 결정권이 있기 때문에. 그러니까 자식이 부모의 뜻을 안 따른다 해도 그건 죄가 아니라는 거예요.”

“그런데 스님, 제가 작년에 남편을 내보냈는데, 아이들과 살면서...”

“자, 이제 질문자는 더 이상 아이 핑계는 댈 필요가 없다는 거예요. 전에는 아이가 미성년자였기 때문에 질문자가 어미로서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서 남편의 어떤 핍박도 견디면서 살았다는 건 이해가 돼요. 그런데 아들들이 성년이 된 지금은 질문자가 남편과 살지, 말지를 결정하는데 있어서 아들들은 전혀 고려할 필요가 없다는 거예요. 그냥 질문자 스스로 결정하면 된다는 거예요.”

“그런데 남편이 ‘머슴처럼 살겠다’며 들어와서 살고 있으니까 어쩌면 좋겠습니까?”

“예를 들어 아무 연관 없는 남자분이 질문자 집에 가서 머슴처럼 살겠다고 하면 질문자가 어떻게 할 거예요? 그런 질문은 남한테 할 필요도 없지요. 그러니까 질문자 스스로 이제 그 남자와 살지, 안 살지를 그냥 결정하면 돼요. 그 남자가 어떻게 하든 그건 그 사람의 일이지요. 예를 들어 질문자가 가게를 하는데 어떤 사람이 와서 ‘내가 형편이 어려우니 10만 원 짜리 물건을 1만 원에 달라’고 자꾸 얘기하면 그렇게 해줄지, 안 해 줄지는 누가 결정해야 되겠어요? 질문자가 결정해야지요. ‘아무리 사정해도 내가 밑지니까 안 된다. 그렇게는 못 판다’고 하든지, ‘사정이 딱하니까 공짜로라도 주겠지만 1만 원이라도 주고 가져가려면 가져가라’고 하든지 해야지요. 그러니까 질문자는 남편이 집에 와서 그렇게 사정하니까 그냥 봐줄 수도 있고, 아니면 ‘사정은 네 사정이고, 난 이제 너와 혼인관계는 끝내겠다’ 이렇게 자를 수도 있지요.”

“음...”(모두 웃음)

“제가 보니까 질문자가 아직 남편을 필요로 하네요.”(모두 웃음)

“아니요, 남편 없이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루씩 외박하고 들어오더라도, 그래도 있는 게 없는 거랑은 차이가 많이 나잖아요. 이혼했다든지, 혼자 살면 온갖 지나가는 남자가 집적거리니까 허수아비 같은 남자라도 남편이라고 있으면 낫겠지요. 남편이 질문자 맘에는 안 들지만 그래도 버리려니까 가끔 쓰는 용도 때문에 아쉽고, 아쉽지만 또 질문자 맘에는 안 드니까 짜증나고, 그런 거네요.”

“빨래, 청소는 다 해요.”(모두 박장대소)

“그래요. 그거 하는 것만 해도 괜찮잖아요.”(모두 웃음)

“그런데 스님, 제가 어떤 인연으로 인해서 한 3년 동안 절에서 기도를 해 보니까 ‘아, 이게 내 탓이구나. 내 잘못도 크구나’ 하는 걸 많이 느꼈기 때문에 지금껏 살아온 거 같아요.”

“질문자의 잘못은 아무 것도 없어요. 굳이 질문자의 잘못을 꼽으라면 ‘자기 필요에 의해서 잡고 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질문자는 ‘남편한테 아직 쓸 만한 게 뭔가 남았다’ 싶은 거예요.(모두 웃음) 뭔가 질문자가 필요한 것, 그게 빨래든 청소든 뭐든, 아직은 쓸모가 좀 있으니까 잡고 있을 뿐이에요. 질문자는 그런 걸 바르게 인식해야 자기 인생이 좀 분명해질 거예요.

그러면 남편이 바람을 피우든 뭘 하든 그런 걸 가지고 시비를 안 하게 됩니다. 아예 남의 남자라고 생각해 보세요. 이혼하면 어차피 남의 남자가 되니까요.”

“네, 스님, 잘 알겠고요. 또 한 가지는요... 남편이 청소를 하면서 어떻게 그렇게 제가 숨겨둔 비상금을 다 찾아서 잘 쓰는지 모르겠어요.”(모두 폭소)

“그러면 눈에 안 띄는 데 두면 되지요. 일단 집에 두지 말고 은행에 넣거나 질문자 호주머니에 넣고 다니세요. 청소부가 늘 찾아서 가져간다는 걸 알면 거기에 맞게 대응을 하면 되지요.”

“큰아들은 ‘어머니, 제가 경찰이니까 제 방에 두면 아빠가 더 이상 못 가져가실 거예요’ 하더라고요.”(모두 웃음)

“그게 뭐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에요. CCTV를 설치해 놓았다가 녹화파일을 꺼내서 경찰인 아들한테 주면, 아들이 남편을 체포해서 유치장에 넣어버리면 되잖아요. 그럼 또 몇 달 편안하게 살 수 있잖아요. 그런데 질문자가 지금 이혼을 한다고 해도 가끔 남자는 만나야 될 거 아니에요?”

“아니요.”

“이혼한 뒤를 말하는 거예요.”

“이혼하면, 제가 지금 하고 있는 공부가 있으니까 그 길로 가려고 합니다.”

“남자는 필요 없어요?”

“예.”

“청소부가 없어도 괜찮아요?”

“예.”

“그럼 지금 이혼하면 되지요. 여러분, 이 정도면 이혼청구사유가 돼요, 안 돼요?”

“(청중들) 돼요.”

“예. 그러니까 질문자는 이혼하세요.”

“그런데 지금 잘 하고 있는데...(모두 폭소) 지금 잘하고 있는데 이혼하자고 하면 그것도 앞뒤가 안 맞잖아요.”

“그럼 좀 기다리세요. 좀 기다렸다가 사건이 생길 때 청구하면 되지요.”(모두 웃음)

“아들은 ‘어머니, 아빠 한 번만 더 두고 보시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요, 그럼 한 번만 더 두고 보고, 사건이 생기거든 그때 처리하시면 되겠네요.”

“감사합니다.”(모두 박수)

“옆에서 보면 이해가 안 되지만 부부가 사는 데는 다 이유가 있네요. 자식 때문이든, 잠자리 때문이든, 돈 때문이든, 뭐 때문이든 다 이유가 있는데, 이번 경우는 제가 여태껏 발견하지 못한 이유네요. 이번 질문자의 경우에는 뭐 때문에 산다고요?”

“(청중들) 청소요.”

“예, 청소 때문에.(모두 웃음) 참 굉장한 핑계예요.(모두 웃음)”

질문자도 웃고 청중도 웃었습니다. 그래도 아직 뭔가 미진한 듯 하였습니다. 스님은 다음 질문자와 대화를 빠르게 이어 나가 어렵게 질문지를 써 낸 모든 사람과 대화하려 하였습니다. 마지막 질문자가 자리에서 일어섰습니다.

“이렇게 스님을 뵙고 질문할 기회가 주어져서 너무 감격스럽습니다. 실은 스님께서 오신다고 하셔서 오늘 강연장에 제대로 들어올 수나 있겠나 싶어 오후 4시까지 와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질문지를 쓰라하기에 이런 기회가 너무 감사하여 한참 있다가 펜을 움직여서 글씨를 쓸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촉박하여 제게 기회가 주어지기 어려웠는데 또 이렇게 질문할 기회가 마련되니 참으로 고마운 일입니다.

그런데, 스님. 지금까지 앉아서 다른 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남편의 외도에 대해 말씀하신 분도, 우울증으로 고생하시는 분도 모두 저의 이야기였습니다. 그렇게 남이지만 나의 이야기를 스님과 나누는 것을 잘 듣고 보다보니 제 문제가 싹 해결되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다른 사람의 ‘행복한 대화’를 보고 자신의 고민은 해결이 되어버렸다는 어머님이 기쁜 얼굴로 자리에 앉았습니다. 스님은 환한 얼굴로,

“잘 하셨습니다!”

하고 짧지만 힘 있는 격려의 말을 전했습니다.
‘행복한 대화’가 가장 감동으로 전해지는 순간이 바로 이 순간이 아닌가 싶습니다. 진솔한 대화를 통해서, 나도 좋고 남도 좋아지는 것, 나도 행복하고 남도 행복해지는 순간이 바로 ‘행복’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강연이 마무리 되고 로비에서 책 사인회가 열렸습니다. 긴 줄이 계속 이어졌습니다. 한쪽에서는 ‘행복학교’에 수강 신청하고자 하는 시민들의 문의가 줄을 이어 선생님들이 한 분 한 분과 대화하느라 바빠 보였습니다.

어느 새 밤이 깊어 가고 있었습니다. 오늘은 봉화 수련원으로 가기로 하였습니다.
내일 아침을 여는 기도는 봉화 수련원에서 할 것 같습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함께 만든 사람들
임혜진 손명희 정란희 조태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