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17. 04. 29 두북 농사
고집과 주관을 어떻게 구분하나요?

오늘 스님의 하루를 시작하기 전에 지난 번 안양에서 있었던 행복한 대화의 한 사례를 소개하고 이야기를 시작하려 합니다.

“제가 어렸을 때 자주 듣던 말이 ‘착하다’와 ‘고집이 세다’였는데요, 지금도 저는 가끔 제가 고집을 부리는 건지, 아니면 주관에 따라 소신껏 행동하는 건지, 구분이 잘 안 갈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주관이 있다’와 ‘고집이 세다’의 차이점을 알고 싶습니다.

한 가지 더 있는데요, 저는 한 남자와 동거를 7년 했는데, 중간에 제가 ‘이 남자와 계속 살면 나만 손해다’라는 생각이 들어서 5개월 정도 헤어졌다가 지금은 다시 만나서 살고 있어요. 제가 스님의 즉문즉설 동영상을 보고 마음을 긍정적으로 바꿔서 다시 이 남자와 살게 된 것인데요, 정말 신기하게도 전에는 그렇게 미웠던 사람이 이제는 그렇게 밉지도 않고, 살만한 남자로 보이기 시작하는 겁니다. 왜 부정적인 면을 보면 괴롭고 미운데, 긍정적인 면을 보면 저에게 좋은 것인가요? 다시 한 번 자세히 듣고 싶습니다.”

“먼저 첫 번째 질문에 대해서 말씀드리자면, 스님이 ‘한반도에 평화를 유지시켜야 되겠다. 남북통일을 해야 되겠다’고 하거나 어떤 사람이 ‘나는 돈을 많이 벌어야 되겠다’고 할 때 사람들이 어떤 건 욕심이라고 하고, 어떤 건 ‘큰 뜻을 가졌다. 원을 가졌다’고 하잖아요. 그러니까 ‘뭘 하겠다’고 할 때 어떤 게 욕심이고, 어떤 게 원일까요? 정해진 건 없어요. 큰 건 원이고, 작은 건 욕심일까요? 아니에요. 작은 것만 원이고, 큰 건 욕심일까요? 그것도 아니에요. 하고자 하는 일이 안됐을 때 괴로워하면 그건 욕심이에요. 구분하시겠습니까?

어떤 엄마가 ‘우리 아들이 공부 잘했으면 좋겠다’ 했는데, 막상 아들이 공부를 못하니까 그 엄마가 괴로우면 뭐라고요? "

“(청중들) 욕심.”

“예, 욕심이에요. 괴로우면 욕심이에요. ‘남북통일이 됐으면 좋겠다’ 했는데, 통일이 안 됐을 때 ‘어떻게 하면 될까?’라는 관점에서 연구하고 다시 시도를 하면, 그건 원이에요. 그러니까 원을 가지면 능력이 점점 커져요. 안 되면 연구를 하고, 또 도전을 하고, 또 시도를 하고 그렇게 하니까 점점 아는 게 많아지고, 영향력이 커지는 거예요. 그래서 ‘원을 가지면 힘이 점점 커진다’는 뜻에서 ‘원력’이라는 말이 있어요. ‘원의 힘’이라는 뜻이에요. 그러니 ‘뭘 하겠다. 뭘 하고 싶다’는 게 다 욕심도 아니고, 다 원도 아니에요.

예를 들어 누가 ‘난 서울대학교에 가고 싶다’고 한다고 다 욕심이라고 하면 안돼요. 그러니까 서울대학교에 가고 싶다고 공부를 열심히 했는데, 떨어지면 ‘왜 떨어졌지?’ 하고 다시 살펴서 또 공부를 하는 것, 이게 원이에요. 그런데 시험에 떨어졌다고 속상해 하고, 술 먹고, 울고, 그러는 건 욕심이에요.

그래서 고집과 주관을 어떻게 구분하느냐 하면, 고집은 자신이 힘이 들어요. 뭘 이루려고 할 때 힘이 든다는 말이에요. 그런데 주관이 뚜렷한 사람은 힘이 들지 않아요. 고집하는 사람은 상대와 그것을 가지고 부딪쳐요. 상대가 나한테 문제제기를 하는 게 아니라 내가 부딪친다는 거예요. 상대를 내가 시비한다는 거예요. 그런데 주관이 뚜렷한 사람은 상대와 부딪치지 않아요. 이해가 잘 안 됩니까?”

“예, 잘 안 되네요.”

“나는 결혼을 안 하겠다는데 부모님은 하라는 상황이라면, 내가 고집일 때는 ‘안 하겠다는데, 왜 자꾸 하라 그러세요? 이제 그만 하세요!’라면서 싸우게 돼요. 그런데 내가 주관이 뚜렷하다면 그럴 때 ‘예, 감사합니다’ 하게 돼요. 그래서 또 결혼하라고 그래도 ‘그런 말하지 하세요!’라고 안 해요. 그건 부모님의 뜻일 뿐이니까 거기에 휘둘리지도 않고, 그걸로 부모님과 싸우지도 않아요. 사람은 다 생각이 다를 수 있고, 또 그 사람은 나를 생각해서 하는 말이니까 다만 ‘노, 탱큐(No, Thank you)’ 하게 되는 거예요. 그런데 고집을 가진 사람은 거기에 집착을 하는 거예요. 이해하셨어요?”

“예.”

“그 다음에, 그 남자랑 지금 잘 살고 있다고요?”(모두 웃음)

“예.”

“잘 살면 됐지, 질문자가 그 남자와 사는 게 저랑 무슨 상관이라고 왜 물어요?(모두 웃음) 질문자가 알아서 살면 되지요.”(모두 웃음)

“마음 하나를 바꿨는데, 왜 그 사람이 달리보이는 걸까요? 그 전에는 단점만 보였는데, 지금은 왜 괜찮다 싶은 건지, 그게 궁금합니다.”

“그건 이 탁자를 정면에서 보면 가로가 세로보다 짧은 네모로만 보이겠지만 옆에서 보고, 또 뒤에서 보면 달리 보이는 것과 같아요.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른 거예요. 그 사람은 똑같은 사람인데, 질문자가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다른 모습이 되는 거예요. 그건 당연한 거예요. 머리털이 안 난건 좋은 걸까요, 나쁜 걸까요? 머리를 기르고 싶은 사람 입장에서는 나쁜 일이겠지만 저는 머리털이 안 나면 안 깎아도 되니까 좋은 일이거든요.”

“감사합니다.”(모두 박수)

“‘도’라는 것은 그리 신비스러운 게 아니에요. 여기 구멍이 큰 게 있고, 작은 게 있고, 또 여기 종이가 큰 게 있고, 작은 게 있다고 할 때 큰 종이는 큰 구멍을 바르는데 쓰고, 작은 종이는 작은 구멍을 바르는데 쓰면 할 일이 별로 없어요. 이런 걸 ‘도’라고 합니다. 그런데 작은 종이로 큰 구멍을 바르려면 종이를 연결해야 되겠지요? 일이 많아지는 거예요. 또 큰 종이로 작은 구멍을 바르려고 해도 일이 많아져요. 종이를 잘라야 하니까요.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사는 인생은 큰 종이를 작은 구멍에 바르거나 작은 종이를 큰 구멍에 바른다고 바쁜 것과 같아요. 그러자니 일을 해도, 해도 끝이 없는 거예요.

그런데 큰 종이를 큰 구멍에, 작은 종이를 작은 구멍에 바르면 일거리가 별로 없어요. 그게 이치에 맞는 거예요. 그러니까 ‘부처님한테 빌면 복 받는다. 부처님한테 빌면 극락 간다’는 건 종교로서의 불교예요. 붓다의 가르침은 그런 게 아니에요. ‘얘야, 작은 건 작은 구멍에 바르고, 큰 건 큰 구멍에 발라라’라는 것처럼 너무나 구체적이고, 상식적인 가르침이에요. 너무나 쉬운 가르침이에요. 그런데 여러분들은 지금 사는 게 어렵습니까?”

“...”(청중들 웃으며 가만히)

“제가 지금 사는 게 쉬울까요, 죽는 게 쉬울까요? 지금 제가 살려면 저는 가만히 있으면 돼요.(모두 웃음) 그런데 지금 죽으려면 좀 노력을 해야 해요.(모두 웃음) 밧줄 사와서 의자 찾고, 천정에 걸고, 목 걸고...(모두 웃음) 일이 많아요. 제 일만 많은 게 아니고, 다른 사람 일도 많게 돼요. 다른 사람들이 왜 죽었는지 조사해야지 일이 많아지지요. 그러니까 죽으려면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도 일이 굉장히 많아지는데, 살려면 역시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도 아무런 노력을 안 해도 되고,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아무런 피해도 안 끼쳐도 돼요.

수면제 먹고 죽으려는 경우도 마찬가지예요. 수면제 사러 여러 약국 다녀서 모아야 하고, 그걸 또 먹어야 하고, 또 끙끙 앓아야 하고,(모두 웃음) 또 어떤 때는 잘 안 죽어져서 다시 깨어날 때도 있단 말이에요.(모두 웃음) 일이 이렇게 많단 말이에요.

그런데 사는 건 아무 것도 안 해도 되잖아요. 사는 건 이렇게 쉬운 거예요. 그렇게 쉬우니까 토끼도 살고, 다람쥐도 사는 거예요. 사는 게 어려우면 토끼나 다람쥐가 어떻게 살겠어요? 만물의 영장이란 사람도 살기도 어렵다면 말이에요. 그러니까 ‘토끼도 살고, 다람쥐도 사는데 왜 사람이 못 살겠느냐?’ 관점을 이렇게 가지셔야 해요.

한편 사는 게 쉬운 상황에서 ‘죽겠다’고 하면 일거리가 되고, 죽는 게 쉬운 상황에서 ‘살겠다’고 하면 또 일거리가 돼요.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살아있을 때 일부러 죽으려고 애쓰지도 말고, 죽을 때가 되었을 때 일부러 살려고 발버둥치지도 말고, 살아있을 때 기꺼이 마음껏 살다가 죽을 때 기꺼이 죽는 게 바로 ‘도’예요. 그래서 ‘도’는 쉬운 길이에요. 그렇게 쉬운 길을 가세요.

그러니까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다른 겁니다. 예를 들어 ‘내가 이 사람한테 덕을 좀 보겠다’는 마음을 내면 그 사람한테 부족한 게 많아 보이고, ‘내가 이 사람을 도와주겠다’는 마음을 내면 길거리에 가는 사람 아무하고나 살아도 돼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누구하고 사는 게 좋을까?’ 이런 궁리를 하는데, 누구하고 살아야 좋은 게 아니라 내가 어떤 관점을 갖느냐에 따라서 달라진다는 얘기예요.”

“알겠습니다.”


새벽 예불과 천일결사 기도를 마치니 환하게 아침이 밝았습니다. 스님은 벌써 작업복을 갈아입고 있었습니다.

“상추, 배추, 청경채, 겨자채 등 야채들을 솎아야겠다. 지금 솎지 않으면 버릴 수 있겠어.”

스님은 다음에 심을 때는 조금은 여유 있게 심어야겠다는 이야기를 상추 잎을 솎아주며 하였습니다. 씨앗이 작아 뿌리듯이 심었는데 자랄 공간이 좁아서 하나하나 속이 차지 않고 서로 치이게 된다고 설명해주었습니다. 바깥 밭에서 심은 상추와 온실에서 심은 상추를 모두 솎고, 청경채와 겨자채, 열무를 솎아내니 양이 매우 많았습니다. 아침 공양에 먹을 양만 남기고 흙을 잘 털어서 포장 하였습니다. 포장한 야채는 상자에 넣어 최대한 햇빛에 노출되는 시간을 줄여 수련 공양간의 큰 냉장고에 우선 넣어두었습니다.

열무는 바로 다듬어서 물김치를 담그기로 하였습니다. 최보살님은 고춧가루를 곱게 갈고 밀가루 풀을 쑤어서 맛있게 김치 담을 준비를 하였습니다.

스님은 꼬불꼬불 긴 줄기가 자라나기 시작한 더덕과 완두콩에도 마음껏 타고 올라갈 수 있도록 긴 지지대를 땅에 박아 주었습니다.

가지와 당근, 시금치, 아욱, 근대가 자라나고 있는 곳에는 잡초를 뽑아주고 딱딱해진 흙을 살살 긁어 부드럽게 해서 돋워 주었습니다. 솎고 잡초 뽑느라 조금은 흔들린 뿌리들에게 물도 흠뻑 주었습니다. 그나마 햇살이 뜨겁지 않은 시간을 이용해서 일하다 보니 아침 공양시간을 훌쩍 넘겼습니다. 덕분에 밥맛이 좋았습니다.

공양 후에는 통일씨감자 밭을 둘러보았습니다. 올해 받아 심은 통일씨감자들이 튼튼하게 잘 자라고 있었습니다. 흙을 뚫고 나와 이제는 튼튼한 줄기로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습니다. 물도 없이 튼튼하게 자라고 있는 감자를 보니 신기할 따름이었습니다.

오후에는 산나물을 캐러 산으로 나가보았습니다. 탑곡 수련원에 갔더니 빨간 철쭉이 화사하게 피어있고 고추는 꿋꿋하게 자라고 있었습니다.

화광법사님께서 재배하고 있는 풍나물 밭에서 같이 자라고 있는 취나물을 발견하여 캐어 왔습니다. 쌉싸름한 향기가 나는 듯하였습니다.

스님은 취나물로 잘못 알 수 있는 비슷한 모양의 식물을 구별할 수 있도록 일러주었습니다.

혹시나 하여 연달래를 볼 수 있을까 했는데 백운산 고개 마루 아래쪽에서 아름답게 피어있는 연달래를 만났습니다. 탄성이 절로 터져나왔습니다.


“아무도 봐주지 않아도 이렇게 아름답게 피어있었네.”

연달래를 먼저 발견한 스님이 감탄하며 말하였습니다. 이 아름다운 풍경을 누구라도 함께 볼 수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으로 산을 내려왔습니다.

“도시 사람은 이 커피 집, 저 커피 집 찾아다니고,
시골 사람은 이 골짜기 저 골짜기 찾아다니네.”

내려오는 길, 스님의 이야기에 다들 웃었습니다. 아무래도 이 골짜기, 저 골짜기 찾아다니는 것이 훨씬 좋게 느껴지네요.

저녁 공양 상에 오른 취나물을 먹으면서 문득 봄나물이 생긴 모양도 보고, 직접 캐어서 먹어본 적이 없었음을 새삼 느꼈습니다. 봄에 나물이 이렇게 나는 줄도, 난 것을 캘 줄도 모르고 살았구나 싶었습니다.

저녁 공양을 한 뒤, 문경수련원으로 출발하였습니다. 내일은 충주에서 새터민 분들과 봄나들이 일정이 예정되어 있어서 가까운 문경수련원에서 하룻밤 묵기로 하였습니다.

가는 길에 스님은 아침에 냉장고에 넣어둔 상추며 야채들을 포장하여 고속버스 편에 서울로 부쳤는데, 혹시 가는 동안 차에서 야채들이 상하지 않을지 염려하였습니다. 시골에서만 느낄 수 있는 봄기운을 함께 하지 못한 서울공동체 식구들에게도 전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씨앗이 땅이 주는 봄기운, 자연이 주는 바람과 물과 햇살을 먹으며 봄을 느끼고 있습니다.

함께 만든 사람들
임혜진 손명희 정란희 조태준

전체댓글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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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희

내가 괴로운지 아닌지~잘살핍니다

2017-07-06 20:24:37

이경화

야채들이 싱싱하니 시골어머니 생각이납니다ㆍ
항상 좋은법 잘 듣고 행복합니다ㆍ 고맙습니다 ㆍ^^

2017-07-06 07:39:51

임무진

내가 갖고 있는 게 고집인지 주관인지, 욕심인지 원인지 알았습니다. 결국 마음이 괴로운지 아닌지가 핵심이군요. 그리고 도가 참 쉽다는 말씀 와닿습니다.

2017-05-08 17:4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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