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17. 04. 30 좋은 이웃의 날, 새터민 즉문즉설
어디서 왔어요? 함흥에서 왔습니다!

문경수련원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명상원이 명상수련 중이라 스님은 조용히 자리에서 새벽 예불과 기도를 하고 아침 공양을 하였습니다.
8시, 스님은 걸어서 명상원 아래로 내려갔습니다. 정비를 기다리는 수련단지에는 석축을 덮고 있는 칡뿌리들 사이로 흰색, 붉은색 철쭉꽃과 초록잎들이 한껏 피어나고 있었습니다. 스님은 정비해야할 부분들을 세심히 살펴보고 1단지로 내려갔습니다.

비닐하우스 안에서 물을 주고 있던 14기 행자대학원 행자님들이 스님을 보고 달려와 인사하였습니다. 행자대학원 과정으로 농사 수업을 하고 있는 중인데 이곳 비닐하우스에는 고추와 호박, 배추 등을 재배하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특히, 두둑마다 작은 호스를 설치하여 물을 주기 편리하도록 시설을 해 놓았는데 뿌리에 가깝게 물을 공급할 수 있어서 물도 적게 들고 물주기도 편하다고 하였습니다.


배추와 고추를 재배하고 있는 비닐 하우스, 각각 두둑마다 설치된 물주기 호스
▲ 배추와 고추를 재배하고 있는 비닐 하우스, 각각 두둑마다 설치된 물주기 호스

스님은 비닐하우스를 둘러보고 행자님들과 함께 고라니 밭으로 가보았습니다. 고라니 밭으로 가니 비탈진 밭에서 열심히 물을 주며 일하고 있던 행자님 두 명이 스님을 보고 반갑게 인사하였습니다.


통일씨감자 상태를 살펴 보며
▲ 통일씨감자 상태를 살펴 보며

경사진 밭, 가지런히 멀칭한 두둑 위로 한쪽에는 감자가 쑥쑥 자라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통일씨감자인가? 잘 자라고 있는 것 같아요?”

스님이 물어보니 행자님은 작년 통일씨감자는 싹이 나지 않은 것이 많았고 이번에 받은 통일씨감자는 싹이 모두 났다며 기쁘게 이야기하였습니다. 아직 비어있는 두둑에는 무엇을 심을 예정이냐 하였더니 콩과 야콘을 심으려고 계획 중이라 하였습니다. 꽤 많은 양의 두둑이 비어서 콩과 야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작년에는 감자를 많이 심어 수확해 보았는데 이번에는 통일씨감자를 실험하고 콩과 야콘을 위주로 농사 지을 계획이라 하였습니다. 스님은 아래로 비탈진 밭을, 뒤로는 희양산을 배경으로 예비 농사꾼 행자님들과 사진을 찍었습니다.

아침의 서늘한 기온이 한낮의 햇빛으로 달아오르려는 시간, 스님은 행자님들을 격려하고 충주로 출발하였습니다.

충주 중원고구려비 박물관과 탄금대, 중앙탑 공원 일대에서는 새터민과 함께 하는 ‘좋은 이웃의 날’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작년까지만 해도 관람 일정이 너무 빡빡하여 새터민들이 힘들었다는 평가가 있어서 이번에는 관람할 곳을 정해두고 각 지역별로 선택하여 관람하는 방식으로 변경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스님은 중원고구려비, 중앙탑 공원, 탄금대 순으로 둘러보았습니다. 가는 곳마다 스님을 알아보거나 작년 행사에도 참가했던 새터민들이 “스님, 1년만에 뵙습니다.” 하며 인사하였습니다.



중원고구려비, 중앙탑, 탄금대
▲ 중원고구려비, 중앙탑, 탄금대

세 곳을 돌아보고 점심 공양을 한 후, 즉문즉설이 열리기로 한 ‘충주 학생회관’으로 갔습니다. 각 곳에서 점심을 먹고 속속 들어오는 새터민들에게 스님과 좋은벗들 고경빈 대표님이 기념 선물을 나눠주었습니다. 어른들에게는 <야단법석2> 책 한 권씩을, 아이들에게는 각종 학용품과 소품을 넣은 선물 박스를 주었습니다.


곧이어 사회자의 안내로 스님이 무대로 등장하였습니다.

“오늘 새터민 여러분과 즉문즉설 시간을 가지려는데요, 즉문즉설하기 전에 흥을 좀 돋워야 할 것 같아요. 노래 잘 하시는 분들이 많은 걸로 알고 있는데 한 번 나와서 노래 불러주세요. 노래 부르실 분들은 무대 오른쪽으로 와 주세요.”

스님은 즉문즉설에 앞서 노래자랑 시간을 제안하며 직접 사회자가 되었습니다. 한 분, 두 분, 조금은 어색하던 시간이 열정적인 노래 마당으로 분위기가 무르익었습니다.

“아니 왜 한국 노래만 부르세요? 북한에서 편하게 부르시던 노래들도 좋은 곡들이 많잖아요. 목청도 잘 올라가니 북한 노래가 더 어울려요.”

스님은 무대에 오른 새터민들이 핸드폰에서 한국 가요를 찾아가며 가사를 보고 부르자 ‘사회자 멘트’를 하였습니다. 아무래도 귀에 익고 정서가 익숙한 북한 노래를 부르면 청중석에서 따라 부르는 호응이 남달랐습니다. 노래의 열기가 식을 줄 모르자 스님은 즉문즉설 중간 중간에 노래를 부르도록 제안하고 즉문즉설을 시작하였습니다.

여러분의 새터민이 질문을 하였는데 그 중에 한국에서 적응 과정의 어려움을 호소한 한 분의 질문을 싣습니다.

“스님이 보시기에는 한국에서의 ‘열심’의 기준이 뭔지요? 저는 열심히 하는 것 같은데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열심히 안 하는 것 같은가 봐요. 또 다른 사람을 봤을 때는 제가 열심히 하는 건 맞는 것 같은데 왜 인정을 안 해 주는지 모르겠어요. 그래서 누구랑 대화를 할 때도 그 사람이 조선족이어서 혹은 북한 사람이어서 그렇다는 소리를 듣지 않을 정도로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그런 자신감 한 가지 믿고 가고는 있는데 사람이 자신감 하나만으로 사는 건 아니더라고요. 조그마한 인정, 그거 하나 바라는 건데 그게 참 어렵더라고요. ‘열심’의 기준이 뭔지 정답은 없겠지만 그래도 스님이 생각하시는 ‘열심’의 기준은 무엇인지 듣고 싶습니다.”

“‘열심’의 객관적 기준은 없습니다. 100미터를 20초에 달린다고 하면 30초에 달리는 사람보다는 빨리 달리고 15초에 달리는 사람보다는 늦게 달리죠? 그러니 100미터를 20초에 달리는 사람을 두고 빠르다거나 늦다고 말할 수가 없어요. 누구를 기준으로 하느냐에 따라 다르니까요.
마찬가지로, 키가 170센티미터인 사람을 크다고도 말할 수 없고 작다고도 말할 수 없어요. 180센티미터인 사람과 비교하면 작은 사람이고 160센티미터인 사람과 비교하면 큰 사람이기 때문에 170센티미터인 사람의 키를 ‘크다’, ‘작다’고 말할 수가 없다는 얘기예요. 이렇듯 기준이란 것은 본래 없습니다.

그러니 첫 번째, 사람들은 각자 다 자기 기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떤 사람이 보기에는 질문자가 부지런한 것처럼 보이고 어떤 사람이 보기에는 질문자가 부지런하지 않은 것처럼 보여요. 그러면 나한테 누가 부지런하지 않다고 하면 반발하지 말고 ‘아, 저 사람은 나보다 부지런한 사람이구나’ 이렇게 이해하면 돼요. 어떤 사람이 날 보고 부지런하다고 칭찬하면 ‘아, 저 사람은 나보다는 덜 부지런한 사람이구나’ 이렇게 이해하면 될 뿐입니다. 어떤 사람이 나더러 키 작다고 하면 ‘저 사람은 평소에 나보다 큰 사람하고 어울리는구나’ 하고, 어떤 사람이 나더러 키 크다고 하면 ‘저 사람은 평소에 나보다 작은 사람하고 어울리는구나’ 이렇게 알 뿐이에요. 그러니까 요지는 그럴 때 남의 말에 신경 쓸 필요가 없다는 거예요.

두 번째, 내가 북한에서 왔다는 사실을 숨길 필요도 없어요. 일부러 ‘나 북한에서 왔수다’ 이렇게 말할 필요도 없어요.(청중 웃음) 생긴 대로 살다가 상대가 못 알아보면 그만이고 알아봐서 물으면 ‘그렇다’라고 대답하면 돼요. 숨기려고 하면 그게 콤플렉스가 됩니다.

우리 교포들이 해외 180개 나라에 나가서 살아요. 제가 2014년에 세계 115개 도시를 다니면서 강연을 했습니다.
그런데 저도 모르게 ‘우리나라보다 잘 사는 나라에 가서 사는 사람들은 살기가 좋고, 우리나라보다 살기가 나쁜 나라에 가서 사는 사람들은 살기가 나쁘겠구나’라는 생각이 있었어요. 예를 들어 필리핀, 태국, 베트남, 인도 같은 곳에 사는 사람들은 좀 살기가 어렵고 영국, 독일, 미국 같은 곳에 사는 사람들은 살기가 좋으리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막상 제가 현장을 방문해서 살펴보니 정반대였어요. 왜 그럴까요?

여러분들이 우리나라에서 이민을 간다고 해봅시다. 그러면 영국이나 독일이나 프랑스나 스위스로 이민 가는 사람은 돈을 가지고 투자 이민을 갈까요, 자기 몸뚱이 가지고 노동 이민을 갈까요? 노동 이민을 가겠죠. 몸뚱이 갖고 그 나라에 가서 사니까 한국에서 받는 월급보다는 5배 큰 금액을 받는다고 해도 그 나라에서는 가난한 사람에 속하기 쉬워요.

제가 방문한 유럽 잘 사는 나라에 가서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유학하다가 결혼이나 어떤 계기로 해서 노동 이민을 간 경우예요. 물론 개중 특별히 성공해서 잘 사는 사람이 없지는 않지만, 다수는 그 사회에서 가난한 사람에 속하는 거예요. 아파트도 20평 정도로 작아서 손님을 편안하게 재울 만큼 넓은 집을 가진 사람이 별로 없었어요. 그리고 대부분이 현지 사회의 기준에 비하면 좀 궁색해요.
그런데 저를 초대한 사람 중에 베트남 하노이나 호치민, 필리핀 마닐라, 아니면 중미에서 한국 사람이 많이 사는 과테말라나 브라질 상파울루, 혹은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같은 곳에 사는 사람들은 정반대였어요. 우리나라보다 못 사는 나라에 나가서 사는 한국 사람은 노동 이민을 갔을까요, 투자 이민을 갔을까요?“

“투자 이민요.”(청중 대답)

“그래요. 그러면 그 나라에 가서 사장 할까요, 종업원 할까요?”

“사장요.”(청중 대답)

“맞아요. 그러니까 저를 초대한 사람들은 집이 다 대궐 같아요. 그런 나라에서는 집값이 싸잖아요. 또 그 나라에서는 잘 사는 축에 들어가니까요. 강의 장소도 전부 호텔 같은 좋은 곳을 빌려서 마련해놓아요. 차도 다 크고 좋은 차를 타고 다녀요.

인간의 심리라는 게 이래요. 공부를 중간쯤 하는 아이가 공부 잘 하는 반에 편성되면 꼴찌 하게 되고 공부 못 하는 반에 편성되면 1등 하게 되는 거예요. 그런데 못 하는 아이들 가운데서라도 1등을 하면 자신감이 생기고, 잘 하는 아이들 가운데서도 꼴찌 하면 자존심이 상하고 열등의식이 생겨요. 인간의 심리적인 자신감이라는 게 이렇게 움직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이 꼭 좋은 나라에 가서 사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면 살기 어렵습니다. 여러분들이 북한에서 살다가 남한에 오면 왜 더 자신감이 안 생길까요? 북한에서 살 때 정말 밑에서 막노동하고 살았던 사람들, 북한 안에서도 좀 밑에 살았던 사람은 한국에 오면 다 살기 괜찮습니다. 무슨 일을 해도 북한보다는 살기가 나아요. 그런데 북한에서 관리를 지냈거나 목에 좀 힘주고 살았던 사람은 지금 남한에 와서 굉장히 살기가 어렵습니다. 먹는 것이나 버는 수입으로 따지면 한층 나을지 몰라도, 북한에서는 주위의 친구든 누구를 만나도 약간 목에 힘주는 축에 들어갔는데 남쪽에 오니까 목에 힘줄 게 별로 없잖아요. 그러니까 사람이 굉장히 자존심도 상하고 이렇게 되거든요.

자료사진, 북한
▲ 자료사진, 북한

인간의 심리가 이렇기 때문에 꼭 잘 사는 나라에 가는 게 좋은 게 아니에요. 여러분들이 간절히 빌어서 천당에 억지로 들어가면 천당에서 맨 꼴찌 합니다. 그런데 지옥에 가면 여러분들은 지옥에 떨어진 인간들 중에서는 괜찮은 사람에 속합니다.(청중 웃음)

여러분들이 북쪽에 살다가 중국을 거쳐서 여기 왔잖아요. 북쪽에 살다가 중국 가니 좋아 보였죠? 잡아가지만 않고 거기에 살게만 해줘도 엄청나게 고맙다고 느낄 정도였고 중국 사람들이 부러웠잖아요. 그런데 한국에 딱 와보니까 여러분들이 중국에서 온 조선족들보다 위치가 더 좋아요. 조선족은 공민권, 그러니까 한국 주민등록증 받기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오면 자동으로 받잖아요. 그런데도 한국에 온다고 다 적응을 잘 하는 게 아니에요.

두 번째는 앞에 질문한 것처럼 부모님 생각, 북한에서 겪었던 어려움 생각, 중국에서 겪었던 어려움 생각처럼 과거의 악몽 같은 그것이 늘 현실을 지배합니다. 현재는 아무 문제가 없는데 늘 옛날 생각 때문에 지금의 생활이 어려워져요. 그러니까 과거는 딱 내려놓고 현재에 충실하시길 바랍니다.

또 하나, 여러분들이 태어나서 북한에서 교육받고 북한에서 인간관계 맺고 살다가 여기 온 것은 이민 온 것과 똑같아요. 친구도 없고 고향도 없고, 학교 친구나 고향 친구 같은 인간관계도 하나도 없어요. 사람이 살려면 그래도 친구가 있고 친척이 있어야 서로 연결해서 일도 하고 챙겨주기도 하잖아요. 우리 동양 사회라는 건 약간 줄을 타고 이렇게 올라도 가고 내려도 가고 취직도 부탁하니까요. 그런데 여러분들은 뿌리 뽑힌 나무처럼 아무 인간관계도 없이 혼자 여기 뚝 떨어져 있으니까 어디 줄을 타고 갈 데도 없어요. 이러니까 외로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여기에 새로이 뿌리를 내려야 해요. 나무를 옮겨 심으면 한 3년은 제대로 안 큰다는 사실을 아세요? ‘사람’도 그래요. 나무는 잔뿌리를 내리고 다시 자라기 시작하려면 3년쯤 걸려요. 사람도 삶의 터전을 옮겨서 뿌리를 새로 내리려면 시간이 좀 걸려요. 조금 빨리 뿌리내리는 사람이 있고, 10년이 지나도 뿌리를 못 내리는 사람이 있기는 합니다.
적응에 시간이 걸리는 건 당연하니까 출신을 굳이 숨기지 마세요. 내가 북조선에서 왔다는 사실을 숨기면 자꾸 열등의식이 생겨요. 그러니까 여러분들은 그냥 그대로 생활을 하되 누가 물으면 당당하게 ‘북한에서 왔어요’ 이렇게 얘기하면 되고 안 물으면 굳이 얘기할 필요가 없어요. 그렇게 좀 당당하게 생활하시면 좋겠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고맙습니다.”(청중 박수)

인사하고 자리에 앉는 남자 분의 얼굴에 엷은 웃음이 번졌습니다. 까맣게 탄 얼굴에 한국에서 적응하고자 하루하루를 애쓰며 살아온 피로가 묻어있는 듯 하였습니다.
스님은 참석한 새터민들이 ‘당당하게’ 지낼 것을 북돋우며 가을에 열릴 ‘통일체육축전’에서 건강하게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고 다함께 손잡고 ‘고향의 봄’ 노래를 부르는 것으로 즉문즉설 시간을 마무리 하였습니다. 모든 프로그램을 마치자 강연장 계단에 모여 사진을 찍었습니다.
360여 명의 새터민과 100여 명의 봉사자들이 ‘화이팅’을 외치며 오늘 ‘좋은 이웃의 날’을 마쳤습니다.

스님은 손님이 찾아오셔서 이야기를 나누고 해가 뉘엿뉘엿 기울 즈음 봉화수련원으로 출발하였습니다. 내일은 봉화수련원에서 인사드리겠습니다.

함께 만든 사람들
임혜진 손명희 정란희 조태준

전체댓글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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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화

고맙습니다 ~~스님

2017-07-05 23:36:04

고경희

남과 북~ 어려움 잘극복되어 함께 잘살아요~♡

2017-07-05 16:11:36

보등

감사합니다._()_

2017-05-08 19:4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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