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사전 투표, 두북으로 출발
최악을 피하는 마지막 책임, 투표하세요!

스님은 새벽 예불과 천일결사 기도를 마치고 인근의 사전투표소로 갔습니다. 투표 독려 영상을 찍어야 한다고 해서 SNS 팀장으로 일하고 있는 준길 법우님도 함께 갔습니다. 사전투표소의 선거 관리 위원들의 양해를 구하고 외부에서 스님이 투표하는 모습을 영상으로 담았습니다.

스님은,

“마음에 드는 사람이 없다고 포기하지 마세요. 그럴 경우에는 ‘누가 더 좋으냐’라고 생각하기보다는 ‘누가 더 나쁘냐’라고 생각하면 ‘그래도 이 사람이 덜 나쁘다’라고 결정이 날 수 있습니다. 최선이나 차선이 없다면 차악이라도 찍어야 최악을 막을 수 있습니다. 꼭 투표합시다.”

라고 아직 누구를 찍을지 망설이는 많은 사람들에게 투표의 기준을 짧게 전하였습니다.

사전투표를 하고 회관에 돌아오자 공동체 대중들이 발우공양을 하고 있었습니다. 스님은 대중공사에 함께 참여하여 어제 부처님 오신 날, 행사 준비와 뒷정리까지 애써 준 공동체 식구들에게 수고했다는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다 함께 점심때 짜장면이라도 먹도록 하라고 대중 대표에게 점심값을 전달해 주었습니다. 대중들은 스님의 인사와 짜장면 대중공양에 감사를 드리며 함께 웃었습니다.

오전 11시 30분, 스님은 5월 9일, 투표 당일까지 투표 독려 영상을 꾸준히 보내겠다는 SNS 팀의 요청으로 몇 가지 투표 독려 영상을 찍고 두북으로 출발하였습니다. 두북으로 가는 5월의 고속도로는 한낮의 열기가 한껏 느껴져 후덥지근하였습니다.

도착하니 저녁 4시가 조금 넘었습니다. 스님은 짐만 내려놓고 우선, 열기에 늘어져 있는 채소들에게 물을 주었습니다. 또, 이어 행자님들과 함께 감자밭에 심어 둔 고추, 호박, 수박, 참외, 옥수수 등의 작물에 물을 흠뻑 주었습니다. 날이 가물어서 작물들이 충분히 젖을 때까지 물 주느라 시간이 걸렸습니다.

물주기를 마치고 스님은 상추와 고소를 따고 씻어 법사님들과 함께 저녁 공양을 하며 늦은 시간까지 전국에서 있었던 봉축법회에 대한 평가 겸 회의를 하였습니다.


부처님 오신 날 진행된 여러 법회 중, 청년 법회 내용이 궁금하다는 이야기가 있어서 아래에 정리하여 싣습니다.

“.... 우리는 지금 변환기에 살고 있습니다. 이런 변환기에는 갈 길을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그럴 때 나타나는 현상 중 하나가 자살하는 사람들이 많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또, 될 대로 되라는 식의 삶의 태도가 만연하기도 합니다. 이 역시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 그 길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으로, 부유한 집안의 젊은이들은 쾌락을 추구하는 길로 빠져들기가 쉽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지금과 같은 변환기, 혼란기에서 우리를 올바른 길로 인도해줄 수 있는 부처님의 가르침은 그저 2,600년 전의 옛날이야기가 아닙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오늘 우리들이 겪고 있는 혼란과 삶의 문제에도 새로운 길을 열어줄 수 있는 가르침입니다.

부처님께서는 탄생하실 때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이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천상은 신들의 세계를 뜻하고, 천하는 인간의 세계를 뜻합니다. 즉, 탄생게(偈)는 신들의 세계와 인간의 세계를 통틀어서 깨달은 자가 가장 존귀하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조금 더 나아가서 ‘신들의 세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정신의 세계, 관념의 세계입니다. 우리는 관념의 노예입니다. 우리는 스스로의 뜻과 의지로 인생을 산다고 생각하지만 잘 살펴보면 우리는 우리에게 형성된 관념의 노예로 살아갑니다.

가령, 북한 주민들이 살아가는 모습은 우리와 많이 다른데, 그 사람들이 하느님의 저주를 받았거나 전생에 많은 죄를 지어서 그렇게 살아가는 것은 아니잖아요? 그런데도 어려서부터 그렇게 보고 듣고 배워서 프로그램이 형성되다 보니 그런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 환경에서 벗어나서 자신의 모습을 돌이켜보면 ‘아, 내가 울타리에 갇혀 살고 있구나’ 하는 것을 알 수 있지만 그 속에 있을 때는 그걸 모릅니다.

마찬가지로 절에 다니는 사람들은 절에 갇혀 살고,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은 교회에 갇혀 살아갑니다. 또, 공산주의 국가에 사는 사람들은 공산주의 이념에 갇혀 살고 자본주의에 사는 사람들은 자본주의 이념에 갇혀 살아갑니다. 이렇듯 우리는 믿음, 사상, 이념, 윤리, 도덕 등 관념의 노예로 살아갑니다. 그러니 탄생게에서는 이 모든 관념에서 벗어나 ‘네가 네 인생의 주인으로 살아가라’는 가르침을 줍니다.

다른 한편으로 ‘인간의 세계’는 인간 세상이 추구하는 가치들을 의미합니다. 인간 세상의 핵심 가치는 돈, 힘, 인기입니다. 즉, 우리가 살면서 추구하는 바를 살펴보면 재물, 권력, 명예입니다.

어딜 가든지 ‘내가 좀 잘났으면 좋겠다, 사람들이 나를 좋아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죠. 그래서 숨쉬기 위해서 필요한 코를 굳이 세우고, 보기 위해서 필요한 눈을 억지로 동그랗게 만듭니다. (청중 웃음) 코의 기능이 숨 쉬는 거예요.(청중 웃음) 눈의 기능은 보는 거예요. (청중 웃음) 그러니 이 모든 것이 다 잘 보이고 싶어서, 인기를 얻고 싶어서 하는 행동들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사람들에게서 인기를 원하고, 또 인기가 많은 사람들은 그것을 자기로 여기며 살다가 행여 인기가 떨어지면 삶의 의미를 잃어버리곤 합니다. 그래서 인기가 많은 연예인들이 인기가 없어지면 자살을 하곤 하는 거예요.

지위가 높은 사람은 그 지위, 권력을 자기로 여기며 살다가 지위를 잃어버리면 힘들어합니다. 정치인들이 국회의원 선거에서 떨어지면 힘들어하는 이유예요. 돈과 재물을 자기로 여기며 사는 사람들은 또 돈을 잃거나 사업에서 부도가 나면 죽음을 택하곤 합니다.

이렇듯 세상에서는 돈의 노예로 살아가거나, 직장에서의 지위, 출세 여부에 목숨 걸고 살아가거나, 남들이 나를 어떻게 봐줄까에 전전긍긍하며 감옥살이를 자처합니다. 직장에서도 돈을 조금 더 준다고 하면 이 직장에서 저 직장으로 옮겨 다니는데, 그게 돈에 팔려가는 노예와 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이렇듯 우리는 ‘천상’이 뜻하는 종교, 이념, 사상, 윤리, 도덕 등에 묶여 있고, ‘천하’가 의미하는 돈, 지위, 명예에 묶여 살아가는데, 탄생게는 여기에서 벗어나 바로 사람, 우리 자신이 가장 존귀한 자라는 인간 존엄을 선언한 것입니다.

이 말씀은 지금 우리에게도 유효한 정도를 뛰어넘어, 가장 핵심적인 과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정토행자의 서원에 나오는 현대사회의 진단 세 가지(인간성 상실, 공동체 붕괴, 자연환경 파괴) 중 인간성 상실이 가장 먼저 나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붓다의 가르침이 비록 2,600년 전에 설해진 것이지만, 당시의 시대적 배경도 큰 변환기여서 기존의 전통 가치나 전통문화가 쇠퇴하고 있지만 아직 새로운 가치와 문화가 자리 잡지 않은 혼란기였다는 점에서 지금 우리가 처해있는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고, 그렇기 때문에 이런 시기에 어떻게 자기중심을 잡고,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가 하는 우리의 과제에 대한 해답으로 유효합니다.

그렇게 보면 불법의 가르침에 따른 수행이야말로 젊은이들이 한 번 마음먹고 해 볼 만 한 일입니다. 그런데 오히려 세월이 흐르면서 많은 변형을 겪으면서 오히려 인간의 탐욕을 합리화하는 종교의 모습을 많이 갖추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북한에서는 ‘주체사상’을 유일사상으로 추앙합니다. 남한에는 그런 게 없을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에 못지않은 유일사상이 존재합니다. 바로 돈을 추앙하는 ‘돈교’예요. (청중 웃음) 잘 살펴보면 하나의 막강한 돈교 아래에 불교, 기독교 등 다양한 종파가 존재하는 것 같아요. (청중 웃음)

사람들이 기도하는 내용을 봐도 ‘돈 잘 벌게 해주세요, 남편 잘 되게 해주세요, 자식 잘 되게 해 주세요’하면서 ‘불교를 믿으면 돈 잘 번다, 출세한다’, ‘아니다, 기독교를 믿으면 돈 잘 번다, 출세한다’ 등으로 부처님의 가피나 하나님의 은총도 모두 돈으로 환산되는 시대입니다.

그러니 돈, 권력, 명예를 좇는 것은 세속에서뿐만 아니라 종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늘 ‘복 많이 받는 이야기’를 합니다. 오히려 세속에서는 적어도 노력해서 얻으려고 하는데, 종교에서는 노력도 하지 않고 빌어서 공짜로 얻으려고 하기도 해요. 그러니 어떤 면에서는 세속보다 더 허황됩니다.

이렇게 세속화된 종교의 측면에서는 불교나 기독교나 차이가 없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런 불교는 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붓다의 원래 가르침은 지금의 종교와 문제의식이 전혀 다릅니다. 붓다의 가르침, 즉 담마(Dharma)의 관점에서 오늘날 우리 사회를 보면 불법의 최대의 경쟁상대는 기독교도 아니고, 공산주의도 아닌 바로 ‘많이 생산해서 많이 소비하는 것이 잘 사는 것’이라고 믿는 소비주의입니다.

마치 아편에 중독되듯이 우리들은 지금 소비주의에 중독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스스로가 소비주의에 중독되어 있는지도 모르고 살아갑니다. 그래도 여기 있는 사람들은 알고 있나요? (청중 웃음)

사람들이 소비주의에 중독되다 보니 심지어 종교까지도 소비주의에 중독되어 있어요. 이렇게 믿음을 기초로 하는 종교까지도 소비주의가 장악한 것을 보면 참 소비주의 세력이 강하긴 강한가 봐요. 스님이 세계를 다니면서 아직 소비주의에 정복되지 않은 불교를 살펴보면, 안타깝지만 태국은 영향을 많이 받아서 이제 권위만 남은 상황이라고 할 수 있고, 그래도 미얀마에는 아직 수행적 요소가 많이 남아 있고, 티벳 불교도들은 수행이라고 하긴 그렇지만 그래도 소비주의의 영향을 덜 받고 착실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렇지만 아직 방심하기는 이릅니다. 왜냐하면 아직 경제발전을 하고 돈의 맛을 본 곳이 아니기 때문이에요. (청중 웃음) 자본주의에 흠뻑 젖고, 돈의 맛은 본 뒤에도 여전히 그 착실함을 유지할 수 있어야 불교의 중심이 잡혔다고 할 수 있어요. 우리 정토회는 주변에 번화가도 있고 요정(料亭)이 난무하는데도, 재물이나 지위를 탐하지 않고 화장도 안 하고 내 것 네 것도 없이 살잖아요.

우리는 지금 주변의 요정(料亭)들과 ‘요정에 가는 사람들이나 거기서 일하는 사람들이 괴로워서 정토회로 오느냐, 아니면 정토 행자들이 오히려 요정으로 가느냐’를 두고 경쟁을 하고 있어요. (청중 웃음) 지금은 그곳 사람들이 오는 것도 아니고 우리가 가는 것도 아니지만 (청중 웃음) 곧 회관도 옮기고 시스템을 달리하면 우리가 이기지 않을까요? (청중 웃음) 또 모르죠, 여러분 중에 누가 또 그리로 적을 옮기게 될지 두고 봐야겠죠. (청중 웃음)

우리에게도 이런 생활이 하나의 큰 실험입니다. 돈이 없어서 가난하게 사는 것이 아니라, 돈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검소하게 살아가는 것, 그리고 돈은 있지만 차가 필요없기 때문에 대중교통을 이용한다거나 구입하더라도 소형차를 사고, 돈이 있지만 가방은 물건만 잘 담으면 된다는 생각으로 명품 가방의 필요성이 없다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다들 지금 그렇게 살고 있어요? (청중 웃음)

정토회에 들어오면 우리 모두가 그런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이 목표입니다. 돈이 있어도 그 돈을 소비하는데서 보람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검소하게 살고 남은 것을 베푸는 데서 보람을 느끼고, 돈이 없으면 원래 검소하게 사니까 또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아무리 수입이 적어도 부처님처럼 산다고 생각하면 남잖아요. (청중 웃음) 옷도 버려진 헌 옷을 주워 입고, 밥은 남이 주는 만큼 얻어먹고, 잠은 아무 데서나 잔다고 생각하면 부족할 게 없습니다.

여기서 부처님의 위대함을 알 수 있어요. 몸소 모범을 보임으로써 수행자들의 의식주를 한꺼번에 해결해주신 거예요. (청중 웃음) 마음가짐을 그렇게 가지면 죽을 때까지 의식주에 대해 아무런 고민이 없습니다. 그런데 의식주에 목을 매면 죽을 때까지 늘 무엇을 먹을지, 옷은 어떻게 입을지, 어디에서 잠을 잘지 고민하게 됩니다. 부처님은 나무 밑에서 자고, 밥은 얻어먹고, 옷은 주워 입으니까 한 번에 해결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삶의 관점을 제대로 잡고 살아가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입니다. 티벳 불교나 미얀마 불교는 아직 돈맛을 제대로 겪지 않았기 때문에 그 시기가 지나고 난 뒤 어떤 모습을 보일지 아직 알 수가 없어요. 그런데 지금 우리는 지금 소비주의에 둘러싸여 있지만 돈에 구애받지 않는 길을 가고 있습니다. 마치 부처님께서 왕이 될 수 있는데도 왕위를 내려놓은 것과 같습니다. 그러니 부처님께서는 왕을 부러워하지 않고 부자를 부러워하지 않으셨습니다.

욕망을 스스로 내려놓지 않으면 출가해서 승려가 되어서도 누가 돈을 많이 준다거나, 높은 지위를 준다거나 예쁜 여자가 나타나면 혹하는 마음이 생겨나게 됩니다. 재벌을 욕하다가도 막상 본인이 재벌 며느리가 된다고 하면 좋아하게 돼요.(청중 웃음)

우리의 과제는 이러한 것들을 어떻게 극복하는가 입니다. 극복하기만 하면 자유로워집니다. 그렇게 되면 이 세상이 혼란스럽다고 한탄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환경운동을 하는 것도 더 이상 소비문화를 확산하지 말자는 의미에서 행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조금만 검소하게 살면 인류 공동체 전체가 서로 돕고 살 수 있습니다. 여러분도 껄떡거리지만 않으면 지금 이대로도 편안하게 살 수 있습니다.

여기 계신 분들은 거의 다 2~30대인데, 젊을 때만 껄떡거리는 게 아닙니다. 젊어서 껄떡거린 사람은 그걸 고치지 않으면 5~60대가 되어서도 계속 껄떡거립니다. (청중 웃음) 외부 조건을 바꾼다고 해소되는 게 아니에요. 결혼 안 한 사람은 결혼만 하면 해소될 것 같지요? 더 골치 아파져요. (청중 웃음) 그런 사람은 혼자 있으면 외로워서 괴롭고, 결혼하면 더 골치아파서 괴로워요. 직장이 없는 사람은 직장만 구하면 해소될 것 같지요? 아니에요, 그런 사람은 백수일 때는 백수여서 괴롭고 직장에 다닐 때는 또 직장에 다녀서 괴로워요.

그래서 수행을 통해서 여기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해결됩니다. 요즘 세상은 옛날에 비해서 혼자 살아도 살기 좋은 세상이잖아요? 옛날처럼 누가 속박하거나 간섭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혼자 살아도 좋은 세상이고, 결혼해도 좋은 세상이에요. 옛날처럼 아이를 많이 낳아서 키우는 것도 아니고, 거기다가 정부에서 보조금까지 나오니까 아이들 키우기에도 좋은 세상이에요. 요즘은 나이 들면 연금도 나오니까 늙어서도 살기 좋은 세상입니다. 그러니 소비만 줄이면 아무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세상이에요.

이건 나태하거나 게으르게 살라는 말이 아니라, 돈이 부족해서 마음 졸이거나 그저 돈을 위해서 공부하거나 직장 생활을 하지는 말라는 거예요. 관점을 바로잡으면 단박에 자유로워집니다.

관점을 바로잡아야지, 10년, 20년씩 절에 오래 다닌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우리 스스로 새로운 문명, 새로운 문화, 새로운 삶의 방식을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변화를 헐떡거리며 따라가기 바빠요. 그리고 다른 사람이 하는 대로 따라가 봐야 결국 같은 구렁텅이로 빠지게 되는 거예요. 그러니 다른 사람이 어떤 길을 가든지 그 사람들은 놔두고, 우리 스스로는 새로운 길, 올바른 길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런 관점에서 젊어서부터 인생관을 바로잡으면 삶을 살기가 훨씬 좋아집니다. 관점만 바로잡으면 단박에 행복하게 살게 되는데, 왜 굳이 10년, 20년 고생을 하고 나서 5, 60대가 된 다음 법문을 듣고 깨달으려고 해요? 왜 그때가 되어서야 ‘아, 내가 저 법문을 조금만 일찍 들었어도 인생이 좋았을텐데’ 하려고 해요? (청중 웃음) 정치인들 중에도 깨달음의 장을 권하면 바로 가지 않고 미루다가, 선거에서 떨어지고 나서야 다녀와서 ‘이걸 내가 조금만 일찍 알았어도’ 하는 분들이 계세요. (청중 웃음) 물론 늦게라도 다녀오는 게 좋긴 합니다. (청중 웃음)

그러니 올해 부처님 오신 날을 맞이해서 여러분 모두 재발심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것이야말로 젊은이가 할 만 한 공부이고, 대장부가 할 만 한 공부입니다. 이건 누구에게 빌면서 도와달라고 비는 공부가 아니잖아요.

제가 이렇게 이야기해 주는 것보다 먹기만 하면 바로 깨닫는 약을 개발하는 게 빠를지도 모르겠어요. 그런 약 있으면 바로 사 먹겠죠? (청중 웃음) 아니면 유전자를 바꾸거나 뇌에 자극을 줘서 카르마를 바꾸는 방법을 연구하는 게 빠를지도 모르겠어요. 그런 외과수술적인 방법보다는 자기가 자기를 관리하는 게 좋습니다. 외과수술적 방법으로 하면 편리하니까 표면적으로는 좋을 것 같지만 그렇게 되면 또 그 기술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우리는 노예가 됩니다. 반면 오직 나만이 나를 컨트롤할 수 있다는 것은 그 누구도 나를 지배할 수 없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사실 빅 데이터가 나오는 요즘은 대중을 조종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하고 반응하는지 알 수 있으니까요. 앞으로 개인별로 누구는 무엇을 주면 좋아하고 무엇을 하면 화를 내는지 데이터베이스로 모두 정리할 수 있는 시대가 곧 옵니다. 그것만 알면 그 사람을 조종할 수 있겠지요.

즉, 행동방식을 입력해놓으면 앞으로 어떻게 행동할지, 어떤 자극에 어떻게 반응할지 모두 예측 가능합니다. 그러니 기술 발달이 우리에게 편리함을 가져다주는 측면도 있지만 동시에 그 기술을 가진 특정인이나 특정 집단이 다시 세상을 지배할 가능성도 열어두게 됩니다. 이런 이야기는 요즘 영화의 소재로도 많이 활용되고 있어요.

이런 측면에서도 내 인생의 주인은 내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을 쥐고 있어야 어떤 상황에 처하든 타인의 손에 놀아나지 않게 됩니다. 부처님은 우리에게 그런 붓다가 되는 길을 제시하셨습니다. 그러니 붓다가 되려고 하는 사람들은 모두 오늘이 생일입니다. 생일을 모두 음력 4월 8일로 바꾸세요. (청중: 네!)

그렇게 ‘나도 부처가 되겠다’라고 원을 세우시기 바랍니다. 붓다가 된다는 것을 신비하게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붓다가 된다는 것은 바로 내가 내 운명의 주인이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내가 내 카르마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 쉽게 말하면 내가 내 감정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 감정에 의해 놀아나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런 관점을 가지고 수행 정진하시면 오늘의 부처님 오신 날의 의미가 살아날 것으로 생각됩니다.

함께 만든 사람들
임혜진 손명희 정란희 조태준

전체댓글 16

0/200

고경희

제 생일은 음력4.8~♡

2017-06-24 00:02:47

^^^^

좋은말씀 다 복사를 해두고싶네요^^
[ 사람들이 기도하는 내용을 봐도 ‘돈 잘 벌게 해주세요, 남편 잘 되게 해주세요, 자식 잘 되게 해 주세요’하면서‘불교를 믿으면 돈 잘 번다, 출세한다’, ‘아니다, 기독교를 믿으면 돈 잘 번다, 출세한다’ 등으로 부처님의 가피나 하나님의 은총도 모두 돈으로 환산되는 시대입니다.그러니 돈, 권력, 명예를 좇는 것은 세속에서뿐만 아니라 종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늘 ‘복 많이 받는 이야기’를 합니다.] [ 우리 스스로 새로운 문명, 새로운 문화, 새로운 삶의 방식을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 그러니 부처님께서는 왕을 부러워하지 않고 부자를 부러워하지 않으셨습니다.] [ 그런 관점에서 젊어서부터 인생관을 바로잡으면 삶을 살기가 훨씬 좋아집니다 ] [ 이건 누구에게 빌면서 도와달라고 비는 공부가 아니잖아요. ] [우리의 과제는 이러한 것들을 어떻게 극복하는가 입니다. 극복하기만 하면 자유로워집니다. 그렇게 되면 이 세상이 혼란스럽다고 한탄할 필요가 없습니다]
[ 반면 오직 나만이 나를 컨트롤할 수 있다는 것은 그 누구도 나를 지배할 수 없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 [이런 측면에서도 내 인생의 주인은 내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을 쥐고 있어야 어떤 상황에 처하든 타인의 손에 놀아나지 않게 됩니다]
[ 붓다가 된다는 것은 바로 내가 내 운명의 주인이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내가 내 카르마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 쉽게 말하면 내가 내 감정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 감정에 의해 놀아나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

2017-05-10 00:48:58

김철호

모두가 다
좋은 말씀 ~~
맞는 말씀 ~~

청년이 아닌데도 가슴이 설레입니다

오늘도 가볍게 내려놓으
그냥~~~싹!하고 하게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행복합니다

2017-05-08 06:2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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