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17. 05. 14 청년 불교대학 특강과 활동가 봄나들이(저녁반)
완고한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습니다

새벽 동이 터옵니다. 스님은 쌀쌀한 문경의 아침 공기에 새벽 예불과 기도를 일찌감치 마치고 평소보다 이른 5시에 공양을 하였습니다.
아침 6시부터 대수련장에서 청년대학생 불교대학 특강 수련 강의가 있기 때문입니다.

수련장에 들어서니 막 청법가를 올리던 참이었습니다. 스님은 청년 대학생들의 청법 삼배를 받고 먼저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지역별로 손을 들어 인사를 나누고 눈을 마주쳤습니다. 청년과 대학생 그리고 행자님들도 함께 자리하였습니다. 새벽이라 졸음을 쫓느라 애쓰는 불교대학생들도 보였습니다.
불교대학 교과 과정을 2개월간 진행하면서 의문이 있었던 내용들을 질문 하도록 하였습니다.
이 중 인연과보에 대한 질문자의 사례를 실어 봅니다.

“스님께서 ‘인연과’에 대해 설명하시면서 ‘원인이 있으면 과보가 따르고, 과보가 따른다는 것은 원인이 있었다는 것을 말한다’고 하셨고, ‘내가 지금 고통스럽다면 그 고통에는 반드시 원인이 있다’고도 하셨는데, 세상에는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는, 말도 안 되는 일들이 일어나기도 하잖아요. 예를 들어 신내림을 받게 된 사람들은 어떻게 보면 되게 억울할 것 같기도 한데, 여기에도 원인이 있는 걸까요?”

“예, 어떤 사람이 길을 걸어가다가 바람이 불어서 간판이 떨어지는 바람에 머리를 다쳤다면, 우리는 그걸 ‘날벼락 같은 일’이라고 하지요. 보통 사람들은 그런 일을 ‘인과응보’로 해석해요. 그런데 부처님의 가르침은 ‘인과응보가 아니라 ‘인연과보’예요. ‘인과응보’와 ‘인연과보’는 전혀 다른 겁니다. 그걸 모르니까 오해가 생기는 거예요.

인과응보라는 것은 불교가 아닙니다. 그건 우리의 전통사상이고, 중국의 전통사상이며 인도의 전통사상이자 유럽의 전통사상이에요. 인과응보라는 건 ‘네가 나쁜 짓을 하면 반드시 나쁜 결과를 받는다’는 원리로써 ‘보복’의 의미를 담고 있어요. 사람이 아니라 이 우주나 자연이 보복을 한다는 거죠. 그 자연 보복의 원리를 인과응보라고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인과응보 차원에서는 내가 길을 가다가 떨어진 간판에 머리를 다쳐도, 인도식으로 말하면 ‘네가 전생에 어떤 잘못을 했기 때문에 그 결과로 이생에서 간판을 맞게 되었다’거나 기독교식으로 말하면 ‘네가 무슨 잘못을 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너한테 벌을 준 것이다’고 하겠지요. 또 내가 산에 갔다가 뱀한테 물렸다면 ‘전생에 너는 뱀이었고 뱀은 사람이었는데, 네가 그 사람을 물어죽였기 때문에 이생에서는 거꾸로 네가 뱀한테 물린 것이다’고 보는 게 인과응보적 관점입니다.

그런데 그 인과응보에는 자연의 원리로써 반드시 보복을 한다는 의미가 깔려있습니다. 인과응보라는 말이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는 이유는 뭘까요? ‘나쁜 짓하지 마라. 네가 나쁜 짓을 하게 되면 언젠가는 그 과보를 받게 되니 착하게 살아라’라는 교훈을 주기 위함입니다. 이런 교훈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있습니다. 이게 인과응보입니다. 전래동화나 옛날 어른들의 말씀에는 다 이런 인과응보의 논리가 깔려있습니다.
그런데 인연과보라는 건 인과응보와 같이 선악 개념에 따른 보복의 원리가 아니에요. 보복의 원리에는 반드시 선악의 개념이 있어야 ‘상과 벌, 복과 죄’의 개념도 있게 되는 건데, 불교에서는 선악이라고 할 게 없다고 하거든요. 그런데 잘 살펴보면, 자연생태계에는 선악의 개념이 없습니다. 우주가 움직이는데 선악의 개념을 갖고 움직인다고 생각했던 건 그 원리를 몰랐던 옛날 사람들의 어리석은 생각이지요. 예를 들어 일식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왕이 왕후를 놔두고 첩을 총애하니까 하늘이 노해서 태양을 없애는 것’이라고 한다든지, 가뭄이 들면 ‘왕이 여자에 빠져서 놀기만 하니까 하늘이 노해서 비가 안 오는 것’이라고 했단 말이에요.

그런데 불교에서 말하는 인연과보는 ‘어떤 결과가 일어나려면 반드시 원인이 있어야 되는데, 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는 겁니다. 선악이나 복수의 개념이 아니고, 원인이 있어서 결과가 생긴다는 겁니다. 즉 컵이 이렇게 움직인다는 결과가 있을 때는 여기에 반드시 힘이 가해졌다는 원인이 있는 거지요. 그런데 이 원인을 다시 두 가지로 분류를 합니다. 힘을 가했다는 것이 직접적 원인, 이걸 ‘인(因)’이라고 합니다. 컵에 힘을 가해도 마찰력이 크면 컵이 잘 움직이지 않겠죠? 바로 이 컵의 무게라든지 이 컵과 탁자와의 마찰력이라든지 이런 조건에 의해서 이런 결과가 나오는 거예요. 그러니까 두 가지, ‘가해진 힘’ 과 ‘주어진 조건’에 의해서 컵이 움직이는 결과가 나타난다는 게 ‘인연과’입니다.

그러니까 봄이 되고 비가 오니까 밭에서 식물이 싹을 틔웠을 때, 이 ‘싹을 틔웠다’는 결과가 있을 때 그 원인은 뭘까요? 보이지는 않았지만 땅 속에 씨앗이 있었던 거지요? 씨앗이 있었기 때문에 싹이 트는 결과가 생긴 겁니다. 그래서 씨앗이 인(因)이고, 싹은 과(果)입니다. 그런데 씨앗이 있었다고 반드시 싹이 트는 건 아니고, 적절한 온도와 적절한 습기가 주어졌을 때 싹이 트는 거지요? 그때 적절한 온도와 적절한 습기가 바로 연(緣)이 되지요. 그러니까 인연이 만나서 과보가 생기는 겁니다. 그러니 씨앗은 싹을 띄울 수 있는 원인이 되지만 그게 불에 떨어지거나 건조한 상태에 있거나 얼음 속에 있으면 싹을 틔울 수가 없겠지요.
그래서 한 사람이 건물 밑을 지나가다가 떨어지는 간판에 머리를 맞았다는 사실을 놓고 봤을 때, 인과응보의 관점에서는 그 사람이 뭔가 과거에 나쁜 짓을 해서 보복을 당하는 것이고, 인연과보의 관점에서 볼 때는 바람이 불고, 간판이 떨어지고, 그 사람은 그때 마침 그 밑을 지나갔다는 그 조건이 모두 맞아서, 즉 인연이 맞아서 그 사람이 다치는 결과가 있었던 거예요. 그걸 선악 개념으로 설명하는 게 아닙니다. 이해하셨습니까?”

“(청중들) 예.”

“어느 게 더 정확합니까?”

“(청중들) 인연과보요.”

“예, 인연과보지요. 그런데 원래 부처님의 가르침은 인연과보인데, 불교가 종교화하면서 인연과보가 거의 90%는 인과응보식으로 해석이 되면서 여러분이 항상 의문스러워 하고, 혼란스러워 하는 거예요.”

헷갈리던 개념이 말끔히 정리가 되었습니다.
두 시간 가량 예정하고 시작하였는데 30분이나 지체가 되었습니다. 스님은 즉문즉설을 마치고 서둘러 법상에서 내려와 다음 일정인 문경 새재로 향하였습니다.
그때 묘수 법사님과 행자님들이 주차장에서 스님을 기다려 ‘스승의 은혜’ 노래를 빠르게 부르고 손수 키운 채소로 만든 채소바구니를 정성스런 편지와 전달하였습니다. 꽃바구니를 무색하게 하는 상추, 쑥갓, 고소, 미나리, 청경채를 예쁘게 배치한 채소 바구니입니다.

스님은 함박웃음으로 채소바구니를 받아들고 문경 새재로 향했습니다.

오늘은 정토회 저녁반 활동가들과 함께 문경새재 나들이를 하는 날입니다. 전국 법당에서 각 역할을 맡아 하고 있는 저녁반 활동가들 600여 명이 모였습니다.

스님은 문경새재에 대한 간략한 설명을 한 후 천천히 출발하였습니다. 햇살이 청명하게 내리쬐고 먼지도 덜해서 걷기에 딱 좋은 날씨였습니다. 휴일이라 일반 사람들도 많이 와서 길이 붐볐습니다. 스님과 활동가 600여 명은 다른 사람에게 불편을 주지 않도록 오른쪽으로 붙어서 걸었습니다.

1관문을 거쳐 조곡 폭포를 지나 2관문인 조곡관에서 점심을 먹고 조곡관을 배경으로 지부별로 사진을 찍었습니다.

걷기 산책을 잘 하고 내려와 문경새재 입구의 유스호스텔에서 즉문즉설의 시간을 마련하였습니다.

강당에 책상과 의자를 아예 걷어버리고 돗자리를 펴고 앉아야 겨우 다 들어올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사람들이 다 모일 동안, 오랜만에 모인 활동가들의 나들이를 축하하는 의미에서 몇 몇 지부에서 장기자랑 준비를 해왔습니다. 바쁜 와중에 무대복도 준비하고 정성과 재미로 장기를 선보였습니다.

장기자랑 시간 말미에 각 지부 활동가들이 스님께 장미를 선물하며 ‘스승의 날’ 스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순서를 가졌습니다.
왁자지껄한 즐거운 시간이 끝나고 스님과 함께하는 즉문즉설 시간이 되었습니다. 활동하면서 어려움, 궁금함들을 모두 내어놓아보기로 하면서 즉문즉설이 시작되었습니다.

“개인적인 질문이라 좀 부끄럽지만 아버지와의 갈등에 대해 여쭙고 싶습니다. 저는 2남 3녀 중 장남이고, 어머니가 계시긴 하지만 우울증을 30년 가까이 앓으시다가 10년 전쯤부터는 집에서 돌보기가 여의치 않아 요양병원에 계십니다. 저희 가족들끼리는 어머니가 우울증이 온 이유가 아버지가 워낙 완고하셔서라고 생각합니다. 아버지 말이 법이다 보니까 어머니가 정신적으로 힘들어하시고 결국 병이 와서 지금도 병원에 계신 게 아닌가 하고 저를 포함해 형제들 모두가 생각하기에 아버지에 대한 감정이 좋지는 않습니다. 아버지가 본가에서 농사 조금 짓고 혼자 계신데, 한 번씩 오라고 하세요. 자식 된 입장에서 안 갈 수는 없어서 가끔 가긴 하는데, 갈 때는 기분 좋게 가도 올 때는 꼭 스트레스를 받고 싸우고 옵니다.

그런 갈등을 한 십여 년 겪다 보니 제 나름의 대안이 본가에 가지 말자는 것이 됐어요. 대면을 하면 아버지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서로 안 좋으니까 가능하면 그냥 대면하지 않고 전화통화를 하면 전화에 대고 욕설을 하지는 않으시니까요. 그래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아버지가 또 오라고 부르시거든요. 그래서 가면 또 싸우고 오고, 이게 무한반복이 돼서 힘듭니다. 그러다가 제가 정토회에 오게 됐고 ‘깨달음의 장’과 ‘나눔의 장’을 다녀오면서 조금 나아졌다 생각했는데 근본적으로 나아진 건 아니더라고요. 제 심리를 포함해서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할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제일 쉬운 방법은 안 뵙는 게 제일 쉽죠. 1년에 한두 번만 가되 그 한두 번은 각오하고 가면 되죠. 아예 싸울 거라고 처음부터 생각하는 거예요. ‘이번에 가면 안 싸울 거다’ 이렇게 생각하지 말고 아예 ‘이번에 가면 또 대판 싸울 거다’ 하고 각오해요. 싸운 핑계 갖고 또 한 6개월 안 갔다가 또 한 번 가서 또 싸우고, 싸움 핑계 대고 또 6개월 안 가고 이러면 돼요.(청중 웃음) 싸워야 안 갈 핑계거리가 되잖아요. 사이가 좋으면 또 가야 해요. 그러니까 싸우는 것도 꼭 나쁜 건 아니에요.(청중 웃음) 이렇게 딱 각오를 하고 가면 되는 방법이 하나 있어요.

두 번째, 이게 계속 반복이 된다면 연구가 좀 필요하지 않을까요? 내가 무슨 말을 하면 아버지가 주로 화를 내고, 아버지가 무슨 말을 할 때 내가 성질이 나서 판이 벌어진다는 패턴이 있잖아요. 아버지가 반복적으로 제기하고 거기에 반응해서 나도 못 견디고 터뜨리는 게 주로 어떤 얘기할 때예요?”

“아버지가 타협이라는 걸 모르세요. 아버지가 하시는 얘기는 다 맞는 얘기라고 하시고요.”

“그럼 가서 ‘당신은 왕이로소이다’ 하면 되잖아요.(청중 웃음) 이미 그걸 반복하고 있다면 아버지가 무슨 말을 하든 ‘네, 맞습니다. 알겠습니다’ 이러면 돼요. 그게 뭐가 어렵다고 그래요?”

“최근에는 그렇게 생각하긴 하는데 그래도 어느 순간 또 올라오더라고요.”

“왜 올라오는데요?”

“그게 문제죠.”(질문자 웃음, 청중 웃음)

“아버지하고는 ‘당신이 왕이로소이다. 당신 말이 맞습니다’ 외에는 다른 대안이 없다고 결론이 났잖아요. 그럼 그렇게 하면 되는 거예요. 그렇게 못하면 그건 아버지 문제가 아니라 질문자 문제죠. 질문자가 아버지한테 안 굽히고 세울 게 뭐가 있다고 그래요? 1년도 아니고 2년도 아니고 수십 년을 아버지하고 얘기해본 결과 무슨 얘기를 하든 설득이나 대화가 안 된다는 게 이미 결론이 났잖아요. 결론이 나기 전에는 ‘혹시나’ 하는 기대가 있겠지만 결론이 났는데 더 이상 얘기할 게 뭐가 있어요? 연세가 들면 아버지는 갈수록 더 어려워질 테니까 어떤 얘기를 하든지 무조건 ‘네, 알겠습니다, 아버지. 네, 알겠습니다’ 그러면 돼요. 그리고 질문자는 질문자대로 하면 되잖아요. 간단한 문제인데 뭘 그렇게 어렵게 생각해요.(청중 웃음)

소를 몰고 지붕 위에 올라가라고 해도 ‘네, 알겠습니다’ 이러면 된단 말이에요. ‘지붕 위에 소를 어떻게 몰고 올라가요?’ 이러지 말고요. ‘알겠습니다’ 이러고 쇠고삐 잡고 지붕 아래에 갔다가 ‘안 되네요’ 이러면 되잖아요.(청중 웃음, 박수)
질문자는 지금 아버지를 꺾으려고 하는 거예요. 한 번 꺾어보겠다 이거죠. 그런데 아버지를 어떻게 꺾겠어요? 아버지가 꺾인다면 그 날이 아버지 죽는 날이에요.”

“저도 잠정적으로는 그렇게 결론을 내렸는데...”(모두 웃음)

“그런데 가면 또 성질난다, 이거죠? 그러니까 그게 아버지 ‘내리기’죠. 아버지도 아들이 올 때는 ‘이번에는 나도 한번 숙여 줘야지’ 하는데 아들하는 모양을 보면 그렇게 안 된단 말이에요.(청중 웃음) 그러니까 아버지 탓할 거 없어요. 질문자가 아버지처럼 안 되려면 아버지한테 숙이는 연습을 하는 게 내 수행이에요. 아버지한테 지는 게 아니고 이게 내 수행이에요. 그러니까 아버지를 상대로 내가 나를 숙이는 연습을 하는 기회로 삼으세요. 어떤 것이든 옳고 그름을 따지지 말라는 거예요. ‘이거는 그래도 얘기해야 되지 않냐!’ 이런 걸 아예 없애 버리세요. 최근에 얘기한 예를 서너 가지만 얘기해 봐요. 질문자가 ‘욱’ 한 건 뭐예요?”

“...생각이 안 납니다.”(청중 박장대소)

“생각이 안 난다는 건 아버지가 말하면 질문자가 자기도 모르게 무조건 욱하고 반응한다는 거예요. 뚜렷이 무슨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질문자도 아버지가 얘기하면 무조건 거기에 동의하기가 싫은 거예요. 지나놓고 보면 별 일 아닌데 이유 없이 싸우고 오는 격이에요. 성질이 부딪혀서 그러는 것이거든요.

그러니까 아버지한테 옳고 그르고를 따지지 마세요. 아버지는 이미 안 된다고 결론이 났어요. 그런데 얘기를 들어보니까, 처음에는 아버지가 안 되는 줄 알았더니 질문자도 안 되네요.(청중 웃음) 그러니까 질문자부터 연습을 하세요. 아버지가 말하는 것은 무조건 ‘네, 알겠습니다’ 이렇게 하란 말이에요. 옳다고 하지 말고요. ‘아버지 말씀이 옳습니다’ 이러지 말고 네, 알겠습니다라고 해요. 이 말은 ‘아버지 말씀을 알겠습니다’라는 뜻이에요. 아버지 말이 맞다는 뜻이 아니라 아버지가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을 제가 알겠다는 뜻이에요.

그런데 아버지 말 내용을 그대로 따라해야 하느냐? 안 해도 돼요. ‘다음 주에 올 거지?’ 이러면 ‘네, 알겠습니다’ 하고 안 가면 돼요. ‘저 땅 팔아야지!’ 하는데 내가 보니까 팔면 안 돼요. 그러면 ‘네, 알겠습니다’ 하고 안 팔면 돼요.
이렇게 아버지하고 얘기할 때는 무조건 ‘네, 알겠습니다’ 하세요. 여기서 해보세요.”

“네, 알겠습니다, 아버지.”

“그래요. 그걸 연습하려면 자주 가야 할까요, 안 가야 할까요?”

“자주 가야죠.”(청중 대답, 박장대소)

“그래요, 자주 가야 연습이 돼요. 안 가면 연습할 기회가 없잖아요. 그러니 매주 가서 ‘네, 알겠습니다, 아버지. 네, 알겠습니다, 아버지’ 하세요. 안 되면 금방 ‘어, 내가 또 안 되는구나’ 하고 ‘네, 알겠습니다, 아버지’ 이러는 연습을 자꾸 하세요. 그게 자연스럽게 되면 집에 가고 안 가고는 신경 쓸 필요가 없어져요. 내가 바빠서 안 가는 건 신경 쓰지 마세요. 그냥 아버지가 ‘다음 주에 와라’ 하면 ‘네, 알겠습니다, 아버지’ 하고 대답해놓고, 그때 가서 안 가도 된단 말이에요. ‘왜 안 왔니?’ 그러면 ‘죄송합니다, 아버지’ 하세요. ‘다음에 올 거지?’ 하면 ‘네, 알겠습니다, 아버지’ 이러고 또 못 갈 일이 있으면 안 가고요. 이렇게 하면 돼요.(청중 웃음) 그 말의 내용이 진짜냐 아니냐는 따지지 마세요. 아까 질문처럼 ‘단명 한다는 사람이 출가하면 명이 길어지냐, 짧아지냐’ 그런 거 따지지 마세요. ‘아, 그러면 좋다더라’ 그냥 이걸로 끝내버려요. ‘네, 알겠습니다, 아버지’ 하면 관계가 좋아져요.”

“솔직히 정토회 오고 한 3년간 연습하고 있는데 아직 잘 안 됩니다.”

“그러니까 질문자가 고집이 엄청 세다는 거예요. 아버지 탓하고 있잖아요.(청중 웃음) 아버지는 아무 수행을 한 게 없으니까 그렇다 치고, 질문자는 3년이나 수행하고 깨달음의 장까지 다녀온 사람이 아직도 그러고 있잖아요.(청중 박장대소) 어떡할래요? 이제 스님한테 얘기 들었으니까 오늘부터 무조건 뭐라고 한다고요?”

“네, 알겠습니다, 아버지.”(청중 대답)

“어떤 얘기를 하든 ‘네, 알겠습니다, 아버지’ 하세요. 아버지가 말할 때는 무조건 ‘네, 알겠습니다, 아버지’라고 하고, 왜 안 했냐고 따지면 ‘죄송합니다, 아버지’ 이렇게 말하면 돼요. 두 가지만 하면 돼요. ‘네, 알겠습니다, 아버지’ 하고 ‘죄송합니다, 아버지’ 이렇게만 말하세요.(청중 웃음) 한번 해봐요. 그거 자주 연습해야 해요.

여기서 이렇게 이해해도 현장에 가면 잘 안 돼요. 아버지와 딱 대면하면 안 되니까, 내일부터 매주 가서 연습을 해야 해요. 오라고 안 해도 연습하러 가야 된단 말이에요.(청중 박장대소) ‘너 왜 자꾸 오니?’ 이래도 ‘네, 알겠습니다, 아버지’ 하고 또 가고, ‘이제 그만 와라’ 해도 ‘네, 알겠습니다, 아버지’하고 또 가란 말이에요.(청중 웃음, 박수) 그러면 아버지도 터득을 해요. ‘쟤는 내 얘기는 완전히 귓등으로 듣고 자기 마음대로 하는구나.’ (스님 웃음, 청중 박장대소) 이렇게 되면 아버지도 이해하면서 아버지 수행에도 도움이 돼요. 알았죠?”

“네, 잘 알겠습니다.”

마지막 질문이 힘찬 웃음 속에 끝이 났습니다. 3년 동안 해도 안 되더라는 말을 했지만 ‘잘 알겠습니다’ 대답하는 질문자의 목소리에서 다시 한 번 해보겠다는 발심의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스님은 마지막으로 ‘정토회의 내실을 기하는 데 마음을 기울여 줄 것과 기도 정진에 대해 다시 한 번’ 이야기 하였습니다. 사홍서원으로 모든 식순을 마무리 하고 600여 명의 저녁반 활동가 식구들의 단체 사진을 건물 앞에서 찍었습니다.
햇살이 서쪽으로 넘어가려고 마지막 빛을 내리쬐고 있었습니다.
정토회 활동가 여러분, 오늘도 파이팅 입니다!]

함께 만든 사람들
임혜진 손명희 정란희 조태준 권성준

전체댓글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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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희

네~알겠습니다를 연습하려면 자주가야한다~ 정말 기막힌 방법~^^ 나도 좋고 너도 좋은 말로 표현이 안된다^^

2017-06-15 18:27:56

지혜

감사한 말씀 고맙습니다

2017-05-22 19:57:56

김영조

"질문자는 지금 아버지를 꺾으려고 하는 거예요. 한 번 꺾어보겠다 이거죠. 그런데 아버지를 어떻게 꺾겠어요? 아버지가 꺾인다면 그 날이 아버지 죽는 날이에요.” 아버지는 아무 수행을 한 게 없으니까 그렇다 치고, 질문자는 3년이나 수행하고 깨달음의 장까지 다녀온 사람이 아직도 그러고 있잖아요."-큰 경책으로 다가오는 놀라운 깨달음입니다. 이제부터 그 누구에게도 '잘 알겠습니다.'라고 숙이며 수행하겠습니다. 스승님, 감사합니다.

2017-05-21 17: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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