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17. 05. 28. 선운사 나들이
부모님의 원으로 출가하게 되었는데...

서초동 정토 회관에 도량석 목탁이 울립니다. 또르륵 딱, 또르륵 딱, 잠들어 있는 생명을 조용히 깨우는 소리입니다. 회색 법복을 정갈하게 입은 대중이 법당으로 하나 둘 내려와 앉습니다. 오늘은 붉은 가사를 입으신 동남아 스님들도 함께 앉았습니다.

새벽 예불이 시작되었습니다. 목탁에 맞춰 동남아 스님들은 함께 따라 하기도 하고 앉아 계시기도 했습니다.

예불을 마치고 올라가려는데 태국 스님께서 스님께 탱화에 그려진 사람들이 누구인지 물었습니다. 스님은 태국 스님께 탱화를 짚어가며 상세히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2층 강당에 간단한 아침 식사가 준비되었습니다. 빵과 버터, 김밥, 요거트, 과일을 준비해두었습니다. 아침 식사를 마칠 즈음, 스님은 지도를 보면서 설명하였습니다. 남한 지도를 펼쳐두고 각 지역의 특색을 동남아 스님들이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해주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오늘 방문하게 될 선운사의 위치와 내용 등을 상세하게 설명하였습니다.

6시 50분, 45인승 버스에 모두 올라탔습니다. 스님도 맨 앞자리에 앉아 승차하는 동남아 스님들을 맞이하였습니다. 차량이 고속도로 위를 달리기 시작하자 스님은 동남아 스님들께 묻고 싶은 것이 있다면 물어도 좋다며 즉문즉설을 시작하였습니다.
자연스럽게 달리는 차량 안에서 ‘dharma talk 다르마 토크’가 펼쳐졌습니다.

“저는 장남이어서 부모님을 모셔야 한다는 생각을 은연중에 갖고 있습니다. 사실 저는 처음엔 비구가 되고 싶지 않았는데 부모님이 제가 비구계를 받길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나름대로 방법을 생각해낸 게 부모님께서 저랑 같이 출가할 사람을 찾으면 비구가 되겠다고 말씀드린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결국 출가를 하게 되었습니다.
출가를 하고 나서 비구계를 받고, 불법도 알게 되고, 명상도 배우고 해서 지금은 굉장히 만족스럽게 출가 생활을 하고 있고 이 생활을 계속 하고 싶은데, 이제는 부모님께서 제가 승려 생활을 그만두고 가정을 돌보길 원하십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승려 생활을 하고 안 하고가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은 충분히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어떻게 해야 부모님의 이런 요구와 제 승려 생활의 균형을 잘 맞출 수 있을까요?”

“그건 여기 있는 정토회 회원들도 다들 고민하는 문제 중 하나입니다.(청중 웃음) 요즘 한국에서는 대부분 아이들을 한 명만 낳습니다. 하나뿐인 자식을 애지중지 키워 대학까지 공부를 시켜놓았는데 덜컥 정토회에 들어와 버렸어요. 심지어 몇몇은 유학까지 다녀왔는데 정토회에 들어와 버렸어요. 그래서 때로는 부모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차라리 정식으로 머리 깎고 스님이 되라. 스님도 아니고 그게 뭐냐?’
스님이 되면 아예 포기를 하겠는데, 머리를 기르고 있으니까 ‘오늘 오겠지’, ‘내일 오겠지’, ‘곧 오겠지’ 이렇게 늘 기다리는 거예요.

그런 고민을 하는 사람이 있으면 저는 이렇게 말해줍니다.
‘부모 핑계 대지 말고 네가 결정해라. 부모가 집에 돌아오기를 원하는 것은 부모 입장에서는 너무나 당연하기 때문에 이해해야 한다. 그러나 부모 말만 듣는다면 너는 네 자신의 주인이아니다, 부모의 노예일 뿐이다. 네가 돌아가고 싶다면 언제든 돌아가도 좋다. 그러나 부모가 돌아오라고 하기 때문에 돌아간다는 말은 하지 마라. 부모가 돌아오라고 해서 돌아간다면 너는 어려울 때마다 “부모님만 아니었으면 내가 출가 생활을 계속했을 텐데”라고 하며 늘 부모를 원망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삶이 행복하지 못하게 된다.’
20살 미만인 미성년자라면 부모 말을 들어야 합니다. 질문자는 미성년자일 때 부모가 출가하라 해서 출가했는데 이제는 20살이 넘어 성인이 되었기 때문에 부모의 말은 참고하면 되지, 부모 말을 꼭 따라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부모의 얘기를 듣고 참고하되 내가 어떻게 할 것이냐는 내가 결정하면 됩니다.
불법(붓다 담마)은 꼭 출가해야만 배울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스님이 되느냐 안 되느냐는 중요하지 않아요. 다만 우리 모든 불자들은 불법을 통해 열반(니르바나)로 나아가야 한다는 점은 아주 분명합니다. 그것은 재가에서 갈 수도 있고 출가해서 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둘 중 어떤 것을 선택할지는 자기가 결정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붓다께서도 두 길을 다 처음부터 열어주셨습니다.

부처님의 경우를 보세요. 외아들인데다가 왕이 될 사람이었어요. 그래서 아버지가 굉장히 반대를 많이 했습니다. 부모의 뜻을 따라 결혼까지 하고 아기까지 낳으니까 출가하기가 더 어려워졌죠. 그러나 결국 그 분은 ‘이 길이 아니다!’라고 판단했기 때문에 부모가 반대하고 자식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출가를 하셨습니다.
그러니 ‘가족이 어떻다’ 하는 것은 핑계일 뿐입니다. 내가 승려의 길을 갈까 안 갈까 망설이는 것이지, 마치 부모를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선택하는 양 말하면 안 됩니다. ‘나는 승려가 되고 싶은데 부모님이 반대하니까 못 하겠다’라고 말하는 것은 자기 자신에게 속고 있는 것입니다.
제 스승님은 4대 독자였는데 출가를 하셨습니다. 스승님이 출가하면 그 집안의 대가 끊어지는데도 출가를 하셨어요. 그러니까 내가 이 길을 가려면 어머니가 돌아오기를 원하는 정도가 아니라 ‘안 오면 네 앞에서 약을 먹고 죽겠다’ 이렇게 나오더라도 ‘그것은 당신의 선택입니다’ 이렇게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어머니가 죽는 것은 어머니의 선택입니다.
냉정하다고 생각해요? 냉정하지 않으면 이 길을 가기 어렵습니다. 어떻게 생각해요?”

“공부를 마치고 다시 나가서 속세의 삶을 살고, 부모님을 모시고, 다른 사람들의 기준에서 성공을 하는 모습을 상상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은 항상 하지 않기 때문에 일자리나 다른 것들도 있다가 없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니 ‘괜찮다, 돌아가지 않겠다’라고 생각을 정리했습니다.
하지만 괜찮다가도 최근 몇 년 사이 그런 생각이나 걱정이 아예 사라지질 않고 가끔씩 이렇게 찾아옵니다. 제 결정이고 제 선택이라는 걸 잘 알고 있지만, 가끔씩 그런 생각이 나타나서 저를 잡아끌 때가 있습니다.”

“그건 번뇌입니다. 그럴 때는 ‘이런 번뇌가 지금 일어나는구나’ 하고 알아차리면 됩니다. 알아차리면 사라지고, 그러다가 또 일어나면 ‘아, 또 번뇌가 일어나는구나’ 이렇게 알아차리세요. 알아차리면 또 시간이 지나면 사라집니다. 그렇게 하면서 조금씩 좋아져요. 누구에게나 번뇌란 늘 일어나게 마련이므로 그것을 나쁘게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부모님이 저 때문에 괴로워하시지 않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제가 그들의 괴로움의 원인이 되지 않습니까? 제가 그분들의 고(苦)의 원인이 된다는 생각 때문에 힘듭니다.”

“그것은 잘못 생각한 것입니다. 어떤 여성이 나를 좋아해서 결혼하자는데 내가 결혼을 안 해준다며 괴로워한다면 이 여성의 괴로움을 과연 내가 제공하는 것일까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예,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어머니가 아들이 돌아오기를 바라기 때문에 어머니가 괴로운 것이지, 그것이 질문자가 어머니를 괴롭힌 것은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어머니가 괴로워하는 것을 보고 질문자가 괴로워한다면 그것 또한 어머니가 원인이 아니라 질문자 자신이 원인입니다. 어머니 때문에 내가 괴로운 것이 아닙니다.”

“예, 그것이 자연스러운 것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부모님이 그렇게 생각하는 게 자연스럽다는 걸 잘 알고 서로의 탓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지만, 오랜만에 집을 방문하거나 전화를 하게 되면 부모님은 제가 승려 생활을 그만두기만을 계속 요구하십니다. 그래서 ‘내가 어떻게 부모님의 괴로움을 조금이라도 덜어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간혹 듭니다.”

“부모님이 그런 얘기를 하면 다만 ‘알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이렇게 얘기하면 됩니다. 그 말은 그렇게 하겠다는 뜻이 아니라 ‘당신의 마음을 알겠습니다’라는 뜻입니다.
이걸 알아야 합니다. 인생이란 내가 원하는 것을 다 이룰 수도 없을 뿐더러 다른 사람이 원하는 걸 내가 다 해줄 수도 없습니다. 질문자는 어머니에게 뭘 해줄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니까 이게 고민이 되는 것이지만, 사실은 아무것도 해줄 수가 없습니다. 내 마음의 평정을 유지한 채 다만 어머니의 아픈 마음을 내가 이해하면 됩니다.”

“부모님이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그러면서 또 저 자신이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를 저도 이해하고 알아차리려고 합니다. 제가 어떤 한 선택을 하면 부모님이 괴로워지고 또 다른 선택을 하면 부모님의 괴로움도 덜어지는 상황 같습니다.”

“질문자가 돌아가면 지금은 어머니가 좋아하겠지만 그렇다고 어머니의 괴로움이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직장을 구해라’, ‘결혼을 해라’, ‘애를 낳아라.’ 이렇게 어머니의 요구는 죽을 때까지 계속될 거예요. 갈수록 어머니의 요구는 커지고, 요구가 커지면 어머니의 괴로움도 더 커질 겁니다. 돌아가는 건 문제가 아니에요. 언제든지 돌아가도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를 위해 돌아가는 건 잘못된 선택입니다.”

“제가 승려 생활을 언제든 그만둘 수 있다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지금 저는 승려 생활하는 것이 만족스럽습니다. 스님 말씀 잘 들었습니다. 대단히 감사드립니다.”

“제 경험에 의하면 출가 생활은 젊을 때는 조금 힘들지만 늙으면 아주 좋아요.”(청중 웃음)

“제 도반들 중에도 같은 고민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 동안 저희들끼리는 해결책을 찾지 못했습니다. 제가 돌아가면 스님 말씀을 다 함께 나누겠습니다.”(모두 웃음, 박수)

버스 안의 사람들이 기쁨이 담긴 목소리를 듣고 함께 기뻐하며 박수를 쳤습니다. 스님은 자신의 이야기, 자신의 고민을 직접 꺼내어 이야기를 한 것에 ‘최고의 질문’이었다며 이야기하였습니다. 그 뒤로도 미얀마에서 오신 스님의 질문으로 ‘dharma talk’는 계속 되었습니다.
선운사에 도착했을 즈음, 버스 안 ‘dharma talk’도 마쳤습니다. 버스 안의 사람들은 유익하고 재미있는 시간에 얼굴이 환해졌습니다. 버스에서 내려 바깥 공기를 마시며 선운사까지 걸어가는 길이 한결 가볍게 느껴졌습니다.

원래 오늘은 JTS 안산다문화센터에서 주관하는 ‘외국인노동자 나들이 날’이라 지역에서 모인 외국인노동자들과 선운사 입구에서 만나기로 하였는데 출발이 늦어져 40분가량 뒤에 도착한다고 하였습니다. 스님과 일행은 천천히 주차장에서 선운사까지 걸어가며 주변 경관을 즐겼습니다.

먼저 선운사 대웅전에 가서 부처님 참배를 하고 나와 바로 맞은 편에 있는 만세루에서 차를 마셨습니다. 선운사에서 방문객을 위해 무료로 비치 해 둔 다구들이 있어 동남아 스님들이 차를 맛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여유롭게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한참 나누고 있으니 외국인 노동자분들이 왔습니다. 캄보디아, 태국, 베트남, 스리랑카에서 온 외국인 노동자분들과 함께 입재식을 하였습니다. 스님은 INEB 스님들을 소개하고 외국인 노동자분들이 스님들께 인사를 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와 보니 좋으세요? 일요일은 좀 쉽니까, 아니면 일만 합니까? 이렇게 나들이도 나오고 하나요? 여기 여러분 앞에 앉으신 스님들은 여러분들이 사는 나라에서 오신 스님입니다. 스리랑카에서 한 분, 미얀마에서 두 분, 캄보디아에서 두 분, 라오스에서 두 분, 태국분은 일곱 분입니다.
오늘 중요한 것은 ‘나들이’ 온 것입니다. 다른 걱정은 놓고 충분히 산책하고 이야기도 나누면서 즐기시기 바랍니다.”

스님은 ‘나들이’ 온 목적을 살려 즐겁게 지내기를 바라는 마음을 전했습니다. 곧 점심 공양 시간이 되어 자리를 마무리했습니다. 동남아 스님들은 시간이 지나면 공양 하실 수 없어서 가볍게 대웅전 앞에서 설명을 마치고 사천왕문 계단에서 단체 사진을 찍었습니다.

동남아 스님들이 먼저 공양하시고 다른 사람들이 공양하도록 스텝들이 안내하였습니다. 공양간에 마련된 자리가 부족해서 다른 사람들은 비빔밥을 밖으로 내어 야외에서 자유롭게 앉아 공양하였습니다.

가족단위로 나들이 온 외국인 노동자들도 있어서 아이들의 웃는 소리가 끊이질 않았습니다.



공양을 마치고 지장보궁으로 모였습니다. 외국인 노동자와 동남아 스님들이 함께 모여 즉문즉설의 시간을 가지도록 하였습니다. 삼귀의, 반야심경, 청법가, 삼배의 순서 후에 스님이 설명하였습니다.

“오늘은 동남아에서 오신 스님들도 계시니 누구라도 궁금한 점이 있으시면 질문하세요. 동남아 스님들도 여기 모이신 분들게 궁금한 점이 있다면 물어보셔도 좋습니다. 먼저 질문하는 쪽, 누구라도 먼저 손 든 사람이 질문 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런 즉문즉설 시간에는 익숙치 않아 노동자분들은 한참 서로 얼굴만 쳐다보며 웃었습니다. 침묵을 깨고 한 여성이 질문하였습니다. 선운사 절의 역사성에 대한 질문이었습니다.

아직 자신의 어려움을 꺼내기에는 시간이 좀 필요한 듯 하였습니다.
동남아 스님들은 버스에서 즉문즉설의 시간을 가지고 스스로 기뻐진 경험도 있다 보니 “고민이 있다면 혼자 생각하지 말고 꺼내 놓아 보아라, 함께 나누자”라고 격려의 이야기를 하기도 하였습니다. 태국, 캄보디아에서 온 노동자들이 질문을 하기도 하였으나 모두 한국 불교에 대한 것, 한국의 경제성장에 따른 질문을 하였습니다.

스님은

“그럼 오늘 이렇게 나들이 왔으니 안에만 앉아있을 수 없겠지요? 이제 밖으로 나가서 각자 나라에서 오신 스님들과 함께 이야기도 나누고 산책하는 시간을 가지도록 하겠습니다.”

캄보디아, 스리랑카, 태국 중심으로 노동자분들과 스님들이 만났습니다. 라오스와 미얀마는 이번 나들이에 참가한 노동자들이 없었습니다.




스님도 산책을 나섰습니다. 미얀마 스님도 함께 따라 나섰습니다. 선운사 산책길로 천천히 걸었습니다. 물이 흐르고 시원한 바람이 초록 나무들 사이로 불어와 상쾌했습니다. 미얀마 스님이 심호흡을 하며 신선한 공기를 들이쉬기, 내쉬기를 하였습니다. 저 멀리 걸어가는 스님 일행의 모습이 참 편안해 보였습니다.

모이기로 한 시간이 다 되어 버스 정류장까지 걸어갔습니다. 걸어가는 길에 가족이 함께 참가한 외국인 노동자 식구들이 있어 함께 사진을 찍었습니다. 아이들이 스님께 “할아버지~ 할아버지~”라고 부르며 쫑알쫑알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스님과 사진 찍으려고 기다린 캄보디아 노동자분들도 있었습니다.

주차장에서 외국인 노동자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스리랑카 수해 피해를 입은 가족들의 사연을 듣게 되어 스님은 수재의연금을 보시하였습니다. 현장에서 성금 전달식을 하였습니다. 성금을 받은 분은 가장 급하게 필요한 식수를 공급하는 데 쓰겠다고 하였습니다.
함께 모인 분들이 박수치며 감사의 마음을 표현했습니다.

버스에 올라타고 다시 서초동으로 출발하였습니다. 야외에서 한참 다녀서인지 다들 차에 오르자마자 잠이 들었습니다. 한 시간 남짓 후 휴게소에 들렀습니다. 화장실에 다녀오고 찬바람을 쐬면서 잠이 깼습니다. 버스가 출발하자, 스님은

“지금부터는 저녁이라 교통체증이 심한 시간입니다. 차가 많이 막힐 거예요. 옛말에 ‘거지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하지요? 차가 밀리는 김에 차에서 공부할까요? 자기 마음을 표현하고 싶거나 질문을 하거나 무엇이든 상관없습니다. 해 보세요.”

“봉사자들이 엄마가 아이를 챙기듯 꼼꼼하게 챙겨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저는 처음 비행기도 타보고, 처음 한국 사람을 만나보기도 했습니다. 모든 것이 새로웠고 기회가 되었습니다. 스님께서 붓다담마에 대한 깊은 이해, 간단한 질문에도 세세한 답변으로 응대해주신 스님께 감사드리고 그런 질문을 통해서 울림이 있었습니다.”

감사의 인사를 시작으로 다시 즉문즉설이 시작되었습니다. 차창 밖으로 노을이 지고 있었습니다.

동남아 스님들의 궁금함이 계속 질문이 되어 나왔고 끊임없이, 상세히, 지치지 않고 대답하는 스님의 답을 들은 스텝들과 동남아스님들은 더욱 집중하였습니다.


어느새 버스가 서초동에 도착했습니다. 그제야 즉문즉설도 끝이 났습니다.

내일은 INEB전체 일정을 마무리하는 날입니다. INEB 동남아 스님들에게는 마지막 밤입니다. 편히 쉬세요.

함께 만든 사람들
임혜진 손명희 정란희 조태준

전체댓글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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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고땡

사랑하는 스님 안전밸트 부탁드려요.

2017-06-05 21:43:55

규원

늘 깨달음을 주시는 스님 모든스텝분들 깊이 감사드립니댜

2017-06-01 16:30:00

월광

스리랑카 홍수피해로 돌아가신 분들은 부처님 나라에 태어나시기를, 부상자는 속히 쾌차하시길, 하루속히 홍수 피해 복구가 이루어 지길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2017-05-31 23:4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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