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17.6.6 광주 행복한 대화 강연
거동 못하는 79세 친정어머니, 수발드는 것이 힘듭니다.

안녕하세요. 스님은 오늘 오전에는 대구, 저녁에는 광주에서 강연이 있었습니다.

스님은 아침에 경주에서 출발하여 오전 강연 장소인 대구 정토법당으로 이동했습니다. 대구에서는 통일의병을 대상으로 한 강의가 있었습니다. 현충일을 맞아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을 한 후, 현재 대한민국이 직면한 과제와 미래 통일 코리아의 비전에 대한 강의를 했습니다.

강의를 마치고 점심식사 시간이 되자, 대구 법당에 한 보살님이 급히 찾아왔습니다. 보살님은 10년이 넘도록 스님의 장삼을 수선해주고 계신 분이었습니다. 며칠 전 장삼 오른쪽 어깨 부분이 뜯어져 스님은 임시로 유리테이프를 이용해 고정하고 다녔는데, 마침 오늘 대구 법당에 오신 김에 보살님에게 장삼 수선을 부탁드렸습니다.

장삼을 건네받은 보살님은 스님이 그 장삼을 입은 지 벌써 수십 년이 되어 천이 많이 얇아진데다, 이미 뜯어진 걸 여러 번 기웠기에 이제는 손보기가 쉽지 않다고 했습니다. “스님이 너무 물건을 아껴서 괜히 옆 사람들만 고생시킨다” 며 농담 섞인 불평을 늘어놓은 보살님은 스님이 점심식사를 하는 동안 본격적으로 수선을 시작했습니다.

"보살님, 원래 바느질을 잘 하셨나요?“

"원래 한복 바느질을 했어요. 제가 정토회를 2004년부터 다녔는데, 그래서 스님이 대구에 오시면 법복 수선은 항상 제가 했지요."

"그럼 벌써 13년이나 되셨어요?“

"네, 그 때도 이 장삼이었는데... 저는 스님 법문 들으면서 제 인생이 많이 바뀌었는데, 특히 스님 법복 수선하면서 더 많이 바뀌었어요. 원래 저는 물건 버리는 거 되게 좋아하는 사람이거든요. 근데 이렇게 스님이 아껴서 입으니깐, 나도 조금만 헤지면 버리던 팬티를 이제는 꿰매서 입게 되더라고."

보살님은 이어서 한 마디 덧붙였습니다.

"그래도 기회가 된다면 스님께 꼭 말씀 드려요. 이제 나이도 있으신데 제발 지금 새 장삼 하나 사시라고. 한국 경제를 위해서라도. 그래야 옷 가게, 옷 공장도 장사가 되잖아요.” (웃음)

수선을 마친 보살님은 감사하다는 말에 부끄러워하시면서 최근 건강이 나빠져 손도 둔하고 눈도 침침해 생각만큼 잘 못한 것 같다며 스님 얼굴도 보지 않고 돌아가셨습니다.

대구를 떠난 스님은 저녁에 행복한 대화 강연이 있는 광주로 이동하는 길에 잠시 지리산 수련원으로 향했습니다. 지리산으로 가는 차 밖에서는 오랜만에 반가운 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스님은 그동안 겨를이 없어 마지막으로 지리산 수련원을 들른 것이 어느덧 4년 전이라고 합니다. 그 때도 하루 묵으면서 잠만 자고 갔는데, 이번에는 틈이 난 김에 지리산 수련원 내부를 이 곳 저 곳 둘러봤습니다. 이렇게 수련원 내부를 둘러보는 것은 거의 10년만이라고 합니다.


그 동안 지리산 수련원은 이곳을 거치며 법을 만난 많은 분들의 노력과 재능으로 조금씩 조금씩 완성되어 왔습니다. 정돈된 도량, 가꿔진 텃밭과 비닐하우스, 가뭄 시에도 작물에 물을 줄 수 있는 스프링쿨러까지. 마침 농사를 짓고 계시던 선주법사님과 봉사자분들은 오랜만에 방문한 스님을 위해 간만의 비 소식에도 불구하고 스프링쿨러를 시연해보였습니다.

안내에 따라 도량을 돌아본 스님은, 이후 수련장을 더 짓는다면 어디다 짓는 게 좋을지 가벼운 구상을 나누었습니다. 차라도 한 잔 하고 가시라는 선주법사님과 봉사자분들의 권유에도 스님은 강연 일정이 있어 사양하며 다시 차량에 올라 타 광주로 이동했습니다.

광주에서는 시청 청사 3층의 대강연장에서 ‘행복한 대화’ 강연이 있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자리한 가운데 2시간이 약간 넘는 시간 동안 총 15명의 질문자와 대화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그 중 한 대화를 소개해드릴까 합니다.

“저는 51세 직장인이고 친정 어머니는 79세인데 지금 몸이 많이 안 좋으셔서 거동을 못 하고 계세요. 그래서 저희 가족들이 돌아가면서 수발을 많이 들어야 하는데, 마음을 다해서 수발을 들고 싶은데도 불구하고 진심어린 마음이 안 들 때가 많아요. 그 원인을 생각해봤더니 어렸을 때 어머니에게 깊은 정을 받지 못한 부분이 원인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살갑게 이야기를 하고 도와드리고 싶은 생각이 나다가도, 어렸을 때 상처가 떠오르면 마음이 탁 막히면서 진심이 안 나오는 때가 많았어요. 엄마는 어차피 앞으로 얼마 못 사실 텐데 어떻게 하면 돌아가실 때까지 진심을 다할 수 있을지 걱정되고 고민됩니다. 평소 유튜브에서 그런 질문에 대한 스님 답을 많이 들어서 조금 알고는 있지만 용기내서 한 번 여쭤봅니다.”

“질문에 대한 답을 어떻게 아는지 질문자가 먼저 얘기해 봐요.(청중 웃음) 유튜브에서 ‘이렇게 하면 된다’ 하는 걸 봤다니까 얘기를 해보세요.”

“‘다른 사람은 나에게 밥을 해준 적도 없고 어렸을 때 청소도 해주지 않았는데 너희 부모는 그래도 밥 해주고 청소도 해주지 않았냐? 그 정도만 해도 아팠을 때 자녀들에게 도움을 받을 충분한 자격이 되는데도 불구하고 왜 그걸 진심으로 하지 못하느냐? 엄마는 너에게 남보다 더 많은 사랑을 줬는데 너는 그 사랑을 느끼지 못한다. 그러니 네가 잘못되지 않았느냐?’ 그런 말씀을...”

“제가 그렇게 얘기했어요?”

“...그렇게 말씀하실 것 같아요.” (청중 웃음)

“전연 아니올시다. 그 질문자에게는 그런 사정이 있어서 그렇게 얘기했는지 모르겠지만요.”

“저에게도 그렇게 말씀하실 것 같아요.” (청중 웃음)

“저는 전혀 그렇게 말하고 싶지가 않아요. 돌보고 싶지 않으면 돌보지 말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그 질문을 한 사람은 남한테 그런 마음을 내는데 자기 엄마한테는 그런 마음을 안 내서 아마 그런 얘기를 했을 거예요. 질문자는 엄마한테 진심이 안 일어나면 안 하면 되고, 진심은 안 나지만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진심 없이 하면 돼요.”

“진심 없이 하기는 또 싫더라고요.”

“그럼 안 하면 돼요. 아무 문제가 없어요.”

“아무 문제가 없나요?”

“네. 생태윤리의 관점에서 볼 때 어미가 새끼를 낳아서 그 새끼가 자립할 때까지 돌보지 않는 것은 자연의 법칙에 어긋납니다. 그러므로 이건 죄악이 된다고 말할 수 있어요. 그런데 부모가 늙었다 해서 새끼가 부모를 돌보는 건 생태윤리에서는 없어요. 그것은 짐승에게는 없는 현상이니까 ‘선(善)’이라고 해요. 즉 ‘착한 행동’이라고 말합니다. 생태적 행위, 다시 말해 자연계에서 생물학적으로 일어나는 것은 그 어떤 행위도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니에요. 윤리적으로 말하면 ‘제로 베이스’예요. 그런데 짐승도 안 하는 나쁜 짓을 하면 ‘악(惡)’이라고 하고 짐승이 못하는 선한 행동을 하면 그걸 ‘선(善)’이라고 이름 붙이는 거예요.

질문자가 아이를 낳아놓고 돌보지 않으면 나쁘다고 이름 할 수 있지만, 질문자가 부모를 돌보지 않는다고 해서 그게 나쁜 행동은 아니에요. 좋은 행동을 안 할 뿐이죠. 질문자가 좋은 행동을 하기 싫다고 하니까 안 해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다는 거예요. 안 해도 돼요."

“그래도 계속 안 하기는 좀 힘든 데요.”

“왜 힘든 데요? 안 해도 돼요. 그건 선택이니까요. 하면 좋은 사람이 되고, 안 하면 나쁜 사람이 아니라 그냥 짐승 수준이라는 얘기예요.(청중 웃음) 짐승 수준이라는 건 나쁜 사람이라는 뜻이 아니에요. 윤리적으로는 제로 베이스니까요. 오늘 이 강의는 스님이 하기 싫어도 해야 될까요, 안 해도 될까요?”

“해야 돼요.”

“당연하게 해야 된다고 얘기하네요.(청중 웃음) 제가 돈을 받고 이 강의를 하면 의무가 되겠죠. 하지만 돈을 받고 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이건 자유 선택이에요. 물론 제가 강의를 하면 여러분들이 좋아하죠. 안 한다고 해도 여러분들이 저한테 항의할 게 없어요. 돈 낸 것도 아니니까요.(청중 웃음)

그러면 여러분들이 나갈 때 돈을 내는 게 의무일까요? 참가비를 얼마를 내야 한다고 정해져 있는 건 없었잖아요. 그러니 나갈 때 돈을 안 낸다고 해서 이게 나쁜 행위는 아니에요. 하지만 나갈 때 돈을 내면 ‘좋은 행위’라고 말한다는 거예요.

이처럼 선은 선택지에 속하고 악은 의무에 속합니다. 그래서 한자로는 ‘지악(止惡)’ 또는 ‘권선(勸善)’, ‘수선(修善)’이라고 말하는 거예요. 악은 딱 끊어야 해요. 우리는 남에게 피해를 줄 권리가 없어요. 선은 하면 좋고 안 해도 그만이에요. 그러니까 이건 질문자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자율’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의무감을 가질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 않아야 할 것과 하면 좋은 것에 대한 스님의 정리에 복잡한 문제가 한결 간단하게 정리된 듯 보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걸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지금 하기 싫지만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면 안 한 것에 대해서 후회할까요, 안할까요? 그 후회를 안 하려고 질문자가 지금 어머니를 돌보는 거예요. 어머니를 위해서 어머니를 돌보는 게 아니에요. 질문자는 지금 어머니를 위해서 한다고 착각하는 거예요. 사실은 내가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 하는 거예요. 이해되셨어요?“

“네.”

“그러면 질문자가 후회하지 않으려면 돈이나 힘이 좀 들어도 해야 할까요, 안 해야 할까요?”

“네, 자주 다니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질문자 웃음)

어머니를 위해서 돌보는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해서 돌보는 것이라는 스님의 답변이 질문자에게 명쾌하게 다가간 것 같았습니다. 이어서 스님이 말했습니다.

“어떤 일을 할 때 이왕 성심성의껏 하면 좋겠지만 꼭 그런 건 아니에요. 성심성의껏 해도 되고 대충 해도 돼요. 또 때로는 필요하면 하기 싫어도 해야 돼요. 아침에 회사 출근하기 싫어도 나가야 되고, 청소년 때는 공부하기 싫어도 해야 돼요.

그러니까 ‘꼭 하고 싶어서만 한다’ 이렇게 생각하면 안 돼요. 내가 후회하지 않으려면 지금 마음이 썩 내키지 않더라도 자주 가보는 게 나한테 유리합니다. 돌아가신 뒤에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예요. 이렇게 딱 관점을 가지면 돼요. 예를 들어서 기저귀 갈아주는데 마음이 내켜서 갈아주나 안 내키는데도 갈아주나, 아기 입장에서는 똑같아요. ‘네가 마음이 있어서 갈아주든 내키지 않는데 갈아주든 나한테는 기저귀 갈아주는 게 필요하지, 네가 무슨 마음먹었는지는 별로 중요한 게 아니다’ 이럴 거예요.(청중 웃음)

이렇게 생각해야지 그걸 두고 죄의식을 가질 필요는 없습니다. 그건 질문자의 어릴 때 경험 때문에 일어나는 거예요. 싫고 좋고는 과거의 업식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거든요. 싫은 것은 ‘아, 내가 어릴 때 엄마한테 좀 상처가 있어서 싫은 마음이 일어나는구나’ 이렇게 생각하면 됩니다.”

이 외에도 14명의 질문 신청자가 모두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스님은 빠듯한 두 시간의 강연 안에 한 분의 질문이라도 더 받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이후 스님은 오늘 행복한 강연을 주최한 ‘행복학교’ 프로그램에 대해 소개하면서 강연을 마쳤습니다.

“행복학교라는 게 있어요. 오늘 대화를 나눈 것과 같은 공부를 하는 곳이 행복학교니까 많이들 참여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건 종교하고도 관계없어요. 행복학교에서는 첫째, ‘어떻게 하면 인생을 좀 행복하게 살 수 있느냐?’를 공부합니다. 두 번째, ‘어떻게 하면 우리 사회를 좀 더 민주화된 사회로, 공정한 사회로, 평화로운 사회로 만들 수 있느냐?’를 공부해요. 시민들이 이런 문제에 관심을 갖고 참여를 해야 세상이 변하지, 시민들이 이걸 외면하면 세상이 변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자꾸 누가 해주기를 원해요. 광주에 와서 대통령이 좋은 말씀 했다고 해서 앞으로 광주 문제는 대통령이 다 알아서 해줄까요? 아니에요. 여러분들이 원하는 만큼 이루어지고 여러분들이 행동하는 만큼 세상이 변하지, 아무도 저절로 해주는 사람은 없어요. 여러분들이 옛날에 ‘늘 도와줘도 고마운 줄 모른다’ 해서 한 번 확 다른 데다가 표를 찍어버리니까 정신이 번쩍 들어서 지금 이렇게 하는 거죠.(청중 웃음) 그냥 가만히 있었으면 이렇게 안 해요.

그러니까 가만있으면 안 돼요. 항상 관찰하면서 노력해야 합니다. 가만히 놔둬도 아내가 항상 잘 해주고 가만히 놔둬도 남편이 항상 잘 해주는 게 아니에요. 가끔은 ‘너 정신 안 차리면 가버린다’ 이렇게 지적해가면서 살아야 해요.(청중 웃음) 내가 좋아서 하는 거는 괜찮아요. 그러나 세상을 위해서도 우리는 이렇게 실천하고 행동하는 시민이 돼야 한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청중 박수)


강연을 마친 스님은 책 싸인회를 하고 강연 준비를 위해 수고해준 스텝 분들과 사진을 촬영한 후 다시 경주로 출발했습니다. 새벽 1시에 경주에 도착한 스님은 오늘의 하루를 마쳤습니다.

내일 또 새로운 하루로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함께 만든 사람들
행자대학원 11기(박세환 송치현 조혜림 백은하)
이준길 손명희 정란희 조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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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말씀처럼 생태계와 사람계는 다를 것입니다.우리가 살아생전 무엇으로 부모님의 은혤 다 갚을 수 있겠는지요 ㅠㅠㅠ 며칠전 사진에서 스님 오른쪽 어깨부분이 반짝거려 잘못보았나 하고 넘어갔더니,헤진 장삼에 테이프 붙이신 거였군요 ㅠㅠ그래도 속모르는 사람들은 스님 엄청 편하게 사시는 줄 아시겠죠?ㅠ

2017-06-10 02:01:38

Rhee gi sa

Thanks a lot*^^*

2017-06-09 16:44:53

이덕기

관점을 늘 나에게로 향하게 해주시네요. 보모를 간병하는 이것도 다 나를 위해서 하는 거라는 말씀에 뜨끔합니다.

2017-06-09 15:3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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