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17.9.1 해외 즉문즉설 강연(5) 필리핀 세부
아내와의 잦은 말다툼, 어떻게 사과해야 하나요?

스님은 오전 4시에 기상하여 업무를 보고 기도를 하였습니다. 수행팀도 각자 방에서 새벽예불과 기도를 하였습니다. 서울을 출발한 이래로 계속 더운지방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밖은 습도가 높고 더운 날씨이고 실내는 에어컨이 돌아가고 있으니 아직 적응이 안됩니다.

한금화님께서 준비한 음식으로 아침식사를 하고 짐을 꾸려 공항으로 출발하기 직전 이종섭 대표님과 윤보연 총무님이 스님께 인사드리러 왔습니다. 어제 강연장에서 대표님과 총무님이 스님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지 못해 공항으로 출발하기 직전에 기념촬영을 하였습니다.

운전지원과 숙소, 식사를 제공한 이원주, 한금화님 부부와도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공항으로 출발하였습니다. 공항에 도착한 후 이원주 대표님과 12월에 민다나오 방문 때 만나자고 아쉬운 짧은 인사를 하였습니다.

세부행 수속을 밟고 10시 20분에 출발하여 11시 40분에 세부공항에 도착하였습니다. 공항에 도착하니 김니은 세부법회 부총무님과 봉자자들이 스님마중을 나와 두번째 세부를 방문한 스님과 수행팀을 반갑게 맞이해주었습니다.

세부시의 인구는 백만정도 라고 합니다. 운전자원봉사를 하는 김영탁님에 따르면 거사님이 세부에 왔던 2001년에는 한국인이 150명 정도였다고 합니다. 현재는 1만 2천명 정도로 대략 7-10만 정도인 마닐라에 이어 필리핀에서 두 번째로 한인이 많이 거주하고 있다고 합니다. 세부 경제를 움직이는 가장 중요한 곳이 한국이라고 합니다. 세부관광객 중에는 한국인이 가장 많다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거리 곳곳에 한국간판이 눈에 띄게 많이 보입니다. 세부에 있는 한국인 중에는 조기유학생과 기러기 가족으로 떨어져서 유학 온 한 부모 가정이 많다고 합니다.

마닐라에서는 새벽에 도착하고 저녁교통체증으로 오히려 거리를 구경하기 힘들었는데 세부는 낮시간이라 거리를 볼 수 있었습니다. 미국의 영향을 많이 받는 국가여서 그런지 익숙한 미국상표가 눈에 많이 띄었습니다.

필리핀은 1950년대부터 1970년대초까지 아시아에서 일본 다음으로 경제사정이 좋아 아시아의 진주로 불리웠던 국가입니다. 그러나 마르코스정권의 독재와 부패, 과도한 빈부격차로 인해 발전이 정체되었다고 합니다.

12시경에 부총무님 집에 도착하니 불대, 경전반학생들이 점심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스님이 도착하자 삼배로 인사를 드렸습니다. 스님은 불대졸업생은 몇 명이나 되는지,현재 불대와 경전반 학생등은 몇 명인지 자상하게 물어보고 어려운 가운데 수업을 이어나가는 이 분들에게 격려를 하면서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한분이 매듭으로 108염주를 만들었다고 정성스럽게 만든 매듭염주를 스님께 선물로 드렸습니다. 한올 한올 매듭으로 만든 염주가 참 예뻤습니다.

그리고 경전반 학생 중에 한 분은 영상으로만 스님을 뵙다가 이렇게 직접 스님을 뵙게 되어 너무 감격스럽다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사업을 정리하게 되면서 의도치 않았던 일들에 화가 많이 나 있었다고 합니다. 그시기에 세부정토회를 만나게 되었고, 스님의 법문도 듣고 세부도반들과 수행나누기를 하며 그 시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스님께 너무 감사한데 이렇게 직접뵙게 되니 눈물이 났다고 합니다. 어디에 살든 스님의 법문으로 인간관계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는 정토행자들을 만나는 것은 정말 가슴뭉클하고 감동적인 순간입니다.

강연장 바로 앞에 위치한 호텔에서 스님과 일행이 방콕으로 출발하기 전까지 조금이라도 편하게 휴식을 취하라고 강연준비팀이 방을 잡아두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식사 후 호텔로 이동한 스님과 일행은 강연 전까지 잠시 휴식하였습니다.

스님은 5시 20분경에 강연장으로 가서 강연봉사자들과 잠깐 사전모임을 하고 단체기념사진을 촬영하였습니다. 세부 강연의 자원봉사자는 모두 30여명으로 어린 학생들도 많은데 모두들 진지하고 성심껏 봉사하고 있었습니다. 사전 리허설도 몇 번이나 하면서 매뉴얼대로 준비하는 모습이 참 감동적이었습니다. 스님은 봉사자 한 분 한 분과 눈을 맞추고 감사의 인사를 하며 악수하고 격려하였습니다.

휴게실에서 봉사자들이 준비한 도시락으로 저녁식사를 간단히 하였습니다. 휴게실에 한 분이 특별한 커피를 가지고 와서 스님께 선물로 드렸습니다.이 커피는 민다나오 원주민들이 야생으로 채집한 커피를 사가지고 와서 이곳에서 가공하여 판매하고 있는 것이라 합니다.

스님은 2014년 세계 115회 강연 이후 세부에 두 번째 방문인데, 그 때와 같은 장소인 베네딕포 칼리지 아트홀에서 강연을 하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총 100여 명이 강연에 참가하였고, 7명이 질문하였습니다.

스님이 무대에 오르자 참석자들이 반갑게 큰 박수로 세부를 찾은 스님을 맞이하였습니다.

스님은 ‘세부는 2014년 세계115회 강연때 방문하고 3년만에 방문한다’고 하면서 반갑게 인사하였습니다. 세부는 조기유학생이 많아 그런지 학생들의 참여가 많았고 여성참가자보다 남성참가자들이 많았습니다. 질문자도 7명중 여성이 2명이고 남성이 5명이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마음을 편히 가지고 살 수 있는지 묻는 분, 학원에서 후배 남자아이가 계속 욕을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 지 묻는 학생,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해야 할 지 비전있는 일을 해야 할 지 고민하는 고3학생, 가정적이지 않은 남편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데 어떻게 하면 마음을 편히 가질 수 있는지 묻는 분, 학원매니저로 일을 하는데 학생들한테 화를 내는 등 감정의 조절이 안 되고 후회를 하게 되는데 어떻게 하면 화를 다스릴 수 있는지 묻는 분, 한국인과 필리핀 사람들은 너무 다른데 어떤 기준으로 살아야 하는지 묻는 분, 대학 3학년인 아들이 다른 친구들처럼 미래나 취업에 대한 고민을 젼혀 하지 않는데 어떻게 얘기해야 할지 묻는 분등 총 7명이 질문하였습니다.

그중에서 다음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저는 결혼한 지 23년이 되었습니다. 말다툼을 하고 나면 늦어도 잠들기 전에 사과를 하려고 말을 꺼내는데 그것이 도리어 큰 말다툼이 되어서 새벽 한 두시까지 언쟁을 하게 됩니다. 제가 사과를 하는 방법에도 문제가 있는 것 같고, 또 아내로부터 공격적인 말을 들으면서 저도 흥분되는 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 사과를 해야 하는지를 알고 싶습니다.”

“사과를 할 때 정말로 사과만 하면 갈등이 생길 일은 없습니다.‘내가 사과를 하니 네가 내 사과를 받아들여라’ 하는 요구 때문에 사과가 다시 싸움이 됩니다. 사과를 하는 것은 내 자유지만, 그 사과를 받아들이고 받아들이지 않고는 그 사람의 자유입니다.

예를 들어, 지나가는 사람의 뺨을 세 대 때린 다음에 그 사람이 화를 내니까 사과를 했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런데도 그 사람이 화를 풀지 않는다고 해서 ‘내가 사과를 했는데도 네가 감히 그 사과를 안 받아들여?’ 이럴 수는 없잖아요. 좋아하는 것도 내 자유고, 사과하는 것도 내 자유예요. 그런 것처럼 내가 좋아하는 것을 받아들이고 받아들이지 않고는 상대의 자유이고, 마찬가지로 내 사과를 받아들이고 받아들이지 않고도 상대의 자유입니다.”

“대개 제가 잘못했다고 사과를 하기 보다는 너도 이 부분에서 잘못하고 나도 저 부분에서 잘못했으니까 이 정도에서 그만하자는 식으로 말하는 것 같습니다.”

“그건 사과가 아니라 휴전 제안이죠. (청중 웃음) 그리고 상대방은 휴전 제안을 받아들일 수도 있고, 아직 휴전할 때가 아니라고 판단해서 계속 이야기가 이어질 수도 있어요.”

“해가 거듭될수록 아내가 점점 더 잘 싸우게 되는 것 같습니다.” (청중 웃음)

“원래 나이들수록 여자가 이기고 남자가 지게 되어 있어요. 그런데도 자기가 젊을 때처럼 계속 이기려고 하면 이사갈 때 안 알려주고 가는 수도 있기 때문에 앞으로 조심해야 해요.” (청중 웃음)

“계속 고민이 되는 부분은 제 잘못이 70% 정도 되는 것 같고 상대방의 잘못도 30% 정도는 있는 것 같이 느껴질 때, 제가 70% 정도의 사과만 하면 되는지 아니면 100% 사과를 다 해야 하는지 입니다. 그리고 그럴 때 나머지 30%는 모른 척을 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모욕적인 말에 민감하게 반응을 하는 것 같은데 특히 저한테 이상한 사람이라고 하거나 보통 사람과 생각하는 것이 전혀 다르다며 인격적으로 공격한다는 느낌이 들 때 반응을 크게 보이는 것 같습니다.”

“전혀 다르다고 하는 것이 왜 인격적 공격인가요?”

“당신은 남들과 다르기 때문에 친구도 없을 것이고, 다른 사람들도 당신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는 식으로 말을 합니다. 그리고 아내 스스로는 다수 중 한 사람이지만 저는 소수인 사람이라는 식으로 주장을 해요.”

“다수 중 한 사람이 되는 것이 좋은 건가요?”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질문자가 그런 말에 민감하게 반응을 한다는 것은 질문자도 다수가 되는 것이 좋다는 선입견이 있기 때문이에요. 그런 선입견이 없다면 아내가 그런 말을 할 때 ‘그래, 당신은 다수 해. 나는 내 식도 괜찮다고 생각해’ 라고 말하고 끝내면 되죠.” (청중 웃음)

“저도 시간이 늦어지면 ‘왜 이런 설명을 구구절절이 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피곤하니까 끝내자고 하는데…”

“일부러 ‘끝내자’라고 말하라는 뜻이 아니라 아내가 ‘나는 다수고, 당신은 소수야’ 라고 주장하면 ‘그래 당신은 다수 해. 나는 그냥 소수할게’ 라고 답을 하면 대화가 저절로 마무리 된다는 뜻이에요. 그런데 ‘왜 당신만 다수야, 나도 다수야’라고 주장을 맞받아치려니까 대화가 길어지죠.”

“제가 속이 좁아서 그게 잘 안 되는데…” (청중 웃음)

“스님의 말은 질문자가 속이 좁다는 뜻이 아니에요. 그리고 또 이건 속이 넓고 좁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질문자가 그런 반응을 보인다는 것은 질문자의 무의식 속에 ‘다수가 좋다’라는 선입견이 있다는 거예요. 그런 선입견이 없으면 아내가 그런 말을 해도 아무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다수가 꼭 좋은 것인가?’ 하고 되물어보는 거예요.”

“아내가 하는 말을 들어보면 자기는 다수이기 때문에 자기의 말이 옳고, 저처럼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기 때문에 제 말은 틀렸다고 주장을 합니다.”

“계속 그렇게 주장할 때는 경상도 말로 ‘그래 니 똥 굵다’ 하면 돼요. (청중 웃음) 상대방이 계속 굵다고 주장을 하니까 그 주장을 알겠다는 뜻으로 말하고 넘어가면 돼죠.”

“저도 말다툼이 생기고 나면 사과할 부분은 사과하고, 일일이 따지고 싶진 않아요.”

“따지고 싶지 않으면 그냥 상대의 주장을 받아들이고 넘어가면 된다는 거예요. 상대방이 계속 자기가 옳다는 주장을 하면 ‘그래, 당신 말이 맞어’하고 받아들이면 돼요. 그럴 때는 그 주장이 객관적으로 옳다는 뜻이 아니라 ‘당신 입장에서는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어, 당신 마음을 알겠어’라는 뜻이에요. 상대방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다는 것을 이해하고 넘어가는 거예요. 질문자는 불교의 가르침을 많이 접해보셨나요?”

“아니요, 잘 모르는 편입니다.”

“그러면 스님이 이 컵, 물병, 뚜껑을 가지고 비유를 들어볼게요. 우리가 대개 ‘컵이 크다’ 혹은 ‘컵이 작다’ 라고 할 때, 우리는 크고 작은 것이 컵의 객관적인 상태를 표현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잘못 인식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컵이 작다고 할 때는 컵을 물병과 비교했을 때 작다고 인식되는 것이고, 이 컵이 크다고 할 때는 컵을 뚜껑과 비교했을 때 크다고 인식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컵이 크다 혹은 컵이 작다고 하는 것은 자체의 성질이 크거나 작다는 존재의 문제인가요, 아니면 우리가 크게 혹은 작게 인식하는 인식의 문제인가요?”

“인식의 문제요.”

“네. 크다, 작다는 것은 우리가 존재를 인식하는 상황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지 존재 자체가 크거나 작은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크지도 않고 작지도 않고, 새 것도 아니고 헌 것도 아니고, 옳은 것도 아니고 그른 것도 아닙니다. 그 모든 것이 우리의 인식에서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이에요. 그것이 크다고 인식되는 상황에서는 크다고 하고, 작다고 인식되는 상황에서는 작다고 하고, 새 것으로 인식되는 상황에서는 새 것이라고 하고, 헌 것으로 인식되는 상황에서는 헌 것이라고 하는 거예요. 마찬가지로 옳은 것으로 인식되는 상황에서는 옳은 것이 되고, 그른 것으로 인식되는 상황에서는 그른 것이 됩니다. 이렇게 일체(一切)는 인식의 문제이지 존재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옛말로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고 합니다.

여기 앉아 있는 학생을 가리키며 ‘저 학생이 착한 학생인가요, 나쁜 학생인가요?’라고 물으면 저 학생은 착한 학생도 아니고, 나쁜 학생도 아닙니다. ‘저 학생은 공부를 잘하나요, 못하나요?’라고 물어도 저 학생은 공부를 잘하는 것도 아니고 못하는 것도 아닙니다. 저 학생은 다만 저 학생일 뿐이에요.

그런데 주어진 시공간에서 비교를 통해 인식이 될 때는 저 학생도 다른 친구와 비교해서 때로는 착하다고 인식될 때도 있고 나쁘다고 인식될 때도 있고 때로는 공부를 잘한다고 인식될 때도 있고 못한다고 인식될 때도 있고 때로는 키가 크다고 인식될 때도 있고 작다고 인식될 때도 있는 겁니다.

그런데 지금 질문자는 옳고 그른 것이 있다는 전제를 하고 상황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즉, 옳고 그른 것이 있다는 전제 하에 ‘어떤 때는 아내가 옳고, 어떤 때는 내가 옳고, 어떤 때는 아내가 30% 옳고 내가 70% 옳고, 어떤 때는 아내가 70% 옳고 내가 30% 옳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거예요. 그런데 옳고 그른 것이 있다는 그 전제 자체가 잘못된 것입니다. 그러니 ‘아내가 옳다’는 것도 잘못된 생각이고, ‘내가 옳다’는 것도 잘못된 생각이에요. 존재의 측면에서는 옳고 그름이 없습니다.

이렇듯 존재의 측면에서는 옳고 그름이 없다면,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은 단지 두 사람의 생각이 다르다는 것만 말할 수 있습니다. 즉, 객관적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은 두 사람의 생각이 다르다는 것 뿐이지, 누가 옳고 누가 그른지는 객관적인 것이 아니에요. 나의 주관적인 측면에서는 내가 옳고 상대방이 그르겠죠. 마찬가지로 상대방의 주관에서는 상대방이 옳고 내가 그른 것이 됩니다.

객관적으로는 두 사람의 생각이 다를 뿐이고, 주관적으로 내 입장에서는 내가 옳고 상대방 입장에서는 상대방이 옳은 것입니다. 그러니 내가 옳다고 생각이 되더라도 본래 옳고 그른 것은 없고, 또 옳고 그름이 없다고 하더라도 주어진 조건에서는 내 생각에는 내가 옳고 상대방 생각에는 상대방이 옳은 거예요.

그러니 상대방이 옳다는 주장을 할 때 ‘그래, 네가 옳아’라는 표현을 쓴다면 그것은 객관적으로 상대방의 말이 옳다는 뜻이 아니라 ‘네 입장에서는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구나’하고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한다는 뜻입니다. 즉, 서로의 생각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입장이 다르다고 다툴 필요가 없어요. ‘당신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당신의 관점은 그렇구나’하고 볼 뿐입니다.

‘내가 옳다’, ‘아내가 옳다’, ‘내가 30% 옳고 아내가 70% 옳다’는 등의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주관을 객관화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그러니 ‘내가 70% 잘못했고 당신이 30% 잘못했으니, 내가 70% 사과하면 당신도 30% 사과해’ 하는 것도 근본적으로 잘못된 입장입니다. 아내가 어떤 이야기를 해도 ‘응, 당신 입장은 그렇다는 거죠?’ 하면 되는 문제예요.

살다보면 둘이 의견을 조율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조율하는 방법도 여러가지예요. 부부가 살다보면 방의 온도를 두고도 서로 다른 선호도를 보일 때가 있어요. 한 쪽은 추워하는데 다른 쪽은 더워하는 경우가 있잖아요. 그럴 때도 내가 옳고 네가 그르거나, 네가 옳고 내가 그른 것이 아니라 서로의 체질이 다를 뿐입니다.

우리의 체질을 보면 몸에 열이 많은 사람도 있고, 추위를 많이 느끼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당사자 입장에서는 본인이 덥게 느끼니까 다른 사람도 더운 줄 알거나, 본인이 추위를 느끼니까 다른 사람도 추운 줄 알기가 쉬워요. 그러다보면 ‘별로 춥지도 않은데 왜 춥다고 그래?’라고 하거나 ‘왜 별로 덥지도 않은데 자꾸 덥다고 그래?’라고 하기가 쉽습니다.

그런데 이건 마치 한 사람은 컵을 물병과 비교해서 작다고 하고 다른 한 사람은 컵을 뚜껑과 비교해서 크다고 하면서, ‘너는 왜 컵이 크다고 하냐?’ ‘너는 왜 컵이 작다고 하냐?’하며 싸우는 것과 같아요. 이럴 때는 ‘아, 상대방은 크다고 인식하는구나’ 혹은 ‘아, 상대방은 작다고 인식하는구나’하고 이해하고 넘어가면 됩니다. 마찬가지로 ‘아, 아내 입장에서는 춥구나’ 혹은 ‘남편은 지금 더워하는구나’하고 이해하고 넘어가면 돼요.

이렇게 이해가 되어도 실제 상황에서는 방 온도를 결정해야하는 문제가 남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도 여러 가지가 있어요. 그 중 첫 번째는 상대방에게 맞추는 방법이에요. 아내가 춥다고 하면 아내에게 온도를 맞추고 남편은 옷을 조금 가볍게 입으면 돼요. 아내가 덥다고 하면 아내에게 온도를 맞추고 남편은 옷을 조금 두껍게 입으면 됩니다. 이렇게 상대방에게 맞추는 것이 수행이에요. 그런데 알고 보면 상대방에게 맞추는 것이 가장 쉽습니다. 왜냐하면 이 경우에는 나만 맞춰주면 되니까, 내가 결정만 하면 문제가 다 해결됩니다.

그런데 ‘왜 나만 맞추어야 하나?’하는 생각이 들고 상대방에게 맞추는 방법이 어렵다면 둘 사이에 중간점을 찾아서 타협을 하는 거예요. 그런데 이 중간점 찾기가 때론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각자 자기에게 조금 더 맞추고 싶어하기 때문이에요. 내 입장에서는 중간이라고 느껴도 상대방 입장에서는 70% 내 쪽으로 기울어졌다고 느끼기도 하고, 상대방 입장에서는 중간이라고 느끼지만 내 입장에서는 70% 상대방 쪽으로 기울어졌다고 느낄 소지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걸 잘 감안해서 둘 사이에 타협점을 찾을 수 있습니다.

타협점을 못 찾으면 같이 지낼 수 없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타협점을 찾지 못해도 여전히 같이 지낼 수 있어요. 그건 방을 따로 사용하는 거예요. 서로 볼 일이 있을 때만 같은 공간에서 지내고, 더운 사람은 에어콘을 켜놓은 방에서 지내고 추운 사람은 온도를 조금 더 높여서 지내면 돼요.

이렇듯 두 사람 간의 차이를 극복하는 방법에는 상대방에게 맞추는 방법, 둘 사이에 타협점을 찾는 방법, 서로 다른 공간을 사용하는 방법 등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그러니 그 중 하나를 선택하면 돼요.”

“네, 깨닫는 바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내에게 맞추는 것이 가장 쉬운 방법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모두 웃음)

“아내에게 꼭 맞추어야 된다는 이야기는 아니에요, 상대방에게 맞추는 방법은 내가 맞추겠다는 결정만 하면 되고 상대방의 동의를 구하지 않아도 되니까 가장 쉽다는 거예요. 그리고 그 방법이 가장 쉬우니까 저도 그 방법을 선택하는 거예요.

예를 들어, 질문자의 사회적 조건이 아주 좋은 경우에는 질문자 방식대로 밀어붙여도 괜찮을 수도 있어요. 비록 상대방이 이 문제에 대해서는 기분 나빠도 다른 조건을 보고 타협을 할 수도 있습니다. 사실 이런 경우가 많기 때문에 젊을 때는 남자가 유리하고, 또 자기식대로 밀어붙이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나이가 들고 사회적 조건이 더이상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하면 여자의 힘이 더 세져요. 그래서 젊을 때 목에 힘을 많이 준 남자들은 정년퇴직하고 나면 이사갈 때 조심해야 하는 거예요. (청중 웃음)

조건이 우위에 있다고 너무 자기식대로 밀어붙이면 그만큼의 과보가 따른다는 말입니다. 예를 들어, 미국의 관점에서 미국이 자기 힘만 믿고 너무 강하게 밀어붙이면 전세계가 굴복하는데도 가끔 북한처럼 굴복하지 않는 나라가 생기는 거예요. 북한이 큰 나라는 아니어도 고분고분하지 않으니 미국의 입장에서는 골치가 아파지기 시작합니다. 북한정부와 타협하려니 대국의 자존심이 서지 않고, 그렇다고 때리려니 부작용이 너무 큰 거예요. 그러다보니 요즘 다시 전전긍긍하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약하다고 너무 몰아붙이면 안 됩니다. 옛말에도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라는 말이 있잖아요? 약자라고 무시하면 생각지 못한 과보가 따른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니 유리할 때 아량을 베푸는 것이 필요합니다. 유리할 때 상대방을 배려하는 것을 아량이라고 해요. 그런데 불리할 때 양보를 하면 비굴하다고 합니다. 유리할 때 양보하고 아량을 베풀면 공덕이 생깁니다. 반면 유리하다고 독식하려고 하면 나중에 과보가 따릅니다.

질문자가 현명하다면 아내와의 관계를 착하고 나쁘고의 관점으로 보지 말고 조금 더 지혜롭게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이기고 지는 문제로 보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는 것이 나중에 나에게 좋을까?’하고 대처하는 거예요. 그러다보면 때로는 상대방에게 맞추는 방법이 좋을 때도 있고, 타협하거나 조정하는 방법이 좋을 때도 있어요. 기분이 나빠서 어떻게 하는 게 아니라 서로의 취향과 특성이 다르니까, 예를 들어 비용이 조금 더 들더라도 각자의 공간을 더 가져본다든지 여러가지 방법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7명과 대화를 하고 보니 어느덧 저녁 9시 20분이 되었습니다.

스님은 ‘진리는 재미도 있고 유익합니다. 지금도 좋고 나중에도 좋아야 합니다. 그리고 나도 좋고 너도 좋아야 관계가 지속 가능해집니다. 미래사회는 창의력의 시대입이니다. 창의력은 집중이 중요합니다. 집중이 되려면 재미가 있어야 하고 좋아하는 일을 하면 됩니다. 그러니 가볍게 행복하게 사시길 바랍니다’ 라고 세부강연을 마쳤습니다.

이어 무대 위에서 책사인회가 있었습니다. 학생들이 영어책을 가지고 와 사인을 받아가기도 하였습니다.

책사인회가 끝난 후 스님은 강연을 총괄한 김니은님께 사인한 책을 선물로 주고 함께 기념촬영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3년 전에 이어 올해도 운전봉사를 하신 김영탁님 부부와도 함께 기념촬영을 하였습니다.

위에 소개된 내용을 질문한 분에게 오늘 스님 답변을 직접 들으니 어땠는지 소감을 들어보았습니다. 그 동안 유튜브 즉문즉설을 다 들었는데도 풀리지 않았던 의문이 한 방에 해결되어 너무 시원하다고 하였습니다. 정말 질문을 잘 한 것 같다고 하면서 앞으로 아내와 편안하게 잘 살 수 있을 것 같다고 하였습니다. 스님의 법문은 시공간을 초월하여 대중들에게 행복과 자유를 느낄 수 있도록 해줍니다. 고단한 여정같아 보이지만 이것이 스님이 길 위에서 부단히 다니시면서 대중들과 만나는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일정이 끝난 후 스님은 호텔로 돌아와 공항으로 떠나기 전까지 휴식을 취하셨고 묘덕법사님과 정은지 지구장은 자원봉사자들과 소감나누기를 한 후 호텔로 돌아왔습니다.

짐을 꾸려 밤 11시 30분 세부공항으로 출발하기 위해 로비로 내려오니 총무님과 봉사자들이 내일 아침 마닐라 공항에서 드시라고 도시락을 준비해왔습니다. 따뜻한 배려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 곳에서 봉사자들과 아쉬운 인사를 하고 서둘러 공항으로 출발하였습니다.

세부에서 방콕까지 직항이 없어 세부에서 밤에 출발하는 마닐라행 비행기를타고 마닐라에 도착해서 짐을 찾은 후 다시 방콕행 비행기로 갈아타야 합니다. 그래서 마닐라 공항에서 다시 수속을 한 후 오전 6시 비행기로 방콕으로 출발할 예정입니다.

세부공항에 도착해서 보니 곳곳에 한국인들이 보이고, 어린 학생들이 연수를 왔는지 인솔자와 함께 김밥으로 식사를 하는 모습도 보이고, 스님께 다가와 인사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한국으로 다니는 직항노선이 있어 안내방송도 한국어로 계속 나오고 있으니 이곳이 한국에 있는 공항 같은 느낌도 들었습니다. 이렇게 세부일정을 마치고 오전 1시 50분 비행기로 마닐라로 출발합니다. 내일은 방콕에서 인사드리겠습니다.

함께 만든 사람들
김순영 이준길 손명희 정란희 조태준

전체댓글 11

0/200

조정

고맙습니다.덕분입니다_()()()_

2017-09-07 13:27:40

큰바다

있는 그대로 보고 서로를 인정하면서 함께 할 가장 좋은 방법을 찾아가는 방법...
스님, 감사합니다.

2017-09-05 07:3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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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시는 발걸음이 많이 아쉬우셨겠어요 ㅠ108염주 색깔도이쁘고 정성이 참 예쁩니다^^부부분들께서 운전봉사도 해주시고..음식도 챙겨주신 한금화님과 이원주님이 부부이시군요^^언젠가 읽었었는데 정토회 외곽에 있다보니 잊어버렸네요 ㅎ필리핀에서 봉사하시는분들과함께,힘도들고 험한 필리핀 봉사활동의 중심에 계신 두분이,스님껜 오른팔처럼 참 든든하실 거라 믿습니다^^

2017-09-05 02:4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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