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17.9.7 해외 즉문즉설 강연(11) 호주 퍼스(Perth)
출장이 많아서 집에 있는 아내와 딸이 힘들어해요..

새벽 3시 30분 모두들 소리없이 깨어 각자 자리에서 새벽예불과 기도를 하는 모습이 아름답게 보입니다. 108배 절을 하고 있는데 코란 읽는 소리인지 어제 오후와 저녁에 들렸던 은은한 소리가 잠이 든 도시를 조용히 깨우는 것 같습니다. 오전6시 숙소에서 제공하는 서양식으로 아침식사를 하고 모든 짐을 정리하여 1층으로 내려오니 김지영님부부, 이인옥님, 박정현님이 스님을 배웅하기 위하여 미리 와 있었습니다. 김제동님과 함께 출발 전에 기념사진촬영을 하며 스님은 이번에 자카르타 열린법회 회원들이 정말 수고 많았다고 감사인사를 했습니다.

오늘은 인도양을 건너 오세아니아주 호주 퍼스로 갑니다. 오전 10시 25분 비행기를 타야 하므로 7시에 공항으로 출발했습니다. 공항으로 가는 길에 베트남과 같이 아침에 출근하는 오토바이 행렬을 이 곳 자카르타에서도 볼 수 있었습니다. 베트남과 마찬가지로 자카르타 대기오염 원인의 첫번째가 아무래도 오토바이 매연인 것 같았습니다.

공항으로 가는 길에 보이는 허름한 집들을 보니 빈부격차가 느껴졌습니다.

자카르타 국제공항 제3터미널에 도착하니 어제 도착했던 제2터미널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지난 7월에 개관하였다고 하는데 서울 인천공항처럼 완전히 현대적인 공항이며 크기도 아주 컸습니다.

들어가자 마자 한국빵집인 뚜레쥬르가 눈에 확 들어왔고 LG와 삼성 로고가 크게 주목을 끌고 있었습니다. 스마트폰은 삼성, 가전제품은 LG가 선점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공항에서 히잡과 부르카를 온 몸에 두른 이슬람 여성분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어제 묵은 숙소에서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여행온 일가족 여성분들을 만났는데, 아무래도 같은 이슬람 국가이지만 중동 국가보다 비교적 자유로운 인도네시아의 자카르타로 여행, 관광, 쇼핑을 많이 오는 것 같았습니다.

공항에서 입국수속을 마치고, 배웅 나온 김지영님부부, 이인옥님께 작별인사를 했습니다. 게이트 앞에 도착하자마자 연착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원래 10시 25분 출발하여 4시 도착예정이었으나 11시 10분에 출발한다고 합니다. 스님은 공항에서 급한 원고교정을 하고 휴식하기로 하였습니다. 수행팀도 각자 업무를 하고 신공항을 이리저리 구경해보기도 하였습니다. 게이트에서 거의 3시간을 보낸 후에야 비행기를 탈 수 있었습니다. 4시간 45분의 비행후에 드디어 호주 퍼스에 도착하였습니다. +1시간의 시차로 인하여 현지시간은 거의 오후 5시가 되었습니다.

입국수속을 하는데 짐검사가 까다롭습니다. 목탁, 생강 절편, 바나나칩 등이 걸렸는데 모두 사전신고를 해야 하는 품목이라고 합니다. 미국보다 더 까다로운 곳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호주가 훨씬 더 까다로웠습니다. 다행히 시드니처럼 대도시가 아니라 공항이 비교적 한산하여 입국수속을 비교적 빨리 마칠 수 있었습니다.

입국수속을 마치고 나오니 퍼스 강연 총괄을 맡고 있는 허청님과 자원봉사자들이 퍼스를 처음 찾은 스님과 일행을 반갑게 맞이해주었습니다.

연착까지 한 덕분에 바로 강연장으로 출발해도 시간이 빠듯할 것 같았습니다. 강연장으로 가는길에 만난 저녁노을이 아주 멋집니다. 퍼스의 자연경관은 아주 뛰어날 것 같습니다.

퍼스(Perth)는 웨스턴 오스트레일리아주의 주도로 호주에서 다섯 번째로 큰 도시입니다. 인구는 대략 170만명정도이며, 퍼스시는 백만명가량 되는 것 같습니다. 퍼스에 한인은 대략 7,000-8,000명 정도 거주하고 있다고 합니다. 퍼스는 도시 창설 당시부터 유럽인들의 오세아니아 대륙 탐험의 중요 기착지였고,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의 서부 끝자락에 위치한 지리적 이점을 활용하여, 현재 아프리카 남부와 동남아시아를 잇는 국제 항만 및 항공 교통의 요충지이자 무역의 전진 기지입니다. 현재 브리즈번과 함께 떠오르는 경제적 요충지로서, 오스트레일리아의 국가 발전을 이끌고 있다고 합니다.

퍼스는 지상에서 가장 외딴 메트로폴리탄 지역으로 인구 100만이 넘는 도시 중 퍼스와 가장 가까운 도시는 2,104km 떨어진 남부 오스트레일리아의 애들레이드라고 합니다. 퍼스는 지리적으로 시드니와 멜버른, 브리즈번 보다는 동티모르의 딜리, 싱가폴, 인도네시아의 자카르타가 더 가깝습니다. 한국을 방문할 때도 시드니로 경유해서 가는 것이 아니라 싱가폴 혹은 자카르타를 경유하며 대략 13시간정도 걸린다고 합니다.

퍼스에는 검은 백조가 산다는 스완 강이 있고, 서쪽으로는 인도양에 접한 아름다운 모래사장이 있는 해변이 유명합니다. 기후는 지중해성 기후로서 여름은 대체로 덥고, 건조하고, 2월이 가장 더운 달입니다. 미국의 캘리포니아주와 비슷한 날씨로서 1시간 거리로 나가면 사막을 만날 수 있다고 합니다.

오늘 강연은 퍼스 바로 북쪽에 위치한 Morley의 천주교 성당인 Infant Jesus Parish Morley에서 열렸습니다. 스님이 6시 20분에 강연장에 도착하니 강연장 곳곳에서 자원봉사자들이 즐겁고 기쁜 표정으로 참가자들을 반갑게 안내하고 있었습니다.

강연장소를 구하지 못해 노심초사하고 있을 때 호주교구에 소속된 드미트리 신부님께서 호주성당을 강연장소로 빌릴 수 있도록 전폭적인 지원을 해주었다고 합니다. 스님은 드미트리 신부님과 강연 전에 잠깐 만나 지원해주심에 대해 감사인사를 하고 사인한 책을 선물로 드렸습니다. 퍼스 한인회장님께도 강연지원에 감사인사를 하고 사인한 책을 선물로 드렸습니다.

7시가 되어 스님이 연단에 서자 청중들이 퍼스를 처음 찾은 스님을 큰 박수와 환호로 환영해주었습니다. 스님은 먼저 예수님께 참배를 한 후 다음과 같이 서두를 열었습니다.

“이번 해외순회강연은 아시아, 호주, 유럽, 캐나다, 미국의 41개도시에서 45회 강연을 합니다. 이번 45회 강연중에서 유일하게 처음 와 보는 곳은 여기 퍼스입니다. 인문지리를 공부할 때 퍼스는 인도양에 면한 왼쪽 끝부분에 위치한 지중해성 기후를 가진 곳이라 배웠습니다. 늘 특이하게만 느껴졌고, 얼마 전에 시드니에 왔을 때도 시드니 강연에 오신 분이 퍼스에 오라고 해도 엄두를 못내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젊은 분들이 먼저 모임을 가지면서 이 곳에 왔으면 좋겠다고 해서 이렇게 인연이 되어 왔습니다. 장소를 못구해서 어려움이 있었는데 좋은 장소에서 강연을 할 수 있도록 해 주신 드미트리 신부님께 감사박수를 보냅니다.

지금 부터 200여년 전 우리나라에 천주교가 처음 들어와 조정에서 핍박했을 때 깊은 산속 절에 숨어 공부했습니다. 그래서 천주교 첫 전래지가 천진암입니다. 나중에 발각되어 천주교를 공부한 사람들도 처벌되었지만, 스님들도 장소제공자로 처벌받았습니다. 그러니 제가 성당을 이용할 권리가 좀 있지 않을까 합니다. (청중웃음)

인생을 살 때도 도와준 사람은 기억을 생생하게 하는데, 도움받은 사람은 대부분 잊어버립니다. 대부분 상처를 준 경우, 준 사람은 잊어버리고 받은 사람은 오래도록 기억을 합니다. 그래서 우리들 인간관계도 이런 불균형 때문에 도와주면 도와주었다는 생각을 오래 가지게 되고, 도움 받은 사람은 잊어버리기 때문에 상대방을 나쁘다고 생각합니다.‘네가 나한테 어떻게 이럴 수 있나?’고 생각하는데 그 사람만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의 정신작용 자체가 그러합니다. 부모는 아이들이 다투면 때로는 언니니까 참으라고 하고 때로는 동생이 언니한테 대든다고 야단하지만, 언니는 언니대로 동생은 동생대로 자기만 야단맞았다고 상처를 가지고 있습니다.

상처를 입은 사람들은 상처를 오래도록 기억합니다. 그러나 상처를 준 사람은 기억을 잘 못합니다. 그 사람이 나빠서 기억을 못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의식구조가 그렇습니다. 상처를 준 사람은 상대가 상처를 받았다고 하면 내가 언제 그랬나! 이렇게 하지 말고 상대가 나 떄문에 상처를 받았겠구나하고 진솔하게 사과하면 좋습니다. 그래야 우리 인간관계가 편안해집니다.

여러분이 살면서 세상이 내 뜻대로 안될 때 괴로움이 생기지만 내 뜻대로 된다고 그것이 반드시 좋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또 우리가 사는 세상이 우리가 원하는 대로 다 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괴로움이 생겼을 때 솔직하게 내놓고 대화하면 그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가 있는데 그런 대화를 즉문즉설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서두를 열면서 질문자와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오늘 강연에서는 총 6명이 질문하였습니다.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데 인터넷에 올라오는 카페 리뷰글중 나쁜글을 보고 어떻게 마음을 편하게 먹을 수 있는지 묻는 분, 스님의 영향으로 108배를 시작했는데 무릎이 안좋아 절을 계속해야 할지 고민이라는 분, 싫어도 좋은 척하는 것이 중용이라 생각하고 마음에 없는 말을 하고 있는데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고민이라는 분, 하우스메이트였던 친구의 사체를 발견하고 나서 어떻게 하면 이 충격에서 벗어날 수 있을 지 고민이라는 분등이었습니다. 한 질문자는 본인의 고민이 스님의 강연을 듣는 동안 90% 이상 해결이 되어 자기보다 현재 더 힘들어 하는 친구에게 양보해 스님과 참가자들에게 큰 박수를 받기도 했습니다.

그 중에서 다음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저는 퍼스(Perth)에서 광산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는데, 비행기 타고 출근합니다. 저에게는 17개월 된 딸이 있습니다. 지난주 월요일에는 6시간 반 동안 비행기를 타고 사이더스로 출근해서 일주일 일한 후 오늘 돌아왔습니다. 일주일 동안 제가 퍼스에 없었고, 와이프 혼자 아이를 돌보고 있었는데요. 저는 또 다음주 목요일에 일하러 갔다가 다다음 주 목요일에야 아기와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장거리 출퇴근을 하니까 제가 집에 없을 때가 많아 아내가 많이 힘들 것 같아요. 아내가 말을 안 하는 편인데, 제가 일주일 만에 돌아오면 많은 얘기를 하거든요. 아침부터 저녁까지 모든 걸 같이 해요. 우리가 퍼스에서 안 가본 데가 없을 정도예요. 딸아이도 저랑 함께 하는 일주일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기분이 아주 좋습니다. 반면 제가 없는 일주일은 딸이 징징대고 울고 그럽니다. 와이프도 가끔 ‘내가 애보는 사람인 것 같다’는 얘기를 하더라고요.”

“엄마가 애보는 사람이지, 그럼 뭐하는 사람이에요?” (모두 박장대소)

“제가 없는 때 애가 엄마한테 징징대고 그러는데, 제가 있으면 애가 막 웃고 그러니까요.”

“부인은 직장에 나가요?”

“아니요, 가정주부입니다.”

“남편은 출근하고, 가정주부가 집에서 애기랑 있으면 애기를 돌보는 게 가장 큰 일과 아니겠어요?”

“네, 맞습니다...”

“그런데 부인은 그게 힘들다는 거예요?”

“예. 와이프가 힘드니까 저도 힘듭니다. 와이프가 저한테 불만을 얘기한 적이 많거든요.”

“왜 그런 부인을 만났어요?” (모두 웃음)

“몰랐죠. (모두 웃음) 제가 한국에 가서 와이프를 만나서 여기를 왔는데, 와이프가 처음 여기에 왔을 때는 저더러 ‘당신은 훌륭한 직업인이다. 일주일 동안 집에 안 오고 그러면 참 좋겠다’ 라고 했거든요. 그런데 막상 아이가 생기니까 약간 달라진 것 같습니다.”

“출장을 가지 않아도 되는 직업으로 바꾸어야 되느냐, 아니면 현재의 직업을 유지하되 아이가 엄마한테 징징대는 걸 기꺼이 감수해야 되느냐? 지금 어느 걸 할까 망설이는 거예요?”

“예, 그렇습니다.”

“그런 정도는 아이에게 크게 나쁜 영향을 미치는 건 아니에요.”

“알았습니다.” (모두 웃음)

“아이가 뭘 해 달라고 할 때 마땅히 해 줘야 될 걸 안 해 주면 아이는 마음에 상처를 입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뭘 해 달라고 해도 그게 삶에 꼭 필요하지 않은 것이라면 안 해 줘도 됩니다. 아이도 그런 일을 겪어야 자제력이 길러집니다. 아이가 해 달라는 걸 안 해 줘서 상처가 되는 경우도 있지만, 또 해 달라는 걸 다 해 주는 바람에 아이가 자제력이 없는 사람으로 자라서 나중에 문제가 되는 경우도 있어요.

그래서 아이를 키울 때는 엄마가 해 줄 건 해 주고, 안 해 줄 건 안 해 줘서 아이가 상처도 안 입고, 자제력도 기를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할머니가 아이를 키우면 안 해 줘야 될 것까지 해 주기 때문에 아이가 버릇없는 아이로 자라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이가 해 달라는 대로 다 해 주는 게 반드시 좋은 건 아니에요. 어떤 걸 해 주고, 어떤 걸 안 해 줘야 되느냐, 이게 굉장히 중요합니다.

만약 애기 엄마가 아이가 원하는 기본적인 것도 안 해 주면서 짜증내고 성질내면 아이의 성질이 나빠질 수도 있는 거예요. 예를 들어, 애기 엄마가 기본적인 돌봄을 팽개치고 직장에 나간다는 이유로 애기를 남한테 맡겨버린다면 아이에게 상처가 됩니다. 직장에 나가면 한 달에 5,000불을 벌 수 있고, 아이를 낮에 파출부한테 맡기면 2,000불이 든다면, 3,000불이 남으니까 아이를 파출부한테 맡기고 직장을 다니면 된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그건 돈만 계산하는 거예요.

이 세상에 태어난 아이는 그 어떤 아이도 제 엄마로부터 사랑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그건 할머니나 파출부가 대신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우리 입장에서는 ‘할머니가 하면 되지 왜 안 된다는 거냐?’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아이 입장에서는 할머니보다는 엄마의 보살핌을 받는 게 더 좋다는 거예요. 엄마가 없으면 다른 누구보다도 할머니가 낫겠지요. 할머니도 없으면 이웃집 아줌마라도 돌봐야겠죠. 그러나 제 엄마로부터 보살핌을 받고자 하는 게 모든 아이의 기본적인 심리입니다. 그건 동물도 마찬가지예요.

엄마에게 아이가 최우선적 가치일 때, 즉 자기 목숨보다도 아이가 더 우선적 가치라는 마음이 있을 때 아이는 심리적 안정을 갖게 됩니다. 엄마에게는 돈이나 사회적 출세가 우선이고, 자기는 그 다음이라는 걸 아이가 알게 되면 아이는 사람에 대한 신뢰에 금이 가게 되고, 심리적으로도 불안정하게 됩니다. 엄마도 여성으로서 자유롭게 직업 활동을 하고 싶은 건 이해가 돼요. 그러나 아이 엄마로서 그렇게 하는 건 아이에게 그런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3살 때까지는 가능하면 엄마가 키워야 하고, 엄마가 키울 형편이 도저히 안 되어서 남한테 맡기게 되면 나중에 그것이 가져올 아이의 심리적 불안정에 대한 대가를 치를 각오를 미리 하라는 거예요. 아이를 남한테 맡기는 것은 나쁘다는 뜻이 아니에요. 우리가 돈을 빌리면 나중에 이자 쳐서 갚아야 될 것을 염두에 두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겁니다.

질문자가 딸아이와 함께 있을 때 아빠 역할을 잘 해 주는 건 아이 엄마한테도 좋고 아이한테도 좋습니다. 그것이 좋다는 건 말할 필요도 없어요. 그러나 아빠가 그런 역할을 하는 게 아이가 자라는데 조금 좋다는 것뿐이지, 아빠가 장기 출장을 다닌다고 해서 아이에게 나쁜 영향을 미친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질문자가 집에 있음으로써 아이를 과잉보호할 위험이 있고, 아이가 엄마에 대해 약간 저항감을 가질 위험도 있습니다. 아이는 엄마를 제일 좋아하고, 두 번째가 아빠라야 되는데, 아빠가 너무 좋으면 엄마에 대해서는 별로 일 수 있다는 거예요. 그러면 나중에 엄마와 관계가 안 좋아질 수도 있기 때문에 질문자가 아이를 좋아하는 건 이해가 되지만, 아이에게 무조건 잘해주는 것이 아이의 미래를 위해서 반드시 좋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아이를 위해서는 질문자가 적절하게 출장을 다니는 게 전혀 문제될 게 없습니다.

그런데 아내가 직장에 나가고 질문자가 집에서 아이를 돌보는 식으로 입장이 바뀐다면 얘기는 완전히 달라집니다. 그렇게 되면 질문자가 엄마 역할을 제대로 해야 됩니다. ‘엄마’는 ‘기른 자’를 뜻하지 ‘낳았다’, ‘여자다’ 라는 의미가 아니예요.

그러나 현재 아이한테는 엄마가 있기 때문에 질문자는 일단 기본적인 외호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아이가 세 살이 넘으면 교육적인 관점에서 아빠의 역할이 매우 중요해지지만, 지금 아이는 한 살 반밖에 안됐다고 하니까 지금 질문자가 할 일은 아이 엄마를 잘 위로하는 일입니다. 아이와 같이 놀아주는 것보다는 오히려 남편 없이 일주일을 외롭게 산 아내를 위로해주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특히 아내가 한국에서 왔다면 약간 외로울 거고, 직장도 없다면 심리적으로도 불안정할 소지가 있으니까 그런 아내를 잘 위로해 주고 격려해 주세요.

아빠가 아이와 더 가까이 지내는 것보다 아이 엄마의 심리를 안정시켜주는 게 아빠가 아이를 위해서 해야 할 일입니다.”

“감사합니다.” (모두 박수)

그리고 이분은 통일이 된다면 북한 광산개발에 기여를 하고 싶다고 스님께 통일이 언제 가능할지? 본인이 기여할 방법이 있을지 등에 대해 질문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한편 친구의 죽음으로 인해 힘들어 하던 마지막 질문자와 스님은 자상하게 대화를 이어갔습니다. 그러나 짧은 시간 내에 완전히 이치를 깨쳐 이 문제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아시기에 9월에 시드니에서 열리는 깨달음의 장에 참가하여 이 문제를 깊이 탐구하도록 안내하였습니다. ‘깨달음의 장을 통해 괴로움의 본질을 완전히 깨닫게 되면 사물을 보는 관점의 변화가 생겨 새로운 인식의 세계가 열린다’고 하며 자세히 안내하는 스님을 보면서 대중을 향한 스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오늘 강연에는 약 270여명이 참가하였고, 봉사자는 27명이었습니다. 강연을 마치고 스님은 책사인회를 가졌습니다. 준비한 모든 책이 완전히 판매되었고 사인을 받기 위해 줄이 길게 늘어섰습니다.

퍼스를 처음 찾은 스님과의 강연이 어땠는지 물어보니 모두들 즐겁고 유익하고 좋은 시간이 되었다고 합니다. 특히 퍼스에서 이렇게 한꺼번에 한국 사람을 많이 본 적은 처음이었다고 합니다. 약 8,000여명이 큰 도시에 넓게 퍼져 살고 있어 100명만 와도 많이 참석하는 거라 생각했는데 예상보다 훨씬 많은 분들이 왔다고 자원봉사자들도 신이 났습니다. 강연참석자들이 거의 대부분 30대 젊은 층이 많은 것 같았습니다. 아무래도 IT 산업 등 한국에서 일자리를 찾아 이곳으로 젊은이들이 많이 이주한 것 같습니다. 이 먼 곳까지 삶을 개척하러 온 젊은이들이 참 대견스럽게 느껴지기도 하였습니다.

사인회를 마치고 스님은 드미트리신부님,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기념사진촬영을 하였습니다.

스님은 이번 강연을 총괄한 허청님과 열린법회 담당자인 조미정님께 사인한 책을 선물로 주고 함께 기념사진을 촬영하였습니다.

이어 스님이 퍼스를 처음 찾았기 때문에 정은지 지구장이 특별히 준비한 단주를 봉사자들에게 일일이 끼워주기도 하였습니다.

이를 지켜보고 있던 드미트리신부님도 하나 끼워달라고 하여 스님도 신부님도 유쾌하게 웃으면서 단주를 끼워드렸습니다. 이렇게 종교 간에 마음을 열고 신부님과 스님이 함께 하니 ‘소통은 상대가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는 것’이라는 스님 말씀이 더 생각납니다.

드리트리 신부님과 강연참석자들께 먼저 떠난다고 얘기하고 스님은 오늘 숙소인 허청님 댁으로 와 국수로 늦은 저녁식사를 하였습니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하늘에 보름달이 휘영청 밝게 떠 있었습니다. 9월 5일이 백중 보름이었기 때문에 9월 7일인 오늘도 달은 보름달 처럼 거의 둥근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공기가 깨끗해서 그런지 달이 훨씬 크게 보이고 가까이 느껴집니다. 저녁식사를 하고나니 어느덧 11시 30분이 되었습니다. 자원봉사자들과 나누기를 하고 귀가한 묘덕법사님과 정은지 지구장도 같이 국수로 늦은 식사를 한 뒤 내일 일정을 공유하고 호주에서의 첫 날을 마무리했습니다. 내일은 오전 8시 15분 비행기로 멜번으로 이동합니다. 멜번에서 뵙겠습니다.

함께 만든 사람들
김순영 이준길 손명희 정란희 조태준

전체댓글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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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신부님과 스님의 만남이 아릅답습니다. 퍼스에서도 강연회가 열려 기쁘고 감사했습니다. 좋은 시간이었고 감동이 있어 오래 기억될 것입니다

2017-10-11 08:58:18

..

스님 말씀의 의도는 알겠으나.. 젊은 세대들이 보기에는 공감하기 어려운 말씀도 있네요. 무조건적인 엄마의 아이에 대한 헌신과 희생이 아주 당연한거고.. 가정을 위해 경제활동을 하는것을 .돌봄을 내팽개친다. 라 격하게 표현하신건 어떤 사람들에게는 마음의 상처를 줄수있다란것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가끔 스님 말씀 표현이 너무 직설적이어서 그게 꼭 필요한가란 반감이 좀 들어서요

2017-09-14 14:00:00

월광장

멀리 퍼스까지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스님과 여러 보살님들을 가까이 뵙게 되어 더 감사합니다.

2017-09-12 18: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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