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17.9.14 해외 즉문즉설 강연(18) 독일 뒤셀도르프
피임을 안 했더니 뜻하지 않게 임신을 했어요. 박사과정은 어떡하나 걱정이예요

새벽 4시, 스님은 기상하여 하루를 시작합니다. 어젯밤 수행팀과 불교대학졸업식/수계식 준비팀은 새벽2시가 넘어서야 취침하였습니다. 새벽 6시 새벽예불과 천일결사기도로 하루를 열었습니다. 기도 후 근처 빵집에서 사온 빵과 어제 미리 준비해 둔 과일과 갓내린 커피로 간단히 아침식사를 하였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조금 있으니 불교대학 졸업식과 수계식에 참석하기 위해 유럽 전역에서 오신 분들이 뒤셀도르프 법당으로 속속 도착했습니다.

독일의 뮌헨 2명, 뒤셀도르프 9명, 스위스 취리히법회10명, 영국 런던법회 5명, 프랑스파리 법회 3명이 수계식에 참가하였습니다. 특별히 뒤셀도르프 법회 소속 중에는 저 멀리 아일랜드의 더블린에서 허윤진님이 졸업식과 수계식에 비행기를 타고 왔고, 남편이 축하겸 함께 왔습니다. 허윤진님은 더블린에서 비행기를 타고 아헨 불대특별반을 오가며 불교대학을 마쳤다고 합니다. 취리히에서는 모두 비행기를 타고 왔고 런던의 경우 일부는 비행기로 일부는 버스와 기차로 왔다고 합니다. 총 4개국에서 29명이 참가하니 명실상부한 유럽지구 불교대학 수계식과 졸업식이 되었습니다.

10시부터 리허설이 시작되고 법당이 분주하게 돌아갑니다. 다들 오래만에 만나서 그런지 웃음꽃이 피었습니다. 바쁘지만 얼굴에 가득 미소를 띠고 있습니다.

드디어 수계식이 시작되어 스님이 수계법사로 법상에 오르시어 삼귀의와 오계를 수지하여 드디어 불자가 되는 수계자들에게 스님은 1년동안 공부하여 졸업하고 수계를 받게 된 것에 대해 축하하며 수계자는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하는지 말씀해주셨습니다.

“수행에서 열반을 얻기 힘든 이유가 즐거움을 절대로 버리려고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시는 괴로움이 없는 세계로 가기 위해서는 즐거움과 괴로움이 되풀이 되는 윤회의 세계에서 즐거움도 같이 없애야 합니다. 그러나 즐거움을 없애기 힘들기 때문에 괴로움도 없어지지 않아 열반에 들어가기 힘듭니다.

삼보에 귀의하고 오계를 수지하여 수계자가 될려면 최소한 다음의 다섯 가지 계율은 지켜야 합니다. ‘살아있는 생명은 함부로 죽이지 말라, 주지않는 남의 물건을 함부로 갖지 말라, 삿된 음행을 하지 말라, 거짓말하지 말라, 삿된소견을 갖지 말라.’ 이 다섯 가지 지침을 받아 몸과 마음을 바쳐 목숨을 마칠 때까지 이 가르침을 지키겠다고 다짐하면 됩니다.

최초로 재가수행자가 된 분은 야사비구의 부모님입니다. 불교가 종교화되면서 불교신자라는 말이 나왔지, 불교에서는 원래 신자(믿는 자)라는 말은 없습니다. 여러분은 이제 신자라 아니라 수행자가 된 것입니다. 수행자에는 세상의 것은 다 버리고 출가하는 출가수행자가 있고 집에 있으면서 수행자가 되는 재가수행자가 있습니다. 출가수행자는 비구,비구니, 재가수행자는 우바새, 우바이라고 합니다. 아들인 야사는 출가 수행자가 되었고, 부모님은 재가 수행자가 되었습니다. 이미 부처님 당시에 재가수행자의 길이 열려 있었습니다.

재가수행자라면 다섯 가지 계율을 지켜야 수행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의 법문을 듣고 최초의 우바새, 우바이가 된 야사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마음이 열렸습니다. ‘위대하셔라 세존이시여, 위대하셔라 세존이시여. 마치 넘어진 자를 일으켜 세워주심과 같고, 덮인 것을 벗겨 보여주심과 같고, 길을 잃고 헤매는 자에게 길을 가르쳐주심과 같고, 어두운 밤에 등불을 비춰주심과 같이 여러 가지 방법으로 저를 깨우쳐 주셨습니다. 저는 오늘부터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에 귀의합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승가에 귀의합니다.’ 라고 깨달음의 고백을 합니다. 몸과 목숨이 다할 때 까지 다섯 가지 계율을 잘 지키겠다고 다짐합니다. 그래서 최초로 재가수행자가 출현했습니다. 사실 여성출가수행자는 이로부터 한 20년뒤에 출현했습니다. 그만큼 여성이 출가수행자가 되는 것이 당시에는 상당히 어려운 환경이었습니다.

삼보에 귀의한 불자는 최소한 다음의 다섯 가지 계율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 ‘첫째 최소한 어떤 이유로라도 사람을 때리거나 죽여서는 안된다.’ 그래서 불자는 어떠한 경우에도 전쟁과 사형을 찬성할 수가 없습니다. ‘둘째 주지 않는 남의 물건을 뺏지 말라.’ 최소한 몰래 훔치거나 강제로 빼앗으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손해끼치지 말라’를 최고로 넓게 해석한다면 최소한 도둑과 강도는 안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셋째 삿된 음행을 하지 말라’는 남을 괴롭히지 말라는 것이 핵심입니다. 때리고 훔치는 것을 제외하고 행동으로 괴롭히는 것이 성추행과 성폭행입니다. ‘네번 째는 거짓말을 하지말고 진실된 말을 하라는 것입니다.’남을 속이고 남을 욕하거나 아첨하지 말며 진실되게 말하고 정직하게 행동하며 약속을 지키라는것입니다. 다섯 번째가 ‘술을 먹고 취하지 말라’입니다. 음식수준을 넘어서서 마시거나 혼자서 괴로워하면서 마시면 계율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술을 먹고 괴로운 것을 잊어버릴려고 하는 것은 삿된 소견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술을 먹지 않으면 좋지만 술을 먹더라도 최소한 취하지는 않아야 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들이 위의 다섯 가지 계율만 지키면 살인, 폭행, 절도, 강도, 성추행 사범, 사기꾼은 말할 것도 없고, 술 먹고 행패부리는 주폭도 없어지게 될 것입니다. 위의 다섯 가지 계율을 지키면 학교폭력이 일어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아주 기본적인 것을 지키지 않고 있습니다. 이 다섯 가지는 수계를 받으면 꼭 지켜야 합니다. 자기도 모르게 어기면 참회하고 다시는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면 됩니다. ‘그럴 수도 있지’ 하고 합리화하면 수행자가 아닙니다. ‘내가 잘못했구나’ 하고 ‘다시는 안그래야지’ 해야 합니다. 이 다섯 가지만 분명히 지키면 배우자를 선택할 때 이 남자가 불자면 가정폭력은 없고, 성추행 당할 염려도 없습니다. 속을 일도 없고, 술먹고 행패 피울 일도 없습니다. 가게에 갔는데 주인이 불자라 하면 믿고 살 수 있게 됩니다. 오늘날 불자가 이 정도의 사회적 신뢰를 줄 수 있을까요? 오늘 수계의 핵심은 이 다섯 가지를 지키겠다고 다짐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다섯 가지 계율 이외에 법사수계를 받으면 지켜야 할 것이 세 가지가 더 있습니다.

‘첫째, 머리에 꽃장식을 하지 말라’입니다. 이것은 사치하지 말라는 것을 나타내는 것으로 화장하지 않고, 파마 등 머리손질을 하지 않으며, 고급 옷이나 고급 가방등을 사지 말라는 것입니다. 집이 큰 것은 괜찮으나 집도 사치스럽게 꾸미면 안됩니다. 아무리 재산이 많아도 소박하게 사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수행자 그룹에 들어갑니다.

두 번째는 유흥을 즐기면 안됩니다. ‘술을 마시고 노래하고 춤추고 하여 심리적으로 기분 좋은 것을 즐기면 안된다,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게 하는 것이 수행의 목표이므로 마음을 들뜨게 하는 것은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어떤 음악도 듣지 말라는 것은 아닙니다.

세 번째는 ‘높은 평상에 앉지 말라’ 입니다. 이것의 의미는 교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수행자가 교만하면 안됩니다. 내가 아무리 지위가 높다 하더라도 대중 속에서 소박하게 앉을 수 있어야 합니다.

다섯 가지는 남을 해치는 것을 금하는 것이고, 나머지 세 가지는 나의 기본 삶의 자세를 얘기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수행자가 지켜야 할 계율에 대해서 상세히 설명해주었습니다.

엄숙한 가운데 연비의식이 거행되고, 수계자들은 자신과 인연을 맺은 부처님의 이름으로 불명을 받아 새롭게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수계식 후 30분 점심시간을 가지고 바로 불교대학 졸업식을 거행하였습니다. 불대 졸업식과 수계식이 있는 날은 무척이나 바쁜 날입니다. 또한 저녁시간에 있을 강연 준비도 함께 해야합니다. 준비하는 쪽도 진행하는 쪽도 여법하게 진행하려고 노력을 많이 하였습니다.

졸업식에는 총 26명이 참석하였습니다. 스님은 다음과 같이 불교대학 졸업생들을 축하해주었습니다.

“지난 1년 동안 불교대학 다닌다고 수고 많이 했습니다. 무사히 과정을 마치고 졸업하게 된 것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불교대학 교과과정을 살펴보면 크게 4과목입니다. 불교의 첫걸음, 부처님의 일생, 근본가르침, 불교의 역사로 편성되어 있습니다. 첫 번째 과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불교란 무엇인가?’ 입니다. ‘다른 종교, 다른 철학과 어떤 차이가 있는가? 왜 내가 불교를 선택하는가?’ 하는 가장 근원적인 물음에 대해 공부합니다. 세상에는 크게 나누어 종교와 철학이 있습니다. 종교는 믿음, 철학은 이치를 중심으로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종교는 감성적이고, 철학은 이성적이다 말할 수 있습니다. 불교는 종교형식을 가지고 있으나 철학적 관점을 더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기독교에서는 불교를 종교라기보다는 철학처럼 보는 것 같습니다. 원래 불교는 종교나 철학과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불교는 종교와 철학과는 다른 제 3의 길, 수행이라는 것을 자기의 정체성으로 삼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불교의 본래 가르침이 무엇인가?’ 라는 정체성을 확보하는 것입니다. 불교는 깨달음의 가르침이고, 무지를 깨우쳐 고뇌로부터 벗어나는 가르침입니다.

불대입학하기 전보다는 괴로움이 조금 더 줄어들었나요? (예) 그러면 졸업자격이 있습니다. 1년 다녀봐야 별 차이가 없다 하면 졸업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행복과 자유로움이 늘고 괴로움이 줄어드는 수행자가 되었다는 것에 의미가 있습니다. 괴로움이 더 늘었다면, 다니면 다닐수록 더 의지하게 된다면 거꾸로 가는 것입니다. 자기의 결정권을 자기가 가진 주인된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이 권리를 부처님께도 법륜스님한테도 맡겨서는 안됩니다. 지팡이에 의지해서 점점 치유하지만 지팡이는 결국 버려야할 대상입니다. 의지심이 적어져야 해요. 이렇게 졸업하는 것을 축하하고 관점을 딱 잡아가지고 공부를 해나가시길 바랍니다.”

같이 수계식을 하고 졸업식을 했다는 것은 이제 첫걸음을 내디딘 취리히에도 수행공동체가 생겼다는 것입니다. 이제 수행을 함께 하는 도반이 생겼다는 의미가 됩니다. 어디에 있든 어디에 가든 함께 수행하는 도반이 있음이 든든합니다. 이렇게 작지만 의미있는 발자국들이 세계 곳곳에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법당별로 단체사진을 찍으며 졸업식을 기념하였습니다.


<스위스취리히 정토법회 불교대학 졸업생>


<영국런던 정토법회 불교대학 졸업생>


<프랑스파리 정토법회 불교대학 졸업생>


<독일뮌헨 정토법회 불교대학 졸업생>


<독일뒤셀도르프 정토법회 불교대학 졸업생>

이어 스님은 수계자 한 사람 한 사람과 기념사진 촬영을 했습니다. 먼 곳에서 와서 스님과 함께 수계식을 하는 기쁨을 누려보았습니다.

졸업식과 수계식을 마치고 지역으로 돌아가는 팀, 뒤셀도르프 강연장으로 가는 팀으로 나뉘었습니다. 스님은 졸업식 후 뒤셀도르프법당에서 원고도 보고, 업무도 보셨습니다.

비가 내리는 가운데 스님은 강연시간이 임박해 강연장에 도착하였기 때문에 저녁공양도 거르고 바로 강연을 시작하였습니다

“비가 와서 오기 힘들었지요? 저도 강연장 근처에 거의 다 와서 네비게이터가 빙빙 돌아다녀서 늦게 도착했습니다. 입구에 봉사자들에게 인사도 못하고 들어왔네요. 즉문즉설이란 내가 살아가면서 겪는 구체적인 현실의 문제를 드러내놓고 대화를 해나가는 방식입니다. 여러분들이 문제를 제기하면 그것을 가지고 대화를 하는것입니다. 한편으로는 어렵다고 할 수 있고 한편으로는 강의를 준비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쉽기도 합니다. 무엇이든 궁금하거나 고뇌에 찬 문제가 있으면 대화를 하면서 이 의문을 풀고 고뇌가 해결될 것입니다. 그러니 누구든지 대화에 참여해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서 바로 질문을 받았습니다.

  1. 남편과의 관계가 힘들었는데 수행을 하고 나서 남편과의 관계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가 아주 좋아졌지만 아직도 언니와의 관계가 풀리지 않아 어떻게 하면 좋을지 문의하는 분, 2) 불교도 믿음을 얘기하는데 불자로서 무엇을 믿어야 하는지, 장애아이들을 교육할 때 가져야 할 자세와 관점, 민달팽이가 깻잎을 먹는 것을 보고 민달팽이를 쓰레기통에 버렸는데 이런 이기적이고 욕심스런 마음에 대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는 분, 3) 중국인 남편과 독일에서 아이를 키울 때 아이의 정체성 교육에 대해 걱정하는 분, 4) 박사과정 중에 아이가 생겼는데 미래를 생각했을 때 어떻게 하면 좋을지 묻는분, 5) 카톨릭 요양원에서 일하고 있는데 수녀님과 신부님들께 실망하여 힘이 드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지 묻는 분 등 총 5명이 질문하였다.

그 중에서 다음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결혼한 지는 3년 됐고 박사 과정은 2년 됐는데, 원래는 박사과정을 끝내고 아이를 가질 계획이었으나 지금 임신 6개월입니다. 공부라는 게 제 뜻대로 되는 건 아니더라고요. 그렇다고 피임을 딱히 하지는 않았어요. 주변에서 ‘언제 아이를 가질 거냐?’, ‘언제 공부를 마칠 거냐?’ 묻는 게 굉장히 스트레스가 됐는지 따로 피임을 하지 않아도 저절로 피임이 되었어요. 그러다가 올해 4월에 명상수련에 신랑과 참가했다가 스트레스가 정말 하나도 없어지는 경험을 하면서 아이를 갖게 돼버렸어요. (모두 웃음)

지금은 입덧도 하게 되면서 공부를 살짝 놓은 상태입니다. 다들 축하해주고 있고, ‘아기 언제 낳냐?’, ‘공부는 언제 끝나냐?’ 이런 질문도 더 이상 안 하고, 저 스스로도 그런 질문을 안 하게 되니까 우선은 굉장히 편해요. 그런데 미래를 생각할 때면 화장실에서 뒤를 안 닦고 나온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저도 법륜 스님 법문 듣고 배운 게 있으니까 아이가 태어나면 아이한테 최대한 신경을 많이 써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러면 공부는 어떡하나 싶습니다. 제가 어떤 마음을 갖고 기도해야 할까요?”

“아이가 생길 때 ‘아, 이 사람은 박사 할 사람이니까 안 생겨야 한다’, ‘이 사람은 석사할 사람이니까 안 생겨야 한다’ 이렇게 해서 생기거나 안 생기는 것도 아니고, ‘결혼을 했기 때문에 생겨야 한다’, ‘아직 둘이 정식 결혼을 안 했기 때문에 안 생겨야 한다’ 이런 것도 아니잖아요. 정자와 난자가 수정을 하면 아이가 생기는 것이고, 수정이 안 되면 안 생기는 것이지, 그게 ‘결혼을 했냐, 안 했냐’, ‘좋아서 만났느냐, 강제로 만났느냐’ 그런 것과는 아무 관계가 없어요.

우리는 보통 결혼 안 하고 아이를 낳으면 사생아라고 생각해서 잘못된 아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이런 생각 자체는 윤리나 도덕 같은 사회 관습을 갖고 얘기하는 겁니다. 생물학적으로 보면 나이 많은 사람과 젊은 사람이 만나서 낳았든, 좋아하고 사랑해서 낳았든, 강제로 관계를 맺어서 낳았든, 태어난 생명과는 아무 관계가 없어요. 이 세상의 모든 아이는 다 아빠가 있는 것이지 아빠 없는 아이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생물학적으로 일단 아이를 가졌다면 질문자는 더 이상 한 여성이 아니라 아이의 엄마예요. 한 여성이 엄마가 되는 것은 존재 자체가 바뀌는 거예요. 여성은 어쩌면 보호받아야 할 존재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엄마라는 존재는 아이를 보호해야 하는 존재예요. 미혼 시절에 ‘엄마가 되면 어떻게 해야지’ 이런 얘기를 만 번 해 봐야 아무 도움도 안 돼요. 생물학적으로 진화해오는 과정에서 아이를 갖게 되면 저절로 아이를 보호하고자 하는 모성애가 발동하게 됩니다.

현대 교육을 너무 많이 받으면 일종의 정신질환이 발생해서 모성애가 마비되는 경향이 있긴 하지만, 생물학적으로는 아이를 갖게 되면 누구나 모성애 본능이 나타나게 되어 있어요. 아이를 낳아서 어떻게 키우냐 고민하지만 그건 교육을 안 받아도 다 하게 되어 있어요. 다람쥐나 토끼가 교육을 받아서 새끼를 키우는 건 아니잖아요. 원시인들이 교육을 받아서 아이를 키운 것도 아니고요. 그건 생물학적으로 자연적으로 되도록 돼 있습니다. 오히려 현대인들이 교육을 너무 받아서 뇌에 이상이 생겨 모성애가 마비된 경우는 있을지 몰라도 그것은 교육과는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제가 권유하고 싶은 것은 아기가 생겼으면 아기를 낳아야 하고, 아기를 낳았으면 아기를 제대로 키워야 한다는 거예요. 그런데 만약 아기를 키우면서 공부해야 할 때 엄마가 ‘아기 때문에 공부를 못 한다’ 이런 생각을 하면 아기는 건강하게 자랄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아기가 엄마의 인생을 망친 장애물이 되잖아요. 조그마한 아이가 벌써 엄마 인생을 망쳐놓는다면 나쁜 아이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그 아이는 장기적으로 긍정적인 사람이 될 수가 없는 거예요.

엄마가 아이 키우는 걸 힘들어하면 아이는 대부분 잘 못 됩니다. 여러분들이 힘들게 아이를 키우면 아이는 여러분들이 원하는 훌륭한 사람이 될 수가 없어요. 아이 키우는 게 쉬워야 하고, 아이 키우는 게 재미있어야 해요. 아기를 낳고 조금 쉬었다가 아기를 업고 공부를 하면 돼요. 아기를 업고 박사 과정을 하면 됩니다. 어차피 박사 과정 하면서도 밥 먹어야 하고 화장실도 가야 하잖아요. 밥 안 먹고 화장실 안 가면서 박사 과정을 할 수는 없잖아요. 그런 것처럼 아기 업고 젖 먹여가면서 공부를 하면 되는 거예요. 직장이 있다면 그렇게 직장에 다니면 됩니다.

그런데 아기를 떼놔야만 이 직장에 다닐 수 있다면 이 직장을 포기해야 해요. 직장이 아기보다 우선이 되면 아기는 엄마로부터 사랑을 잃게 됩니다. ‘엄마의 인생에서 첫 번째가 직장이고 두 번째가 나다’, ‘첫 번째가 돈이고 두 번째가 나다’, ‘첫 번째가 박사고 두 번째가 나다’ 이러면 이 아이는 엄마에 대한 신뢰를 못 갖는 사람으로 자라기 쉬워요. 그래서 항상 아기가 1번이어야 해요. 내가 아기를 키울 수 있는 조건 하에서, 할 수 있으면 박사도 하고, 할 수 있으면 직장도 다니면 되는 거예요. 그렇게 업고 다니면 됩니다.

그래서 저는 사회적으로 이런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아이가 3살 때까지는 아기 엄마들이 유급휴직을 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해요. 그래야 미래의 우리 아이들을 건강하게 키울 수 있습니다. 재정이 없어서 유급휴직을 못 주면 무급휴직이라도 줘야 해요. 무급휴직을 준다는 건 직장을 보장해줘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지금 한국은 아기를 유아원에 맡기면 정부가 보조를 해주고, 엄마가 키우면 아무 지원도 없어요. 그래서 다들 유아원에 갖다 맡기는 거예요. 그래야 지원을 받으니까요. 이건 잘못된 정책이에요. 이건 여성을 위한 정책은 될지 몰라도 아기를 위한 정책은 아닙니다.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아기는 자기를 정성스럽게 돌봐줄 엄마가 필요하지, 엄마가 수상인지 박사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엄마가 수상이든 박사든 그게 아기에게 무슨 도움이 돼요?

이런 관점에서 생각해야 합니다. 질문자가 박사 과정을 하든, 직장에 다니든 그것과 아기 키우는 것을 따로 생각하면 안 돼요. ‘아기를 낳았으면 엄마로서 아기는 무조건 키우는 것이고, 아기를 키우면서 박사도 할 수 있으면 하고, 직장을 다닐 수 있으면 다닌다.’ 관점을 이렇게 잡으면 아기에게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아기 업고 공부하는 게 공부에 장애될 일이 뭐가 있어요? 정말 공부하고 싶다면 아기 업고 공부하면 돼요. 공부하다가 피곤하면 나가서 산책도 잠깐 하고 와서 공부하다가 또 피곤하면 커피도 한 잔 마시면서 공부하듯이, 공부하다가 애가 울면 젖 먹여놓고 공부하고, 아기가 똥을 누면 기저귀 갈아주고 와서 공부하고, 아기가 옆에 있으면 손잡고 잠시 어르다가 장난감 줘놓고 공부하면 되죠. 진짜 공부가 필요하다면요. 공부가 얼마나 하기 싫으면 아기 핑계 대고 애 때문에 공부를 못한다고 해요? (청중 웃음)

그렇게 하기 싫은 공부는 안 하는 게 좋아요. 그런 공부는 해봐야 아무 도움이 안 돼요. 그런 걸 억지 공부라고 해요. 옛날에도 공부가 정말 필요해서 한 사람들은 미국에 가서 접시 닦는 것 같은 일을 하면서도 다 공부했잖아요. 여기에 와서 간호사 하면서도 새로 공부해서 의사 된 분들도 있고요. 공부만 하라고 도와주는 사람은 없어요. 정말로 질문자가 공부가 필요해서 그렇게라도 할 수 있으면 그 학문은 세상에 유용하지만, 아기 키운다고 해서 할 수 없는 박사라면 학위 따 봐야 아무 쓸모없는 박사예요.

그래서 제가 볼 때는 아무 문제가 없어요. 아기는 생겼으면 낳아서 키우되 키우면서 공부가 필요하면 공부를 하면 돼요. ‘남편이 돈 벌면 되지. 아기 키우고 있는데 박사 그거 해서 뭐하나?’ 그러면 그만둬버려도 돼요. 그런 공부는 해도 되고 말아도 되는 것이지만, 아기 키우는 건 해도 되고 말아도 되는 건 아니예요.

한 가지 이야기를 해볼게요. 오래 전에 어떤 사람에게서 상담이 들어왔어요. 비구니 스님인데 꼭 직접 만나서 얘기해야 한다는 거예요. 무슨 일인가 해서 만나 보니 외국 사람인 비구니 스님을 같이 데려왔어요. 얘기를 들어보니 자기가 아니라 자기 친구인 비구니 스님이 굉장한 어려움에 처했는데 스님하고 상담을 원해서 신청을 해준 거래요. 이 분은 원래 미국에서 학교 교사를 하다가 불교를 만나고 너무 좋아서 교사를 그만두고 한국까지 와서 출가 스님이 되었대요. 그래서 머리를 깎고 평생 수행자 될 마음으로 수행을 하고 있었는데 성폭행을 당했대요. 수행자니까 성폭행 당한 것 때문에 상대를 미워하는 수준은 이미 넘었지만, 문제는 그 딱 한 번 성폭행 당한 결과로 아기를 갖게 된 거예요.

그래서 고민에 빠진 거예요. 낙태를 하자니 불자로서 생명을 존중하라는 불교의 첫 번째 계율에 어긋나고, 그렇다고 아기를 낳아 키우려니 수행자의 길을 갈 수가 없잖아요. 학교 교사도 그만두고 수행자가 되기를 원해서 한국까지 온 사람인데요.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난 사고 때문에 자기의 인생 목표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인데, 그렇다고 낙태를 시키려니까 불교의 제1가치를 스스로 부정하면서 수행자가 된다는 게 무의미하잖아요. 이렇게 해결책이 안 나오니까 저한테 상담을 하게 된 거예요. 그래서 지금 질문자처럼 그 분이 저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는데, 대화를 나누다가 이래요.

‘스님, 알았습니다. 이제 제 갈 길을 찾았습니다.’
‘어떻게 하려고 합니까?’
‘바로 미국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아기를 낳아서 아기 없는 집에 선물로 입양시켜주고 저는 한국으로 돌아와서 다시 수행자의 길을 가겠습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는 이 일은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불행한 일 같지만 이 사람은 그 불행을 행운으로 바꾼 거예요. 아기가 생긴 것을 불행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아기 없는 집에 입양을 보내서 큰 복을 지은 거예요. 또 자기는 자기대로 수행자의 길을 갈 수 있었고요. 1~2년 정도 시간 차이는 나겠지만 그건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잖아요. 이렇게 자기가 갈 길을 분명히 하고도 일어난 일을 해결할 수가 있다는 말이에요.”

“예, 알겠습니다.”

“제가 볼 땐 아무 문제도 아니예요.”

“주변에 물어보니 ‘공부라는 게 육아랑 병행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너무너무 힘들다’ 그런 말씀도 많이 하시고, 선배들도 그렇게 하는 사람을 한 명도 못 봤다고 하시니까...”

“그런 수준의 사람들하고 질문자를 같이 비교하면 안 돼요.(질문자 웃음) ‘그래, 너희 수준에서는 그 두 가지를 동시에 못 하겠지. 그러나 나는 우리 아이 잘 키우면서도 공부가 필요하면 할 수 있다!’ 이래야죠. 공부는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거예요. 내가 꼭 하고 싶으면 아기 업고도 할 수 있어요.

얼마 전에 아프리카의 어떤 여성이 뉴스에 나왔어요. 마흔 살이 훌쩍 넘고 아이가 셋 있는 상황에서 어떤 계기로 공부를 할 수 있게 돼서 새로 대학을 다니고, 쉰 살에 박사 학위까지 받았다는 소식이었어요. 그런 사람도 있는데 거기 비하면 질문자는 아무것도 아니죠. 그 정도로 내가 추구하는 학문에 열의가 있으면 공부를 하세요.

그런 게 아니라 그저 ‘남들이 박사 하니까 나도 해야 하겠다’ 하는 정도라면 안 하는 게 좋아요. 미래에는 그런 박사가 필요 없거든요. 남의 논문 이것저것 짜깁기하고 주 달아서 논문 쓰고 스승한테 사인 받아서 얻는 박사 학위는 미래 사회에 효용가치가 별로 없어요. 미래 사회는 그런 학위가 중요한 게 아니라 문제를 구체적으로 해결할 능력, 창의력이 중요해요. 지난 100년은 이미 앞서간 것을 우리가 따라 배우기 하기 때문에 암기로 지식을 쌓는 게 중요했지만 앞으로 다가올 새로운 시대는 우리의 뇌 속이 아니라 기계 속에 지식을 저장해놨다가 얼마든지 꺼내 쓸 수 있는 시대가 되기 때문에 이런 공부는 별 쓸모가 없어요.

질문자가 정말로 연구하고 탐구하려는 마음이 있고 ‘아, 내가 꼭 해야 한다’ 이런 열의가 있으면 아기 업고 하면 돼요. 아기 업고 공부하면 공부가 더 잘 되죠. 아기 업고 공부하는데 딴 생각 할 겨를이 없잖아요. 아기 업고 영화관이라도 갈래요? (질문자 웃음) 혼자서 공부하면 영화도 봐야 하고 술도 한 잔 해야 하지만, 아기 업고 공부하는 사람은 술 먹을 일도 없고 아기 건강에 안 좋다고 하니까 커피도 가능하면 안 마셔야 해요. 그러니 아기하고 관계 맺는 시간을 우리가 말하는 ‘바람 쐬는 시간’으로 생각하면 돼요. 공부가 하기 싫다면 아기가 공부에 장애가 되겠지만, 공부를 하고 싶다면 아기는 공부에 아무 장애도 안 돼요.” (모두 웃음)

“감사합니다.” (청중 박수)

총 5명의 질문자와 대화를 하고 나자 시간은 2시간 10분을 훌쩍 넘겼습니다. 오늘 강연은 뒤셀도르프시내 북쪽 라팅엔(Ratingen)의 시티홀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약 85명이 참가하였고 자원봉사자는 25명이나 되었습니다. 예년에 비해 참석자가 적었는데, 강연장소를 구하기 힘들어 뒤셀도르프 시내에서 약간 외진 곳에 구하기도 했고 날도 궂어서 그랬나 봅니다. 그렇지만 강연 분위기는 어느 해보다 따뜻하고 집중되고 좋았습니다.

스님의 책사인회에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하여 같이 사진도 찍고 한바탕 즐거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오늘 강연참석자에게 소감이 어떤지 물어보니 인근 쾰른시에서 남자친구랑 왔는데 너무 좋았고 스님을 직접 만나서 행복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외국인 참가자도 한국어는 조금 알아듣지만 스님을 좋아해서 이렇게 만난 것이 너무 좋다고 했습니다.

책사인회를 마치고 스님은 자원봉사자들과 기념사진촬영을 하였습니다.

이어 오늘 강연을 총괄한 뒤셀도르프 부총무 최순진님과 자원봉사를 한 아드님이 스님과 함께 사진촬영을 하였습니다. 최순진님은 오늘 불교대학 졸업식과 수계식도 진행스탭으로 함께 하여 오늘 스탭 중 가장 바빴던 분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럼에도 미소를 잃지 않고 봉사자들을 챙겨가며 일하는 모습이 늘 감동적입니다.

봉사자들에게 스님은 오늘 수계식과 함께 하느라 바쁘게 보내서 먼저 가보겠다고 인사하고 오늘 숙소인 아헨의 유럽지구장 김선희 법우님 집으로 출발했습니다. 숙소에 오니 벌써 10시 50분이 되었습니다. 스님은 바쁜 원고교정업무와 업무를 보고 죽으로 늦은 저녁요기를 하였습니다. 11시 30분이 넘어 봉사자들과 나누기를 마친 묘덕법사님과 최순진님도 숙소로 합류하였습니다. 내일 일정을 공유하고 독일에서의 일정을 마무리했습니다.

독일에 도착한 이후로 거의 매일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독일은 겨울에 비가 많이 내리는데 가을인 9월에도 꼭 겨울처럼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법을 향한 스님의 여정은 쉼 없이 계속됩니다. 내일은 독일 일정을 마치고 기차를 타고 파리로 갑니다. 파리에서 소식 전하겠습니다.

함께 만든 사람들
김순영 이준길 손명희 정란희 조태준

전체댓글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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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움

김순영 이준길 손명희 정란희 조태준님 감사합니다.

2017-10-07 17:46:37

교육

\'현대 교육을 너무 많이 받으면 일종의 정신질환이 발생해서 모성애가 마비되는 경향이 있긴 하지만\' -> 부적절한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독신으로 살아가며 아이를 갖지 않는 독신 출가수행자에게 \'종교 교육을 너무 많이 받으면 일종의 정신질환이 발생해서 부성애/모성애가 마비되는 경향이 있긴 하지만\' 이라고 할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2017-09-27 12:07:00

조수진

스님.지혜로운 말씀 감사합니다.

2017-09-26 16: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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