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17.9.16 해외 즉문즉설 강연(20) 영국 런던
남편 얼굴만 봐도 짜증이 납니다.

오늘은 프랑스 파리북역에서 9시 13분행 유로스타 기차를 타고 영국런던까지 이동하는 날입니다. 오전 3시 30분 기상하여 각자 자리에서 아침예불과 천일결사기도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파리북역에서 런던행 기차를 타기 전 프랑스 출국 수속 및 영국 입국 수속을 모두 마쳐야 한다고 합니다. 캐나다에서 미국으로 입국할 때 역시 캐나다에서 비행기를 타기 전에 미국 입국 수속을 모두 마칩니다. 2012년 희망콘서트때 토론토를 방문했다가 이 사실을 알지 못한 채 공항에 늦게 도착해 뉴욕행 비행기를 놓친 적이 있습니다. 그 때 스님은 바로 다음 비행기로 출발해 겨우 시간에 맞춰 강연장에 도착할 수 있었지만 나머지 일행은 강연이 시작되고 나서야 도착했던 경험이 있던지라 넉넉하게 7시 20분에 숙소에서 출발하기로 하였습니다.

모든 짐을 정리해서 로비로 내려와 있으니 권정화, 권정현, 박지현님이 짐을 싣기 위해 왔습니다. 일단 짐을 실어놓고, 7시 숙소의 식당이 열리자마자 20분 동안 간단히 서양식으로 아침식사를 하고 파리북역으로 바로 출발하였습니다.

역에 도착하니 역시 파리역입니다. 어제처럼 사람이 많이 붐비고, 무장을 한 군인들이 역을 순찰하고 있었습니다. 어제 런던 전철역에서 폭발물이 터졌다고 하는 뉴스를 보았는데 더 긴장감이 서린 것 같았습니다. 배웅 나온 분들과 작별인사를 하고 수속대로 들어왔습니다.

카메라 삼각대 하나가 길이가 길다고 걸려 다시 화물로 보내는 수속절차를 밟다 보니 생각보다 시간이 더 걸렸습니다. 모든 수속을 마치고 기차를 타니 그제야 마음의 여유가 조금 생깁니다.

파리북역에서 런던 생판크라스역까지 실제로 걸리는 시간은 2시간 30분 정도이나 런던이 -1시간의 시차가 있으므로 도착이 10시 40분경이었습니다. 스님은 오늘도 기차 안에서 원고교정업무를 보았습니다.

드디어 런던 생판크라스역에 도착하였습니다. 파리역과 마찬가지로 사람이 아주 많고 여행객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파리북역처럼 복잡하다는 느낌은 덜하네요. 뮌헨중앙역과 파리북역의 중간쯤의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짐을 찾아 나오니 런던법회 부총무인 송민주님이 마중나와 있었습니다.

반갑게 인사하고 밖으로 나오니 권금영님, 그레이스김, 박성미님이 주차해놓고 대기해 있었습니다. 대도시는 어디를 가나 주차와의 전쟁입니다. 주차공간이 부족하다 보니 송민주님은 역으로 마중나와있고, 차를 가지고 나온 세 분은 역 바깥에 주차해놓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파리에서도 주차와의 전쟁처럼 보였는데 런던도 대도시라 마찬가지입니다. 어제까지 날씨가 좋았다고 하는데 하늘은 잔뜩 흐려 있고, 독일의 날씨처럼 약간 추웠습니다. 마중나온 분들과 함께 스님은 런던 생판크라스역을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하고 강연 전까지 휴식을 취할 전명진님댁으로 이동하였습니다.

전명진님은 시내에 살고 있어 역에서 집으로 가는 길에 웨스터민스터 (Westminster) 지역을 지나갈 수 있었습니다. 웨스터민스터는 템즈강의 북쪽 강둑을 끼고 있는데 영국의 정치, 역사, 문화를 모두 아우르는 중심지로 런던의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들이 이곳에 다 모여 있습니다. 웨스터민스터 대성당, 국립미술관, 버킹엄 왕궁, 빅벤 시계탑, 총리관저, 법원, 광장, 박물관, 국회의사당등 영국정치 중심지의 여러 건물들을 지나치면서 왔습니다.

거의 대부분이 하얀색 석조건물인 정부건물들은 웅장하고 장엄한 느낌입니다. 오래되었지만 건물자체만으로도 멋진 조각품같습니다.

런던 거리는 파리보다는 조금 더 깨끗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세계 어디를 가든 중국인들은 차이나타운을 형성하고 있는데 런던의 소호지역 바로 옆에도 차이나타운이 붙어있습니다. 중국인들이 거의 운영하고 있다는 소호거리는 웨스터민스터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듯 하여 조금은 부러운 마음도 들었습니다.

전명진님댁에 도착하니 따님과 함께 한식으로 식사준비를 해두었습니다. 스님은 정성껏 마련한 음식으로 점심식사를 한 뒤 업무도 보고 강연전까지 휴식하였습니다. 강연장으로 출발하기 전에 스님은 식사와 휴식할 장소를 제공한 전명진님께 사인한 책을 드리고 감사의 인사를 하였습니다.

강연은 오후 5시에 런던대학교 Birkbeck 에서 열렸습니다. 강연장이 대학이라 그런지 자유로운 느낌입니다. 학교입구에서부터 봉사자들이 안내하고 있습니다. 송민주님과 김지은님이 멀리서 뛰어오면서 반갑게 인사하였습니다. 강연장에 도착하니 열성적으로 안내하고 계신 봉사자들이 더 많이 보입니다. 스님은 반갑게 봉사자분들과 인사하였습니다.

오늘 런던에는 한인축제가 열리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준비하는 분들은 참가자가 적을까 노심초사합니다. 5시 10분, 스님소개 영상이 나오자 스님이 연단에 등장하였습니다. 참가자들이 큰 박수로 스님을 환영하였습니다.

“안녕하세요. 주말에 놀러 안가고 여기 왔네요. 뉴스에는 어제 여기 폭탄이 터져 사람들이 다쳤다고 하는데 놀라지 않았어요? (놀랐어요) 한국사람들이 놀라면 안되는데요. (웃음) 한국사람들은 그보다 더한 일도 매일 겪고 살고 있는데요. 인도와 파키스탄에 군사적 충돌이 일어나면 인도여행하는 모든 사람들이 다 귀국하는데 귀국 안하고 그대로 계속 여행하는 두 나라 젊은이들이 있대요. 누구일까요? 한국사람과 이스라엘 사람입니다. 한국사람과 이스라엘 사람은 늘 분쟁이 있는 곳에 살기 때문에 좋게 얘기하면 면역이 생겼고, 나쁘게 말하면 안전불감증에 걸려 잘 놀라지 않습니다. 외국에서는 지금 한국에서 전쟁이 일어날지 몰라 걱정인데, 한국사람은 라면 하나 사재는 사람이 없지요. 굉장한 민족입니다.

크게 보면 인류역사 속에서 지난 60-70년 동안처럼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시대는 매우 드문 시대입니다. 무슨 이유로 이렇게 평화로운 시대가 지속되느냐? 여러 얘기가 많은데 이것은 국제연합이라는 기구가 있어 그렇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 ‘인류의 재앙인 핵무기가 있어서 그렇다, 왜냐하면 전쟁이 나면 서로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보기 때문이다’ 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여기 있는 여러분들이나 저는 거의 전쟁의 피해를 경험하지 못한 세대에 들어갑니다. 물론 한국전쟁 이후 베트남전쟁, 중동전쟁등 국지전은 있었지만 세계적인 큰 전쟁은 없었다고 합니다. 한반도에 다시는 6.25와 같은 전쟁은 없어야 됩니다. 그 때도 약 3백만명이 희생되었습니다. 지금 전쟁이 일어난다면 그 보다 더 큰 희생이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남북간, 그리고 미국의 전력이 그 때와는 비교도 안될 만큼 많기 때문에 짧은 시간내에 많은 사람들이 희생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이유는 어떻든 전쟁은 안된다는 것이 확고해야 되지 않겠나 싶습니다. 다 같이 평화를 기원하면서 즉문즉설을 시작해볼까 합니다.”

그러면서 스님은 강연의 시작을 열었습니다.

오늘은 총 5명이 질문하였습니다.

술만 먹으면 집에 오지 않는 남편이 최근에는 생활비도 주지 않고 있고 술만 먹는줄 알았는데 코카인과 마리화나도 하고 있어 어떻게 하면 좋을지 묻는 분, 철없이 결혼을 했음에도 남편의 외조덕분에 박사과정 공부도 마쳤고 10년만에 애기도 생겨 행복한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최근 5년전부터 남편이 막말을 하고 경제활동을 하지 않고 있어 어떻게 하면 좋을지 묻는 분, 친구들에게 영향력을 끼치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마음을 바꿀 수 있는지 묻는 분, 외로움을 많이 타는데 외로움을 어떻게 극복하는지 묻는 분, 런던에 살면서 종교적인 이념 차이로 테러사건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것을 목격하는데 종교의 역할이 무엇인지 묻고 싶다는 분등 5명이 질문하였습니다.

그 중에서 다음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저의 고민은 술을 먹으면 집에 안 오려고 하는 남편, 그리고 그런 남편이 생활비도 주지 않는다는 겁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남편이 술을 먹으면 집에 안 오려고 하는 이유가 술 때문이라고 생각을 했어요. 나중에 알고 봤더니 정작 문제는 술이 아니라 마리화나랑 코카인이었더라고요. 코카인을 하다보니까 돈이 없었던 것이더라고요.

얼마 전까지는 제가 맞벌이를 해서 생활비를 벌었는데 한 달 반 전에 연년생으로 둘째 아이를 낳다보니까 저도 지금 일을 못하고 있어요. 그래서 남편한테 ‘이제까지 내가 번 돈은 저축을 하고 이제는 네가 생활비를 주면 좋겠다’ 라고 했어요. 그 전까지는 시댁에서 같이 살면서 맞벌이를 했고, 첫 아이는 시부모가 봐주셨는데, 이제는 둘째까지 낳으면서 제가 직장을 그만 두었거든요. 그래서 제가 전적으로 아이들을 보고 있고, 저녁도 준비해서 항상 남편을 기다리는데, 남편은 늦게 오는 날은 연락도 없고, 전화도 안 받고, 결국 오지도 않고, 생활비도 주지 않고 있어요. 이제는 남편 얼굴만 봐도 짜증이 나고, 이런 짜증이 아기들한테도 가는 것 같아서 아기들한테 미안해요.

심지어 어제도 남편이 집을 나가서 오늘 이 자리에 제가 못 올 뻔 했는데, 아침에 급히 올케한테 구원요청을 했더니 아기를 봐주겠다고 해서 거기다 맡기고 여기 온 거거든요. 남편이 바뀌기는 어렵다는 걸 저도 알고 있어요. 연애 기간까지 합해서 5년 동안 남편은 항상 문제를 일으키고 나면 ‘미안하다. 사랑한다’고 했지만 다시 3주에 한 번 꼴로 또 문제를 일으켰어요. 제가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어요. 문화 자체도 다르고, 저는 여기에 친구도 몇 명 없고, 친정도 한국이고... 너무 힘든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질문자는 ‘결혼을 하면 혼자 살 때보다 조금이라도 좋아지지 않겠느냐’ 이렇게 생각해서 결혼하셨지요?”

“그런 것도 있고요. 사실 아기가 생겨서 결혼하게 됐습니다.”

“그런데 결혼을 해서 막상 살아보니까 예기치 못한 일이 이렇게 발생을 했잖아요.”

“사실 남편이 마리화나를 하고 술을 마시는 건 알고 있었어요. 그런데 코카인을 하는 건 얼마 전에 알았고, 코카인 때문에 계좌에 돈이 없어서 생활비를 못 준다는 것도 알게 됐어요. 그래서 더 큰 충격을 받았죠. 결혼한 지 2년차인데, 모아둔 돈이 하나도 없고, 통장을 이제껏 한 번도 같이 오픈을 하지 않았는데 얼마 전에 보니까 마이너스더라고요. 사실 결혼 전에도 마이너스가 있었지만 그것을 다 제로로 만들어주고 결혼생활을 시작했는데, 속이 많이 상한 상태입니다.”

“결혼하기 전에는 결혼 후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고, 좋은 일만 기대하며 나쁜 일은 막연히 ‘안 일어나겠지’ 하고 결혼했는데, 막상 결혼해서 현실을 보면 기대와 많이 다르듯이, 또 앞으로 몇 년 후에 어떤 예기치 못한 다른 일이 발생하게 될지 모른다는 얘기예요. 그런데 남편에 대해서는 대충 어떤 일이 일어날 건지 방향이 잡히잖아요?

그런데 질문자가 계속 이런 식으로 힘들게 생활하게 되면 아이들이 엄마의 영향을 받고, 결국 10년, 20년 지났을 때 질문자가 아이들로 인해서 지금 남편으로 인해서 겪는 고통보다 더한 고통을 겪게 되는 거예요. 아이들은 마치 흰 종이와 같아서 빨간 물감에 집어넣으면 빨갛게 물들고, 파란 물감에 집어넣으면 파랗게 물들 듯이, 영국에서 키우면 영어할 줄 알고 한국에서 키우면 한국어할 줄 알고, 엄마 마음이 편안하면 아이 마음도 편해지고, 엄마 마음이 불안하면 아이 마음도 불안해지는, ‘그대로 물드는 존재’예요.

아이들은 그렇게 그대로 따라 배우는 존재인 거예요. 지금 질문자가 처한 상태가 아이들 심리의 근저가 된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질문자는 이런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만 흥분하거나 불안해 하지만, 아이는 흥분과 불안 그 자체가 심리의 근저가 되는 겁니다. 그러면 나중에 아이들은 질문자보다도 훨씬 더 감정증폭이 심하다든지 불안증이나 분열이 일어나게 되는 겁니다. 그러면 부모로서는 굉장히 힘들겠지요. 그래서 부처님 말씀에 ‘첫 번째 화살을 맞을지언정 두 번째 화살은 맞지 마라’는 것이 있습니다. 즉 ‘한 번의 실수는 할 수 있지만 똑같은 실수를 되풀이는 하지 마라’고 하신 거예요. ‘결혼은 내가 예상을 잘못해서 실수가 됐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자녀교육에 있어서는 실수를 하지 말아야지.’ 이런 인생에 대한 바른 관점이 필요합니다. 한 번의 실수를 통해서 경험을 쌓고 교훈을 얻게 되면, 그 실수는 인생에 오히려 복이 될 수도 있습니다.

지금 질문자는 ‘남편을 좀 어떻게 바꾸어서 가정을 바르게 만들겠다’는 생각에 매달려 있는데, 만약 그게 질문자의 뜻대로 안 된다면 그 과정에서 또 제3의 부작용, 즉 자녀교육의 문제가 발생하게 되니까, 앞에 것은 빨리 포기하고, 다음 대책을 세우는 게 현명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사실 제가 그동안 스트레스가 극에 달해서 남편하고 싸웠을 때 아기들한테 화를 내기도 했거든요. 그래서 스님의 말씀이 맞는 말씀인 건 알겠어요. 그런데 그렇게 하다 보면 제 삶이 없어진 것 같고, 지금 일도 안 하고 있으니까 제 자신이 너무 작아진 것 같고... 남편한테 생활비를 달라고 말하는 것도, 사실 남편 통장이 마이너스이기 때문에 저에게 줄 돈도 없을 거예요. 그런데 어쨌든 제가 달라고 말하는 것도 자존심 상하고. 어떤 때는 아기들 때문에 제 인생이 이렇게 됐다는 생각도 들고...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어요.

지금 생각으로는 둘째 아기가 젖이라도 떼면 일을 다시 시작하려고 하는데... 남편을 이해하려고 노력해 봐도, 남편이 ‘잘못 했어. 안 그러겠다’고 계속 약속은 하는데 약속을 안 지키니까요. 그래서 제가 ‘약속을 하지 마라. 그냥 늦으면 늦는다고 얘기를 하고 오질 말아라. 술 마시는 건 괜찮다. 그런데 약만 하지 마라’ 라고 얘기는 하지만 제가 그 사람을 바꾸기도 어렵고, 제가 바뀌기도 어렵다는 걸 압니다. 너무 속상해요.”

“기대를 갖고 있으니까 속상한 거예요. 제 얘기의 요점은 기대를 접으라는 거예요. 제1의 화살은 이미 맞았으니까 그건 포기하고, 제2의 화살을 맞지 않기 위해서 대비를 하는 게 중요하다는 거예요.”

“그러면 저는 아기만 보면서 살라는 건데, 그렇게 되면 결혼생활에 의미가 없지 않을까요? 사실은 헤어질 생각도 몇 번 하긴 했는데 실제 하지 못했던 건 아기들 때문이기도 하고, 또 저 자신도 아직 이혼을 용납할 수 없어서 그냥 남편을 바라보며 살고 있는데... 아기가 잘 크기만 바라면서 아기만 보고 산다면 결혼생활의 의미가 없어질 것 같아요.”

“그런 미련을 갖게 되면 고민이 끝이 없는 거지요. 가게를 운영하다가 경기가 좋지 않아서 적자가 나게 되면 빨리 처분을 해야 되거든요. 오래 끌면 있는 재산마저 까먹게 되니까요. 노름판에 간 사람이 가져간 돈만 탁 털고 일어나면 되는데, 본전 생각을 하다가 결국은 온 재산을 다 날리게 되고, 주식투자를 해서 잘 안 되면 탁 털고 일어나야 되는데, 잃은 돈 되찾으려고 빚내서 또 투자했다가 망하게 되는 것과 똑같아요. 누구에게나 다 그런 미련이 있다는 것을 저도 이해는 됩니다만, 그런 미련이 인생에 무슨 도움이 됩니까?

결혼 전에 아기를 가졌을 때 질문자가 ‘아기를 가진 건 아기를 가진 거고, 이 사람과 결혼할지 말지는 신중하게 결정해야겠다’ 고 했다면 이런 수렁에 안 빠져들었을 거잖아요. 질문자는 아기 가진 것에 미련을 둬서 결국 지금 수렁에 빠졌는데, 여기서 또 미련을 가지면 계속 더 깊은 수렁에 빠져들게 되는 거지요. 그러니 이제부터라도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자꾸 지나간 것에 미련을 가지면 안 돼요. 지금부터라도 어떻게 살 건지 정신을 차리고 살펴봐야 돼요.

그런데 질문자가 예상했던 결혼생활이 아닌 건 맞지만 그래도 질문자는 아주 좋은 조건에 있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지금 질문자가 가진 재산만으로도 능히 잘 살아갈 수가 있어요. 아직 건강하겠다, 젊겠다, 무슨 걱정이에요? 저는 65세가 되도록 아직 장가도 한 번 못 가봤는데 질문자는 벌써 시집도 한 번 가봤고, 애도 둘이나 있고, 나중에 애들 다 키워놓고 또 필요하다면 시집을 한 번 더 갈 수도 있고요.(모두 웃음) 현재 질문자가 가진 재산만 해도 엄청난 재산인데, 잃어버린 재산에 대해서 계속 그렇게 미련을 가지면 불행은 점점 더 커지는 거예요.

제 얘기를 어떻게 이해하셨어요? 이혼하라는 얘기로 들었어요? (모두 웃음) 그렇다면 제 얘기를 잘못 들은 거예요.”

“생각은 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생각은 해 볼 필요가 없어요.(모두 웃음) 남편하고 이혼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될 거라고 생각한다면 그것 또한 오해입니다. 제 얘기는, 질문자가 남편에게 갖고 있는 미련을 버리라는 얘기입니다. 남편에게 ‘술을 줄여라. 코카인만 하지 마라. 생활비를 달라.’ 이렇게 하는 걸 딱 끊으라는 말입니다. 이혼을 하라는 얘기로 듣지 마시고요. 그런 걸 딱 내려놓고 이제부터 혼자라고 생각을 하세요.

요즘 시리아에서 아이를 하나는 업고 하나는 손을 잡고 유럽에 난민으로 오는 사람들 보셨죠? 예를 들어 그렇게 오다가 남편은 죽고 여자 혼자 아이 둘만 데리고 온 사람이 있다면, 아직 그 사람은 여기 정착할 권리도 얻지 못한 상태잖아요. 그래도 10년, 20년이 지나보면 그 사람은 아이 둘을 다 대학에 보내고 잘 살고 있을 거예요. 한국도 6.25전쟁 때 남편 죽고 아기를 하나는 업고, 하나는 뱃속에 있는 채로 부산으로 피난 와서 보따리 장사 하면서 아이들을 키운 분들이 오늘날 대한민국을 만들었잖아요.

거기에 비하면 질문자는 비록 남편이 자기가 원하는 만큼은 안 된다 하더라도 질문자에게 영국의 시민으로서 합법적으로 살 수 있는 권리를 주었고, 또 질문자의 아이들도 모두 시민권을 가질 수 있는 조건이고, 또 질문자는 살 집도 있잖아요. 질문자가 원래 가졌던 재산에 비해서는 좀 손실이 생겼을지라도 지금도 여전히 자산이 넉넉하다는 거예요.

질문자는 지금 울 것도 없고, 슬퍼할 일도 없어요.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질문자는 남편을 만나서 일단 아기 둘을 얻었잖아요. 그런데 질문자가 ‘아기가 인생에 장애다. 아기 둘 데리고 어떻게 살아야 하냐?’ 라고 생각한다면 아기는 벌써 엄마한테 불효하고 있는 거잖아요. 어린 아이가 벌써 엄마 인생을 망치고 있다면 그 아이는 커서 훌륭한 사람이 되기는 틀린 거예요. 그러니 ‘아기가 있어서 힘들다’ 라고 생각할 게 아니라 ‘그래도 나는 남편을 만나서 아기 둘을 얻었다’ 이렇게 생각해야 되는 거예요. 그 남자가 앞으로 나한테 아무 것도 제공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나는 그 남자로부터 벌써 아이 둘을 얻었기 때문에, 그것만으로도 질문자에게는 굉장히 고마운 사람이라고 관점을 바꿔야 된다는 거예요. 그래야 감사하는 마음이 들지요.

사랑하는 아이 둘의 씨앗을 그 남자가 준 것이니까 그걸 고맙게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야 두 아이도 장애가 아니라 고마운 존재가 되지요. 아이 아빠가 괜찮은 남자여야 아이들도 앞으로 괜찮은 사람이 될 거 아니에요? 아이 아빠가 아주 무책임하고, 쓸모없는 인간이라면 쓸모없는 인간의 씨를 받은 아이들이 앞으로 어떻게 훌륭한 사람이 되겠어요? 아이 아빠를 부정하면 자기 아이들도 부정하는 게 된다는 말이에요. 그러니 남편에게 더 이상 기대는 하지 말고 다만 고맙게 생각해 보세요. 그 고마움은 다른 게 아니라 ‘두 아이를 나에게 선물한 사람이다. 이것만 해도 엄청나게 고마운 사람이다.’ 이렇게 생각해 보라는 거예요. 실제로는 전혀 안 고마운데 억지로 고맙다고 하지 말고 관점을 그렇게 바꿔보시라는 얘기예요.

만약 내전 때문에 조국을 떠나오다가 남편이 죽었다면 아내가 남편을 더는 원망하지 않을 거 아니에요? 이미 죽었으니까요. 그런데 코카인을 하든 마리화나를 하든 술을 마시든, 남편이 죽는 것보다는 낫잖아요. 그런 남편이라도 살아있어서 질문자에게 시민권을 줬고, 아이들에게 시민권을 줬으니까요. 그러니 남편이 살아있는 것만 해도 다행이라는 거예요. 그렇게 생각을 딱 바꿔서 아침에 일어나면 항상 ‘두 아이를 선물해 준 당신한테 감사드립니다’ 하고 절을 하고 자기 생활을 시작하세요. 당장 내일 직장을 구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둘째 아이가 세 살이 될 때까지는 직장을 구하지 말고, 있는 돈을 계산해서 한 푼도 남기지 말고 다 쓰세요. 불안하게 생각하지 마시고 그걸 쓰면서 생활을 하고, 남편한테는 생활비를 줄 것이라는 기대를 하지 마세요. 여기서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이 있는데요. 마음에서는 ‘안 죽고 살아있는 것만 해도 고맙다’ 하지만 겉으로는 ‘생활비 달라’는 얘기를 해야 됩니다. 줄 거라고 기대는 하지 말고, 못 먹는 감 찔러 보는 것처럼 그냥 한번 해 보는 거예요. 기대를 가지면 실망이 크기 때문에 기대하면 안 되고요.

그러니 질문자는 ‘남편이 내 말을 들어줄 거다’라는 기대는 오늘 이 자리에서 내려놓으세요. 아예 남편이 죽었다고 생각하세요. 아니면 아까 질문자가 이혼을 생각해 본 적도 있다고 했으니까, 아예 이혼을 했다고 생각하세요. 실제 질문자가 지금 이혼을 하려고 해도 그 절차가 또 신경 쓰이잖아요? 뭣 때문에 자꾸 신경 쓰면서 살아요. 그냥 오늘 이 강의를 듣는 순간 마음으로 ‘나는 이혼했다’고 생각하면 되지요. 남편에 대한 어떤 기대도 하지 말라는 거예요.

‘남편은 두 아이라는 귀한 선물을 나에게 준 사람으로만 생각하고 항상 고맙게 여기겠다.’

이렇게 관점을 딱 바꾸면 남편이 고마운 존재가 되고, 또 그러면 아이들도 나중에 귀한 존재가 됩니다. 혹시 아이들이 아빠에 대해서 불평을 하더라도 질문자는 ‘그런 이야기를 하면 안 된다. 너희 아빠가 얼마나 좋은 사람인데’라고 얘기해 줘야 아이들에게 자긍심이 깃듭니다. 그런데 엄마가 ‘너희 아빠는 인간도 아니다’라고 얘기하면 그게 아이들의 무의식 세계에 굉장한 충격이 되어서 자존감이 없어지게 됩니다. 남편하고 살고, 안 살고는 질문자의 문제인데, 그걸로 인해서 아이들에게 나쁜 영향이 가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내 남자로서는 부족하지만 아이들 아빠로서는 괜찮은 사람이다.’

이렇게 생각해 보세요. 지금 이 자리에서 ‘혼자 산다’는 마음을 굳히라는 거예요. 제 말을 ‘이혼하라’는 얘기로 듣지 마시고요. 이혼하는 것도 피곤한 일이니까요. 이혼을 안 해야 오늘처럼 애 봐줄 올케라도 곁에 둘 수 있잖아요. (모두 웃음) 또 질문자는 아직 남자가 필요하잖아요? 새로운 남자 친구가 생길 때까지는 그 인간이라도 가끔 남자로 이용을 해야 될 거 아니에요? (모두 웃음)

남편으로서 내가 원하는 만큼의 인간은 아니지만 이제 ‘남이다’ 라고 생각하면 그래도 질문자한테 가장 필요한 존재잖아요. 가끔 아기도 봐줄 수 있고요. 또 아기들한테도 아빠란 존재가 있어서 같이 놀아주면 정서적으로도 도움이 되기 때문에 지금 이혼할 필요는 없어요. 지금 이혼한다고 하더라도 당장 질문자가 재혼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순간의 감정으로 이혼을 하게 되면 공연히 있는 재산만 날리게 됩니다.

아직 아기들이 어리니까요. ‘남편’으로서는 딱 마음에 선을 긋되 ‘아이 아빠’로서 아직 필요한 역할이 있기 때문에 좀 놔두라는 거예요. 아이 엄마로써 한 3년 동안은 있는 돈만 쓰면서 아이들을 키우고, 둘째가 세 살이 되어서 정서적으로 안정이 되면 그때 어린이집에 보낸 뒤에 직장을 구해서 생활하면 된다고 관점을 바꾸세요. 그래야 새로 일어나는 불행을 막을 수가 있습니다.”

“예, 잘 알겠습니다.” (질문자 울먹임)

“그러면 아무 문제도 없어요. 뭐가 슬프다고 울고 그래요? 한국에서 태어나서 영국까지 와서 영국 남자랑 한 번 살아본 것만 해도 굉장한 경험을 한 건데요.” (모두 웃음)

“마음을 달리 먹고 남편을 고마운 사람이라고 생각하겠습니다.”

“남편으로서는 고마운 존재가 아니지만, 아이 아빠로서는 고마운 존재라고 생각하시라는 거예요. 관점을 잘 잡아야 돼요. 나쁜 놈인데도 무조건 ‘고맙다. 고맙다’ 하라는 게 아니에요. ‘내 남편’이라는 생각을 딱 지우고 ‘나에게 두 아이를 선물해 준 사람이다. 아이들과 놀아주는 것만 해도 고맙다.’ 이렇게 생각하시라는 거예요. 그래서 남편이 어떻게 생활하든 관여도 하지 말고 기대도 하지 하세요.

그러나 동거자로서 조언은 해줘도 됩니다. 동거자로서 지나가는 말로 ‘생활비 좀 내놔라’ 할 수도 있고, ‘코카인은 하면 안 돼’ 라고 할 수도 있지요. 그런데 그런 말을 할 때 ‘내 말을 꼭 들어라’는 관점에서 하지 마시고, 그저 지나가는 말로 하시라는 거예요. 이게 찔러보는 거예요. ‘먹히면 다행이고, 안 먹히면 그만이다.’ 이렇게. 그러면 재미있게 지낼 수 있어요.

2년 연애했다고 했지요? 그런 걸 보면 남편이 그런 점만 빼면 괜찮은 사람이라는 거예요. 질문자가 저렇게 미련을 못 버리는 걸 보면 남편이 사람은 괜찮다는 얘기예요. 괜찮은 사람을 굳이 버릴 게 뭐 있어요? 좀 더 이용해 먹는 게 낫지요. 관점을 바꾸세요.” (모두 웃음)

“고맙습니다.”

오늘 런던강연에는 약 140명이 참가하였고 자원봉사자는 37명이나 되었습니다. 같은 시간에 다른 곳에서 한인축제가 열려 참가자들이 적을 것이라 예상했지만 140명이나 참가하여 좋은 시간을 가졌습니다.

처음부터 질문이 약간 무거웠지만 스님은 특유한 대화법으로 질문자들을 가볍게 해줍니다. 강연이 끝날 때 까지 웃음과 즐거움이 강연장을 가득 채웠습니다. 5시에 시작한 강연은 2시간 50분이 지나 7시 50분에나 마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스님은 최근 런던 테러도 있었고 마지막 질문도 있어 다음의 마무리 발언으로 런던강연을 마쳤습니다.

“억압하는 사람들은 무조건 나쁘고, 억압을 당하는 사람들은 무조건 옳다는 것도 잘못된 생각입니다. 억압 당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는 하지만 그들의 행동이 다 옳은 것은 아닙니다. 테러 같은 것은 피억압자 입장에서는 너무나 정당한 행동이라고 생각할지는 몰라도 무고한 사람들이 다칩니다. 피억압자의 행동이라고 다 옳은 것은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면서 또 우리는 ‘이것을 어떻게 평화롭게 풀어나갈 것인가’의 관점에 서서 문제를 봐야 합니다. 그런데 행동한 사람의 행동에만 감정적으로 대응하게 되면 극단적으로 흐르게 되고, 사건을 일으킨 한 사람이 무슬림이라고 해서 ‘모든 무슬림은 위험한 인물이다’라고 생각해도 안됩니다.

여러분들이 아는지 모르겠지만 1937년도에 연해주에 살던 우리 고려인들 17만명이 강제로 연해주에서 중앙아시아로 이주했습니다. 올해가 80주년이 되었습니다. 연해주에 살던 우리 고려인들은 일제에 나라를 잃었기 때문에 일제에 저항을 했지만 우리나라가 일본 제국주의에 합병이 되었기 때문에 일본나라의 일부잖아요. 그래서 우리나라사람이 일본사람의 일부가 된 거잖아요.

2차 세계대전에서 소련과 일본이 막바지에 전쟁을 해야 할 상황이 되니, 우리는 한국사람이지만 소련사람이 볼 때 자국 안에 일본사람이 30만명이나 살고 있는 거예요. 소련으로서는 거기 고려인들이 거주한다는 것이 일본과 전쟁을 하는 데 있어 굉장히 부담스러웠어요. 그래서 17만명을 강제이주시켰고, 30만명중 나머지는 도망을 갔거나 했겠지요.

이 이주과정에서 고려인들이 받은 고통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어요. 우리가 일본의 일부가 되어있었기 때문에 받은 오해이지요. 스탈린 등 소련의 중앙에 있는 사람들이 한국이 일본의 핍박을 받고 있고 한국사람들이 일본에 오히려 저항하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속속들이 알 수가 있었겠어요. 그래서 스파이짓 했던 몇 명의 한국계 일본인이 보고되어 무고한 많은 사람들이 불행을 겪게 되었어요.

오늘날 우리들도 똑같아요. 여기에 무슬림이 얼마나 많이 살아요? 그런데 그 사람들의 0.1%도 안되는 사람들의 행동과 생각임에도 불구하고 모든 무슬림을 그렇게 생각하고 취급하는 것은 올바른 자세가 아니예요. 미국 공항은 말할 것도 없이 한국 공항에서 입국심사할 때 중동사람 뒤에 서서 보게 되면 한국에 해끼친 것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엄청 까다롭게 해요. 이것이 이미 편견이란 거예요. 그리고 일부 한국 개신교회에서는 무슬림에 대해서 엄청난 적개심을 가지고 있어요. 이런 것이 오히려 우리나라에도 테러를 불러올 위험이 있어요.

한국에는 이미 많은 무슬림국가 계열의 노동자가 들어와 있어요. 그 사람들은 단순히 한 사람의 노동자일 뿐인데 한국에 살다보면 불만이 생기게 되겠지요. 이런 불만이 종교적인 차별처럼 다가오면 IS등 자생적 저항세력으로 성장할 소지가 있습니다. 사회가 좀 더 투명하고 건강하게 되려면 이런 사고가 한두 번 일어나더라도 이것을 포용할려는 자세가 있을 때 근원적으로 해결이 됩니다. 탄압만으로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하면 이 좋은 세상에서 우리는 늘 불안하게 살아야 합니다.

미국은 공격당할 위험이 거의 없는 나라인데도 불구하고 국무성이나 관청을 방문하게 되면 출입이 얼마나 까다로운지 모릅니다. 이렇게 사는 것이 과연 행복일까요? 왜 불안을 자초하는지 모르겠어요. 전 세계에서 미국의 힘에 의한 지배논리를 조금만 완화해도 미국인들이 불안하게 살지 않아도 됩니다. 그런 면에서 유럽은 많은 역사적 경험에 의해 아직은 포용력을 가지고 있으나 이런 사건이 자꾸 발생하면 극단적으로 갈 수 있습니다. 그러니 감정을 좀 더 배제하고 남북한의 문제, 유럽에서의 갈등등을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또 근원적으로 평화롭게 살 수 있는 길은 없을지 모색하는게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긴 강연을 마쳤습니다.

강연을 마치고 북사인회가 이어졌습니다. 북사인회를 할 동안 스님께 다소 무거운 질문을 했던 분께 소감을 물어보았습니다. 스님과의 대화로 머리가 많이 정리되어졌는데, 그래도 조금은 불안하다고 합니다. 이분도 어떤 경우에도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도록 함께 수행정진할 수 있으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묘덕법사님은 강연내내 스님의 말씀을 잘 정리하여 이분께 전달해드리고 짧은 시간이었지만 상담도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분들께도 소감을 물으니 스님말씀이 명쾌해서 좋았다고 합니다. 여기서 태어나고 자란 전명진 보살님의 딸에게도 소감을 물으니 스님말씀을 거의 다 알아듣고 이해할 수 있어 좋았다고 합니다. 스님의 가르침은 괴로워하고 있는 우리들에게 희망과 행복을 전해주고 있어 참 감사한 마음입니다. 스님은 많은 분들이 가지고 온 책에 정성껏 사인을 해주고 함께 사진촬영도 했습니다.

오늘 열심히 준비하고 안내한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단체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수고에 감사하며 자원봉사자들과 한사람씩 악수하였습니다.

스님은 오늘 강연의 실무총괄을 한 김은경님과 런던법회 부총무인 송민주님에게 수고했다고 인사하였습니다.

이번에 불교대학을 졸업하였지만 며칠 전 뒤셀도르프법당의 졸업식에 참가하지 못해 아쉬웠던 분들에게 스님이 직접 졸업장 수여를 하고 함께 졸업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함께 축하를 보내던 많은 분들이 부러워하기도 했습니다.

이어 스님은 봉사들에게 묘덕법사님과 나누기를 꼭 하고 가라고 하면서 먼저 숙소로 가보겠다고 감사인사를 하고 숙소로 출발하였습니다.

김지은님과 김태일님 부부가 두 분의 집으로 스님을 모시고 돌아왔습니다. 스님은 숙소에 도착해 점심때 준비해둔 죽으로 간단히 저녁요기를 마쳤습니다.

이어 수행팀과 묘덕법사님도 1시간정도 뒤에 숙소로 합류하여 이후 내일 일정을 공유하였습니다. 이렇게 유럽에서의 7일이 마무리됩니다. 시드니에서 출발하여 베를린에 도착, 베를린 강연에 이어 비행기로 취리히로 이동 후 취리히 강연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뮌헨, 프랑크푸르트, 뒤셀도르르, 파리, 런던 강연을 무사히 잘 마쳤습니다.

강연을 총괄해주신 부총무님들뿐만 아니라 봉사해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이 우러나옵니다. 일주일 동안 함께 다니면서 실무지원을 해준 유럽지구장 김선희님께도 감사한 마음입니다. 몇 년전보다 지역이 단단해졌다는 느낌입니다. 그리고 2014년 세계백강을 통해 인연되었던 지역도 그동안 쑥쑥자라 어엿한 법회로 잘 성장해 있음을 볼 수 있었습니다. 내일 아침에는 다시 비행기를 타고 캐나다 토론토로 향합니다. 내일은 토론토에서 뵙겠습니다.

함께 만든 사람들
김순영 이준길 손명희 정란희 조태준

전체댓글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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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움

김순영 이준길 손명희 정란희 조태준님 감사합니다.

2017-10-07 20:59:22

구름

질문자의 어려움이 전해지는 것 같습니다
슬기롭게 대처하셔서 괴로움이 덜어지시기를 기원해봅니다

2017-09-24 10:52:03

성재문

오늘도 말씀 잘 읽었습니다.

2017-09-22 20:3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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