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17.9.17 해외 즉문즉설 강연(21) 캐나다 토론토
혼자 사시는 친정어머니 걱정에 마음이 늘 무거워요

약간 쌀쌀한 영국런던 날씨였지만 어젯밤은 강연이 조금 일찍 끝나기도 해서 숙소에서 따뜻하게 푹 잘 자고 일어났습니다. 아직 어두운 런던의 새벽, 수행팀은 3시 30분부터 일어나 각자 자리에서 새벽예불과 천일결사 기도로 아침을 시작합니다.

아침부터 최말순님과 집주인 김지은님이 아침식사 준비로 분주합니다. 정성스럽게 준비한 음식으로 6시30분 함께 아침식사를 했습니다. 스님은 숙소와 아침식사를 제공한 김지은님, 김태일님 부부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아 스님의 책에 사인을 해서 선물로 드렸습니다.

7시 40분, 모든 준비를 마치고 세 대의 차에 나눠타고 런던 개트윅공항으로 출발했습니다. 히드로 국제공항이 제일 유명한 공항이지만 개트윅공항은 주로 저가항공사가 이용하는 공항입니다. 한국인들이 거의 이용하지 않는 공항이라 Westjet 항공사가 쉽게 눈에 띄지를 않았습니다. 겨우 수속대를 찾아 짐을 보내고 배웅 나온 유럽지구장 김선희님, 런던법회 부총무 송민주님, 김지은, 김태일님 부부, 이혜숙님, 김은경님께 스님은 그 동안 수고많았다고 다시 한 번 감사인사를 하고 아쉬운 작별을 하였습니다.

짐을 보내기 위해서 수속을 밟을 때부터 여권, 비행기표, 캐나다 무비자입국서류 등을 보여달라고 하는데, 게이트에서 최종 비행기를 탈때까지 3-4번은 이 과정을 되풀이 한 것 같습니다. 며칠 전 폭탄테러가 있었다보니 출국할 때도 짐검사가 미국보다 더 까다로운 것 같습니다.

8시간의 비행임에도 불구하고 저가항공사라 식사제공이 안된다고 하여 공항에서 기다리는 동안 비행기 안에서 먹을 빵과 음료수 등을 약간 구입하였습니다. 스님은 기다리는 시간에도 짬을 내어 원고교정업무를 보았습니다.

드디어 10시 55분 비행기가 이륙하여 토론토로 향해 출발하였습니다. 창가에 앉아 템즈강변을 따라 서 있는 아름다운 건축물들을 촬영해보려 하였으나 옅은 구름과 더불어 상공으로 날아오르니 하얀 뭉게구름이 비행기 아래를 잔뜩 뒤덮고 있어 아쉽게도 하늘에서 런던상공을 내려다보지 못했습니다.

비행기 속에서도 스님은 원고교정업무를 하였습니다. 8시간 비행이라 스님과 수행팀은 잠도 자고 휴식을 취하였습니다.

드디어 현지시간으로 오후 2시 토론토 국제공항에 도착하였습니다.

짐을 찾아 나오니 해외지부 사무국장 이정인님, 토론토정토회 총무 정연희님이 마중나와 있었습니다. 두 분은 스님께 반갑게 인사하고 함께 북미지역 강연을 시작하는 기념촬영을 하였습니다.

공항밖으로 나오니 오늘(일요일)부터 토요일 오전 뉴욕공항까지 일주일간 운전봉사를 해주실 뉴욕정토회 김명호님이 차를 대기해놓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반갑게 인사를 하고 오늘 숙소인 정연희 총무님댁으로 출발했습니다.

숙소에 도착하니 오후 3시 20분이 되었습니다. 이른 아침식사 후 제대로 식사를 하지 못했기 때문에 바로 점심식사를 하였습니다. 내일부터는 차로 이동할 것이기 때문에 수행팀은 짐을 새로 꾸리고 밀린 빨래도 하였습니다. 스님도 업무도 보시고 잠깐 휴식하였습니다.

오후 6시 30분부터 토론토 한인회관에서 토론토 강연회가 시작되었습니다. 토론토에서는 2012년부터 스님의 즉문즉설 강연을 하고 있는데 늘 토론토 한인회관을 대여 강연을 하고 있습니다.

토론토정토법당은 2012년 초 김정란님이 열린법회로 시작하여 2012년 가을 희망콘서트를 개최하였고 그 이후 착실히 발전하여 토론토정토회로 승격되어 토론토정토법당 뿐만 아니라 워털루정토법회, 몬트리올정토법회 및 토론토 인근 열린법회를 지원하는 명실상부한 캐나다 동부지역의 전법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강연장입구에 도착하니 밖에서 장형원님과 김재명님이 주차안내를 하면서 스님께 반갑게 인사하였습니다. 입장하는 참가자들에게 안내를 하고 있던 봉사자들이 스님을 보시고 모두들 깜짝 놀라며 반가움을 표했습니다. 스님도 그 동안 잘지냈느냐며 반갑게 인사하였습니다. 활기찬 모습으로 안내를 하고 봉사하는 모습이 참 좋아보였습니다. 그리고 1년만에 만나는 봉사자들 모습도 참 친근하였습니다.

드디어 스님이 무대에 모습을 보이자 참가자들이 큰 박수로 스님을 반갑게 맞이하였습니다. 스님도 1년동안 잘 지냈느냐며 함께 반갑게 인사하였습니다.

“아시아를 거쳐서 호주지역, 그리고 지난 주 유럽지역을 돌고 오늘 영국 런던에서 출발하여 오후에 토론토에 도착했습니다. 이번 해외순회강연 지역 중 토론토와 몬트리올이 가장 추울 줄 알고 옷을 켜켜이 입고 왔는데 왜 이리 더워요. 공항에 도착했는데 한여름인줄 알았어요.”

그러면서 바로 질문자와 함께 대화를 시작하였습니다.

토론토에서는 총 9명이 스님과 질문하고 대화하였습니다.

7년전에 이혼하였는데 예전 시부모님과 전화연락을 하고 싶은데 해야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고민이라는 분, 아이아빠와 헤어지고 10살짜리 아이를 키우고 있는데 내가 누구인지 진실로 찾고싶다는 분, 최근 몇 년동안 선불교에서 진행하는 명상모임이나 스님을 통해서 많은 것을 배우고 있는데 무슨 일이 있을 때 화가 나기도 하는데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지 평화로운 마음으로 평정심을 가지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는 분, 캐나다에 온 지 4개월 되었는데 어떻게 하면 영어공부를 잘하는지 묻는 분, 명상을 하다가 고통을 참을 수 없을 때는 어떻게 하는지 묻는 분, 결혼15년차 주부로 캐다다 국적을 가지고 여기서 살고 있는데 여기 있으면 친정 걱정이 되고 한국에 있으면 신랑 걱정이 되어 마음을 어떻게 다스리고 행복할 수 있을지 묻는 분, 30살에 이민와서 교회에서 결혼문제 때문에 상처를 많이 받았는데 한국사람들이 자꾸 미워지고 본인이 다닌 교회에 대해 분노가 많은데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교회를 다닐 수 있는지 묻는 분, 남편이나 다른 사람들과 싸우고 나서 성격이 급해서 혼자 화를 냈다가 금방 이해하고 또 사과도 바로 해버리는 성격으로 인해 밑진 기분이 들고 사과하지 않는 상대를 미워하게 되는 것을 반복하게 되는데 이것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묻는 분, 살을 빼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되는지 묻는 분 등이었습니다.

그 중에서 다음의 질문과 스님의 대화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결혼 15년 차인 주부입니다. 캐나다에 와서 캐나다 국적을 얻고 여기서 살고 있는데 제가 친정에 지나치게 신경을 쓰는 경향이 있어서 15년 동안 항상 마음이 불편하고 무거웠습니다. 어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동생은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가운데 어머니가 혼자 계시거든요. 그러다 보니 이곳 캐나다에서 남편과 결혼해 가정을 이루고 제 삶을 꾸리고 있으면서도 제 모든 신경은 한국의 친정어머니께 가 있습니다. 최근에는 한국에 가서 어머니 일을 봐드리고 다시 캐나다에 들어와서 남편 뒷바라지를 하는 일이 반복될 정도인데 여기 있으면 한국이 걱정되고 한국에 있으면 남편이 걱정됩니다. 이런 제 마음을 어떻게 다스려야 행복해질 수 있을지 스님께 여쭤보고 싶습니다.”

“질문자가 여기 있으면 한국 가야 행복할 것 같아서 한국 가는 것이고, 또 한국 가 보니 여기 있는 게 행복할 것 같아서 이리 오는 거잖아요. 자기 좋은 대로 하고 있는데 뭘 더 행복하겠다고 또 물어요?” (청중 웃음)

“그렇게 말씀하시면 그런 입장일 수 있지만 제가 행복하려고 가는 건 아니고요.”

“가고 싶어서 갔으니까 행복하죠. 가고 싶지만 못 가면 행복하지 않을 거잖아요. 어머니가 있는 곳으로 가는 것이 더 행복해요, 안 가고 여기서 걱정하는 게 더 행복해요?”

“친정 걱정 없이 제 가정만 신경 쓰면서 살고 싶어요.”

“그렇게 살면 되잖아요.”

“그런데 자꾸만 제 마음이 가니까...”

“마음이 가는 걸 어떡하겠어요?”

“그러면 그냥 내버려두고 제 마음 가는 대로 행동하면 될까요?”

“어차피 그렇게 할 거잖아요.(청중 웃음) 질문자는 스님한테 물어보기 전부터 이미 그렇게 해왔는데 새삼스럽게 뭘 그래요.

다만 질문자가 물어본 요지는 이거겠죠. 친정에 혼자 계신 어머니 생각해서 ‘친정에 가야 한다’라는 생각으로 자꾸 가는데 내 가정생활에 그것이 부담이 되는 거겠죠?"

"네."

"친정에는 안 가도 돼요. 자기가 가고 싶어서 가는 건 자유니까 제가 말할 것도 없고, ‘가야 합니까?’라고 굳이 묻는다면 안 가도 된다는 거예요. 이치를 따지면 그래요.

자식을 낳으면 부모는 자식을 스무 살 때까지 또는 만 18세까지 보살펴줘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리고 자식은 성인이 되는 만 18세까지는 최종 결정을 내릴 때 부모님의 승인을 받을 의무가 있습니다.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되지만 부모가 반대하면 못 한다는 거예요. 부모가 보호자기 때문이에요. 옛날에는 임금이라 하더라도 미성년자면 어떤 결정을 할 때 발을 쳐놓고 어머니가 뒤에 앉아서 결정합니다. 그걸 수렴청정이라고 하죠. 임금이라 하더라도 ‘미성년’이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스무 살이 넘으면 아무리 부모가 나를 사랑하고 도와줘도 내 일은 내가 결정할 권리가 있습니다. 성년이 됐으니까요. 그걸 옛날 왕정 시대에는 ‘친정’이라고 했어요. 수렴청정을 없애버리고 이제 임금이 결정을 자기가 하는 거예요. 그렇다고 어머니 말은 무조건 안 들어야 한다는 게 아니라, 어머니 말씀이 내가 봐도 옳으면 들어야죠. 그러나 결정은 자기가 하는 거예요.

그리고 부모는 자식이 스무 살이 넘으면 더 이상 자식을 돌봐줘야 할 의무가 없습니다. 부모가 아무리 부자라고 해도 돌봐줘야 할 의무가 없어요. 며칠 전에 미국에서 있었던 일을 기사에서 봤는데, 부모가 굉장히 부자예요. 그런데 아들이 석사 과정을 마치고 박사 과정을 하려는데 부모가 재정 지원을 안 해주니까 아들이 부모를 고소했어요.

아들이 나빠서 그런 게 아니에요. 미국에서는 돈이 없을 때 학자금을 마련하는 길이 두 가지가 있잖아요. 하나는 장학금을 받는 것이고 하나는 융자를 받는 거예요. 장학금을 받으면 안 갚아도 되지만 융자를 받으면 나중에 갚아야 해요. 요즘은 대학을 졸업하고 나면 10년 이상 갚아나가야 하니까 학교 졸업하고 나오자마자 엄청난 빚을 지고 인생을 시작하는 셈이잖아요.

그런데 이 젊은이가 생각할 때는 아버지가 부자라서 자기가 장학금을 못 받는 거예요. 융자를 받으면 앞으로 빚을 너무 많이 지게 되니까 자기가 생각할 때 아버지가 좀 부당하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아버지가 숫제 가난하면 자기가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데 부자면서 지원을 안 해주니까요. 그래서 소송을 했어요. 그런데 패소했어요. 자연 생태의 원리도 그렇게 되어있지만 현재의 법도 그렇게 되어 있는 게 정상이라는 얘기입니다.

스무 살 이전에 부모가 나를 도와준 것은 고마운 일이기는 하지만 이건 갚아야 할 빚은 아니에요. 그러나 스무 살 넘어서 지원 받는 건 빚에 들어갑니다. 질문자가 스무 살 이전에 어머니로부터 도움을 받았다면 그건 고마운 일이지만 빚은 아니에요. 질문자가 형편이 돼서 부모를 도와주는 건 괜찮지만 꼭 부모를 도와줘야 할 의무는 없다는 말이에요. 질문자가 지금 자기 가정을 꾸리고 형편이 돼서 어머니를 돕거나 친정을 방문하는 건 괜찮아요. 그런데 내가 어릴 때 어머니가 나를 도와줬다는 그 빚 때문에 부모를 도와야 한다는 건 윤리적으로도 법적으로도 아무 의무가 없어요. 그건 질문자의 선택에 들어가는 것이지, 죄의식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어린 자식을 돌보는 것은 의무에 들어갑니다. 안돌보면 죄가 돼요. 늙은 부모를 모시는 것은 선행에 들어갑니다. 하면 좋은 일이에요. 안 했다고 해서 나쁜 일은 아니에요. 자식을 낳아서 돌보지 않는 것은 악행에 들어가고, 부모를 돌보는 것은 선행에 들어가요. 선행은 선택사항입니다. 선행은 하면 좋지만 안 했다고 나쁜 건 아니에요. 자식을 돌보는 것은 안 하면 악행에 들어가요.

질문자가 능력이 돼서 부모를 돌보는 것은 선행입니다. 선행은 권장사항이에요. 하면 좋아요. 그러나 질문자가 안 한다고 해서 그게 죄는 아니란 말이에요. 질문자가 결혼을 했으면 자기 가정을 원만하게 꾸려 나가는 것이 우선이고, 경제적으로나 마음적으로 여유가 있어서 부모를 돕거나 돌보는 것은 인류 사회에서 권장하는 사항이에요. 그러나 그걸 안 한다고 죄가 되는 건 아니기 때문에 부담을 가질 필요는 없습니다.

그런데 질문자가 지금 아이를 제대로 돌보지 않고 집을 비우고 있다면 그건 죄에 들어갑니다. 우선순위를 정해놓고 해야 해요. 자기 일에 충실한 뒤에 여유롭게 남을 돕는 건 좋은데 자기 일을 팽개치고 남을 돕는 것은 삶의 바른 자세는 아니라는 얘기예요.

예를 들어 봅시다. 세상 사람이 볼 때 제 직업은 종교인이고 스님이에요. 사람들이 볼 때 승려라고 하면 수행하는 사람이잖아요. 그런데 제가 화를 벌렁벌렁 내고 욕심을 내고 살면서 통일운동 한다고 돌아다닌다고 합시다. 자기 본분은 안 하고 딴 짓을 한다는 말이에요. 적어도 다른 사람이 봤을 때 제 직업이나 제 특징이 있잖아요. 승복을 벗어 버리면 괜찮지만 입고 있는 동안에는 내가 나를 간수하는 역할을 해줘야 해요. 승려거나 수행자라도 화를 낼 수 있고 욕심을 낼 수야 있지만, 승려라는 것에 대해서 기본적인 자기 충실성은 갖고 있어야 해요. 첫째, 이렇게 자기 간수를 잘 해야 합니다.

둘째, 이런 문제에 대해서 남들이 어려움을 얘기할 때 도와줄 수 있는 능력이 좀 있어야 해요. 자기 전공 분야로 남을 조금 도와야 한다는 거예요. 그런 최소한의 역할을 하면서 제가 환경운동도 하고 구호활동도 하고 통일운동도 하고 평화운동도 하는 건 나쁜 게 아니에요. 그걸 두고 ‘중이 왜 이것저것 하느냐!’ 이렇게 말하면 안 돼요.

사람은 다 자기 기본 직분은 하고 다른 일도 해요. 부모를 돕는 건 좋은데 가정을 팽개치고 그렇게 하는 건 올바른 일이 아니라는 말이에요. 그러면 그렇게 고민할 일이 없죠. 앞으로 어떻게 할래요?”

“자기 직분에 먼저 충실하겠습니다.”

“걱정한다고 좋아지는 건 아니에요. 어머니를 위해서가 아니라 내 마음이 불편해서 정기적으로 매달 몇 백 달러라도 보내드리고, 내 마음이 불편해서 1년에 한 번 정도 방문하면 돼요. 어머니를 위해서라고 생각하면 어머니와 관계가 나빠져요. ‘내가 이렇게 나를 희생하고 엄마를 위해서 살아왔는데 엄마는 내 정성을 몰라준다’ 이러면 갈등이 일어나게 됩니다. 섭섭해져서 싸우고 돌아와요. 오면 또 싸우고 온 게 가슴에 아려서 다시 가요. 가서 또 싸우고요.(청중 웃음) 이렇게 되기 쉬워요.

내가 어머니를 보고 싶어서 가는 거예요. 어머니를 위해서 내가 가는 게 아니에요. ‘내가 보고 싶어서 가고 내가 돕고 싶어서 돕는다.’ 이렇게 되면 내가 도운 돈이 어디에 쓰이든지 내가 관여할 일이 아니고, 내가 갔을 때 어머니가 나한테 뭐라 그러든 그걸 갖고 내가 갈등을 일으킬 이유가 없어요. 내가 여기 온 이유가 어머니를 위해서 온 게 아니라 나를 위해서 왔기 때문이에요.

여러분들 모두 ‘인생은 나를 위해 산다’ 이렇게 생각해야 여러분들의 인생이 어떤 상황에서도 행복합니다. ‘너를 위해서 한다’ 이러면 원수 되기가 쉬워요. 그런 마음으로는 안 가는 게 더 나아요. ‘나는 당신을 위해서 이렇게나 하는데 당신은 내 마음을 몰라준다’라고 해서 원한이 맺힐 수가 있거든요.

결혼 생활에서도 자꾸 ‘남편을 위해서 내가 희생한다’ 이렇게 생각하면 나중에 결혼 생활이 원만하지 못합니다. 내가 좋아서 사는 거예요. 아이도 ‘너를 위해서 내가 산다’ 이러면 안 돼요. ‘내가 좋아서 하는 거다. 안 키우는 것보다 키우는 게 더 재미있다’ 이런 마음으로 키워야죠. 그래야 항상 결론을 자기가 낼 수 있거든요. 항상 ‘누구를 위해서!’ 이렇게 생각하면 섭섭해지는 거예요.

제가 여기 강연 온 것도 여러분들을 위해서 왔을까요, 제가 오고 싶어서 왔을까요?(청중 웃음) ‘나는 내가 오고 싶어서 왔다!’ 이렇게 생각해야 여러분들이 많이 오든 적게 오든 뭐라고 하든 제가 오고 싶어서 왔으니까 괜찮아요. 그런데 ‘나는 여러분들을 위해서 이렇게 힘들게 왔는데 많이 오지도 않고 고마워하지도 않고’(청중 웃음) 이렇게 생각하면 섭섭해져서 ‘다음에는 안 와야지!’ 이런 결론이 나게 돼요. 그러면 자기 인생을 훼손하는 셈이 돼요.

항상 어떤 결정이든 내가 하는 거고 내가 책임을 지는 거예요. ‘내가 너를 좋아하는 거지, 네가 나를 좋아하고 안 하고는 네가 알아서 해라’ 이렇게 생각하세요. 내가 설악산에 가는 건 내가 설악산을 좋아해서 가는 거지, 설악산이 나 보고 좋아하든 안 하든 상관이 없어요. 그래야 지속적으로 좋아할 수 있는데, 우리가 산이며 바다는 지속적으로 좋아하지만 사람은 지속적으로 좋아하지 못하잖아요. 자꾸 ‘너를 위해서 한다’ 이렇게 생각하니까요.

‘나는 너를 위해서 하는데 너는 왜 그러냐? 계산해 보니까 손해 난다.’ 이건 좋아하는 게 아니라 장사하는 거예요. ‘나는 이만큼 좋아하는데 너는 왜 요만큼밖에 좋아하지 않느냐. 마이너스 2점이다!’(청중 웃음) 이런 식으로 계산하기 때문에 인간관계가 자꾸 갈라지는 거예요.

항상 ‘내가 보고 싶어서 간다, 내가 돕고 싶어서 돕는다’ 이렇게 해야지 어머니를 걱정해서 그런다는 소릴 하면 안 돼요. 그렇게 어머니가 계속 걱정되면 그건 일종의 정신질환에 속해요.(모두 웃음) 질환은 치료해야죠. 그런 관점을 가지세요.”

“네, 감사합니다.” (청중 박수)

2시간 25분동안 총 9명의 질문자와 스님은 유쾌한 대화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토론토는 스님의 첫 방문때부터 500명 이상의 참가자가 참석하였고, 대화도 아주 자유롭게 진행되어 많은 즐거움과 유쾌함을 선사한 곳이었습니다. 같은 북미지역에 있으면서도 미국에 사는 한국분들보다 훨씬 자유롭고 진보적으로 느껴지는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오늘 질문자들도 굉장히 재밌고 유쾌하여 관중들이 배꼽을 몇 번씩 잡을 정도로 웃음이 넘쳐났습니다.

강연을 마치고 무대 위에서 북사인회가 이어졌습니다. 오늘 강연에는 약 400명이 좀 안되게 입장한 것 같고, 자원봉사자는 25명이었습니다. 참석자들이 많아 그런지 사인을 받기위해 줄을 선 사람들이 길게 쭉 이어졌습니다.

북사인회를 할 동안 참가자분들께 소감을 물으니 스님 말씀이 이치적으로 명확해서 참 좋다고 합니다. 유튜브 동영상과 팟캐스트로 만나고 있는데 이렇게 직접 만나니 더 좋았다고 합니다.

사인회 중에 한 분이 어제 직접 스님께 드릴려고 쿠키를 구웠다고 하며 스님께 선물로 드렸습니다.

스님은 많은 분들이 가지고 온 책에 정성껏 사인을 해주었고 또 많은 분들이 사진촬영을 하기도 했습니다.

사인회를 마치고 오늘 강연을 위해 그 동안 열심히 준비하고 또 오늘 행사도 훌륭하게 해낸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단체기념사진을 촬영하였습니다.

사진 촬영 후 스님은 봉사자들과 악수하며 수고많았다고 다시 한번 감사인사를 한 분 한 분께 하였습니다.

오늘 강연의 실무총괄을 한 김정란님과 총무인 정연희님께도 수고많았다고 감사인사를 하며 함께 사진촬영을 하였습니다.

이어 스님은 봉사자들에게 묘덕법사님과 나누기를 하라고 하고 먼저 숙소로 출발하였습니다.

김명호님과 함께 숙소에 도착하니 9시 30분 정도가 되었습니다. 스님은 오늘 장거리 비행이었고 강연이 일찍 끝나 조금 휴식하기로 하였습니다. 이어 묘덕법사님과 이정인국장님, 정연희 총무님이 숙소로 복귀하여 내일 일정을 공유하였습니다.

내일은 캐나다 동부지역에서 처음으로 불교대학 졸업식과 수계식이 있는 날입니다. 그래서 오전 6시 30분부터 토론토정토법당에서 수계식을 진행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나서 자동차로 6시간 떨어진 몬트리올에서 강연을 합니다. 강연 후에는 밤시간에 미국 국경을 넘어 보스턴으로 이동하여 강연을 한 다음 다시 밤시간에 뉴욕으로 이동해야 하는 강행군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비교적 일찍 다들 휴식을 하거나 무박 3일을 보낼 일정을 위하여 수행팀은 개인짐을 정리하기로 하였습니다.

아시아/태평양, 유럽강연에 이어 북미지역의 첫번째 토론토 강연도 무사히 성황리에 잘 진행되었습니다. 몬트리올, 보스톤 강연 이후 뉴욕까지 이동하는 무박3일의 일정을 준비하면서 토론토의 첫밤도 깊어갑니다. 내일은 토론토 수계식/졸업식 일정과 몬트리올에서 강연소식 전하겠습니다.

함께 만든 사람들
김순영 이준길 손명희 정란희 조태준

전체댓글 18

0/200

감사함

김순영 이준길 손명희 정란희 조태준님 감사합니다.

2017-10-07 21:23:45

구름

내 인생입니다
남편을 위해서 희생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좋아서 하는 것입니다
긴 비행에 고단하신 가운데도 법문 올려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2017-09-26 11:06:18

^^^^

스님의 그 크신 말씀의 뜻을 이해해보도록 노력해보겠습니다~

2017-09-24 03: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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