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17.9.27 해외 즉문즉설 강연(31) 워싱턴DC
여성차별을 없애기 위해 제가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요?

새벽 5시 새벽예불과 천일결사기도로 오늘 하루를 열었습니다. 어제 워싱턴 디씨에서 미팅을 가진 후 한반도에 느껴지는 전쟁의 기운과 긴장상태 때문인지 오늘 아침 스님의 기도소리는 더욱 더 간절하게 느껴졌습니다. 기도 후 아침식사를 하고 워싱턴 디씨로 출발하였습니다. 오늘은 디트라니 전 대사님 개인미팅, NCNK 라운드테이블, 존메릴박사님 개인미팅, 아메리칸대학교 영문통역 즉문즉설강연이 있는 날입니다. 디씨에 따로 사무실이 없는 스님을 위해 스님과 오랜 친분이 있는 NCNK 키쓰 루쓰 사무총장이 다른 분들과 개인미팅을 할 수 있도록 개인미팅 장소를 제공해주었기 때문에 중간에 장소이동없이 스님이 미팅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스님은 NCNK 사무실에 도착해 디트라니 대사님, 그리고 Keith Luse님과 반갑게 인사했습니다. 대사님이 6자회담의 멤버로 2005년 북미간 9.19 합의를 이끌어내는데 스님의 보이지 않는 역할이 있었습니다. 스님과 디트라니 대사님은 최근 더욱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한반도 상황에 대해 의견을 나누며 서로에게 궁금한 것도 묻고 의견도 제시하며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현재의 한반도 상황에 대한 타결책을 어떻게 하면 만들 수 있을지 두 분은 예정된 1시간을 훌쩍 넘겨 1시간 30분동안 대화를 이어갔습니다만 다음 행사 시작 시간이 다 되어 아쉬운 작별인사를 하였습니다.

이어 NCNK에서 주재하는 라운드테이블 토론 시간이 시작되었습니다. 점심으로 비빔밥을 준비해주었는데 꽤 맛있었습니다. 요즘 미국에서도 비빔밥이 알려지고 인기가 있어 원하는 재료와 소스를 선택해 입맛에 맞게 만들어주는 패스트푸드 비빔밥집이 많이 생겼습니다.

NCNK 키쓰 루쓰 사무총장의 여는 말씀으로 라운드테이블이 시작되었습니다. 스님께서는 북한의 경제상황 및 북한의 최근 상황을 간단하게 설명하였습니다. 그리고 한반도에 긴장이 고조되어 무력충돌이 일어나면 북한, 남한 뿐만 아니라 미국에게도 이익이 되지 않는다는 말씀을 하시며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에 대한 의견을 말씀해주셨습니다.

이어 스님은 참석자들에게 질문을 받아 대화를 이어갔습니다. 국경변에 지어지고 있는 건물들이 개인용인지 국가에서 지은 것인지 묻기도 하고, 최근 북한 경제에서 가장 안정적이지 못한 것이 석유가격인데 이것이 미치는 영향에 대해 묻기도 하고, 미국인들이 북한에 대해 오해하는 것 중에서 가장 위험한 것이 무엇인지 묻기도 하고,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조치에 대해 묻기도 했습니다.

NCNK 키쓰 루쓰 사무총장은1999년부터 최근까지 리처드 루거 공화당 상원의원의 동아시아 정책 선임 보좌관 및 상원의 공화당 전문위원을 지낸 아시아 및 한반도 전문가입니다. 스님과 오랫동안 친구로서 함께 현재의 한반도 문제를 타결해보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특히 오늘 모임에는 싱가폴인으로서 조선교류(Chosun Exchange)라는 NGO 단체를 운영하고 있는 책임자가 참가하였는데 스님과 따로 얘기를 나누기도 했습니다. 스님은 Keith Luse 사무총장님께 좋은 분을 이 모임에 초대해주고 소개시켜주어 감사하다고 인사를 하였습니다.

한국인도 아니지만 곳곳에서 이렇게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 북한주민들의 인권과 생존을 위해서 노력하는 수많은 분들을 만나게 되면 저절로 겸손해지면서 감사하는 마음이 일어납니다. 고맙고 또 고맙습니다.

라운드테이블 토론을 잘 마치고 스님은 존 메릴 박사님과 개인미팅을 이어갔습니다. 존메릴 박사님은 국무부 정보국의 아시아국장으로 근무하시다가 최근에 은퇴하신 분입니다. 스님과 오랫동안 친구로서 친분을 유지하고 있는데 최근 한반도의 긴장상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겠는지등 현안문제를 가지고 여러가지 면에서 대화를 했습니다.

스님은 개인미팅 장소제공 및 행사를 주최한 키쓰 루쓰 사무총장과 직원들에게 감사인사를 하고 다음 일정이 있는 아메리칸 대학교로 출발했습니다.

오늘 영어통역강연은 아메리칸 대학교 (American University) 종교/철학과 및 아시아학과 박진영 교수님께서 주최해주셨습니다.

2013년에 같은 곳에서 박교수님이 준비해주신 영어통역강연에서는 학생들에게 질문도 많이 받았고 분위기도 좋았습니다. 오늘도 강연 전 학생들이 일찍 도착해 교수님께서 준비해두신 가벼운 음식도 먹고 같이 온 일행들과 담소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약 80여명이 참가하였습니다. 박진영교수님은 오후시간이라 수업이 있기 때문에 학생들의 참여가 저조할 것이라 사전에 말했지만 학생들이 비교적 많이 찾은 것 같았습니다.

박진영 교수님이 먼저 여는 말씀과 스님 소개를 해주시고 청중들의 박수와 더불어 스님과 제이슨님이 연단에 섰습니다.

“잘 살고 있나요? 얼굴표정을 보니 잘살고 있는 것 같애요. 학생들은 공부하는 게 어렵나요? 어때요? 나중에 늙으면 밥만 먹고 공부만 할 수 있는 학생 때가 가장 좋았던 때라는 것을 알게 되지요. 그런 시간이 몇 년 안돼요. 지금은 공부를 맘껏 하면서 즐기는 그런 때입니다. 공부하는 것으로 즐거움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저는 지금 지구를 한바퀴 돌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힘들지 않느냐고 묻습니다. 몸이 조금 피곤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저는 일하는 것이 아니라 놀고 있기 때문에 괜찮습니다. 여러분도 일을 놀이삼아 하면 좋겠어요. 노는 것은 조금 과하게 놀아도 됩니다.

오늘은 종교적인 얘기를 할려고 하는 것이 아니예요. 제가 신분이 승려이긴 하지만 불교를 얘기하려는 하는 것이 아닙니다. 개인적인 얘기도 좋고, 사회적인 이슈도 좋습니다. 오늘 여기 오기 전까지 북한과 미국의 긴장에 대해서 대화를 하고 왔습니다. 우리가 사는 데에는 정치적인 문제도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물론 어떤 때는 마음의 평화를 유지해야 하지만, 바깥사회가 갈등이 심화되면 마음의 평화에 나쁜 영향을 줍니다. 마음의 평화뿐만 아니라 사회의 평화도 중요합니다. 그래서 삶은 종교문제, 정치문제로 나눌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떤 문제든지 대화의 주제로 삼을 수 있습니다. 주제에 구애받지 말고 편안하게 얘기하기 바랍니다. 제한이나 편견없이 그냥 얘기하기 바랍니다. 마이크 앞으로 나와서 시작하면 됩니다."

그러면서 오늘 강연을 열어주었습니다.

일이 많아 바쁜 스케줄로 인해 받는 스트레스를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 묻는 학생, 방글라데시 출신인데 재난을 당한 사람들에게 어떻게 도움이 될 수 있는지 묻는 학생, 맏형으로써 어린 형제들이 더 현명한 판단과 행동을 할 수 있도록 도와야하는 책임이 있는지 묻고 미국에서 태어났고 부모님은 한국에서 태어나셨는데 어떻게 해야 부모님과 성차별, 인종차별에 대한 대화를 잘 할 수 있는지 묻는 학생, 사회적으로 특권을 가진 사람으로서 우리는 소외된 남을 사랑하고 그들을 위해 베풀어야하는 의무가 있다고 생각하시는지 묻는 학생, 아프가니스탄에서 유복하게 자랐는데 아프가니스탄에서 극도로 차별받는 여성들을 생각하면 죄의식이 드는데 어떻게 이것을 완화할 수 있는지 묻는 학생, 친한 사람이 제게 큰 잘못을 해서 저와 제 주변인들에게 상처를 줬는데 어떻게 상대방을 용서해야 하는지 그리고 이 상황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 묻는 학생, 이 세상에는 여러 불교적 전통이 존재하는데 불교의 본질은 무엇인지 부처님의 근본 가르침은 무엇인지 묻는 분, 어떻게 하면 스스로를 자책하고 미워하는 것을 멈출 수 있을지 묻는 학생, 김정은과 트럼프로 인해 악몽을 꾸고 괴롭다는 분 등 총 9명이 질문하고 스님과 대화를 나눴습니다.

이 중 다음의 질문과 스님과의 대화를 소개합니다.

“저는 아프가니스탄에서 전쟁을 경험하면서 자랐어요. 우리나라에서는 여성에 대한 혐오와 불이익을 많이 느꼈는데, 미국에 올 수 있게 되면서 완전히 다르다는 걸 경험했습니다. 많은 점이 달랐어요. 저는 아프가니스탄 고위 관료의 자녀로서 유복하게 자랐어요. 아프가니스탄에서 극도로 차별받는 여성들을 생각하면 죄의식이 드는데 어떻게 이것을 완화할 수 있나요?

“질문자는 아프가니스탄의 어느 주 출신이에요?”

“저는 탈레반이 점령한 동쪽에서 왔어요. 그래서 지금 12년 동안 돌아가질 못하고 있어요.”

“저도 한 4년간 아프가니스탄에서 활동한 적이 있는데, 주로 카불과 남서쪽의 칸다하르에서 IDP(Internally displaced person, 국내실향민) 캠프를 지원했습니다. 그리고 바미얀에서도 활동했고요.

아프가니스탄은 여성차별이 굉장히 심한 곳이지요. 아마 여성차별로는 세계에서 첫 번째 가는 나라일 겁니다. 그래도 그런 차별을 당신이 만든 건 아니잖아요. 당신이 태어나기 전부터 있었던 제도이기 때문에 당신의 죄도 아니에요. 그리고 당신이 죄의식을 갖는다고 해서 차별 해소에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니까 당신이 죄의식을 가질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미국에 와서 새로운 세상을 경험했으니까 아프가니스탄에 있는 여성들의 권리가 좀 더 신장될 수 있도록 영향력을 행사할 필요는 있습니다. 물론 당신이 그런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는다고 해서 역시 죄가 되는 건 아닙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당신은 좋은 일을 하게 되는 거지요. 당신에게 저는 좋은 일을 권유하고 싶습니다.

저는 인도에서 똑같은 일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인도에서는 계급차별이 아주 심합니다. 법률적으로는 이미 계급차별을 금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시골 등에는 아직 관습으로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제가 인도에서 구호활동을 하면서 계급차별적 문화를 계속 거부하면 인도의 전통문화를 거부하는 게 됩니다. 그러면 거기에 있는 높은 계급, 즉 브라만들로부터 저항을 받게 되고, 그러면 저는 인도에서 아무 일도 할 수 없게 됩니다. 심하면 추방당할 수도 있어요. 그렇다고 그 문제를 내버려 둘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인도 아이들 교육을 시작했습니다. 학교를 만들었어요. 처음에는 계급이 낮은 사람들, 즉 불가촉 천민들을 위해서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학교가 좋으니까 높은 계급 아이들도 오고 싶어 했어요. 그래서 ‘학교에서는 계급차별을 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전제로 입학을 허가했습니다. 처음에는 저항이 좀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은 학교를 같이 다니면서 계급과 상관없이 친구가 되었습니다. 인도도 여성차별이 심한 곳인데, 아이들이 학교를 같이 다니니까 성별과 상관없이 친구가 될 수 있었던 거예요. 그렇게 점점 교육을 받으면서 아이들이 먼저 느낍니다. 집에 가면 차별이 있고, 학교에 오면 차별이 없는, 그런 과정을 경험하는 겁니다. 저는 이런 과정을 통해 계급차별이나 여성차별이 조금씩 개선되어가는 걸 봅니다.

나이든 인도 동네주민들의 생각을 바꾸려고 하면 갈등이 생깁니다. 그래서 이런 일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빨리 변화시키려면 갈등이 생기고, 또 갈등이 무서워서 내버려두면 차별이 온존하게 돼요. 그래서 시간을 길게 잡고 교육을 통해서, 또는 여러 사회활동을 통해서 점진적으로 개선하는 게 필요합니다. 물론 제도적 차별은 바로 바꿔야 합니다. 그러나 관습은 빠른 변화를 강요할 수가 없습니다. 제가 인도에서 학교를 연지 20여 년이 지났는데, 이제서야 동네주민들의 의식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당신도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여유를 갖고 아프가니스탄의 여성차별문제에 접근하면 좋겠습니다.

한국의 예를 들어볼게요. 100년 전에 서양에서 선교사들이 한국에 들어오면서 학교나 병원을 세우는 등 좋은 일을 많이 해 줬습니다. 그런데 동시에 한국의 전통문화도 많이 파괴했습니다. 그들은 한국의 전통문화를 미신적이고, 나쁜 것이라고 가르쳤습니다. 저는 이런 부작용을 제 조국에서 경험했기 때문에 이런 문제에 아주 조심해서 접근합니다. 그래서 당신도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의 권리신장을 위해서 조심스럽게 접근하되 지속적으로 노력하면 좋겠습니다.

저는 아프가니스탄 바미얀에 학교를 세울 때 여학교를 먼저 세웠습니다. 그리고 여성센터를 먼저 세웠습니다. 저는 바미얀 여성들이 교육을 통해 직업을 갖는 등 사회적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해서 그 사회에 어떤 영향을 주려고 했던 겁니다. 외국인인 제가 그 나라에 있으면서 여성차별을 비판한다면 저는 추방당할 수밖에 없겠지만, 당신은 그 나라 사람이니까 외국인인 제가 그런 활동을 했던 것보다는 조금 더 적극적인 입장에서 활동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당신이 이곳 미국에서 보고, 듣고, 배우면서 쌓은 재능을 아프가니스탄 발전을 위해서 쓰면 좋겠습니다. 또 당신이 남자로서 가지고 있는 파워가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을 위해서 쓰이길 기원합니다.”

“네, 감사합니다”

마음이 무거웠던 질문자가 밝아지는 모습을 보니 강연을 지켜보던 저도 참 마음이 따뜻하고 좋았습니다. 스님의 대화는 많은 사람들을 자유롭게 행복하게 만들며 죄의식으로 부터도 벗어나게 해주었습니다.

스님은 큰 박수와 함께 강연을 잘 마쳤습니다. 참석했던 학생들이 스님과 사진을 찍기도 하고 인사를 하기도 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자책하고 미워하는 것을 멈출 수 있는지 질문했던 남학생에게 소감을 물어보니 스님의 말씀이 좋았고 도움이 되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일본 출신이라는 한 여학생은 질문을 하진 않았지만 스님의 말씀을 들으며 깊이 감동했다고 말하며 스님과 함께 사진을 찍었습니다. 눈에 눈물이 글썽여 좀 더 물으니 요즘 인생에 괴로움이 많았는데 “우리 모두는 하나하나 소중한 존재이다” 라는 스님의 말씀이 너무 좋았고 앞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방식에 변화가 있을 것 같다고 얘기했습니다.

이 학교에서 유학생으로 와 있다는 한국계 여학생들이 와서 스님께 감사하다고 인사하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리고 참석했던 많은 분들이 스님과 인사를 나누며 감사하다고 하였습니다. 특히 질문은 안했지만 스님의 답변으로 감동받았다고 하면서 인사하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박진영 교수님이 워싱턴 디씨에 근무하는 여러 교수님들을 소개하여 주기도 하였습니다. 그 중 한 분은 조지워싱턴대학교에 근무하는데 내년에는 스님이 조지워싱턴대학교를 방문하여 즉문즉설강연을 하면 좋겠다고 하였습니다.

이틀 전 의회 브리핑을 페이스북 라이브로 중계해준 애나벨님이 오늘 강연에도 참석해 페이스북으로 영어통역 즉문즉설 강연을 생중계 해주었습니다. 이 곳에서 함께 하지 못했던 많은 분들께도 스님의 지혜와 부처님의 가르침이 전달되어 행복하고 자유로워지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박진영 교수님께 행사를 준비해주셔서 감사하다고 다시 한 번 인사를 하고 미주정토회관으로 출발했습니다. 회관에 도착한 뒤 조금 있으니 워싱턴정토회 워싱턴법당과 버지니아법회 회원들이 하나둘씩 도착했습니다.

오늘 저녁에는 원래 계획되었던 특파원 간담회 일정이 취소되어 오랜만에 워싱턴정토회 회원들과 시간을 갖기로 했습니다. 스님이 워싱턴디씨에 강연이나 행사차 방문해도 낮에는 주로 좋은벗들과 평화재단 일정으로 바쁘시기 때문에 회원들과는 강연장에서 인사 나누는 것이 전부입니다. 오늘은 워싱턴정토회 입장에서는 운이 좋게도 일정이 취소되어 이렇게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우선 저녁 7시 예불 시간이 되어 스님의 집전으로 저녁예불을 드린 뒤 곧이어 스님께 삼배로 인사를 드렸습니다.

스님의 집전으로 30여 명의 회원들이 스님과 함께 법당에서 저녁 예불을 드리니 법당이 꽉 찬 것 같고 훨씬 더 장엄하게 느껴졌습니다.

스님은 워싱턴정토회원들의 수행이 나날이 깊어지기를 발원하고 긴장상태에 놓여있는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발원하였습니다. 워싱턴법당에서 하는 스님의 한반도에 대한 발원이 더 간절하게 느껴졌습니다. 이어 회원들이 준비해온 비빔밥으로 저녁식사를 하고 법당에 둘러 앉았습니다.

스님께서는 먼저 한국에서부터 해외순회강연 일정을 함께 하고 있는 수행팀을 한 분 한 분 소개해주셨습니다. 스님은 마침 오늘 저녁일정이 취소되어 워싱턴정토회원들과 잠깐 만나 같이 식사라도 하고자 해서 미팅을 가지게 되었다고 모임취지를 얘기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정토회는 어떤 곳이며 정토행자는 어떤 사람들이며 수행자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말씀해주셨습니다.

“수행의 목표는 해탈과 열반입니다. 그리고 정토회는 수행의 관점을 잡아야 회원이 됩니다. 정토회원은 신도가 아니고 수행자입니다. 평등한 관계이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회원이라고 하고, 수행자의 관점에서는 정토행자 라고 합니다. 발심행자는 정회원이고 임원을 선출할 자격이 주어집니다. 임원이 될 자격이 되는 사람은 서원행자가 됩니다. 기본적으로 임원이 될 사람은 수행으로 정해집니다. 한국에서는 임원을 대중이 투표로 선출합니다. 그래서 지역 정토회를 운영할 때 행정부(총무,부총무)와 입법부(대표, 대의원)를 선출하여 서로 협력하여 정토회를 이끌어 나갈 수 있도록 합니다. 해외의 경우는 아직까지 정회원 숫자가 많지 않아 임원을 선출하지 않고 모두 임명하고 있습니다. 국내에서는 천일결사 기간인 3년에 한 번씩 회칙에 근거하여 선거로 선출하게 됩니다.”

또한 회원간에 지켜야 할 것들에 대해 말씀해주셨습니다.

“정토회에서 금지된 사항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이 사항을 어기게 되면 정토회에서 회원자격에 규제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첫째, 정토회에서는 상거래가 금지되어 있습니다. 다단계하는 사람이 상품을 판매하거나, 가게하는 사람이 자기 가게를 홍보하거나 물품을 판매하는 것이 금지되어있습니다. 둘째, 회원 사이에 돈을 빌리거나 빌려주어서는 안됩니다. 최근 워싱턴정토회가 이 규정을 어기고 돈을 빌리고 갚지 못한 사건이 났습니다.

정토회는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는 활동은 용납이 되지 않습니다. 정토회 들어와서 20년을 살아도 가정이 어려우면 사회로 돌아가서 자립을 해야 합니다. 정토회에 보시되어 들어오는 돈은 사적으로 사용하지 않습니다. 정토회는 자원봉사자들로만 운영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현재 한계에 와 있는 부분들도 있습니다. 특히 출판, 영상, SNS 등 기술분야가 현재 한계에 도달해있습니다.

이번에 정토회 본부 건물을 짓는데 우리 손으로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야합니다. 일상적으로 밥 짓는 것, 운전 등은 돈을 주고 사람을 고용하지 않습니다. 해외사업까지도 돈을 지불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강점이자 약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수행자들이기 때문에 수행자들이 할 수 있는 만큼만 일을 합니다. 사회적 효율을 위해서 이 원칙을 깨면서까지 하지는 않습니다.

앞으로 회원간에는 돈거래, 상거래는 하지 않아야 합니다. 혹시 이런 행위를 알게 되면 정토회에 알려야 합니다. 돈을 빌리는 사람만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돈을 빌려주는 사람도 규제를 받습니다. 이런 것들은 불교대학 처음 시작할 때부터 자세하게 알려줘야 합니다.

정토회 내에서 판매를 허용하는 게 두 가지 있습니다. 법륜스님 책과 환경상품입니다. 이것은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편리를 위해서 허용된 것입니다. 또 아나바다 장터를 해서 이익금을 JTS에 기증하는 것이 있습니다. 이 3가지를 제외하고는 어떤 것도 용납되지 않습니다.

정토회는 수행단체라는 것을 이해해야합니다. 각자가 수행정진을 해서 내가 조금 더 자유롭고 행복해졌느냐 하는 것이 검증기준이 됩니다. 그것을 이웃사람들과 나누기 위해 전법하고, 전법하기 위해서는 보시하고 봉사하는 것입니다. 수행, 보시, 봉사 이것이 중심이 되어야합니다. 수행하고 전법하기 위해 보시하고 봉사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봉사만 하겠다고 하는 것도 아니고 수행만 하겠다고 하는 것도 아닙니다. 수행, 봉사, 보시를 모두 기본으로 합니다.

내 마음이 불편한 것은 다 내 탓입니다. 내 마음이 불편한 것을 남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수행이 아닙니다. 마음이 불편하지 않은 상태에서 ‘운영에 문제가 있다’ 생각하면 언제든지 문제제기를 할 수 있습니다.

정토회라는 것은 그렇게 살기를 약속해서 삶이 변화한 사람들이 모인 곳이 되어야 합니다. 교포사회에서 정토회의 어려움은 한국사람의 숫자가 적다 보니 나타나는 문제가 있습니다. 여기는 다수가 기독교이고 불교인이 적습니다. 그러다 보니 수행모임인데 불교신자가 들어오게 됩니다. 수행에 관심없는 불교신자가 오면 수행원칙과 충돌이 일어나게 됩니다. 워싱턴 지역처럼 다른 절이 있으면 문제가 좀 없지만, 그 지역에 절이 없을 경우에는 종교로서 불교로 접근하기 때문에 수행적 관점을 잡기가 어렵습니다.

두 번째 어려움은 숫자가 적다보니 친목으로 가기가 쉽습니다. 언니, 동생하면서 패밀리처럼 뭉치면 처음에 시작할 때는 이것이 장점이지만 3년 넘으면 폐해가 나타나게 됩니다. 울타리가 쳐져있어 새로운 사람이 그 안으로 진입이 어렵습니다. 게다가 이민사회니까 이동이 많습니다. 갈수록 수행모임이 커져야 하는데, 10명이 있다가 숫자가 줄고, 초창기 멤버가 절의 주인처럼 되고, 나머지는 객처럼 되고 하는 것이 해외정토회가 갖는 어려움입니다.

정토회는 수행자의 모임으로 가야 하는데 친목모임으로 유지됩니다. 그리고 신자들이 와서 종교적인 요구를 하고 비판합니다. 이런 것들이 초기 시작할 때는 둘다 굉장한 장점이 됩니다만 중간에 친목으로 흐르다가 종교적으로 흐르거나 해서 정토회의 원칙과 상관없이 운영하게 됩니다.

정토회에서 가장 정착하기 쉬운 사람들은 무종교인이고 제일 적응하기 어려운 사람은 절에 다니다 온 사람입니다. 불교문화 관습에 젖어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나 성당다니다가 냉담자가 되어 온 분들은 오히려 활동력이 뛰어납니다.”

이렇게 정토회 및 운영운칙 등에 대해서 정리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정토회에 다니면서 의문이 들었던 것에 대해 질문해보라고 했습니다.

해외 상임법사를 보내주실 수 없는지, 과학과 불교의 만남 등을 정토회 연수원이나 교육프로그램에서 다룰 생각은 없으신지, 깨어있는 상태를 경험했는데 그것에 대해 질문하신 분, 별로 원하지 않았는데 정회원이 되었다는 분, 일반회원으로 남고 싶다는 분, 해외에 와서 살아보니 교민들의 생활조건으로는 국내보다 봉사하기가 어려워 소임을 맡기기가 미안하다는 분 등 평소 갖고 있던 궁금한 점들을 스님께 질문하고 스님께서는 상세하게 설명하고 답변을 해주셨습니다. 시간이 늦어 더 이상 질문을 받지 못하고 사홍서원으로 마무리했습니다. 다들 스님과 함께 이런 시간을 갖게 된 것에 대해서 감사해 하면서도 마치는 시간을 아쉬워하자 스님은 한 사람 한 사람 모두와 악수를 하며 오늘 만남의 아쉬움을 대신하였습니다.

워싱턴정토회 회원들이 뒷정리를 하고 돌아가니 어느덧 11시가 넘었습니다. 가볍게 시작한 모임었지만 오랜만에 스님을 만나뵙게 되니 질문이 많았습니다. 스님은 오늘 워싱턴디씨 일정을 마무리 하는 시간을 간단하게 가지고 내일 일정을 공유하고 숙소로 향했습니다.

오늘 낮에 스님이 미팅을 가지는 동안 수행팀은 백악관 앞으로 가서 한반도 전쟁반대 평화시위를 하는 팀을 만나 함께 시위한 얘기를 해주었습니다. 대부분 어제 스님 의회 브리핑에 참가한 분들이었다고 하면서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이미 마음으로 다 통해서 서로 포옹을 하고 의사소통을 다 하였다고 합니다.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해서 가지고 있던 용돈을 탈탈 털어 보시해주고 왔다는 얘기도 해주면서 눈물을 글썽이기도 하였습니다.

북미간의 긴장이 고조되고 있고 한반도에 전쟁의 기운도 감돌고 있지만 한국에서는 미국현지에서 느끼는 만큼의 긴장감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미국은 늘 지구상의 어느 지역과 작은 규모라도 전쟁에 관여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미국인들은 늘 전쟁에 대한 소식을 달고 살고 미국인들이 전쟁에서 사망하는 사고소식을 가까이서 접합니다. 그런데 한국은 북한과 분단상태이긴 하지만 65년동안 전쟁없이 평화롭게 지내고 있으니 위험에 대한 감각이 떨어져서 위기불감증을 갖지 않나 하는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스님은 저녁예불시 축원을 하면서 워싱턴정토회원들의 수행이 깊어지는 것과 함께 한반도의 평화통일, 북한주민의 안녕을 기원하였습니다. 지난 겨울 한국과 미국에서 동시에 촛불시위를 하여 새로운 정부를 탄생시킨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의 저력을 담아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곳곳에서 ‘한반도의 평화를 위한 전쟁반대’촛불시위의 불꽃이 타오르길 기원해보았습니다. ‘밤이 깊으면 새벽이 가깝다’고, 스님이 늘 인용하는 속담처럼 위기를 타개해서 한반도에 새로운 기운이 도래할 수 있도록 우리 모두 다함께 최선의 노력을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내일은 워싱턴 디씨를 떠나 오하이오주 콜럼버스로 갑니다. 오하이오 콜럼버스에서 강연소식 전하겠습니다.

함께 만든 사람들
김순영 이준길 손명희 정란희 조태준

전체댓글 12

0/200

임규태

감사합니다!!!^_^

2017-10-16 01:16:23

박노화

스님감사합니다 좋은말씀 고맙습니다 항상 건강하세요 스님의좋은 말씀 많이 들려주시어 너무고맙습니다 정말존경합니다 고맙습니다 항상건강하세요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2017-10-03 04:39:02

정지나

수행.보시.봉사
나만 편하면되지 라는 아니한 생각이 들때마다
나를 꺠우는 말씀 감사합니다.^^

2017-10-02 09:51:01

전체 댓글 보기

스님의하루 최신글

목록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