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17.9.28 해외 즉문즉설 강연(32) 콜럼버스
혼자 남은 어머니를 형제들이 아무도 안 돌보고 저만 돌보고 있어요

새벽예불과 천일결사기도로 워싱턴법당에서의 아침을 열었습니다. 워싱턴 디씨를 방문하면 워싱턴법당 주변을 돌아볼 잠깐의 여유도 없을 정도로 스님은 오전부터 늦은 밤까지 일정을 가집니다. 오늘은 3일간의 워싱턴 디씨 일정을 마치고 콜럼버스 주 오하이오로 떠납니다. 워싱턴법당에서 머무는 지난 4일간 아침기도를 스님과 함께 하였습니다. 이번 워싱턴 디씨 방문에서는 한반도의 긴장상태가 어느 때 보다 고조되어 있었고,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전쟁은 절대로 안된다는 절박함 역시 어느 때 보다 높았던 시간이었습니다.

이번 순회강연중 스님은 현 한반도의 긴장상황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 중에서 한 지역에서 받았던 질문이 유튜브 동영상으로 올라와 이 곳에 공유합니다.

‘북한과 미국의 긴장 상태가 걱정입니다. 미국 사람들은 전쟁이 날 것이라고 많이 이야기하는데… 전쟁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나요?’

▲ 북미관계 긴장고조, 우리의 역할은?

아침식사를 하고 스님은 출발하기 전까지 급한 원고교정 업무를 보았습니다. 어제밤에 LA에서 오셨다고 워싱턴정토회 전대표였던 유승묵님께서 스님께 인사드리러 오셨습니다. 1년 만에 만나시는 두 분은 잠깐이나마 서로 건강이 어떠신지 묻기도 하고 반갑게 인사하였습니다. 유승묵거사님은 워싱턴정토회 창립멤버로서 오랫동안 헌신적으로 워싱턴정토회를 위해 봉사해주셨습니다. 공항으로 떠나기 전에 전임대표인 유승묵님과 현재대표인 민덕홍님과 함께 사진을 찍었습니다.

워싱턴 미주정토회관은 워싱턴법당뿐만 아니라 JTS America 사무실, 좋은벗들/평화재단 미국지부 사무실, 국제국 사무실이 함께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미국동부지역의 ‘깨달음의 장’과 ‘나눔의 장’ 수련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바로 오늘부터 4박5일동안 이 곳에서 ‘나눔의 장’ 수련이 있습니다. 묘덕법사님은 5일간 수행팀에서 빠지고 이 곳에서 수련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짐을 꾸려 콜럼버스로 떠나기 위해 워싱턴 디씨에 있는 Ronald Reagan 공항으로 출발하였습니다. 스님은 배웅나온 워싱턴정토회 대표 민덕홍님과 총무 김지현님께 3일간 수고많았다고 수련 준비로 바쁠테니 바로 회관으로 복귀하라고 작별인사를 하였습니다. 민덕홍 대표님은 미국 JTS 사무국장을 겸임하고 있고 김지현 총무님은 국제국 외국어전법팀장을 겸해 이번 순회강연중 영어통역강연의 실무총괄을 맡아 수고하고 있습니다. 또한 김지현 총무님은 좋은벗들 미국지부 팀장으로 이번 스님 디씨 일정이 차질없이 진행될 수 있도록 실무총괄도 하였습니다.

로널드 레이건 공항은 워싱턴 디씨 가까이에 있어 워싱턴으로 들어오고 나가는 승객을 환영하느라 각국의 국기가 공항에 장엄되어 있어 조금은 세계적이고 이국적인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콜럼버스로 출발하는 항공사인 Southwest는 저가항공사라서 그런지 오래전에 만들어진 A 터미널을 이용하고 있어 국기들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을 수 없어 아쉬웠습니다.

점심시간을 지나 비행기가 출발하기 때문에 스님은 콜럼버스 출발 게이트 앞에서 빵과 음료를 사서 간단히 점심요기를 하였습니다.

비행기가 약 20분 연착하여 오후 1시경에 이륙하여 약 1시간 10분 비행을 한 후 콜럼버스 국제공항에 도착하였습니다.

짐을 찾아 게이트를 나오니 콜럼버스 대표인 하일숙님과 법회팀장인 이옥식님께서 마중나와 스님께 반갑게 인사하고 스님도 1년동안 잘지냈느냐고 반갑게 인사하였습니다.

법당에 도착하니 전임총무였던 고창미님이 반갑게 스님일행을 맞아주었습니다. 스님은 바로 법당으로 와서 부처님전에 삼배를 드렸습니다. 하일숙님과 이옥식님도 1년만에 콜럼버스 법당을 찾은 스님께 삼배로 인사를 올렸습니다.

스님은 원고교정 등 업무를 보는 동안 미네소타주 미니아폴리스에 거주하면서 콜럼버스 정토법당의 자원활동팀장을 하는 김세희 법우님이 법당에 도착하였습니다. 김세희님은 내일 시카고까지 스님일행의 운전봉사를 해 줄 것입니다.

강연장으로 떠나기 전에 스님은 콜럼버스 회원들이 준비해준 음식으로 간단히 저녁식사를 하였습니다. 회원들이 음식을 1-2가지씩 준비해서 스님께 공양으로 올렸습니다.

강연장 입구에 도착하니 고창미 전총무님의 아들인 지우가 훌쩍 자라 모습으로 자원봉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스님은 “에고 이만한 꼬마였는데 내보다 이제 키도 크고 훌쩍 자랐네” 하면서 반갑게 인사하였습니다.

그리고 콜럼버스와 2시간 거리에 있는 클리블랜드에서 오신 조미영님과 박광종님이 안내를 하고 있어 스님과 반갑게 인사하고 멀리서 오신 덕분으로 함께 사진도 찍었습니다.

스님은 열심히 안내하고 준비하고 있는 자원봉사자들과 반갑게 인사하였습니다.

스님 소개영상이 긑나고 스님은 큰 박수와 함께 연단에 올랐습니다.

“안녕하세요. 직장끝나고 바로 오신다고 수고 많았습니다. 콜럼버스에는 교민들도 많지 않는데 이렇게 많이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즉문즉설은 특정한 주제로 가지고 대화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살아가면서 겪는 인생문제를 가지고 대화합니다. 정치, 사회문제가 다 인생문제 입니다. 그러니 가볍게 대화를 시작해봅시다”

이렇게 서두를 열었습니다.

콜럼버스는 오하이오주의 주도일뿐만 아니라 콜럼버스 주립대학교가 있는 대학도시입니다. 그래서 한국유학생의 비율이 타도시에 비해서 많은 편입니다. 오늘은 총참가자가 51명으로 자원봉사자는 12명이었습니다. 그 중에서 6명이 스님께 질문하였습니다.

유튜브로 스님 법문을 보고 있는데 어떻게 하면 스님과 같이 그런 지혜를 가질 수 있는지 묻는 분, 치매에 걸린 엄마를 형제자매들이 돌보지 않고 본인만 보고 있어 힘들다는 분, 트럼프와 김정은이 말폭탄을 주고 받는 현상황에 대한 스님의 의견을 묻는 분, 정치적으로 견해가 다른 사람에게 미운 마음이 든다는 분, 아들은 미국에서 태어났는데 직장에서 동료들로부터 북한에서 왔는지 남한에서 왔는지 계속 물어보니 스트레스를 받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 지 묻는 분, 사람사이의 관계에서 사람들의 수근거림에 대해서 어떻게 해야할지 묻는 분등 총 6명이 스님과 대화를 주고 받았습니다.

그 중에서 다음의 질문과 스님의 대화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저는 28년 정도 미국에서 생활했습니다. 아버지께서 일찍 돌아가시는 바람에 혼자 남은 어머니를 생각해서라도 성공해야 되겠다고 다짐하면서 열심히 일해서 나름대로 성공을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저희 가족이 사형제인데 혼자 남은 어머니를 아무도 안 돌본다는 겁니다. 저만 계속 돌보고 있어요. 나름대로 다 잘 살면서 ‘나 몰라라’ 팽개치고 있어요. 저는 이왕 어머니를 돌보던 자식이니 이 일을 안 할 수가 없어서 계속 돌보고 있고요.

나이 오십이 넘도록 지금까지 일만 하면서 어머니를 모셨는데, 이제는 어머니에게 치매가 와서 더 열심히 돌봐드려야 하는 상황이 되었어요. 제가 경제 사정이 넉넉하니까 어머니를 돌봐드리는 건 문제가 아니에요. 다만 그러기 위해서는 마음도 안 통하는 남편과 동반자로 계속 살아야 한다는 겁니다. 어머니를 생각하면 제가 가는 길을 관둘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너무 괴롭고, ‘늙을수록 손해다’ 하는 생각도 들어요. 스님은 남의 인생에 간섭하지 말라고 하시는데, 제가 지금 어머니를 돌봐드리는 것이 스님의 가르침대로 사는 게 맞는 건지요? 요즘 많이 후회가 됩니다.”

“맞고 틀리는 건 없어요. 질문자가 좋으면 하고, 안 좋으면 안 하면 됩니다.”

“나이 오십이 넘었는데, 여태 안 하던 일을 한다는 건 어머니께도 그렇고, 저 자신한테도 힘든 일입니다. 그렇다고 다른 남자를 만날 생각을 해 보면 또 ‘내가 여태 벌어놓은 걸 어떻게?’하는 생각도 들어요. 제가 잘하고 있는 건가요?”

“잘하고 못하고는 없다니까요. 질문자가 계속 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안 하면 된다니까요.”

“그럼 어머니는 낙동강 오리알이 되는데, 그래도 괜찮습니까?”

“질문자가 모시니까 다른 형제들이 엄마에게 신경을 안 쓰는 거예요.”

“제가 형제들한테 말을 해 봤는데도 제 말을 안 듣던데요.”

“질문자가 엄마를 잘 모시는데 누가 나서서 하겠다고 하겠어요?”

“어머니는 여기 안 계시고 한국에 계셔요. 제가 경제적인 지원만 100% 하고 있는 거예요.”

“다른 형제들은 각자 자기들 애 키우고 사느라 돈도 많이 필요한데, 미국에 사는 질문자가 형편이 넉넉해서 어머니께 경제적인 지원을 하면서 돌보니까 다른 형제들은 우선 자기들 쓰기도 바빠서 어머니께 드릴 돈이 없는 거예요. 어머니께 아무도 주는 사람이 없으면 형제들이 그나마 절약해서 드릴 텐데, 미국에서 잘 사는 동생이 늘 보내주니까 형제들이 미국 사는 동생한테 다 맡기는 거예요.”

“그런데 스님, 저는 이제 그만하고 싶어요.”

“질문자가 그만하고 싶으면 이제 그만하면 돼요.”

“그러면 어머니는 어떻게 해요?”

“'어머니가 돌아가셔도 좋다'라고 할 정도의 각오가 아니라면 질문자는 형제들을 이길 수가 없어요. 질문자는 형제 중에 몇 째예요?”

“제가 셋째입니다.”

“형제들은 ‘미국에 있는 셋째가 하겠지’ 그러고 있는 거예요.”

“실제 제가 다 했습니다.”

“그러니까 ‘앞으로도 하겠지’ 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저도 어떤 때는 다 관두고 싶어요.”

“예를 들어 설명해볼께요. 어린 아이가 원하는 것을 엄마가 안들어 주면 아이가 3, 4살일 때는‘나 밥 안 먹어!’그럽니다. 밥을 안 먹으면 본인이 제일 답답한 법인데, 아이가 어린 경우에는 아이보다 더 답답한 사람이 엄마입니다. 그래서 엄마가 아이한테 지는 겁니다. 엄마가 ‘그래, 양식도 없는데 잘 됐다!’ 이렇게 탁 밥을 치워버리면 엄마가 아이한테 이기는데, 엄마들은 그게 안 됩니다. 그래서 ‘자식한테 이기는 부모 없다’는 말이 나온 겁니다.

아이가 조금 더 커서 초등학교에 다니게 되면 엄마가 자식한테 제일 관심 두는 게 공부잖아요. 그 때 아이가 성질나면 ‘나 공부 안 해! 학교 안 가!’ 이러죠. 그러면 엄마가 아이한테 살살 빌잖아요. ‘제발 공부는 해라. 학교는 가야지’ 그러지요. 아이가 공부 안 하겠다고 하면 ‘아이고, 잘 됐다. 네가 학교 안 가면 돈 안 들어서 엄마는 좋지!’ 하면 되는데, 엄마들은 그렇게 못 해요.

조금 더 커서 사춘기가 되면 아이들은 ‘집 나갈 거야!’ 그러면서 정말 집을 나가버립니다. 그러면 부모가 아이 찾으러 다닌다고 애가 탑니다. 그래서 ‘제발 집만 나가지 마라’ 라고 하게 되는 거예요.

그런데 거기서 조금 더 크면, 집 나간다고 해도 엄마가 눈도 깜짝 안 하고 ‘그래! 나가 살아라’ 라고 합니다. 이 때 성년인 자식이 엄마를 이기는 방법은 ‘죽어버릴 거야!’ 하는 겁니다. 그러니 엄마가 자식을 이길 수 있겠습니까? 저 같으면 ‘그래, 가자! 내가 옥상에서 밀어줄게!’ 라고 할 겁니다. (모두 웃음) 그런데 엄마들은 그렇게 하지 못하죠. 그래서 저도 늘 엄마들에게 ‘자식하고는 싸우지 말라’ 라고 하는 겁니다. 자식하고 싸워서는 이길 수가 없으니까요.

그것처럼 어머니를 아무도 안 돌봐서 어머니가 죽어간다면 형제들 중에 누가 제일 답답하겠어요?”

“저요.”

“그러니까요! 그냥 돌보세요. 그냥. 괜히 돈 보냈다, 안 보냈다, 보냈다, 안 보냈다, 그러지 말고요. (모두 웃음)

질문자가 어머니 돌보는 걸 지금 그만두면 다른 형제들이 내일이라도 어머니를 딱 맡아서 돌보겠어요? 안 돌봅니다. 그런데 만약 질문자가 죽어버렸다면 다른 형제들이 어머니를 맡아서 돌볼까요, 안 돌볼까요?”

“돌보겠지요.”

“예. 질문자가 죽으면 형제들이 알아서 어머니를 돌볼 거니까, 질문자가 살아있는 동안은 ‘내가 한다’ 이렇게 생각하세요.”

“이렇게 엄마에게 집착하는 제가 정상인 걸까요? 전 어머니를 한 번도 잊은 적이 없습니다. 생각하면 마음이 너무 아파서 제가 평생 힘들게 살더라도 어머니는 돌봐드리고 싶거든요. 스님은 남의 인생에 간섭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자기가 좋아서 하는 건 저도 상관 안 해요.(모두 웃음) 질문자는 그렇게 어머니를 좋아하고 그리워해서 돌봐드리는 거잖아요. 어머니가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서 사는 사람도 있고, 부처님을 위해서 사는 사람도 있는데, 어머니를 위해서 사는 게 뭐가 나빠요? 부처님을 위해서 목숨 거는 사람도 있잖아요. 부처님, 하나님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데 목숨을 거는 사람들이 있는데, 나를 낳아주고 키워준 어머니를 위해서 목숨을 거는 게 무슨 문제라고요. 아무 문제가 없어요. 질문자가 어머니를 돌보는 건 나쁜 게 아니에요.

그런데 질문자가 ‘괴롭다’고 하면서 어머니를 돌본다면, 저는 ‘신경 쓰지 마라. 어머니는 너 없어도 잘 사실 것이다’ 라고 할 겁니다. 그때 제 말을 질문자가 ‘간섭하지 마라’ 는 뜻으로 들을 수도 있겠지만, 질문자는 지금 어머니를 잊은 적이 없고, 잊을 수도 없다는 건데, 그걸 어떻게 하겠어요? 질문자가 잊을 수 없다는 걸 제가 왜 잊으라고 하겠어요? 잊으라고 해도 못 잊을 사람이잖아요. 그러니 질문자는 그냥 생긴 대로 사세요.”

“예, 감사합니다.” (모두 웃음)

“그런데 왜 손해라는 생각을 해요? 평생 하나님 믿고 살다가, 평생 부처님 믿고 살다가 나이 들어서 ‘내가 손해 봤다’ 하는 사람 봤어요? 그런 사람은 없잖아요. 그러니 질문자는 지금처럼 어머니를 끝까지 모시면 되는 거예요.”

“제가 엄청 부잣집에 시집을 갔는데, 남편의 나이가 많았어요. 저한테는 젊은 남자도 있었는데 제가 젊은 남자를 버리고 남편한테 시집을 간 거예요. 그런데 나이가 드니까 다시 그 젊은 남자한테 돌아가고 싶어요.”

“돌아가도 돼요.”(모두 웃음)

“그런 생각을 자꾸 할수록 저는 손해 본 것 같아요.”

“그런데 질문자는 나이든 부자한테 시집가서 잘 살았잖아요. 젊은 남자한테 시집갔으면 먹고 살기도 힘들었겠죠. 그런데 무슨 손해가 났다는 거예요?”

“돌이켜 보면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데 내가 왜 젊은 남자를 버리고 늙은 남자한테 시집을 갔을까 싶어요.”

“그건 늙어서 하는 소리지, 막상 젊을 때는 안 그렇다니까요.(모두 웃음) 늙은 뒤에 생각하니까 그런 거예요. 질문자는 늙었지만 돈 있는 사람을 만나서 지금까지 잘 살았고, 어머니도 잘 돌봤잖아요. 젊은 사람 만났으면 그렇게 못 했겠지요. 그러니 다 잘된 일입니다. 질문자는 늙은 영감을 끝까지 보살피세요. 옛날에 혜택을 많이 봤으면 사람이 은혜는 갚을 줄 알아야지요. 어릴 때 부모한테 빚을 졌기 때문에 효도해서 그 빚을 갚듯이 늙은 영감한테도 은혜를 갚아야지요. 그건 손해가 아니에요. 그리고 영감 죽고 난 뒤에 그때 젊은 남자 만나면 돼요.(모두 박장대소)

그리고 ‘내가 죽으면 어머니는 어떻게 하나?’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돼요. 질문자가 죽으면 형제들이 다 알아서 해요. 질문자가 완전히 파산해서 거지가 되어도 형제들이 다 알아서 하게 돼요. 형제들이 어머니를 모시게 하기 위해서 질문자가 파산하면 좋겠어요? 아니면 그냥 질문자가 부유해서 계속 어머니를 돌보는 게 좋겠어요?

만약 질문자가 파산을 한다면 형제들이 어머니를 돌볼 겁니다. 그러니 숫제 그 돈을 다 저를 주고 파산 신청을 하세요. 그러면 아마 형제들이 어머니를 돌볼 거예요. 그게 더 낫겠어요?”

“아니요.” (모두 웃음)

“내가 가진 게 있어서 어머니를 돕는 게 낫겠죠. 그러니 지금 질문자는 하나도 나쁜 게 없어요. 처지가 아주 좋은 편이에요. 하던 대로 하되 괴로워하지 말고 ‘내가 가진 게 있어서 도울 수 있으니 좋고, 늙은 부모도 모실 수 있어서 좋다’ 라고 생각하세요. 어머니가 미국에서 함께 사시는 것도 아니고 한국에 사시기 때문에 질문자는 돈만 보내주면 되는데, 그게 뭐가 어려운 일이라고 그러는 거예요? 늙은 영감의 그 많은 돈을 다 어디에 쓰려고요? 이런 일에 쓰면 좋잖아요. 아무 문제도 아닌 걸 갖고 괜히 울고 그래요.”

“젊은 남자한테 시집가고 싶어요...” (모두 박장대소)

“좀 더 있다가 가세요. 어머니 죽고 난 뒤에 가도 되잖아요.”

“20년 전에 헤어졌는데도 그 젊은 남자가 여태 저를 기다리고 있었더라고요.”

“아니에요, 안 기다렸을 거예요.”

“그래서 제가 좀 흔들렸어요. ‘내가 잘 살고 있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착각은 자유죠. 그러니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돼요. 그 남자가 다른 여자가 없었거나 아니면 있었어도 관계가 안 좋아서 그렇게 있는 거겠지요. 그러니 자기 여자도 하나 제대로 못 찾는 그런 남자한테 질문자가 시집갔으면 질문자는 3일도 못 살고 헤어졌을 거예요. 그러니 그 남자한테 가지 마세요.”

“예, 안 갑니다.” (모두 웃음)

“젊다고 꼭 좋은 거 아니에요. 질문자는 지금 잘 살고 있어요. 울 일도 없어요. 웃으면서 사세요. 그 남자가 질문자를 기다리면서 산 줄 알았다면 그건 질문자의 완전한 착각이에요. 그 남자는 어디 갈 데가 없어서 혼자 있는 거예요. 그런 남자 잘못 건드리면 질문자는 완전히 망신 살 일밖에 없어요.”

“저한테 ‘집을 갖고 올 수 있느냐?’, ‘차를 사줄 수 있느냐?’, ‘사업자금을 대줄 수 있느냐?’ 라고 해서 제가 ‘다 해 줄 수 있다’ 라고 했거든요.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나보다 5살이나 어린 사람이 여태껏 해놓은 게 하나도 없구나’ 싶은 거예요."

"그 남자는 완전히‘쥐약’이에요, 쥐약. (모두 웃음) 그럼요. 원래 쥐약 든 음식이 빛깔은 좋은 거예요.”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모두 박수)

이 분은 처음부터 청중들이 폭소를 터트리게 하였습니다. 처음에는 눈물을 흘리고 힘든 모습을 보였는데 스님과 대화를 하는 도중에 본인도 웃고 청중도 웃고 정말 한바탕 재밌는 코미디 쇼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본인에게는 괴롭고 힘든 일이지만 꺼내놓고 대화해보면 별 것 아닌 일이라는 스님의 말이 실감나는 순간이었습니다. 이 분이 남은 인생 행복하게 웃으며 살 수 있기를 기원해보았습니다.

강연을 마칠 때도 스님은 질문자 분을 한 번 더 언급하며 위로와 격려를 해주었습니다.

“다 잘 될 것이라는 막연한 낙관적인 생각을 하라는 것이 아니라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보는 것이 좋습니다. 앞에 질문자처럼 다른 형제들에게 '좀 도와라’ 이런 말은 하면 안됩니다. 자식이 나 혼자 라면 어차피 내가 해야 할 일입니다. 형제가 나를 안 돕더라도 형제가 많은 것이 좋지요. 내가 형편이 안 되면 안 도와주면 됩니다. 내가 형편이 되면 도와주고요. 내가 망해서 거지 되어서 못 도와주는 것 보다 형편이 되어 도와주는 것이 훨씬 더 좋아요. 이렇게 자기의 처지를 긍정적으로 봐야 됩니다. 돌아가시면 '돌아가서 이제 안 도와주게 되니 얼마나 좋은가' 또 이렇게 생각해야 됩니다. 돌아가시면 긍정적인 조건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그런데 부정적으로 생각합니다. 살아계실 때는 도와준다고 괴롭다고 하고, 돌아가시고 나면 ‘그 때 잘해줄 걸’ 하고 후회하면서 또 괴로워합니다. 이렇게 조건을 부정적으로 생각합니다. 항상 주어진 조건을 긍정적으로 생각할 때 삶의 행복도가 높아지고 에너지가 나옵니다. 이미 일어난 일은 긍정적으로 봐야 합니다. 우리는 언제나 행복하게 살아야 합니다. 행복하게 사시기 바랍니다.”

참가자들도 큰 박수로 스님의 강연에 화답하였습니다.

강연을 마치고 책사인회를 하였습니다. 스님은 정성껏 책에 사인을 해주시고 함께 사진을 찍어주기도 하였습니다. 책사인회를 하는 동안 몇몇 분들께 소감을 물어보았습니다. 특히 오늘 질문한 질문자는 평소에 유튜브로 스님법문을 듣고 있고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고 하면서 스님이 아무일 아니라고 했으니 걱정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다른 분은 친구가 추천해주어서 유튜브 법문을 듣게 되었고, 또 본인이 힘든 일이 있었을 때 우연히 ‘인생수업’ 책을 사서 읽고 도움을 많이 받았는데 그 책의 저자가 법륜스님인지를 몰랐다고 하면서 오늘 30분이상 조금 떨어진 거리에 살고 있지만 참 잘온 것 같다고 소감을 말해주었습니다. 외국에 오래살다 보니 한국드라마나 한국소식은 잘 접하지 않고 보지 않는데 유일하게 스님 유튜브 법문만 보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유학생들에게도 물어보니 스님의 법문이 많은 도움이 되어 감사하다고 하였습니다.

이어 스님은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기념사진촬영을 하고 수고했다고 악수하면서 감사인사를 했습니다.

오늘 강연의 실무총괄을 한 현명진 님께 스님책을 선물로 드리고 함께 사진촬영을 하였습니다.

이어 스님은 오늘 묘덕법사님이 함께 하지 못했기 때문에 봉사자들과 함께 잠깐 둥그렇게 앉아서 잠시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자녀를 키우는데 있어 중요한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행복의 원천이 심리적 안정이므로 자녀들이 심리적인 안정을 이룰 수 있도록 해주고, 또 다른 하나는 어떤 상황에서도 살아갈 수 있도록 자립심을 키워주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콜럼버스 정토회는 사람은 많지 않지만 법당도 자립했고 불상도 있는 거의 유일한 해외법당이니 수행자가 되어 이 곳에서 마음공부를 하여 수행을 꾸준히 하고 보시도 하고 봉사도 하라고 격려해주었습니다.

그리고 봉사자들이 하일숙대표님과 나누기를 할 동안 스님은 수행팀과 함께 강연물품 뒷정리를 하였습니다.

오늘 숙소는 1시간 30분 거리에 있는 Dayton 하일숙 대표님 댁입니다. 남편인 하주영님도 직장 퇴근후 강연에 참가하였다가 먼저 숙소로 돌아가 기다리고 계십니다. 대표님의 나누기가 끝나기를 기다린 후 함께 출발하여 숙소에 도착하니 11시 30분이 지났습니다. 이 후 숙소를 배정받고 내일 일정을 공유한 후에 각자 방으로 돌아갔습니다.

해외순회강연은 이제 북미중부와 서부 일정만 남겨놓고 있네요. 내일은 중부의 최대도시 시카고로 갑니다. 시카고에서 강연소식 전하겠습니다.

함께 만든 사람들
김순영 이준길 손명희 정란희 조태준

전체댓글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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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규태

감사합니다!!!^_^

2017-10-15 23:00:09

^^^^

강연물품 뒷정리를 하시는 스님의 자상하신 모습이 그려집니다..제자신도 못하면서,돈이 넘쳐나는 형제들이 돈이 없다 속이고 고생고생만 하신 어머닐 속이며 돌보지 않는 상황..이 계속될때 도닦고 그마음 다스려가며 살아가기란 참 쉽지만은 않은 일입니다 ㅠ질문자분 처럼,차라리 어머니보다 제가 더 고생을 했더라면,연세 드셔 노년에 저렇게 병약하진 않으실것인데 ㅠ[잊으라고 해도 못 잊을 사람이잖아요. ] 스님말씀말씀들마다에 하염없이 눈물이 나네요 ㅠ어머니를 편하게 모시려 고생하신 질문자분이 부럽네요~

2017-10-03 20:00:39

일 상

남들이 보면 부러울 만큼 잘 살고 있는 질문자가 마음이 정리가 안되어 혼선을 빚고 있었던 것 같군요. 마침 질문도 잘하고 스님 답변도 명쾌하니 속이 시원합니다. 질문자도 이제 가볍게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2017-10-02 23:4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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