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17.9.29 해외 즉문즉설 강연(33) 시카고
형제들이 상속 문제로 다투어서 마음이 아파요.

어제 밤 늦게 데이톤(Dayton) 하일숙 대표님댁에 도착하여 깊은 잠에 빠졌습니다. 이른 새벽 스님의 하루 작성으로 하루를 열었습니다. 스님과 수행팀은 각자 숙소에서 새벽예불과 천일결사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였니다.

기도 후 하일숙 대표님께서 준비해 준 음식과 하주영님이 구워준 따뜻한 빵으로 아침식사하였습니다. 숙소와 식사를 제공한 하주영님, 하일숙님 부부께 감사인사와 함께 집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8시에 미중부 최대도시인 시카고로 출발하였습니다.

미중부지역은 미국의 최대 곡창지로 드넓은 벌판이 끝없이 펼쳐집니다. 데이톤에서 출발하여 시카로로 가는 길은 오하이오주, 인디애나주를 거쳐 일리노이주로 건너갑니다. 시카고는 일리노이주에 있으며 미시간호의 남동쪽 끝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시카고랜드로 불리는 시카고광역권은 약 천만명의 인구가 살고 있으며 미국에서 세 번째로 큰 대도시권역입니다. 시카고로 가는 길에 드넓은 벌판에 설치되어 있는 풍력발전기를 볼 수 있었습니다. 풍력발전을 일으키는 수많은 거대한 하얀 바람개비가 쉼없이 돌아가는 모습은 장관이었습니다. 작년에도 이 길을 지나갔는데 잠을 잤는지 본 기억이 전혀 없습니다. 하일숙님께 물어보니 전에도 있기는 했지만 규모가 훨씬 더 커진 것 같다고 합니다.

데이톤에서 시카고까지 자동차로 5시간 거리라 점심요기를 해야 할 것 같아 출발한 지 4시간 뒤에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근처 패스트푸드점에서 간단히 점심요기를 하였습니다. 점심요기 후 시카고 호수변까지 바로 이동하였습니다. 저 멀리서 다운타운의 스카이 라인이 들어오면서 멋진 시카고 풍경이 가까워졌습니다.

‘바람의 도시’라는 시카고의 별칭에 걸맞게 바람이 많이 불고 있었습니다. 하늘도 맑아 호수물이 옥색 에메랄드빛이었습니다. 큰 호수에는 윈드서핑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마치 바다같이 파도가 아주 높았습니다. 호숫가를 따라 발달된 모래사장은 이곳이 바다처럼 느껴졌고 모래사장의 모래는 아주 고운 밀가루 같은 모래였습니다. 스님은 바람이 많이 부는 가운데 스카이라인이 예쁜 시카고 호수변에서 전국에 계신 유튜브 청취자들께 추석 한가위 인사를 하였습니다.

잠시 시원한 바람을 즐기다 다시 길을 서둘러 오늘 숙소인 이호윤님 댁으로 갔습니다. 숙소에 도착하니 -1시간 시차로 인하여 현지시간은 3시였습니다. 2시간 30분 거리인 얼바나샴페인에 살고 있는 이동우님이 와서 식사준비를 하고 있다가 1년만에 만나는 스님께 반갑게 인사하였습니다. 조금 있으니 해외지부 사무국장인 이정인님과 북미동부/중남미 지구장인 임금이님이 중부지역을 지원하기 위해 뉴욕에서 비행기로 왔습니다.

스님은 숙소에 도착하여 원고교정업무등을 하다가 촬영팀이 강연장으로 떠나기 전에 함께 이른 저녁식사를 하고 숙소에서 휴식을 하였습니다.

오늘 강연은 시카고 한인회관에서 있었습니다. 2014년 세계 100강때도 이곳에서 강연을 했는데 한인들이 한국문화원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는 곳입니다. 강연장에 도착하니 많은 자원봉사자들이 스님께 반갑게 인사하였고 스님도 봉사자들께 수고많다고 함께 반갑게 인사하였습니다.

특히 미네아폴리스에 살면서 매년 비행기를 타고 와서 자원봉사하던 오종윤님은 올해도 입구에서 안내하고 있다가 스님께 반갑게 인사하였습니다.

스님 소개 영상이 끝나자 스님은 큰 박수와 함께 연단에 올랐습니다.

“금요일 저녁에 쉬셔야 하는데 이렇게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석이 아직 멀었는데 한국은 추석연휴가 시작되어 벌써 귀향길이 난리라네요. 저는 추석날까지도 강연이 다 잡혀있습니다. 오면서 보니 낮에 반달이 떴더라구요. 보셨어요? 이렇게 좋은날 여러분들과 만나서 반갑습니다. 어제 콜럼버스에서는 아주 재미있었습니다. 질문자가 어려운 개인 얘기를 아주 솔직하게 꺼내 놓아서 정말 재미있게 대화를 했습니다. 여러분들도 뭐든지 함께 이야기 합시다.”

그러면서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오늘은 총 6명이 질문하고 스님과 대화하였습니다.

코칭하고 컨설팅일을 하면서 상담자 분석을 하는데 법륜 스님처럼 간단명료하게 상담을 해주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묻는 분, 첫 아이를 얻었는데 미국에서 키우면서 한국인이라는 자긍심을 가지도록 키우고 싶다는 분, 엄마가 가지고 있는 재산 중에서 조금 준다고 했는데 오빠는 안줄려고 하고 언니는 본인이 엄마를 이용하는 줄 알고 있다고 힘들어 하는 분, 기독교 국가인 미국에서 왜 아빠는 종교가 없는지 의문을 가질 아이들에게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지 묻는 분, 요즘 남녀간에는 자유롭게 만나고 헤어지다 보니 결혼을 못하는 것 같은데 자유롭게 사는 것을 어떻게 봐야 하는지 묻는 분, 모임을 갖는 친구중에서 한 친구가 20만불을 버는데도 5만불정도만 세금 신고를 하는 등 모임에서 불편함이 많은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는 분등 총 6명이 스님과 대화를 하였습니다.

그 중에서 다음의 질문과 스님의 대화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상속 문제로 고민입니다. 제 권리를 찾으려고 하고 있는데 마음이 아파요. 엄마가 지금 살아계시는데 갖고 계신 조그마한 재산을 저에게 주신다고 하셨어요. 그랬는데 저희 언니가 저에게 준다며 거짓말을 해서 엄마한테 돈을 타내서 땅을 사고는 그 땅을 조카 이름으로 돌려놨어요. 또 올해 한국 나가서 보니까 엄마가 갖고 있던 정기 적금을 언니 이름으로 했더라고요. 엄마는 언니가 동생인 제게 준다고 했으니까 그 말을 믿고 준 거예요. 저도 전에는 언니를 믿었는데, 자꾸 그렇게 하니까 이제는 언니를 못 믿겠어요. 그래서 작년에 한국 나갔을 때 엄마가 갖고 계신 조그마한 논에 제가 근저당을 맺고 왔어요. 그런데 언니가 말하길, 오빠는 다른 걸 받았으니까 이 논은 우리 둘이서 반반씩 나누어 갖자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또 하나 큰 문제가 있어요. 아버지가 20년 전에 돌아가셨는데 문서 한 가지를 빠뜨려서 상속 처리를 못한 논 한 건이 또 걸려 있어요. 저희가 5형제인데 엄마는 ‘아버지 살아계실 적에 큰오빠한테 농사 지으라고 허락했던 땅이니까 이 논은 큰오빠를 주자’ 라고 하세요.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건 아버지 계실 동안에 오빠더러 농사지어 살라고 한 거지, 오빠한테 아주 주셨던 건 아니잖아요. 그리고 저한테 올 상속 몫을 큰오빠가 안 주고 있는 것도 있거든요. 그래서 제가 오빠한테 제 몫을 달라고 했더니 못 준대요. 제 권리를 찾으려고 오빠한테 ‘제 몫을 주세요. 제 몫을 주면 위임장 쓰고 보내드리겠습니다’ 했더니 ‘못 준다. 네가 갖고 싶으면 와서 이 논을 잘라가라’ 이러더라고요.

제 권리를 찾기 위해서 한국에 있는 언니와 오빠에게 편지를 쓰려고 해요. ‘이러저러하게 해서 저한테 제 몫을 주시면 제가 위임장에 서명해서 보내드리겠다’ 이렇게 쓰려고 하는데 마음이 너무 아파요. 저는 혈육이라고 믿었는데 형제들이 다 너무 욕심만 부리는 것 같아요. 조금씩 나눠가지면 얼마나 좋아요? 저는 여기서 먹고 살 만하니까 그건 없어도 돼요. 그런데 언니나 오빠가 너무 욕심을 내니까 제가 오기를 부리는 것 같기도 합니다.”

“지금 질문하시는 내용은 상속하고는 조금 다른 문제예요. 본인이 약간 오해가 있네요. 부모님이 돌아가셨는데 부모님 명의로 된 재산이 현금이든 부동산이든 주식이든 있다면 이건 n분의 1이 나한테 돌아오도록 법으로 정해져 있습니다. 그게 내 권리예요. 그걸 두고 오빠나 언니가 ‘포기 각서를 써라’ 이럴 때 포기 각서를 쓰는 건 바보예요. 그럴 때 ‘오빠가 그냥 가져라, 나는 필요없다’ 이렇게 자발적으로 포기하면 그것은 도네이션(donation) 입니다. 그런데 다른 형제들이 ‘너는 미국에 사니까 우리가 갖겠다’ 할 때는 법에 보장된 권리를 포기할 필요가 없어요. 법에 보장된 권리는 나의 권리이기 때문에 내가 행사하면 되고, 언니나 오빠가 응하지 않으면 편지 쓸 필요도 없이 그냥 법원에 분할신청을 하면 됩니다. 그러니 인상 쓰고 얼굴 붉힐 필요가 없어요. 한번은 말해보고, 안 되면 ‘알았다, 그럼 변호사 써서 바로 분할신청 하겠다’ 이렇게 얘기하면 돼요. 그걸 두고 소송했다고 해서 얼굴 안 보겠다 하면 이쪽에서도 굳이 얼굴 볼 필요가 없어요.

상속은 그렇게 하면 되는데, 지금 질문자가 제기한 문제는 상속이 아니라 증여에 해당합니다. 엄마가 살아있으면서 주는 건 증여에 해당하니까 질문자의 권리가 아닙니다. 질문자는 지금 자기 욕심에 눈이 어두워서 오해하고 있어요. 증여는 엄마의 권리에 해당되지 질문자는 거기에 아무 권리가 없어요. 엄마가 주면 고맙고 안 주면 그만일 뿐 질문자의 것이 아니란 말이에요. 언니가 ‘이거 동생 주겠다’ 하고서 엄마한테 돈을 받아내 정작 조카 명의로 땅을 샀다 해도 그건 법적으로 조카 것이지 질문자 것이 아니에요. 그건 질문자에게는 아무런 권리가 없어요.

질문자가 ‘다른 형제들은 모두 엄마 걸 가져가니까 나도 가서 좀 가져와야겠다’ 이렇게 생각하면 엄마한테 가서 며칠 지내면서 이야기를 조근조근 해서 그 돈을 받아내면 됩니다. 논이 있으면 논 등기를 질문자 이름으로 바꾸든지, 엄마가 가진 땅을 팔아 그 현금을 질문자가 받든지 하면 됩니다. 다른 건 아무 도움이 안 돼요. 이건 권리가 아니라 질문자의 수완에 해당해요.

엄마에게 돈이 있는데 이걸 언니도 가져가고 오빠도 가져가고 다들 가져가는데 나도 그 돈을 가져올 기회가 생긴다면 엄마에게 직접 가서 이러저러하게 얘기해서 받아오는 건 괜찮아요. 그걸 보고 오빠한테 달라고 하거나 ‘엄마가 나 준다고 했는데 왜 안 주냐’ 이러는 건 질문자의 권리에 해당이 안 됩니다. 다시 말해 소송해서 재판을 하면 진다는 뜻이에요. 재판에 이기려면 엄마로부터 증여를 위임했다는 증거가 있어야 합니다. ‘이건 막내한테 줬다’ 이렇게 이름을 써서 도장까지 딱 찍은 문서가 있다면 그걸 증거 삼아 소송을 하면 돼요. 그런 게 없다면 말은 아무 도움이 안 돼요. 예를 들어 내가 돈을 1억원을 가지고 있는데 내 이름으로 갖고 있으면 세금을 내야 해서 친구한테 ‘네 이름으로 한 1년만 예금해두면 안 되겠냐’ 라고 해서 넘겨줬는데 상대방이 자기 돈이라고 해버리면 아무런 해결 방법이 없어요. 법적으론 내것이 아니라 그사람거예요.

질문자가 지금 얘기하는 부모의 증여 분은 질문자의 권리에 해당이 안 됩니다. 권리는 아니지만 질문자가 받고 싶다면 노력해서 받으면 돼요. 언니는 재주가 좋은 거죠.(청중 웃음) 자기 것도 다 받고, 동생 준다고 말해서 또 받았잖아요. 기분은 나쁘지만 그걸 갖고 언니를 형사처벌을 할 수는 없어요. 그것은 엄마가 자의로 줬기 때문이에요. 돈을 다시 찾아오려면 질문자가 아닌 엄마가 직접 소송을 해야 하거든요. 그런데 엄마가 돈 문제로 큰딸한테 소송을 할까요?”

“안 하죠.”

“그러니 그건 질문자의 것이 아니에요. 그걸로 마음 졸이면 질문자만 바보 되고 질문자만 손해예요. 질문자는 어머니와 떨어져서 미국에 와 있으니까 그 정도 불리함은 감수해야 해요. 가까이 있는 사람이 전화도 한 통화 더 하고 방문도 한 번 더 하고 말할 기회가 많으니까 요리조리 해서 증여를 받을 기회도 더 많거든요.

예를 들어 제 가까이 있는 사람이 ‘스님, 제가 요즘 생활 형편이 이러저러하게 어렵습니다’ 해서 제가 불쌍한 마음이 들어서 돈을 좀 주고, 다음에 얘기할 때 또 좀 줬다고 합시다. 묵묵히 제 일을 도와주면 사람들이 나중에 이 사실을 듣고 기분 나빠했다 해도 그걸 어떻게 할 방법이 없어요. 마찬가지로 언니와 오빠에게 준 건 엄마의 권리에 해당하는 거예요.

그런데 엄마가 돌아가셨다면 문제가 달라요. 어머니 명의로 남은 재산은 무조건 n분의 1로 똑같이 나누게 돼 있어요. 그때는 내가 그것을 가질 권리가 있는 거예요. 이건 권리에 들어갑니다.

그러나 증여는 권리가 아니에요. 질문자가 잘못 이해하고 있는 거예요. 상속은 권리이고 증여는 권리가 아니에요. 증여는 도네이션과 똑같아요. 질문자가 얘기하는 상황은 제가 이 절에도 기부를 하고 저 절에도 기부를 하니까 또 다른 절의 스님이 와서 ‘왜 나는 안 줍니까!’ 이렇게 따지는 것과 똑같아요.

예를 들어 여러분이 몸이 아파서 이 병원 저 병원을 가도 낫지 않았는데 누가 ‘그건 조상 귀신 때문이니 재를 지내야 낫는다’라고 해서 3천만 원을 들여 재를 지냈지만 낫지 않았어요. 하지만 그것은 고소한다고 돈을 받을 수 있는 게 아니에요. 내가 스스로 결정해서 낸 돈이니까요. 한국에서 종교가 이런 식으로 엄청난 돈을 갈취해 모으고 사회적인 문제로 제기되어도 법적으로 처벌이 잘 안되는 이유가 바로 그겁니다. 내가 자의로 결정했기 때문이에요. 총이든 뭐든 협박을 받아서 했다면 협박이나 사기죄가 성립하지만 이건 자의로 했잖아요. 천도재 지내서 안 나았다고 해서 항의할 수가 없어요. 그걸 어떻게 검증하겠어요? 병원에 가서도 돈 주고 치료받았지만 안 나았다고 해서 돈을 다시 달라고 할 수가 없잖아요.

마찬가지로 엄마가 결정해서 준 돈이기 때문에 내가 언니에게서 받는 것은 쉽지 않아요. 질문자가 받으려면 엄마한테 직접 가서 얘길 하고 증여를 좀 받으세요. 그걸 갖고 형제들하고 다툴 필요가 없어요.”

“알겠습니다.”

“나중에 어머니 돌아가시고 나서 상속재산이 있다면 그건 딱 n분의 1로 받을 수 있어요. 질문자가 상속포기 각서에 사인 안 해주면 그건 저절로 돌아오게 돼 있고, 형제들이 안 주면 소송을 하면 돼요. 아버지 명의로 남아 있는데 오빠 명의로 아직 못 넘어간 땅이 있다고 하면 그건 질문자가 오빠한테 사정하거나 항의하지 않아도 n분의 1이 저절로 질문자한테 오게 돼 있어요. 오빠 명의로 넘어가려면 반드시 나머지 가족의 사인을 받아야 하니까 질문자가 사인을 안 하면 명의가 넘어갈 수가 없거든요.”

“예, 그런데 큰오빠가 고집이 약간 세서요.”

“그건 오빠 고집과는 상관이 없어요. 오빠는 ‘와서 논을 떼가려면 떼가라’ 하고 지금 버티는 거예요. 자기 명의로 안 돌리고 놔둔 채 그냥 자기가 농사 짓고 살면 다른 형제 누구도 어떻게 할 수가 없거든요. 이런 경우에 질문자는 상속 청구 소송을 내면 돼요. 청구 소송을 내면 n분의 1을 지불하라는 판결이 나와요. 그런데 땅이 안 팔렸기 때문에 오빠는 n분의 1을 지불 안 해도 돼요. 그러면 질문자가 땅을 n분의 1로 잘라가지고 ‘이건 내 땅이다’ 하고 질문자 앞으로 등기를 옮길 수는 있어요. 예를 들면 땅이 100평인데 나한테 올 몫이 20평이라면 그 20평을 분할해서 내 이름으로 등기할 수 있어요. 형제간이라고 눈치보고 안 할 이유가 없어요. 돌아가신 아버지가 남긴 것에서 몫을 받는 것은 질문자의 권리예요.

그런데 그 권리에 해당되는 건 아버지 것뿐이에요. 그리고 그건 질문자한테만 권리가 있는 게 아니에요. 예컨대 ‘언니는 많이 가져갔으니까 이거는 오빠하고 나하고 둘이 나누자’ 이런 건 말이 안 돼요.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 증여를 누가 얼마나 많이 받았든 관계없이 상속은 무조건 n분의 1로 나눠 갖도록 권리가 주어져 있어요. 옛날에는 장자가 먼저 얼마를 가져가고 나머지를 나누었지만 지금은 안 그래요. 제가 아직 정확히 확인하진 못했지만, 최근에는 한국도 상속법이 바뀌어서 무조건 절반은 배우자가 가져가고 나머지를 자식들이 n분의 1로 나누도록 한다고 해요. 전에는 배우자까지 포함해서 n분의 1씩 가져갔지만 지금은 절반을 잘라서 배우자를 주고 나머지를 갖고 n분의 1로 나눈대요. 그러니 그건 질문자의 권리에 해당돼요. 하지만 증여는 권리가 아닙니다. 말씀하신 내용은 대부분 증여에 해당되는데, 그걸 자꾸 권리라고 생각해서 언니를 미워하면 안 돼요.”

“미워하지는 않고요, 그냥 제 마음이 아플 뿐이에요. 형제간에 어떻게 이러는지 모르겠어요.”

“형제간에 어떻게 이러냐고 말하지만 그건 어릴 때 생각이에요. 질문자가 아직 정신연령이 미성숙한 단계예요.”

“언니가 지금 이러는 건 저한테 피해 주는 거 아니에요?”

“아니에요. 질문자가 착해서 그런 게 아니라 바보라서 그래요.(청중 웃음) 엄마한테 잘 보이고 살살 설득해서 증여받을 수 있는 걸 못 받는 건 질문자의 노력 부족이지, 언니를 미워할 이유는 아니에요.”

“멀리 떨어져 계시니까 솔직히 그러기가 힘들어요.” (질문자 웃음)

“질문자가 미국 올 때는 그만큼 유리했듯이 증여 받을 때는 그만큼 불리한 거예요. 미국에 와서 유리한 건 다 가져놓고 한국의 것도 유리한 걸 다 가지겠다며 그건 욕심이예요.” (청중 웃음)

“그래도 열심히 살았어요. 혼자 고생해서 여기까지 왔는데...”

“혼자 고생해서 왔든 말든 지금 엄마 가까이에서 증여 받을 수 있는 걸 못 받는다면 그건 질문자가 노력을 못 했다는 거예요. 자기 노력이 부족했는데 언니를 왜 나무라요? 언니는 그만큼 가까이에서 자기의 수단을 다 동원한 거예요. 엄마한테 잘 보여서 증여를 받은 건데 그걸 갖고 언니를 나무라면 어떡해요. 이것은 언니가 나쁜 사람이어서도 아니고 질문자가 착한 사람이어서도 아니에요. 굳이 말한다면 질문자가 노력이 부족한 사람, 어리석은 사람이라고는 말할 수 있지만 착한 사람인 건 아니에요. 그렇게 욕심내고 있는데 그게 어떻게 착한 사람이에요?” (질문자 웃음, 청중 웃음)

“그래도 제 몫은 찾아야죠.” (질문자 웃음)

“먹고 살만하면 증여는 너무 욕심내지 마세요. 증여는 어머니가 주시면 다행이고 안 주면 그만인 거예요. 엄마가 다른 형제는 주고 나한테는 증여를 안 한다면 한국에 가서 엄마한테 얘기할 수는 있죠.

‘엄마, 다른 형제는 다 주고 왜 나만 안 줘요? 나도 좀 필요해요.’
‘그래? 그러면 너는 뭐 줄까?’
‘나는 땅은 줘봐야 못 쓸 테니까 현금으로 주세요.’

이렇게 얘기하면 되죠.” (청중 웃음)

“그 현금을 언니가 다 가져가버렸어요.”

“그건 이미 지나가버렸잖아요. 이미 지나가버린 걸 얘기해서 뭐해요. 언니한테 따지면 그 돈을 돌려받을 수 있을까요? 아뇨, 돈도 못 받고 언니하고 사이도 나빠져서 돈 잃고 사람 잃는다는 대표적인 사례가 됩니다. 그건 이미 내 돈이 아니니까 포기해야지 미련을 가지면 안 돼요.

엄마에게 명의가 남은 게 더 있으면 엄마 돌아가시기 전에 질문자가 증여를 받아야 해요. 엄마가 아무리 ‘너희는 다 줬으니 남은 건 내가 죽거든 막내 줘라’ 이렇게 말해놔도 아무런 소용이 없어요. 돌아가시면 무조건 n분의 1로 나누게 돼 있거든요. 그러니까 살아계실 때 증여를 받고, 돌아가신 뒤에는 상속분의 n분의 1이라는 자기 권리를 찾아야 해요.

증여는 질문자의 것이 아니에요. 증여는 엄마의 자유로운 의지에 해당되는 거예요. 누가 살살 꼬드겨서 가져갔다고 해도 그건 질문자의 권리에는 해당되지 않습니다. 누구에게 증여를 하든지 그건 본인의 마음이에요. 예컨대 늙은 아버지가 혼자 지내다가 30대 젊은 여자와 연애를 한다면 자식들은 난리가 나요. ‘그 여자가 왜 늙은 영감을 좋아하겠냐. 재산을 빼앗아 가려고 그런다’ 라고 해요. 그래도 그건 자식들이 간섭할 수가 없어요. 내가 누굴 주든 그건 그 사람의 권리에 들어가는 거예요. 아들딸들이 아버지 것을 자기 것이라고 착각하기 때문에 이런 간섭의 문제가 생겨요. 누구를 주던 그건 본인의 자유에요. 그러나 돌아가시면 그건 무조건 상속에 해당됩니다. 다시 말해서 권리에 해당돼요.

어쨌든 현재로서는 도덕을 갖고 사는 게 아니라 법을 갖고 살기 때문에 법에 따라야 해요. 언니가 그러는 건 형제간에 조금 얄밉긴 하지만 그건 어릴 때 질문자가 생각하던 형제애이고, 이제는 상황이 바뀌었어요. 질문자는 어릴 때 여기 이민을 왔기 때문에 어릴 때의 형제애를 가지고 있지만 이제는 다들 결혼해서 자기 가족이 있고 자기 아들딸이 있으니까 더 이상 옛날의 형제 사이가 아니에요. 지금도 형제라고 생각하면 안 돼요. 과거에 형제였을 뿐이지, 지금은 다 독립된 가족을 만들었기 때문에 자기 가족을 어떻게 보호할 거냐가 우선이에요. 이건 인간의 권리예요. 그걸 나쁘게 생각하면 안 돼요.

‘어떻게 형제간에 이럴 수 있느냐?’라고 하지 마세요. 우리가 어릴 때는 아버지 형제들이나 어머니 형제들이 싸우는 걸 보면 이해가 안 됐어요. 그런데 나이 들어 보면 어느 집이고 다 증여와 유산 문제로 형제간에 싸웁니다. 형제간에 우애가 있는 집은 십중팔구 부모가 남긴 게 없는 경우예요.(청중 웃음)

그래서 제가 늘 얘기하잖아요. 자녀들이 화목하게 살려면 가능하면 증여도 많이 하지 말고 재산도 남기지 마라고요. 다 없애 버리면 나중에 내가 어떤 일을 당할지 모르니까 죽고 난 뒤에 조금 남아 있을 정도는 돼야 해요. 형제간에 조금씩 나눠가질 수 있도록 놓아두고, 나머지는 다 저를 달라는 거예요.(청중 웃음) 저를 주면 인도의 가난한 아이들도 돕고, 굶어죽는 사람도 돕고, 이렇게 좋은 일에 쓰니까 얼마나 좋아요? 그런데 그걸 욕심부려서 움켜쥐고 있으니까 살아 있을 때는 그걸 서로 증여 받으려고 부모한테 잘 하는 척하며 싸우고, 돌아가신 뒤는 장례식장에서들 대놓고 싸웁니다. 장례식장에 가보면 부유한 집은 장례에는 관심이 없고 전부 상속 문제를 놓고 싸우고 있어요. 그게 인간사니까 그저 자녀는 교육시키고 결혼하면 딱 정을 끊고, 남는 게 있으면 사회로 환원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형제간에 우애도 좋고 세상도 잘 돌아가는 거예요.

옛날부터 우리가 상속하는 것은 두 가지가 있어요. 하나는 지위의 상속이고 또 하나는 재산의 상속입니다. 옛날에는 자기 아버지가 공작이면 아들이 공작이 되고, 아버지가 후작이면 자기도 후작이 됐어요. 고래로부터 이렇게 혈통을 따라 지위와 재산이 상속됐는데, 민주주의가 되면서 지위 상속은 없어졌어요. 그런데 재산 상속은 아직도 그대로 가고 있어요. 옛날 사람들은 지위가 상속되는 것, 예를 들어 왕의 아들이 왕 되는 걸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했지만 이제는 왕의 아들이 왕 된다고 하면 말도 안 된다고 해요. 그런데 우리는 아직도 재산상속은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왜 아버지 재산이 아들 재산이 돼야 해요? 그건 사회로 환원돼야 해요. 살아 있을 때 모든 사람이 재산을 똑같이 한다는 건 인간의 능력을 무시하는 것이니까 잘못된 것이라 하더라도 죽으면 모든 재산은 사회로 환원이 돼야 합니다.

그런데 자본주의에서는 자본이 상속되는 건 아무도 문제를 안 삼아요. 그래서 아직 우리 사회가 완전히 민주화된 건 아니라고 할 수 있어요. 권력의 상속은 멈췄지만 자본의 상속은 지금도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있잖아요.

지금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자본의 상속을 인정하는 대신에 40퍼센트는 국가로 환원하고 60퍼센트 상속을 허용합니다. 원래 완전히 막아야 할 것을 60퍼센트 허용해줬으면 이 40퍼센트는 당연히 환원해야 할 텐데, 그걸 안 내려고 편법을 쓰는 거예요. 법을 어기면 누구라도 처벌을 받아야 하니다. 재벌회장이든, 대통령이든, 종교인이든 ….

법은 만인 앞에 평등해야 합니다. 법치주의를 자꾸 진보와 보수의 문제라고 오해하면 안 됩니다. 법치주의는 만인이 법앞에 평등해야 하는 거예요.”

“감사합니다.” (청중 박수)

6명의 질문자와 대화를 하고 나니 어느덧 2시간 30분이 지나갔습니다. 오늘 시카고 강연에는 봉사자 15명을 포함하여 총 120명이 참가하였습니다. 어제 콜럼버스 강연과 마찬가지로 첫 질문부터 웃음이 터지면서 강연내내 즐겁고 유쾌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즐거웠어요? 인생이란 재미가 있어야해요. 요즘 교회나 절은 재미가 없어요. 코미디는 재미는 있는데 남는 게 없어요. 오늘은 재미도 있고 남는 게 있었어요? (네) 재미가 있다는 것은 지금이 좋다는 거고, 남는 게 있다는 것은 나중에 좋다는 거예요. 옛날에 부처님 말씀이나 예수님 말씀은 재미있었어요. 그래서 사람들이 구름떼처럼 몰려들고 그랬어요. 그런데 그것을 지식으로 만들어가지고 가르치고, 자꾸 명령식으로 강압하다보니 재미가 없어진 거예요.

만약에 여기 음식이 있는데 빛깔도 좋고 모양도 좋아 먹겠다고 하면, 부처님은 ‘거기 쥐약 들었다’ 그래요. 쥐약 들었다 그러면 음식을 먹어요, 안먹어요? (안먹어요) 그런데 먹고 싶은데 먹지마라고 해서 참는 것과 같아요, 달라요? (달라요) 쥐약 들었다고 하면 딱 끊어요. 이것이 예수님이 말한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라는 거예요. 진리, 진실을 알면 자유로워지는거예요. 음식으로부터 내가 딱 자유로워져 버리는거예요. 그런데 후대로 내려오면서 ‘쥐약 들었으니까 먹지마라’ 이렇게 된 거예요. 그런데 예수님이나 부처님은 ‘먹지마라’ 이런 말은 원래 안했어요. ‘쥐약 들었다’ 이 말만 했고, 이 말만 하면 우리가 알아서 안 먹지요. 그런데 ‘먹지마라’ 하니 먹고 안 먹고의 선택을 예수님이나 부처님이 해주고 우리는 따라야 되니까 자꾸 심리가 억압이 되는 거예요. 그러니 ‘조금만 먹으면 안될까?’ 자꾸 이런 생각이 드는거예요. (웃음)

여러분들이 이혼하고 안하고는 여러분이 선택하는 것이고, 이혼을 선택하면 이런 문제가 생긴다고 저는 말할 뿐이에요. 진실만 말하면 되는 거예요. 그러면 먹고 죽든지 안 먹고 살든지 이것은 본인이 알아서 할 일이에요. 여러분들은 종교를 가지면서 자기선택권을 잃어버렸어요. ‘자꾸 어떻게 해야 합니까?’ 라고 물어요. 본인이 알아서 하면 돼요.

그런데 어리석어서 화를 자초하게 되니 성인에게 물어봐야 합니다. 그러면 ‘하라, 하지마라’ 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하면 이런 일이 생기고 저렇게 하면 저런 일이 생긴다고 단지 말만 해줄 뿐이에요. 성인의 말씀은 원래 진리를 말하고 진실을 말할 뿐이고 우리 인생에 간섭하지 않아요. 토끼도 자유롭게 자기 맘대로 사는데 사람이 간섭받고 살아서야 되겠어요. 그러나 내가 어리석어서 화를 자초하니까 그 화 자초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좀 지혜로워야 돼요. 그렇게 하면 내가 좀 더 행복하게 살 수가 있어요. 이것이 원래 성인의 가르침입니다. 너무 종교화되어 이것이 너무 우리를 속박하는 것으로 되어 있어요. 원래 그렇지가 않아요. ‘성인의 가르침은 속박받고 있는 우리를 좀 더 자유롭게 살도록 길을 열어주신 것이다’ 이렇게 이해하시고요. 기존의 종교에 대해서 부정적인 것은 이해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나 부처님에 대해서 너무 부정적이 될 필요는 없어요. 존경을 받았는데 그 존경을 이용해서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종교화가 되면서 온갖 부작용이 지금 발생하는 것이니까 그분들은 우리를 자유롭게 하고자 하였으며 우리를 아끼고 사랑하는 분이라는 것을 아셨으면 합니다.”

이렇게 마무리를 해주었습니다.

강연이 끝나고 스님은 밖에서 책사인회를 가졌습니다. 많은 분들이 구입한 책을 가지고 와서 스님께 사인을 받고 사진을 찍기도 하였습니다.

사인회를 하는 동안 오늘 질문한 분께 스님과의 대화가 어땠는지 질문하니 명쾌하여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미국에 온지 48년 되었다는 분은 심장마비로 3번이나 쓰러졌는데, 스님의 법문을 매일 유튜브로 듣는데 주변사람이 참 많이 바뀌었다고 말해준다고 하면서 스님께 너무 감사하다고 하였습니다. 스님의 법문만으로도 새로 태어난 것 같다며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참 기뻤습니다. 젊은 분들도 스님의 말씀을 유튜브로 듣고 있는데 정말 이치에 맞고 명쾌하여 좋다고 하였습니다. 오늘 강연에서도 명쾌하게 말씀해주셔서 좋았다고 하였습니다.

사인회를 마치고 스님은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단체사진촬영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오늘 강연의 총괄을 맡아 행사준비를 잘 해준 시카고 열린법회 담당자 이호윤님께 사인한 책을 선물로 드리고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이어 스님은 묘덕법사님이 안계시니 봉사자들을 둥그렇게 앉힌 후, 미시시피, 얼바나샴페인, 미네아폴리스등 외부 지역에서 강연 봉사자로 참여하신 분, 시카고 인근에서 오신 분, 불교대학 하신 분, 법회에 나오는 분, 오늘 당일봉사자분등 어떤 분들이 자원봉사를 했는지 물어보기도 했습니다. 그런 후 봉사자들을 위해 한 말씀을 들려주었습니다.

“우리가 살아온 세상은 최근에 빨리 변화하고 있어요. 제 법문만 해도 처음에는 카세트테이프, 비디오테이프로 했고, 그 다음이 CD 였고, 그 다음에 USB에서 다운로드 해서 보았고, 이제는 바로 스마트폰으로 보는 것으로 바뀌었어요. 조금 더 가면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등이 더 빨리 보급될거예요.

봉건시대는 할아버지, 아버지, 아들, 손자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살아갔습니다. 요즘은 모두가 다 다른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는 시대입니다. 옛날에는 무명, 삼베등 모두 수공으로 옷을 해입었습니다. 그 방식은 이천년전부터 해오던 방식이고 내 어릴 때만해도 이천년전 방식으로 하면 되었습니다. 지금은 완전 다 바뀌었습니다. 이런 변화의 시기를 혼란기라 할 수도 있지만 저는 ‘내 머리속은 박물관이다. 어릴때는 시골에서 살아서 조선시대 하는 방식을 내 눈으로 보고 경험할 수 있었다. 지금은 최신식 기술문명까지 경험하고 있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빠른 속도로 바뀌니 가치관의 혼란, 도덕관의 혼란이 올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수행을 해야 심리적 안정을 가질 수 있습니다. 수행을 하면 원리를 이해하고 자기를 어느 정도 콘트롤 하면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을 내가 살아가는 것 같지만 사실 까르마에 반응하고 감정에 휘둘려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프로그램이 짜여진대로 살아간다’ 고 하고 ‘운명이다’ 라고 합니다. 그런데 수행을 하면 필요하지 않는 것에는 반응하지 않고 자기 까르마로부터 자기가 자유로워집니다. 직업, 종교 이런 것에 상관없이 이런 마음 공부를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짐승은 괴로워하지 않습니다. 괴로워한다면 짐승보다 못합니다. 대신 짐승은 행복해하지도 않습니다. 괴로워하지 않고 행복해하면 짐승보다 나은 것입니다. ‘깨달의장’ 수련을 해보면 내가 반응하는 고정관념이 있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그 고정관념 안에서 생각을 합니다. 그것이 깨어지면 지금보다 더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유튜브 법문을 혼자 들으면 듣는데서 끝나지만 나누기를 하면서 내 마음을 나눠보면 법문이 자기화되는 과정이 있습니다. 그래서 함께 수행법회에서 법문 듣고 나누기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서 정진을 하면 쉽지는 않지만 자기 삶을 바꿀 수 있습니다. 자기 운명, 자기 삶의 주인이 되어야 합니다. 돈이 아무리 많고 아무리 지위가 많아도 행복하지 않습니다. 수행자가 되면 재앙이 닥쳐도 웃으면서 보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봉사자들과 일일이 악수하면서 감사인사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사무국장님, 지구장님과 나누기를 하라고 하면서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숙소에 도착하니 10시가 되었고 1시간 뒤에 사무국장님과 지구장님이 숙소로 복귀한 다음 내일 일정을 공유하고 오늘 일정은 마무리 하였습니다. 내일은 오전 8시 45분 비행기로 달라스로 이동합니다. 내일은 달라스에서 소식전하겠습니다.

함께 만든 사람들
김순영 이준길 손명희 정란희 조태준

전체댓글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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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규태

감사합니다!!!^_^

2017-10-15 22:24:31

정지나

‘프로그램이 짜여진대로 살아간다’
오늘도 나를 알아차림으로써 내가 그렇게 반응하는 나를 봅니다.
그것이 자동 반응이든 아니든 내가 행복하고 자유롭게 삶을 살아가는 것이 중요한것같습니다.
늘을 감사합니다^^

2017-10-09 18:07:16

우선영

스님! 대박입니다! 후반부 말씀 정말 깨닫도록 하네요!

2017-10-08 21: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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