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17.10.1 해외 즉문즉설 강연(35) 휴스턴
두 딸이 매일같이 서로 싸워요, 어떡하죠?

고요한 새벽입니다. 그러나 어제와 다른 새로운 아침을 맞이합니다. 새벽 5시 달라스 정토법회 회원들과 숙소에서 함께 새벽예불과 천일결사기도를 하였습니다. 스님의 집전으로 새벽예불을 올렸습니다.

12명이 함께 예불을 올리니 이곳이 바로 청정한 법당처럼 느껴집니다. 집이 절이 되고 절이 집이 되는, 그리고 우리가 수행자임을 잊지 않는 순간이 됩니다. 달라스 정토회원들이 자유롭고 행복해지기를 발원한다는 스님의 축원소리에서 중생을 한없이 사랑하는 스님의 자비로운 마음을 느낍니다. 스님 축원은 늘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 북한주민들의 고통없는 삶으로 연결됩니다. 어제 미 국무부 장관이 북한과 직접적인 대화를 하겠다는 얘기를 했는데 한반도에 드리워진 전쟁의 기운을 걷어내어 평화와 통일의 물결이 넘치는 한반도가 되길 기원해봅니다.

아침기도후에는 함께 기도한 달라스 정토법회 회원들과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숙소를 제공한 한용우님, 이향희님 가족께 감사인사들 드리고 기념사진촬영을 하였습니다.

달라스 정토회원들은 휴스턴으로 길을 떠나는 스님께 삼배로 인사드렸습니다.

정성껏 차려진 음식으로 아침식사를 하고 바로 Texas A&M 대학교가 위치한 College Station으로 출발하였습니다. 중간에서 두 팀으로 갈라져 촬영팀은 휴스턴의 강연장으로 바로 이동했습니다.

College Station에 도착하여 길가에서 Home Depot를 발견하고 스님은 밭일과 정원일에 쓸 가위를 사러갔습니다. 작년에도 달라스에서 휴스턴으로 내려가던 길에 화장실에 간다고 Home Depot에 들렀습니다. 이 때 우연히 산 가위가 성능이 좋아 시간이 나면 Home Depot에 들러 가위를 구입하기로 했던 참이었습니다. Home Depot는 건축일과 정원일 뿐만 아니라 집에 필요한 모든 물품을 판매하는 곳입니다.

앤드류 나찌오스 전처장님을 만나기로 한 Bush School (Government and Public Services)에 도착하니 일요일이라 건물의 문이 닫혀있어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교수님께 연락하니 교회에서 예배마치고 이제 막 출발한다고 하여 20분 이상 늦게 미팅을 시작하였습니다.

달라스에서 이향희님께서 준비해준 주먹밥과 고구마로 주차장에서 점심 요기를 하고 기다리니 교수님께서 급히 오셨습니다. 두 분은 반갑게 인사하고 교수님 연구실로 자리를 옮겨 대화를 하였습니다. 교수님께서는 스님이 어느 지역을 방문했는지 물어보기도 하고 텍사스주 달라스, 휴스턴, 오스틴 지역에 한인들이 많이 살고 있음을 알고 놀라워 하셨습니다. 그리고 스님 일정을 보시고 무사히 건강하게 순회강연이 마치길 기원해주었습니다. 또한 스님도 허리케인 하비로 인한 휴스턴의 홍수피해에 대해서 묻기도 하였습니다. 이어 교수님은 한반도의 긴장상태에 대해 스님께 질문을 했습니다. 교수님은 스님이 생각하는 현재 북핵문제에 대한 해결방안, 북한경제 및 주민들의 생활 등에 대해 대화를 이어갔습니다. 두분은 오랫동안 북한에 대한 연구를 해왔기 때문에 짧은 시간이었지만 많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휴스턴 강연이 오후 3시부터 있기 때문에 원래 늦어도 1시에는 출발하기로 했는데 미팅도 늦어진데다 두 분의 대화도 길어져서 1시 30분이 다 되어서야 급하게 대화를 마무리하고 다음에 만날 것을 기약하며 아쉬운 작별을 하였습니다. 약 90마일의 거리를 부지런히 달려 강연시간 5분전에 오늘 강연이 열리는 휴스턴 한인회관에 도착하였습니다.

강연장에 도착하니 임금이지구장과 휴스턴 정토법회 회원들과 봉사자들이 반갑게 스님께 인사하였습니다. 스님은 주차장에서 법복을 입으시고 강연장으로 들어서다 어린이들이 입구에서 안내하고 있는 것을 보고 반갑게 인사하며 함께 사진을 찍었습니다.

휴스턴 시는 미국 텍사스 주의 가장 큰 도시이며, 미국 전체로는 네 번째로 가장 많은 인구가 사는 도시입니다. 지난 8월말에 허리케인 하비로 인해 휴스턴 시가 심각한 홍수피해를 입었습니다. 우리 정토회원도 4명이나 홍수피해를 입었다고 합니다. 강연을 해야 하나 할 정도로 심각할 지경이었다고 합니다.

시간이 촉박해 달라스에서 운전봉사를 해준 방종훈님과 한용우님, 그리고 이두라 부총무님께 제대로 인사도 하지 못한 채 강연장에 입장하였습니다. 스님 소개영상이 나오자 스님은 큰박수와 함께 연단에 올랐습니다.

“오늘 일요일 오후인데 많이들 오셨네요. 허리케인 하비로 홍수로 인해 도시전체가 물에 잠겨 많은 피해를 입었다고 들었습니다. 항공사진을 보니 피해가 심각했습니다.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침수피해를 입은 분 손들어 보세요? 침수되었는데도 오셨네요. 다시 한 번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이러한 재난은 단기적으로 보면 고통이고, 장기적으로 보면 미래에 더 큰 고통이 올 것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미래의 큰 재앙을 막을려고 작은 재앙이 미리왔다고 긍정적으로 생각해봅시다.”

그런 후 질문을 받고 대화하였습니다.

오늘은 총 6명이 질문하였습니다.

두 딸이 매일 싸우는데 어떻게 하면 안 싸우게 할 수 있는지 묻는 분, 친정어머니에 대한 서운한 마음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모르겠다는 분, 지구온난화로 인해 자연재해가 심각한데 환경문제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져야 하는지 묻는 분, 동생과 싸우고 싶지 않고 싸워도 금방 화해할 수 있는지 묻는 10살 초등학생, 둘째아이 출산후 엄마랑 3개월을 살아야 하는데 엄마와의 갈등이 있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는 분, 허리케인 하비로 인해 아내가 직장을 나가야 해서 불편한데 어떻게 하면 좋을지 묻는 분등 총 6명이 스님과 대화하였습니다.

그 중에서 다음의 질문과 스님의 대화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딸이 두 명 있습니다. 서로 사이가 나빠서 매일같이 싸웁니다. 언니는 동생 없이 외동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동생 또한 마찬가집니다. 제가 진단하기에는 언니는 동생에 대한 애정이 부족한 것 같고, 동생은 언니에 대한 존경심이 없는 것 같습니다. 딸들이 싸우지 않고 서로 우애 있게 지내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아이들이 몇 살이에요?”

“지금 5학년, 7학년이에요.”

“그러면 아직 성인이 안 됐잖아요. 이런 나이의 아이들을 ‘어린 아이’라고 부릅니다. 서양에서는 ‘어린 아이’라는 말을 순수하다는 개념으로 쓸 때가 많습니다. ‘아기’, ‘아이’라고 하면 ‘순수하다’, ‘물들지 않았다’는 뜻으로 주로 사용해요.

그런데 우리나라의 언어로 ‘어리다’라는 말에는 어리석다는 뜻이 들어 있어요. 뭘 모른다는 말이에요. 즉 ‘어린 아이’라는 말은 그 용어 자체에 ‘뭘 모르는 사람’이라는 뜻이 있어요. 그래서 세종대왕이 훈민정음 서문에서도 ‘어린 백성이...’ 라고 하잖아요. ‘어린 백성’이란 말은 아기 같은 백성이란 뜻이 아니라 어리석은 백성이란 뜻입니다.

이렇게 어린 아이라는 말에는 순수하다는 뜻도 있지만 어리석다는 뜻도 있습니다. 세상물정을 아직 모른다는 뜻이에요.

그런데 방금 질문자는 ‘동생이 5학년인데 언니를 존경할 줄 모른다’고 말했어요. 어린 아이가, 즉 뭘 모르는 어린 아이가 벌써 언니를 존경하도록 기대하는 것은 좀 지나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5학년 어린이가 언니를 존경하는 게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질문자는 어릴 때 언니를 존경했어요? 자기도 안 한 걸 아이한테 요구하니까 힘든 거예요. (청중 웃음)

어른이 되어도 다른 사람을 사랑하기가 쉽지 않잖아요. 자기 남편, 자기 아내도 사랑 안 하는 사람이 있고, 자기 자식도 제대로 안 돌보는 사람이 있는 세상에 살면서 7학년이 벌써 동생에게 사랑을 베풀고 애정이 있기를 바란다는 건 과한 요구예요. 질문자는 그랬어요?” (청중 웃음)

“저는 첫째라서 동생이 저를 잘 따랐고, 저도 동생하고 싸운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싸운 적이 없는 건 동생이 대들지 않았으니까 안 싸웠겠죠. 동생이 질문자한테 빡빡 대들었으면 질문자랑 싸웠을까요, 안 싸웠을까요?”

“동생이 대들었으면 싸웠을 것 같아요.” (모두 웃음)

“그래요. 질문자가 동생에게 애정이 많아 안 싸운 게 아니에요. 동생이 안 대들다 보니까 싸울 일이 없어서 안 싸운 거예요.

싸운다는 건 부모가 볼 때는 안 좋은 일이죠. 안 싸웠으면 좋겠다는 부모의 바람은 저도 충분히 이해가 돼요. 형제간에 싸우는 걸 좋아하는 부모가 누가 있겠어요? 하지만 그건 부모의 입장이고 아이들 입장에서는 또 달라요. 5학년과 7학년은 두 살 차이밖에 안나요. 언니 입장에서는 동생이 대드니까 기분 나쁜 거예요. 동생 입장에서는 ‘나이 차이가 두 살밖에 안 나는데 언니라고 뭘 그렇게 폼 잡냐’ 싶고요. 아이 입장에서는 그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러니 동생 입장에서는 언니와 똑같이 하려 들고, 언니 입장에서는 ‘너는 어쨌든 동생이니까 나보다 한 칸 아래여야 한다’ 이렇게 해서 싸우게 되는 거예요. 지금 미국과 북한이 싸우는 것이나 두 딸이 싸우는 것이나 비슷해요. 이건 굉장히 자연스러운 거예요. (청중 웃음)

그런데 질문자는 지금 5학년 아이에게 언니를 존경하기를 원하고, 7학년 아이에게 동생을 사랑하기를 원하고 있어요. 제가 보기엔 질문자가 좀 과해요.”

“싸우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니까 그냥 놔두란 말씀이세요?”

“놔두라는 얘기는 아니에요. 싸우는 것 자체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거예요. 갈등할 수 밖에 없는 인간관계이기 때문에 싸우는 것 자체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겁니다.

질문자가 자랄 때 안 싸웠다고 하지만 그건 제가 보기에 일반 가정에서는 아주 드문 경우예요. 형제간에 안 싸우는 건 열에 한 둘도 안 되고, 여덟아홉은 싸우는 게 정상이에요. 싸울 수밖에 없게 되어 있으니까요. 언니는 언니대로 질서를 잡으려 하고 동생은 동생대로 그 질서 속에 안 들어가려고 하거든요. 미국은 지금 질서를 잡으려고 하고 북한은 그걸 안 받아들이려고 해서 지금 싸우듯이, 이건 자연스러운 거예요.

그러니 질문자가 먼저 그걸 자연스럽다고 봐야 해요. ‘두 아이가 문제다!’ 라고 보지 말고요. 동생이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고, 언니가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에요. 그저 자연스러운 현상일 뿐입니다. 여기에 더해서 질문자가 기준이 있어야 해요.

첫째, 누군가를 주먹으로 때리는 건 안 된다고 명확히 가르쳐야 합니다. 서로 갈등이 있는 건 이해가 되지만 때리는 건 안 됩니다. 그가 동생이든 언니든 폭력적으로 상대를 괴롭히는 건 옳지 않아요. ‘네가 언니니까 참아라’, ‘네가 동생인데 왜 그랬니’ 이렇게 말하면 안 돼요. 때리는 건 누가 먼저 때렸든 모두 잘못된 거예요. 이렇게 질서를 딱 잡아줘야 합니다. ‘이거는 아니다’ 라고 가르쳐야 합니다.

둘째, 물건을 훔치거나 빼앗는 것도 안 된다고 가르쳐야 해요. ‘동생이 그랬으니까 봐 줘라!’ 이렇게 말하면 안 되고, ‘언니가 그랬으니까 봐 줘라!’ 이래도 안 돼요. 뺏거나 훔치는 것은 모두 잘못된 거예요.

셋째, 거짓말하거나 욕설을 하는 것도 안 된다고 가르쳐야 해요. 서로 자기 의견을 내고 큰소리치는 것까지는 좋은데 욕설을 하거나 거짓말을 하는 건 안 됩니다. 이런 원칙은 아이들 사이에서만이 아니라 모든 인간관계에 똑같이 적용됩니다.

성추행하면 안 된다, 술 마시고 취해서 남을 괴롭히면 안 된다, 이렇게 두 가지가 더 있는데, 이것은 아이들에게는 해당이 안 되니까 세 가지만 말씀드리는 겁니다. 이 세 가지는 동생이 해도 안 되고, 언니가 해도 안 되요.

그리고 엄마가 자꾸 ‘네가 언니니까 참아라’, ‘네가 동생이니까 참아라’ 이런 말을 하면 나중에 아이들에게 상처로 남습니다. 엄마는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서 ‘언니니까 참아라’, ‘동생이니까 참아라’ 이렇게 말했을 뿐인데 아이들은 양쪽 다 상처를 받았어요. 동생은 ‘내가 동생이라고 해서 엄마가 내내 나만 참으라고 했다’라고 하고 언니는 ‘엄마가 늘 언니니까 참으라고 했다’ 이렇게 됩니다. 상처는 오래 가기 때문에 엄마가 자기만 야단쳤다고 기억하는 거예요.”

“예, 지금도 그래요.”

“그래요. 그러니 야단을 쳐도 ‘언니니까’, ‘동생이니까’ 이런 말을 해서는 안됩니다. ‘언니인 네가 손아래 동생하고 싸워야 하겠어?’ 이렇게 말하거나 ‘조그마한 게 언니한테 대드니까 맞지!’ 이렇게 말하면 안 된다는 거예요. 언니든 동생이든 자기들끼리 논쟁을 할 권리가 있으니까요.

싸우는 것 자체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되 질문자가 잘 관찰해 보고 원칙에서 벗어날 때 타일러야 해요. 어떤 일을 서로 막 논쟁을 해서 해결하는 건 괜찮은데 때리는 건 안 돼요. 물건을 빼앗거나 훔치는 것도 안 됩니다. 욕설이나 거짓말 하는 것도 안 돼요. 이런 관점에서 그걸 누가 먼저 했는지를 살펴서 ‘이건 잘못된 거다’ 라고 가르쳐야 합니다. 그렇다고 질문자가 나서서 애들을 때리는 것도 안 돼요.(청중 웃음) 그런 걸 살펴서 교화를 하면 이런 갈등 덕분에 아이들이 엄마로부터 좋은 교훈을 배울 수가 있어요.

그런데 부모가 보는 관점과 아이들이 보는 관점이 서로 달라요. 자녀가 싸우는 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니에요. 옛날에 아이 5명을 키웠던 시절을 생각해 봅시다. 엄마가 사탕을 5봉지 사와서 한 아이한테 한 봉지씩 줬어요. 그런데 맨 막내가 자기는 2봉지 먹겠다고 막 울어요. 그러면 엄마가 막내를 야단칠까요? 그러기보다는 큰 아이에게 ‘야, 다음에 내가 사줄 테니까 네것 동생 줘라’ 이렇게 하기가 쉬워요. 엄마가 보기에 막내가 많이 어리니까 봐주는 거예요.

그런데 이렇게 해서 막내에게 2봉지를 주고 난 뒤에 엄마가 방문을 닫고 밖으로 나갔어요. 그러면 그게 그대로 있을까요, 큰 애가 동생한테서 빼앗을까요? (청중 웃음) ‘내놔!’ 이렇게 해서 빼앗아버린단 말이에요. 그러면서 형제간에 질서가 형성이 돼요. 어른이 없는 또래 아이들 사이에서 질서가 형성된단 말이에요. 이렇게 가정에서부터 형제들 사이에 질서가 잡히는 가운데 자랐기 때문에 세상에 나와도 질서가 잡히는 거예요. 부모가 꼭 가정교육을 따로 안 해도 자기들 사이에서 저절로 질서가 잡혀요.

그런데 지금은 자식 하나를 데리고 키우기 때문에 아이들이 초등학교 들어갈 때까지 질서의식을 배우기 힘들어요. 그저 울기만 하면 엄마가 다 해주게 돼 있잖아요. 그렇게 지내던 아이들이 학교에 모이니까 아이들 사이에 갈등이 심할 수밖에 없어요. 어릴 때부터 그런 질서의식이 익혀져야 하는데 그러질 못했으니까요.

그러니 엄마가 너무 아이들 가까이에서 간섭을 하면 안 돼요. 자기들끼리 힘으로 싸우든지 말로 싸우든지 할 때 아주 부당한 것만 부모가 나서서 교화하지, 나머지는 내버려둬야 해요. 그러는 가운데 언니는 ‘동생이라고 무시하면 안 된다’ 하는 걸 저절로 배워요. 자기가 힘으로는 이길 수 있는데 엄마가 힘으로는 못 하게 하니까 동생을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는 걸 터득합니다. 또 동생은 ‘언니한테 함부로 대들다가는 혼난다’ 라는 걸 배울 수 있어요. 이렇게 둘 사이에서 갈등을 일으키는 가운데 둘 다 사회성을 배우게 되는 거예요.

그런데 엄마가 자꾸 개입을 하면 이걸 터득할 수 없습니다. 항상 엄마한테 와서 ‘언니가 때렸다’, ‘동생이 까분다’ 이렇게 고자질하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들어요. 엄마가 나서서 자꾸 해결하는 건 아이들 교육에 좋은 게 아니에요. 가능하면 못 본 체하는 게 좋고, 폭력을 쓴다든지 해서 문제가 심각할 때만 관여를 해야 해요.

야단칠 때도 언니 보는 앞에서 동생을 야단치거나 동생 보는 앞에서 언니를 야단치는 건 좋은 방법이 아니에요. 그러면 야단을 맞는 사람은 자기가 졌다고 생각하거든요. ‘동생 때문에 내가 야단맞는다’, ‘언니 때문에 내가 야단맞는다’ 이렇게 돼서 언니를 미워하거나 동생을 미워하는 쪽으로 심리가 가게 됩니다. 또 야단을 안 맞은 쪽은 자기가 이겼다고 생각해서 지나치게 까불게 돼요.

반드시 양쪽의 얘기를 가만히 들어보고, 각자 따로 불러서 ‘엄마가 보기엔 지금 네가 잘못한 것 같다’ 이렇게 타일러야 해요. 예컨대 언니한테는 ‘아무리 동생이 너보다 아래라지만 네가 폭력적으로 하는 건 올바르지 않다’ 라고 하고, 동생한테도 ‘네가 아무리 어려도 언니한테 대드는 건 올바르지 않다’ 라고 하고요. 야단을 치더라도 따로따로 쳐야지, 한꺼번에 놔두고 야단치면 상처가 됩니다.

스님이 여러분을 야단친다고 생각해 보세요. 제가 자기만 딱 불러서 뭐라 그러면 괜찮은데 사람들 많이 있는 데서 뭐라 그러면 상처 입잖아요.

그래서 부모들이 이런 걸 잘 알아야 해요. 대부분의 아이들이 이런 엄마의 원칙 부재 때문에 상처를 받아요. 애들은 어리석어서 싸우는데 엄마도 애들 싸우는 거 귀찮다고 막 성질을 내고 욕을 하면서 같이 싸운단 말이에요. 엄마부터 먼저 애들을 때리고 엄마부터 먼저 애들한테 욕을 하니까 교육이 안 되어지고 더 나빠지는 겁니다.

그러므로 첫째, 갈등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게 필요합니다. 둘째, 도를 넘는 건 규제해야 해요. 셋째, 어떤 문제든 엄마가 흥분하지 말고 가만히 들어본 뒤 필요한 조언이 있으면 따로따로 불러서 얘기하세요. 이렇게 하면 조금 도움이 될 겁니다.

이런 것도 모르면서 왜 아이를 낳아서 길러요? 이런 것을 잘 아는 저도 안 낳는데요. 하하하(웃음). 좋은 질문 해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청중 박수)

허리케인 하비로 인해 평소보다 서두에 길게 얘기하시고 6명의 질문자와 대화를 하다보니 어느덧 2시간 40분이 훌쩍 지났습니다. 스님은 더 이상 질문을 받지 못함을 아쉬워하면서 바로 강연을 마무리 하였습니다.

강연 마무리에 스님은 휴스턴 하비로 인한 피해복구를 위해 한인회를 중심으로 하비재난기금관리위원회가 모금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한인회 사무처장님께 JTS America기금 중3,000불을 보시하였습니다.

허리케인 하비 때문에 강연에 50명만 참가하여도 성공한 것이라 생각했는데 오늘 휴스턴 강연에서는 총 120명이 참가하였고, 이 중 자원봉사자는 20여명이 참가하였습니다. 특히 오늘 강연에는 9살된 초등학생이 6살이 되는 여동생과 안 싸우고 싶고 또 싸우더라도 빨리 화해하고 싶다고 질문하여 참가자들께 웃음을 안겨주었습니다. 스님은 9살 초등학생에게 구체적인 예를 들게 하면서 자상하게 대화를 이어나갔습니다. 강연이 끝나고 질문한 학생에게 스님말씀을 이해했는지 물어보니 다 알았다고 하면서 스님이 얘기한대로 한 번 해보겠다고 하여 놀랐습니다. 이 학생은 스님께 금강경 책을 사인받으러 왔는데 본인이 직접 이 책을 읽기 위해서 골라서 샀다고 해서 더 놀라웠습니다.

2시간 30분이 넘으니 참가자들이 일부 강연장을 빠져나갔지만 많은 분이 강연을 마치고 스님께 사인을 받고 사진도 찍는 즐거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사인회가 있는 동안 몇 분들께 소감을 물어보았습니다. 특히 외국분이 한 분 계셔서 물어보니 비록 알아듣지만 못했지만 굉장히 집중해서 함께 했고, 평소에 한국인 아내가 스님 법문을 유튜브로 듣고 있어 다른 도시에 살지만 3시간 걸려 참가했다고 하였습니다. 이 분은 다음에 꼭 스님이 샌안토니오에도 방문하면 좋겠다고 소망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분들께도 질문하니 유튜브로만 스님을 보다가 이렇게 직접 만나서 너무 좋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한분이 스님께 편지를 주시면서 휴스턴을 찾아주신 스님께 감사인사를 하였습니다. 본인은 기독교인이지만 스님의 유튜브 법문을 듣고 해결하지 못하던 여러가지 문제를 해결하게 되었고, 스님의 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자유롭고 행복한 삶은 사는데 큰 도움을 주고 있는지를 알려드리고 싶어 편지를 썼다고 합니다.이편지를 보니 유튜브를 통한 SNS 전법으로 스님은 수많은 사람들을 행복과 자유로운 삶으로 이끌어 오고 있음을 새삼 잘 알 수 있었습니다.

사인회를 마치고 강연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기념사진촬영을 하였습니다.

기념사진 촬영후 휴스턴 정토법회에서 1년동안 불교대학에 다니면서 공부하고 졸업한 졸업생 7명에게 졸업장을 수여해주었습니다. 지난 9월22일 뉴욕 졸업식에 참가하지 못한 졸업생들은 매우 기뻐하며 스님과 단체사진촬영을 하였습니다.

이어 스님은 강연총괄을 한 휴스턴정토법회 임선희보살님에게도 수고했다고 하며 기념사진촬영을 하였습니다.

이어 이번 불교대학 졸업생들이 지난 1년동안 영상으로 만나서 스님의 가르침을 받아 잘 성장했다고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오늘 휴스턴 강연을 마치고 내일 아침 북미서부지역인 시애틀로 이동하기 때문에 오늘이 북미동부지역 마지막 강연이라 스님께 꽃다발을 드리고 준비한 케익으로 잠깐 자축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1년동안 스님의 영상법문으로 공부한 졸업생들이 감사의 마음을 담아 부르는 스승의 은혜가 마음에 남았습니다.

이어 스님은 둥그렇게 선채 “세상이 빠른 속도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이때 가치관을 고집하면 혼란스럽고 놓으면 방황하게 됩니다. 이런 시대일수록 깨달음의 불법이 필요합니다. 깨달음의 길로 갈 때 다양한 것이 혼란스럽지 않고, 풍요로움으로 다가옵니다. 다름이 갈등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다양성을 존중하는 그런 철학을 가지게 됩니다. 감정에 치우치면 경계에 조종받으며 살게 됩니다. 여러분들은 자유와 행복을 가져다 주는 마음 공부를 해서 세상이 급변하더라도 내는 흔들리지 않고 행복해지고 또 이 법을 이웃에 전달하여 이웃도 함께 행복해지도록 해야 합니다.”라고 하면서 개인은 행복하고, 이 행복을 이웃에 전달하는 실천하는 삶을 살도록 인도해주었습니다.

이어 스님은 이정인 국장님, 임금이 지구장님과 함께 나누기를 하도록 안내해주었습니다. 자원봉사자들이 나누기를 하는 동안 스님은 공용물품을 같이 정리하기도 하였습니다. 나누기가 끝나자 스님은 초창기 오스틴 열린법회와 휴스턴 열린법회를 개척한 박경원 거사님의 집이 이번 허리케인 하비로 침수피해를 봤다는 소식을 전해듣고 위로금을 전달하였습니다.

나누기를 끝내고 스님과 수행팀이 오늘 숙소인 연수진님댁으로 도착하니 어느덧 7시가 넘었습니다. 이윤주님과 연수진님, 그리고 오스틴 열린법회를 담당하고 있는 김원영님이 식사준비를 한다고 이리저리 분주하게 움직였습니다. 8시가 넘어 정성껏 준비한 음식으로 맛있는 저녁공양을 하였습니다. 이후 저녁식사를 마치고 내일일정을 공유하고 각자 배정받은 숙소로 올라갔습니다. 스님은 약간의 감기기운이 있는 것 같아 식사 후 휴식하였습니다.

시카고에서 비행기로 달라스로 이동하여 강연을 한 후 College Station에 들러 Texas A&M 대학교에서 앤드류 나찌오스 교수님을 만나 미팅하였습니다. 그리고 휴스턴으로 이동하여 강연을 하였습니다.

내일은 북미 동부일정을 모두 마치고 북미 서부지역인 시애틀로 이동합니다. 휴스턴 조지부시 국제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서부로 이동해야 하니 숙소에서 새벽 3시 30분에 출발하기로 하였습니다. 조금은 피곤한 가운데 휴스턴의 밤도 깊어갑니다. 내일은 시애틀 강연소식으로 찾아뵙겠습니다.

함께 만든 사람들
김순영 이준길 손명희 정란희 조태준

전체댓글 13

0/200

임규태

감사합니다!!!^_^

2017-10-15 21:26:55

정지나

"다양한 것이 혼란스럽지 않고, 풍요로움"
잠시만 뒤집어 생각하면 전혀 다른 차원으로 생각과 감정이 옮겨집니다.
감사합니다. 스승님^^

2017-10-11 08:59:50

buddhist

스님의 유튜브 법문을 듣다가 스님의 책들을 사서 보게 되었고 그리고 지금은 불교를 종교로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가끔 가다가 유튜브로 스님 법문을 들으면서 잡니다.

2017-10-10 15:3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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