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17.10.31 노원&춘천 행복한 대화 강연
“손 위 시누이가 다섯 명인데 너무 스트레스 받아요.”

부쩍 쌀쌀해진 날씨지만 햇빛은 환하고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10월의 마지막 날입니다. 강연이 열리는 노원구청 건물 정면에는 ‘행복은 삶의 습관입니다’라는 플래카드가 크게 걸려있었습니다. 건물 앞 정원에는 관리자분들이 여름 내내 시원한 그늘을 드리웠던 말라버린 호박 넝쿨과 나팔꽃 넝쿨을 걷어내고 있었습니다.

오늘 행사는 노원 행복학교 40여 명의 활동가들이 주관해서 준비를 해주었습니다. 각자 맡은 자리에서 씩씩하고 밝은 목소리로 오는 청중을 맞이합니다. 들어오는 분 중에는 행복학교 홍보용 스님의 대형사진을 들고 웃으며 사진 찍는 분들도 여럿 있었습니다.

노원구청 강당 자리는 10시 20분이 되자 만석이 되어 뒤쪽으로 보조 의자가 동원되었습니다. 의자가 없는 앞자리뿐 아니라 통행하는 옆 공간까지 자리가 꽉 찼습니다. 아담한 강당을 가득 채운 청중은 오백여 명이 넘었습니다. 뒤쪽으로는 아기를 업은 아기엄마도 있었는데 다행히 중간에 아기는 잠이 들었습니다.

“날씨가 좀 쌀쌀하죠?”

청중들을 향한 스님의 인사 말씀에 일제히 “네”라고 큰소리로 대답했습니다.

오늘은 총 10명의 질문자가 있었습니다. 그중에 두 분은 용인과 서울시청에서 있었던 즉문즉설 강연 시 추첨에서 대기자로 있다가 질문을 못 하고 다시 온 분들이었습니다.

질문 내용은 노부모를 모시고 사는데 돌아가시면 각각 묻히고 싶은 장소가 달라서 고민이라는 분, 고3인데 고2 때부터 우울증으로 학교를 쉬고 있는 남학생도 있었습니다. 또 사업 능력이 좋은 부인 대신 육아를 담당하는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남자 분, 그리고 손위 시누이가 다섯이라 명절 스트레스가 심한 주부의 이야기는 많은 청중에게 공감과 웃음을 주었습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깨달음의 경지에 오른 분이 우리나라에도 있는지 궁금하다고 질문한 분도 있었고, 이혼했지만 현재는 같이 사는 배우자의 우울증 때문에 고민인 분, 그리고 석사 졸업하는데 생각보다 오래 걸려 취업문제로 고민인 청년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근래 이슈가 큰 한반도 전쟁 위험성에 대해 스님의 의견을 물어 오신 분, 명상을 통해 마음의 안정을 찾았다고 생각했는데 악몽으로 인해 괴로운 분, 마지막으로 늦잠을 자는 습관을 고치고 싶다는 분 등이었습니다.

그 중에서 청중에게 많은 웃음을 준 손위 시누가 다섯인데 며느리 입장에서 스트레스라는 네 번째 질문자의 사연을 소개하겠습니다.

“다들 저마다의 방식으로 하라고 계속 요구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상대의 요구를 따르면 제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너무 버겁고 힘들어서 괴롭고, 그걸 따르지 않을 경우에는 단합을 해서 왕따를 시키니까 외롭고, 제가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궁금합니다.”

“예를 들어서 상대가 나더러 자꾸 술을 마시자고 해요. 술을 마시면 건강이 나빠져서 나는 안 먹고 싶은데 자꾸 술을 마시자고 하면, 보통 선택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아무리 마시자고 해도 내가 싫으면 안 마시면 돼요. 그러면 왕따를 각오하면 됩니다. 왕따가 겁날 게 뭐 있어요? 둘째, 왕따가 겁이 나면 그냥 가서 마시면 됩니다. 이게 또 하나의 방법이에요. ‘그래, 그래. 술 좋지!’ 이러고 가서 같이 마시면 돼요.

그러면 방법이 이것 두 가지 뿐일까요? 제3의 길이 또 있어요. 왕따도 안 당하고 술도 안 마시고 싶다면 술 마시는 자리에 가되 술은 안 마시고 술값만 내주면 됩니다. 그러면 문제가 안 돼요. (모두 박수)

술을 마시면 내가 너무 힘드니까 술집에는 따라가 되 술은 안 마시고 술값을 내주는 거예요. 술 안 마신다고 시비조로 얘길 하다가도 술값을 내주면 별 얘기가 없을 거예요. 또 자기들은 취하면 뒤처리가 어려운데 돈도 내주고 뒤처리도 해주니까 좋아해요. 그러면 친구도 되고 술도 안 마실 수 있어요. 다만 돈이 조금 들죠. (모두 웃음) 하지만 몸에도 나쁜 것을 굳이 마시고 돈을 쓰나, 돈만 쓰고 안 마시나, 무슨 차이겠어요? 돈 줬다고 해서 그 나쁜 걸 꼭 마셔야 하는 건 아니잖아요.

예를 들면 그래요. 질문자도 그 방법을 찾아서 연구를 해야 한다는 거예요. 또 다른 사안이면 또 다르게 연구를 해야 하겠죠.”

“그렇게 술 마시는 문제면 굉장히 단순했을 텐데요, 저는 시댁에 누나들이 5명이에요.”

“그러면 처음부터 그렇게 얘기하지 그랬어요.” (모두 박장대소)

“누나가 다섯이고 제 남편이 여섯째고 밑에 시동생이 하나 있는데 어머님이 올해 초에 돌아가셨어요. 누님들이 모든 일에 ‘감 놔라, 배 놔라’를 굉장히 많이 하시거든요. 그런데 그 동안엔 어머님이 계시니까 어머님을 위한다는 핑계를 대거나 누님들의 뜻을 어머님을 내세워 얘기하기에 그냥 따라 드렸어요. 그런데 어머님이 돌아가시고 난 지금은 저희가 장남이기도 하고 제가 일을 맡아서 해야 하는 입장이거든요.

아까 비유를 들어 말씀 드린 상대가 누님들이에요. 그런데 그 숫자가 한 명이 아니라 다섯 명이니까 우리나라가 민주주의 원칙이라고 해서 다수결로 한다고 해도 주 의견은 누님들의 입장이 되잖아요. 저도 시댁 형제들이 자라온 환경이나 여러 가지를 감안하면 계속 지금처럼 따를 수도 있겠지만 제가 받아들이기에는 ‘이건 정말 아니다’ 싶고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구해 봐도 다들 아니라고 할 만한 경우가 간간히 있어요. 그래도 당신들은 그 방식대로 생각하고 살아왔기 때문에 그렇게 행하는데 아까 말씀드린 대로 그걸 거부하려니 제가 괴로워져요. 상대의 요구를 따르지 않으려고 의견을 얘기하면 ‘우리는 이렇게 할 테니 너희는 빼고 하자’ 이렇게 얘기를 하세요. 요구를 따르자고 하니 혼자서 모든 걸 다 싸안고서 하기에는 제가 너무 버겁고요. 하다못해 설날 같은 때면 저희 집에 30명에서 40명 정도가 모이거든요. 처음에는 도와 달라는 얘기도 해봤지만 아무튼 그쪽에서 생각하는 기대와 제가 생각하는 기대가 다르다는 것도 이제는 이해가 가요. 이해는 가지만 이걸 제가 감내할 자신이 없어요. 스님 말씀대로 술값 내주고 이런 부분이랑은 다르게 이게 제 능력을 벗어났을 때 그걸 어느 선까지 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어요.”

“제가 볼 때는 술값 내는 것보다 더 쉬운데 뭘 그래요. (모두 웃음) 뭐가 문제고 무슨 요구를 하는지 구체적으로 얘기해 봐요. 지금 질문자는 요구가 있다고만 얘기하고 있잖아요. 그 요구가 뭐냐는 거예요. 요구가 뭐냐에 따라서 ‘오케이, 그렇게 합시다’ 할 수도 있고, ‘알았어요’ 하고 내 마음대로 할 수도 있어요.”

“해마다 1월 1일이면 누나들이 식구들을 다 데리고 저희 집에 모여요. 어떤 누나는 손주까지 데려와서 그 집 식구들만 열 명이 와요.”

“그렇게 오는 게 어때서요?”

“다들 아무것도 하질 않고 제가 모든 걸 다 마련해야 하거든요.”

“그래요. 그 이틀 간 질문자가 식당 운영을 하면 되잖아요. (모두 박장대소) 그게 뭐가 어려운데요? 결국 돈 문제 아니에요? 그건 술값보다 적게 들어요.”

“몸도 너무 힘들어요... 술값보다 적게 든다고요?” (모두 웃음)

“30명 온다고 해 봅시다. 그 30명을 1박 2일이든 2박 3일이든 먹이는 데 돈이 많이 들고 그걸 다 요리하기도 힘들다는 거잖아요. 그러면 어디 가서 일당 20만원씩 주고 아주머니를 두 분 구하세요. 평소에는 10만원 주더라도 설날이니까 한 20만원 줘야 올 거 아니에요? 그렇게 한두 명 구해서 요리를 하면 되잖아요. 예산을 세울 때 300만원을 잡고 그 안에서 식사비며 인건비를 계산하는 거예요. 이건 1년에 한 번이지만 술값은 하루에 그렇게 든다니까요. (모두 웃음) 다르긴 뭐가 달라요?”

“그런데 저희 집에서 제사를 지내야 한다고 늘 얘기를 하세요. 사실은 저도 돈을 쓸 각오를 하고 ‘사람이 많이 올 때는 어디 다른 곳에 가서 하자’라고 얘기를 했지만 그것도 안 된대요. 전부 누나들 생각하는 방식대로만 하고 싶어 해요.”

“제가 보기엔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에요. 지금 질문자는 어리석은 거예요. 시장을 봐서 재료를 잔뜩 놓아두고 혼자서 요리를 하세요. 재료는 30명 먹을 준비를 딱 갖다 놓고 질문자가 천천히 하나씩 하는 거예요. (모두 박장대소) 전기밥통으로 밥 하는 건 그냥 전원 꽂아놓으면 되니까 그렇게 해두고 나머지는 천천히 하는 거예요. 그러면 사람들이 와가지고 ‘밥 내놔라’ 하면 밥만 퍼주면 되거든요. 왜 반찬이 없냐고 하면 일손이 없어서 반찬이 아직 덜 됐으니 좀 기다리시라고 하고요. 와서 거들면 ‘아이고, 기다리세요. (모두 웃음) 제가 해 드리겠습니다. 제가 동작이 좀 느려서 시간이 좀 걸립니다’ 이러면서 한 가지 하는데 한 시간씩 끄는 거예요. (모두 웃음) 이러면 성질 급한 사람이 와서 하잖아요.

이렇게 한 번 하고 두 번 하고 세 번 하면 자기들은 어떻게 생각할까요? 처음에는 ‘뭐 저런 게 다 있나’라고 욕을 좀 해요. 그러면 욕을 좀 듣는 거예요. 그러다 보면 자기들끼리 대충 질서가 잡혀요. ‘아이고, 그 인간은 속도가 늦어서 그 집에 갔다간 밥 못 얻어먹는다. 그러니까 우리 많이 가지 말고 조금만 가자’ 이렇게 되든지, 아예 전부 다 오자마자 나서서 일을 나눠 하든지, 이렇게 된다니까요. 자기 머리 나쁜 건 생각 안 하고 왜 남 탓이에요? (모두 박장대소) 그게 뭐 어려운 일이라고 그래요? 저는 지금 북한하고 미국하고 싸우는 것도 어떻게 해결해 보려고 연구를 하는데요.

누나들이 가족을 10명씩 데려오면 그건 좋은 일이죠. 남편한테 이렇게 말하세요. ‘추석 때 당신 누나들 가족들이 다 온다니까 참 좋은 일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이렇게 준비하자.’

그러면 첫 번째는 질문자가 요릴 하면 남편이 거들겠죠. 안 거들면 질문자가 천천히 하면 돼요. 질문자가 성질을 내고 안 거든다고 짜증내면 자기 인격만 나빠지는 거예요. 거들어도 ‘아이고, 여보, 괜찮아. 놔둬라, 내가 할게’ 이러고 천천히 하면 되는 거예요. (모두 웃음) 요리 못 해서 남으면 이튿날 아침에 이웃집에 재료를 다 나눠줘 버리고요. 그렇게 질문자가 머리를 쓰면 돼요.

누나들 많은 집에 가서 맏며느리 하려면 그 정도로 배포도 있고 담도 있어야죠. ‘형님들, 어떻게 할까요? 아, 그래요? 그럽시다’ 이러고 일만 벌려 놓으면 되는 거예요. 질문자가 쫀쫀해서 지금 안 되는 거죠. 그러니까 질문자는 맏며느리감이 못 되는 거예요. (모두 웃음) 맏며느리감이 되려면 그 정도는 해야지요. 딱 전화해서 ‘뭐 드시고 싶어요? 피자요? 또 뭐요?’ 이렇게 얘기하면 돼요.

방법이 여러 가지가 있잖아요. 싹 주문해서 갖다놓는 방법도 있고요. 하지만 제일 처음에는 재료를 먼저 사다가 놔두는 게 제일이에요. (모두 웃음) 그렇게 해서 안 되면 다음 방법으로 넘어가는 거예요. ‘일손이 없다면서 너는 왜 재료만 사놓는 짓을 하느냐’ 이러면 다음에는 아무 말도 안 하고 전부 주문을 해서 갖다놓으세요. 맛이 없다거나 하면서 잔소리를 하면 ‘그러면 제가 주문을 할까요, 재료를 사다 놓을까요?’ 하고 물어보면 돼요.

그렇게 했는데도 또 뭐라고 하면 그건 좀 들어주면 되는 거예요. ‘알았어요. 그럼 내년에는 절반은 주문하고 절반은 재료 살까요?’ (모두 웃음) 이러면 얼마나 쉬워요? 그게 뭐가 어려워요?”

“그런데 스님, 지금은 조카들이 다 커서 좀 낫기 하지만 지금까지 제가 20년 넘게 사람들이 올 때마다 코스 요리를 다 냈거든요. 처음에 결혼 해갖고는 그게 가능했지만, 이십 몇 년 동안을 그렇게 해오다가 제가 이제 와서 그걸 안 하겠다 하면 그러기가 쉬울까요?”

“20년 아니라 지금이라도 바꿔야 하면 바꿔야죠. 20년을 해왔다 해도 내년부터는 재료 사다놓고 병원에 가서 등허리나 한쪽 다리에 깁스라도 딱 하세요. (모두 박장대소) 그렇게 해서 목발 짚고 절뚝절뚝 하면서 천천히 하면 돼요. (모두 환호와 박수) 계속 자기 머리 나쁜 건 생각 안 하고 그러네요. 그게 뭐 어렵다고 그래요? 아이디어를 내서 하면 돼요. 무슨 나쁜 마음으로 하는 게 아니라 나도 살아야 하잖아요. 나도 살아야 하니까 내 살 궁리를 좀 차리면 되는 거예요.

회의하는 방식도 있어요. 저 같으면 다 불러 모아서 이러겠어요. ‘제가 지금까지는 했는데 더 이상 못 하겠습니다. 그러니까 결정을 하십시오. 주문을 할까요? 아니면 재료 사다 놓으면 같이 하시겠어요?’ 이렇게 풀어가도 되지만 질문자는 이 문제를 스님한테 얘기하고 고민할 정도면 그만큼 대가 약하다는 거잖아요. 속으로는 불평해도 겉으로는 말도 못 하고요. 그러면 오늘 제가 아이디어를 준 대로 일을 벌리세요. 재료를 왕창 사다 놓으세요. 밥은 먹어야 하니까 밥통을 몇 개 사서 딱 꽂아 놓고 김치 좀 놔두고요. 이러면 힘 안 들잖아요. 그래놓고 나머지 요리는 천천히 하는 거예요. 바쁜 사람은 밥하고 김치하고 먹고 갈 테고 더 바쁜 사람은 그냥 가겠죠. 제사 시간이 돼도 그 두 가지만 올라가면 되는 거예요. (모두 웃음) 급하면 자기들이 나와서 한다니까요. 스님이 거짓말 하는지 어디 한 번 실험해 보세요. 그러면 욕을 할 텐데 욕은 좀 얻어먹어야 해요. ‘작년까지는 잘 하더니 갑자기 왜 이러냐’라고 하면 ‘아이고, 올해는 몸이 아파가지고요. 갱년기가 왔는지 몸이 영 이상하네요’ 이러면서 슬슬 하는 거예요. (모두 웃음) 이게 위트예요. 이렇게 웃어 가면서 하세요. 누나들이 막 성질내고 욕을 해도 ‘아이고, 형님들은 저보다 나이 많아도 건강이 좋으신가 봐요. 저는 몸이 안 좋아서요’ 이러면서 한 번 해 봐요. 그게 뭐 어렵다고 그래요?

그렇게 찾아올 사람이 있는 건 좋은 일이에요. 사실은 찾아올 사람이 없어서 문제죠.”

“네, 감사합니다.”

“알겠죠? 힘들면 주문해 버려요. 요즘은 시장에 가면 밑반찬부터 생선 구이에 전까지 다 있잖아요. 그거 싹 주문해서 갖다 놓고, 전자레인지 두세 대 갖다 놓고, 집어넣었다 꺼내 주고 집어넣었다 꺼내 주세요. (모두 웃음) 그것도 결국엔 돈 문제인데 그래도 술값보다 적게 들잖아요. 제가 보기엔 그 손님 치르는 비용이 아무리 많이 든다 해도 술값에 비하면 별로 안 들어요. 너무 어렵게 인생을 살지 마세요.”

질문자와 시원한 스님의 대담 속에서 대중들은 한바탕 웃음이 터졌습니다. 질문자의 표정도 환하게 밝아졌습니다.

마지막으로 스님은

“똑같은 상황이라도 마음을 가볍게 가지세요. 감이 떨어지기를 기다리지 말고 방법을 찾아 연구해보세요. 또 몸 움직이는 걸 너무 사리지 마세요.”
라는 말씀도 덧붙여서 해주셨습니다. 스님은 강당 앞에서 책 사인회를 하시고 “행복학교 파이팅!”을 외치며 행복학교 활동가들과 함께 사진도 찍으셨습니다.

노원구청에서 강연을 마친 스님은 바로 진관사로 향했습니다. 외국에서 손님이 온다고 해서 진관사를 참배할 계획인데, 진관사 가 본지가 오래 되었다며 진관사를 미리 답사하였습니다. 진관사에 도착하여 진관사 대중들이 차려준 점심을 맛있게 드신 후 주지스님께 인사를 드리고 총무스님의 안내로 진관사 경내를 둘러보았습니다. 스님은 이렇게 매사에 준비를 하는 분입니다. 진관사 답사를 마친 스님은 치과에 들러 치료를 받은 후 오후 강연을 위해 춘천으로 이동했습니다.

춘천 강연은 춘천 KBS 공개홀에서 열렸습니다. 춘천은 일교차가 큰 분지입니다. 덕분에 단풍이 아름답게 물들었는데요, 샛노란 은행단풍이 강연장 입구를 장식해 주었습니다. 패딩을 입어야 할 정도로 쌀쌀한 날씨였지만 오후 1시부터 모인 봉사자들의 열기로 강연장이 후끈했습니다. 법을 전하고 행복을 전하려는 열정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춘천은 행복학교가 아직 열리지 않아 용인, 분당, 수원, 남양주, 구리의 행복학교에서 많은 분이 강연을 도와주러 왔습니다.

오늘은 총 7명이 질문을 하였습니다. 장교시험을 1, 2차 모두 합격하고 두 번이나 교통사고로 최종합격의 기회를 놓쳐 괴로운 40대 남성분, 남편의 의처증, 아이들의 경제적인 미성숙, 보이스 피싱으로 빚을 갚고 있는 힘든 삶을 토로하신 60대 여성분, 스님의 책과 법문을 들으며 너무 급격히 바뀐 자신이 불안한데 이런 자신이 맞게 수행하고 있는 건지 질문하신 20대 남성분, 특별한 아이를 키우고 있는데 아이에 대한 사랑이 결여되어있는 교육을 질책하며 교육에 대한 스님의 생각을 물으신 30대 여성분, 해탈, 열반, 돈오 같은 깨달음과 환희의 순간 그 이후에 무엇에도 괴롭지 않은 순간이 나오는데 그것이 어떤 것인지 질문하신 30대 남성분, 친구랑 싸웠다가 화해를 했는데 그 친구가 반에서 중심인 친구여서 멀어지면 다가가기가 힘들다는 6학년 여학생, 호스피스에서 일하는데 사람을 떠나보내기가 힘들다는 40대 여성분 등이 질문해주었습니다.

2번째 질문에서 살기 팍팍하다는 60대 아주머니의 사연이 여러 사람의 한숨과 안타까움을 자아냈는데 스님의 속 시원한 답변을 소개하겠습니다.

“애들 아빠가 다친 지 25년 정도 됐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점점 저를 힘들게 하는 게 많아요. 애들도 저한테 경제적인 도움을 청할 때도 있고, 두 형제가 서로에 대한 불만을 저한테 전화로 얘기할 때 괴로워요. 그러다가 제가 법륜 스님의 책을 보고 아침저녁으로 108배를 시작한 지 서너 달 됐는데 어떻게 기도를 해야 할지 모르겠고, 저한테 맞는 기도가 어떤 건지도 모르겠어요.”

“왜 기도를 하려고 하는데요?”

“그냥 제 마음을 좀 편하게 하고 싶어서요.”

“마음이 지금 어떤데요?”

“그냥 괴롭고 심란해요.”

“왜 심란한데요?”

“애들 아빠가 저를 힘들게 할 때...”

“애들 아빠가 질문자를 어떻게 힘들게 해요?”

“애들 아빠가 알츠하이머하고 파킨슨병이 있어요. 그런데 저를... 뭐랄까...”

“남편이 질문자를 힘들게 하려고 파킨슨병에 걸렸어요?” (모두 웃음)

“그건 아니죠.” (질문자 웃음)

“그럼 파킨슨병에 걸렸는데 왜 질문자를 힘들게 해요?”

“저를 괴롭히니까요.”

“어떻게 괴롭히는데요?”

“저한테 다른 남자가 있다고 생각해요. 동네의 한 아저씨를 지목해서 제가 밤에도 그 아저씨를 만나러 나갔다고 생각하고, 그 집 차가 안 보이면 제가 일하는 데 와서 같이 노는 거라고 해요.”

“그런 걸 병이라고 해요. 의처증이라는 병이거든요. 남편이 그 병에 걸린 거예요.”

“병인 건 아는데 제가 받아들이기가 너무 힘들어요.”

“병자인데 그걸 갖고 시비를 하면 어떡해요?”

“...” (질문자 한숨)

“그건 남편이 질문자를 괴롭히려고 그런 게 아니라 병이 들어서 그렇다니까요.”

“알고는 있어요...” (질문자 울먹임)

“육체는 파킨슨병에 걸렸고 정신적으로는 의처증에 걸려서 그러는 거예요. 환자의 얘기니까 ‘아, 병이 도졌구나’ 이렇게 생각하면 되죠.”

“그런데 마음이 그렇게 받아들여지지 않아요. 애들 아빠한테 잘 하다가도...”

“잘 하지도 마세요. (모두 웃음) 잘 하기는 무엇 때문에 잘 해요?”

“제가 챙겨줘야 하잖아요.”

“챙겨주는 게 뭐 잘 하는 거예요? 그건 환자한테 당연히 하는 거죠. 부인이 아니라도 누구든지 한 집에 살면 환자를 챙겨 줘야지, 어떡하겠어요? 병원에 가면 간호사도 다 챙겨 주고 의사도 챙겨 주는데요. 그건 잘 하는 게 아니라 누구나 다 해야 하는 거예요. 뭘 잘 하지도 않고선 잘 했다고 그래요?” (모두 박장대소)

“옆에서 챙기는 게 제 의무잖아요.”

“그건 의무라기보다는 누구나 사람이라면 해야 하는 일이에요. 어린아이를 엄마가 돌봐야 하는데 엄마가 없어서 돌볼 사람이 없으면 이웃집 아줌마라도 돌봐야 하잖아요. 늙은 노인이 거동이 불편한데 자식이 없으면 자기 부모가 아니더라도 도와야 하고요. 배부른 사람은 배고픈 사람을 도와야 하고, 건강한 사람은 장애인을 도와야 하고, 배운 사람은 배우지 못한 사람을 도와야 하는 거예요. 그건 그냥 이 세상의 이치입니다.

그러니까 남편이 파킨슨병에 걸려서 거동이 불편하고 질문자는 건강하니까 도우면 되는 거예요. 지금은 ‘아, 나는 만날 돕기만 하고 자기는 만날 도움만 받는다’라고 하지만 그게 그렇게 부럽거든 이렇게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질문자가 파킨슨병으로 누워 있고 남편이 질문자를 돕는 쪽으로 바꾸면 질문자는 좋겠어요? 그래도 건강해서 돕는 게 낫겠어요, 병 걸려서 누워 있는 게 낫겠어요? 어느 쪽 할래요?”

“제가 건강해서 도와주는 게 낫죠.” (질문자 웃음)

“그러면 질문자가 짜증내면 안 되죠. 남편이 짜증을 내야죠. (모두 웃음) 질문자는 ‘왜 도와주는데 네가 짜증을 내냐?’라고 하지만 두 사람 사이의 조건이 질문자가 좋고 남편이 나쁘기 때문에 남편이 질문자한테 짜증을 내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걸 당연하게 생각해야 해요. 여러분들을 보면 가난한 사람이 부자한테 불만을 얘기하는 걸 부자들이 굉장히 싫어합니다. 물론 불만을 얘기하지 않으면 더 좋겠지만 그걸 듣는 게 힘들다면 자기가 입장을 바꾸면 되잖아요. 그래도 불만 들으면서 부자 하는 게 낫겠어요, 불만 안 듣고 가난한 사람 하는 게 낫겠어요? (모두 웃음) 질문자가 지금 돈이 있으니까 애들이 달라고 하겠죠. 질문자가 돈이 없으면 달라고 할까요, 안 달라고 할까요?”

“돈도 없어요. 돈 문제도 있지만 두 형제가 서로 트러블이 생기면...”

“트러블은 놔두고 우선 돈 얘기부터 해 봐요. 애들이 돈을 달라고 한다는데 질문자가 정말로 돈이 없으면 달라고 할까요, 안 할까요?”

“그래도 또 엄청 해요.”

“없는데 어떻게 해요? (질문자 웃음) ‘일가친척이나 누가 돈 안 빌려주고 뭐 안 도와준다고 불만이다. 내가 얼마나 도와줬는데 그런 소리를 하나?’하지만 이 말은 그래도 내가 그 사람들보다 먹고 살만하니까 이런 일이 생긴다는 뜻이에요. 그런 불만을 좀 듣더라도 내가 조건이 나은 게 낫잖아요. 꼭 그 불만을 안 들으려면 그 사람한테 전부 줘 버리면 불만을 안 들어요.

그러니까 남편의 경우는 나보다 남편이 조건이 못 하기 때문에 남편이 나한테 불만인 거고, 아이들 경제 조건이 어쨌든 나보다 못하니까 나한테 도와 달라고 한다는 말이에요.

질문자도 전혀 몸을 못 움직이는데 남자가 늘 밖에 나가 있으면 어떻겠어요? 물론 그 남자는 회사에서 일하고 여러 가지 바깥일을 보느라 그럴 뿐이지 나를 잘 도와주는데도 불구하고 의심이 들 수도 있을 거예요. 그 부분에 대해서는 자기가 부부관계를 못 하니까 의심이 들 수도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의심하는 걸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예, 예. 아이고, 알았습니다’라고 하세요. 의심이 심해지면 위로를 조금 더 해주고요.

그런데 그런 의처증은 성질난다고 ‘그래, 그렇다! 어쩔래?’ 이렇게 나가면 안 돼요. (모두 웃음) 자꾸 의심을 받아서 성질나면 그렇게 될 수가 있거든요. 병이니까 웃으면서 넘기세요.”

“웃으면서 그러면 인정하는 걸로밖에 안 보이잖아요.”

“웃으면서 ‘여보, 그렇지 않아요. 안심하세요’ 이러고 나갔다 오면 되죠.” (모두 웃음)

“그럼 108배는 하지 말아요?” (모두 박장대소)

“머리가 좀 지혜로우면 안 해도 돼요. 108배하는 게 중요할까요, 이렇게 남편의 심리를 이해하고 웃으면서 ‘여보, 그렇지 않아요. 잘 다녀올게요’ 그러는 게 중요할까요? 밤에 어디 나갔다 왔냐고 하면 ‘아이고, 그래요? 귀신이 나갔다 왔나, 누가 나갔다 왔지? 나는 계속 누워 있었는데요. 당신 요새 헛것을 잘 보네’ 이렇게 그냥 웃어넘기란 말이에요. 그건 들을 말이 아니기 때문이에요. 환자가 하는 말이잖아요.”

“그런데 그게 힘들어요.”

“그게 힘드니까 절을 해야죠. 남편을 고치려고 절을 하는 게 아니라, 내가 나를 통제 못 하니까 절을 해야 해요. 문제는 남편한테 있는 게 아니라 나한테 있다는 거예요. 남편이 나를 괴롭히는 게 아니에요.

남편은 몸을 못 움직이니까 누워 있고, 그래서 내가 도와줘야 하고, 자기가 뭘 못 해서 의심이 드니까 자꾸 그런 말을 하는 거예요. 그건 당연한 거예요.”

“네.”

“그게 잘 안 되면 절을 해야 해요. (질문자 웃음) 이게 되면 안 해도 되지만 집에 가보면 아마 안 될 거예요.”

“그래서 그게 안 돼 가지고 절을 하는데요, 그 기도문을 어떻게 해야 할지...”

“‘그래도 내가 너보다 낫다’ 이렇게 기도해야죠. (모두 웃음, 큰 박수) 절을 하면서 ‘그래도 내가 너보다는 낫다’라고 기도하세요. 그러면 불만이 쌓였다가도 싹없어져요.”

“예, 감사합니다.” (모두 박수)

이번 강연장의 모습이 호응도 좋고 사람도 많이 와서 기분이 좋았습니다. 수행할 때 편안하게 억누르지 않고 해야 내 모습을 많이 볼 수 있고 그 업식을 봐야 고칠 수 있다는 말이 마음에 많이 남았습니다. 이상 원주정토회 춘천법당 희망리포터 최솔미였습니다.

안녕하세요, 오늘 오전 강연을 정리한 노원정토회 희망리포터 최은주입니다. 질문자들의 사연 하나하나가 마치 저의 일인 것처럼 마음에 들어와서 저도 감명 깊게 들었습니다. 강연을 다 듣고 나가는 청중들에게 가슴에 남는 한마디를 물어봤을 때 많은 분이 ‘행복은 내가 만드는 것임을 알았다’ 는 말씀을 많이 해주셨습니다. 살아있는 사람은 누구나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우리는 행복을 향한 쪽보다 근심과 우울을 향한 쪽만 자꾸 생각합니다. 그것은 마치 밝고 따뜻한 햇볕이 내리 쬐는데 눈이 쌓인 추운 응달에 앉아 있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도 스님 말씀대로 다람쥐처럼 가볍게 살겠습니다. 좋은 법문 들려주신 스님 감사합니다.

함께 만든 사람들
최은주, 최솔미(글) 박성희, 최솔미(사진) 손명희(녹취) 박효정(편집)

전체댓글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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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원

스님. 좋은법문 감사합니다. 항상 삶에 지혜를 주셔서
행복하게 잘살고 있습니다.

2017-11-28 10:44:25

정지나

가볍게 웃어 넘기고 가볍게 나를 표현해 보기....
감사합니다^^

2017-11-08 09:12:01

^^^^

지혜가 느껴지고 가벼워지네요^^생각을 가볍게 가져야겠습니다^^*아래 1290님 댓글 감동입니다^^

2017-11-07 03:3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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