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17.11.08 원주 즉문즉설 강연
“단순한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어요”

이른 아침부터 시작한 기획위 회의는 점심식사 후 3시가 넘어서야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이후 평화재단에서 각 부서별로 점검 사항들을 검토하시고 원주로 출발하였습니다.

굽이굽이 황토길을 따라 상쾌한 숲속으로 오를 수 있는 배부른산은 비록 큰 산은 아니지만 운동을 좋아하는 시민이라면 누구나 쉽게 가는 등산로이기에 원주 시민에게 가장 사랑받는 산이기도 합니다. 늦깎이 단풍이 마지막 가을이 아쉬워 붙잡은 듯 배부른산 기슭엔 갈잎으로 변해가는 단풍이 붉은 기운이 완연합니다.

오늘 강연이 열리는 원주 백운 아트홀은 이런 배부른산이 배경으로 병풍 삼아 펼쳐졌고 원주시청과 나란히 자리를 같이하고 있습니다. 강연장 밖은 저녁 해가 막 기울며 어두워지고 있으며 날씨는 바람이 싸늘하기보다는 훈기를 품은 듯 따뜻하게 느껴집니다.

2층에서 바라본 행사장 입구에는 색색의 옷을 입은 봉사자들이 둥그런 반원을 그리며 활처럼 서 있는데, 그 모습은 마치 커다란 꽃송이처럼 아름답게 느껴졌습니다. 원주정토회와 행복학교, 그리고 춘천과 기타지역에서 온 50~60명의 자원 봉사자들이 오늘 강연을 준비했습니다. 먼저 자리한 원주시민 500여 명의 힘찬 환영의 박수와 함께 법륜스님이 무대로 나왔습니다. 모두 기대 찬 시선으로 법륜스님의 말씀을 경청했습니다. ‘괴로움과 즐거움은 분리할 수 없다’ 라는 스님의 인사말을 끝으로 질문지를 읽으면서 스님의 법문이 시작되었습니다.


준비된 질문지는 6개였지만 추가로 두 분이 기회를 얻어 총 8명의 질문자가 질문 기회를 얻었습니다. 결혼 18년 차인 40대 여성은 남편과 자녀들과의 갈등을 고민했고, 공기업에 다니는 40대 남성은 돈에 집착하는 아내와의 갈등으로 이혼까지 생각한다는 심정을 토로했으며, 20대 후반의 결혼한 여성은 단순한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의견을, 체력을 필요로 하는 직장에서 남녀의 체력 차이에 대한 차별을 고민한다는 직장생활 7년 차의 여성, 협동협력 코디네이터로서 지역주민과의 협력 협치가 쉽지 않다는 35살의 남성분, 26살 딸을 둔 50대 어머니는 직장생활도 하지 않고 무기력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딸아이를 걱정하는 마음을, 공무원 생활 19년 차의 건장한 남성분은 일의 특성상 1~2년마다 바뀌는 직장상사와의 갈등과 참기만 하는 자신의 방법이 옳은 것인지를 물었습니다. 마지막 질문자는 결혼한 30대 남자로 TV프로그램 속 동물 학대 장면을 보면서 우는 자신과 그러는 사이 닭고기를 먹고 있는 자신의 부조리함에 대해 스님에게 해결책을 물었습니다.

그 중 극적으로 해결된 세 번째 질문을 소개하겠습니다.

“늘 피곤하고 일상은 쳇바퀴도는 듯 합니다. 어떻게 하면 여기서 탈피할 수 있을까요?”

“탈피할 생각을 안 하면 문제가 해결됩니다. (모두 웃음)

저도 늘 차 타고 다니면서 여기에 가도 즉문즉설, 저기에 가도 즉문즉설 강연을 해요. 어떻게 보면 쳇바퀴 돌 듯 강연을 하는 일정입니다. 그리고 누구에게나 일상이라는 게 그래요. 다들 그렇게 살아가는 거예요. 그렇게 살지 않으려면 죽는 수밖에 없어요. 그러니 지금 문제가 아닌 것을 문제 삼고 있는 거에요.

이렇게 살지 않고 그럼 질문자는 어떻게 살고 싶어요? 남자도 매일 바꿔가면서 사는 걸 바래요? (모두 웃음) 질문한대로 따지면 매일 같은 남자랑 어떻게 살아요? 옆에 남편이랑 같이 온 것 같은데 그런 질문을 하다니 아주 위험한 발상을 하고 있네요. (질문자 웃음)”

“아니, 그건 아니에요.”

“아니긴 뭐가 아니에요. 그렇게 살려면 직장도 늘 바꿔가면서 살아야죠. 파트타임을 구해서 자주 바꾸면서 살면 돼요. 질문자는 정규직도 버리고 싶다는 이야기예요. 부모님도 어떻게 매일 똑같은 부모님을 모시고 살아요, 부모님도 자주 바꿔가면서 사세요. (질문자 웃음) 아이도 어떻게 같은 아이를 매일 키워요, 바꿔가면서 키우세요. (모두 웃음)

질문자 이야기는 언뜻 들으면 말이 되는 것 같지만 따지고 보면 말도 안 되는 헛된 꿈을 꾸고있어요. 사는 것 자체가 원래 그렇습니다.

스님은 어떻게 매일 일어나서 명상하고 참선하겠어요? 그렇게 따지면 매일 일상이 똑같잖아요. 하지만 모든 삶의 모습이 그와 같습니다. 그런데 그걸 가지고 문제 삼으니까 피곤할 수밖에 없죠.”

“안 피곤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선 몸이 피곤한 건 어쩔 수가 없어요. 정 피곤하면 안마를 받든지 영양제를 먹든지 해야죠.”

“제가 피로감을 많이 느끼는 이유는 모든 것에 신경을 많이 써서 그런 것 같아요.”

“신경을 많이 써서 피곤하다면, 덜 피곤하고 싶으면 신경을 덜 쓰면 되잖아요.”

“그런데 신경을 써야 해요.”

“어떤 일이기에 신경을 써야 돼요?”

“일상생활 하나하나에 신경을….”

“일상생활에 신경을 쓴다고 하면 산에 사는 다람쥐는 도토리 찾느라고 얼마나 신경을 쓰겠어요? (모두 웃음) 그런데 다람쥐가 신경 써서 도토리 줍지 않잖아요. 열심히 줍는 것도 아니에요. 그냥 주울 뿐입니다.

다람쥐가 도토리를 주워서 어디에 숨겨뒀는데 사람들이 그거 갖고 간다고 화나서 자살하는 거 보셨어요? (모두 웃음) 없어진 건 없어진 것이고 그냥 새로 주울 뿐이에요. 그러니 이런 일상생활에 신경 쓸 게 뭐가 있어요?

그런데 질문자가 일상생활에 신경을 쓰는 편이라면 과민증이 있을 수도 있어요. 이건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질문자 웃음) 웃을 일이 아니라 병원에 가서 ‘제가 과민한 것 같은데요?’하고 물어보세요. 병원에서 신경이 흥분되어 있다고 하면 안정제를 먹고, 누구나 살면서 쓰는 정도의 신경이라고 하면 너무 염려하지 않아도 돼요.

기도를 하려면 ‘저는 편안하게 잘 살고 있습니다’하고 기도해보세요. 교회 다니면 ‘하느님 감사합니다.’하고 더불어 감사 기도를 드리면 좋아질 거예요.”

“네, 감사합니다.”

“어떻게 심심한데 남편 바꿀래요?”

“아니요. (모두웃음)”

처음 질문자의 질문을 들을 때는 청중도 같이 한숨을 쉴 정도로 답답한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스님과 대화를 나누면서 점점 다른 관점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대화를 마칠 때는 처음에 울먹이던 질문자의 표정도 환해지고, 청중의 표정과 반응도 가벼워졌습니다. 마지막에 앉을 때는 질문자도 환하게 웃고, 청중도 박수로 화답했습니다.

즉문즉설이 끝난 후 질문자에게 소감을 물어봤더니 “앞으로는 매사 긍정적으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원주 정토회 희망리포터 진창욱입니다. 맨 앞자리에서 앉아서 스님의 법문을 들으면서도 과연 내가 오늘 맡은 소임을 잘 끝마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습니다. 그러나 법문을 들으면서 질문자의 표정과 목소리, 청중들의 반응과 강연장의 분위기까지 살피는 저 자신을 보면서, 또 스님의 강연을 듣고만 있던 작년의 제 모습이 같이 겹치면서 문득 스스로 대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함께 만든 사람들
진창욱 (글) 조태준 (녹취)

전체댓글 9

0/200

이순덕

하루 일과를 마치고 법문을 보니 마음이 가벼워집니다

2017-11-18 20:14:41

^^^^

일상생활에 너무 의미부여를 많이 하고 살아가는 인간의 삶..ㅠㅠ

2017-11-18 02:21:02

정지나

"없어진 건 없어진 것이고 그냥 새로 주울 뿐이에요"
투정하고 짜증난다고 어떤일이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그저 그 자리에서 꾸준히 주울 뿐입니다.
감사합니다.^^

2017-11-15 10:0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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