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17.11.21 농사 그리고 김장 준비
무, 배추 수확하는 날

오늘은 김장하는 날입니다. 그동안 밭에 심었던 무와 배추, 갓을 수확하는 날이기도 하고요. 김장을 하기 위해 어제 밭에 있는 배추를 모두 세어봤더니 360포기 정도였습니다. 필요한 김장 포기수를 최말순 보살님과 의논하였습니다. 양념 준비를 100포기를 기준으로 하였다는 최 보살님의 말씀에 일단 밭에 있는 배추와 무를 다 뽑되, 100포기 넘는 것은 수련 때 쓰기로 하였습니다. 올해 심은 무 농사도 괜찮아 무김치도 담기로 하고, 스님은 김장을 하기 위해 온 문수팀 행자님들과 희광법사님과 함께 도구들을 챙겨 밭에 갔습니다.

햇살이 있어도 온도가 뚝 떨어지고 바람이 불어, 배추를 뽑는 손길이 분주합니다. 100포기를 하기로 해서 우선 제법 잘 여물고 단단해 보이는 이랑의 배추부터 시작했습니다.

볏집으로 묶었던 줄을 풀고 밑 둥을 잘라 겉잎을 정리해서 밭둑에 올려놓기 시작했습니다. 버릴 잎과 시래기로 먹을 겉잎을 구분하고 배추 밑 둥을 잘랐습니다.



하다 보니 배추속이 오그라든 배추가 많았습니다. 전체는 360포기 정도였지만 하다 보니 제대로 된 배추를 선별하면 100포기 정도나 될까 했습니다. 골라내서 하기로 했던 처음의 계획을 바꿔 배추를 정리하면서 구분하기로 했습니다. 점심까지 배추와 시래기까지 다 정리해서 일단 마무리를 하였습니다. 1톤 트럭에 실어보니 한 트럭 가득한 정도였습니다.

바쁜 일정을 쪼개 한다고 해도, 제대로 돌보지 못한 것에 비하면 이만하게라도 수확한 게 어딘가 싶기도 합니다. 농사가 농부의 발걸음을 듣고 자란다는데 그 말에 비하면 이 정도도 감사한 일입니다. 트럭에 실린 배추를 마당에 부려 한 켠에 쌓자, 김장준비 하는 기분이 이제야말로 제대로 납니다.


늘 사온 배추만을 보고 김장을 하다가, 밭에서 농사짓고 수확해서 직접 다듬어 준비하다보니, 농사짓는 농부들의 수고로움과 배추가 우리 밥상에 오르기까지 이동해왔던 경로들을 모르고 살았구나 싶습니다.

추운 데서 일하느라 점심을 먹고 쉬다가 하자 말은 했지만, 겨울 햇살이 짧으니 부지런히 하는 게 났겠다 싶어 바로 일을 시작했습니다. 밭으로 가기 전에 스님은 밭을 빌려 쓴 동네 주민 집에 들러 가을 감자 수확한 것을 한 상자 담아 선물로 드렸습니다. 그분이 가을감자는 심어본 적이 없다고 해서, 우리 수확한 것도 보여주기 위해서였습니다. 행자님들이 농사지을 때 많은 가르침을 주어 고마움도 표시하였습니다. 내년에도 또 밭을 얻어 농사를 짓기로 했습니다.

밭에 도착해서는 이번에는 무를 수확했습니다. 이랑 밖으로 머리를 반이나 내민 무들이 참 예쁘기도 합니다. 그냥 씨 뿌려 물만 주었는데, 이렇게 쑥쑥 자란 게 신기합니다. 어른 팔뚝만한 크기도 있고 제법 굵은 것들도 많습니다. 열무김치처럼 담글 30여개만 무청을 그대로 두고 수확하고 나머지는 시래기를 만들 무청을 자르고 무만 수확했습니다.


가지런히 밭이랑에 무를 올려놓으니 농사를 이런 맛에 짓는구나 싶었습니다. 감사함과 뿌듯함이 짧은 겨울 햇살보다 더 푸근하게 느껴집니다.



포대에 담아 무를 나르고, 무성하게 자란 갓도 다 수확했습니다.



밭의 배추와 무가 다 정리되고 배춧잎과 무청이 다 정리되자, 가득 찼던 밭이 갑자기 휑해졌습니다. 내년 봄에 밭을 갈기 전에, 비닐과 고랑에 깐 검은 천을 마지막으로 정리했습니다. 밭이 굳어져서 비닐과 천을 걷어내는 작업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스님은 행자들이 비닐과 천을 걷는 일을 덜어주기 위해 삽으로 천을 걷어냈습니다. 힘들어보이던 일도 함께 하니 그래도 다 끝났다며 개운해 하십니다.



집 안 비닐하우스에 심었던 무와 배추도 함께 수확했습니다. 비닐하우스의 배추는 밭 배추보다 속이 덜 여물기는 했지만 노랗게 익은 속살이 건강했습니다. 밭에서 자란 배추와 무보다 물주기가 더 쉽지 않았는데도 이만한 게 다행입니다.

이제 배추와 무까지 다 준비가 되어 본격적으로 다듬고 씻고 절이는 과정이 시작되었습니다. 배추를 절일 사람과 다듬을 사람으로 구분하여 일이 분담이 되었습니다. 스님은 배추를 다듬는 일을 하였습니다.

막상 배추를 반 갈라 보니, 겉으로는 멀쩡해보여도 안으로 약간씩 무르거나 오그라든 것이 많았습니다. 약간 오그라든 부분이 있는 배추들은 따로 골라내 오그라든 부분을 잘라내었습니다. 한쪽에서는 배추 절이는 일을 시작하고, 나머지는 계속해서 배추를 고르고 다듬었습니다. 스님은 배추를 다듬으면서 “이렇게 겉은 멀쩡한데도 안에는 오그라들었네, 너무 아깝다” 하였습니다.

무게가 제법 나가는 것들도 약간씩 오그라든 것이 있어서 더 안타깝기도 했습니다.

배추 절구는 통들이 늘어가고, 오그라든 부분을 잘라낸 배추를 어떻게 할까 고민이 되었습니다.

스님은 북한사람들이 배추에 소금을 뿌려 포대에 담아 땅에 묻었다가 봄에 꺼내 먹는다는데 우리도 그렇게 해보자 했습니다. 문수팀 행자님들도 그렇게 실험해보면 좋겠다고 한마디씩 했습니다. 한번 절였다가 먹을 만하면 우리가 먹자는 것으로 의견이 모아집니다. 화광법사님이 배추가 달고 맛있으니 이런 것은 막김치를 담그면 된다고 하셨습니다.

제대로 된 배추로는 포기김치를 담고 오그라든 부분을 잘라낸 배추들은 막김치로 담가먹자고 하니, 안타까운 마음이 안심이 됩니다. 약간 안 좋은 부분 때문에 버리기에는 아깝기도 하고, 배추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던 차였습니다. 막김치로 쓸 수 있다고 하니, 배추 절이는 속도가 점점 빨라집니다.

스님은 배추 다듬는 일이 끝나자, 무청을 툇마루에 가지런히 정리하고 뒤뜰의 장작을 패었습니다.


짧은 겨울 해가 넘어가자, 절이는 일도 끝나고 시래기와 남은 잎들을 정리하였습니다. 남은 잎들은 소에게 주기로 하고 가지런히 포대에 담아 두었습니다. 통들에 소금에 절인 배추들이 꽉 차서 풍성한 느낌입니다. 추운 날씨 속에 오랫동안 밖에서 작업하다보니 손과 발이 시린 채 몸이 얼었습니다. 저녁이 어둑해져 밥을 먹고 절인 배추를 뒤집고 오늘 일이 마무리 되었습니다. 내일은 아침에 배추를 씻고 물을 빼고 양념을 하는 일들을 하기로 하였습니다.

함께 만든 사람들
문수팀

전체댓글 30

0/200

미쉘

스님대단하십니다
모두감기조심하시고행복하세요 ^^

2017-12-03 08:12:33

박기나

아무 말씀없이 김장얘기만하셨는데도 가슴에 와닿습니다
감사할일이너무나 많습니다 그리고 무 배추 손길 정말 많이 갔을텐데 도와주신 다른분들이 있다면 참 감사해야할거같아요

2017-11-30 00:34:51

김수남

노동의 신성함이 마음 깊이 느껴집니다.
감동입니다.

2017-11-26 09:34:38

전체 댓글 보기

스님의하루 최신글

목록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