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17년 12월 13일 민다나오 방문 3일째
“급한 성질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이른 새벽 JTS 필리핀 민다나오 센터는 짙은 안개에 싸여있어 한치앞도 볼 수 없을 지경입니다. 4시 숙소동으로 내려오니 스님방은 환하게 불이 밝혀져 있습니다. 아침예불과 기도전에 스님은 법당으로 나와 명상을 하고 계십니다.

아침기도시간에 들리는 새소리가 안개와 함께 잠든 센터를 깨우는 것 같습니다. 다함께 하는 새벽예불소리가 아주 장엄하게 들립니다. 기도를 마치고 나니 안개도 걷히고 어둠도 걷혀 어제 저녁무렵 보았던 파라다이스가 다시 열렸습니다. 숙소동 앞으로 펼쳐진 풍경은 ‘정말 이곳이 정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오지에 멋진 건물을 지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숙소동과 사무실등이 있는 대강당동도 잘 지어진 것 같았습니다. 스님께서 몇 년 전에 해외정토행자대회를 민다나오에서 해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했던 기억이 났습니다.

식사시간 전까지 박시현님의 안내에 따라 민다나오 센터의 먹거리를 자급자족하기 위해 농사짓고 있는 농장으로 이동하였습니다. 시범적으로 짓고 있다고 하는 당근, 감자, 옥수수, 양배추, 땅콩, 토마토등 각종 야채를 심어놓은 것을 보고 웃기도 하고 아침에 먹을 옥수수를 따기도 하며 모두들 함께 즐거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저멀리 바나나를 심어놓은 바나나 농장 쪽으로 갔습니다. 바나나가 달려있는 모습, 처음 본 바나나꽃이 신기하기도 하였습니다.

아침 공양 시간에 내놓을 바나나 한다발을 가지고 올라가니 마음이 더 뿌듯해지기도 했습니다. 하룻밤만 자고 다시 나가야 하는 것이 무척이나 아쉽게 느껴졌습니다.

아침식사 후 7시 45분부터 스님은 민다나오 센터의 스탭, 이원주 JTS 필리핀 대표님과 함께 2018 사업계획을 브리핑 받고 검토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그리고 박지나 대표님과 필리핀 정토회원, 한국에서 온 일행들은 만타부 초등학교에 학용품을 지원하러 갔습니다.

JTS필리핀 사업은 학교건축, 학용품 지원과 기존학교 시설관리, 교사연수, 마을지도자 연수등 연수사업, 마을개발사업의 크게 4개 부분으로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위 업무이외에도 스탭들 비자업무, 토지이전 등록업무, 센터유지보수관리업무, 공동체 업무등이 추가되어 적은 스탭으로 이 많은 일들을 하는 것이 놀랍기도 하였습니다. 미주정토회관을 운영하고 있는 우리도 느끼는 문제라 민다나오 JTS 센터를 유지하고 보수관리하는 업무가 얼마나 손이 많이 가고 해야 할 일이 많은 것인지 조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스님께서는 2018년 사업계획에 대한 브리핑을 받고 짧은 시간이었지만 하나 하나 짚어나가면서 어떤 원칙을 가지고 사업을 진행하고 마을개발을 해나가야 할 것인지 점검 하고 조언했습니다. 특히 교육사업의 최근변화, 오지에 학교를 지을 때, 장애인 학교를 지을 때 고려해야 할 사항, 무슬림지역에서 사업을 해나갈 때 주의해야 할 것, 마을개발을 할 때 조심해야 할 것 등 어느 것 하나 허투루 들을 수 없는 것 들이었습니다. 스님의 어렸을 때 한국농촌생활경험을 바탕으로 설명을 해주니 귀에 속속 들어왔습니다. 특히 사업을 할 때 ‘우리가 성과를 내기 위해서 너무 조급하면 안된다. 조급하게 되면 독촉하게 되게 되고 그렇게 되면 주민들은 도움을 줘서 고맙기는 하되 기분이 나빠진다’, 그리고 ‘오히려 학생을 가르치는 것은 쉽지만 마을 개발은 어려운 문제고 쉽지가 않다’고 하며 이런 부분이 마을주민들과 갈등이 있는 지점이라고 설명해주었습니다.

3시간동안에 2018년 계획 보고 및 점검, 그리고 민다나오에서 활동하고 있는 스텝들의 수행점검까지 하기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라 활동하는 가운데 어려운 점에 대해 한명에게만 질문할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저는 이곳 필리핀에서 활동하면서 여기 있는 사람들이 여유있게 삶을 살아간다는 것을 많이 경험합니다. 반면 저에게는 급한 성격, 집착이 강한 성격이 있는데, 여기서 다른 사람들과 살아가면서 여유있게 해도 크게 문제가 없다는 것을 많이 느낍니다. 여기 계신 보살님, 거사님과 함께 일하면서도 그분들은 여유있게 일을 진행하는 반면 저는 아침에 기도를 하면서부터 해야할 일 등에 대한 생각으로 마음이 복잡합니다. 기도할 때는 모두 다 중요한 생각들이었는데 정작 기도가 끝나고 일을 시작하면 그때 했던 생각들이 거의 떠오르지 않아요. (모두 웃음)

제 성격으로 인해 어려움을 느낄 때는 특히 제가 계획하거나 생각한대로 되지 않을 때인데, 예를 들어 이곳에서 활동을 하다보면 차량 문제 등 모든 것을 다른 활동가분들과 조율을 해야하는데 그런 것이 제 생각과 다르게 될 때, 그리고 일의 우선 순위에 있어서도 머리로는 다른 소임을 먼저 해야 한다는 것을 이해하지만 왠지 마음 속에서는 제가 맡은 일도 얼른 결재를 받아야 될 것 같아서 흔쾌히 다른 일부터 진행되어야 한다는 것이 수긍되지 않을 때 등입니다. 이런 부분에 있어서 활동하면서 제가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까요?”

“우리가 활동을 하다보면 명상할 때도 해야할 일이 생각나고, 밥 먹다가도 해야할 일이 떠오를 때가 있습니다. 우리의 정신 활동 특성상 떠오르는 생각을 메모할 수 없는 상황일수록 그런 생각이 더 많이 일어나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여러분들도 일에 대한 좋은 아이디어가 가장 많이 떠오를 때가 아마 열흘 동안 묵언수행하는 명상수련을 할 때 일 거예요. (모두 웃음)

그때는 며칠 동안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하니까 평소에 하지 못하는 귀하디 귀한 아이디어들이 샘솟듯이 솟아나요. 그런데 그 귀한 아이디어가 명상수련이 끝나자마자 털끝만큼도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명상 중에 갑자기 재판에 대한 생각이 떠올라서 당장 변호사한테 전화 한 통만 하게 해달라고 난리를 피우는 사람도 있고, 갑자기 회사에 대한 생각이 나서 잠시 다녀와야 된다는 사람도 있어요.

그런데 명상수련을 한 해 두 해 거치고 나면 ‘명상할 때는 부처님이 떠오르더라도 그 생각을 버리라는 것도 이런 말이구나, 이 생각들 역시도 모두 다 지나갈 뿐이구나’하는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질문자의 경우에는 지금은 명상수련을 하는 과정이 아니니까 평소에 활동하면서 항상 메모하는 습관을 가지는 게 좋습니다. 이런 성격을 가진 사람은 늘 메모지랑 펜을 주머니에 넣어 다니면서 무언가 떠오를 때마다 메모를 하는 게 좋아요. 우선 떠오르는대로 아무렇게나 메모장에 모두 다 적어두는 거예요. 그러면 시간이 지나면서 그 생각들이 사라집니다.

그리고 일정 시간이 지난 다음 자기가 메모한 것들을 다시 한 번 봐보세요. 그 중에는 그 순간의 번뇌로 떠오른 생각들도 있고, 중요한 일이나 해야할 일에 대한 메모들도 있어요. 번뇌로 인한 메모는 그냥 지워버리고, 해야할 일들은 ‘이런 일들은 중요한데 내가 늘 잊고 사는구나’하고 다시 챙기게 됩니다. 점검하면서 번뇌로 인한 메모들을 빨간펜으로 지우다보면, 열에 여덟, 아홉은 중요한 생각이 아니구나라든지 자기에게 떠오르는 생각 중 얼마 만큼이 번뇌이고 얼마만큼이 중요한 생각인지를 점검할 수 있게 돼요.

이렇게 스스로 점검하지 않으면 떠오르는 생각들이 중요한데 잊고 사는 것들인지, 그저 지나가는 번뇌인지 구분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우선 떠오르는 것들을 메모장을 가지고 다니면서 쭉 적어보세요. 특정 순간에만 하는 것이 아니라 화장실에 갈 때도 메모장은 들고 다니면서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모두 다 적어두고, 생각이 떠오르지 않을 때 그 메모장을 쭉 한 번 살펴보는 거예요.

살다보면 해야하는 중요한 일인데도 잊어버리는 경우가 있고, 그 당시에는 중요한 것처럼 느껴지는데 지나놓고 보면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근심, 걱정인 경우가 있어요. 중요한데 잊어버린 경우에는 그때라도 처리를 하고, 근심 · 걱정은 알아차릴 때마다 지워나가다 보면 차츰 근심과 걱정은 줄어들고 중요하거나 해야할 일들만 기억에 생생히 남게 됩니다. 우선 이렇게 자기를 점검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 하나 염두에 두어야 하는 부분은 외국에서 활동을 하는 경우에 한국에서처럼 일을 진행하기가 어렵습니다. 우선 한국 사람들은 인도나 필리핀 사람들에 비해 성격이 급한 편이에요. 우리 모두가 이 사람들의 기준에서 보면 성격이 급합니다. 그런데 질문자는 한국 사람 중에서도 성격이 급한 편이니 그 격차는 더 심하게 느껴질 거예요. 우선 그 부분을 감안해야 합니다. 이건 좋다 나쁘다의 관점이 아니라 살아온 방식에서 그런 차이가 나는 거예요.

그러니 질문자가 이곳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을 볼 때도 ‘저 사람들은 느리다’고 볼 것이 아니라 내가 살아온 방식과 다르다는 것을 알고 각자가 지니는 방식 나름의 장단점을 볼 줄 알아야 해요. 질문자처럼 일을 급하게 진행하는 경우에는 성과는 좋을지 모르지만 민심을 잃을 가능성이 있어요. 사업을 하는 사람이라면 주변에 사람을 조금 잃더라도 성과가 있거나 돈을 벌면 괜찮을지 모르지만, 우리는 이곳 사람들을 위해서 이곳에 왔는데 이 사람들의 마음을 잃으면 학교만 지어줄 뿐 오히려 이곳에 온 목적에 맞지 않는 결과를 낳게 됩니다.

우리가 하는 활동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무엇을 위한 것인지를 생각해보면 설령 학교를 짓지 못하더라도 이곳 사람들의 민심을 얻는 것이 우선이에요. 그런데 대부분 일을 급하게 진행하다보니 오히려 학교는 지어주고 민심은 잃는 결과를 낳고 있어요. 그렇게 되면 결국 우리를 뒤따라오는 선교사들에게만 이익이예요. 그들은 이곳 사람들과 아무런 이해 관계가 없으니 이들을 재촉할 일도 없고 결국 아무런 해주는 것 없이 민심을 얻게 됩니다.

학교를 짓는다고 하더라도 기술자든 공사 인부든 현지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노동자로 관리하게 되면 우리는 사장의 입장이 되고 그렇게 되면 결국 민심을 잃게 되기가 쉽습니다. 그래서 가능하면 노동자 관리, 사람 관리는 우리가 하지 않는 게 좋아요. 사람을 관리하는 일은 군청에 맡기고, 우리는 필요한 물자를 지원하며 군청에서 보내주는 사람들과 일할 뿐이에요. 그들이 서로의 이해 관계로 인해 싸우든 말든 그건 그들의 일일입니다. 그것과 관계없이 우리는 어딜가든 항상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웃으며 잘 지내야 해요. 그래야 민심을 잃지 않아요.

그렇다고 이들이 원하는대로 다 해주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게 되면 민심은 얻을지 모르지만 일이 진행되기가 어려워요. 결국 이 두 가지 모순 사이에서 어떻게 조화를 이룰 것인가입니다.

인도에서 성지순례를 하거나 사업을 진행할 때도 늘 이 부분이 관건입니다. 그래서 활동가들을 교육할 때 계획은 우리 방식대로 세우되 추진은 현지에 맞게 하라는 이야기를 늘 합니다. 무슨 말이냐면, 오전 5시에 출발하기로 했으면 우리는 오전 5시에 길가에 나갑니다. 그런데 운전기사가 5시에 나오지 않을 때가 있어요. 그럴 때 운전 기사에게 늦었다고 성질을 내면 인심을 잃게 돼요. 그렇다고 운전기사가 6시에 온다고 해서 우리도 6시에 맞춰서 나가면 상황이 개선되지 않아요.

즉, 우리 방식대로 추진하면 민심을 잃고, 그들의 방식대로 맞추면 개선이 되지 않는 모순점이 있는 거예요. 그럴 때 우리가 조금 피곤하더라도 언제나 계획은 우리 방식대로 세우고 우리는 그에 맞춰 실행을 하는 거예요. 그런데 현지에서 차가 6시에 오면 불평없이 6시에 차를 타고 활동을 시작하는 거예요. 거기서 늦었다고 따지면 결국 인심을 잃게 돼요.

오늘처럼 행사가 있는 날에도 늘 계획은 꼼꼼하게 세우지만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고 해서 성질을 내면 안 돼요. 그리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웃으면서 ‘이렇게 하면 좋겠다, 저렇게 하면 좋겠다’며 계속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결과물을 내면 이들도 결국 ‘한국 사람 답다’며 인정을 합니다. 그렇게 한국 사람들이 한 번 약속하면 약속을 지키더라 하는 신뢰도 얻어야 합니다. 이 사람들 방식에 맞춰서만 일할 거면 우리가 굳이 이 먼 곳까지 올 필요가 없습니다.

반면 이들을 배려하지 않고 우리 방식대로만 일을 추진하면 결국 이들과 원수지간이 될 공산이 큽니다. 이들을 도와주러 이곳까지 왔는데 이들에 대한 불평을 하거나 욕을 하면 결국 이들도 우리를 좋아하지 않게 돼요.

그러니 일은 일대로 추진하되 이들의 민심을 잃지 않는 두 가지를 늘 같이 이루어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계획은 늘 우리 방식대로 세우되 당일에 현장에서 생기는 사건들은 그대로 수용해주어야 해요. 그걸 수용하지 않고 우리가 세운 계획에 집착하게 되면 결국 우리 얼굴이 붉어지고 언성이 높아집니다. 받아들이되 개선해야 할 점은 편안한 마음으로 이야기해 주어야 해요. ‘오늘 상황이 이렇게 되었는데, 지난 번에 약속한대로 해주면 좋겠다’ 이렇게 부드러운 어조로 지속적으로 말해야 개선이 이루어집니다.

인도도 일 처리가 늦게 진행되는 나라인데 우리가 성지순례를 할 때 계획대로 모두 진행되잖아요? 그게 이런 방식으로 처리하기 때문에 가능한 겁니다. 계획을 세울 때 차질이 빚어질지도 모른다는 것을 감안해서 보너스 일정을 넣어둡니다. 한 나절 정도 일정이 지연되어도 지장이 없도록 보너스 일정을 넣어둬서, 지연이 없는 경우에는 그 지역을 둘러보게끔 하는 거예요. 이런 일정도 하나만 넣어두는 게 아니라 2, 3일 간격으로 사이사이에 하나씩 넣어두어야 해요.

바라나시에서 가야로 떠날 때 일찍 도착하면 가면서 가야산을 둘러보고 지연되면 보드가야에 들렀다가 돌아오는 길에 보는 식으로 일정을 조절하는 거예요. 성지순례를 몇 차례 하다보면 대개 어느 일정에서 늦어진다는 것도 예측이 가능해져요.

네팔에서 설산을 보는 일정은 가능하면 하지만 안해도 성지순례 일정에서 그리 핵심적인 부분은 아니니까 일정이 늦어지면 안가면 되지요. 반면 빠지면 안 되는 성지들이 있으니 그 지역들을 중심으로 일정을 진행해요. 그리고 생략 가능한 일정은 공식적인 일정에는 포함시키지 않습니다. 공식적인 일정에 포함되었다가 생략되면 대중들에게서는 ‘왜 안 가냐?’고 또 불만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에요. 그러니 일정표에는 작은 글씨로 참고 사항으로만 넣어두고 일정이 가능할 때만 보는 보너스로 해두는 거예요.

20년 넘게 성지순례를 다니다보면 경험적으로 일정을 어떻게 조율해야 하는지 알게 됩니다. 그런데도 성지순례를 다녀오고 나면 여전히 수정해야 하는 사항들이 생겨납니다. 30년 가까이 다녔는데도 아직 예기치 않은 일들, 고려하지 못한 일들이 발생합니다.

어떤 해에는 호텔을 예약했는데 막상 가보니 방이 없는 경우도 있었어요. 그런 일이 생긴 뒤로는 호텔에 도착하기 전에 전화로 확인하고 또 누군가 몇 시간 전에 먼저 가서 예약 여부를 재확인합니다. 상황을 잘 모르는 사람이 보면 너무 조심하는 것 아닌가하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우리는 지난 20여년 간 발생한 일들을 바탕으로 대비하는 것이기 때문에 작은 부분들도 모두 재확인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어느 해에는 우리가 타기로 한 기차가 통째로 취소되어서 300명을 위한 기차를 새로 마련한 경우도 있었어요.

이렇게 경험에 비추어서 대비하면 인도에 가서도 우리의 일정대로 일을 처리할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평소에 일을 꼼꼼하게 잘 하는 사람들이 있고, 이렇게 응급상황에서 일을 잘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사람의 성격을 잘 감안해서 적재적소에 사람을 배치할 수 있어야 해요.

준공식 일정을 잡을 때도 이곳 사람들과 약속은 하지만 일정은 2, 3개월 늦게 될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여유있게 준비를 하는 것이 좋습니다. 일을 진행하다보면 계획보다 늦어지는 경우가 많아요. 이것은 한국 사회생활에서도 마찬가지예요. 다만 이곳보다 덜할 뿐이에요.

우리가 일을 그렇게 해내야 이 사람들에게 도움이 됩니다. 불가능할 것 같았는데 한국사람들은 해내는구나 이렇게 되어야 이 사람들의 신뢰도 얻을 수 있어요. 그런데 그 과정에서 성질을 내면 성과에 대한 인정을 받을지는 몰라도 감정이 나빠집니다. 그러니 과정에서 맞딱드리는 현실은 현실대로 수용해야 해요. 수행 차원에서 받아들이는 거예요. 동시에 일은 계획대로 계속 추진해 나가야 해요.

현지에서 일을 잘 진행하는 사람들은 이 둘을 다 해내기 때문입니다. 그걸 못해내면 어느 정도 활동을 하다가 이곳 사람들과 갈등을 겪고 결국 한국으로 돌아갑니다. 반면 자기 중심을 잃고 이 사람들에게 맞추기만 하면 사업 진행이 이루어지지 않아요.

대부분의 갈등은 일의 추진 속도 때문에 빚어집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일을 조금 빠르게 진행하는 편인데, 이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느리다보니까 거기서 갈등이 많이 일어나요. 여기서 일을 도와주는 사람들도 따로 월급을 받는 것도 아닌데 자꾸 재촉하면 이 사람들도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우리는 그냥 알아본다고 물어봐도 여기 사람들은 자꾸 자기들에게 책임을 묻는다고 느끼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게 돼요. 그러니 현실에서는 늘 부드럽게 이야기해야 해요. 성질을 내어봐야 노동자들에게 좋을 건 하나도 없어요.

항상 원칙에 맞춰 일을 진행하고, 정 말을 안 들으면 다음 배치가 이루어질 때 그 사람의 부서를 바꾸거나 다른 곳에 가서 일을 하도록 조치를 취하면 되지 성질을 낼 이유는 없습니다. 이 사람들 입장에서도 ‘계획대로 하지 않으면 우리한테 손해구나’하는 생각을 하게끔 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 성질을 내거나 감정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일의 진행을 돕지도 않고, 저 사람들의 기분만 상하게 하는 아주 어리석은 방식입니다. 저들이 봤을 때 잔소리꾼이 되면 안 되요. 그런 점에서는 진중해야 해요.

여러분들의 나이는 비록 저들보다 어릴지 모르지만 한국에서 이곳까지 와서 일을 지휘한다는 점에서는 이미 사장의 위치에 있는 거예요. 목에 힘주고 다니라는 게 아니라 아이처럼 감정적으로 대하지 말고, 늘 맡은 일에 책임감을 다해야 합니다.

질문자의 경우에는 다른 사람보다 성격이 급한 편이면 늘 감정적으로 대할 수 있는 위험이 있으니 그 부분을 조심해야 합니다. 우선 생각이 많이 떠오르는 부분은 늘 메모를 해서 어떤 부분이 번뇌이고 어떤 부분이 중요한 일인지를 구분해보는 것으로 접근을 해보고, 일하는 데서 생기는 일은 늘 계획은 한국식으로 세우되 현장에서 일어나는 상황은 수용하는 방식으로 진행해보세요. 현장에서 생기는 일은 늘 현장의 문화를 수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네, 말씀 감사합니다.”

비록 한 사람만에게만 주어진 질문 기회였지만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아주 귀한 가르침이라 모두들 스님의 말씀을 가슴깊이 간직하며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아 참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오늘은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입니다. 센터에서 11시에는 출발해야 하므로 바로 개인정비를 하고 짐을 차량에 실었습니다. 스탭들은 1년만에 민다나오 센터를 방문한 스님께 삼배로 인사드리고 최소한 1년에 2번은 방문해주시면 좋겠다는 희망사항을 얘기해 모두들 한바탕 웃기도 했습니다. 스님은 스탭들에게 일일히 용돈을 주시며 격려해주기도 했습니다. 스님은 운전사분, 도움주시는 모든 분들께 일일히 용돈을 챙겨주셨는데 인자하신 할아버지 모습이 연상되어 빙그레 웃음이 났습니다. 스님을 처음 뵌지 19년이 지났으니 이제 스님도 할아버지가 된 것 같았습니다.

도시에는 자동차 소리뿐만 아니라 각종 소음으로 소리에 민감한 저는 소리에 끄달려 가기가 쉽습니다. 새벽기도시간과 회의시간에 들려오는 새소리가 시끄럽게 느꺼지는 대신 자연의 소리로 들려 마음이 아주 평온했습니다. 아침에 잠깐 걷혔던 안개가 회의 후에는 다시 한치앞을 볼 수 없을 정도로 짙어져 밖에서 기념사진을 찍을 수 없어 법당에서 다함께 기념사진촬영을 하였습니다.

가갸안데오도르시에 위치한 공항으로 가는 길에 도동씨 가족과 만나 점심식사를 했습니다. 바닷가에 위치한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하면서 스님은 도동씨 가족이 설립한 회사 (Shiga Story)에서 생산한 매운 고추 소스를 선물용으로 한박스 구입하였습니다. 스님과 도동씨는 스님이 현재 지원하고 있는 지역의 마을 개발을 하면서 알라원 커피처럼 지역특산물을 개발하고 이 상품들을 JTS 유통센터를 통해 판매하면 마을개발에도 좋을 것이라고 의견을 나누었습니다. 스님은 도동씨의 큰아드님에게 비젼이 있는 회사를 운영해야 한다고 격려를 하였습니다.

마닐라 공항에 도착해서 바로 이원주 대표님댁으로 가니 필리핀 정토회원들이 한가지씩 음식을 해가지고 와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간단히 저녁식사를 하고 스님은 급하게 처리할 업무를 보기도 했습니다.

이어 식사가 마무리되자 스님은 이번 민다나오 사업장 방문에 대해 간략히 얘기해주시고 필리핀 정토회원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지원에 대해 감사인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내년 해외일정, 특히 마닐라에서 하게 될 해외정토행자대회에 대한 설명, 한국정토회에서 현재 하고 있는 본부불사, 평화재단쪽에서 준비하고 있는 1223 한반도 평화대회에 대한 설명과 현재 한반도 문제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주기도 했습니다.

스님은 한국을 떠나기 위해 공항으로 출발해야 하므로 필리핀 정토회원들이 스님께 인사를 하고, 스님은 도동씨에게서 구입한 칠리소스를 필리핀 정토회원들과 일행에게 선물로 나눠 주었습니다.

스님은 마닐라공항에서 11시 50분행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출발하여 목요일 오전 4시 40분에 인천공항에 도착할 예정입니다. 공항으로 들어가기 전에 스님과 한국일행은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공항청사로 들어갔습니다. 스님은 이렇게 짧은 3일간의 민다나오 방문일정을 모두 마쳤습니다.

스님과 함께 한 3일의 여정을 마무리 하면서 스님께서 민다나오센터 법당에서 현지에 남아 활동하는 스텝들에게 마지막으로 해준 말씀이 마음에 많이 남습니다.

“우리는 수행자로 이곳에 왔습니다. 일과 수행의 통일을 통해 일도 잘해야 합니다. 그러나 일에 빠지지 말아야 합니다. 일을 잘해야 한다고 내속에서 화가 나고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일을 해선 안됩니다. 그리고 남을 괴롭히면서 일을 잘해도 안됩니다. 그들을 존중하면서도 일을 잘해야 합니다. 알았지요?”

라고 하면서 젊은 스탭들을 격려했습니다. 스님의 말씀은 비단 이곳에 남아있는 우리 젊은 스탭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일과 수행의 통일을 수행과제로 삼아 함께 정토를 일구는 우리들이 모두 명심해서 새겨야 할 명심문 같았습니다.

함께 만든 사람들
김순영, 조태준

전체댓글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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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천수

우아~~타지에서 모두들 너무 고생많으시네요~
대단하십니다~부디 원만성취하시기를 기원합니다~!!

2017-12-19 19:09:24

김성임

오늘은 눈에 물이고이는 날 이네요
잘견디고 있다가도 휴~~ 저도 모르는 소리가 귓전에 들립니다

2017-12-19 16:07:10

진달래

넘 지혜로운 말씀 감사합니다

2017-12-18 10:3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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