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18.2.26. 정초순회법회_서울제주지부
“아들의 자살, 어떻게 기도해야 할까요?”

안녕하세요? 오늘은 서울제주지부 정회원들을 대상으로 정초법회가 진행되었습니다. 주간 반은 오후 2시, 저녁 반은 오후 7시 30분에 정초법회가 열렸습니다.

서초법당은 일찍부터 많은 정회원이 도착하였습니다. 정토회 별로 인사할 때 선보일 노래와 율동 연습에 한여름처럼 뜨거운 열기를 내뿜고 있었습니다.

2시가 되어 첫 순서로 서울제주지부 상임법사이신 묘덕법사님과 김경례 사무국장님의 인사말이 있었습니다.

이어 정토회별로 정회원 소개가 있었습니다. 서울정토회를 시작으로 노원, 서대문, 송파, 양천, 성동, 멀리서 오신 제주 정토회까지 소개를 하며 한바탕 웃음바다가 되어 흥겨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제주 정토회에서는 비행기를 타고 세 분이나 오셔서 짧고 굵은 인사로 가장 큰 박수를 받았습니다.

들뜬 마음을 잠시 명상으로 가라앉히고 스님의 법문이 시작되었습니다. ‘수행자란 교만하지 않고 겸손하고, 비굴하지 않고 당당하며 복을 짓되 복 받을 마음은 없이 하라. 수행자의 기준은 부처님이기 때문에 세속에 아무런 미련이나 집착 없이 수행자의 원칙을 지키며 살아가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싸워서 이길 생각을 버리고 질 생각을 한다면 이 세상 살아가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말씀에 다시 수행자의 관점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즉문즉설이 이어졌습니다. 총 세 분이 질문해주었습니다. 봉사자 전체 밴드가 폐지되면서 정토회의 결정 과정이 궁금하며 그 과정의 절차적 정당성과 투명성이 궁금하다 하신 분, 본부 불사가 되고 있는데 모연에 대해선 너무 조용해서 궁금하다 하신 분,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외교적으로 좋은 분위기 같은데 올림픽이 끝나고도 이 정세가 어떻게 변화될지 걱정이 된다는 분, 이렇게 활동과 현재 사회현안에 대한 질문이 있었습니다.

스님의 답변 중 소수의 의견이라도 세 번은 계속 의견을 낼 수 있지만 세 번까지 아니라는 답변을 들었다면, 수행자라면 그때는 내려놓아야 한다는 말씀이 인상 깊었습니다.

정초를 맞아 스님께 세배 올리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어진 통일특위의 특별공연과 ‘스승의 은혜’를 합창하며 스님께 카네이션을 한 송이씩 드렸을 때는 마음이 다 같이 충만해졌습니다. 스님은 그 꽃을 다시 노보살님들께 나누어주시며 정답게 사진을 찍었습니다. 이렇게 주간 정초법회를 마무리했습니다.

저녁부 정초법회는 오후 7시 30분 서초법당에서 열렸습니다. 법회는 서울제주지부 지원팀장 서현숙 님의 사회로 진행되었습니다. 먼저 서울제주지부의 상임법사이신 묘덕법사님의 인사말씀이 있었습니다.

“1년에 한 번 지도법사님과 만나는 날입니다. 정토회가 이젠 실무능력을 갖춘 저녁부가 주축이 되어가니까 기대가 큽니다. 저녁부가 시스템의 부족한 부분을 많이 메꿔 나가리라고 생각합니다. 직장생활이 벅차지만, 내부 시스템을 갖추는 일에 시간과 지혜를 내어주셔서 업무를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메뉴얼을 만들어 주면 좋겠습니다. 좋은 시간 되시기 바랍니다.”

스님이 입장하시자 법당을 가득 메운 정회원들이 큰 박수로 맞이했습니다. 곧바로 서울제주지부 정회원과 공동체 소개가 시작되었습니다.

서울정토회의 회원들이 나와 ‘사랑합니다, 반갑습니다’ 두 마디 인사를 하고 들어갔습니다. 서대문정토회에는 정회원들이 나와 인사하고 산란퍼포먼스를 유쾌하게 보이고 들어갔습니다. 노원정토회에는 도종환 시인의 시 ‘흔들리며 피는 꽃’을 패러디한 ‘흔들리며 피는 정토행자’ 시를 낭독해 웃음을 자아내게 했습니다. 양천정토회는 머리띠를 하고 나와 짧은 노래를 부르고 소개에 들어갔습니다. 성동정토회는 ‘전쟁 싫어’와 ‘평화 좋아’ 구호를 외쳤습니다. 송파정토회는 짧고 인상 깊은 구호를 외치고 들어갔습니다.

다음에는 공동체 식구들이 나와 음악에 맞춰 갈팡질팡 공연을 하며 정회원들을 즐겁게 해주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통일특위 특별공연이 있었는데 거수경례로 평화를 외치고 통일 노래도 부르며 열기를 돋워주었습니다. 법당 안에는 160여 정회원이 참석하여 열기가 후끈후끈하였습니다. 공연이 끝나고 스님의 법문이 시작되었습니다.

“오늘은 서울제주지부 정회원을 위한 법회이자 정초법회이기도 합니다. 한참 전에는 정초에 모든 법당을 다 다니며 법회를 했습니다. 하루에 네 군데 법당에 다녔는데 입정해 있을 때 들어가서 입정하면 사라졌습니다.(모두 웃음) 말이 정초법회이지 3월에 정초법회를 하니 안 되겠다고 해서 지부별로 정초법회를 하고, 각 지부의 법사님들이 법당마다 법회를 하게 되었습니다.

정초법회는 발심행자 이상의 회원들이 참여하는 정회원 법회로 규정이 되었습니다. 정토회는 종교단체가 아니고 수행단체이고, 수행자들의 모임입니다. 종교단체는 신자들이 모인 신앙공동체라고 합니다. 사람은 동물과 비교할 때, 정신작용에서 많이 차이가 납니다. 사람은 정신작용이 특별히 발달해서 장단점이 있는데 장점은 인지력이 뛰어나다는 것이고, 단점은 원하는 게 지나치게 많다는 겁니다.

육체를 기준으로 보면 먹기만 하면 되는데 정신작용 때문에 남보다 잘 먹어야 한다는 욕망이 다른 동물보다 큽니다. 능력이 다른 동물보다 뛰어남에도 괴로움이 많습니다. 개도 울고 소도 울지만 사람과 비교하면 사람처럼 괴로워하거나 화를 내지 않습니다. 다른 동물들도 정신이 이상해서 자살하는 경우가 있지만 사람은 한국에서만 1년에 1만 5천명이 자살로 죽습니다. 좀 더 있으면 인간이 죽는 원인 가운데 가장 큰 원인이 자살이 될 것입니다.

현재도 10대, 20대, 30대까지의 최고 사망 원인이 자살입니다. 사람은 원하는 것이 너무 커지니 성취시키기 어렵고,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청해서도 이룰 수 없을 정도입니다. 그래서 어떤 생명보다 우수한 능력을 갖춘 존재이면서 인간 스스로 나약한 존재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허황된 욕망을 채우기 위해 인간이 고안해 낸 게 바로 인간과 비교도 안 되는 능력자,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전지전능한 존재입니다. 그 존재를 있다고 믿고, 그 존재에게 빌면 내 모든 욕망을 성취 할 수 있다고 믿는 자를 신자라고 합니다.”

이렇게 스님은 종교에 대한 말씀을 깊게 해 주셨습니다. 70년 전에는 먹고, 자고, 입는 것이 큰 문제였는데 지금은 옛날의 임금님보다 더 좋은 옷을 입고, 더 부드러운 음식을 먹고, 좋은 집에 살면서도 만족하지 못하는데 우리는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운가도 물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초를 다투며 생활을 하고 있어서 스트레스도 옛날 사람 보다 더 많고, 화도 더 많이 내고, 더 외롭다고 합니다. 앞으로 더 많이 바쁘고, 더 스트레스 받고 더 외로울지 모르는데 그 누구도 해결을 못합니다.

우리는 어릴 때보다 더 자유로워졌을까요? 부모세대보다 우리가 더 자유로울까요? 아닙니다. 인간이 추구하는 것은 자유와 행복입니다.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워질 때 그것이 진정한 자유입니다.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 깨달음입니다.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운 자를 아라한, 붓다라고 부릅니다. 붓다는 천상천하 유아독존이고, 육도윤회를 벗어난 사람입니다.

수행자는 당당한 자부심이 있는데 교만함과 다릅니다. 부처님을 능력자라고 하지 않고 대스승이라 합니다.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길을 열어주셨기에 사생의 자부라고 합니다. 수행자의 길로 가기 위해서 수행공동체 정토회가 있습니다. 우리는 수행자입니다.”

스님은 즉문즉설에 앞서 수행자의 길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하였습니다. 스님은 서울제주지부가 정회원 유지율이 전국에서 가장 낮은 점을 짚으며 오늘 온 정회원들이 자격 정지된 회원들도 수행의 길을 함께 갈 수 있도록 두 명씩은 책임지자고 하였습니다. 법문 끝에는 ‘나는 수행자입니다.’를 함께 외쳐보았습니다. 스님은 힘들고 스트레스 받을 때 ‘나는 수행자’라는 것을 떠올려 보라고 하였습니다.

이어서 즉문즉설이 시작되었습니다. 총 네 분의 질문자가 질문을 해 주었습니다.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한옥 한 채가 4남매 공동 명의로 되어 있는데 빨리 팔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라는 질문, 모둠장 소임을 부탁하는 게 힘이 드는데 모둠장의 중요성에 대한 말씀을 부탁하는 질문, 주례회의를 할 때 부총무님이 두서가 없어서 불편한데 부총무를 어떻게 봐야할지에 관한 질문, 40여일 전 아들이 자살하였는데 어떻게 수행적 관점을 가지고 기도를 해야하는 지에 대한 질문이 있었습니다.

그 중 마지막 질문을 소개해 드립니다.

“아들이 세상을 떠난 지 40일 정도 되었습니다. 아들은 중학교 1학년 때부터 28살까지 14년 동안 골프 선수 생활을 하다가 결국 자기가 이루고자 한 바를 이루지 못하고, 차 안에 숯불을 켜놓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제가 이 일에 대해 어떻게 수행적 관점을 가지고 기도를 해야 할까요?”

“상심이 크실텐데 우선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수행자의 관점이라면, 우선 일어난 일에 대해서는 단지 일어난 일로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해서 ‘만약 그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면’하고 자꾸 생각하면 그것이 번뇌의 원인이 됩니다. 그러니 우선 일어난 일에 대한 수용이 필요합니다.”

“네.”

“그리고 우리가 아들을 걱정하든 부모를 걱정하든, 그 걱정은 결국 누구를 위한 것인가요?”

“...”

“우리가 걱정을 할 때, 그 걱정은 결국 아들이나 부모를 위한 거잖아요? 지금 아들은 이미 세상에 없으니 아들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요. 그런데 이걸 두고 괴로워하거나 걱정을 한다면 그것은 질문자의 문제예요. 그러니 이걸 아들의 문제, 아들이 세상에 없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라고 잘못 생각하면 안 됩니다.

만약 제가 시계를 잃어버렸다고 해봐요. 잃어버린 시계에 대해 생각하면서 고민을 하거나 걱정을 하면 그건 시계의 문제가 아니라 제 문제잖아요. 시계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요. 그런 것처럼 지금 질문자의 고민도 우선 아들의 문제가 아니라 내 문제라는 것을 자각해야 합니다.

그러면 내가 갖고 있는 이 문제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만약 어떤 사람이 잠자듯이 편안하게 죽으면, 죽은 사람은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도리어 살아있는 사람들이 죽은 사람이 그리워서 힘들어해요. 그래서 나이 드신 분들이 자는 듯이 죽는 게 소원이라는 말을 할 때마다, 제가 자식들을 위해서 3년은 끙끙 앓다가 가셔야 된다는 말씀을 드리는 거예요. (모두 웃음)

자식들이 돌보다가 지쳐서 자기도 모르게 은근히 가셨으면 할 때 떠나주어야 해요. 그래야 자식들이 아쉬운 마음이 들다가도 다른 한 편으로는 마음에서 정이 끊어지기 때문에 덜 힘들어 합니다. 자식들을 괜히 고생시키라는 게 아니라 그런 과정에서 자식들도 그만큼 마음의 준비가 되어간다는 뜻이에요. 그래서 옛날부터 친하게 지내던 사람이 갑자기 못되게 하다가 세상을 떠나면 ‘아, 정 떼려고 그랬구나’하고 생각했습니다.

죽은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요. 살아있는 사람들의 집착이 문제예요. 정을 떼지 못하는 게 문제가 되는 거예요. 갑자기 누군가 죽으면 살아있는 사람에게 큰 자책감, 그리움 등 온갖 감정이 올라옵니다.

작은 시계를 하나 잃어버려도 서운함이 생기는데, 애지중지 키우던 자식을 잃었으니 그 슬픔이야 이루 말할 수가 없겠지요. 질문자도 힘들지만 아내는 더 상심이 클 거예요.

지금 질문자가 겪고 있을 심정을 이해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다만 지금 우리가 겪는 이런 괴로운 감정들은 다른 동물에 비해 정신활동이 발달된 인간들에게 나타나는 더 많이 나고 있습니다. 즉, 괴로움은 사람이면 누구나 느껴야 하는 어쩔 수 없는 감정이 아니라 인간의 정신활동이 발달하면서 나타나는 부작용일 뿐입니다.

질문자의 슬픔이나 상심도 아들에 대한 집착을 놓지 못하는 데서 오는 것 입니다. 달리 말하면 이미 일어난 일을 현실로 받아들이지 않는 데 따르는 부작용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러니 일어난 일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러니 우선 ‘이건 내 문제이지, 아들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자각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일은 이미 일어났는데, ‘안 일어났다면’이라는 환상 속에서 계속 살아가게 돼요.

그리고 이 일로 후회하고 괴로워하면 나만 손해입니다. 문제 해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아요. 또한, 후회를 한다는 것은 집착이 있기 때문이에요. 일어난 일에 대해 후회를 하지 말고 교훈을 얻어야 해요. ‘나는 아이가 그저 성공하기만을 바랐지, 아이가 얼마나 힘드는지는 생각하지 못했구나’하고 자신의 모습을 돌아봐야 해요.

어떤 운동선수는 너무 힘들어서 정토회에 와서 명상도 하고 깨달음의 장도 했는데, 아버지는 오히려 아이가 정토회에 가서 선수 생활을 그만둘까 싶어서 전전긍긍해요. 아이는 운동에 완전히 지쳐서 죽으려고 하는데, 아버지는 운동을 계속 시킬 생각 밖에 안 해요. 아버지가 아들을 하나의 수단으로만 여기지 사람으로 여기지 않는 거예요.

많은 부모들도 다르지 않습니다. 아이에게 좋은 대학교에 가야 된다, 좋은 직장을 구해야 된다고 요구하는데, 따지고 보면 모두 자기들 만족을 위해서 요구하는 것이지 그 속에서 아이들이 얼마나 고통스러울 지 생각하지 않는 거예요.

그러니 오히려 정토회가 오해를 받아요. 그 선수가 깨달음의 장 등 수련도 하고 틈만 나면 여기 와서 명상도 했는데, 부모는 아이가 선수생활을 그만둘까 싶어서 그 걱정 밖에 안 합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저를 찾아와서 아이가 그만두겠다고 큰 결심을 하면 스님이 말려달라고 그래요.

그럴 때 스님이 말리겠어요, 안 말리겠어요? (모두 웃음) 그 아버지한테는 아이의 선수 생활이 중요할지 모르지만, 스님한테는 이 사람이 겪고 있는 괴로움이 중요하지 선수 생활을 하고 안하고는 중요한 게 아니에요. 그러니 선수 생활을 그만두든지 그만두지 않든지에 대한 일체의 간섭을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이에게 운동을 처음 시작했을 때 돈을 벌려고 했는지, 재미있어서 했는지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재미있어서 시작했다고 해요. 그럼 앞으로도 계속 재미로 하라고 했지요. 운동을 해서 돈을 벌려고 하니까 등수에 연연하게 되고 괴로워지는 거예요.

일반인과 비교해보면, 일반인들은 돈을 내고 그 운동을 해야하는데 이 아이는 시합에 나가도 돈을 받고 운동을 하잖아요. 다만 등수에 따라 많이 받고 적게 받고의 차이인데, 여전히 선수니까 돈을 받고 운동을 합니다.

그러니까 시합을 연습 삼아 나가보라고 했어요. 시합에서 이겨야 된다는 생각이 강하면, 못 이길 것 같은 시합은 빼먹기도 하고 그러는데 그러지 말고 연습 삼아서 모든 시합에 다 나가는 거예요. 성적이 좋으면 다행이고, 안 좋아도 연습이니 그뿐이잖아요. 그러니 시합을 빼먹는 것보다는 연습 하러라도 나가보라고 했어요.

이미 선수생활을 하고 있는 아이이고, 자기 욕심대로 1, 2등을 못해서 그렇지 상위권에는 들어가니까 연습하듯이 해도 용돈은 나옵니다. 물론 ‘연습으로, 놀이 삼아 하라’고 해도 처음에는 잘 안돼요. 그 아이가 연습 삼아 나간다고 해도 막상 가면 또 긴장을 해서 처음에는 2, 3등으로 잘 나가다가 후반에 가서밀리곤 해요. 시작할 때부터 2, 30등으로 시작하면 오히려 괜찮아요. 그런데 1, 2등을 다투다가 2등하면 아쉬움이 큽니다. 따지고 보면 시합에서2등도 하고 상금도 받으니 아쉬울 일이 없는데도 원하던 1등을 못했다고 아쉬워하는 거예요.

올림픽에서도 2등이 아쉬워할까요, 3등이 아쉬워할까요? 2등이 더 아쉬워해요. 3등은 오히려 4등으로 밀리지 않고 메달을 땄다고 좋아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3등은 3, 4위전에서 ‘이겼다’는 생각을 하고, 2등은 1, 2위전에서 ‘졌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기 때문에 객관적으로 보면 2등이 3등보다 더 나은데도 2등이 더 아쉬워하고, 시합 끝나고 울고 있는 사람들보면 대부분 2등이에요. (모두 웃음) 이것이 다 결과 자체 때문에 나타나는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갖는 기대에 따른 문제입니다.

코치가 아이에게 선수생활을 계속 이어나가기를 바라는 것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부모는 코치가 아닙니다. 부모는 이기고 지는데 초연할 필요가 있어요. 결과가 어떻든 ‘그래도 잘했다. 다음에 잘 하면 되지’하고 위로를 해주어야 해요. 그것이 부모가 해주어야하는 역할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부모가 아니라 모두 이웃집 사람이나 코치의 역할만 하고 있어요.

질문자도 스스로를 돌아보고 만약 부모의 역할을 했다면 다행이고, 만약 부모의 역할을 하지 않았다면 그걸 후회하는 게 아니라 이제부터는 아내와 다른 자식들에게 이해하는 마음을 내고 내 욕구대로 하지 말아야겠다는 교훈을 얻으면 돼요. 그렇게 되면 하나를 잃고, 나머지를 얻게 됩니다. 이 사건을 통해 인생의 큰 교훈을 얻는 거예요.

이 일을 통해 교훈을 얻으면 사람의 삶에서 무엇이 중요한지를 깨닫게 돼요. 살아있을 때는 등수가 중요한 것 같지만 죽고 나면 등수라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어요. 그러니 이 일을 통해 내가 크게 배우는 거예요. 인생의 가치가 무엇인지를 배우면 되지, 후회를 하는 것은 좋지 않아요. 후회는 문제 해결에도 도움이 되지 않고, 내 삶에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니 수행자라면 우선 이 문제를 아들의 문제가 아니라 내 문제로 받아들여야 하고, 둘째로 후회하는 게 아니라 이 일을 통해 내가 삶의 교훈을 얻는 게 중요합니다.

우리는 종교적인모임이 아니기 때문에 굳이 영혼을 따지지는 않지만, 만약 영혼이 있어서 다른 곳에 간다고 하면 이렇게 살아있는 사람이 슬퍼하거나 집착하면 좋은 곳에 가지 못합니다. 오히려 놓아주어야 합니다. ‘아들이 그 상황에서 얼마나 힘들었을까, 이제는 해방되었으니 오히려 잘 되었구나’하고 놓아주어야 해요.

자살은 특별한 사건으로 인해 충격을 받아서 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정신적인 질환과 관계가 있습니다. 정신적인 질환은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어요.

혹시 여러분에게도 가끔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그냥 확 죽어버릴까’ 하고 자살에 대한 충동이 생긴다면, 정신적인 질환이 작동을 하고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런 일이 있으면 정신과에 가서 신경안정제를 비상약으로 가지고 다니면서 충동이 일어날 때 약을 먹어야 해요.

아마 질문자는 아이에게 그런 정신적인 질환이나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몰랐을 거예요. 이런 우울증은 조기에 치료하지 않으면 대부분 자살로 막을 내립니다. 암에 걸려서 죽는 것과 다르지 않아요. 그런 면에서 보면 특별히 억울하게 생각할 일은 아니에요. 정신질환도 암과 같이 하나의 병입니다. 조기에 발견해서 옆에서 치료하는데 도움을 주면 나아질 수 있지만, 만성화되면 치유하기가 어렵습니다.

특히 병을 드러내기 어려운 환경에 놓여있는 사람들은 치유가 어려워요. 일반인들은 주변에 이야기해서 도움을 받으면 되는데, 알려진 운동 선수나 연예인 혹은 사회적 직책이 있는 사람들은 그런 걸 드러내면 자신의 사회 생활에 큰 지장이 있으니까 드러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럴 때 견디다 견디다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을 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러니 이런 현상이 발견되면 바로 주변에 알리고 치료를 받아야 해요. 우리는 이런 정신적인 질환을 쉽게 받아들이는 문화가 아니다보니 쉽지는 않지요. 한때 우리나라 자살률이 하루 46명까지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요즘 38명으로 줄어들었다고 해요.

스님은 ‘나도 기여했다’하고 자부하고 있어요. (대중 박수와 웃음) 지난 10년 동안 열심히 활동했잖아요. 학교에 강연을 가면 청소년 7명이 질문하는데 그 중 5명에게서 우울증 증상이 보일 때도 있었어요. 그러면 강연 중에도 분위기가 많이 가라앉습니다. 그럴 때 해줄 수 있는 건 즉각적인 치유가 아니라 우울증 증상이 보이니까 병원에 가서 도움을 받으라는 것을 알려주는 거예요.

만약 아이가 집에서 밖으로 잘 나오지 않으면 거의 대부분 심각한 수준의 우울증입니다. 이걸 잘 아셔야 해요. 밖에 잘 안 나오려고 하면, 하루 종일 방에 앉아있으면 병입니다. 그걸 빨리 받아들이고 도움을 받아야 해요. 그런데 그걸 잘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어떤 학생이 조금 불안해 보였어요. 상태가 심각한 거예요. 그래서 당장 병원에 데리고 가라고 하니까 아이가 고3인데 몇 개월 있으면 대입시험이라고 해요. 그런 생각이 잘못된 거예요. 시험이 내일이라고 해도 오늘 당장 병원에 데리고 가야죠. 사람을 살리는 게 중요하지, 시험 성적이 뭐가 그리 중요해요? 올해 시험 못 치면 내년에 다시 치면 되잖아요.

이렇게 관점을 분명하게 가져야 합니다. 여기 계신 분들도 누구 한 사람만 보기 싫으면 대개 분별심이 일어나는 정도인데, 만약 집에 가면 남편이 마음에 안 들고, 자식도 마음에 안 들고 정토회에 오면 도반들도 싫고 (모두 웃음) 어디서 누구를 만나든 다 싫으면 그건 거의 병일 확률이 높아요. 그러니 스스로 진단을 해보고 아니다 싶으면 병원에 가서 치료부터 받아야 해요.

수행자는 치료가 가능합니다. 바로 자각을 하기 때문에 치유가 가능한 거예요. 그런데 본인 스스로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치유가 어렵습니다. 오히려 자기를 정신병자 취급한다며 항의하니까 주변에서 말도 못 꺼냅니다. 아예 발작을 할 정도로 상태가 심각하면 강제로라도 병원에 입원시키면 되니까 오히려 치료는 쉽습니다. 본인이 인정을 하지 않으면 치유가 어렵고 오히려 어렵습니다.

이런 사람들도 의사가 봐서 상태가 안 좋다 싶으면 억지로라도 치료를 하면 좋은데, 그렇게 하면 만에 하나 조금만 이상해도 억지로 치료를 시켜서 인권을 침해할 수 있기 때문에 그렇게는 강제로는 못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뚜렷한 대책이 없기 때문에, 이런 경우에는 자연 치유가 되고 스스로 인정을 할 정도가 되어서 병원에 가거나, 아주 상태가 심해져서 강제 입원 시킬 정도가 될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습니다.

어느 경우든 치유가 될 수 있는 여지가 있으니까 걱정할 이유는 없어요. 가만히 놔둬서 자연히 치유가 되면 치유가 되어서 좋고, 더 나빠지면 강제로라도 치료 받을 수 있는 조건이 갖추어져서 좋은 거예요. 이렇게 보면 어떤 경우든 큰 문제는 아니에요.

그런데 부모입장에서는 이렇게 마음의 여유를 갖고 지켜보는 게 잘 되지 않습니다. 가만히 아이를 지켜보고 상태가 안 좋으면 의사한테 데리고 가면 되는데, 말 안 하는 아이에게 ‘네가 뭐가 문제냐, 왜 말을 안 하냐’고 하거나, 이거 먹어라 저거 먹어라 해서 아이를 가만히 놔두질 않아요. 상태가 안 좋아 보이면 의사한테 데리고 가서 ‘제가 부모로서 어떻게 하면 됩니까?’ 물어보고, 병원비 내주고 필요하면 병원에 데려다주고 데리고 오고만 해주면 돼요.

다시 한 번 이야기하면 첫째, 이 문제를 내 문제로 받아들이고, 둘째, 이번 일을 인생의 교훈으로 삼으시길 바랍니다. 지나간 일은 두고 부족한 점이 있었다면 남은 사람들에게 반성하고 잘해주세요. 이미 간 사람에게 잘 못해주었다고 생각하고 후회할 필요가 없습니다. ‘저 사람에게 사과를 못했다’는 것에 너무 얽매이지 말고, 그 사람에게 하지 못한 것을 생각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할 지 교훈을 삼으면 됩니다. 셋째, 아들에 대해 생각해 볼 때 정신적인 질환이 있었다고 생각되면, 너무 억울해하실 일은 아니에요.

정신적 질환은 조기에 발견하면 치유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아직 치료할 수 있는 약이 없습니다. 정신적인 병은 어떠한 충격이 트라우마로 남아있어 발병하는 경우가 있고, 호르몬이나 분비물의 과다로 나타나는 경우가 있어요. 그래서 약물 치료가 완전한 치유를 해주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증세를 완화시키는 데에는 크게 효과가 있습니다.

그러니 우선 급한 경우에는 약물 치료를 시작해서 증세를 완화시킨 다음, 수행을 병행하면 치유가 훨씬 수월해집니다. 그리고 치유의 핵심은 자각입니다. ‘아, 나에게 우울증 증세가 있구나.’ 하고 알아차리는 거예요.

그런데 ‘죽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거나 무언가에 사로잡힐 때는 이 알아차림이 없어집니다.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정말 죽어야 해결될 것 같이 느껴집니다. 그 순간에는 알아차림이 없기 때문에 그럴 때는 신경안정제를 먹어서 그 순간을 모면해야 해요.

그리고 타살보다 자살이 주변 가족에게 미치는 영향이 더 큽니다. 타살의 경우 가해자를 원망하게 되는 경우가 많지만, 자살의 경우에는 살아있는 사람들이 자책의 심리가 크게 일어나기 때문에 나쁜 영향을 더 많이 주게 됩니다.

질문자는 수행자로서 살아가니까 이 사건에 영향을 안 받도록 정진해야 해요. 아내는 이 영향을 못 떨칠 수도 있고, 다른 가족들은 못 떨칠 수도 있지만, 질문자는 그걸 떨쳐내고 오히려 아내와 남은 가족들을 위로해주는 입장이 되는 것이 수행자의 자세예요. 본인이 건강해야 다른 가족을 챙기는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첫째 아이에게 그런 증상이 나타났다는 것은 다른 자식이나 다른 가족에게도 그런 증상이 있을 가능성이 높아요. 이런 정신적 질환은 유전적일 수도 있고, 가정의 문화나 분위기 같은 것의 영향으로 생겨났을 수도 있기 때문이에요. 그러니 질문자가 수행을 통해서 건강하게 살면서 그 영향이 다른 가족에게 전염되지 않도록 하는 게 필요합니다.”

“네. 말씀 감사합니다.”(모두 박수)

힘든 상황 속에서도, 수행적 관점을 잡으려는 질문자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냅니다. 마지막으로 스님은 정회원들에게 수행자라는 걸 잊지 말라고 다시 한번 당부하였습니다.

“우리는 뭐라고요? 우리는 수행자다, 수행적 관점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평창동계올림픽 때문에 남북에 좋은 영향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위에는 꽃이 폈는데 아래에는 얼음이 꽁꽁 얼어 있습니다. 남북이 대화가 되더라도 문제의 본질이 해결된 게 아니라 4월에 한미군사훈련을 하게 되면 문제가 다시 불거질 수 있습니다. 북미가 계속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데 적절한 대화의 물꼬를 터서 갈지, 대화의 의제 때문에 타협이 안 될지 알 수가 없습니다. 핵개발 중단이 입구가 되고, 출구로 비핵화에 대한 북한의 의지를 보여줘야 합니다. 미국이 볼 때 명분이 되게 의지를 보여줘야 합니다.”

법문이 끝나고 신규발심행자들이 인사하고, 선배 발심행자들의 축하 박수를 받았습니다. 스님은 신규발심행자들에게 웃으며 자격을 잘 유지할 것을 격려하였습니다. 스님께 새해 인사로 세배를 드리고, 단체 사진촬영을 한 후 법회가 마무리 되었습니다.

법회가 마친 후 정초법회에 참석한 정회원 두 분의 소감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오늘 스님의 법문을 듣고 너무 행복했다. 수행적 관점을 놓치고도 놓친 줄도 모르는 상황을 사례로 일깨워 주시고, 수행자로서의 삶의 기준을 잊지 말고 잘 살아야겠다고 다시 한번 다짐했다.” 고 하고, 또 다른 분은 “욕망과 기대를 내려놓아 자유롭게 사는 수행자임을 잊지 않고 당당하고 겸손하게 살겠습니다.”라고 말해주었습니다. 소감을 통해, 스님의 법문을 통해 수행자와 정회원으로써의 본분을 다시 돌이킬 수 있었습니다.

이로써 서울제주지부 정초법회를 잘 마무리 했습니다. 내일은 인천경기서부지부 정회원들과 함께 합니다.

함께 만든 사람들
강현주, 김바다, 김은진, 정연석, 조태준

▼ 삶을 바꾸는 공부, 법륜 스님과 함께하는 정토불교대학
http://edu.jungto.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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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지금 이리ㅏ도 죽는것있으며죽고싶어요알려주세요암이는병에있어서너무나힘들어요

2024-03-26 16:42:17

닉네임

저도너무나힘들ㅇ니요 죽는것있으면알고싶어요죽고싶어요 너무나고통스러여요알려주세요

2024-03-24 13:29:10

칼스버그

올바른 길을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우울할 때는 호르몬의 영향인지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고 죽고 싶다는 생각만 듭니다. 그런 상황을 경험하셨는지...어떻게 저리 잘 아실까요? 그 상황이 지나가면 저도 그 감정을 잊고서 사는데...정말 대단한 통찰력이십니다.

2018-06-26 15:4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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