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18.4.27 농사일 & 남북정상회담 시청
“부모님과 소통이 안 돼요.”

남북 정상회담이 열린 역사적인 날, 오늘도 스님은 여느 때처럼 흙을 만지고 상추를 다듬고 농사를 하였습니다.

어제 부산 강연을 마치고 밤늦게 두북으로 돌아와 아침을 맞았습니다. 햇살이 눈부신 아침이었습니다. 아침 공양을 하는 중에 문수팀 행자님들이 오늘따라 서둘러 농사 울력을 왔습니다. 남북정상회담이 열리는 오늘, 생중계를 보고 싶다며 서두른 것이었습니다.

먼저 웃 밭에 올라 지난 번 심어둔 옥수수, 완두콩의 흙을 북돋워주고, 내려오는 길에 밭둑에 버려진 벽돌을 주웠습니다. 지난 번 비가 올 때 코스모스를 심다가 버려진 벽돌들을 발견하고 봐둔 것들이었습니다. 스님은 부직포를 덮을 때나 평상을 반듯하게 놓을 때 등 요긴하게 쓰일 때가 많다고 하였습니다.

온실 속 상추와 정원의 상추 잎도 따서 솎아 주었습니다. 스님은 행자님들에게 상추 씻는 법을 알려주었습니다.

마침 지리산 수련원에서 여광 법사님도 오셨습니다. 작은 차에 고추, 가지, 수박, 참외, 오이 모종을 가득 싣고 온 곳이었습니다. 모종을 내려놓고 물을 흠뻑 주었습니다.

오전 9시가 되자 다들 모여 앉아 작은 노트북 화면에 시선을 모았습니다. 남과 북 두 정상이 판문점 군사분계선을 사이에 두고 두 손을 맞잡았습니다. 북에서 남으로, 남에서 북으로 두 정상의 가벼운 월경에 웃음이 터졌습니다. 이리도 쉬운 것을, 이렇게 자연스러운 행동에 얼마나 많은 정치적, 군사적 죄목들이 덧씌워졌었던가요.

감격스런 만남을 함께 지켜본 뒤, 스님은 잠시 휴식 하였습니다. 한낮의 땡볕이 가시기를 기다렸다가 여광법사님이 가지고 온 모종들을 싣고 밭으로 올라갔습니다. 완두콩 옆에 ‘ㅅ(시옷)’ 자 지지대를 세워준 뒤, 가시 오이 모종을 심었습니다.

아래 밭에는 고추 모종을 30센티 정도 간격을 두고 가지런히 심었습니다. 한 사람이 구멍을 내면, 뒤 이어 모종을 포트에서 꺼내 주고, 이어서 모종을 심어 가도록 하였습니다. 다음 사람은 주전자에 물을 담아 물을 흠뻑 준 뒤, 그 위에 흙을 북돋워 주었습니다. 물이 모종에 제대로 스며들도록 하면서 허투루 새어 버리는 물도 아끼는 방법입니다.

일이 어느 정도 진행되어가자, 스님은 곧은 대나무 몇 개를 골라 다듬었습니다. 작물 지지대로 대나무가 안성맞춤이기 때문입니다. 요즘에는 농사용품으로 지지대용 봉이 기성품으로 판매되기는 하지만 스님은 밭 주변에 널려 있는 것을 주워 모아 사용하고 있습니다. 대나무 지지대가 늘어세워진 밭이 한층 멋있게 보였습니다.

웃 밭은 행자님들이 마무리 하도록 하고 스님은 온실로 내려와 모종을 손보았습니다. 작은 포트에 심어 둔 모종들을 더 큰 곳으로 옮겼습니다. 삭혀 둔 소똥과 퇴비를 잘 섞어 화분에 담고 모종들을 옮겨 심었습니다.

한참 열중하고 보니 저녁 공양 시간이 지났습니다. 웃 밭에 모종 심기를 마치고 돌아온 행자님들과 함께 늦은 저녁 공양을 하였습니다.

노트북 화면에서는 오늘 ‘판문점 회담’의 선언문을 낭독하는 남북 두 정상의 연설을 재방송하고 이어 만찬 소식까지 전해주고 있었습니다. 따뜻한 저녁 밥상 보다 더 따뜻하고 마음이 푸근해지는, 먹지 않아도 배가 이미 부른 것 같은 장면들이었습니다. 전쟁 위기의 살얼음판을 조심조심 지나며 오늘에 이르렀기 때문인지 남북 정상이 환한 웃음으로 만난 오늘이 더 큰 감격으로 다가왔습니다. 이제는 한반도의 휴전 상태를 끝내고 진정한 평화를 맞이하게 되기를 더욱 간절히 바래봅니다.

오늘은 법문이 없었기 때문에 지난 26일 저녁 부산에서 열린 청년 즉문즉설 강연 이야기를 함께 소개합니다.

해운대 중심지로 꼽히는 센텀시티에 위치한 부산디자인센터 청춘톡톡 현장은 바다의 도시답게 새하얀 구름 사이로 봄 햇살과 시원한 바람이 골고루 어우러져 산뜻한 기운을 내뿜었습니다.

청년 즉문즉설 강연은 패기와 활력이 넘치는 32명의 부산, 울산 청년봉사자들이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준비했습니다. 강연장에는 중고등학생, 청년 뿐만 아니라 어르신들과 자녀와의 공감을 위해 찾으신 함께 오신 부모님들도 계셨습니다.

스님의 등장과 함께 박수가 터져 나왔습니다. 스님은 이번 강연은 특별히 청년들과의 대화 시간임을 강조하시며 관객석 쪽으로 더 다가와 눈을 맞추고 대화를 시작하였습니다.

“계절의 봄이 완전하게 왔네요. 또, 지금 한반도에는 계절의 봄 뿐만 아니라 평화의 봄이 가까이 다가왔습니다. 이 둘보다 더 기쁜 게 뭘까요? 마음의 봄이에요. 여러분들 마음마다 봄이 와야 하는데 얼굴을 보니 아직 한겨울인 사람들도 있네요.(모두 웃음) 자, 오늘 어떻게 마음의 봄을 맞이할 수 있는지 이야기해봅시다.”

스님은 계절의 봄, 한반도의 봄, 그리고 마음의 봄맞이를 강조하며 강연을 시작하였습니다. 오늘은 총 6명의 청년이 질문하였습니다. 준비 중인 책의 추천사를 스님께 부탁하고 싶다는 분, 최선을 다해 연애를 연습하고 있는데 언제쯤 연애의 연습을 끝을 낼 수 있는지 궁금하다는 분, 친구들을 만날 때 싸늘해지는 분위기에 위축되고 소심해지는 성격이 고민이라는 분, 결혼하고 싶지만 종교가 다른 여자친구와 갈등을 어떻게 풀 수 있는지 궁금하다는 분, 스토리 작가로 열심히 노력하고 있지만 불안하고 초조하다는 분이 질문하였습니다.

그 중에 외동딸인데 부모님과 소통은 하고 싶지만 힘들다는 질문을 소개합니다.

“저는 외동이어서 그런지 부모님과의 소통에 대한 갈구가 큰 편입니다. 직장생활을 할 때에는 자취를 해서 부모님과 부딪힐 일이 적었지만, 여행을 길게 다녀온 뒤 집을 잃고 부모님 댁으로 들어가면서 부딪히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질문자 웃음) 제 마음 속에 소통을 하고 싶은 욕구가 크다보니까 소통을 하려고 노력을 하는데, 그러다 어느새 부모님과 부딪히고 차츰 제가 입을 닫게 되고 분위기가 냉랭해지는 패턴이 반복됩니다. 제가 소통에 대한 욕구를 내려놓으면 마음이 편할텐데 그러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걸 어떻게 해야 좋을까요?”

“이 문제는 자신을 잘 살펴봐야 해요. 질문자는 소통에 대한 욕구라고 하지만 자세히 보면 소통에 대한 욕구가 아니라 자신의 욕구나 뜻을 성취시키려고 하는 거라고 할 수 있어요.

부딪힘은 내 마음대로 하려고 할 때 생기는 거예요. 소통의 핵심은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거예요. 질문자는 들어주는 게 아니라 자기의 이야기를 부모님에게 들어달라고 요구하는 거잖아요. 그리고 지금 그게 안 되니까 고민하는 거잖아요?”

“네, 그렇습니다. (질문자 웃음)”

“지금 몇 살이에요?”

“서른 두 살입니다.”

“서른 두 살이면 부모님 집에서 나와야 될까요, 계속 거기서 살아야 될까요?”

“집에서 나와야 될 것 같아요. (질문자 웃음)”

“그래요. 집에서 나오면 그런 문제는 신경 안 써도 돼요. 결혼을 했거나 자식과의 문제는 풀어야 되는데, 지금 이경 우에는 굳이 안 풀어도 괜찮아요. 매듭을 풀 때 해결하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어요. 하나는 꼬인 부분을 풀어내는 방법이 있고, 다른 하나는 그 부분을 잘라내는 방법이 있어요. 지금은 잘라서 해결해도 괜찮은 경우예요. 지금과 같은 경우에는 자른다고 부작용이 생기지는 않습니다.

결혼해서 자식이 있는 경우에는 잘라서 해결하면 자식에게 피해가 가기 때문에 어지간하면 풀어서 해결하는 게 좋습니다. 그러나 꼬인 것을 풀려고 노력을 아무리 해도 정 안 되겠다싶으면 ‘안녕히 계십시오’를 하라고 하는데, 그게 바로 잘라서 해결하라는 말이에요.

소통은 들어주면 됩니다. 어머니가 무슨 이야기를 하던 ‘네, 어머니’, ‘네, 어머니’ 이렇게 해보세요. 소통이 아주 잘 됩니다. (질문자 웃음) 대통령이 국민과 소통을 하려고 할 때도 국민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사람이 좋은 리더이지, 국민이 대통령 이야기를 고분고분하게 잘 듣기를 바라는 사람이 좋은 리더가 아니라 오히려 그런 사람을 독재자라고 합니다.

지금 질문자는 어머니가 내 말을 안 듣는다고 고민을 털어놓고 있는 거예요. 독재가 안 된다는 고민을 하면서 어떻게 ‘소통’이라는 단어를 함부로 쓰고 그래요?”(모두 웃음)

“네.(질문자 웃음)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씀을 드리자면 생활 속에서 어머니의 짜증 섞인 목소리를 많이 듣게 됩니다. 그게 저한테 하는 말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저는 그게 듣기가 싫어요.”

“그래도 남의 집에서 공짜로 방 한 칸 얻어 살려면 그 정도의 서비스는 해주어야죠. (모두 웃음) 그것도 하기 싫다면 완전 공짜로 먹으려는 거잖아요. 그게 싫으면 집에서 나오면 돼요. (모두 웃음)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어요? 그러니 그게 하기 싫으면 그냥 나오면 돼요.”

“네. 얘기 듣고 보니 제 욕심이었던 것 같습니다. (모두 웃음)”

“부모님 집에서 계속 살면서 방 하나 공짜로 쓰고, 부엌과 거실도 같이 쓰려면 항상 어머니보다 먼저 일어나서 밥을 차려서 ‘어머니, 식사하세요’하고, 다 먹고 나면 설거지도 하고 출근하고, 저녁에도 퇴근하면 집에 와서 청소도 하고, 이렇게 살아보세요. 그러면 어머니의 잔소리가 자연스럽게 없어집니다.”

“네.”

“그렇게 살면 어머니가 딸을 믿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대개 나이가 서른둘이 되도록 아침에 늦잠을 자고, 밥을 차려 줘도 안 먹고 나가고, 옷도 아무데나 벗어 놓는 등 자꾸 어린 아이같이 행동하니까 부모님도 잔소리를 하게 되고 여러분을 믿을 수가 없게 되는 거예요.

어른 취급을 받으려면 집 안에서의 생활부터가 자립적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주말이 되면 집안 청소도 하고, 일주일 동안 밀린 빨래들도 세탁기에 넣어서 정리해 두고, 그 정도는 해야 방값이 어느 정도 해결될 거잖아요?”

“네.”

“그런데 지금 그것도 안 하면서 어머니가 자기 성질이 나서 궁시렁거리는 것조차도 못하게 하면, 그건 성질이 조금 이상한 사람 아니에요? (모두 웃음)

그게 싫으면 나가서 살면 돼요. 그런데 여의치 않아서 거기에 계속 살아야 되면, 스무 살이 넘었기 때문에 부모님은 이제 더 이상 내 보호자가 아니에요. 앞으로는 이웃집 아주머니, 아저씨라고 생각하셔야 해요. 그러니 앞으로는 부모님의 가정생활에 관여하면 안 돼요. 두 분이서 싸우든지 뭘 해도 이제는 일체 관여하면 안 돼요. 나한테 뭐라고 하면 ‘알겠습니다, 어머니’ 이러면 돼요. 그 말 한 마디 할 때마다 10만원씩 생기는 꼴이잖아요.”

“아 네. 제가 정말 어리석었네요. (질문자와 청중 웃음) 감사합니다.”(청중 박수)

“스무 살이 넘으면 부모가 자식을 돌봐야 할 아무런 의무나 책임이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여러분도 부모님의 잔소리를 들어야 할 의무가 없어요. 대신 스무 살이 넘어서도 부모님의 덕을 보고 살면 그만큼의 서비스를 해야 해요. 잔소리를 조금 듣거나, 밥하고, 청소하고 빨래를 하거나, 뭔가 해야 합니다.

이건 냉정하게 생각하셔야 해요. 만약 스님이 앞에 있는 이 학생에게 장학금을 준다고 해봐요. 그러면 장학금을 받은 학생은 스님의 기대에 부응해서 어느 정도의 성적을 받아야 될 책임이 생기잖아요?

청중 : “네.”

“마찬가지로 스무 살 넘어서 부모님에게 지원을 받는다면 부모님은 나에게 있어서 스폰서가 되는 거예요. 더 이상은 보호자에게서 무상 지원을 받는 게 아니라 스폰서에게 지원을 받는 거예요. 스폰서가 돈을 지원해 주면, 스폰서의 눈치를 조금 봐야 되잖아요? 평소에 일찍 일찍 다녀야 되고, 눈치 봐서 청소도 하고, 뭐라고 말하면 ‘네’해야 스폰서도 후원하는 재미가 있을 거잖아요.

받을 건 다 받고 그런 건 안 하겠다면, 공짜로 먹겠다는 거잖아요. 공짜로 먹는 걸 좋아하는 건 어린 아이예요. 서른이 넘어서도 그렇게 어린 아이 같이 하니까, 부모님이 못 미더워서 자꾸 잔소리를 하게 되는 거예요.

아까 얘기 한대로 아침에 일어나서 밥 해 놓고, 설거지 한 다음 출근하고, 돌아와서는 방 청소도 싹 해 놓고, 저녁에 늦게 되면 전화해서 늦는다고 얘기 해보 세요. 여러분들 회사 다니면서 아침에 늦을 때는 전화해서 미리 알려주는 것처럼 집에도 늦을 때 전화해서 딱 알려주고 하면 부모님도 믿음이 생겨서 잔소리를 안 하게 됩니다.

이 자리에 부모님이 계신다면, 부모님은 잔소리를 안 해야 합니다. 부모부터 아이를 믿어 주고 어른 대우를 해주어야 아이가 밖에 나가서도 어른이 됩니다. 아이가 서른이 되었는데도 자꾸 어린 아이 취급을 하고 잔소리를 하니까, 자기 엄마도 못 믿는 아이를 사회에서 다른 누군가가 믿어 줄 리는 없잖아요? 부모로부터 자꾸 잔소리를 듣는 자식들은 자존감이 낮아져요. 부모로부터도 인정을 못 받는 사람이 세상 어디에 가서 인정을 받겠어요?

그러니까 스무 살이 넘어서도 밥값을 못하는 자식이나, 잔소리를 하는 부모는 서로가 서로를 해치는 거예요. 어릴 때에는 돌봐 주는 부모가 자식에 있어 최고의 은혜이고, 부모의 입장에서도 어린 아이를 돌볼 의무가 있어요. 그런데 아이가 스무 살이 넘으면 부모는 더 이상 돌봐 주어야 할 의무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자식에게도 자기의 의사 결정을 스스로 할 권리도 생깁니다.

이렇게 부모 자식 간의 관계를 보호자-피보호자 관계에서 어른과 어른의 관계로 바뀌어야 합니다. 일종의 사회적인 계약 관계로 바뀌는 거예요. 어른이 되어서 부모님이 지원을 해주는 대신 ‘부모 말 들어라’하면, 지원 금액과 요구를 잘 따져 봐서 금액보다 요구 사항이 많은 것 같으면 (모두 웃음) 적절하게 협상을 하든지 ‘아닙니다’하고 지원을 안 받든지 결정을 하는 거예요. 반면 부모님의 지원을 받기로 결정하면 그만큼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이러한 자세를 갖추는 것이 독립을 하는 거예요.

그런데 여러분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자식들은 대개 부모에게 의지해서 얻어먹고 살고 싶지만 말은 듣기 싫어해요. 그러다보니 갈등이 생겨서 집에서 뛰쳐나오고 그래요.

저희 문경 수련원에서 백일 출가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데, 여기 참가하는 사람들은 고생을 많이 해요.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서 아침부터 밥하고 청소하고 108배하고, 저녁에는 300배하고, 하루 종일 막노동을 하는 수준이에요. 그렇게 하면 서른 명이 한 방에서 자도 옆 사람이 코 고는 건 안 들려요. 눈 잠깐 감으면 다시 일어날 시간이 돼요. (모두 웃음)

집에 가면 자기 방도 따로 있고, 부모가 먹는 것도 다 챙겨 주는데, 왜 집에서 못 살고 백일 출가를 나올까요?

핵심은 잔소리예요. 잔소리는 곧 자식을 어린 아이 취급하는 겁니다. 부모가 보면 어린 아이 같을 때가 많아요. 아침에 일어나지도 못하고, 자기 옷을 스스로 빨지도 못하고, 밥도 할 줄 모르니까 어린 아이죠.

그래서 백일 출가를 하면 꼭두새벽부터 밥하고, 청소하고, 빨래하는데 이건 곧 어른되는 연습을 하는 거예요. 백일 동안 밥을 해서 다른 사람을 주고, 다른 사람이 어지럽힌 것을 청소하는 연습을 하는 거예요.

이런 걸 할 줄 아는 게 어른이에요. 여자는 대개 아기를 낳으면 바로 어른이 됩니다. 아기를 낳자마자 자동적으로 돌보는 사람이 되기 때문이에요. 결혼을 안 해도 누군가를 돌봐 주는 일을 하면 어른이 됩니다. 반면 누군가를 돌봐 주는 일을 하지 않으면 나이가 마흔이 되던, 쉰이 되던 여전히 어린 아이의 습이 남아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결혼 생활도 많이 어려워합니다. 제가 어릴 때에는 한 방에 다섯 명, 여섯 명이 같이 자는 게 다반사였어요. 형제들끼리 이불도 서로 차지하려고 싸우면서 잤는데, 그러다가 결혼을 하면 셋방을 얻어 살아도 한 방에 둘이서 지내니까 결혼 전보다 형편이 나아집니다. 셋방살이라도 결혼 전보다 환경이 좋아지니까 결혼 생활이 수월한 거예요.

그런데 요즘은 부모님과 함께 살면서 자기 방도 따로 있고, 응접실도 있는 집에서 부모님이 밥도 해주고 빨래도 해주는 환경에서 지내다가 결혼을 하면 집 크기도 줄고 밥도 내가 해야 하고 빨래도 내가 해야 하니까 결혼 생활이 쉽지 않은 거예요. 그래서 점차 결혼을 안 하려고 해요. 이건 무슨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결혼 후의 일상생활을 떠올려 보면 벌써 자기한테 주어지는 일이 많아지는 거예요. 거기다가 아이까지 낳으면 일이 더 많아집니다. 그래서 결혼을 안 하려는 거예요.

어떤 주관에 의해 혹은 결심에 의해 결혼을 안 하는 게 아니라 막연히 생각을 해봐도 일이 많을 것 같으니까, 연애까지는 좋은데 결혼은 왠지 부담스러운 거예요.

그러니 부모가 자녀를 제대로 교육시키려면 아무리 돈이 많아도 검소하게 살고, 아이가 어릴 때부터 같이 어렵게 살아 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아이가 커서는 어디 가서 무엇을 하면서라도 세상을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생명체의 세계에서 어미가 새끼에게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사랑은 새끼가 자립해서 스스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는 것입니다. 자연계에 있는 모든 동물이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자립을 시켜야 새끼가 생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인간만 지금 자립과 떨어진 삶을 살고 있어요. 좋은 집, 좋은 차를 사주는 게 사랑이라고 착각하는데, 진정한 사랑은 한 사람으로서 자립을 할 수 있도록 해주는 거예요. 스무 살이 넘으면 스스로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한 사람이 되도록 해주는 거예요. 자식이 무엇을 하든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출가를 해서 스님이 되던, 수녀가 되던, 아르바이트로 막노동을 하든, 자기 인생을 자기가 살 수 있도록 훈련을 시켜 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요즘은 과잉보호를 해서 스무 살이 되어서도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사람을 만들어 놔요. 그저 학교만 다닐 줄 알아요.

그러다 보니 학교 졸업과 동시에 직장을 구하면 용케도 살아남지만 요즘처럼 취직이 보장되지 않는 사회에서는 젊은이들이 삶을 어떻게 살아야 될지 모른 채 방황합니다. 스님이 강연에서 젊은이들에게 ‘자립적으로 살아야 한다’고 말을 하니까 부모도 자기 자식에게 그 말을 되풀이 합니다. 지금까지 의존하도록 키워 놓고는 이제 와서 자립하라고 하니까 잘 안 됩니다. 이건 마치 사회에서 창의적인 인재가 필요하다고 하니까, 지금까지 모방 교육을 시켜 놓고는 어느 날 갑자기‘창의적인 사람이 되어라’라고 하는 것과 같아요.

이제는 바뀌어야 합니다. 부모 세대는 초등학교만 나와서 공장에 다녀도, 자기 집 마련해서 가정을 꾸리고 자식도 키우고 부모 봉양도 하면서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대학교를 졸업해도 자기 한 몸 건사하기가 힘듭니다. 젊은이들의 능력이 부족해서 이런 문제가 생긴 것도 아닙니다. 과거에 비하면 요즘 청년들의 능력이 더 좋아요. 그럼 이게 세상이 나빠져서 생긴 문제인가 하면 그것도 아닙니다. 세상도 전보다 나아졌어요.

그러면 뭐가 문제일까요? 바로 세상을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훈련이 되지 않아서 생긴 문제입니다. 그러니 세상에 나가면 덜컥 겁부터 나고, 뭘 어떻게 해야 할 지 막막한 거예요. 의사나 간호사처럼 직업이 확실한 사람들이 아니면 막연해서 뭘 하고 살아야 할지 모르는 경우가 많아요.

이러한 부분을 인식하고 가정교육, 학교교육을 바꾸어 가야 합니다. 그리고 사회적인 제도도 바뀌어야 해요. 지금 젊은이들에게 가장 큰 문제가 주택문제예요. 청년들의 주택을 직장에서 버스 타고 한 두 정거장 거리에 있는 너무 멀지 않은 시가지에 5~10평 정도로 해서 월급의 10%만 내면 살 수 있게끔 해주어야 해요. 100만원 벌면 한 달에 10만원을 내고, 200만원 벌면 한 달에 20만원 내고 살 수 있는 주택 정책을 펴야 합니다. 그래야 젊은 사람들도 살아갈 수 있어요. 그렇지 않고 지금과 같은 시스템에서 젊은이가 월급을 받아서 집을 사는 건 열 명에 한 명도 나오기 힘듭니다. 부모가 집을 대신 사주는 게 아니면 스스로 집을 장만하기가 힘들어요.

두 번째는 교육 문제입니다. 지금은 아이를 낳아서 키우려고 해도 사교육비가 감당이 되지 않아요. 그러니 사교육비가 들지 않는 교육 시스템을 마련해 주어야 합니다.

세 번째는 건강 의료 문제인데, 이 부분은 여러분들이 실감하기 어렵겠지만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최 상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보건 의료 제도는 거의 공산주의 수준입니다. 의료보험료는 각자 수입에 따라서 5만원 내는 사람도 있고, 100만원 내는 사람도 있는데, 병원에 가면 모두가 똑같은 대우를 받습니다. 보험료 많이 낸다고 병원에 줄 안서도 된다던지 그런 것 없이 보험료와 관계없이 누구나 똑같은 대우를 받습니다. 이거야 말로 사회주의식 의료보험 제도라고 할 수 있는 정도예요.

미국의 의료보험 제도는 다릅니다. 보험료를 많이 낸 사람이 좋은 대우를 받고, 적게 낸 사람은 찬밥 신세예요. 게다가 의료보험에 가입조차 되어 있지 않은 사람이 제일 많아요. 이러한 제도를 개혁하기 위해 오바마 대통령 시절에 ‘오바마 케어’라는 제도를 마련했는데, 트럼프 정부에 들어와서 그 제도를 없애려고 하고 있어요.

우리나라 의료보험 제도는 잘 되어 있는 줄 알아야 합니다. 즉, 잘 되어 있는 것은 잘 되어 있는 줄 알아야 하고, 개선이 필요한 부분은 개선이 필요한 줄 알아야 해요. 주택 제도와 교육제도를 바꾸지 않는 한 다른 출산 장려 정책을 아무리 많이 써도 큰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아이 낳을 때마다 출산 장려금 500만원, 1,000만원 준다고 하는데, 천만 원 받으려고 아기 낳는 사람은 극히 드뭅니다.

그런데도 그런 정책이 나오는 거 보면 참 신기해요. 어디 가서 아기를 천만 원 주고 사오라는 얘긴지 (모두 웃음) 문제를 바라보는 방식이 잘못되었습니다. 우선 생활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 해주면 아기를 낳고 낳지 않고는 각자의 선택에 의한 것이지, 정부가 정책으로 아기를 낳으라고 하면 국민들이 아기를 놓는 기계가 아니잖아요. 그러니 이러한 출산 정책은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또 아이를 많이 낳는다고 꼭 좋은 것도 아닙니다. 앞으로 갈수록 인공지능이 발달되어서 직업은 점차 줄어듭니다. 그리고 수명 연장이 되면서 나이가 80이 되어도 일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육체적으로 힘쓰는 일은 점점 없어지니 컴퓨터를 이용하는 일은 나이가 많아도 얼마든지 할 수 있어요. 지금은 정년제 도로 일을 못하게 하니까 노인들이 일을 하지 않는 것이지, 하고자 하면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앞으로는 점차 노동력 과잉 사회가 됩니다. 노동력이 남아 돌아서 문제지, 더 이상 노동력이 부족한 사회가 아니에요.

과거의 인구 분포를 기준으로 해서 만든 정년 기준들도 모두 현재에 맞게 바꾸어야 합니다. 이제는 75세를 정년으로 하는 게 더 적합합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아도 젊은이들의 일자리가 없어서 고민인데, 정년까지 늘리면 젊은이들의 일자리는 더욱 줄어듭니다. 그래서 일 나누기도 해야 합니다. 우리나라도 최근 주 최대 68시간 근무에서 주 최대 52시간 근무로 바꾸었습니다. 유럽은 대부분 주당 최대 45시간 근무입니다. 그 이상은 일해도 월급을 받지 못하게 되어 있고, 그 이상 일을 시키는 것도 법으로 금지해 두었어요.

현재 우리나라는 주 5일 근무제인데, 앞으로는 곧 주 4일제로 바뀝니다. 그렇지 않고는 많은 사람들이 직업이 없는 채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면 일주일에 나머지 3일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도 커다란 사회적 문제가 됩니다.

이렇게 미래사 회의 변화를 미리 예측하고, 그에 대한 제도적 대비책도 강구해 봐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갖고 있는 사회적 과제입니다.

생물학적으로는 인공 자궁과 같은 기관도 나올 거예요. 그렇게 되면 사람이 직접 출산을 할 필요도 없습니다. 지금은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언젠가 아기도 주문해서 출산하는 사회가 될 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세상은 바뀌고 있습니다. 어른들이 경험한 세상과 요즘 세상이 다르고, 지금 여러분이 경험하는 세상과 여러분들의 자녀가 살아갈 세상은 또 다른 모습입니다. 세대마다 각자가 처한 세상에 맞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해요. 그런데 우리 대부분은 자기의 경험에 비추어서 다음 세대까지 그렇게 살도록 하고 있습니다.

다른 세상에 사는 세대는 그에 맞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해요. 그에 맞게 필요한 제도적인 개혁도 해 나가야 합니다. 자꾸 마음만 바꾸면 된다고 하면 세상은 그대로 놔둔 채 내 마음만 바꾸는 것이냐고 헷갈려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내 마음을 바꾸는 것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세상을 바꾸어 가는 것도 중요합니다.

남자들은 군대에 가면 3년간 월급도 받고, 군 복무를 경력으로 인정받습니다. 그런데 나라 지키는 것 못지않게 사람 키우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니 여성이 아기를 키우는 동안에도 월급을 받고, 아기를 키우는 것도 경력으로 인정받아야 해요. 아기 낳고 키우는 것이야말로 그 어떤 것에 못지않게 전문가의 면모를 요구하는 일이에요.

이렇게 사회 변화의 모습도 생각해보고, 제도적으로 개선이 필요한 부분을 여러분 스스로 찾아 나가야 합니다. 그리고 필요한 제도적 개선을 이루기 위해서는 앞으로 다가오는 지방선거를 비롯해서 총선과 대선 등에서 투표를 꼭 해야 합니다.

재작년 탄핵 국면에서는 젊은이들이 정치에 많은 관심을 보였는데, 곧 다가오는 지방 선거에는 지방 자체 단체장은 누가 하든 크게 관심이 없는 눈치예요. 놀러 가더라도 꼭 투표는 하고 놀러 가셔야 합니다.

앞으로는 여러분 청년들이 적극적으로 투표를 해야 합니다. 그리고 나름대로 민주주의가 발전할 수 있는 투표를 해야 합니다. 그 안에서 진보를 지지하거나 보수를 지지하는 것은 각자의 성향이자 선택입니다. 각자의 사상, 이념은 헌법에도 보장된 자유예요.

이런 것들을 고려해서 앞으로는 여러분 모두 사회문제에 대해 보다 적극적으로 활동할 필요가 있습니다.”

부모 자식과의 관계에서 나아가 이 시대 청년들이 처한 문제, 미래 사회의 전망과 역할까지 폭넓게 들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청년들도,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도 서로 고개를 끄덕이는 시간이었습니다.

강연이 끝나고 질문자 중 한 분을 만나 인터뷰해 보았습니다. 질문자는 질문 후에 스님의 일침 같은 좋은 말씀 덕분에 정신이 바짝 들었고 생각을 다시 할 수 있게 되었다며 밝은 미소로 대답하였습니다. 또, 청년들 사이에서 눈에 띄는 중년 여성분께 소감을 여쭈어 보았습니다. ‘평소에 유투브로 즉문즉설을 많이 보았는데 강연장에 꼭 한 번 와보고 싶었고 청년들에게 하신 말씀이지만 부모 입장에서 아이들이 갖고 있는 아픔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었고 들어도 항상 잊어버리게 되는데 다시 한 번 새길 수 있어서 스님께 정말 감사하다’고 하였습니다.

젊기에 하게 되는 고민들이 젊으니까 할 수 있는 긍정적인 고민으로 바뀌는 것을 느끼며 행복도 고통도 내가 하기 나름이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강연 후, 오늘 행사를 준비한 청년들과 스님이 단체 사진을 찍었습니다. 강연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한 봉사자들의 표정에 행복이 가득했습니다. 힘을 모으면 불가능이 없다는 것을 서로서로에게 느끼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함께 수행을 하고, 봉사를 하며 소중한 인연이 되어 가는 과정을 몸소 체험하며 하루를 마무리했습니다.

내일은 정토 불교 대학 주간반 학생들과 함께 경주 남산을 순례한 후 너른 숲속 터에서 학생들과 함께 즉문즉설 시간을 가질 예정입니다. 언제나 그랬듯이 내일도 스님은 괴로움에서 벗어나고자 질문하는 사람들에게 행복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할 것입니다.

함께 만든 사람들
서세희나, 이현서, 조태준

전체댓글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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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나

우리는 독립된 하나하나에 인격체. 그래서 더 자유롭다, 나에게도 너에게도...;
감사합니다. 꾸벅^^

2018-05-03 09:39:02

광명일

소통 쉽고도 어렵네요.
감사합니다.

2018-05-03 06:58:23

이기사

감사합니다

2018-04-30 20:2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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