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18.5.7 행복한 대화 (양산)
“욱하는 성질을 고치고 싶어요.”

오늘 스님은 하루 종일 채소를 수확했습니다. 어제 낙산사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을 위한 즉문즉설이 끝난 후 밤을 달려 두북에 도착하여 쉬신 후 비가 오는데도 아침부터 상추, 고수, 쑥갓 등 채소를 다듬었습니다. 따고, 다듬고, 씻고, 포장하고 나니 세 박스나 되었습니다. 양산 강의 시간이 다가와 서둘러 뒷정리를 하고 강의장으로 향했습니다.

양산에는 이팝나무 하얀 꽃이 한창이었습니다. 이틀째 내리는 비 때문에 모두들 가슴 졸이며 비 그치기를 기다렸는데, 다행히 강연이 시작되기 전 비가 그쳐 준비를 위해 모인 많은 봉사자들이 기뻐했습니다.

저녁 6시부터 양산 문화예술회관에서는 봉사자들로 가득했습니다. “신나고 재미있게!”라는 구호 삼창을 하고 분주히 움직이는 모습에 활기가 넘칩니다. 비 온 후라 쌀쌀한 기온 탓으로 발걸음이 뜸할 거라 생각했는데 걱정과는 달리 420여 석이 가득 찼습니다. 행복해지고 싶지만 길을 몰라 헤매는 사람들이 오늘 강연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은 총 열 한 분의 질문 중에 운전을 할 때면 자주 욱하는 성질 때문에 힘들다는 분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부부가 같이 왔는데 남편의 질문 덕분으로 아내 분의 고민도 같이 해결되어 더욱 행복해졌다는 얘기도 해 주었습니다.

“저는 운전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욱하는 성격 때문에 스님의 즉문즉설도 많이 듣고, 법문 들으면서 전보다 좋아졌다고 생각하지만 여전히 운전하면서 끼어들거나 신호 위반을 하는 차량들을 보면 마음속에서 욱 하고 올라옵니다. 나름 많이 고쳤다고 생각하는데도 때론 마음대로 되지 않고 여전히 속에서 욱 하는 게 많이 올라오는 것을 느낍니다. 오늘 스님의 말씀을 듣고 고쳤으면 하고 이렇게 질문을 드립니다.”

“아이고, 그런 건 안 고쳐져요.” (청중 웃음)

“스님이 안 고쳐질 거라는 말씀을 하리라고도 어느 정도 예상을 하고 왔는데, 스님의 즉문즉설을 듣고 전기충격기를 살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청중 웃음) 그런데 제가 운전하는 중에 욱하고 올라오는 거여서 운전하다가 제 자신을 전기충격기로 지질 수도 없고…”

“집에 와서 지져야죠.” (청중 웃음)

“아, 집에 와서 해야 합니까?”

“그럼요.”

“제 생각에는 그런 마음이 올라올 때 바로 지져야 효과가 있을 것 같은데…”

“아니에요. 집에 돌아온 다음에 지져도 괜찮아요. (청중 웃음) 벌써 전기충격기를 사서 지질 정도의 결심이면 고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데, ‘운전하는 중이다, 뭐하는 중이다’ 이런저런 핑계로 안 지지려고 하는 건 무의식 중에 ‘내가 전기충격기로 지지면서까지 고칠 필요가 있겠느냐’ 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묻자마자 바로 ‘그건 못 고친다’고 말씀을 드린 거예요. 그러니 생긴 대로 사세요. (청중 웃음)

운전하면서 자꾸 시비하고 욱 하면 아무래도 사고가 날 가능성이 높아요. 요즘 매일같이 뉴스에서 어느 대기업 오너 가족 전체가 욱하는 성격 때문에 고역을 치르고 있는 거 아세요?”

“네.”

“딱히 회사 경영을 크게 잘못한 것은 아닌데, 아내가 밖에 나가서 욱 한 행동들 때문에, 그리고 자녀들의 욱하는 성격 때문에, 가족 전체가 회사 경영에서 손을 떼야하는 위기에 처한 거예요. 평소 저지른 행동에 대한 과보를 받는 거죠. 옛날 사회에서는 어느 정도 통용되었을지 모르지만 정보의 유통도 빠르고 민주화가 많이 이루어진 요즘 세상에서는 그런 게 용납되지 않아요.

질문자도 욱하는 성격을 못 참아서 어느 날 야구방망이를 들고 뒷차 유리창이라도 깨면 영락없이 감옥에 가게 돼요. 그렇게 감옥 생활을 3년 정도 하고 나면 조금 줄어들 거예요. (청중 웃음)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욱하는 성격이 미치는 파장이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를 자각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 파장을 미연에 막기 위한 일환으로 전기충격기 방법을 사용하는 거예요. 전기충격기로 자신을 지지면 몸이 생존의 위협을 느끼기 때문에 생존 본능이 작동해서 까르마(습관)를 고칠 수가 있어요.

만약 질문자가 누군가 욱 하자마자 총에 맞아 죽는 모습을 열 번 정도 보면 절대로 욱하는 성격이 안 나올 거예요. 생존의 본능이 정신 작용의 밑바탕이 되기 때문이에요. 생존본능이 까르마(습관) 보다 더 근본입니다.

혹은 꼭 전기충격기가 아니더라도 한 번 욱 할 때마다 삼천배를 해도 고쳐져요. 그런데 질문자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렇게까지 해서 고칠 생각은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고치기가 어렵습니다.

욱 하는 건 의식적으로 ‘고쳐야지’ 한다고 해서 고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왜냐하면 나도 모르게 욱하기 때문이에요. 내가 욱하고 싶어서 욱하는 게 아니라, 나도 모르게 혹은 습관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하는 거예요.

첫째, 나도 모르게 해요.
둘째, 습관적으로 해요.
셋째, 무의식적으로 해요.

이 셋은 다 같은 말이에요. 그래서 의식으로 제어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닙니다. 스님이 그저 농담으로 ‘생긴 대로 살아라’라고 하는 게 아니고, 이것은 결심하거나 의지로 고쳐지는 게 아니기 때문에 그렇게 대답하는 겁니다.

그런데 전기충격기로 지지면 그 행동으로 인해 일단 내가 한 번 까무러치고 일어나게 돼요. 그러면 다음에 그 행동을 할 때 무의식에서 두려움을 느끼게 됩니다. 그 두려움으로 인해 방어력이 생기는 거예요. 삼천배도 마찬가지입니다. 8~9시간 동안 절을 하는 게 너무나 힘들기 때문에 행동하기 전에 무의식에서 벌써 거부반응이 일어납니다. 그런 원리로 무의식적인 행동도 차츰 제어할 수 있게 되는 것이지, 어느 날 단단히 결심을 한다고 해서 변화가 생길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에요.

그렇게까지 하면서 바꿀 생각이 없으면 그냥 생긴 대로 사는 거예요. 대신 그로 인한 과보를 기꺼이 받는 거예요. 욱하는 성격으로 인해 사고가 생기거나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당하면, ‘감사합니다. 그래도 안 죽어서 다행입니다. 이만하길 다행입니다’ 하고 마땅히 과보를 받아들이는 겁니다. 그러면 괴로움이 안 생깁니다. 그렇게 과보를 기꺼이 받아들이면 욱해도 살아가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어요. 이런 과보를 안 받고자 하면 어떻게든 고쳐야죠. 결혼은 했어요?”

“네.”

”질문자처럼 욱하는 사람과 살면 아내가 힘들어서 어떻게 같이 살아요? 그런데도 아내가 도망 안 가고 같이 살아주고 있네요?”

“네.” (청중 웃음)

“그러니 아침마다 일어나서 108배하면서 ‘같이 살아줘서 고맙습니다. 같이 살아줘서 고맙습니다’ 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욱 하는 성격에도 불구하고 함께 살아줘서 고맙다는 자세를 가지고 살면 그나마 같이 살만한데, 욱 하는 성격에 그런 자세마저 없으면 언젠가는 가버리는 과보가 생겨요. 아내도 참다가 참다가 어느 날 ‘욱’ 해서 가버리는 거예요. (청중 웃음)

그러니 정말로 고치고자 하면 그만큼 각오를 세게 가져야 해요. 그런데 그렇게까지는 못하겠으면, 늘 자신의 모습을 알고 살아야 해요. 욱하는 것까지는 자동적으로 일어나는 반응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지만, 그럴 때마다 바로 돌아서서 ‘죄송합니다, 아이고 죄송합니다’ 이런 마음으로 살면 괜찮아요.”
“삼천배를 하면 고칠 수 있습니까?”

“한 번 욱 할 때마다 삼천배를 하는 거예요. (청중 웃음) 삼천배를 딱 한 번 해서 고칠 수 있으면 누구나 다 할 거예요. 한 번 욱 할 때마다 삼천배를 하는 거예요. 만약 이번 주에 세 번 욱했다면 주말에 3일을 잡아서 만 배를 하는 거예요.

삼천배는 조금 빨리 한다고 해도 8시간은 걸립니다. 그리고 같은 동작을 계속 반복하니까 다리도 아프고 무지 힘들어요. 그렇게 하고 나면, 욱 하려고 할 때 그 힘들었던 기억 때문에 온몸이 부들부들 떨려요. 욱하기 전에 몸이 벌써 ‘또 삼천배다’ 하고 알아차려요. (청중 웃음)

그렇게 하면 웬만한 습관들은 다 고쳐집니다. 담배를 못 끊어서 고생하는 사람도 한 개비 피울 때마다 삼천배를 한 번 시키면 세 개비 정도 피우고 나면 정나미가 딱 떨어져요. (청중 웃음)

언젠가 아들을 잃은 슬픔에 빠져서 찾아온 어머니 한 분이 계셨어요. 죽은 아들을 위해 자기가 뭘 할 수 있는지를 물어보셔서 삼천배를 하라고 했어요. 얼마 동안 하는지 물어봐서 49재를 지내는 동안 매일 삼천배를 하라고 했더니, 한 열흘 정도 하고 나서는 염주를 집어던지면서 ‘네가 천당에 가든지 지옥에 가든지 나는 이제 모르겠다’ 이러셨어요. (청중 웃음) 그분은 삼천배를 하면서 자식에 대한 집착을 끊은 거예요.

우리가 살면서 집착을 하는 것도 모두 집착을 할 만하니까 집착을 하는 거예요. 그런데 삼천배를 하면서 우선 자기가 죽을 것 같으니까 아들이야 지옥에 가든 이제 나는 모르겠다는 마음이 생기는 거예요. 그렇게 집착을 끊는 거예요. 삼천배를 하는 것이 절을 하는 행위 때문에 어떤 영험이 있거나 효과가 있는 게 아니라, 그만큼 육체적으로 힘이 드니까 정신적으로 말랑했던 생각들이 싹 사라지는 거예요. 전기충격기도 마찬가지예요. 그렇게 마음을 딱 잡고 하면 고칠 수 있어요.

그런데 삼천배하는 거보다는 전기충격기가 안 나아요? 8시간 하느니, 전기충격기로 살짝 지져서 5분 정도 정신을 탁 잃었다가 깨어나는 게 쉽잖아요.” (청중 박수)

“저는 전기충격기는 생각나자마자 바로 해야 하는 줄 알고...”

“만약 오늘 욱 한 번 했으면 집에 돌아가서 한 번 지지는 거예요.”

“네, 그럼 한 번 해보겠습니다.” (청중 웃음)

“그래요.”

“네, 감사합니다.” (청중 박수)

“사람들이 성질을 고친다고 하는데, ‘그 사람 성질이 더러워’ 이런 이야기를 할 때 ‘성질’이라는 말은 고치기 쉽다는 뜻이에요, 잘 안 고쳐진다는 뜻이에요?”

“잘 안 고쳐져요.”

“네, 잘 안 고쳐지니까 ‘성질’이라는 단어를 쓰는 거예요. 습관, 성질, 성격 등의 용어를 사용할 때는 잘 안 고쳐진다, 내 의지대로 조절이 잘 안 된다는 뜻이에요. 원래 내 뜻대로 조절이 잘 안 되는 것인데, 그걸 모르고 자꾸 뜻대로 하려니까 잘 안 되죠. 그러니 잘 안 바뀌어진다는 것을 알고 아예 과보를 각오하거나 손실을 감수하면 됩니다. 그렇지 않고 고치려고 한다면 무의식에서 자각이 이루어져야 해요. 의식적으로 하는 결심이 아니라 무의식 세계에서 그것만 봐도 진절머리가 날 정도의 충격을 줘야 무의식에서 일어나는 거부반응을 통해 차츰 통제할 수 있게 됩니다.”

질문자는 가볍게 웃으며 자리에 앉았습니다. 이렇게 답변을 마치고 다른 질문이 더 이어진 후 이번에는 질문한 분의 아내가 일어서서 질문을 했습니다. 아내 분이 먼저 남편이 스님 법문을 듣고 많이 변한 것에 대해 감사 인사를 하며 질문을 시작해서 청중 모두가 크게 웃었습니다.

그리고 아내 분은 부하직원 때문에 힘든 문제에 대해 질문을 이어서 했습니다.

“우선 스님께 감사하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제가 욱하는 남편과 살고 있는데 남편이 스님의 말씀을 듣고 많이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스님께 감사드리고, 또 바뀌려고 노력하는 남편에게도 감사합니다.

제가 오늘은 일을 하면서 부하직원에게 다 맞추려고 하다 보니 힘이 든다는 질문을 드리려고 했는데, 오늘 강연 들으면서 ‘아, 이게 욕심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해결되어서 이대로 앉겠습니다.” (모두 웃음)

“욱하는 남편이 그래도 살아서 같이 사는 게 나아요, 전기충격기로 지지다가 죽는 게 나아요?” (청중 웃음)

“그래도 같이 사는 게 낫습니다.”

“네, 그러니 살다가 욱해도 ‘아이고, 그래도 살아서 다행이다’ 이렇게 받아들이면 돼요, 아시겠지요?”

“네.”

“그런 것처럼 부하직원도 잘 다루려고 하니까 오히려 괴로움이 생기는 거예요. 이 세상 그 누구도 남의 말을 듣기보다는 누군가가 자기 말을 잘 들어주기를 원해요. 질문자도 부하직원이 자기 말을 잘 듣기를 원하고, 부하직원도 상사가 자기 말을 잘 듣기를 원할 거예요. 그러니 자꾸 내 말을 들으라고 하면 도리어 부하직원들이 잘 안 다루어져요.

소통을 잘 하고 싶다고들 이야기를 하는데, 대통령과 국민의 관계에서 보면 대통령이 국민의 이야기를 잘 듣는 게 국민과의 소통을 잘하는 거예요? 국민이 자기 이야기를 잘 듣기를 바라는 대통령이 소통을 잘하는 대통령이에요? 북한처럼 대통령이 한 마디 하면 국민 모두가 ‘예’하는 것이 소통이 잘 되는 거예요?”

“소통이 안 되는 것이죠.”

“소통은 서로 주고받는 것 아니냐고 생각하기 쉬운데, 그렇지 않습니다. 내가 받아들이는 것이 소통입니다. 소통이 안 되는 것은 내가 상대를 받아들이지 않고, 내 이야기를 상대에게 강요하는 거예요. 그러니 ‘부하직원이 내 말을 안 듣는다, 어떻게 하면 내 말을 잘 듣게 하지?’ 하고 자꾸 고민하면 점점 더 괴로워집니다. 오늘 여기에 와서 질문하는 분들도 보세요. 모두 남편이 내 말을 안 듣는다, 아내가 내 말을 안 듣는다, 아이가 내 말을 안 듣는다는 고민이잖아요. 내 남편, 내 아내, 내 자식도 내 말을 안 듣는데, 부하직원은 생판 남인데 내 말을 잘 듣겠어요, 안 듣겠어요?”

“안 들어요.”

“안 듣는 게 너무 당연한 거예요. 이렇게 생각하고 ‘그나마 이만큼이라도 들어줘서 고맙다’고 생각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어요.”

“네, 잘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청중 박수)

서로 마주 보며 밝게 웃는 부부의 모습이 행복해 보였습니다. 그 외에도 게임중독과 우울증에 시달리는 아들이 걱정인 한 아주머니, 뇌출혈로 식물인간이 된 어머님을 자주 찾아뵙지 못해 죄책감에 시달리며 괴로운 아들, 운전을 하는데 욱하는 성질이 올라와 참기 어려워 힘들다는 분, 자기를 너무 미워하는 시어머니와의 갈등을 해소할 방법을 물어온 결혼 6년 차 젊은 주부, 초등학교 5학년인 아들에게 휴대폰을 사주고는 계속 게임하는 것 때문에 걱정인 분, 불교의 여덟 가지 고통 중에 애별리고가 제일 큰 아픔이라고 여기며 여기서 어떻게 헤어날까 고민이신 분, 부하직원들과 어떻게 하면 잘 지낼 수 있을까 고민이신 분, 북한의 핵폐기로 인한 언론의 호들갑에 나라가 걱정이라는 젊은이, 귀가 얇아 친구 따라 교회를 다녔는데 다시 불교를 믿어도 되는지 물어보신 중년 부인, 친구 앞에서 자기를 자주 꾸지람을 해 엄마가 미워져 괴롭다는 젊은 아가씨, 이직을 생각 중인데 현재 지속 가능한 분야에 대해서 궁금하다는 20대 회사원 등 많은 고민거리가 있었습니다.

경제도 정치도 어렵습니다. 사람들의 다양한 고민과 스님의 대화를 들으며 남을 배려하지 않고 남 탓만 해온 것은 아닌가 돌아보게 됩니다. 요즘 자식에 대한 부모의 과도한 기대로 힘든 자식들이 많습니다. 자식에 대한 기대를 놓고 있는 그대로를 봐주는 것이 행복의 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부부도 마찬가지겠죠?

마지막으로 스님은 기대가 높기 때문에 괴로움이 생기는 것임을 강조하며 오늘 강연을 마무리해 주었습니다.

“인생에는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어요. 사귀던 사람과도 헤어지고 미워하는 사람과도 살게 되고 그래요. 그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니에요. 사귀던 사람과도 헤어져야 새로운 사람도 사귀어보고, 미워하는 사람과 살아보면 그전에 별로 안 좋았던 사람이 얼마나 고마웠는지를 알게 돼요.

이렇게 인생이라는 것은 늘 상대적인 거예요. 그러니 여러분도 이러한 인생의 이치를 조금만 배우면 세상살이가 별 거 아니에요. 30년, 50년 전에도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들 모두 잘 살았고, 지금 베트남이나 캄보디아에서도 모두들 웃으면서 잘 살고 있어요. 그런데 대한민국에서 여러분들이 웃으면서 살지 못할 이유가 뭐가 있어요? 그렇게 살고 있지 못하면 여러분들의 기대가 너무 큰 거예요.

기대가 크면 불만이 많아져요. 부모한테도 불만들이 많은데, 여러분들이 직접 부모가 되어보세요. 나이가 서른이 되고 마흔이 되어도 성격이 잘 안 고쳐져요. 그러니 부부 사이에 갈등이 생기면 남편한테 악다구니를 하고, 남편 없으면 애한테 악다구니를 하는 게 보통 사람이에요. 특별히 나를 미워해서 그렇게 한 게 아니에요. 물론 어릴 때는 그런 것에 상처를 입지만 커서 보면 ‘아, 어머니가 나를 미워해서 그런 게 아니라 원래 성질이 저렇구나’ 이렇게 알 수 있어요. 요즘에도 성질을 내하시면 ‘아이고, 어머니 악다구니 많이 하세요. 그 성질이 어디 가는 것도 아니고 아빠한테 하면 아빠가 힘들어하니까 나한테 하세요. 밥 얻어먹은 대신 내가 많이 받아들일게요’ 이렇게 적극적으로 생각하면 별 일 아니에요. 이렇게 여러분들이 삶에 보다 적극적으로 임하면 좋겠습니다.

여러분 주위에 행복학교가 많이 운영되고 있으니까 행복학교에 오셔서 보다 행복한 인생을 사시길 바랍니다.”

강연이 끝나고 참가자들에게 소감을 물어보았습니다.
“스님 답변에 가슴이 확 뚫렸다. 확실한 답을 주신다.”, “자식에 대한 사랑이 곧 집착임을 알고 그것을 내려놓을 때 비로소 사랑이 됨을 알겠다”, “남에게 바라지 말고 내가 다가가서 손을 내밀어야 되겠다”, “너무 행복했다. 내 고집만 피우지 말고 남도 생각하며 항상 되새기며 살겠다’라는 소감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책 사인이 끝나고 스님과 강연 준비를 같이 한 봉사자들이 단체사진을 찍었습니다. 환하게 웃는 모습에서 우리는 한마음이란 걸 알았습니다. 행복 강연이 열릴 때마다 궂은일 마다하지 않고 달려와 도와주신 봉사자들께 감사한 마음 전합니다.

최근 남북정상회담과 정세를 보며 한반도에 기나긴 겨울이 가고 봄이 올 수 있다! 는 생각에 가슴 벅찹니다. 그러나 아직은 완연한 봄도 아니고, 그 봄이 안 올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걱정스럽기도 하지만 ‘역사에는 실패가 없다. 포기하면 변화가 없다. 크게 보면 역사는 발전한다.’라고 하신 스님의 말씀에 용기가 생깁니다.

오늘도 한 걸음 나아간 하루입니다. 스님과 봉사자들의 발걸음은 모두가 행복한 그날까지 이어질 것입니다.

함께 만든 사람들
이순남, 장필수, 조태준

전체댓글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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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무진

소통은 타인의 생각을 받아들이는 것을 깨닫습니다. 내 의견을 고집하지 않습니다.

2018-05-11 17:33:47

고경희

이 좋은법을 나에게 적용하는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았습니다~♡

2018-05-11 08:52:18

선광

목소리가 높아져 있는 나를 봐야 하는데
그 때는 못보고 한참 지나서 알고 또 후회 하네요.
고맙습니다.

2018-05-11 08:3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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