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18.5.8. 행복한 대화 (안양)
“남편이 자살한 것은 자신탓이 아닙니다.”

어젯밤 경남 양산에서 밤 10시 넘어 즉문즉설 강연을 마친 스님은 오늘 오전에 서울에 도착했습니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1시까지 평화재단에서 사회활동위원회 팀장 이상 활동가들과 함께 간담회 시간을 가졌습니다. 간담회에서는 남북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 이후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통일운동을 해야 하는지, 비전에 대해 다양한 질문과 답변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오후에는 평화재단에서 다양한 미팅과 회의를 한 후 저녁이 다 되어서 행복한대화 강연이 열리는 안양 아트센터로 향했습니다.

오랜만에 미세먼지가 적고 맑은 하늘이었습니다. 햇볕이 따뜻한 봄날입니다. 안양아트센터로 모이는 사람들의 표정이 맑고 밝았습니다.

저녁 6시부터 강연장에서 봉사자들의 경쾌한 노래와 함께 퍼포먼스가 시작됐습니다. 강연 시작 전의 분위기가 한껏 올라갔습니다. 다양한 역할을 맡은 봉사자들은 밝은 표정과 미소로 강연 참석자들을 편안히 맞이하여 주었습니다.

일찍부터 자리한 참가자들은 기대감으로 가득 찬 채 스님의 강연을 기다렸습니다. 강연 시간이 다 될 즈음에는 강연장 안이 다 차고도 자리가 모자랐습니다. 그래서 강연장 밖 스크린을 통해 스님의 즉문즉설을 지켜보는 사람들도 가득했습니다.

스님이 청중의 박수를 받으며 등장했습니다.

오늘은 총 10명이 질문을 했습니다. 나이 차이가 10살 이상 나는 남편과 재혼했는데, 남편이 자신을 인정 안 하는 것 같아 괴롭다는 분, 일상이 너무 아이들 위주로 돌아가서 답답하다는 50대 남성분, 20년간 남편의 가정폭력에 시달리며 살았는데, 지난달 남편이 자살해버려서 그 마지막 모습이 자꾸 떠올라 고통스럽다는 여성분, 집 나간 아들에 대해서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조언을 구하는 남성분, 마음 약한 여동생이 극단적인 행동을 할까 봐 신경이 쓰인다는 분, 직장을 옮기면서 새로운 업무 환경에 적응을 못 해 힘들다는 분, 아들과 100일 넘도록 말을 안 하고 있는데 소통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60대 남성분, 1년 차 상담가와 10년 차가 차이가 있는지, 인생에는 답이 없다는데 지식에는 답이 있는지를 묻는 분, 국비 교육을 받으며 어머니께 용돈을 받고 있는데, 이제는 어머니가 용돈을 주지 않아서 고민이라는 분, 학교도 공부도 싫다는 여고생 등. 생활 속의 아픈 이야기들을 과감하게 꺼내준 분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오늘은 그 중, 가정폭력을 행사한 남편에 대한 고민을 들어보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예.”

“제 질문이 좀 무거운데요.”

“네.”

“지난달에 남편이 자살했습니다. 20년 동안 결혼생활을 하다가 작년 여름에 이혼하고, 저는 아이들과 살고, 남편은 혼자 살았어요. 남편은 태어나자마자 생모에게 버려졌고 길러준 엄마에게 아동학대를 받고 자라서 외로움을 많이 탔습니다. 그 외로움은 결혼 후 아이를 낳으면서 알코올중독과 우울증으로 발전되어서 만취한 날이면 남편은 어린 자녀들과 저에게 폭력을 행사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20년 동안 가정폭력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남편이 자살하기 3일 전에 서로 오해가 있어서 길에서 심하게 다투었습니다. 지나가던 시민의 신고로 경찰이 출동해서 중재했는데, 그게 그 사람의 마지막 모습이었습니다. 3일 동안 매일 30통이 넘는 전화를 받으면서 정말 미친 듯이 싸웠습니다. 저는 ‘오해다. 미안하다’며 계속 빌고, 달래고, 얼렀는데도 남편은 분노해서는 ‘죽겠다’고 했습니다. 남편은 평소에도 늘 죽겠다는 소리를 했기 때문에 저는 그날도 그냥 넘어갔는데, 다음 날 찾아갔더니 이미 스스로 목숨을 끊은 상태였습니다. 3일 동안 싸우면서 온갖 욕설을 들어야 했지만 그러면서도 ‘아프다, 힘들다, 안아달라’고 했던 그 사람의 마지막 목소리와 ‘둘 중의 하나는 죽어야 끝날 일’이라고 모질게 말했던 제 말이 귀를 맴돌아 고통스럽습니다. 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동안 애먹이다가 죽었으니까 속이 시원해야지요.”

“...... 불쌍한 생각이 들어서요.”

“불쌍하긴 불쌍하지요. 자라온 가정환경이나 이런, 저런 걸 생각하면 불쌍한 건 맞아요. 그러나 질문자가 그 ‘불쌍하다’는 마음을 지속시킬 수 있었다면, 다시 말해서 그 사람이 어떤 행동을 해도 ‘아, 저게 병이다. 정신질환이다’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였다면 조금 더 같이 갈 순 있었겠지만, 질문자가 부처님도 아니고 예수님도 아닌데, 질문자한테 그걸 요구할 순 없지요.

또 ‘아, 내가 조금만 더 잘했더라면......’ 하고 생각하는 것도 자신을 과대평가하는 거예요. 질문자는 나한테 잘해 주면 좋고, 나한테 잘못하면 싫은, 그냥 세상의 보통 여자란 말이에요. 남편한테 사랑받고 싶고, 남편한테 경제적으로 도움받고 싶고, 의지하고 싶은데, 거꾸로 남편이 나한테 의지하고, 술 마시고 와서 행패 부리고, 가정폭력을 행사하니까 질문자도 삶이 힘들었단 말이에요. 아이들을 키워야 하는 상황에서 남의 집 큰아들까지 내 아이처럼 키울 수는 없는 일이잖아요?

질문자가 자신을 부처님이나 관세음보살님이나 예수님 같은 성인에 기준을 두고 본다면 질문자는 성인이기에는 좀 부족한 사람이 맞아요. 그러나 질문자가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보통 사람의 수준이라고 생각한다면 질문자는 그렇게밖에 할 수가 없었던 거예요. 질문자가 그 이상을 하겠다고 생각하는 건 자신을 과대평가하는 거예요. 질문자가 칼로 찔러 죽인 것도 아니고, 약을 먹여서 죽인 것도 아니고, 떠밀어서 죽인 것도 아니잖아요. 만약 그랬다면 질문자는 잘못된 사람이겠지요. 그러나 남편이 폭력을 행사하니까 질문자도 악을 쓰고 말대꾸를 했는데 결국 남편이 가서 스스로 죽었다는 건 질문자의 잘못은 아니에요. 그래서 질문자는 죄의식을 가질 필요는 없어요.”

“...... 예, 감사합니다.”

“만약 질문자가 ‘내가 잘못했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질문자가 자신을 과대평가하는 데서 오는 문제라는 거예요. 다시 생각해보세요. 남편이 살아 돌아와서 다시 이전과 같은 생활이 반복된다면 질문자는 견딜 수 있을 것 같아요?”

“못 견딜 것 같아요.”

“질문자가 ‘잘했다’고 할 건 아니지만, 질문자도 그 이상 할 수는 없었던 일이에요. 그래서 질문자가 죄의식을 가질 건 아니에요. 그리고 알코올중독이나 우울증은 특별한 병원치료를 받지 않으면 대부분 자살로 끝이 납니다. 지금 우리나라에 자살하는 사람이 작년 통계로 하루에 36명입니다. 매일매일 36명이 자살한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걸 조기 발견해서 조기에 치료하면 확 줄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자살률이 OECD가입국 평균의 2.5배거든요. 자살률이 낮은 나라에 비해서는 5배, 10배도 될 수 있겠지요.

자살률이 이렇게 높은 건 치료를 안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가 특별히 우울증이 많이 발병하는 나라는 아니에요. 그런데 우리나라가 OECD 가입국들 중에서 우울증 치료약 소비가 10분의 1밖에 안 된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그만큼 우리는 치료를 안 한다는 겁니다.”

“알코올중독을 위한 치료도 시도해 봤는데 남편이 과정이 끝날 때까지 다니지를 않더라고요.”

“그러니까 이런 결론이 난 거지요. 그래서 질문자의 잘못이 아니라는 거예요. 죽은 게 안타까운 건 이해가 되는데, 그게 적어도 질문자의 잘못은 아니라는 거예요. 병 때문이지요. 질문자는 지금 ‘남편이 좀 더 병원에 입원해서 치료받도록 했더라면, 남편을 좀 더 포용해 줬더라면, 남편이 그런 말을 할 때 내가 좀 더 안아줬더라면 좋았을 텐데......’ 후회하는 것 같은데, 그건 맞아요. 그런데 질문자가 그 정도로 성인이 아니잖아요.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건 질문자가 자신을 너무 높이 평가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현재의 자기 수준에서는 지금 또 같은 일이 벌어져도 예전과 같은 대응밖에 못 할 거예요. 그런데 질문자만 그런 게 아니고, 이 세상, 여기 있는 사람들이 다 그 수준이에요. 그래도 알코올중독에 우울증인 남편한테 가정폭력 당하면서 20년 살았다는 건 대단한 거예요. 아이들은 몇이에요?”

“둘이에요.”

“그런 중에 애를 둘이나 키웠다는 건 대단한 거예요. 그러니 자신을 조금이라도 학대하거나 죄의식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남편이 돌아간 건 안타까운 일인 건 맞지만 질문자가 그 이상 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던 거예요. 20년 같이 산 것만 해도 굉장한 거예요. 그러니 이렇게 기도하세요.

‘여보, 건강 때문에 그동안 참 고생 많이 했지요. 이제 저 세상에 가서는 알코올 중독이니 우울증이니 어릴 때 받은 상처로 고생하지 마시고 편안히 행복하게 사세요. 안녕히 가세요. 두 아이는 제가 당신 몫까지 해서 잘 키울 테니까 걱정하지 마시고, 좋은 곳으로 가셨다가 다음 생에는 행복하게 사세요.’

알았지요?”

“예, 감사합니다.”(모두 박수)

괴로운 경험이 점차 해소되는 모습을 함께 지켜보며 공감한 관중들은 박수로써 질문자의 마음을 위로해주었습니다.

스님은 마지막으로 우리는 어떠한 조건에 있어도, 어떤 일이 벌어져도 행복할 권리가 있다는 말씀으로 강연을 마무리했습니다.

“이 여자분이 죄의식을 갖고 두 딸을 키우는 게 남편에 대한 사랑일까요? 아니면 ‘그래! 당신은 죽었으니까 산 나는 아이들 데리고 살아야지!’ 이렇게 씩씩하게 키우는 게 남편에 대한 사랑일까요?”

“(대중들) 씩씩하게 살아야 해요.”

“남편이 자살했더라도 남은 아내는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어요, 없어요?”

“(대중들) 있어요.”

“어릴 때 성추행당했거나 성폭행당한 사람도 인생을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어요, 없어요?”

“(대중들) 있어요.”

“어릴 때 학대받고 야단맞은 사람도 인생을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어요, 없어요?”

“(대중들) 있어요.”

“이혼한 여자도, 이혼한 남자도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어요, 없어요?”

“(대중들) 있어요.”

“아이가 말을 안 듣고 애먹이다 집까지 나갔더라도 그 부모는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어요, 없어요?”

“(대중들) 있어요.”

“예. 그런데 여러분들은 괴로워지고 싶어하는 사람들 같아요. ‘애가 이래서, 남편이 저래서, 누가 죽어서, 이래서, 저래서......’ 라고 하는데, 제가 듣기에는 ‘괴롭고 싶다’는 말처럼 들려요.(모두 웃음) 그렇게 생각하시면 죽을 때까지 행복해질 수가 없습니다. 어떤 일이 벌어져도, 어떤 상황이 벌어져도, 내가 숨이 붙어있는 한 나는 뭐할 권리가 있습니까?”

“(대중들) 행복할 권리.”

“예, 행복할 권리가 있습니다. 몸이 아파도 행복할 권리가?”

“(대중들) 있어요.”

“예, 행복할 권리가 있어요. 어떤 일이 벌어져도, 어떤 상황이 벌어져도 내가 숨이 붙어있는 한 나는 행복할 권리가 있습니다. 몸이 아파도 행복할 권리가 있습니다. 몸이 아픈 건 내가 어쩔 수 없지만, 마음은 행복해야지요. 몸도 아픈데 거기 끌려가서 마음마저 괴로우면 몸도 아프고, 마음도 아프니까 손해잖아요. 여러분들이 돈을 빌려줬다가 못 받으면, 받을 수 있으면 악착같이 받고, 돈이 없어서 못 받겠다 싶으면 포기를 해야 해요. 돈은 잃었지만, 사람은 안 잃어야 할 거 아니에요. 그 사람과 관계를 터놓아야 나중에라도 받을 기회가 있을 것 아니에요. 돈은 받을 수가 없는 상황인데, 가서 악을 써서 원수가 돼버리면 돈도 못 받고, 사람까지 잃게 되잖아요. 그러는 게 감정적으로는 이해가 되지만 지혜롭지 못하다는 거예요. 여러분들은 늘 남 핑계 대고 괴롭게 사는 걸 합리화하며 살아가잖아요. 그런 데에 연연하지 말고 행복하게 사세요. 그게 자기가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되는 길이에요.

이런 공부를 하는 곳이 ‘행복학교’입니다. 행복학교에 오시면 4주 동안 4번만 공부하시면 ‘관점 바꾸기’가 됩니다. 관점을 딱 바꾸면 훨씬 좋아져요. 그러다가 재미가 있으면 또 한 번 더해 보고, 그렇게 하셔서 행복하게 사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모두 박수)

강연이 끝난 이후, 질문자에게 소감을 여쭈어보았습니다.

“답을 들으니 편안해졌습니다. 위로받았습니다. 스님이 말씀해주신 내용을 딸들에게도 잘 전해주고 싶어요. 여보. 그동안 건강도 좋지 않고 알코올 중독에 우울증에 아주 힘들었는데 이제 그런 걱정 없이 아이들 걱정도 하지 말고 행복하게 사세요. 다음 생애는 꼭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사세요. 이렇게 말하면서 매일 기도하겠습니다.”

떠나간 이를 편안하게 보내는 질문자를 보면서 스님의 가르침이 실제 삶에 적용되었을 때 서서히 행복이 찾아오겠다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스님이 행복을 전하는 이 길에 함께 할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누구나 자신의 문제가 가장 무겁고 힘들 텐데 대중들 앞에서 어려움을 내놓고 답을 들으면서 관점을 잡는 데 도움을 받고 가벼워지는 것을 보니 좋았습니다. 삶의 지혜를 듣고 나누는 시공간에 함께 할 수 있어서 에너지를 많이 받았습니다.

강연을 마친 스님은 오늘 강연을 준비해준 행복학교 봉사자들과 함께 기념 사진을 찍은 후 강연장을 나왔습니다. 내일은 성남시청에서 행복한 대화 즉문즉설 강연이 계속 됩니다.

함께 만든 사람들
글_박세영
사진_김용태
녹취_정란희

전체댓글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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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나

어떤 상황에서도 그 상황과 내가 행복한것은 별개의 상황이다
감사합니다. 꾸벅^^

2018-05-14 09:15:34

홍련화

응원합니다~
어떤 경우에도 우리는 행복하게 살아야합니다~
스님 고맙습니다()()()

2018-05-12 22:53:33

부동심

제가 큰 위로를 받은 듯 눈물이 납니다. 행복하게 살 권리. 행복합니다. 감사합니다_()_

2018-05-12 08:3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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