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18.5.28 전국 총무단 워크숍, JTS 인도인 스텝 환영식
“정토회에서 이것 3년만 하면 해탈합니다.”

오늘 스님은 전국 각 법당을 책임지고 있는 총무단과 워크숍을 하였습니다. 하늘은 높고 햇살은 따사로워 봄 소풍보다는 가을 소풍 느낌이 드는 날씨였습니다. 오전에는 한밭 수목원 산책을 하고 오후에는 대전 법당에서 지역 총무들의 그간의 노고와 어려움을 듣는 즉문즉설로 진행되었습니다. 모임 장소인 잔디 광장은 졸업 사진 찍는 학생들이 많아 솔숲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전국에서 모인 총무단은 서로 반가워 이야기와 웃음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목탁 소리와 함께 여법하게 입재식을 진행했습니다. 스님은 오전에는 수목원 산책을 하고 오후 즉문즉설에서 총무들의 어려움을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고 인생을 살아야 될지, 일을 어떻게 해야 할지 살펴보는 시간을 갖자고 말씀했습니다. 말씀을 마치고 각 지부별로 모여 스님과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이후 총무들은 각자 흩어져 수목원 산책을 하기도 하고, 그늘 밑 벤치에 지부별로 모여 정담을 나누기도 했습니다.

스님은 수목원 안내 책자를 구해 산책 동선을 확인한 후 광장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먼저 광장을 찾은 이유는 오후 행사를 혹시 이곳에서 할 수 있으면 대중이 대전 법당까지 이동하지 않아도 되니 더 좋지 않을까 하시며 직접 살폈습니다. 광장을 보고 “너무 넓어 집중력이 떨어지겠지?”라며 동원과 열대 식물원 쪽으로 이동했습니다. 가는 중에도 혹시 대중이 함께 모일만한 장소가 없나 살펴보았습니다. 햇볕이 쨍해서 그늘 없는 길로 걷다 보니 등은 물론 얼굴에도 땀이 주르르 흐를 정도였습니다. 동원과 열대 식물원은 월요일 휴원 안내가 붙어있었습니다. 휴원 안내를 보자마자 “대중에게도 안내가 있었나? 안내가 안되었으면 더운데 여기까지 왔다가 허탕 치겠는데, 그나마 한꺼번에 안 쉬는 게 다행이다.” 하며 동원에서 서원으로 이동했습니다.

가는 길에 《집사부 일체》에서 뵈었다며 시민들이 반가워 알은체 좇아오기도 하고, 나이 지긋한 분들은 스님을 뵙는다며 두 손을 모으고 허리 굽혀 인사하기도 했습니다. 나무와 풀숲 사이로 베어나는 은은한 식물의 향기가 꽃 보다 먼저 느껴졌습니다.

다시 산책을 하며 대중과 이런저런 말씀을 재미나게 이어갔습니다. 산책을 마무리할 즈음에는 행정처장과 통일의병대회 이야기를 하며 솔숲으로 돌아왔습니다. 먼저 온 대중은 이미 자리를 깔고 점심공양을 하고 있었고, 공양 후 단체 사진을 찍고 대전 법당으로 이동하였습니다.

대전 법당에 도착한 대중은 묘광 법사님이 준비한 수박과 오미자차를 마시며 더위를 식혔습니다. 오후 행사는 서울제주지부부터 행정처 팀장까지 지부별 인사로 시작되었습니다. 이후 5시까지 이어진 즉문즉설에서는 열 명이 질문을 했습니다.

“총무· 부총무 여러분들이 지금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건 사실이에요. 여러 가지 일도 많고 도반들과 부딪히는 문제들도 많다는 걸 저도 잘 압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이 현재 겪고 있는 문제들에 대해 듣다 보면 제가 초등학교 3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없어서 아이들 반장 겸 선생님 역할을 했던 경험이 생각나요. 저한테도 아주 힘든 경험이었어요. (모두 웃음)

아이들을 통솔하고 또 중간 중간에 모르는 내용에 대해 가르치려면 전날 밤에 다음 날 가르치는 내용에 대해서 밤새 공부하고 어떻게 알려줘야 할지 연구를 많이 했어요. 모르는 내용이 나오면 형한테 물어서 가고요. 어찌보면 제 공부보다는 다른 아이들 가르치느라 많이 물어보게 된 거예요. 가르친다고 해서 선생님처럼 제가 아이들 앞에 서서 가르치는 게 아니라 주로 자습을 시키면서 모르는 내용을 물어보면 알려주는 방식으로 한 거예요. 아이들 모아서 비슷한 말 외우기, 반대말 외우기 등도 하면서요.

이건 당시 저한테는 매우 힘든 일이었어요. 그런데 지나서 돌이켜보면 좋은 선생님 밑에서 공부한 것보다 저한테 훨씬 더 도움이 많이 된 것 같아요. 시간이 지나서 보니까 어릴 때 그런 방식으로 교육을 받은 사람을 찾아보기가 어려웠어요. (대중 웃음)

마찬가지로 지금 여러분들이 마주하고 있는 어려움들이 현재 가지고 있는 능력에 비해 힘들다는 것은 잘 알겠어요. 그런데 이 경험이 반드시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는 거예요. 다른 한편으로는 이것을 해냄으로써 능력이 키워질 수 있는 기회예요. ‘내 수행하기에도 바쁜데, 어떻게 이것까지 해냅니까?’하고 물을 수도 있지만 이런 문제를 겪는 과정에서 자기 문제를 더 깊이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분들이 이런 어려움을 통해서 자기 자신을 더 깊이 보는 게 아니라 수행을 포기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지 않나 싶어요. (대중 웃음) 여기서 자기를 더 깊이 보고 수행으로 넘어가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이건 가정문제에서도 마찬가지였잖아요? 남편과의 갈등이 있는 사람들은 정토회나 수행을 알기 전에는 대개 같이 살지, 이혼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방향으로 문제를 해결해왔을 거예요. 하루에도 몇 번씩 이혼을 ‘할까? 말까?’ 고민하면서 이혼을 하려니 아이가 걱정이고, 안 하려니 남편 꼴이 보기 싫어서 머리가 아픕니다.

그러다가 스님과 대화를 하거나 정토회에 와서 자기를 돌이키면서부터 ‘남편이 어떻게 하는지는 남편 사정이고 나는 그것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관점을 갖게 됩니다. 그때부터는 남편의 행동에 내가 구애를 덜 받게 돼요. 설령 남편이 술을 마신다고 해도 그냥 봐 넘기거나 더 먹으라고도 할 수 있게 되고, 상대가 짜증을 내면 ‘오늘 기분이 안 좋구나’하고 이해하고 받아내니까 다른 누구보다 우선 여러분 자신이 좋아졌잖아요. 이건 모두 동의해요?”

“(대중)네.”

“그렇게 법의 이치를 알고 자기 삶이 좋아지니까 정토회에 들어와서 은혜를 갚는 활동들을 하고 있잖아요. 늘 자발적이진 않더라도(대중 웃음) 자기 삶의 변화를 겪은 사람들이 이렇게 모여서 수행하고, 봉사를 하는 거예요.

그리고 아무리 반강제로 정토회에 들어왔다고 해도 무언가 도움을 받은 게 있으니까 들어오지, 아무런 도움을 받지 않았다면 정토회에 와서 활동을 하지는 않을 거예요. 혹시 여기서 아무런 도움을 받지 않고 그저 속아서 들어온 사람이 있으면 손 들어보세요. (대중 웃음)

그렇게 좋은 뜻으로 들어와서 활동을 하는데 정작 활동을 하는 과정에서 도반과의 부딪힘이 있는 거예요. 나는 노란색으로 칠하자고 하는데, 다른 도반은 빨간색으로 칠하자고 하는 사이에서 일어나는 부딪힘이에요.

결국 도반과 생기는 갈등을 해결하는 데 있어서 정토회를 알기 전의 관점을 취하는가 아니면 정토회를 통해 알게 된 수행의 관점을 취하는가 하는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는데, 많은 사람들이 수행을 알기 전의 관점으로 돌아가는 것 같아요. 원래 살던 습관으로 되돌아가는 거예요.

도반과의 문제가 있으면 여기서 나의 문제를 깊이 들여다봐야 하는데 그러지 않고 ‘정 그러면 정토회 그만두면 되지’ 하는 식으로 생각하는 건 과거에 가정에서 문제가 있을 때 ‘정 그러면 이혼하면 되지’ 했던 방식과 아무런 차이가 없습니다. 결국 과거에 했던 방식처럼 문제가 생기면 그만둬서 해결하려는 거예요. ‘그만둬버리면 다른 사람과 부딪힐 일도 없는데, 괜히 여기에 와서 사람들이랑 부딪혀서 속상할 이유가 뭐가 있을까?’하고 생각하는 게 결국 기존의 방식으로 돌아가는 겁니다. ‘이혼해버리면 이 사람과 부딪힐 일도 없는데 내가 뭣하러 계속 같이 사나?’ 하는 것과 아무런 차이가 없는 거예요.

그러니 여러분들이 소임을 맡아서 활동을 할 때 ‘활동이 많아서 수행할 시간이 없다’라고 말을 하지만, 정작 수행의 기회가 되는 어려움에 직면하면 그것을 발전적으로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원래의 습관으로 돌아가는 거예요. 과거와 비교해서 단지 그 대상이 남편이나 아이에서 도반이나 정토회 활동으로 바뀔 뿐 내가 취하는 태도는 과거와 차이가 없는 거예요.

왜 이렇게 과거의 습관으로 돌아간 것일까요? 가만히 보면 남편이나 아이와의 문제를 ‘발심’해서 해결한 것이 아니에요. 그들과의 관계는 내가 뗄 수 없기 때문에 어떻게든 극복을 하는 방향으로 나아간 거예요. 아이와의 관계는 말할 것도 없고, 남편과의 관계에서도 ‘안녕히 계십시오’를 하면 되는데 다양한 이해관계 때문에 그걸 못하니까 어떻게든 극복을 한 겁니다.

그런데 정토회에서 알게 된 도반과의 관계는 특별한 이해관계가 걸려있지 않으니까 ‘안녕히 계십시오’하고 떠나기가 쉽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한다고 해서 나에게 손해 되는 일이 없잖아요. 그러다 보니 수행적 관점으로 극복하기보다는 대부분 ‘안녕히 계십시오’ 하는 쪽으로 선택을 하는 거예요. 그래서 ‘그만둘까?’하는 생각을 많이 하는 거예요.

그런데 마치 이혼하려니까 아이 문제가 걸렸던 것처럼 정토회도 ‘안녕히 계십시오’ 하려니까 자기가 나름 도움을 받은 것도 있고 또 그 속에서 좋은 점도 있었으니까 선뜻 선택을 못하는 거예요. 그리고 내심 아무 소임도 맡지 않고 일반 회원으로 정토회에 계속 다니는 것을 가장 좋다고 생각해요. (대중 웃음)
이렇게 생각하면 수행에 진척은 없습니다. 예전에 집안 문제를 해결하는 수준으로 계속 살아가는 것이지, 다음 단계로 나아가 해탈에 필요한 공부를 하지는 못합니다.

그리고 다른 이유가 하나 더 있는데, 그건 도반들도 수행자니까 ‘당신도 수행자이지 않은가?’하는 마음이에요. 남편은 수행자가 아니니까 ‘저 사람은 모르니까 할 수 없지’ 하는데, 도반은 수행자니까 ‘당신은 아는데 왜 그러냐?’ 하는 마음이 생기는 거예요. 이게 꽤 큰 마음의 장애예요.

수행자라면 상대방이 누가 되었든, 수행하지 않는 남편이든 법륜스님이든 상대방을 탓하면 안 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눈을 안으로 돌려야 하는데, 상대방이 수행자라는 생각 때문에 수행자의 관점을 놓치게 됩니다.

총무, 부총무, 팀장의 소임을 맡으면 대개 위, 아래로 부딪힙니다. 위에서는 지부장이 자꾸 뭐라고 하고, 아래에서는 말은 안 들으면서 이래저래 요구하는 사항들이 많아요. (대중 웃음) 그 사이에 껴서 지금 마음고생이 많은 거예요. 그런데 지금 이 어려움을 회피하지 말고 극복의 대상으로, 수행의 대상으로 삼아야 합니다.

‘총무 3년만 하면 해탈한다’는 말도 있잖아요. (대중 웃음) 이것을 포기하거나 도망가는 쪽으로 가지 말고, 위에서 뭐라고 할 때는 남편이 나에게 어려움을 주었을 때 어떻게 극복했는지를 떠올리며 해결하고, 아래에서 뭐라고 할 때는 아이가 말 안 들을 때를 떠올리며 해결해보는 거예요. 집안문제를 수행으로 극복했듯이, 정토회에서 생기는 문제도 극복을 해보는 거예요. 아시겠지요?”

“(대중)네.”

“이걸 해내면 여러분 스스로 한 단계 위로 올라가는 거예요. 그리고 이걸 해내면 앞으로 어떤 문제에 부딪혀도 수행적 관점으로 해낼 수 있게 됩니다. 과거에 가정문제는 어쩔 수 없어서 해결을 했고, 두 번째 문제는 자발적으로 극복을 해보는 거예요. 사실 이 두 번째 연습이 바로 수행입니다. 내가 관두지 못해서 억지로 극복한 것은 완전히 자발적으로 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불완전한 연습입니다. 그래서 첫 번째 극복한 연습이 두 번째 연습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 거예요. 그건 안녕히 계십시오 하기가 어려운 상황에서 내가 살고자 극복한 것입니다. 두 번째 연습에서는 그만둬도 되는 선택지가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자발적으로 극복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을 택하는 거예요.

부처님은 출가하면 안 되는 상황에서 출가하신 거예요, 안 해도 되는데 자발적으로 출가하신 거예요?”

“(대중) 안 해도 되었어요.”

“출가를 하지 않아도 되는데 했기 때문에 출가에 위대함이 있는 거예요. 출가하지 않고 수행을 하지 않아도 먹고사는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었는데도 자발적으로 문제를 극복했기 때문에 만 중생의 스승이 되셨어요.

이 부분을 염두에 두시고 여러분도 늘 수행적 관점을 지니고 살아야 합니다. 총무를 그만두는 것도 괜찮아요. 그렇지만 이왕 총무 소임을 맡았으면 3년 동안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목표로 해보면 어떨까요. ‘안녕히 계십시오’를 통해 편안해지는 것은 수행이 아닙니다. 위, 아래에서 뭐라고 하는 와중에도 내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이 수행이에요. 쉬워요, 어려워요?”

“(대중) 어려워요.”

“네, 어려워요. 어렵지만 여기로부터 자유로워지면 이제 세상사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거예요. 직장생활도 신입 생활, 중간간부를 거쳐서 상사가 되기까지 매번 어렵지만 그래도 신입 생활이나 상사 생활은 견딜만해요. 그런데 가장 어려운 게 중간간부를 할 때입니다. 중간간부가 되어보면 자기가 신입사원일 때에는 말을 잘 들었는데, 정작 자기 밑에 있는 신입들은 말을 안 듣는 것 같아요. 그런데 상사들은 계속 뭐라고 하고, 또 상사들은 신입들이 말을 안 듣는 것도 중간간부의 역할이자 책임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중간에 껴서 미칠 지경이에요. (대중 웃음) 중간간부는 업무 분산도 해야 되고, 총괄도 해야 하고, 그에 따른 책임도 져야 하니까 회사에서도 중간간부일 때 이직이 가장 많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도 지금 중간에서 겪는 어려움을 극복하면 가정도 극복할 수 있고 세상도 극복할 수 있게 됩니다. 지금 안 해도 되는 것을 극복하고 나면 나중에 극복해야만 하는 문제들은 쉬워져요.

여러분이 이런 관점을 갖는다면 총무, 부총무 소임이 정토회에 봉사하는 일도 되지만 동시에 여러분이 정토회와 불법(佛法)을 만나서 가정 문제를 해결한 것보다 더 큰 가피를 입는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수행적 관점을 놓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거듭하는 거예요. 무엇을 하든 그 바탕에는 수행적 관점을 깔고 진행해야 합니다.

사실 총무, 부총무 소임을 맡을 때 위에서도 뭐라고 하고 아래에서도 뭐라고 할 거라는 건 어느 정도 정해져 있습니다. 사람이 늘 다니던 길로 다니면 익숙하니까 별 문제가 없지만 오늘은 정글을 통하는 새로운 길로 가봐야 되겠다고 결심을 하면 그 순간 장애는 이미 예정이 되어있는 거잖아요? 그걸 예상하고 정글을 통과해야지, 새로운 길을 가면서도 ‘벌레가 붙는다, 길이 잘 안 보인다’고 짜증내거나 신경질을 낼 거면 처음부터 정글을 선택하지 말아야죠. 그러니 정글로 새로운 길을 가고자 하면 이미 예정된 문제를 받아들이기도 해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대개 아는 길로 가라고 하면 재미없다고 하고, 그러면 새로운 길로 가라고 하면 힘들어서 못 가겠다고 해요. 그런데 선택에는 이미 그런 장단점들이다 예정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결혼을 하겠다고 결심을 하면 그에 따른 좋은 점도 있지만 마찬가지로 어려움도 예상을 해야 해요. 여러분들은 그저 좋은 것만 생각하면서 결정을 하니까 어려움을 마주할 때 힘들어하는 거예요. 이건 사랑의 문제가 아니라 동거할 때 생기는 삶의 습관과 생활태도의 문제예요. 취향이 다른 두 사람이 한 공간에서 같이 지내니까 필연적으로 생기는 갈등입니다. 여러분은 자꾸 감정의 문제, 애정이 없거나 나를 좋아하지 않아서 생기는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이것은 연애의 감정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문제예요.

결혼을 하지 않아도 정토회와 같이 대중이 한 방에서 지내는 곳에 여러 사람이 함께 지내면 그런 갈등이 생깁니다. 서로 다른 취향과 습관을 가진 사람들이 한데 모여 지내는 데에는 필연적으로 그런 갈등이 생기는 거예요. 그래서 정토회 안에서도 같이 사는 대중들끼리 갈등을 겪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여러분들은 ‘정토회는 수행자 집단인데 수행자들이 왜 싸우나?’ 하고 물을지 모르지만 제가 볼 때는 정토회는 사람들이 그저 활동을 같이 하다 보니 함께 지내게 된 거여서 싸운다지만 사랑한다며 함께 사는 여러분들은 왜 남편이나 아내와 그렇게 싸우는지 모르겠어요. (대중 웃음)

이건 결혼을 하고 안 하고, 사랑을 하고 안하고와 관계없이 우리가 서로 다르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예요. 무의식에서 우리 모두 자기 식대로 자기 가치관대로 하려는 성향이 있기 때문이에요. 그게 바로 아상(我相)입니다. 자기도 모르게 자기중심적으로 사고를 하는 거예요. 그래서 사람들이 모이면 부딪힘이 생기는 것이 필연적입니다. 그럴 때 자기 고집을 내려놓고 상대를 이해해야 극복이 됩니다.

우리가 내리는 선택에는 늘 그에 따른 결과가 있습니다. 그게 바로 인연 과보(因緣果報)잖아요. 돈을 빌리면 갚아야 하고, 갚기 싫으면 다음에 그런 인연을 짓지 말아야 합니다. 갚기 싫으면 다음에는 돈을 빌리지 말아야 하는 거예요.

이런 관점을 가지고 활동을 하면 총무 소임이 재미있어집니다. 그래도 총무를 하니까 지금 생기는 갈등 상황도 겪어보고, 위에서 하는 잔소리도 들어보는 것이지, 정토회에 와서 아무런 소임을 맡지 않고 그저 와서 법문만 듣고 가면 정토회에서는 아무런 부딪힐 일이 없습니다. 가끔 와서 보시하고, 연등 만들 때 가끔 와서 도와주면 고맙다는 소리는 들어요. 조금 해주고 고맙다는 소리를 듣는 거예요. 반면 총무는 많이 하는데도 욕을 먹어요. 그만큼 수행의 기회가 많은 거예요. 그리고 정글을 지나갈 때 많은 어려움이 따를 것을 예상할 수 있듯이 총무라는 직책을 맡는 순간 그렇게 되는 것이 어느 정도 예정되어 있는 거예요.

스님이 법문을 할 때 되도록 남의 인생에 관여하지 않으려고 하지만 사람들은 스님이 어느 정도 관여를 하고, 상황에 따라서는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것처럼 느낍니다. 스님은 관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말을 하지만, 받아들이는 쪽에서는 또 다르게 생각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스님이 하는 이야기가 조금만 자기 마음에 들지 않아도 ‘니는 왜 그러노?’하는 반응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늘 댓글에 비난하는 말들이 올라와요. 그렇지만 그건 이미 법문을 시작할 때 예정되어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어요. 그게 싫으면 법문을 하지 않고 입을 다물면 돼요. 산속에 앉아서 농사만 지으면 시비할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그런데 법을 전하고자 하면 감수를 해야 하는 부분이에요.

어떤 행위든 그로 인한 좋은 점과 나쁜 점이 함께 따라옵니다. 인생은 결국 그중 내리는 선택이에요. 좋은 점이 55이고 나쁜 점이 45면, 45에 너무 신경 쓰지 말고 그래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이익이 크다고 생각하고 결정하는 거예요.

관점을 이렇게 잡고 일을 하면 일취월장합니다. 단번에 확 달라지는 걸 경험하게 돼요. 현장에서 부딪히는 문제를 수행적 관점으로 극복하는 것이 10년 동안 조용히 참선하는 것보다 나아요. 조용한 곳에서 감정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감정이 일어나는 곳에서 자기를 알아차리고 감정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 수행이에요. 이런 공부를 하는 데에는 총무 소임이 제일입니다. (대중 웃음과 박수)

이것이 일속에서 관점만 바로잡고 있으면 수행이 함께 되어가는 ‘일과 수행의 통일’입니다.”

스님은 어려움을 이야기하는 총무들에게 수행의 관점을 짚어주고, 어려움은 돌이키면 성장할 수 있는 기회임을 일깨워주었습니다. 직면한 어려움을 기존의 습관대로 보고 있는지 수행적 관점으로 보고 있는지 다시 돌아보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예정된 시간보다 한 시간이 훌쩍 지나있었습니다. 스님은 서둘러 서울로 향했습니다. 인도 JTS에서 처음으로 인도인 활동가들이 한국으로 견학을 왔기 때문입니다. 인도인 스텝들과의 인연을 이십여 년도 전에 맺어졌습니다. 스님은 1991년,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으신 곳인 인도 둥게스와리의 전정각산에 성지순례를 갔다가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모두 줄지어 앉아서 아무런 희망도 없이 구걸하며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이 학교 안 가고 왜 다 여기 있냐고 물으니, 학교가 없어서 못 다닌다는 것이었습니다. 너무나 안타까운 사실을 접한 스님은 마을 사람들과 의논하여, 마을 주민들이 땅을 기부하고 노동력을 제공하면, 자재와 재료비는 JTS에서 지원하기로 하고 둥게스와리 지원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초기에 학교를 지었던 20대 청년들이 듬직한 중년으로, 코흘리개로 학교에 다녔던 아이들이 어른으로 성장하여 이제는 학교를 책임지고, 병원을 책임지고, 마을개발을 책임지는 스텝이 되었습니다.

오늘 새벽에 한국에 귀국한 인도인 스텝들은 한국 JTS의 안내에 따라 경복궁, 조계사, 인사동, 월드컵 경기장, 하늘공원 등 서울투어를 마치고 서울 정토회 서초 법당에서 환영식을 했습니다. 환영식 시간에 맞추기 위해 바삐 달려온 스님은 시간에 딱 맞춰 환영식에 참가하였습니다.

청년붓다 법우님들의 재미있는 공연에 이어 인도 스텝들을 환영하는 의미로 한 사람씩 꽃을 선사했습니다. 인도에서는 귀한 손님을 맞을 때 꽃을 드리곤 합니다. 꽃을 든 스텝들은 각자 이름이 무엇인지, 인도에서 하는 일이 무엇인지 소개를 했습니다. 자기소개를 한국어로 연습해 온 스텝도 있었습니다.

이어서 스님의 환영인사가 있었습니다.

“나마스떼.”

“(인도 스텝들) 나마스떼.”

“웰컴 투 코리아.(모두 웃음) 한국에 오신 것을 먼저 환영합니다. 먼 길을 오셨습니다. 인도에 가서 여러분들을 만난 지가 오래된 분은 24, 5년 됐고, 짧은 분도 다 20년 가까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만난 지 적어도 20년 만에 여러분들이 처음 한국에 오신 것입니다. 수바스지와 수레스지가 20대 초반일 때 상카시아와 이따와에서 만났고요, 또 카필데오지와 카미스왈지도 20대 초반이었을 때 수자타아카데미를 시작하면서 만났습니다. 이제 이 네 분은 이제 40대 후반, 그리고 50대 초반에 이르렀습니다. 카필데오지는 이제 손자까지 있는 할아버지입니다.(모두 웃음) 나머지 일곱 명은 그들이 사탕 먹으러 유치원 다니던 시절부터 저와 만나기 시작해서(모두 웃음) 이제 모두 20대 중반, 후반이 되었습니다. 다시 한번 한국에 오신 여러분들을 환영합니다.(모두 박수)
제가 처음 인도에 갔던 이유는 인도가 부처님께서 태어나신 곳, 부처님께서 활동하신 곳, 부처님께서 살았던 곳, 즉 부처님의 나라였기 때문입니다. 그런 기대를 가지고 인도에 갔는데, 정작 인도에서 저는 부처님을 만나기는커녕 구걸하는 사람만 만났습니다. 그리고 성지는 대부분 힌두교 문화와 섞여있거나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서 지저분했습니다. 저는 지저분한 성지에서 절했고, 또 거기에선 주로 아이들, 할머니들, 구걸하는 사람들만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것이 무엇을 의미할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인도 분들한테 물었습니다.

‘불교가 위대해서 인도가 아닌 외국, 우리 한국인들까지도 다 믿는데, 왜 정작 인도에 사는 사람들은 불교를 믿거나 받아들이지 않는 것입니까?’

‘불교의 핵심이 뭔데요?’

‘지혜와 자비입니다. 어려운 사람들을 보면 가슴 아파하며 그들의 아픔을 함께 나누고, 나아가 그들의 아픔을 치료하는 겁니다.’

‘그래요? 내가 보드가야에서 장사한 지 20년이 넘었는데, 여기 오는 불교인들 중에는 스님께서 말씀하신 그런 자비를 행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제가 그런 사람을 만난 적이 없습니다.’

‘그럼 당신은 여기 오는 불교인들 중에 어떤 사람들을 주로 만났습니까?’

‘그들은 자기네 성지라는 이곳에 와서 자기네 나라 식으로 기도하고 갔습니다. 기도하는 방식이 우리 힌두교와 같은 점도 있고, 비슷한 점도 있지만 제가 우리의 기도 방식이 그들보다 못하다고 느낀 적은 없었습니다. 그리고 외국 불자들이 여기 와서 지은 절에는 우리 같은 인도 사람들이 들어가 보지도 못하고 있어요. 자기네 나라에서 온 사람들만 그 안에서 자고 가거나 생활합니다. 그러니 그들이 여기 와서 행하고 가는 것을 볼 때 제가 힌두교를 그만두고 불교를 믿어야 되겠다고 느낄 만한 게 아무것도 없었어요. 그들이 여기 와서 자기네 식대로, 자기네 필요에 의해서 행동하고 가기 때문에 우리도 우리 식대로, 우리 필요에 따라 그들에게 행동할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그들을 상대로 장사하면 인도 사람을 상대하는 것보다 돈을 좀 더 벌 수 있으니까,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 그게 무엇이든, 그런 것을 판매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그들이 나의 고객이라는 것 외에 특별한 걸 느끼지 못합니다. 아이들이 그들을 졸졸 따라다니고 많은 이들이 그들한테 구걸하는 건 그들이 주는 돈이 인도 사람들이 주는 돈보다 액수가 크기 때문이고, 우리도 그 사람을 상대로 장사하는 게 인도 사람을 상대로 하는 것보다 값을 좀 더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말하는 것처럼 불교인이 보통사람과 다르거나 우리와 다른, 뭔가 특별한 것을 우리가 느낄 수 있어야 우리가 거기에 대해서 궁금해하거나 배우려고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당신도 보다시피, 외국에서 이곳에다 자기네 절들은 많이 지었지만, 정작 우리한테 필요한 학교를 지은 사람이 있습니까? 병원을 지은 사람이 있습니까? 가난한 사람들의 마을을 돕기 위해서 뭘 한 게 있습니까? 자기네 나라 절을 지어서 자기네 나라 사람들만 머물도록 하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한 게 없잖습니까?’

그때 저는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힌두교인과 불교인의 차이를 느낄 수가 없었구나. 이곳에 순례객들이 많이 오고, 각 나라에서 절도 많이 지었지만 그것은 다 자기들, 즉 외국인들의 필요에 의한 것이지, 이 인도 사람을 위한 게 아니다. 그러니 인도 사람들 입장에서는 굳이 불교를 믿어야 할, 힌두교에서 불교로 바꿔야 할 이유가 없겠다. 또 그 성지를 아름답고 깨끗하게 가꿔야 할 아무런 이유도 없겠다. 설령 내가 깨끗하게 성지를 정비해 놓는다 하더라도 그들은 금방 또 더럽히겠구나. 그래서 인도 사람이 필요로 하는 것, 그것이 학교면 학교, 병원이면 병원, 마을개발이면 마을개발, 이런 것들을 먼저 해야 되겠다. 그래서 그들이 뭔가 느끼는 바가 생겨서 불교가 도대체 뭐냐고 물으면 그때 내가 불교에 대해서 얘기를 해야겠다.’ 그래서 저는 ‘불교’라는 종교활동보다 먼저 구호활동부터 시작한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상카시아에 갔을 때 이미 상카시아에는 불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소수이다 보니까 활동하거나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절이나 교육시설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처음부터 ‘이분들에게는 불교에 대한 교육을 받거나 활동을 할 수 있는 담마센터가 필요하구나.’ 하는 걸 느껴서 목표는 그렇게 세웠습니다.

이제 그로부터 20여 년이 지났는데, 작년인가, 재작년에 여러분들이 저한테 ‘스님, 우리한테도 불교를 설명해 주세요’라고 요청해서 제가 여러분들을 데리고 보드가야 근교를 돌면서 설명을 해드린 적이 있었지요? 그때 저는 ‘아, 이제 부처님의 가르침이 뭔지에 대해 얘기할 때가 되었구나.’ 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올봄에 여러분들과 함께 ‘깨달음의 장’ 수련도 할 수 있었던 겁니다. 깨달음의 장을 하면서 여러분들은 법을 만난 기쁨을 조금은 맛보았을 겁니다.

상카시아에 절을 짓겠다고는 했지만 20년이 지나도록 짓지 못했다는 것을 여러분도 잘 아실 겁니다. 여러분들은 ‘지어 달라.’ 그러고, 저는 ‘같이 짓자.’(모두 웃음) 그래서 지금까지 그 시간이 미루어져서 20년이 지난 건데, 작년에 수바스지가 작게라도 한번 지어보겠다고 하기에 제가 한번 해 보라고 했더니 건축이 시작은 됐습니다. 작지만 시작이 된 거예요.

그리고 무엇보다 여러분들 스스로 이렇게 불교인이 됐습니다. 여러분들은 ‘불교가 뭔가 좀 다르다’는 걸 느끼고 불교인이 됐기 때문에, 그런 여러분들이 이곳에 오셔서 ‘정토회가 어떻게 활동하는지를 한번 견학할 필요도 있겠다’고 제가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20 몇 년 만에 드디어 이렇게 한국에서 만나게 된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들은 한국에서 일주일 이상 있게 될 텐데요, 첫째는 정토회에서 뭘, 어떻게 하고 있는지를 봐야 되고요, 두 번째는 한국인들이 어떻게 사는지를 한번 살펴봐야 되고요, 세 번째는 한국인들의 옛날 문화는 어땠는지를 조금 봐야 되고요, 네 번째는 농사를 어떻게 짓고 있는지, 유치원은 어떻게 운영하는지를 잠시 살펴보게 될 겁니다. 이제 여러분들은 정토회 멤버로서, ‘여기는 우리 집이다.’ 이렇게 생각하시고 편안한 마음으로 생활하시면서 견학하시기 바랍니다. 아시겠지요?”

“(인도 스텝들) 예.”

“오는데 힘들지는 않았나요?”

“예.”

“비행기 타니까 편안했지요?”

“예.”(모두 웃음)

“또 밥도 주잖아요.(모두 웃음) 화장실도 있잖아요. 저는 ‘한 달을 타라’고 해도 타겠어요. 옛날 같으면 여기까지 걸어서 1년은 걸렸을 텐데, 8시간 만에 휙 날아왔네요.(모두 웃음) 별로 실감이 안 나지요?”

“예.”

“다시 한번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자, 이쪽에 계신 분들 중에 인도 수자타아카데미에 가서 조금이라도 봉사를 하다 오신 분이 계시면 손 좀 들어보세요.”

“(대중들) 오.”(모두 웃음)

“내리세요. 그럼, 가서 봉사는 못 했지만 하룻밤 자보고라도 온 분이 계시면 손 좀 들어보세요.”

“(대중들)와.”(모두 웃음)

“그러면 인도는 가보지도 못한 분, 손 한번 들어보세요.(모두 웃음) 우리 인도 JTS 스텝보다도 수준이 떨어지는 분도 있네요?(모두 웃음) 오면서 피곤했는지 하품하는 분도 계시니 짧게 하고 끝내야 되겠어요. 이제 오후 4시 40분밖에 안됐는데, (모두 웃음) 벌써 하품을 하면 어떻게 해요? 저녁보다는 아침이 어려울 거예요. 왜냐하면 아침에 한국시간으로 4시 반에 일어나면 그때가 인도 시간으로는 밤 1시거든요. 그래서 아마 여러분들은 내일 졸면서 다닐 수도 있어요.(모두 웃음)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일주일 정도는 안 자야지요.(모두 웃음)”

“(한 인도 스텝) 오늘만 자고 내일부터는 안 잘게요.”

“말은 잘 하네요.(모두 웃음) 통역해 주시는 쁘리앙카 교장선생님도 환영합니다.”

“(쁘리앙카) 감사합니다.”(모두 웃음)

“예, 마치겠습니다. 생활 잘 하세요.”(모두 박수)

환영인사 후 스님은 ‘여기저기 다니면서 맛있는 것도 사 먹고 남는 것은 가족들 선물도 사주세요.’라고 하며 미리 준비한 용돈을 주었습니다. 깜짝 선물을 받은 인도인들의 얼굴이 밝았습니다. 인도인 스텝들은 직접 만들어온 쿠키를 서울의 대중들에게 선물하고, 스님에게는 특별한 부채를 선물하였습니다. 스님도 커다란 부채를 손에 쥐고 함께 웃었습니다. 다 함께 단체사진을 찍은 후 환영식을 마무리했습니다.

2600여 년 전 인도에서 시작되어 한국까지 전해진 부처님의 가르침이 다시 스님을 통해 인도인에게 전해지고 있습니다. 구걸하던 꼬마가 학교를 다니고, 선생님이 되고, 의사가 되고, 마을개발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십 년이 흘러서야, 그들이 불법을 묻게 되고, 이 곳 한국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이번 방문은 인도인 스텝들이 정토회와 JTS사업을 더 깊이 있게 이해하고, 한국과 가까워지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함께 만든 사람들
조태준, 장은미, 박지윤 외 다수

전체댓글 17

0/200

정지나

지금을 넘어서,,,,자유록게,걸림없이!!!
감사합니다. 꾸벅^^

2018-06-08 12:56:54

^^^^

제목의 정답ㅋ을 찾아 읽어내려간 긴~글,넘 감동입니다!세상 어떤곳에서도 듣기어려운 깊이있는 법문 전해주시는 스님께 세삼더 감동합니다!법륜스님의 또 다른 위대함은,인도 둥게스와리에 수자타아카데미와 지바카병원을 세우시고 마을개발을 하시는일 같습니다!쁘리양카 교장선생
님의 더 밝아지신모습도 반갑고,완벽하고 귀한글 올려주셔 넘 감사해요^^* 제목의 정답ㅋ을 찾아 읽어내려간 긴~글,넘 감동입니다!세상 어떤곳에서도 듣기어려운 깊이있는 법문 전해주시는 스님께 세삼더 감동합니다!법륜스님의 또 다른 위대함은,인도 둥게스와리에 수자타아카데미와 지바카병원을 세우시고 마을개발을 하시는일 같습니다!쁘리양카 교장선생님의 더 밝아지신모습도 반갑고,귀한글

2018-06-02 12:42:24

정명

Welcome to JTS Indian step activist\'s visit to Korea.
At that time I sometimes remember it.
ha~~ha~~

(JTS 인도인 스텝 활동가의 한국 방문을 환영합니다.
그 때 그곳이 가끔은 생각납니다. ㅎ~~ㅎ~~)

2018-06-01 11:08:05

전체 댓글 보기

스님의하루 최신글

목록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