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18.10.2 행복한 대화(1) 서울 마포구청
“기독교와 불교를 같이 믿어도 될까요?”

“자신을 스스로 초라하게 만들지 마세요.
여러분들은 지금 이대로 훌륭합니다.
지금까지 안 죽고 산 것만 해도
여러분의 인생은 대성공이에요.”

안녕하세요. 오늘 법륜 스님은 북한 현실에 대해 전문가들과 조찬을 하고, 인도 성지순례 실무진들과 내년 성지순례 준비를 위한 회의를 하였습니다. 저녁에는 600여 명의 시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서울 마포구청에서 2018년 하반기 첫 번째 즉문즉설 강연을 하였습니다.

서울 마포구청에서 열린 즉문즉설 강연에서는 기독교와 불교를 같이 믿어도 되는지, 원망하는 마음을 내려놓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청중의 질문이 있었는데요. 기독교와 불교의 본질이 무엇인지에 대한 스님의 통찰력 있는 답변에 박수갈채가 쏟아졌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을 따라 교회에 다녔습니다. 인간은 피조물이기 때문에 창조주에게 의지하고 귀의해야 되며, 창조주를 믿고 따르는 만큼 은혜받는 삶을 살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우연히 스님의 법문을 듣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저는 고난의 삶이 복된 삶이라고 믿어왔는데, 스님께서는 괴로움에서 자유로워지는 법에 대해 말씀하시더라고요. 가만히 생각해 보니 정말 괴로움이 나로부터 시작이 됐고, 그 괴로움은 누가 준 것도 아니더라고요. 여태 저는 불교는 틀렸다고 생각하고 살아왔는데, ‘아, 내가 너무 잘못된 편견을 가지고 살았구나’ 하는 걸 깨닫게 되었어요.

저는 기독교와 불교- 두 개의 가르침을 병행하고 싶은데, 이것이 모순은 아닐지 여쭙고 싶습니다. 또 저는 틀이 강해서 저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을 원망하거나 탓하는 게 심합니다. 그걸 내려놓으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 건지 궁금합니다.”

“아무 모순 없이 병행할 수 있어요. 옛날에는 한국에서 태어난 사람은 무조건 한국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한국에서 태어나서 한국 사람으로 살다가 미국으로 가서 살면 미국 사람이 될 수도 있어요, 없어요?”

“있어요.”

“그런 사람을 ‘코리안 아메리칸(Korean American)’이라고 부릅니다. 즉 ‘한국계 미국인’이라고 해요. 옛날에는 불교를 믿으면 불교만, 기독교를 믿으면 기독교만 이렇게 한 가지를 선택해서 한 평생 살았어요. 요즘은 기독교 집안에 태어났어도 불교를 믿을 수 있고, 불교 집안에 태어났어도 기독교를 믿을 수 있어요. 또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기독교를 믿으면서도 불교도 공부하고 싶다면 그것도 가능해요. 그런 사람을 ‘크리스천 부디스트(Christian Buddhist)’라고 합니다. (모두 웃음)

미국에는 이런 사람이 굉장히 많습니다. 미국 사람들은 대부분 기독교 배경에서 자랐기 때문에 크리스천이라고 할 수 있는데,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불법을 공부해서 스스로 부디스트가 된 거예요. 그렇다고 문화적 배경인 기독교를 버리고 싶지는 않고, 그렇다고 불교를 배척하고 싶지도 않고, 그래서 결국 나온 이름이 ‘크리스천 부디스트’입니다.

제가 이번에 미국에 가서 워싱턴 D.C. 와 샌디에이고에서 미국인을 상대로 강연을 했는데, 강연 장소가 모두 가톨릭대학교 강당이었어요. 어떤 사람이 기독교인인 것과 그 사람이 괴로움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것과는 아무런 모순이 없어요. 그래서 질문자가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했다고 믿는다면 믿으라는 거예요. 믿음은 개인의 자유이니까요. 믿음에 대해서는 그게 진짜냐 아니냐 진위를 논할 수가 없습니다. 그건 불교적 수행과 아무런 모순이 없습니다.

질문자가 ‘고난 속에서 오히려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다’고 했는데, 그건 ‘고통 속에서 복음이 들린다’는 말과 같아요. 이것도 수행과 일치하는 얘기입니다. 전혀 모순이 없습니다. 사람은 모든 게 다 편안하면 교만해지기가 쉬우니까 좀 어려움이 있어야 겸손할 수 있거든요. 20대 때 인기 배우나 가수였던 사람들의 삶을 보면 대부분 결과적으로 행복하지 못합니다. 나중에 인기가 떨어지면 굉장한 방황을 하거든요. 그래서 젊을 때 고생을 많이 하는 게 실제로 훨씬 좋습니다.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린다는 건 진실입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수행’의 원리도 그와 같습니다. 기독교 따로 있고, 불교 따로 있는 게 아니에요.

질문자가 괴롭게 살고 싶으면 괴롭게 살면 돼요. 그런데 예수님께서 ‘괴롭게 살라’고 하셨어요?”

“아니요.”

“고난을 기꺼이 받아들이면 고난 속에서도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도 다 행복을 가르치는 거예요. 첫째, 우리는 어려운 사람을 돕기가 어렵죠. 둘째, 어려운 사람을 돕고 나면 보상을 기대하잖아요. ‘내가 이 고생을 했는데 나한테 칭찬이든 돈이든 뭔가 좋은 일이 생겨야 되지 않느냐.’ 하지요. 그러나 우리가 이런 생각을 하기 때문에 남을 돕는 걸 오래 하지 못하는 거예요.

그런데 기독교에서는 ‘이 세상에서 받는 보상은 작다. 나중에 하나님의 나라에 가서 받는 보상은 엄청나게 크다’라고 가르칩니다. 그런 믿음을 가지면 이 세상에서 어떤 좋은 일을 해도 보상을 기대하지 않게 됩니다. 불교에서는 보상을 기대하면 괴로우니 보상을 기대하지 말라고 가르치는데, 기독교는 천국에 가면 더 큰 보상이 있다고 가르쳐요. 보상 심리를 버린 건 아니지만 어쨌든 현실에서는 보상을 바라지 않게 됩니다. 그런 믿음을 가진 사람은 나환자촌에 가서 평생 살 수가 있습니다. 그냥 사는 것도 아니고 웃으면서 살 수 있는 거예요.

그러니 기독교인이 죽은 뒤에 천국에 가면 보상받는다는 믿음으로 지금 이 세상에서 보상받는 걸 기대하지 않는 것이나 불교인이 보상을 기대하는 게 괴로움의 원인이니까 보상을 기대하지 않는 것이나 둘 다 결과가 같지요?”

“예.”

“그래서 저는 기독교의 신앙도 참 좋다고 생각해요. 물론 천국까지 갔는데 보상이 없으면 그걸 믿었던 사람은 또 괴로움이 생기겠죠. 그런데 처음부터 보상을 기대하지 않은 사람은 천국이 있든 없든 신경 쓸 필요가 없어요. 논리적으로 따졌을 때는 후자가 더 낫긴 하지만, 현실적으로 두 사람은 별 차이가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나환자촌에서 평생 웃으며 봉사한 수녀님들은 세속에서 보상에 대한 기대가 없어요. 기대가 없는 봉사를 불교에서는 ‘무주 상보 시’라고 합니다. 기독교에서는 천국에 가서 받을 큰 보상이 있기 때문에 지금 이 세상에서 받는 작은 칭찬 같은 건 신경 쓸 필요가 없는 거예요. 이것이 우리가 현실에서 행복하게 사는 길이라는 거죠. 그러니 둘을 갈라서 이건 임시방편이고 저건 위대한 말씀이라고 하면 논쟁에 불과해집니다. 실용적으로 접근하면 두 입장 모두 심리적 현상은 같습니다.

질문자는 스스로를 기독교 신자라고 하지만 제가 볼 때는 기독교 신자가 아닙니다. 예수님이 ‘저분이 바로 하나님이다’라고 할 만한 이유는 부활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어떤 부활일까요?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면서도 자신을 십자가에 매단 사람들을 위해서 ‘주여, 저들을 용서하소서. 저들은 자기 지은 죄를 모르옵니다’ 하고 기도하셨습니다. 제가 지금 여러분들 앞에서 이렇게 큰소리치지만 누가 와서 저를 잡아다가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다면 제 입에서 ‘부처님, 저들을 용서하소서’ 이렇게 될까요? (모두 웃음)

불교인인 제가 봤을 때도 예수님은 정말 훌륭하신 분입니다. 불교적으로 말하면 예수님이 바로 보디 사트바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매달려서 하신 말씀이야말로 예수님이 신이 된 원리를 아주 잘 설명해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의 마음으로는 그런 마음이 들겠어요? 그런 마음을 냄으로써 그분은 이미 죽음을 초월해 버리고 신이 된 거예요. 예수님 육신을 십자가에 못 박았어도 그의 영혼을 털끝만큼도 훼손할 수 없었다는 것, 즉 죽음 앞에서도 아무 두려움 없이 자신을 못 박은 사람들마저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낸 것, 저는 그게 바로 예수님이 신이 된 원리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예수님이 그 마음을 낸 것이 바로 부활이라고 생각해요. 육신이 죽음으로써 부활하신 거죠.

그런 관점을 갖는다면 우리가 남을 원망할 일은 없어요. 자기를 죽인 사람도 용서하는 마음을 내는 걸 보면서 질문자가 무슨 남을 원망할 일이 있어요? 질문자가 원망한다는 사람들이 질문자를 죽인 건 아니잖아요. 돈 좀 떼어먹었거나 욕 좀 했거나 그랬겠지요. 그런데 뭘 원망해요?

그러니 질문자는 불교를 공부하기 이전에 ‘내가 아직 기독교 신자가 못 되었구나’, ‘내가 십자가 정신을 모르는구나’ 이렇게 관점을 잡아야 돼요. 질문자는 신앙을 바꿀 게 아니고 삶의 관점을 바꾸는 게 중요합니다. 부처님이 어떻게 말했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고, 우리의 고뇌와 원망이 어디로부터 일어나는지를 아는 것이 질문자한테는 중요한 거예요. 그건 성경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설명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조금 더 행복한 삶을 살려면 관점을 바꿔야 합니다. 행복은 결혼했느냐 안 했느냐의 문제도 아니고, 아이냐 어른이냐의 문제도 아니고, 무슨 종교를 갖고 있느냐의 문제도 아니에요. 그러니 질문자는 이런 관점을 갖고 접근하면 좋겠습니다.

‘집착을 내려놓으면 기독교인도 행복해지고 불교인도 행복해지고, 집착을 움켜쥐고 있으면 절에 아무리 다녀도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기독교 신앙을 가지시고, 또 불교 공부도 하세요. 그것은 하나님 앞에 아무런 죄가 안 됩니다.”

“감사합니다.”

이 외에도 스님은 5명의 질문을 더 받은 후 우리가 마음공부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강조하며 강연을 마쳤습니다.

마음공부에서 중요한 것

“마음공부를 할 때 ‘명상을 하면 좋다’, ‘절을 하면 좋다’ 이렇게 따지는 것은 형식주의입니다. 가장 중요한 건 '자기 마음이 일어나는 상태에 대해서 자기가 깨어있는 것'이에요. 자꾸 ‘화를 안 내야 된다’ 하면서 각오하고 결심하면 힘들어요. 화가 나는데 ‘화를 안 내야 된다’ 하면서 이를 악 다물면 스트레스를 엄청나게 받게 돼요. 그게 쌓이면 폭탄이 되어서 터집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윤리 도덕적으로 각오하고 결심하고 노력해야 한다고 배웠어요. 그리고 결심한 대로 안 되면 ‘나는 안 되는 사람이야’ 이렇게 자학을 합니다.

절대 스스로를 학대하지 마세요. 여러분들은 지금 이대로 훌륭합니다. 성질이 좀 더러우면 어떻습니까? 자기 삶에 대해서 일단 긍정적이어야 합니다. 대한민국이 문제가 많지만 그래도 좋은 나라이고, 지금까지 안 죽고 산 것만 해도 여러분의 인생은 대성공이에요. 이런 긍정의 토대 위에 ‘그래도 이런 건 좀 개선하면 좋겠다’는 걸 개선해 나가는 거예요.

화를 잘 낸다면

첫째, 단지 내가 화날 때 화나는 걸 ‘안다’는 것에 초점을 두세요. 화를 낸다, 안 낸다에 초점을 두지 말고요. 여러분들은 화날 때 화나는 줄 모르잖아요. 화가 날 때 ‘어, 내가 화가 나네’ 이렇게 알아차리는 수준은 돼야 합니다. 이걸 ‘알아차림’이라고 해요. 뭐라고 한다고요?”

“알아차림.”

“둘째, 알아차리는 걸 놓쳐서 화를 내버렸다면 ‘아, 나는 안 돼’ 이러지 말고 ‘아차, 내가 놓쳤구나’라고 합니다. 어떻게 하라고요?”

“놓쳤구나.”

“예. ‘놓쳤구나’라고 하는 것은 ‘다음에는 안 놓쳐야지’ 하는 것과 같아요. ‘내가 왜 또 놓쳤을까!’ 하지 말고 ‘다음에는 안 놓쳐야지’ 하고, 또 놓치면 ‘아차, 놓쳤구나. 다음에는 안 놓쳐야지’ 이렇게 연습을 해야 합니다. 남을 미워하는 것도 잘못이지만 자기를 미워하거나 학대하는 것도 잘못입니다.

안 죽고 산 것만 해도 대성공이에요.

눈이 보이는 것만 해도 대성공이고, 두 다리로 걷는 것만 해도 대성공이에요. 제가 이번에 필리핀 민다나오 정글에 가서 바위틈바구니 사이로 다니다 보니까 ‘와, 내가 다리가 없었으면 여기를 어떻게 왔겠느냐’ 싶더라고요. 그런 곳은 비행기, 차, 오토바이, 자전거로도 다닐 수가 없고 오직 두 다리로만 다닐 수가 있으니까요. 그래서 제가 걷다가 제 다리한테 절을 했어요. ‘고맙다. 고맙다.’ 하면서요.

두 다리가 성한 것을 고맙게 생각하면 다른 불만이 없어요. 병원에 갔을 때 목에 호스 연결해서 죽 먹는 사람들 본 적 있죠? 그걸 보고 나면 내 손으로 밥 떠먹는 것만 해도 감사하잖아요. 그럴 때 뭘 먹느냐 같은 건 하나도 안 중요해요. 그러니 여러분들이 ‘살아있는 것만 해도 큰 복이다’ 이렇게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됩니다. 이렇게 늘 자기를 아름답게 가꿔나가야 합니다. ‘돈이 없네’, ‘외모가 별로네’ 하면서 자신을 스스로 초라하게 만들지 마세요.

관점만 조금 바꾸면 됩니다. 여러분들은 남편이 술 먹고 오면 ‘또 술 먹었네!’ 하죠. 그런데 술 마실 정도의 건강이라도 갖고 있는 것이 나아요, 술 안 먹고 중풍 걸려서 누워있는 게 나아요? 그래도 스스로 돌아다니면서 술 먹고 오는 게 낫잖아요. 사는 게 내가 원하는 만큼 안 되는 건 맞습니다. 자식도, 남편도, 누구도 여러분들이 원하는 만큼 안 된다는 건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런데 세상은 여러분들이 원하는 대로 다 될 수가 없어요. 관점을 조금 바꿔 보세요. 그런 남편이라도 있는 게 낫잖아요. 그런 관점을 갖고 인생을 살면 지금보다 훨씬 더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주위 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도 해야 됩니다. 대한민국이 좋다고 긍정하면서 그냥 내버려둬야 될까요? 빈부격차도 줄이고,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되도록 하고, 개선을 좀 해야 될까요?”

“개선해야 돼요.”

“예, 개선하는 데도 관심을 갖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모두 박수)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대 성공이라는 말씀에 모두 환한 얼굴이 되었습니다.

오늘 스님의 하루는...

아침 일찍부터 북한 현실 모임 조찬이 있었습니다. 스님은 얼마 전 미국에 다녀오신 터라, 들려줄 이야기도 많고, 또 연구위원들도 남북정상회담 이후 북한과 한반도 정세에 대해 나눌 이야기들이 많았습니다. 한 연구위원은 “이번 남북정상회담과 평양선언을 보면서 북한이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만큼 북한의 의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는 얘기였습니다. 다만 미국 내부 정세가 호락호락하지 않기에 낙관적 전망뿐만 아니라 우려점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었습니다. 한미동맹이 더 중요해진 만큼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그리고 한중일 평화협력의 필요성 등에 대해 허심탄회한 의견들을 주고받았습니다.

스님은 은연중에 몇 번이나 ‘민족의 운명이 결정될 이 중요한 시기’라고 말했습니다. 스님이 이 격동의 시기를 얼마나 중요하게 보고 있는지 어렴풋이나마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와 우리 후손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어떤 큰 그림을 그리고 어떤 결단을 해야 할지 다시금 생각해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조찬 후에는 2019년 1월에 16박 17일간 있을 인도 성지순례를 준비하기 위에 여광 법사님과 실무진들이 평화재단을 찾아와 세부일정, 현지 예약사항 등에 대해 논의했습니다. 스님의 전체를 아우르는 눈과 대중을 배려하는 세심함을 함께 엿볼 수 있었습니다.

하루 종일 회의 후 스님은 서울 마포구청에서 즉문즉설 강연을 했습니다. 즉문즉설 강연은 행복학교 주관으로 열리고 있습니다. 강연에 앞서 행복학교의 경청 리포터들이 지역 주민들에게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 대한 만족도, 만족도가 높고 낮은 이유, 우리 동네에서 해결하고 싶은 것에 대해 인터뷰한 내용을 먼저 발표했습니다.

마포구민들 중 만족한다는 분들은 60%였는데요. 스님은 “다른 지역 평균과 비교하여 높다”“좋은 지역에 사니 질문할 것도 없겠다” 고 하면서 웃으며 강연을 시작했습니다. 총 6명과 대화를 나누다 보니 9시가 훌쩍 넘었습니다. 스님은 청중들에게 질문을 다 받지 못한 것에 양해를 구하고 강연을 마쳤습니다. 내일은 충주에서 행복한 대화 즉문즉설 강연이 있을 예정입니다.

함께 만든 사람들
리포터 김바다 사진 최원석 녹취 정란희 제보 이새롭, 여지원

전체댓글 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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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도자

"죽음 앞에서도 아무 두려움 없이 자신을 못 박은 사람들마저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낸 것, 저는 그게 바로 예수님이 신이 된 원리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예수님이 그 마음을 낸 것이 바로 부활이라고 생각해요. 육신이 죽음으로써 부활하신 거죠."
아멘. 예수천국.

2023-04-18 22:06:49

Sanctus

무식한 개신교인들 참 많다. 성경을 그렇게 열심히 읽었단 이들이 안수기도 나가서 호들갑 떤다. 백날 첫날 해봐라 성령이 오나... 당신네들 보다 법륜스님 같은 비구가 오히려 "주님의 종복이요", "하나님 오른 편에 앉아" 있어도 우습지 않을 사람이다.

2022-04-15 17:26:39

정체성

기독교를 모르면서 기독교를 얘기하시면 안됩니다. 안다고 하는 것이 단순이 지식을 아는 것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잖아요. 자식을 낳아보지 못한 사람이 자식을 키우는 부모를 가르치겠다고 하고, 결혼도 안 해 본 분이 결혼에 대해 얘기하는데 그걸 또 좋다고 따라다니고 뭘 알고 뭘 모르는지나 아실랑가 모르겠네요.

2021-12-22 14:3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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